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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부흥을 위한 거룩한 말씀

한 새사람인 교회에 관한 이상을 보아야 할 긴급한 필요

Our Urgent Need
to See
the Vision
of the Church
as the One New Man
(그 한 새사람인
그 교회의
이상을 보는
우리의 절박한 필요)

시대의 마지막 때에,
주님께서 돌아오실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반드시
한 몸과 한 새사람에 대한 
이상을 보아야 한다. 

성경에서 
‘이상’은 
비범한 광경을 
의미한다.
이것은 
특별한 종류의 봄(seeing),
곧 영광스러운 내적인 봄을
가리키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영적인 광경을 
가리킨다.

하늘에 속한 이상은
우리를 
지배하고, 제한하며, 
통제하고, 지시하며,
보존하고, 변혁하며,
진정한 하나 안에 
지켜 주고,
전진할 수 있는
담대함을 준다. 

하늘에 속한 이상 아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지를 향하게 되며,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경륜에 따라 
통제를 받게 된다. 

궁극적으로 
성경은 
한 새사람인 
교회에 대해 
말한다.

한 새사람으로서 
교회는 
단체적인 한 인격이며,
교회의 생명이실 뿐 아니라
교회의 인격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필요로 한다.

한 새사람이 
실지적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를 
우리의 인격으로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교회는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성취하는
한 새사람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의도는
그분을 표현하고 대표하는
단체적인 한 사람을 
얻는 것이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것은 
하나님의 새 창조물에 속한 
한 새사람을 
보여 주는 
그림이다.
이것은
옛 창조물이 
새 창조물에 대한 
상징이자 예표라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그분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고,
그런 다음 
사람에게 
그분의 통치권을
주셨다.

궁극적으로,
한 새사람인 
교회는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단체적인 사람이다.

성경은 
한 새사람이 
단체적이고 우주적인 
한 사람이라는 것을 
계시한다.

그리스도 안의 
믿는 이들인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새사람이 된다. 
따라서 우리는 모두 
단체적인 한 새사람의 
부분들이자 
구성 요소들이다.

한 새사람은 
단체적인 하나님-사람, 
곧 모든 하나님-사람들의 총체이다.

한 새사람은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창조되었다.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았다면, 
우리는 
한 새사람으로 
창조될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 안에는 
한 새사람의 요소인 
신성한 본질이 
없기 때문이다.

오직 신성한 본질 안에서, 
그리고 신성한 본질로만 
우리는
한 새사람으로 
창조되었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이러한 본질을 
가지는 것이 
가능하다.

한 새사람을 창조하는 데 
사용된 본질이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한 새사람 안에서 
그리스도는 
모든 것이시다. 
그러므로 한 새사람은 
그리스도이다.

한 새사람은 
우리 안으로 조성되신 
그리스도이다.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그리스도는 
한 새사람의 
조성 성분이시다.

우리가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누릴 때, 
그리스도는 
우리 안으로 조성되시고 
우리는 
한 새사람이 된다.

한 새사람 안에서 
그리스도는 
모든 지체들이시고 
모든 지체들안에 계신다.

그리스도께서 
한 새사람 안에서 
모든 것이시고 
모든 것 안에 계실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분께서 
우리 안으로 
조성되시는 것이다.

주님의 회복의 목표는 
한 새사람을 산출하는 것이다.

주님께서 
그분의 회복 안에서 
해 오셨고 
지금도 하고 계시는 
일은 
생명과 인격과 조성 성분이신 
그분 자신으로 
한 새사람을 
산출하시는 것이다.

주님은 
그분이 
모든 나라 가운데서 
모든 언어와 모든 백성으로부터 
한 새사람을 
산출하시고 
낳으실 수 있다는 것을 
사탄에게 보여 주기를 
원하신다. 
이것은 
외적인 운동이 아니라, 
우리의 
생명과 인격과 조성 성분으로 
우리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 자신 이다.

한 새사람은 
하나님의 왕국을 
이끌어 오며, 
왕이신 그리스도를
이 땅에 
다시 모셔 올 것이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한 새사람을 
온전하게 하고자 하시는 
그분의 목적을 
성취하실 때이다. 
이 한 새사람은 
이 땅에 
완전히 출현될 것이다.

세계정세는 
한 새사람을 산출하는 
목표를 위해 
일으켜져 왔다.
현시대에서 
주님께서 하고 계시는 
모든 일은 
한 새사람의 
실지적인 존재를 
이끌어 오기 위한 것이다.

한 새사람이 
충분히 성장하고 
온전하게 될 때가 
바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일 것이며, 
충분히 성장하고 
온전하게 된 
한 새사람이 
신부일 것이다.

“새사람이 
산출되어 나오도록 
오늘날 
모든 것이 
무르익었고, 
준비되었으며, 
마련되었다. 
우리 모두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 
우리는 
마지막 때에 있고, 
이 시기는 
황금기이다. 
지금이 바로 
주님의 회복을 
위한 때이다. 
우리의 시야는 
넓어져야 한다.”
(위트니스 리 전집, 1977년, 3권,
한 새사람, 685쪽)

“오늘날 
주님은 
이 땅에서 
이 일을 
하고 계시며, 
따라서 이 일이
오늘날 
주님의 
회복의 
목표이다.”
(위트니스 리 전집, 1977년, 3권,
한 몸, 한 영, 한 새사람, 4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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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replies on “한 새사람인 교회에 관한 이상을 보아야 할 긴급한 필요”

6일

엡 4:13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믿음에서의 하나와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온전한 지식에서의 하나에 
이르게 하고, 
또 충분히 성장한 사람이 
되게 하며, 
그리스도의 충만의 
신장의 분량에 
이르게 하려는 것입니다.

엡 4:24    
새사람, 
곧 하나님을 따라 
그 실재의 의와 거룩함으로 
창조된 
새 사람을 
입은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의 상황은 
매우 향상되었고 
새사람을 얻을 
준비가 되었으며 
그 시기가 
무르익었다. 
사도 바울 당시에는 
상황이 
오늘날과 같지 않았다. 
바울에게는 
아메리카 인디언들 중에 
형제가 없었지만, 
오늘날 새사람 안에서 
우리에게는 
인디언들 중에서도 
형제자매들이 있다. 
나는 결국에는 
인디언 보호 지역들 가운데서도 
주님의 회복 안의 
몇몇 교회들이 
생길 것이라고 
믿는다. 
세계정세는 
한 새사람을 산출하는 
목표를 위해 
일으켜져 왔다. 
지금 한 새사람 안에는 
다양한 민족들 모두가 
함께 섞여 있다.

하나님의 목적은 
그분을 표현하고 
그분의 통치권을 행사할 
한 사람을 
얻으시는 것이다. 
옛사람은 
하나님을 실망시켰지만, 
하나님은 
옛사람을 대치할 
한 새사람을 
일으키셨다. 
오늘날 우리는 
이 땅에서 
타락한 옛사람을 대치하는 
온전한 새사람을 
여전히 볼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하나님은 
결코 패배하실 수 없다. 
현시대는 
하나님께서 
새사람을 온전하게 하시는 
그분의 목적을 
성취하실 수 있는 
적기(適期)이다. 
이 새사람이 
이 땅에 
완전히 존재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그분 자신을 표현하고 
그분의 통치권을 행사할 
그런 사람을 
필요로 하신다. 
이 새사람이 
온전하게 될 때가 
바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일 것이며, 
온전하게 된 새사람은 
신부가 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그러한 이상이 
필요하다. 

그러한 이상은 
우리를 
하나 안에 
지켜 줄 뿐 아니라, 
그리스도 외의 모든 것에서 
우리를 
구원하고 
해방할 것이다. 
우리에게 
그러한 이상이 
필요하다. 
수년에 걸쳐서 
어떤 사람들은 
좁은 소견으로, 
각 지방에 있는 
교회는 
자신의 관할권과 자치권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는 
여러 나라들에 있는 
모든 지방 교회들이 
한 새사람임을 
보아야 한다. 

역사와 성경에 
비추어 볼 때, 
문명은 항상 
하나님의 의도에 따라 
움직였다. 
비록 타락한 인류 문명이 
하나님께 속하지 않았을지라도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주권을 가지고 계신다. 
하나님은 
새사람을 
온전하게 하시기 위하여 
인류 문명을 
해양에서 대양으로, 
그리고 대양 위의 하늘로 
가져오셨다. 
이 땅에 있는 
모든 것은 
새사람을 
온전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오늘날의 
세계 정치와 과학의 발명들, 
현대적인 교통과 통신, 
여러 언어들에 대한 
우리의 이해로 인하여 
세계는 
하나의 작은 영역으로 
좁혀졌다. 
새사람이 
온전하게 되는 것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거의 없다. 
새사람이 
산출되어 나오도록 
오늘날 
모든 것이 
무르익었고, 
준비되었으며, 
마련되었다. 
우리 모두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 
우리는 
마지막 때에 있고, 
이 시기는 
황금기이다. 
지금이 바로 
주님의 회복을 
위한 때이다. 
우리의 시야는 
넓어져야 한다. 
오직 한 새사람이 
있을 뿐이고, 
어떤 것이나 
어떤 사람도 
이 새사람 안에서는 
입지를 가질 수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이시고 
모든 것 안에 계신다.

생명 주시는 영께서 
우리의 영 안으로 
들어오셔서 
우리를 
처리하신다. 
이 처리하시는 과정은 
변화인데, 
그것은 
이러한 과정에서 
그 영의 요소가 
우리 안에 
증가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연합된 영
—한 영이 된 두 영—이 
우리의 영에서부터 
스며 나와,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 
심지어 우리의 온 존재를 
적신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이 생각의 영 안에서 
새롭게 된다. 
이 새롭게 됨이 
우리 모두를 
새사람이 되게 한다. 
이 새롭게 됨 안에서 
우리는 
우리의 옛 사회생활을 
벗어 버리고 
교회생활을 
입는다. 
이것이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사람을 
입는 것이다.

오늘날 주님은 
이 땅에서 
이 일을 
하고 계시며, 
따라서 이것이 
오늘날 
주님의 회복의 
목표이다. 
오늘날 온 땅에서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을 추구하며, 
그분을 따르는 
모든 사람은 
그분을 
인격으로 취하고 
그분으로 인해 
삶으로써 
생각의 영 안에서 
새롭게 되어 
한 새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오늘날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다.

 

5일

엡 4:22-23   
여러분은 
지난날의 생활 방식을 따르는 
옛사람, 
곧 그 속이는 것의 
(the deceit;
그 속임의, 그 기만자의)
욕정에 따라 
썩어져 가는 
옛사람을 
벗어 버린 것이며, 
또한 생각의 영 안에서 
새롭게 되어

새사람은 아직 
완전한 상태에 
이르지 못했다. 
몇 년 전에 나는 
사랑스러운 몇몇 선교사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기뻐하면서 
내게 
복음이 
모든 대륙과 지구 구석구석에 
전파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처럼 
기뻐하실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아직도 
그분의 목표에 
이르지 못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목표는 
복음이 
지구 구석구석에 
전파되는 것이 
아니다. 
그분의 목표는 
새사람을 얻는 것이다. 
새사람은 
옛사람을 대치한다. 
옛사람을 
대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새사람이 
모든 백성과 모든 족속과 모든 나라로 
구성되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과거에는 
오늘날만큼 
새사람을 얻을 수 없었다.

이 마지막 때에 
주님은 
새사람을 
산출하실 것이다. 
오늘날 주님은 
전 세계에 걸쳐 
매우 많은 나라에서 
그분의 믿는 이들을 일으키셔서 
그분을 
추구하게 하실 것이다. 
우리가 그분을 추구할 때, 
우리는 그분께서 원하시는 것이 
바로 그러한 새사람이라는 것을 
볼 것이다.

새사람은 
에큐메니컬 운동
(기독교의
다양한 교파를 초월하여 
모든 교회의
보편적인 일치와 결속을 도모하는 
신학 운동
—역자 주)
과 같은 
운동이 아니고, 
하나의 조직도 아니며, 
다만 한 사람이다. 
사람이기 때문에 
새사람에게는 
생명이 있어야 하고 
인격도 있어야 한다. 
이 새사람의 생명은 
그리스도여야 하고, 
이 새사람의 인격도 
그리스도여야 한다. 
이 새사람 안에는 
다른 어떤 사람을 위한 
여지가 없다. 
유대인, 헬라인, 
할례자, 무할례자, 
야만인, 스구디아인, 
노예, 자유인 등 
이 모두를 위한 
여지가 없고, 
오직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이시고 
모든 것 안에 계신다. 
단지 한 개인이 
“그리스도는 
나의 생명이시고, 
그리스도는 
나의 인격이십니다.”라고 
말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단체적으로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이시고, 
그리스도는 
우리의 인격이십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주님의 회복은 
새사람을 산출하기 위해 
여기에 있다. 
주님은 
그분의 회복 안에서 
운동이나 조직을 
관심하지 않으신다. 
그분께서 
해 오셨고 
지금도 하고 계시는 것은 
그분 자신을 
생명과 인격으로 삼는 
새사람을 
산출하시는 것이다.

오늘 우리 모두는 
이 집회가 단순히 
모든 대륙에서 와서 모인 
특별 집회가 아님을 
보아야 한다. 
이 집회는 
우리 모두가 
이제부터 
무엇에 관해 말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집회가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 집회는 
우리 모두가 
주님께서 
우리의 생명과 인격이심을 
보기 위한 것이다. 
오늘날 주님은 
사탄에게, 
그분께서 
모든 나라 가운데서 
모든 언어와 모든 백성으로부터 
한 새사람을 
산출하실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를 원하신다. 
이것은 
외적인 가르침이나 
외적인 운동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 안에서 
생명과 인격이 되시는 
주님 자신이다. 
우리 모두는 
그분을 영접하고 
모든 일에서 
그분 안으로 
자란다. 
그럴 때 
온몸이 
그분에게서 나와 
함께 결합되고 
짜인다.

우리가 
모든 것에서 
그리스도 안으로 자랄 때, 
온몸이 
그분에게서 나와 
함께 결합되고 
짜일 것이다. 
우리가 
그분 안으로 자라고 
그분에게서 나온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 안에 있지 않고 
완전히 그분 안에 있을 것이다. 
… 우리가 
그분 안으로 자라고 
그분에게서 나올 때, 
우리는 쉽게 
함께 결합되고 
짜인다. 
여러분과 나, 
우리 모두는 
반드시 
그분 안으로 자라고, 
그분을 통과하며, 
그분에게서 나와야 한다. 
그럴 때 
이 새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모든 충만은 
그리스도 안에 
체현되어 있고,
이 그리스도는 
우리의 존재 안으로 
들어오셔서 
우리의 
의와 거룩함과 
사랑과 빛이 
되신다. 
이것이 
새사람의 표현을 가진 
새사람이다. 
그런 표현을 가진 
새사람만이 
하나님의 왕국을 
이끌어 오고, 
왕이신 그리스도를 
이 땅에 
다시 모셔 올 것이다. 
주님의 회복의 목표는 
바로 하나님의 표현인 
그러한 새사람이 
되는 것이다.

 

4일

골 3:10-11
새사람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이 새사람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에 따라 
온전한 지식에 이르도록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자와 무할례자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노예나, 자유인이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이시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 

죽음은 
우리를 
부활로 인도한다. 
그리스도는 
부활 안에서 
우리를 
그분 자신 안에 
넣으셨다. 
그러고 나서 그리스도는 
그분의 신성한 본질로 
그분 자신 안에서 
우리를 
한 새사람으로 
창조하셨다. 

에베소서 2장 15절은 
‘이것은 
이 둘을 
한 새사람으로 
창조하시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분 자신 안에서’라는 말을 
간과하지 말라.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았다면, 
우리는 
한 새사람으로 
창조될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 안에는 
한 새사람의 요소인 
신성한 본질이 
없기 때문이다. 
오직 신성한 본질 안에서, 
그리고 신성한 본질로만 
우리는 
한 새사람으로 
창조되었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이러한 본질을 
가지는 것이 
가능하다. 
사실상 그리스도 자신이 
이 본질이시고 
이 요소이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그분 자신 안에서 
이 둘을 
한 새사람으로 
창조하셨다. 
우리 모두는, 
우리 믿는 이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새사람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을 필요가 있다.

새사람을 입는 것은 
단 한 번에 일어나지 않는다. 
반대로 그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전 생애에 걸쳐 계속되는 
점진적인 과정이며 
일생의 과제이다. 
… 새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로 
창조되었다. 
에베소서 2장 15절에서 
‘안에서’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도구와 관련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한 그 단어에는 
‘…으로’라는 
뜻도 있다. 
그러므로 ‘그분 자신 안에서’는 
사실상 ‘그분 자신으로’를 
의미한다. 
새사람은 
이미 신성한 본질이신 
그리스도로 
창조되었다. 
우리가 거듭났을 때, 
이 새사람은 
우리의 영 안으로 
넣어졌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영이 
우리의 존재를 
통제하고 
우리의 생각을 
새로워지게 하는 것을 
허락 함으로써 
매일 이 새사람을 
입어야 한다. 
우리의 존재의 
일부분이 
새로워질 때마다 
우리는 
새사람을 
조금 더 입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이 
우리의 생각을 통제함으로 
우리가 
조금 더 새로워질 때, 
우리는 
그만큼 
새사람을 
더 많이 
입게 된다. 
결국에는 
새사람을 입는 
이 과정이 
완성될 것이다.

한 새사람 안에서는 
사람들 사이에 있는 
국적이나 문화적인 차별이 
있을 수 없다. 
여기에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노예나 자유인이나, 
문화인이나 미개인이 
있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미국인이나 영국인이나 
일본인이나 중국인이나 
독일인이나 프랑스인이 
있을 수 없다. 
이 새사람 안에서는 
그리스도가 
모든 것이시다. 
왜냐하면 그분은 
한 새사람을 창조하는 데 사용된 
본질 자체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 새사람은
그리스도이다.

골로새서에서 
바울은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충만이신 
그리스도를 
제시한다. 
바울은 
그러한 그리스도의 
여러 방면을 
하나하나 언급하고 난 후에 
새사람에 대해 
말한다. 
1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충만이신 
그리스도와 
3장에 나오는 
새사람 사이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한 
체험과 누림을 가진다.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체험과 누림의 
결과는 
새사람인 
교회이다. 
그러므로 새사람은 
우리가 
하나님의 충만이신 
그리스도를 
누리는 데서 
나온다. 
우리가 매일 
그리스도를 누릴 때, 
그분께서 
우리 안으로 
일해 넣어지시고 
우리의 존재 안으로 
조성되신다. 
이런 식으로 그리스도는 
우리의 
조성 성분이 되신다. 
날마다 
그리스도는 
우리 안으로 
조성되고 계신다. 
마침내 우리 모두는 
철저히 
그분으로 조성될 것이다. 
그리스도로 
조성된 결과로 
우리는 
새사람이 된다. 
이 새사람 안에는 
어떤 타고난 사람을 위한 
여지가 전혀 없다. 
오직 그리스도를 위한 
여지만 있다. 
새사람 안에서 
그리스도는 
모든 것이시고 
모든 것 안에 계신다. 
… 새사람 안에서 
그리스도는 
모든 지체들이시고 
모든 지체들 안에 계신다. 

그리스도께서 
새사람 안에서 
모든 것이시고 
모든 것 안에 계실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분께서 
우리 안으로 
조성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로 조성되는 
과정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누릴 때에 
발생한다. 
…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주님을 찬양하고, 
주님께 감사와 경배를 드릴 때, 
우리는 
그분으로 충만해진다. 
이렇게 
그리스도를 누리고 
그분을 체험함으로써, 
우리는 점차 
그리스도로 조성된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누릴 때, 
그리스도는 
그분 자신으로 
우리를 조성하신다.

 

3일

골 3:10-11   
새사람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이 새사람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에 따라 
온전한 지식에 이르도록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자와 무할례자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노예나, 자유인이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이시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 

죽음은 
우리를 
부활로 인도한다. 
그리스도는 
부활 안에서 
우리를 
그분 자신 안에 
넣으셨다. 
그러고 나서 
그리스도는 
그분의 신성한 본질로 
그분 자신 안에서 
우리를 
한 새사람으로 
창조하셨다. 

에베소서 2장 15절은 
‘이것은 
이 둘을 
한 새사람으로 
창조하시어’
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분 자신 안에서’라는 말을 
간과하지 말라.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았다면, 
우리는 
한 새사람으로 
창조될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 안에는 
한 새사람의 요소인 
신성한 본질이 
없기 때문이다. 
오직 신성한 본질 안에서, 
그리고 신성한 본질로만 
우리는 
한 새사람으로 
창조되었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이러한 본질을 
가지는 것이 
가능하다. 
사실상 그리스도 자신이 
이 본질이시고 
이 요소이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그분 자신 안에서 
이 둘을 
한 새사람으로 
창조하셨다. 
우리 모두는, 
우리 믿는 이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새사람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을 필요가 있다.

새사람을 입는 것은 
단 한 번에 일어나지 않는다. 
반대로 그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전 생애에 걸쳐 계속되는 
점진적인 과정이며 
일생의 과제이다. 
… 새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로 창조되었다. 
에베소서 2장 15절에서 
‘안에서’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도구와 관련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한 그 단어에는 
‘…으로’라는 
뜻도 있다. 
그러므로 ‘그분 자신 안에서’는 
사실상 ‘그분 자신으로’를 
의미한다. 
새사람은 
이미 신성한 본질이신 
그리스도로 창조되었다. 
우리가 거듭났을 때, 
이 새사람은 
우리의 영 안으로 넣어졌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영이 
우리의 존재를 통제하고 
우리의 생각을 새로워지게 하는 것을 
허락함으로써 
매일 
이 새사람을 
입어야 한다. 
우리의 존재의 일부분이 
새로워질 때마다 
우리는 
새사람을 
조금 더 입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이 
우리의 생각을 통제함으로 
우리가 조금 더 새로워질 때, 
우리는 그만큼 
새사람을 
더 많이 입게 된다. 
결국에는 
새사람을 입는 
이 과정이 
완성될 것이다.

한 새사람 안에서는 
사람들 사이에 있는 
국적이나 문화적인 차별이 
있을 수 없다. 
여기에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노예나 자유인이나, 
문화인이나 미개인이 
있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미국인이나 영국인이나 
일본인이나 중국인이나 
독일인이나 프랑스인이 
있을 수 없다. 
이 새사람 안에서는 
그리스도가 모든 것이시다. 
왜냐하면 그분은 
한 새사람을 창조하는 데 사용된 
본질 자체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 새사람은
그리스도이다.

골로새서에서 
바울은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충만이신 
그리스도를 제시한다. 
바울은 
그러한 그리스도의 
여러 방면을 
하나하나 언급하고 난 후에 
새사람에 대해 
말한다. 
1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충만이신 
그리스도와 
3장에 나오는 
새사람 사이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한 
체험과 누림을 가진다.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체험과 누림의 
결과는 
새사람인 교회이다. 
그러므로 새사람은 
우리가 
하나님의 충만이신 
그리스도를 누리는 데서 
나온다. 
우리가 매일 
그리스도를 누릴 때, 
그분께서 
우리 안으로 
일해 넣어지시고 
우리의 존재 안으로 
조성되신다. 
이런 식으로 
그리스도는 
우리의 
조성 성분이 되신다. 
날마다 
그리스도는 
우리 안으로 
조성되고 계신다. 
마침내 우리 모두는 
철저히 
그분으로 조성될 것이다. 
그리스도로 조성된 결과로 
우리는 
새사람이 된다. 
이 새사람 안에는 
어떤 타고난 사람을 위한 
여지가 전혀 없다. 
오직 그리스도를 위한 
여지만 있다. 
새사람 안에서 
그리스도는 
모든 것이시고 
모든 것 안에 계신다. 
… 새사람 안에서 
그리스도는 
모든 지체들이시고 
모든 지체들 안에 계신다. 

그리스도께서 
새사람 안에서 
모든 것이시고 
모든 것 안에 계실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분께서 
우리 안으로 
조성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로 조성되는 
과정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누릴 때에 
발생한다. 
…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주님을 찬양하고, 
주님께 감사와 경배를 드릴 때, 
우리는 
그분으로 
충만해진다. 
이렇게 
그리스도를 누리고 
그분을 체험함으로써, 
우리는 점차 
그리스도로 조성된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누릴 때, 
그리스도는 
그분 자신으로 
우리를 조성하신다.

 

2일

창 1:26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가 
우리의 형상대로 
우리의 모양에 따라 
사람을 만듭시다. 
그리고 그들이 
… 통치하게 합시다.”
 
엡 3:17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거처를 정하시게 
하시며, …
 
엡 4:23-24
또한 
생각의 영 안에서 
새롭게 되어 
… 새사람을 
입은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성경은 
교회를 
한 새사람이라고 
말한다. 
나는 
새사람을 나타내는 
어떤 예표도 
찾을 수 없다. 
몸 안에는 
지체들이 있고, 
가정 안에는 
가족 구성원들이 있으며, 
회중 안에는 
회중의 구성원들이 있다. 
그러나 새사람 안에는 
무엇이 있는가? 
인격뿐이다. 
새사람 안에는 
인격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이 수준은 
너무 높아서 
더 이상 높을 수 없고, 
너무 엄격해서 
더 이상 엄격할 수 없으며, 
너무 친근해서 
더 이상 친근할 수 없다. 
모두가 
한 새사람이다. 
이 한 새사람은 
오직 한 인격을 
가지고 있다. 
이 인격이 
바로 주 예수님이다.

나는 이번에 
여섯 대륙 전체에서 
성도들이 
이곳에 함께 모일 때, 
그들 모두가 
이 기회를 붙잡아 
성경에 계시된 
교회의 
가장 높은 의미를 
볼 수 있기를, 
나의 존재의 
깊은 속에서부터 
주님께 
간구하고 있다. 
성경에서 
교회에 대한 
가장 높은 정의는 
새사람 이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성경은 
교회가 
단지 몸만이 아니라 
또한 새사람이라고도 
말한다. 
새사람은 
몸과 다르다. 
물질적인 몸을 
예로 들어 보자. 
몸은 
간단히 말해서 
기관으로 쓰이는 
그릇일 뿐이다. 
하지만 사람은 
단지 기관만이 아니다. 
사람에게는 
인격이 있다. 
몸은 
생명이 필요하지만 
사람은 
생명에 더하여 
인격이 필요하다. 
생명은 
인격과 다르다. 
식물은 
생명이 있지만 
인격이 없다. 
사람은 
생명만이 아니라 
인격도 있다. 
과거에 우리는 
교회가 
그리스도를 
생명으로 삼는 
몸이라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우리는 
교회가 
그리스도를 
생명으로 삼을 뿐 아니라 
인격으로도 삼는 
새사람이라는 것은 
보지 못했다. 

성경은 
교회가 
새사람이라고 
말한다. 
에베소서 2장 15절은 
그리스도께서 
규례들로 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 안에서 
없애 버리셨으며, 
이것은 
이 둘을 
그분 자신 안에서 
한 새사람으로 
창조하시어 
화평을 이루시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바울은 
주님께서 
이 둘, 
곧 유대인 믿는 이들과 
이방인 믿는 이들을 
한 새사람으로 
창조하셨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새사람은 
한 개인이 아니다. 
새사람은 
단체적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는 
그리스도를 
그 생명으로 
필요로 하고, 
새사람으로서의 
교회는 
그리스도를 
그 인격으로 
필요로 한다. 
생명이 없는 
몸은 
몸이 아니라 
시체이다. 
그러나 몸이 
움직일 때에는 
생명에 의해 
결정되지 않고 
인격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새사람 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우리의 인격으로 
취할 
필요가 있다. 
단체적인 인격인 
새사람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사신 것처럼 
생활해야 한다. 
즉 하나님을 
표현해야 하고,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실재이심을 
깨닫게 하는 
진리의 삶을 
살아야 한다.

아담은 
모든 인류를 포함하는 
단체적이며 집합적인 
사람이었다. 
하나님은 
많은 사람을 
창조하지 않으시고 
오직 아담 한 사람 안에서 
단체적인 인류를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그분 자신의 형상대로 
그분 자신의 모양에 따라 
이와 같은 
단체적인 사람을 창조하여, 
인류가 
단체적으로 
하나님을 
표현할 수 있게 하셨다.

하나님은 
단체적인 사람을 
창조하셨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사람이 
하나님을 
표현할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통치함으로써 
하나님을 
대표하게 하시기 위한 것이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것은 
하나님의 새 창조물에 속한 
한 새사람을 보여 주는 
그림이다. 
이것은 
옛 창조물이 
새 창조물에 대한 
상징이자 예표라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옛 창조물에서 
중심인물은 
사람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새 창조물에서도 
동일하다. 
그러므로 
옛 창조물과 새 창조물 모두에서 
그 중심은 
사람이다. 

하나님은 
그분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고, 
그런 다음 사람에게 
그분의 통치권을 
주셨다.

 

1일

잠 29:18상 
이상이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

행 26:19 
아그립바왕이시여, 
그러므로 내가 
하늘에 속한 
그 이상을 
거스르지 않고,

고전 12:12 
왜냐하면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모두가 한 몸인 것같이, 
그리스도도 
그와 같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돌아오실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반드시 
몸과 새사람을
(the Body and the new man;
그 몸과 또 그 새사람을)
보아야 한다.
성경의 마지막에 이를 때, 
요한계시록 22장에서
그 영과 신부가
(the Spirit and the bride;
그 영과 그 신부가)
나타난다.
성경의 마지막에서
새사람은 신부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의 체험은
분명히 이 단계에 이르러야 한다.
먼저 교회는 
몸이고,
그 다음은 새사람이며,
마지막은 신부이다.
그것은 기독교 안에 있는
어떤 사람들이,
믿는 이들은
한 장소로 
함께 모일 것이고
주님께서 
그들을 
즉시 그분의 신부로 
변하게 하실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오히려 오늘날 우리는 
반드시 은혜를 받아 
몸을 보고,
새사람을 보며,
마지막으로 신부를 보아야 한다.

‘이상’은
비범한 광경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우리가 
훌륭하게 장식된 
어떤 사람의 집에 들어가서
그 집을 둘러본다면
즉시 비범한 어떤 것을 
감지할 것이다.
우리에게 그것은
일종의 비범한 광경이다.
즉, 하나의 이상이다.
성경에서 이상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광경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을 통하여
너울을
(the veil; 그 장막을)
벗겨주셨지만,
우리는 반드시 
말씀 안에 담긴
광경을
(the scenes; 그 장면들을)
보아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시를 통하여
보는 모든 것이
한 이상이다.

나는 
영광의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나에게 나타나신 
체험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때는 
내가 
구원받은 날 오후였다.
집회소에서 
거리로 걸어 나갈 때,
나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는 것을
(that everything was different;
각각의 모든 것들이 달랐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길가에 멈추어 서서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하나님!
저는
이제 다른 어떤 것도
(anything else anymore;
더이상 다른 아무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저는
오직 당신 자신만을 
원합니다.”
이것은
나에게 나타나신
영광의 하나님이었다.
나는 원칙상 
여러분 모두가
동일한 체험을
가지기를 바란다.
기독교 선교사들과 같이 
되지 말라.
그들은 
직업적으로
(as a profession;
한 전문직으로)
주님을 섬긴다.
주님의 회복 안에서 
그분을 섬기는 모든 사람이
적어도 한번은 
이러한 영광스러운 이상을 
보기를 
바란다.
이 이상은
그들에게 빛을 비추며
그들을 파쇄할 것이다.
이것은 
어떤 외적인 것을 
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명확하고도 영광스러운
내적인 무언가를 
보는 것이다.

며칠 전 
대만에 돌아왔을 때,
나는 
복음 팀의 한 사람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형제자매들은 
매우 흥분하였다.
그들은
삼 주 만에 
팔십이 명의 사람들에게
침례를 주었다고 
말했다.
첫 번째 주일에는
이십삼 명의 새로운 사람들이
참석한 가운데 
떡 떼는 
집회를 가졌다고 
말했다.
이것은 
참으로 고무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밑에 깔려있는 
버팀목과 같은 
이상이 없다면
그러한 흥분은
곧 썰물처럼 사라진다는 것을 
보아야 한다.
그것은 최근 며칠 동안 
우리가 경험한
날씨와도 같다.
때때로 한랭 전선이 다가오면
기온은 변덕스럽게 오르내린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이상을 보았다면,
한랭 전선이 있든
온난 전선이 있든
그것에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내적인 이상을
보았기 때문에
각 마을에서 
복음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 영광스러운 이상은
우리를 통제하며,
우리로 
이 일을 
계속해 나갈 
담대함을 준다.

마가복음은 
단지 이야기책이
아니다.
이 복음서는
하늘에 속한 이상,
즉 우리의 발걸음을
지시해 주고,
우리의 삶을 
통제하고,
우리를 
하나님의 완결 안으로 
이끌어 줄 
이상을 전달해 준다.
이 이상은 
하나님의 경륜 안에 
우리를 지켜 주어, 
우리로 하여금 
천년왕국과 새 예루살렘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교회생활을 
할 수 있게 한다.

하나님에게서 오는 
이러한 이상은
항상 우리의 발걸음을 
지시해 주며 
우리의 삶을 
통제해 줄 것이다.
이것은 
구약에서도 사실이었다.
구약의 말씀은 
우리에게 
이상이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한다고 
말한다
(잠29:18상).
하늘에 속한 이상 아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지를 
향하게 되며,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경륜에 따라
통제를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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