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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부흥을 위한 거룩한 말씀

하나님의 증거를 보호하고 이 땅에서의 하나님의 움직임을 위해 싸우는 군대로 편성되기 위해 요구되는 성장과 성숙

The Growth and Maturity
Required for the Formation of the Army
to Protect God’s Testimony
and Fight for His Move on Earth
하나님의 증거를 보호하고
또 땅 위에서의 그분의 움직이심을 위하여 싸우는
그 군대의 그 형성을 위하여 요구되는
그 성장과 또 성숙
 

민수기는
구속받고
계시를 얻고
하나님에게서 훈련받은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하나님의 증거를 보호하고
이 땅에서의 하나님의 움직임을 위해
싸우는 군대로 편성되었는지를
강조한다
― 민 1:2-3, 19-20.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땅이
사탄에 의해 황폐하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땅에서의 그분의 움직임을 위한
군대로 편성된
한 무리의 사람들을
얻으셔야 한다
― 민 1:3.

 

민수기는
어떻게 하나님께서
구속받은 그분의 백성을,
그분의 증거를 둘러싸고 보호하는
군대로 편성하셨는지를
보여 준다
― 민 2:1-2, 32, 34.

민수기에서,
특별히 처음 네 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안배에 따라
군대로 편성되었다.

이스라엘 자손이
군대로 편성되기 위해서는
계수되는 것이 필요했다.
오직 계수된 후에라야
이스라엘 백성은
군대로 편성될 수 있었다
― 민 1:2-3, 19-20.

이스라엘 남자가
‘군 복무’를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이십 세가 되어야 했다.
이것은
성장과 성숙과 관계있다
― 민 1:3.

대략 이백만 명의
이스라엘 백성이 있었지만,
603,550명만이
이십 세 이상이어서
군 복무를 할 수 있었다
― 민 1:45-46.

이 땅에
무수히 많은 믿는 이들이 있을지라도,
그들 중 소수만이
하나님의 증거를 위해
싸울 수 있을 정도로
생명이 성숙하였다
― 엡 4:12, 15-16, 6:10-12.

민수기는
군대에 징집되는 사람들의 나이가
이십 세 이상이라는 것을 언급하지만,
전역하는 나이는
언급하지 않는다.

갈렙이
팔십 대에도
사십 대처럼 싸울 수 있었고
하나님 앞에서 강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군대는 강했다
― 수 14:6, 10-11.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계수되기 위해서는
생명과 생명의 성숙이 둘 다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수기에 따르면,
어린이들과 여인들은 모두
계수되지 않았다.

어린이들은
성숙하지 않음을 상징하고,
여인들은
약함을 상징한다.

오직 이십 세 이상의 남자들만이
전쟁에 참여할 수 있었다는 것은
믿는 이들 가운데서
오직 생명이 성숙하고 강한 이들만이
영적 전쟁에서 싸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계수된 사람들은
모세와 아론과 열두 지파의 인도자들에게
확증을 받는 것이 필요했다
― 민 1:4, 16-18.

모세는
몸의 머리로서
권위를 행사하시는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아론은
대제사장으로서
제사장 직분을 수행하시는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열두 지파의 인도자들은
교회 안의 장로들과 인도자들을
상징한다
― 골 1:18, 히 8:1, 행 14:23.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계수하는 것이
생명과 생명의 성숙에 근거하고
영적 권위에 의해 확증을 받는다는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군대가
편성되기 위해서는
생명과 성숙
그리고 영적 권위의 확증이
요구된다.

이스라엘 자손은
그 수에 들기 위해
그들 조상의 집안의
생명의 교통 안에 있어야 했고,
이십 세로 상징되듯이
생명이 자라서 성숙해야 했다
― 민 1:1-16.

오늘날
주님의 회복 안에는
하나님의 군대가
편성되기 위해
요구되는
성장과 성숙이
긴급히 필요하다.
우리는
성숙에 이르도록
생명이 자라야 한다
― 출 30:14, 민 1:2-3, 18, 엡 4:12-16.

영적인 면에서 볼 때,
이십 세 이상의 남자는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에서
그들의 타고난 신분에 상관없이
영 안에서 강하고
신성한 생명 안에서 성숙한
이들을 상징한다.
오직 이들만이
군대로 편성되어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의 권익과 움직임을 위하여
싸울 자격이 있다
― 출 30:14, 민 1:3.

생명의 성장은
하나님의 요소가 증가하고
(골 2:19),
그리스도의 신장이 커지며
(엡 3:17상, 4:13),
성령의 입지가 확대되고
(엡 5:18),
사람의 요소가 감소하며,
타고난 생명이 파쇄되고,
우리 혼의 각 부분이 굴복되는 것이다
(딤후 1:7).

변화되는 것은
우리의 타고난 생명이
신진대사적으로 바뀌는 것인 반면에,
성숙되는 것은
우리를 바꾸어 주는
신성한 생명으로
가득 채워지는 것이다.
변화의 마지막 단계는
성숙, 곧 생명의 충만이다
― 히 6:1.

신약에서
‘성숙’이라는 말은
믿는 이들이
완전히 성장하고
하나님의 생명 안에서
온전하게 된 것을
가리킨다
― 마 5:48, 요 3:3, 5-6, 15.

믿는 이들로서
우리는
뒤에 있는 것들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들을 향하여
힘을 다해 수고함으로써,
즉 천년왕국에서
그리스도를
극도로 누리기 위해
그리스도를
가장 충만하게 누리고 얻기를
추구함으로써,
성숙에 이르도록
계속 나아가고 전진해야 한다
― 빌 3:12-15.

영적 생명이
성숙하기 위한
전제 조건은
신성한 생명 안에서
계속 자라는 것이다
― 엡 4:15.

믿는 이들이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자라고 성숙한
궁극적인 결과는
충분히 성장한 사람,
곧 성숙한 사람으로 자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이다
― 엡 4:13, 16.

성숙하였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형상이
우리 안에
완전히 이루어진 것이다.
이것은 또한
우리가
그분의 형상으로
완전히 변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 갈 4:19, 고후 3:18.

우리가 거듭난 이후로
주님은
우리가
그분의 형상을 가질 수 있도록
우리 안에서
계속 일해 오셨다
― 고후 3:18, 롬 8:29.

주님께서
그분의 형상을 완전히
우리 안으로 일해 넣으시고
우리를 통해
완전히 표현되실 때,
우리는
생명 안에서
성숙될 것이다
― 롬 8:29, 고후 3:18.

아가 3장은
추구하는 이의 성숙을
우리에게 보여 주며,
4장은
의지를 복종시킴으로
성숙에 도달한다는 것을
설명해 준다.

추구하는 이가
성숙에 이른
비결은
그녀의 의지가
완전히 굴복되고
부활한 것이다
― 아 3:6-9, 4:1하, 4.

목은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있는
사람의 의지를
상징한다.
주님은
우리의 의지가
복종하는 것을
매우 아름다운 것으로
여기신다
― 아 4:4.

가장 먼저 우리의 의지가
굴복되어야 한다.
이럴 때
우리의 의지는
부활 안에서
강해질 것이며,
영적 전쟁을 위한 무기고인
다윗의 망대와 같이 될 것이다
― 엡 6:10.

우리에게
복종하는 의지가 있다면,
우리의 의지는
전쟁을 위한
온갖 무기를 보유한
다윗의 망대와 같게 된다
― 고후 10:3-5.

하나님의 자녀가
이십 세의 영적인 나이에
이르기 위해서는
생명의 체험의
처음 세 단계들을 통과하고
넷째 단계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생명의 체험의
첫째 단계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고,
둘째 단계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이며,
셋째 단계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시는 것인데,
이것은
십자가의 단계이기도 하다
― 갈 2:20, 3:1, 5:24, 마 16:24.

셋째 단계에서
추구하는 믿는 이들은
육체와 자아,
그리고 타고난 힘과 재능을 가진
타고난 조성을
처리한다.

육체는
타락한 옛사람의 총체,
곧 우리의 타락한 전 존재를
의미한다
― 창 6:3, 롬 7:18상, 갈 2:16.

육체는
옛사람이
살아 나타나고
표현된 것이다
― 롬 6:6.

육체는
바뀌거나 개선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육체가 항상
우리와 함께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 롬 13:14, 갈 5:16.

육체는
하나님의 원수의 진영이고
그의 일을 위한
가장 큰 기지(基地)이다
― 갈 5:19-21.

육체는
우리의 원수들 가운데
선봉장으로서,
죄와 세상과 사탄보다 앞장서서
우리를 대항해 싸운다
― 롬 8:3.

하나님은
사탄을 미워하는 것과
똑같은 정도로
육체를 미워하시며,
따라서 사탄을 멸하기를 원하시는 것과
똑같은 정도로
육체를 멸하기를 원하신다
― 출 17:16, 신 25:17-19, 삼상 15:2-3.

자아는
사람의 생각과 의견에
강조점을 둔
혼 생명이다
― 마 16:23-25.

마태복음 16장
23절부터 25절까지에서
‘생각’과 ‘자기’와 ‘혼 생명’,
이 세 가지 용어는
서로 관련이 있다.

우리의 생각은
우리의 자아의 표현이고,
우리의 자아는
우리의 혼 생명의 체현이다
― 마 16:23-25.

우리의 혼 생명은
우리의 자아 안에 체현되고
우리의 자아에 의해
살아 나타난다.
우리의 자아는
우리의
생각, 개념, 사상,
관념, 의견 등을 통해
표현된다
― 마 16:22-23.

자아는
사탄의 체현이다.
자아는
혼 안에 있는
사탄의 본질이며,
혼으로 하여금
하나님에게서 독립하여
혼의 자기 의견과 자기 뜻을
표현하게 한다
― 마 16:23, 창 3:1-6, 고후 11:3.

자아는
하나님에게서 독립을 선포한
혼이다
― 마 16:23, 눅 14:26, 욥 42:5-6.

타고난 조성은
우리의
육신적이고 정신적인 재능의
총합이다
― 고전 2:14-15, 빌 3:3, 10-11.

타고난 힘과 재능에는
신성한 요소가 없다.

타고난 힘과 재능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가 아니라
스스로 행동한다.

타고난 재능으로 일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영광을 구하고
우리 자신의 갈망을 만족시킨다.

우리의
타고난 힘과 재능이
십자가에 의해 처리될 때,
그것들은
부활 안에서
유용하게 된다
― 빌 3:11.

우리의
영적 체험과 영적 생활의
넷째 단계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완전히 성장하신 단계인
가장 높은 단계이며,
영적 전쟁의 단계라고도 한다.
이 단계에서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서
완전히 자라시고
성숙에 이르신다
― 엡 4:13-16, 6:10-18.

셋째 단계 끝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갖고
하나님을 표현하며,
넷째 단계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권위를 갖고
하나님을 대표한다
― 창 1:26.

넷째 단계에서의
생명의 체험은
몸을 앎,
승천을 앎,
그리스도와 함께
왕으로서 다스림,
영적 전쟁에 참여함,
그리스도의 충만한 신장을
포함한다
― 고전 12:27, 엡 6:10-12.

우리가
몸을 알고
몸 안에서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먼저
육체와 자아와 타고난 조성을
처리해야 한다
― 갈 5:24, 마 16:24.

우리가 여전히
육체를 따라
우리 자신 안에서 살고
우리의 타고난 재능으로
주님을 섬긴다면,
우리는
몸을 알 길이 없다
― 고전 12:12.

오직 우리의 육체가 처리되고
자기 의견이 파쇄되며
타고난 생명이 산산이 부서질 때에만,
우리 안에 있는
신성한 생명이
우리로 하여금
몸을 알게 하고,
우리가
단순히 몸의 지체들에 불과하고
우리 안에 있는 생명이
독립적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할 것이다.

우리가
영적 전쟁을 하고
하나님의 원수를 처리하기 원한다면,
반드시 먼저
우리의 육체와 자아와 혼 생명을
처리해야 한다
― 고후 10:3-5, 엡 6:10-12.

영적 전쟁에 참여하여
하나님을 위해
사탄을 처리하고
땅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절대적이고도 전적으로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해야 한다
― 창 1:26-28.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보존하거나
자신을 위한 것을
조금도 남겨 둘 수 없다.

사탄을 처리할 때,
우리는 반드시
자아를 철저히 버려야 한다.

교회는 반드시
영적 전쟁에 참여하여,
하나님의 왕국을 이끌어 오도록
싸워야 한다
― 마 12:28, 엡 6:10-18, 계 12:10상, 11:15.

분향단에서의 기도는
이 땅에서의
하나님의 권익을 위해 싸우는
군대를 편성하도록
이스라엘 자손을 계수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 출 30:11-16, 민 1:45-46.

분향단에서의 기도의 결과로,
주님은
교회들 안에 있는
성도들의
‘징집 인구 조사’를 시행하신다.
계수되는 사람들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움직임을 위해
전쟁에 나갈
자격을 갖는다
― 민 2:32, 4:23, 딤후 2:3.

분향단에서 드리는
중보 기도는
군대가 편성될 수 있도록
믿는 이들을
자라게 하고
성숙되게 하기 위한 것이다
― 엡 4:13, 6:10-12.

우리가
분향단에서
기도하면 할수록,
우리는
성숙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을
더욱더 깨달을 것이고,
성숙에 이르도록
생명이 자라는 것에 대해
기도해야 할
절박함이 더욱더 커질 것이다
― 고전 2:6, 3:1-2, 14:20, 16:13,
히 5:14-6:1, 엡 3:16.

그러한 군대가 편성될 때에만,
하나님은
그분의 목적을 위해
이 땅에서
움직이실 수 있을 것이다.
성숙한 사람들로 편성된
군대를 떠나서는
하나님께서 움직이실 수 있는
길이 없다
― 엡 4:13, 6: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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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replies on “하나님의 증거를 보호하고 이 땅에서의 하나님의 움직임을 위해 싸우는 군대로 편성되기 위해 요구되는 성장과 성숙”

6일

엡 4:13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믿음에서의 하나와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온전한 지식에서의 하나에
이르게 하고,
또 충분히 성장한
사람이 되게 하며,
그리스도의 충만의 신장의
분량에 이르게 하려는 것입니다.

엡 6:11
마귀의 계략에 대항해
설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완전한 전투 장비로
무장하십시오.

딤후 2:3
그대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훌륭한 군인처럼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십시오.

먼저 하나님의 체현인
성막이 필요하다.
그런 다음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은 반드시
성막의 모든 방면들을
체험해야 하며,
결국 하나님의
권익과 움직임을 위해
중보 기도하도록
분향단에 이르러야 한다.
특별히,
하나님의 백성은
주님의 군대,
즉 이 땅에서의
하나님의 움직임을 위하여 싸우는
군대의 편성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분향단이 언급된 직후
출애굽기 30장에서
인구 조사와 속전이
언급된 것이다.
사실상 출애굽기 30장
11절부터 16절까지는
속전보다도
인구 조사를 강조한다.
12절에서
주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자손의
수를 세어
수효를 조사하라고
말씀하신다.
백성의 수를 세는 것은
군대를 편성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움직임을 위해 싸우는
군대가 되려면
성숙해야 한다.
우리는
영적인 나이가
이십 세가 될 때까지
자라야 한다.
분향단에서 드리는
중보 기도는
군대로 편성될 수 있도록
믿는 이들을
자라게 하고
성숙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분향단에서
더 많은 중보 기도가 드려질수록,
하나님의 백성이
자라야 할 절박함이
더 커질 것이다.
우리는
성숙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을
더욱더 깨달을 것이다.
우리 중 더 많은 사람이
자라고 성숙하여
군대로 편성될
자격을 갖추는 것이
긴급히 필요하다.
오직 그러한 군대가
편성될 때에만,
하나님은
그분의 목적을 위해
이 땅에서
움직이실 수 있을 것이다.
성숙한 사람들로 편성된
군대를 떠나서는
하나님께서 움직이실 수 있는
길이 없다.
오, 하나님께 선택받은 백성이
성장하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지!

주님의 회복이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려면,
많은 성도들이
바깥뜰과
성막의 모든 방면들을
체험해야 한다.
그들은 반드시
번제단에 가야 하고,
성소의 상에서
그들의 생명 공급이신
그리스도를 누려야 한다.
그런 다음에
그들은
그들의 빛이신
그리스도를 받아들여야 하고,
궤 즉 하나님의 증거이신
그리스도를 갖기 위해
그들의 타고난 존재가
파쇄되는 것을
체험해야 한다.
마침내 그들은
분향단에 도착할 것이며
하나님의 움직임을 위해
중보 기도할 것이다.

회복 안의 성도들 중
어떤 이들은
이러한 체험을 가졌다.
… 이 성도들은
분향단에 머물며
기도하기를
갈망한다.
… “주님,
우리는
당신의 회복을 위하여
당신께 간청합니다.
오, 주님,
계속 전진하소서.
그러나 오늘날의 상황을 보소서.
도처에 원수들이 있습니다.
주님,
당신의 증거는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당신의 증거가
계속 보존되기를
기도합니다.”
이것이
분향단에서 드리는
중보 기도이다.

우리가
분향단에 도착하여
일정 기간을
그곳에 머문 후에는
차나 집 같은
물질적인 것들을 위하여
기도할 마음이
없어질 것이다.
우리의 갈망은 오직
주님의 움직임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될 것이다.
우리는
온 땅에 있는
그분의 증거에 대해
부담을 갖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기도할 것이다.
“주님,
당신의 회복을
전진시키소서.
오, 주님,
이 땅에 있는
당신의 증거는
어떠합니까?
주님,
유럽에서 움직이시고
남아메리카에서 움직이소서.”
우리는
주님의 움직임을 위하여
기도할 부담이
너무 많아서
개인적인 일들을 위하여
기도할 마음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건강에 대한
염려를 포함한
개인적인 모든 문제들을
주님의 손에 맡길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외적으로
개인적인 일이나 건강을 위하여
기도한다 할지라도,
내적으로
그러한 것들은
우리의 참된 관심사가 아니다.
깊은 속에서
우리의 관심은
주님의 회복,
주님의 움직임,
주님의 증거에 있다.

분향단에서 드리는
중보 기도는
하나님께
그분의 백성 가운데
인구 조사를 하여
그분의 움직임을 위해 싸우는
군대를 편성하시도록
재촉한다.
이것은 바로
분향단에서 드리는 기도가
군대를 편성하게 한다는 뜻이다.
… 분향단에서의 기도의 결과로,
주님은
교회들 안에 있는
성도들의
‘징집 인구 조사’를
시행하신다.
여기저기서 주님은
그분의 백성을
계수하신다.
계수된 사람들은
전쟁에 나갈
자격을 갖는다.

 

5일

엡 4:16
온몸은
그분에게서 나온
그 풍성한 공급을 해 주는
각 마디를 통하여,
그리고 각 지체가
분량에 따라
기능을 발휘하는 것을 통하여
함께 결합되고
함께 짜입니다.
그래서 몸이 자람으로써
사랑 안에서
스스로 건축되는 것입니다.

엡 6:13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완전한 전투 장비로
무장하십시오.
그것은
여러분이
악한 날에
대항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며,
또한 모든 것을
다 처리한 후에도
서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영적 전쟁만큼 절실히
몸을 아는 것이 요구되는
일은 없다.
이는
영적 전쟁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몸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믿는 이들 개개인으로는
대적과 싸울 수 없다.
여기에는
온몸이 필요하다.
만일 우리가
영적 전쟁을 배우고자 한다면,
우리는 먼저
몸을 알아야 한다.

왜 우리는
생명의 체험의
네 번째 단계에 이르러서야
몸에 대한 인식을
언급하는가?
이는
여기에 언급된 몸이
그리스도의 비밀한 몸인
교회이기 때문이다.
이 몸은
우리 각 사람 안에 계신
생명이신 그리스도,
곧 우리와 연합되신
그리스도로 형성된다.
생명의 체험의
두 번째와 세 번째 단계에서
우리는 여전히
자신의 생명 안에서
살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몸을 형성하기 위해
우리와 연합된
이 생명에 대해
알지 못한다.
오직 우리의 자아 생명이
철저히 처리되고
우리가
요단강을 건너는
체험을 하여
영적 생명의
네 번째 단계에
들어설 때에만,
우리는
이 몸의 생명의
실재를 만지게 되고
몸을 알게 된다.

성경과
우리의 체험은
비록 우리 각자가
그리스도의 지체이기는 하지만
우리 각자 안에 있는
생명은
‘지체’의 생명이 아니라
‘몸’의 생명임을
증명해 준다.
… 우리 몸의 각 지체는
다른 모든 지체들과 함께
같은 생명,
즉 온몸의 생명을
공유한다.
…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도
한 지체가
몸에 연결되거나
몸과 교통하게 되면,
그의 생명은
몸의 생명이 되고
몸의 생명은
그 지체의 생명이 된다.
그 지체는
다른 지체를 떠날 수 없고,
다른 지체도
그 지체를 떠날 수 없다.
이는
그 지체와
다른 지체들 속에 있는
생명이 모두
한 몸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이 생명은
구분되거나
분리될 수 없다.
이 생명은
우리를
함께 결합하여
그리스도의 몸이 되게 한다.
더 정확하게 강조해서 말하면,
바로 이 생명이
우리와 연합하여
그리스도의 몸이 된다.

그러나 우리가
자아의 어려움을
철저히 처리하지 않는 한
이것을 체험하지 못한다.
만일 우리가 여전히
자신 안에서
육체를 따라 살며
타고난 재능으로
주님을 섬긴다면,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 자신인
몸의 생명은
나타날 길이 없으며,
우리는
몸을 알 길이 없다.
우리가
육체에 의해
살면 살수록
몸의 부축의 필요성을
더 느끼지 못하게 된다.
만일 우리가
자아의 의견으로
행한다면
교회의 지지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되며,
우리가
타고난 재능으로
봉사한다면
지체들의 협력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오직 우리 육체가 처리되고,
자기 의견이 파쇄되며,
타고난 생명이 부서질 때에만,
우리 안에 있는 생명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이
몸의 지체들에 불과하고,
우리 안에 있는 생명이
독립적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할 것이다.
따라서 이 생명은
우리에게
모든 다른 지체들과
교통하고 연합하기를
요구하며,
또한 우리를 이끌어서
다른 지체들과 교통하고
다른 지체들과 함께 연합하는
체험에 들어가게 한다.
바로 이때에
우리는
몸에 대해
조금 알기 시작하고
영적 전쟁에 동참하는
자격을 얻게 된다.

한 면으로 우리가
영적 전쟁을 하고
하나님의 어려움을
처리하고자 한다면,
먼저 우리의
육체와 자아와 혼 생명을
처리함으로써
자신의 어려움들을
해결해야 한다.
또 한면으로 우리는
전쟁을 하기 위해 먼저
몸을 알아야 하며,
몸을 알고
몸 안에 살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육체와 자아와 혼 생명을
처리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가
전쟁을 하는 관점에서든
몸을 인식하는 관점에서든
우리 모두는
생명의 체험의
네 번째 단계에 이르기 위해 먼저
앞의 세 단계를 통과함으로
육체와 자아와 혼 생명에서
벗어나야 한다.

 

4일

빌 3:3
하나님의 영으로 봉사하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자랑하며,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우리가
참된 할례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빌 3:10
나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부활 능력과
그분의 고난의 교통을
알고,
그분의 죽음과
같은 형상을 이루어,

어떤 타고난 것도
그 안에
신성한 요소를
갖고 있지 않다.
특히 타고난 힘과 재능은
더욱 그러하다.
타고난 힘과 재능을
사용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기본 원칙에
완전히 반대되는데,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전적으로 인성과 신성이 연합된
조성체이기 때문이다.
새사람인 교회는
신성한 요소로
충만해야 한다.
주님은
기독교를 유죄 판결하신다.
왜냐하면 기독교가
사람의
타고난 힘과 재능에 의해 수행되는
종교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신성한 요소의
어떤 발전도 없다.
그러나 참된 교회는
인성과 신성한 요소가 연합된
조성체이다.
우리는
이것을
기본 공과로서 배워야 하며,
또한 교회 봉사에 참여하는
모든 성도들이
이 요점에
깊은 인상을 받게 해야 한다.

우리는
봉사를 할 때
모든 일을
육체 되심의 원칙 안에서
해야 한다.
육체 되심의 원칙은
신성이
인성 안으로
일해 넣어지는 것이다.
주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
그분은
신성한 요소로 충만한
그분의 인성 안에서
모든 일을 행하셨다.
그분은
어떤 것도
타고난 힘이나 재능으로
행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아버지를 떠나서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요 5:19).
아버지는
그분 안에 계셨으며,
그분의 모든 행위와 말과 일에서
그분과 하나이셨다
(요 14:10, 10:30).
무엇을 하시든지,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무슨 일을 하시든지
그분은 전적으로
신성한 요소이신
아버지와 함께하셨다.
우리는
주님을 섬기기 위해 사용하는
자신의 힘과 재능이
타고난 것인지,
아니면 신성한 것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타고난 힘과 재능을 거절하는
공과를 배워야 하며,
모든 성도들이
이 공과를 배우도록
그들을 도와주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가 아닌
자신의 타고난 힘과 재능에 따라서
스스로 주님을 위해
행하고 봉사할 수 있다.
우리는
힘과 재능이 있기 때문에
주님께 기도하거나
주님을 앙망할 필요가 없고,
주님의 뜻을 구하거나
주님의 인도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 느낀다.
이것이 정확히
모세에게 일어났던 일이다.
그가
동료 히브리인을 보호하기 위해
이집트 사람을
쳐 죽였을 때,
주님의 뜻에 따라서가 아니라
스스로
그렇게 행동했다
(출 2:11-12).
오늘날
기독교 안의 슬픈 상황은
사람들이 대체로
타고난 힘과 재능에 의해
스스로
주님을 위해
일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주님의 인도를 받기 위해
기도하지 않는다.
그들은 다만
주님께서
그들이 행하는 것에
복을 주시기를
기도할지도 모른다.
그들은
주님의 뜻을 위해
그다지 많이 기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신의
타고난 힘과 재능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타고난 힘과 재능 안에서
일할 때,
그 목표는
자신의 영광을 구하는 것이고,
그 동기는
자신의 갈망을 충족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이상을 본다면
자아를 추구하는
우리의 불순한 동기는
죽음을 당할 것이다.
참으로 우리는
주님의 일에서
자신의 갈망을
갖지 말아야 하며,
자신의 영광
곧 자신의 자랑을
목표로 삼지 말아야 한다.
다만 주님께서
어떤 일들을 하도록
인도하시기 때문에
그 일들을 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목표로 성취할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그 일들을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틀린 것이다.
그 목표는
주님의 목표여야 한다.

우리의 갈망과 목표를
죽이는 것은
우리의 힘과 재능을
죽이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갈망과 영광을 위한
우리의 목표는
우리의 타고난 힘과 재능과
하나이다.
세상 사람들뿐 아니라
심지어 많은 그리스도인들조차도
자신의 갈망과 영광을 위해
자신의 힘과 재능으로
일들을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유죄 판결하고
거절해야 한다.

타고난 힘과 재능은
십자가로 처리받으면
유용하게 된다.
십자가로 처리받은 후에
그것들은
부활 안에 있게 된다.
… 부활 안에서
신성한 어떤 것이
우리의 힘과 재능 안으로
일해 넣어졌다.
… 처리받은 후에
우리의 힘과 재능은
주님을 섬기는 데
부활 안에서
유용하게 된다.

 

3일

아 4:4
네 목은
무기를 두려고 건축한
다윗의 망대
곧 방패 천 개,
용사의 모든 방패가 달린
망대 같고

엡 6:10
마지막으로 말합니다.
여러분은
주님 안에서,
그리고 그분의 강한 권능 안에서
굳세게 되어야 합니다.

아가 3장은
추구하는 이의 성숙에 대해
우리에게 말하고,
4장은 계속해서
어떻게 그녀가
그러한 성숙의 단계에 이르렀는지를
설명한다.
… 결국 그녀는
주님에 의해
예루살렘으로 인정받게 된다.
3장에서
그녀가
가마가 될 때 언급된
성숙이 이것이다.
가마는
성(城)의 축소형이다.
성은
주님을 완전하게 담고,
가마는
주님을 좀 더 작은 규모로 담는다.
… 그런 후에 4장은
의지를 복종시킴으로
성숙에 도달한다는 것을
설명해 준다.

아가 4장 4절에서
주님은
추구하는 이의 목을
다윗의 망대에 비유하셨다.
… 머리털은
우리의 의지를 상징하고,
… 우리의 목도 역시
우리의 의지를 상징한다.
… 성경에서
하나님께 반역적인 사람들은
목이 곧은 백성이라고 불린다
(출 32:9, 행 7:51).
따라서 우리는
산기슭에 있는
염소 떼(아 4:1)가
그녀의 의지가 굴복된 것을
보여 주는 그림이고,
다윗의 망대가
그녀의 의지가
부활 안에서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 주는 그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의지는 먼저
굴복되어야 하고,
그런 다음
부활 안에서
강하게 되어야 한다.
우리의 타고난 의지는
다룸을 받아야 하며,
그런 후에 우리는
부활한 의지를
갖게 될 것이다.
십자가에 못 박히고
굴복된 의지는 마치
산기슭에 서 있는
염소 떼와 같지만,
부활한 의지는 틀림없이
무기고로 건축된
다윗의 망대와 같을 것이다.

아가는
얼마나 시적인지!
먼저 우리의 의지는
굴복되어야 하고,
그런 후에 그것은
다윗의 망대,
곧 영적 전쟁을 위한
무기고로서
부활할 것이다.
영적 전쟁을 위한
모든 무기들은
우리의
굴복되고 부활한
의지 안에 간직된다.
만일 우리의 의지가 전혀
주님께 굴복된 적이 없다면,
그것은
영적 전쟁을 위한
모든 무기들을 간직하기 위한
튼튼한 무기고가 될 수 없다.
모든 무기들은 대부분
방어용이지
공격용이 아니다.
그것은
싸우기 위해
밖으로 나가는 문제라기보다
방어하기 위해
서 있는 문제이다.
방패들은 모두
서있도록
방어하기 위한 것이다.
영적 전쟁에서
우리는
공격 자세를 취하기보다는
수비 자세를 취하여,
원수의
모든 마귀적이고 간교한
공격에 맞서 선다.
에베소서 6장에 언급된
전투 장비의 항목들 또한
대부분 방어용이다.
진실로 우리는
싸울 필요가 없다.
주님께서 이미
전투에서 승리하셨다.

우리는
다만 서서
원수의 모든 공격에
맞서기만 하면 된다.
원수의 화살에서
우리를 보호해 주는
방패들이
이 망대 안에
간직되어 있는데,
이 망대는
주님을 추구하는 이의
굴복되고 부활한 의지이다.
이것이
생명의 참된 성숙이다.

굴복되지 않은 의지는
한 면으로는 완고하고
다른 한 면으로는 유약하다.
원수가 올 때,
완고하고 굴복되지 않은
의지는 항상
무조건적으로 항복한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체험을 통해
이것을 안다.
… 복종하는 문제에서
완고한 자매들은
원수의 공격을 받을 때
가장 먼저 항복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산기슭에 있는 염소 떼와 같이
굴복된 의지,
복종적인 의지를
갖고 있다면,
우리의 의지는
다윗의 망대처럼
표현될 것이다.
원수가 올 때,
우리의 의지는
원수의 공격에 맞설
온갖 종류의 무기를 보유한
다윗의 망대와 같을 것이다.

아가 3장에서
추구하는 이의
성숙의 비결은
그녀의 의지가
완전히 굴복되고
부활한 것에 있다.
아가의 처음 세 장에서
추구하는 이들을 나타내는
여덟 가지 상징 중에서
첫번째 상징인
준마는
의지에 있어서
가장 강하지만,
마지막 상징인
면류관은 전혀
자신의 의지를
갖고 있지 않다.
준마는
굉장히 강한 의지를 갖고 있지만,
가마나 면류관은
전혀 의지를 갖고 있지 않다.
그녀는
자신의 타고난 의지에서 나와서
이제 원수에게 맞서는
부활한 의지 안에 서 있다.
그녀는
영적 전쟁을 위하여
무기고로 건축된
다윗의 망대와 같다.

 

2일

골 2:19
머리를 (붙들고)
… 온몸은
마디와 힘줄을 통하여
머리로부터 풍성하게 공급을 받고
함께 짜여,
하나님께서 자라심으로
자라는 것입니다.

엡 3:17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거처를 정하시게 하시며, …

생명 안에서
합당하게 성장한
그리스도인을 만나 보면,
우리는
그의 생각에서
주님의 어떠함을 느끼고,
그의 선호나
심지어 그가 싫어하는 것에서도
주님의 어떠함을 느낄 수 있다.
그가
어떤 일을 결정하고
어떤 것을 선택할 때도 역시
주님의 어떠함을
느낄 수 있다.
… 이것은
주님의 영과
주님의 생명이
그의 영 안에서부터
그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 안으로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주님의 생명이
그의 안에서
확산되고 확장되었으며,
또한 주님의 생명이
그 사람 안에서
조금씩 자라고
성숙한 것이다.
열매를 예로 들면,
열매가 자랄수록
나무는 성숙한다.
어느 날
주님의 영과
주님의 생명이
우리 전 존재를
완전히 적시면,
우리 전 존재에는
주님이 계시고
주님의 어떠함이 있게 된다.
이러한 일이 이루어지면
우리는
성숙한 믿는 이가
된 것이다.
이때
우리의 매일의 행함에는
흠이 없을 것이고,
다른 사람이
우리를 만질 때
우리의
생각이든 선호든 제안이든
어떤 것을 만져도
주님의 어떠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의 영과
주님의 생명이
우리의 중심인 영에서부터
우리 혼의 각 부분으로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은 자주
주님을 향해 닫혀 있으며,
주님은
우리의 영 안에서
나오실 수 없을 정도로
감금되신다.
비록 주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지만,
그분 주위에 있는
길이 막혀 있고
그분은
우리 안에서
움직이실 수 없다.
그분은
나오실 기회가
조금도 없으시다.

이것은
우리가
주님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의 생각 안에
주님의 지위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것저것은 생각하지만
주님은 생각하지 않는다.
감정 안에도
주님의 지위가 없어서,
다른 것은 다 사랑하지만
주님은 사랑하지 않는다.
또한 우리의 의지 안에도,
곧 우리의 결정과 선택 안에도
우리 자신만 있고
주님은 아무 지위가 없으시다.
우리의 자아가
모든 지위를 가진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구원받았고
주님께서
우리의 영 안에 계시지만,
주님은
우리의 영 안에서 나오셔서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다스리실 수 없다.
우리는
주님을 믿는 사람이고
주님은
우리 안에 계시지만,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는
주님을 향해
독립적이다.
우리 혼의 세 부분에는
주님의 지위가 없다.
이것이
우리의 생명이
성숙하지 않는 이유이다.

생명이 자라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의 마음이
주님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하고,
생각과 감정과 의지도
주님께
열려 있어야 한다.
이 부분들이
열려 있을 때,
주님은
우리의 영에서부터 흘러나와
우리의 생각 안으로,
감정 안으로,
의지 안으로
확장되시고,
우리 혼의 각 부분에
도달하실 수 있다.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마음을
주님을 향해
열 수 있는가?
우리는
무언가를 결정하고
주장하려고 할 때,
먼저 주님을 향해
“주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저는
당신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를
원합니다.”
라고 말해야 한다.
이렇게 기도할 때,
우리의 의지가
주님을 향해 열리고,
주님은
우리의 의지 안으로
들어오신다.
더욱이 우리가
무언가를 사랑하거나
바랄 때마다,
우리는 멈추어서
주님께
“주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저는
당신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를
원합니다.”
라고 말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우리의 감정은
주님을 향해
열리게 되고,
주님은
우리의 감정 안으로
들어오신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무언가를 생각할 때마다 먼저
우리의 생각을 멈추고,
주님께
“주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저는
당신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를
원합니다.”
라고 말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생각을
주님께 열어 드리는 것이며,
이렇게
생각이
주님께 열릴 때
주님은
우리의 생각 안으로
들어오실 수 있다.

우리가 계속해서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주님께 열 때,
주님의 영은
우리 혼의 각 부분에
들어올 수 있는
기회를 얻으실 수 있다.

 

신언노트, 2019 08 18

땅 위에서
하나님의 증거를 보호하고
또 그분의 움직이심을 위하여 싸우는
그 군대의 그 형성을 위하여
요구되는 그 성장과 또 성숙

민수기의 그 강조는
 (The emphasis;
 그 역점은[주안점은, 강세는])
 구속되었고,
 계시를 받아들였으며,
 또 하나님에 의하여 훈련받은,
 그 이스라엘 사람들이,
 어떻게
 땅 위에서
 하나님의 증거를 보호하고
 또 그분의 움직이심을 위하여 싸우는
 한 군대 안으로 형성되었는지입니다: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된 그 땅이
 사탄에 의하여 황폐하게 되었기 때문에
 (was ruined;
 망쳐졌기[파멸되었기,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땅 위에서의 그분의 움직이심을 위하여
 한 군대 안으로 형성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얻는 것을
 필요로 하십니다.

민수기는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분의 구속되는 백성을,
 그분의 증거를
 둘러싸고 또 보호하는
 한 군대 안으로 형성하셨는지를
 보여 줍니다:

민수기 안에서,
 특별히 그 처음 네 장들 안에서,
 그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의 안배에 따라
 (according to … arrangement;
 배열[배치, 준비, 마련, 주선, 협의]에 따라)
 한 군대 안으로 형성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그 아이들이
 한 군대 안으로 형성되기 위해서,
 그들은
 계수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오직 계수된 후에야
 그 이스라엘 사람들이
 한 군대 안으로 형성될 수 있었습니다.

“군 복무를 위해
 밖으로 나가기 위하여
 (to go forth;
 출발하기 위하여, 여행을 떠나기 위하여)”
 한 이스라엘 남자는
 적어도 스무 살이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성장과 또 성숙에
 관련됩니다:

대략 이백만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있었지만,
 오직 603,550명만이
 스무 살 이상이었고
 또 군 복무를 위해
 밖으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땅 위에
 아주 많은 믿는 이들이 있더라도,
 그들 중에서 오직 소수만이
 그들이
 하나님의 증거를 위하여
 싸울 수 있는 그 정도까지
 생명 안에서 성숙합니다.

민수기가
 이십 세 이상이었던,
 그 군대 안에 입대하는
 그 사람들의 그 나이를
 언급하지만,
이 책이
 은퇴를 위한 그 나이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갈렙이
 그의 팔십 대에도
 그의 사십 대에서처럼
 싸울 수 있었고
 또 하나님 앞에서 강했던 것과 똑같이
하나님의 군대는 강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에 의하여 계수되기 위해서
 생명과 또 생명 안에서의 성숙을 둘 다
 반드시 가져야 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민수기에 따라,
 아이들이나 또는 여자들은
 계수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미성숙을 나타내고,
또 여자들은
 약함을 나타냅니다.

오직 스무 살 이상의 남자들만
 전투 안에서
 교전할 수 있었다는 것은
그 믿는 이들 중에,
 오직 생명 안에서 성숙하고
 또 강한
 그 사람들만
 영적인 전투 안에서
 싸울 수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계수된 그 사람들은
 모세,
 아론,
 또 그 열두 지파들의
 그 인도자들에 의하여 확인될
 (to be confirmed;
 입증될, 추인될, 공식화될, 확정될, 더욱 굳게 될)
 필요가 있었습니다:

모세는
 그분의 권위를 행사하시는
 그 몸의 그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아론은
 그분의 제사장 직분을 수행하시는
 그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나타내며,
또 그 열두 지파들의 그 인도자들은
 그 교회 안에 있는
 그 장로들과 또 인도하는 사람들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계수함이
 생명과 또 생명 안에서의 성숙에
 기초하고
 또 영적인 권위에 의하여
 확인된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생명,
 성숙,
 또 영적인 권위의 그 확인이
하나님의 군대의
 그 형성을 위하여
 요구됩니다.
 
계수되기 위하여,
 이스라엘의 그 아이들은
 그들의 아버지들의 가정들의
 그 생명의 그 교통 안에 있을
 필요가 있었고
또 스물의 그 나이에 의하여 나타내지는,
 성숙에 이르도록
 생명 안에서 자라야 했습니다.

오늘날
 주님의 회복 안에는
 하나님의 군대가
 편성되기 위해
 요구되는
 성장과 성숙이
긴급히 필요하다.
우리는
 성숙에 이르도록
 생명이 자라야 한다.

영적인 면에서 볼 때,
이십 세 이상의 남자는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에서
 그들의 타고난 신분에 상관없이
 영 안에서 강하고
 신성한 생명 안에서 성숙한
 이들을 상징한다.
오직 이들만이
 군대로 편성되어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의 권익과 움직임을 위하여
 싸울 자격이 있다.

생명의 성장은
 하나님의 요소가 증가하고,
그리스도의 신장이 커지며,
성령의 입지가 확대되고,
사람의 요소가 감소하며,
타고난 생명이 파쇄되고,
우리 혼의 각 부분이 굴복되는 것이다.

변화되는 것은
 우리의 타고난 생명이
 신진대사적으로 바뀌는 것인 반면에,
성숙되는 것은
 우리를 바꾸어 주는
 신성한 생명으로
 가득 채워지는 것이다.
변화의 마지막 단계는
 성숙, 곧 생명의 충만이다.

신약에서
‘성숙’이라는 말은
 믿는 이들이
 완전히 성장하고
 하나님의 생명 안에서
 온전하게 된 것을
 가리킨다.

믿는 이들로서
 우리는
 뒤에 있는 것들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들을 향하여
 힘을 다해 수고함으로써,
즉 천년왕국에서
 그리스도를
 극도로 누리기 위해
 그리스도를
 가장 충만하게 누리고 얻기를
 추구함으로써,
성숙에 이르도록
 계속 나아가고 전진해야 한다.

영적 생명이
 성숙하기 위한
 전제 조건은
 신성한 생명 안에서
 계속 자라는 것이다.

그 믿는 이들의
 그리스도의 그 생명 안에서의
 성장과 성숙의
 그 궁극적인 유출은
 충분히 성장한 한 사람,
 ―한 성숙한 사람 안으로 자라는
 그리스도의 그 몸인
 그 교회입니다.

성숙하였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형상이
 우리 안에
 완전히 이루어진 것이다.
이것은 또한
 우리가
 그분의 형상으로
 완전히 변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거듭난 이후로
 주님은
 우리가
 그분의 형상을 가질 수 있도록
 우리 안에서
 계속 일해 오셨다.

주님께서
 그분의 형상을 완전히
 우리 안으로 일해 넣으시고
 우리를 통해
 완전히 표현되실 때,
우리는
 생명 안에서
 성숙될 것이다.

아가 3장은
 추구하는 이의 성숙을
 우리에게 보여 주며,
4장은
 의지를 복종시킴으로
 성숙에 도달한다는 것을
 설명해 준다.

추구하는 이가
 성숙에 이른
 비결은
 그녀의 의지가
 완전히 굴복되고
 부활한 것이다.

목은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있는
 사람의 의지를
 상징한다.
주님은
 우리의 의지가
 복종하는 것을
 매우 아름다운 것으로
 여기신다.

가장 먼저 우리의 의지가
 굴복되어야 한다.
이럴 때
 우리의 의지는
 부활 안에서
 강해질 것이며,
영적 전쟁을 위한 무기고인
 다윗의 망대와 같이 될 것이다.

우리에게
 복종하는 의지가 있다면,
우리의 의지는
 전쟁을 위한
 온갖 무기를 보유한
 다윗의 망대와 같게 된다.

하나님의 자녀가
 이십 세의 영적인 나이에
 이르기 위해서는
 생명의 체험의
 처음 세 단계들을 통과하고
 넷째 단계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생명의 체험의
 첫째 단계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고,
둘째 단계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이며,
셋째 단계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시는 것인데,
이것은
 십자가의 단계이기도 하다.

셋째 단계에서
 추구하는 믿는 이들은
 육체와 자아,
그리고 타고난 힘과 재능을 가진
 타고난 조성을
 처리한다.

육체는
 타락한 옛사람의 총체,
곧 우리의 타락한 전 존재를
 의미한다.

육체는
 옛사람이
 살아 나타나고
 표현된 것이다.

육체는
 바뀌거나 개선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육체가 항상
 우리와 함께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육체는
 하나님의 원수의 진영이고
 그의 일을 위한
 가장 큰 기지(基地)이다.

육체는
 우리의 원수들 가운데
 선봉장으로서,
죄와 세상과 사탄보다 앞장서서
 우리를 대항해 싸운다.

하나님은
 사탄을 미워하는 것과
 똑같은 정도로
 육체를 미워하시며,
따라서 사탄을 멸하기를 원하시는 것과
 똑같은 정도로
 육체를 멸하기를 원하신다.

자아는
 사람의 생각과 의견에
 강조점을 둔
 혼 생명이다.

마태복음 16장
 23절부터 25절까지에서
 ‘생각’과 ‘자기’와 ‘혼 생명’,
 이 세 가지 용어는
 서로 관련이 있다.

우리의 생각은
 우리의 자아의 표현이고,
우리의 자아는
 우리의 혼 생명의 체현이다.

우리의 혼 생명은
 우리의 자아 안에 체현되고
 우리의 자아에 의해
 살아 나타난다.
우리의 자아는
 우리의
 생각, 개념, 사상,
관념, 의견 등을 통해
 표현된다.

자아는
 사탄의 체현이다.
자아는
 혼 안에 있는
 사탄의 본질이며,
혼으로 하여금
 하나님에게서 독립하여
 혼의 자기 의견과 자기 뜻을
 표현하게 한다.

자아는
 하나님에게서 독립을 선포한
 혼이다.

타고난 조성은
 우리의
 육신적이고 정신적인 재능의
 총합이다.

타고난 힘과 재능에는
 신성한 요소가 없다.

타고난 힘과 재능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가 아니라
 스스로 행동한다.

타고난 재능으로 일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영광을 구하고
 우리 자신의 갈망을 만족시킨다.

우리의
 타고난 힘과 재능이
 십자가에 의해 처리될 때,
그것들은
 부활 안에서
 유용하게 된다.

우리의
 영적 체험과 영적 생활의
 넷째 단계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완전히 성장하신 단계인
 가장 높은 단계이며,
 영적 전쟁의 단계라고도 한다.
이 단계에서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서
 완전히 자라시고
 성숙에 이르신다.

셋째 단계 끝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갖고
 하나님을 표현하며,
넷째 단계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권위를 갖고
 하나님을 대표한다.

넷째 단계에서의
 생명의 체험은
 몸을 앎,
 승천을 앎,
 그리스도와 함께
 왕으로서 다스림,
 영적 전쟁에 참여함,
 그리스도의 충만한 신장을
 포함한다.

우리가
 몸을 알고
 몸 안에서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먼저
 육체와 자아와 타고난 조성을
 처리해야 한다.

우리가 여전히
 육체를 따라
 우리 자신 안에서 살고
 우리의 타고난 재능으로
 주님을 섬긴다면,
우리는
 몸을 알 길이 없다.

오직 우리의 육체가 처리되고
 자기 의견이 파쇄되며
 타고난 생명이 산산이 부서질 때에만,
우리 안에 있는
 신성한 생명이
 우리로 하여금
 몸을 알게 하고,
우리가
 단순히 몸의 지체들에 불과하고
 우리 안에 있는 생명이
 독립적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할 것이다.

우리가
 영적 전쟁을 하고
 하나님의 원수를 처리하기 원한다면,
반드시 먼저
 우리의 육체와 자아와 혼 생명을
 처리해야 한다.

영적 전쟁에 참여하여
 하나님을 위해
 사탄을 처리하고
 땅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절대적이고도 전적으로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보존하거나
 자신을 위한 것을
 조금도 남겨 둘 수 없다.

사탄을 처리할 때,
 우리는 반드시
 자아를 철저히 버려야 한다.

교회는 반드시
 영적 전쟁에 참여하여,
 하나님의 왕국을 이끌어 오도록
 싸워야 한다.

분향단에서의 기도는
 이 땅에서의
 하나님의 권익을 위해 싸우는
 군대를 편성하도록
이스라엘 자손을 계수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분향단에서의 기도의 결과로,
 주님은
 교회들 안에 있는
 성도들의
 ‘징집 인구 조사’를 시행하신다.
계수되는 사람들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움직임을 위해
 전쟁에 나갈
 자격을 갖는다.

분향단에서 드리는
 중보 기도는
군대가 편성될 수 있도록
 믿는 이들을
 자라게 하고
 성숙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분향단에서
 기도하면 할수록,
우리는
 성숙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을
 더욱더 깨달을 것이고,
성숙에 이르도록
 생명이 자라는 것에 대해
 기도해야 할
 절박함이
 더욱더 커질 것이다.

그러한 군대가 편성될 때에만,
 하나님은
 그분의 목적을 위해
 이 땅에서
 움직이실 수 있을 것이다.
성숙한 사람들로 편성된
 군대를 떠나서는
 하나님께서 움직이실 수 있는
 길이 없다.

 

1일

민 1:3
너와 아론은
이스라엘 가운데
군 복무를 할 수 있는
이십 세 이상 된 모든 남자를
부대별로 세어야 한다.

엡 4:15
오직 우리는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붙잡고,
모든 일에서
그리스도, 곧 머리이신 분 안으로
자라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수를 세는 것은
다음의 세 가지 기본적인 항목에
근거했다.
첫째로,
계보에 근거했는데,
이것은 생명과 관계있다.
둘째로,
나이에 근거했는데,
이것은 성숙과 관계있다.
셋째로,
모세와 아론과 열두 지파의 인도자들의
검증에 근거했는데,
이것은 확증과 관계있다.
하나님의 백성이
군대로 편성되는 것은
오늘날로 말하자면
동역하는 것이다.
이것은
생명과 성숙과 확증,
이 세 가지에 근거한다.
이 세 가지가 반드시 갖추어질 때에야
하나님의 백성은
합당하게 편성되고
합당하게 동역할 수 있다.

계보는
생명과 관계가 있다.
나이는
생명의 성장과 성숙과 관계가 있다.
설령 어느 이스라엘 사람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일지라도
생명이 성숙하지 않았다면
계수되지 못했을 것이다.
태어난 지 한 달 된 아기는
이스라엘 자손으로 여겨질 수 있었는데,
이것은
생명과 관계된 것이었다.
하지만 군대로 편성되기 위해서는
이십 세 이상이 되어야 했는데,
이것은
성장과 성숙에 관계된 것이다.
민수기가 기록된 때에
대략 이백만 명의 이스라엘 백성이 있었지만,
603,550명만이
이십 세 이상이어서
군 복무를 할 수 있었다
(민 1:45-46).
오늘날 교회 가운데서도
마찬가지이다.
이 땅에
무수히 많은 믿는 이들이 있을지라도,
그들 중 소수만이
하나님의 증거를 위해
싸울 수 있을 정도로
생명이 성숙하였다.
다른 말로 하면,
침례 받고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증거를 위해
전쟁할 수 있도록
성숙한 것은 아니다.

민수기는
전쟁을 위해
군대에 징집되는
사람들의 나이가
이십 세 이상이라는 것을
언급하지만,
전역하는 나이는
언급하지 않는다.
갈렙은
팔십오 세에도
전쟁에 나갔고
(수 14:6, 10-11),
모세는
백이십 세까지
광야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했다.
이것은
생명이 성숙하여
하나님의 증거를 위해
전쟁을 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나이의 제한이
없을 뿐 아니라
나이의 제한이
있어서도 안 된다는 것을
말해 준다.

하나님의 군대는
언제나 강했다.
그것은 마치
갈렙이
팔십오 세가 되어서도
사십 세 때와 마찬가지였던 것과 같다
(수 14:6, 10-11).
하나님 앞에서 강해야
전쟁을 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에게
생명이 있을 뿐 아니라,
우리가
성숙할 때에야
하나님께서 세시는
수효에 들 수 있음을
의미한다.
민수기에 따르면,
어린이들과 여인들은 모두
계수되지 않았다.
어린이들은
성숙하지 않음을 상징하고,
여인들은
약함을 상징한다.
교회 가운데서의 원칙 또한
마찬가지이다.
어떤 이들은
구원받은 연수가 적지 않지만,
주님 안에서
충분히 강하지 못하고
오히려 약하다.
오직 이십 세 이상의 남자들만이
전쟁에 참여할 수 있었다는 것은
믿는 이들 가운데서
오직 생명이 성숙하고
강한 이들만이
영적 전쟁에서
싸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계수된 사람들은
모세와 아론과 열두 지파의 인도자들에게
확증을 받는 것이
필요했다.
… 여기서 모세는
몸의 머리로서
권위를 행사하시는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아론은
대제사장으로서
제사장 직분을 수행하시는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주님은
한 면으로 머리의 권위로서,
다른 한 면으로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을
돌보시고 감찰하시며 검증하신다.
이 밖에도 열두 지파의 인도자들은
교회 안의 장로들과 인도자들을
상징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계수하는 것이
생명과 생명의 성숙에 근거하고,
영적 권위에 의해
확증을 받는다는 것을
가리킨다.

오늘날 교회 가운데에는
그리스도의 머리의 권위가 있고,
또한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이 있다.
교회의 상태가 정상적일 때,
장로들은
교회 가운데서 인도하면서
하나님 앞에 사는 것을 배우고,
또한 사람들에게 생명이 있는지,
그들이 충분히 성숙했는지,
충분히 강한지와 같은 것을
확증하고 판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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