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rvice
of the Priests and the Levites
for God’s Move
민수기는
봉사에 관한 책이며,
3장과 4장은
거룩한 봉사를 다룬다.
민수기에서
우리는
교회 봉사에 관한
완전한 예표를
본다.
민수기에 나오는
봉사는
교회 봉사를
보여 주는
그림이다
― 민 3:1-39, 4:1-33,
롬 12:5-8, 11.
봉사는
하나님의
증거의 성막을
돌보기 때문에
거룩하다
― 민 3:7-8, 4:4-16.
거룩한 봉사의
기본 원칙은
혼돈이 없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이 봉사가
생명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거룩한 봉사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신성한 행정 아래 있으며,
따라서 좋은 질서 안에 있다
― 민 3:7.
거룩한 봉사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에 의해
수행되었다
― 민 3:3, 6, 9-10.
제사장들은
기름 부음받은 이들로서
직접
하나님을 섬겼다
― 민 3:3.
제사장들은
성막 앞 동쪽,
곧 해가 뜨는 쪽에
진을 쳐야 했다.
그들은
회막 입구를 지켰으며,
하나님을
섬기기 원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제사장들을
통과해야 했다
― 민 3:38.
제사장들은
성소(sanctuary:
본 개요에서
성막 전체를
가리킴―역자 주)의 임무,
곧 성소(Holy Place:
이 메시지에서
성소는 여기에서만
성막의 첫째 부분인
성소의 의미로
사용되었음―역자 주)와
지성소가 있는
성막의 임무를
수행해야 했다
― 민 3:32, 38.
‘임무’라는 단어는
책임을 가리킨다
― 민 3:7, 32, 38.
제사장들이
성소의 임무를
수행했다는 것은
그들이
성소 전체와
그것과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해
책임을 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레위인들은
직접적으로
제사장들은 아니었지만
제사장 직분을 위해
봉사하는 이들이었다
― 민 3:9, 12, 17.
제사장들의 사역인
제사장 직분 안에는
레위인들의 봉사를
필요로 하는
많은 실무적인 일들이
있었다
― 민 3:25-37.
레위인들의 봉사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예표인
회막, 곧 증거의 성막을
돌보는 것이었다
― 민 18:1-4, 6.
성막과 그 내용물을
돌볼 때
레위인들은
직접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다.
그보다 그들은
하나님을 직접 섬기는
제사장들과
제사장 직분을 위하여
봉사하였다
― 민 3:9, 12, 17.
제사장들은
성소와 제단의 임무를
수행해야 했고,
레위인들은
성소와 제단을
돌보는 일에서
제사장들의 지시 아래서
봉사했다
― 민 18:5-6.
제사장들은
모든 기구가 딸린
증거의 성막과
제단에서
봉사하였다.
이 증거의 성막과
제단은
그리스도의
모든 풍성한 방면을
보여 주는 예표이며,
신약의 믿는 이들은
이 그리스도를
다른 이들에게
공급한다
― 민 3:25-26, 31, 36-37,
엡 3:8, 고후 3:3, 딤전 4:6.
십자가를 상징하는
제단(히 13:10)은
그리스도의 구속을
가리키며,
성막은
하나님의 체현이신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골 2:9).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은
사람들 가운데 거하시고
(요 1:14)
사람들은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온 존재를
누린다
(14:2, 6, 20).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사역은 항상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풍성을
공급한다
― 엡 3:8.
사역하는 것은
봉사하는 것이며,
봉사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나누어 주어
그들을
공급하는 것이다
― 고후 4:1, 3:3, 6, 8,
벧전 4:10-11.
신약의 믿는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구속을 받도록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공급해 주고
(고전 1:23, 2:2),
생명의 공급을 받도록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풍성을
공급해 준다
(엡 3:8, 골 1:27-28).
민수기에 묘사된
거룩한 봉사는
활동하지 않으시는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 아니라,
매우 활동적이신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다.
그분의 활동
곧 그분의 움직임과 관련해서
우리는 반드시
그분과
짝을 이루어야 한다
― 민 4:1-33.
성막을 옮길 때
곧 성막이 전진할 때,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에게는
해야 할
어떤 의무들이 있었다.
제사장들은
레위인들이 해야 할
봉사를
정해 주었다
― 민 4:19, 27-28, 33.
레위인들은
그들의 방식에 따라서가 아니라
기름 부음받은
제사장들의 지시 아래서
봉사했다.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약의 제사장들인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낸
관념에 따라서가 아니라
기름 부음받은
관점의 지시 아래서,
곧 우리에게
기름 부으시는
그 영의 지시 아래서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 민 3:3, 출 28:41.
제사장들은
주된 일들
곧 중요한 일들을
돌보았고,
고핫 사람들(레위인들)은
어떤 부차적인 일들을
돌보았다
― 민 4:5-14.
성소의 기구들을
돌보는 것은
주된 일들을
돌보는 것이다.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돌보았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직접 돌보며
그리스도를
공급하는 것이다
― 민 4:5-6.
고핫 사람들은
성소의 기구들을
운반했다
(민 4:2-4, 15, 17-20, 34-37).
이러한 일을
하는 것은
오늘날로 치면
그리스도의 확대인
교회에 관해
말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어떻게 움직이시는지를
보기 위해서
우리는
성막의 움직임을
살펴보아야 한다
― 민 4:5, 25, 31-32.
성막의 움직임은
레위의 세 아들들의
후손들의 어깨에
달려 있었다
― 수 3:11, 13-15, 17.
주님은
우리가
언약궤와
성소의 기구들과
회막을
짊어지는 것을 통해
움직이신다
― 수 3:3, 11, 13-15.
하나님의
신약 경륜의 원칙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움직이시기 위해서는
그분과
짝을 이룰
사람이
그분께
필요하다는 것이다
― 마 28:18-20.
사람이 없다면
하나님은
아무것도
하실 수 없다.
하나님은
그분의
신약 경륜 안에서
사람이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신다
― 행 1:8, 13:1-3.
하나님은
그분과
짝을 이루고
그분과
하나 되며
그분과
동역하는
사람을
얻으셔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신약 경륜의
기본 원칙이다
― 겔 1:15-21, 고전 6:17.
그리스도는
오늘날
온 땅에서
움직이고 계시며,
그분과
하나인 사람들과
함께 움직이고 계신다
― 행 1:8, 요 15:4-5, 16.
우리는
오늘날의
게르손 자손과
고핫 자손과
므라리 자손이다.
하나님의 확장을 위한
하나님의 체현이신
그리스도는
그분을
사랑하는 이들을 통해
움직이신다
― 아 7:11-12, 계 2:4-5.
구약에서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 사이에
구분이 있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오직 한 무리
곧 제사장의 무리만
있다
― 롬 15:16, 벧전 2:5, 9,
계 1:6, 5:10.
제사장들은
성막을 옮길 때에
자신의 임무를
수행했을 뿐만 아니라,
레위인들이 해야 할
봉사를 정해 주었다
― 민 4:5-14, 19, 27-28, 33.
구약에서
레위인들이 수행한 일들은
예표였지만,
신약의 제사장들인
믿는 이들은
그 일의 실재를
실행해야 한다
― 벧전 2:5, 9.
레위인들의 봉사가
제사장들의 감독 아래
있었다는 사실은
신약의 제사장들이
외적인 레위인의 일을
할 때에 반드시
신약의 제사장 직분의
내적이며 영적인 관점의
감독 아래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 계 1:6, 5:10.
레위인의 봉사는
제사장의 관점과
결코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
외적인 봉사는 반드시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을 공급하는
영적인 활동이
되어야 한다
― 롬 12:4-13, 15:16,
벧전 2:5, 9, 4:10-11.
우리는
제사장 직분의
내적인 관점 아래서
외적인 일들을 하기를
배워야 한다.
우리는
외적이고 실지적인
일들을 돌보고 있는 동안에
다른 이들에게
생명을 공급해야 한다.
우리가
이렇게 한다면,
우리의 레위인의 봉사는
제사장 직분의
관점과 감독 아래
있는 것이다
― 요일 1:2-3, 2:25, 5:11-16.
사람이
하나님을 섬길 때,
제사장의 일과
레위인의 일이
둘 다
있어야 한다
― 롬 1:9, 15:16.
한 면에서
우리는
영적인 봉사에
참여하지만,
또 다른 면에서는
실지적인 일들을
돌보아야 한다.
어떤 봉사든
그것을 하기에 앞서
우리는 먼저
주님의 임재 안에서
제사장으로서
봉사해야 한다.
모든 봉사는 반드시
제사장의 봉사여야 한다.
민수기 4장
3, 23, 30, 35, 39, 43절에 나오는
‘봉사’에 대한
히브리어 단어는
‘전쟁’으로
번역할 수 있으며
군 복무를
가리킨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거룩한 봉사는
전쟁과 관련된다.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들인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전투원으로
여겨야 한다
― 롬 15:16.
우리는
전파하고
가르치고
다른 이들을 온전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면서
전투를 하고 있다
― 엡 3:8, 4:12, 16, 6:10-12.
신약의 제사장들은
전투원이며,
우리의 제사장 봉사는
전투이다
― 계 5:10, 19:11-14.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하는
모든 영적인 일은,
어떤 형태를 취하든지
그것이
영적인 영역의 일들을
만지는 한
본성에 있어서
전쟁이다
― 고후 10:3-5.
복음을 전하고,
성도들을 온전하게 하고,
교회의 행정을 수행하고,
기도하는 것은
모두
일종의 전쟁이다
― 엡 1:17-18, 3:8,
14-19, 4:12, 6:10-12.
우리의 눈이
주님에 의해
열렸다면,
우리는
주님을 섬기는
우리의 일의
본성이
전쟁이라는 것을
볼 것이다.
보상 혹은 대가가
제사장들인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그리고 봉사하는
레위인들에게
주어졌다
― 민 18:8-32.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에게는
그리스도 외에
다른 몫이 없었다.
그리스도는
그들의
집, 유업, 땅,
옷, 음식, 모든 것이셨다
― 민 18:31.
오늘날 신약에서
레위인의 봉사는
제사장 직분과
결합되었다
― 벧전 2:5, 9.
제사장들과
제사장들을 섬기는 이들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는 이들은
제사장들이며
또한 봉사하는 레위인들이다.
우리의
제사장 봉사와
레위인 봉사에 대한
유일한 보상,
유일한 대가는
그리스도이다
― 마 25:23, 딤후 4:8,
계 3:20-21.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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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replies on “하나님의 움직임을 위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봉사”
6일
딤후 4:7-8
나는
선한 싸움을 싸웠고,
달려야 할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의로운 재판장이신
주님께서
그날에
나에게
그것을
보상으로
주실 것인데,
나에게만 아니라
그분께서 나타나시기를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
주실 것입니다.
어느 때든
주님의 이름이
구원받은 사람에게 있으면
주님의 권위가
뒤따른다.
어느 때든
주님의 권위가
그에게 이르면
사탄의 권세는
물러난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해서,
복음 전파와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일과
사람들을 주님께 인도하는 일은
일종의 영적 전쟁이다.
성도를 가르치는 일도
일종의 영적 전쟁의 문제이다.
성도를 가르치는 일은
그들을
사탄의 권세,
즉 사탄이
사람을 지배하기 위해 사용하는
죄들, 세상, 육체,
그리고 옛 창조물과 관계된 모든 것에서
구출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들이
사탄의 어둠의 권세에서
구출받고,
주님의 이름을
더 깊이 알게 되며,
주님께서
그들 안에서
더욱더 다스리실 수 있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왕국이
보다 더 그들에게 임하게 될 것이다.
고린도후서 10장
3절부터 5절까지는
“왜냐하면 우리가
비록 육체 안에서 행하지만,
육체를 따라
싸우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싸우는 데 쓰는 무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능력인데,
그것은
견고한 요새들을 무너뜨리고,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대적하여
일어나는
모든 높아진 것을 무너뜨리며,
각종 사상을 사로잡아 와서
그리스도께 순종하게 합니다.”
라고 말한다.
이 말씀이
보여주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구원을 받은 후에도
그 생각과 사고의 대부분이
사탄의 견고한 요새 안에
남아 있고,
그 관념과 개념의 많은 부분이
여전히 사탄에게 점령된 기지로서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들이
성도들을 가르칠 때,
그들의 목적은
전쟁을 통하여
성도들 속에 있는
사탄의
모든 견고한 요새와 기지를
파괴하고
점차적으로
성도들의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성도들을 가르치는 일 또한
일종의 영적 전쟁이다.
더욱이 교회의 행정조차도
일종의 전쟁이다.
교회의 행정의 목적은
교회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출하여,
하나님으로 하여금
교회 안에서
다스릴 처소를
얻으시게 하고,
하나님의 이름이
교회 안에서
높임을 받으며,
하나님의 뜻이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교회 안에서
더욱더 나타나도록
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교회의 행정 또한
일종의 전쟁이다.
우리의 모든 기도도
자신을 위한 것이든
가족을 위한 것이든
교회의 부흥을 위한 것이든
무엇을 위한 기도든지 간에,
사탄의 어둠의 권세에서
우리를 구출하려는
목적을 위한 것이다.
따라서 이 또한
일종의 전쟁이다.
만일 우리의 눈이
주님에 의해
열렸다면,
우리는
주님을 섬기는
우리의 일의
본성이
전쟁이라는 것을
볼 것이다.
사람을
죄에서
건져 내든
세상이나 질병이나 어려움에서
건져 내든 간에,
우리의 모든 영적인 일의
최종 목적은
사람을
사탄의 권세에서
건져 내고
사람 속에 있는
사탄의 어둠의 권세를
몰아내어,
하나님께서
사람을 얻으시고
사람이
하나님께
사로잡히는 것이다.
그럴 때
하나님의 이름이
사람들 안에서 거룩하게 되고,
하나님의 왕국이
사람들에게 임하며,
하나님의 뜻이
사람 안에서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사람들에게 나타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모든 일의
본성은 바로
영적 전쟁이다.
보상 혹은 대가가
제사장들인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 그리고 봉사하는
레위인들에게
주어졌다
(민 18:8-32).
이 보상은
전적으로
그리스도였다
(31절).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에게는
그리스도 외에
다른 몫이 없었다.
그리스도는
그들의
집, 유업, 땅,
옷, 음식, 모든 것이셨다.
오늘날
신약에서
레위인의 봉사는
제사장 직분과
결합되었다.
제사장들과
제사장들을 섬기는 이들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는 이들이
제사장들이며
또한 봉사하는 레위인들임을
의미한다.
우리의
제사장 봉사와
레위인 봉사에 대한
유일한 보상,
유일한 대가는
그리스도이다.
5일
고후 10:4-5
우리가
싸우는 데 쓰는
무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능력인데,
그것은
견고한 요새들을
무너뜨리고,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대적하여
일어나는
모든 높아진 것을
무너뜨리며,
각종 사상을
사로잡아 와서
그리스도께
순종하게 합니다.
주님을 섬기는
우리의 봉사는
일종의 제사장의 봉사여야 한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제사장들일 뿐 아니라
군대였다.
그러므로 그 군대는
제사장 군대였다.
제사장들은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을 섬길 뿐 아니라
전쟁을 하기도 한다.
주님의 군대는
제사장 군대이다.
이것은
우리가
제사장이 아니라면
주님을 위하여 결코
전쟁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을 위하여
전쟁을 하려면
제사장 체계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제사장들로서,
기도하는 데
자신을 드리고
주님의 임재 안에서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제사장의 사역이다.
어떤 봉사든
그것을 하기에 앞서
우리는
먼저
주님의 임재 안에서
제사장으로서
봉사해야 한다.
우리가
장로들이라면
제사장 장로가
되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집사나 여집사라면
먼저
제사장이 되어야 한다.
제사장이 되지 않으면
교회 안에서 결코
좋은 형제자매들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조차도
전부가 아니다.
우리는
제사장 남편,
제사장 아내,
제사장 부모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모든 일에서
제사장이어야 한다.
군대는 반드시
제사장이어야 한다.
사도도
제사장이어야 한다.
복음 전파자도
제사장이어야 한다.
말씀의 사역자도
제사장이어야 한다.
장로들과
집사들도
제사장이어야 한다.
형제자매들도
제사장이어야 한다.
남편들과 아내들과
부모들과 자녀들도
모두
제사장이어야 한다.
이것은 바로
주님의 봉사를 하기에 앞서
먼저
우리 자신을
주님께
열어 놓고
그분의 임재 안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럴 때
주님은
우리가
그분과
하나 되도록
우리를
채우시고
적시시며
심지어 삼키실 수 있다.
그때 주님은
우리의 내용이
되실 것이고,
우리는
그분의 표현이
될 것이다.
그분은
우리가
전쟁을 하든지,
복음을 전하든지,
말씀을 가르치든지,
장로나 집사로서
봉사를 하든지
우리를 통해서
무언가를
말씀하실 것이고,
우리 안에서부터
무언가를
표현하실 것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든지 간에
우리는
주님께서
흘러 나가실
통로가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생활하는 방식이
되어야 하고,
일하는 방식이
되어야 하며,
봉사하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
민수기 4장
3, 35, 39, 43절에 나오는
‘봉사’에 대한
히브리어 단어는
‘전쟁’으로
번역할 수 있으며
군 복무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거룩한 봉사조차도
전쟁 중에 있었다.
오늘날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들인 우리는
자신을
전투원으로
여겨야 한다.
우리는
전파하고
가르치고
다른 이들을 온전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면서
전투를 하고 있다.
신약의 제사장들은
전투원이며
우리의 제사장 봉사는
전투이다.
하나님의 왕국과 사탄 사이에
전쟁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하는
모든 영적인 일은,
어떤 형태를 취하든지
그것이
영적인 영역의 일들을
만지는 한
본성에 있어서
전쟁이다.
예를 들어,
복음 전파는
사도행전 26장 18절에 의하면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복음 전파가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돌아가게 하는
일일 뿐 아니라,
사탄의 권세에서
구출하는
일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또한 골로새서 1장 13절은
“아버지께서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출하시어,
그분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 안으로
옮기셨습니다.”
라고 말한다.
어둠의 권세에서
구출되는 것이
곧 사탄의 권세인
사탄의 왕국에서
구출되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으로
옮기는 것은
곧 하나님의 왕국으로
옮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 전파는
전적으로
사람 안에 있는
사탄의 권세를
몰아내고
하나님의 왕국을
가져오기 위한
영적 전쟁이다.
… 사람이
구원받을 때,
그 사람은 먼저
주님의 이름을 믿고,
두 번째로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세번째로
주님의 이름 안에 있으며
주님의 이름에 속한다.
따라서 그는
사탄의 권세에서
구출받고
주님의 이름에
속하게 된다.
4일
벧전 2:5
그러면 여러분 자신도
살아 있는 돌들로서
영적인 집으로
건축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영적인 희생 제물을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 체계가
됩니다.
벧전 2:9
그러나 여러분은
선택받은 족속이고,
왕들인 제사장 체계이며,
거룩한 나라이고,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시어
자신의 기묘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분의
미덕들을
널리 알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사람 없이
혼자 움직일 수 있으셨다.
예를 들면,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셨을 때
그분과 짝을 이룰
사람이 필요 없으셨다.
그러나 신약은
신성한 육체 되심으로
시작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신약 경륜을 위한
원칙을 세웠는데,
이 원칙은
하나님께는
그분과 짝을 이룰
사람이 필요하시다는 것이다.
사람이 없다면
하나님은
아무것도 하실 수 없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사람 없이
많은 것을
하실 수 있었다.
그러나 신약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사람과 함께 묶으셨다.
… 신약에서
하나님은 반드시
그분과 짝을 이루는
사람을 얻으셔야 한다.
즉 그분과 하나 되며
그분과 동역할 수 있는
사람을 얻으셔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신약 경륜의
기본 원칙이다.
성막을
이동하는 데 있어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
둘 다에게
의무가 부과되었다.
구약에서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 사이에
구분이 있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오직 한 무리
곧 제사장의 무리만
있다.
그러므로 신약의 제사장들인
우리도
구약에서
레위인들이 했던
일을 해야 한다.
민수기 4장 19절 상반절에서
우리는
고핫 사람들의 봉사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지시 아래
있었음을
본다.
이것은
구약에는
두 부류,
곧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있었음을
가리킨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두 부류가
하나가 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제사장들인 동시에
레위인들이다.
우리가
제사장들로서
레위인의 일을 할 때,
우리는
제사장의 관점의
감독 아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집회소의 의자를
배열하는 것은
영적인 일이 아니라
레위인의 봉사이다.
그러나 이 레위인의 봉사는
제사장 직분의
내적이며 영적인 관점의
감독 아래에서
수행되어야 한다.
만일 의자를
이런 방식으로 배열한다면,
봉사하는 이들은
교회와
의자에 앉을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게 될 것이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문 두드리기를
하는 것에서도
원칙은 동일하다.
문 두드리기를 하는
레위인의 봉사는
제사장의 관점의
감독 아래에서
수행되어야 한다.
그럴 때
이런 방식으로
복음을 전하며
사람들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더 많은 기도를
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주님,
제가
이 집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동안에
당신께서
이 집에 사는
사람의 마음을
두드리시기를
간청합니다.”
라고 기도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레위인의 봉사를
제사장의 관점에서
분리해서는 안 된다.
어떤 외적인 활동이라도
제사장 직분의
내적이고 영적인
관점의 감독 아래서
수행되어야 한다.
우리는
제사장 직분의
내적인 관점 아래서
외적인 일들을 하기를
배워야 한다.
예를 들어,
교회에서
사무적인 일들을
하는 방법은
… 은행에서
일하는 방법과
전혀 달라야 한다.
교회 사무실에서 하는
모든 봉사는
하늘에 속한
관점 아래
있어야 하고,
제사장의 감독 아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우리가
교회 사무실에서 하는
모든 일은
영적인 활동이
될 것이고,
다른 이들에게
생명을 공급하는 것이
될 것이다.
우리는
외적이고 실지적인
일을 돌보고 있는 동안에
다른 이들에게
생명을
공급해야 한다.
우리가
이렇게 한다면,
우리의 레위인의 봉사는
제사장 직분의
관점과 감독 아래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섬길 때,
한 면으로는
제사장의 일이 있고
다른 한 면으로는
레위인의 일이 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일을
다 해내야 한다.
한 면으로
우리는
영적인 봉사에
참여해야 하고,
다른 한 면으로는
실지적인 일들도
돌보아야 한다.
… 이러한 것들은
그리스도인의 일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은
하나님 앞에서
이런 범주의 일들을
반드시 합당하게 배워야 한다.
3일
요 15:16
여러분이
나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여러분을 선택하여
세웠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나가서
열매를 맺고,
그 열매가
계속 남아 있도록
하려는 것이며,
여러분이
내 이름 안에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주시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행 1:8
그러나 성령께서
여러분 위에 임하시면
여러분이
능력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입니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진군하기 위해
성막을 이동시킬 때에
어떤 의무들을
수행해야 했다.
진군하는 것은
전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룩한 봉사에서
다루어지는 것은
활동하지 않으시는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 아니라,
매우 활동적이신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다.
그분의 활동과 관련해서
우리는 반드시
그분과
짝을 이루어야 한다.
레위인들은
그들의 방식에 따라서가 아니라
기름 부음받은
제사장들의 지시 아래서
봉사했다.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약의 제사장들인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낸
관념에 따라서가 아니라
기름 부음받은
관점의 지시 아래서,
곧 우리에게
기름 부으시는
그 영의 지시 아래서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제사장들은
주된 일들
곧 중요한 일들을
돌보았고,
고핫 사람들은
어떤 부차적인 일들을
돌보았다.
성소의 기구들을
돌보는 것은
주된 일들을
돌보는 것이다.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돌보았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직접 돌보며
그리스도를
공급하는 것이다.
고핫 사람들은
성소의 기구들을
운반했다
(민 4:2-4, 15, 17-20, 34-37).
이러한 일을 하는 것은
오늘날로 치면
그리스도의 확대인
교회에 관해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신약 경륜 안에서
사람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신다.
사람은
하나님과
하나 되어야 하고,
하나님과
짝을 이루어야 하며,
하나님과
함께 묶여야 한다.
“주님과 합하는 사람은
주님과 한 영입니다.”
(고전 6:17)
이것은
신약에서
하나님의 경륜이
사람과 하나님을
함께 묶는다는 것을
암시한다.
하나님은 기꺼이
사람과
함께 묶이고자 하시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 없이는
움직이실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움직이실 뿐 아니라
사람 안에서
움직이신다.
이런 이유로
하나님은
누구에게도 결코
직접
복음을 전하지 않으시고,
사람을 통해
복음을 전하신다.
그리스도는
오늘날
온 땅에서
움직이고 계신다.
“성령께서
여러분 위에 임하시면
여러분이
능력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입니다.”
(행 1:8)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은
그분의
증거가 되는 것이며,
그분의
증거가 되는 것은
그분의
초상화가 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증거
곧 그분의 초상화라면,
우리가
어느 곳에 가든지
사람들은
그분을
보게 될 것이다. …
모든 복음 전파자들은
사실상
그리스도의 증인
곧 그리스도의 초상화이다.
우리는
오늘날
주님께서
어떻게 움직이시는지를
보아야 한다.
그분은
우리 안에서
움직이신다.
우리는
오늘날의
게르손 자손과
고핫 자손과
므라리 자손이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어떻게 움직이시는지를
보기 위해서
우리는
성막의 움직임을
살펴보아야 한다.
성막의 움직임은
레위의 세 아들들의
후손들의 어깨에
달려 있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어떠한 혼돈도 없이
매우 좋은 순서에 따라
이루어졌다.
오직 아론과
그의 아들들만이
거룩한 것들을
볼 수 있었고
만질 수 있었다.
레위인들은
그것들이
포장되고 싸인 다음에야
그것들을
볼 수 있었고
만질 수 있었다.
평범한 사람들은
거룩한 것들을
만질 권리가
전혀 없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모든 사람이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주님의 회복을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을 수 있다.
주님의 긍휼로
나는
미국에 왔을 때,
성소의
모든 기구들과 함께
궤를 가지고 왔다는 것을
간증할 수 있다.
나는 또한
그리스도의 확장인
회막, 곧 교회를
가지고 왔다.
주님은
궤와
성소의 기구들과
회막을
짊어진
우리를 통해
움직이신다.
하나님의 확장을 위한
하나님의 체현이신
그리스도는
그분을 사랑하는 이들을 통해
움직이신다.
우리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분은
움직이실 수 없다.
오히려 그분은
우리 안에
묶여 계시며
심지어 갇혀 계신다.
우리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주님께
감옥이 될 것이다.
2일
고후 3:6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 언약의 사역자들이 되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게 하셨습니다.
사역자들은
문자에 속해 있지 않고
그영께 속해 있습니다.
왜냐하면 문자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지만,
그 영은
생명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엡 3:8
하나님께서
모든 성도들 중에
가장 작은 이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그리스도의
측량할 수 없는 풍성을
이방인들에게
복음으로
전하게 하시고,
레위인들은
직접적으로
제사장들은 아니었지만
제사장 직분을 위해
봉사하는 이들이었다.
이것은
그들이
제사장 직분을
섬겼음을 뜻한다.
제사장 직분
혹은 제사장의 사역 안에는
레위인들의 봉사를
필요로 하는
많은 실무적인 일들이 있었다.
그러므로 레위인들은
이러한 실무적인 일들을 위해
분별된 지파였다.
그러한 분별된 지파로서
레위인들은
좋은 땅의 몫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레위인들 주위에 있는
성읍들이
그들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정하셨다.
레위인들의 봉사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예표인
회막, 곧 증거의 성막을
돌보는 것이었다
(민 18:1상, 2상, 3-4, 6).
성막과 그 내용물을
돌볼 때
레위인들은
직접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다.
그보다 그들은
하나님을 직접 섬기는
제사장들과
제사장 직분을 위하여
봉사하였다.
레위인들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주어진 선물,
즉 하나님께
바쳐진 선물이었다
(민 18:6하).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맏아들이
봉사하기를
원하셨다.
결국 하나님은
레위인들을 사용하여
그들을 대치하셨다.
이스라엘 자손은
그들의 맏아들을
하나님께
선물로 드렸는데,
이들이
레위인들로
대치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에게 드려진
레위인들을
제사장들에게
선물로 주셨다.
레위인들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연결되어
그들을 섬겼다.
레위인들이
제사장들을 섬겼다는 것은
그들이
제사장들을 위해
봉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사장 체계는
제사장들 무리,
곧 함께 무리 지어진
많은 제사장들을
가리키고,
제사장 직분은
제사장들의 봉사를
가리키는데,
민수기 18장에서는 주로
제사장 직분이
많이 언급된다.
제사장들은
성소(sanctuary),
곧 성막과
제단의
임무를 수행해야 했다
(민 18:5).
성막 전체는
성소(sanctuary)였다.
성경에서
성소(sanctuary)라는 단어는
아주 모호하게 사용된다.
그것은
성소(Holy Place)를
의미할 수도 있고
지성소(Holy of Holies)를
의미할 수 있으며
혹은 둘 다를
의미할 수도 있다.
성소는
그리스도를 예표하며
또한 교회를 예표하기도 한다.
성소 밖에 있는
제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성소와 제단은
교회와 함께하시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를
예표한다.
레위인들은
성소와 제단을 돌보는
제사장들 아래서 섬겼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자손이 이동하도록
명령을 받았을 때,
레위인들은
성막과 그 모든 기구들을
꾸려
운반했다.
이스라엘 백성이
특정한 장소에
도착했을 때,
레위인들은
성막과
그것과 관련된 모든 것을
설치했다.
“내가
너희에게
제사장 직분의 봉사를
선물로 준다.”
(민 18:7하)
제사장 직분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드린
최고의 봉사로서,
하나님께서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주신
큰 선물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고라가
그것을 얻으려고 하는
야심을 가졌던 것이다
(16:10).
제사장들은
모든 기구가 딸린
증거의 성막과
제단에서
봉사하였다.
이 증거의 성막과 제단은
그리스도의
모든 풍성한 방면을
보여 주는 예표이며,
신약의 믿는 이들은
이 그리스도를
다른 이들에게
공급한다.
성막은
천막이며
바깥뜰에 있는
제단은
제물들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곳이다.
제단은
그리스도의 구속을
상징하고
성막은
하나님의 체현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하는데,
그분을 통하여
하나님은
사람들 가운데 거하시고
사람들은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온 존재를 누린다.
사역하는 것은
봉사하는 것이며,
봉사하는 것은
종업원이
사람들에게
음식을 공급하듯이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나누어 주어
그들을
공급하는 것이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사역은 항상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공급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구속을 위한 것이고,
그리스도의 풍성은
공급을 위한 것이다.
오늘날
신약의 믿는 이들인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구속을 받도록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공급해 주고,
생명의 공급을 받도록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풍성을
공급해 준다.
신언노트, 2019 02 10
하나님의 움직이심을 위한
그 제사장들과
또 그 레위인들의
그 봉사
민수기는
봉사에 관한(of)
한 책이고,
또 3장과 또 4장은
그 거룩한 봉사를
다룹니다
(cover;
포함합니다, 담당합니다):
민수기 안에서
우리는
그 교회 봉사의
한 완전한 예표를
가집니다.
민수기 안에 있는
그 봉사는
그 교회 봉사의
한 그림입니다.
그 봉사는
그것이
하나님의
그 증거의 그 성막을
돌보기 때문에
거룩합니다.
그 거룩한 봉사의
그 기본적인 원칙은
그것이
생명에
기초하기 때문에
그것이
혼란(confusion; 혼동) 없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거룩한 봉사 안에 있는
각각의 모든 것들은
그 신성한 행정 아래에 있고,
또 그래서 그것들이
(everything … it; 그것이)
좋은 질서 안에 있습니다.
그 거룩한 봉사는
그 제사장들과
또 그 레위인들에 의하여
수행되었습니다:
그 제사장들은
직접 하나님을 섬겼던
기름 부음받은 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제사장들은
그 성막 앞에
그 동쪽에,
그 일출 쪽으로
진을 쳐야 했습니다
(were to camp);
그들은
그 회막으로의 그 입구를
경비하였고,
또 하나님을
섬기기 원했던
사람은 누구나(anyone)
그 제사장들을
통과해야만 했습니다.
그 제사장들은
그 성소(the sanctuary),
곧 그 성소(the Holy Place)와
또 그 지성소를 가진
그 성막의
그 임무를
(the charge; 그 책임을)
계속해야 했습니다
(were to keep;
지켜야[보존해야, 거행해야] 했습니다):
그 단어 ‘임무’는
책임을(responsibility; 책무를)
언급합니다.
그 제사장들이
그 성소의 그 임무를
계속했다는 것은
그들이
그 전체 성소와
또 그것에 연관된
모든 것들에 대하여
책임을 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레위인들은
직접적으로
(directly; 전적으로)
제사장들은 아니었지만
그 제사장 직분에 속한(of; …의)
그 봉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제사장 직분,
곧 그 제사장들의 그 사역 안에,
그 레위인들의 그 봉사를
요구하는
많은 사무들이
(many business affairs;
많은 직분[임무, 사업] 업무들이)
있었습니다.
그 레위인들의 그 봉사는
그리스도와 또 그 교회의
한 예표인
그 회막
―그 증거의 그 성막을
돌보는 것이었습니다:
그 성막과
또 그것의 내용물들을
돌봄 안에서,
그 레위인들은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rather;
오히려, 차라리, 약간),
그들은
그 제사장 직분과
또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그 제사장들을
섬겼습니다
(served;
…을 위하여 봉사하였습니다, 시중들었습니다,
근무하였습니다, 공급하였습니다, 도왔습니다).
그 제사장들은
그 성소와(the sanctuary)
또 그 제단의
그 임무를
계속해야 했고,
또 그 레위인들은
그 성소와 또 그 제단을
돌봄 안에서
그 제사장들의 아래에서(under)
섬겼습니다.
그것의 모든 기구들을 가지는
(with all its furnishings;
그것의 모든 비품들과[설비들과])
그 증거의 그 성막과
또 그 제단은,
이를 향하여(to which)
그 제사장들이
공급하였고
(ministered;
섬겼고, 봉사하였고,
시중들었고, 임무를 다했고),
그분의 모든 부유한 측면들 안에서
그리스도의 예표들이었으며,
그분을(whom)
그 신약 믿는 이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공급합니다(minister):
그 십자가를 나타내는(signifying),
그 제단은,
그리스도의 구속을
언급하고,
또 그 성막은
하나님의 그 체현이신
그리스도를
언급하며,
그분을(whom) 통하여
하나님께서
사람들 가운데에
(among;
사이에, …에 둘러싸여)
거주하시고(dwells)
또 그분을 통하여
사람들이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서
그분께서 무엇이신
(that He is)
모든 것들을
누립니다.
그 제사장들과
또 그 레위인들의
그 사역은 항상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그 부유함을
(the riches;
그 부를[재물을])
공급합니다(supplies):
사역하는 것은
봉사하는 것이고,
또 봉사하는 것은
사람들을 향하여
섬김에 의하여
(by ministering;
사람들에게
공급하는 것입니다(to supply).
그 신약 믿는 이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구속을 위한
그리스도의 그 십자가를
또 그 생명 공급을 위한
그리스도의 그 부유함을
공급합니다(serve).
민수기 안에 있는
그 거룩한 봉사는
활동하지 않으시는
한 그리스도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매우 활동적이신
(very active;
아주 활발하신[적극적이신])
한 그리스도를 위하여
있습니다;
그분의 활동 안에서,
곧 그분의 움직이심 안에서,
우리는 반드시
그분과 어울려야만 합니다
(must match;
일치해야만[아주 비슷해야만, 대등해야만,
조화되어야만, 짝을 이루어야만] 합니다):
그 제사장들과
또 그 레위인들은
그 성막의
출발함(setting out) 안에서,
곧 그것의
앞으로 감(going forward) 안에서
어떤 의무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제사장들은
그 레위인들이
그들의 봉사를 하도록
지정하였습니다
(appointed;
임명하였습니다, 명령하였습니다):
그 레위인들은
그들의 방식에 따라서가 아니라
오직 기름 발라진(anointed)
그 제사장들의
그 지시 아래에서
(under the direction;
그 지도[지휘, 감독] 아래에서)
그들의 봉사를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
곧 하나님을 섬기는
그 신약 제사장들이,
우리 자신의 생각에 따라서가 아니라
기름 발라진
그 견해의
(the … view;
그 봄의[전망의, 생각의,
관점의, 기대의, 고려의])
그 지시 아래에서,
즉, 우리에게
기름 바르시는
그 영의 그 지시 아래에서
행동해야만 한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 제사장들은
그 주요한 것들(things; 일들),
곧 그 중요한 것들을
돌보았고,
또 그 고핫 사람들은(레위인들은)
약간의(some of; 어떤)
그 이차적인 것들을
(the secondary things;
그 부차적인[부수적인] 일들을)
돌보았습니다:
그 성소의(the sanctuary)
그 기구들을
돌보는 것은
그 주요한 것들을
돌보는 것입니다.
그 제사장들은
그 언약궤를 돌보았습니다;
이것은
직접적으로
그리스도를
돌보고
또 그리스도를
섬기는(to minister; 공급하는) 것입니다.
그 고핫 사람들은
그 성소의
그 기구들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carried;
운반하였습니다, 지탱했습니다);
오늘날
이것을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그 확장인
(the expansion;
그 팽창인[확대인])
그 교회에 관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땅 위에서
어떻게 움직이시는지를
보기(to see; 알기) 위하여,
우리는
그 성막의 그 움직임을
(the move;
그 이동을[이사를, 행동을])
살펴보아야만 합니다:
그 성막은
레위의 그 세 아들들의
그 자손들의 그 어깨들 위에서(on)
움직였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언약궤,
그 성소의 그 기구들,
또 그 회막을
우리가 짊어짐을 통하여
움직이십니다.
하나님의
신약 경륜 안에 있는
그 원칙은
하나님께서
땅 위에서의
그분의 움직이심 안에서
그분과 어울리는
사람을
필요로 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없이는,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하실 수 없습니다;
그분의 신약 경륜 안에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과 어울리는,
곧 그분과 하나인,
곧 그분과 동역하는
사람을
가지셔야만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신약 경륜의
그 기본적인 원칙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그 땅 전체에 걸쳐서
오늘날(today; 현재)
움직이고 계시고,
또 그분께서
그분과 하나인 사람들과 함께
움직이고 계십니다:
우리는
오늘날의(today’s 현재의)
게르손,
고핫,
또 므라리의
아들들입니다.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확장을 위한
그분의 그 체현께서,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움직이십니다.
그 구약 안에는
그 제사장들과
또 그 레위인들 사이에
한 차이가
(a distinction;
한 대조가[구별이, 차별이])
있었습니다;
그 신약 안에는
오직 하나의 계층
(one class;
하나의 계급[등급, 부류, 종류]),
곧 그 제사장들의 그것만
(only … that of; 계층만)
있습니다:
그 성막의 출발함 안에 있는
그들 자신들의 임무들을
수행함에 더하여,
그 제사장들은
그 레위인들이
그들의 봉사를 하도록
지정하였습니다.
그 레위인들이
예표로
(in type;
예표 안에)
그 구약 안에서
했던 것을,
그 신약 제사장들인
그 믿는 이들이 또한
실재로
(in reality;
실재 안에, 실제로)
해야만 합니다:
그 레위인들의 그 봉사가
그 제사장들의 그 감독 아래에
(under the supervision;
그 지휘[지도, 관리, 감시] 아래에)
있었다는
그 사실은
그 신약 제사장들이
외적인 레위인의 그 일을
할 때,
그들이 반드시
그 신약 제사장 직분의
내적인, 곧 영적인
그 견해의
그 감독 아래에서(under)
그것을 해야만 한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레위인의 그 봉사는
제사장의 그 견해로부터
결코 분리되지 말아야 합니다;
외적인 그 봉사는 반드시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을 공급하는
한 영적인 활동이
되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그 제사장 직분의
내적인 그 견해 아래에서
외적인 것들을
하는 것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외적인,
곧 실용적인
(practical; 실지적인)
문제들을
(matters; 일들을)
돌보고 있는 동안에,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을
공급하고 있어야만 합니다
(should be ministering);
만약 우리가
이것을 한다면,
우리의 레위인의 봉사는
그 제사장 직분의
그 견해와 또 감독 아래에
있습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는(serves) 때,
그 제사장의 일과
또 그 레위인의 일이
둘 다
있는 것을
필요로 합니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그 영적인 봉사를
함께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또한
그 실용적인 업무들을
돌보아야만 합니다.
어떤 종류의 봉사든지 (그) 전에
(Before any kind of service),
우리는 반드시
맨 먼저
(first; 우선, 첫 번째로)
주님의 임재 안에서
제사장들로서
봉사해야만 합니다;
모든 봉사는 반드시
제사장에게 속해야만(be priestly) 합니다.
히브리어에서
민수기 4장
3, 23, 30, 35, 39, 또 43절 안에 있는
‘봉사’라는 그 단어는
‘전투(warfare; 교전, 전쟁, 싸움)’이고,
군 복무를
(military service; 병역[군역]을)
가리킵니다:
그 제사장들과
또 그 레위인들의
그 거룩한 봉사는
전투를 포함하였습니다
(involved;
수반하였습니다, 연루[관련]시켰습니다).
하나님의
그 복음의 제사장들로서,
우리는
우리 자신들을
전사들로
(warriors;
용사[투사, 무사, 군인, 전투원]들로)
여겨야 합니다:
우리가
전파하고 있고,
가르치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을
세우고 있고
(are … edifying;
건축하고 있고, 계발[교화, 선도, 고양]하고 있고,
향상시키고 있고, 신앙 안에 함양하고 있고, 덕성을 기르고 있고)
또 그리스도의 그 몸을
건축하고 있는 동안에,
우리는
싸우고 있습니다
(are fighting;
전투 중입니다).
그 신약 제사장들은
전사들이고,
또 우리의
제사장의 봉사는
한 싸움입니다
(한 전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하고 있는
그 모든 영적인 일은,
그것이
어떤 형태를 취하든지,
그것이
그 영적인 영역의
그 일들을
(the things;
그것들을, 그 상황들을)
만지는 한,
본성 안에서
한 전투입니다:
그 복음을 전파함,
그 성도들을 세움
(edifying;
건축함, 계발함, 향상시킴, 함양함),
그 교회를 관리함
(administrating;
운영함, 감독함, 집행함),
또 기도함은
모두 일종의 전투입니다.
만약 우리의 눈들이
주님에 의하여
열려졌다면,
우리는
주님을 섬김 안에 있는
우리의 일의
그 본성이
전투의 그것이라는 것을
(that of warfare;
전투의 본성이라는 것을)
볼 것입니다.
한 보상
(A reward;
상, 보답, 대가),
또는 보수가
(compensation;
배상이, 보상이, 벌충이)
그 제사장들인
아론과
또 그의 아들들에게
그리고 봉사하는
그 레위인들에게
주어졌습니다:
그 제사장들과
또 그 레위인들은
그리스도 이외의 몫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집, 상속 재산, 땅,
옷, 음식,
또 각각의 모든 것들이셨습니다.
오늘날,
그 신약 안에서,
레위인의 그 봉사는
그 제사장 직분과
결합됩니다:
그 제사장들과
그 제사장들의
그 종들
(the servants;
일꾼들, 하인들, 고용인들, 섬기는 사람들)
사이에
차이가
(difference;
다름이, 차별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 믿는 이들이
그 제사장들과
또 그 봉사하는 레위인들
둘 다입니다.
우리의
제사장의
또 레위인의
봉사에 대한(for)
그 유일한 보상,
곧 그 유일한 보수는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제사장들로서,
기도하는 데
자신을 드리고
주님의 임재 안에서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제사장의 사역입니다.
어떤 봉사든
그것을 하기에 앞서
우리는 먼저
주님의 임재 안에서
제사장으로서
봉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장로들이라면
제사장 장로가 되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집사나 여집사라면
먼저 제사장이
되어야 합니다.
제사장이 되지 않으면
교회 안에서 결코
좋은 형제자매들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조차도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는
제사장 남편,
제사장 아내,
제사장 부모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일에서
제사장이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10장
3절부터 5절까지는
“왜냐하면 우리가
비록 육체 안에서 행하지만,
육체를 따라
싸우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싸우는 데 쓰는 무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능력인데,
그것은
견고한 요새들을 무너뜨리고,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대적하여
일어나는
모든 높아진 것을 무너뜨리며,
각종 사상을
사로잡아 와서
그리스도께
순종하게 합니다.”
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이
보여주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구원을 받은 후에도
그 생각과 사고의 대부분이
사탄의 견고한 요새 안에
남아 있고,
그 관념과 개념의 많은 부분이
여전히 사탄에게 점령된 기지로서
이용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이
성도들을 가르칠 때,
그들의 목적은
전쟁을 통하여
성도들 속에 있는
사탄의
모든 견고한 요새와 기지를
파괴하고
점차적으로
성도들의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성도들을 가르치는 일 또한
일종의 영적 전쟁입니다.
1일
민 3:6-7
“너는
레위 지파를
가까이 오게 하여,
그들을
제사장 아론 앞에 세워
그를
섬기게 하여라.
그들은
회막 앞에서
아론의 임무와
온 회중의 임무를
수행하여
성막의 봉사를
담당해야 한다.
민수기에서
우리는
교회 봉사에 관한
완전한 예표를
본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우리가
어느 정도
교회 봉사에 있어서
다소 느슨해져 있다는 것을
우리의 눈을
열어
보여 주시기를
바란다.
영적인 원칙들에 대해서
우리는 그다지
진지하거나
엄격하거나
올바르지 않았다.
우리가
무의식중에 범하는
실수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놓치게 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서
우리는
느슨해서는 안 되고
진지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특별히 젊은이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봉사에서
영적인 규례들과
영적인 법칙들을
배울 필요가 있다.
우리는
민수기 3장과 4장이
다루고 있는
거룩한 봉사를
살펴보기
시작할 것이다.
… 거룩한 봉사는
전적으로
레위인들이
담당하였다.
이 때문에
레위 지파는
싸움을 위해 있지 않았고
거룩한 봉사를 위해 있었다.
이 봉사는
하나님의
증거의 성막을
돌보기 때문에
거룩하다.
거룩한 봉사의
기본 원칙은
혼돈이 없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이 봉사가
생명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거룩한 봉사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좋은 질서 안에 있으며
신성한 행정 아래 있다.
거룩한 봉사는
생명에
기초를 두기 때문에
혼돈이 없다.
우리는
사람의 몸을
예로 들 수 있다.
사람의 몸에
혼돈이 있다면
병이 났다는
표시이다.
몸은
생명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혼돈을
용납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군대인
그리스도의 몸은
전적으로
생명의 문제이기 때문에
몸 안에는 분명히
합당한 안배가 있다.
제사장 체계는
하나의 유기체이므로,
조직화된 기독교 안에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유기적인 몸 안에서만
합당하게 실행될 수 있다.
조직은
많은 문제가 있어도
계속 나갈 수 있지만,
그리스도의 몸은
조그마한 문제만 있어도
괴로움을 당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혼돈을
피해야만 한다.
혼돈을 처리하는
가장 좋은 길은
혼돈을
피하는 것이다.
혼돈을 피한다면
우리는
많은 문제들을
피하게 될 것이다.
민수기 3장은
사람들과
그들의 의무들에 관해
많이 말한다.
우리는
이 문제에
머무를 필요가 있는데,
이는
그것이 사실상
우리와
우리의 의무들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먼저, 우리는
제사장들의 의무들을
살펴본 후
레위인들의 의무들을
살펴볼 것이다.
제사장들은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기름 부음받은 이들이다.
민수기 3장 38절 상반절에서
우리는
제사장들이
성막 앞 동쪽,
곧 해가 뜨는 쪽에
진을 쳤음을
본다.
제사장들은 사실상
문지기들로서
성막의 입구를 지켰다.
하나님을
섬기기 원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제사장들을
통과해야 했다.
오늘날
제사장 직분은 더 이상
아론의 시대처럼
어떤 가문에 속한 것이 아니다.
제사장 직분은
보편적인 것이다.
그러나 원칙에 있어서는
동일하다.
어느 누구도
문지기를 통과하지 않고서는
휘장 안에 있는
궤에 이를 수 없다.
궤에 이르고자 하는
사람들은
먼저 제사장 체계를
통과해야 한다.
어떤 믿는 이가
성막을 지키는
제사장 체계를
통과했다면,
그는
성막 안으로
곧바로 들어가
두 번째 휘장을 지나서,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만나시는 곳인
궤에 이를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오늘날
제사장 직분은
보편적인 것이다.
이것은
모든 믿는 이들이
제사장이며
제사장으로서
섬겨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실지로는
모든 믿는 이들이
제사장으로서
기능을 발휘하지 않는다.
제사장들은
성소의 임무를
수행해야 했다
(민 3:38하, 32).
성소(sanctuary)는
성소(Holy place)와 지성소,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
성막이었다.
‘의무’라는 단어는
책임을 가리킨다.
제사장들이
성소의 임무를
수행했다는 것은
그들이
성소 전체와
그것과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해
책임을 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어떤 것이
손상되거나
도둑을 맞으면
제사장들이 책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