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의 열두 역사서(여호수아기, 사사기, 룻기, 사무엘기상·하, 열왕기상·하, 역대기상·하, 에스라기, 느헤미야기, 에스더기)의 내재적인 의미는 하나님께서 인간 역사 안에서의 움직임을 통하여 그분의 영원한 경륜을 수행하실 길을 준비하신다는 계시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되심으로 사람을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이 되게 하셔서, 그리스도의 유기적인 몸인 교회를 산출하시고 건축하시어 그분의 궁극적인 표현을 위한 새 예루살렘을 완결하심으로써 그분의 영원한 경륜을 수행하신다.
우리는 구약의 열두 역사서를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과 연결시켜야 한다. 성경은 사실상 오직 한 가지,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을 우리에게 말해 준다.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은 그분의 선한 기쁨, 곧 그분의 마음의 갈망에 근거한 것이다. 이 열두 역사서는 우리에게 경고와 빛 비춤을 주려고 하나님의 신성한 계시에 의해 기록되었다.
우리가 주님을 다시 모셔 오는 그분의 신부로 준비되도록 (하나님의 법리적인 구속을 절차로 하고 하나님의 유기적인 구원을 목표로 하는)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을 수행하는 것이 오늘날 세계정세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유일한 길이다.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을 수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의 갈망이며, 하나님은 이것을 성취하실 것이다.
주님의 두 번째 오심이 불공정(사 11:4), 전쟁(2:4), 질병(계 22:2, 겔 47:12), 기근(사 35:1, 6), 교육(사 2:2-5, 4:2-6, 11:9, 합 2:14, 히 8:11, 시 2:6, 12), 죄악된 제도(마 13:41-43), 모든 창조물의 괴로움(롬 8:21-22, 사 11:6, 9), 땅에 있는 정부들(계 11:15, 단 2:34-35, 44-45) 등과 같은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스가랴서는 인간 역사 안에서의 하나님의 움직임의 초점과 주된 내용이 예수님의 증거, 곧 하나님의 건축물을 위한 그리스도의 두 번 오심이라는 것을 계시한다.
스가랴서 9장부터 11장까지는 그리스도께서 낮아지셔서 첫 번째 오시는 것을 말하는데, 이러한 첫 번째 오심은 겸손하고도 친밀한 것이었다.
그리스도는 왕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구원을 가지고 의로운 방식으로 오셨지만, 위풍당당한 말이 아닌 나귀 심지어 어린 나귀를 타신 낮아지신 왕, 겸비하신 왕으로 오셨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을 때 성취되었다.
그리스도는 미움받으시고, 공격받으시고, 배척받으시고, 그분의 제자들 중 한 명에게 배반당하시어 노예 몸값인 은 삼십에 팔리셨다. 여기에 예언된 것은 복음서들에서 성취되었다.
여호와의 동료이신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목자로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오셨다. 그리스도는 사람으로서 이스라엘 자손의 친척이셨고 또한 여호와의 동료이셨다. 목자이신 그분은 맞으셨고, 양들인 그분의 제자들은 흩어졌다.
이스라엘 집에서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상처를 입으셨지만,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집에서 입은 상처들이오.”라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자손은 그리스도를 죽였지만, 이 달콤한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리스도는 그들의 행위를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상처를 입힌 것으로 여기셨다.
그리스도의 옆구리는 찔렸고, 그분은 죄와 불결을 씻는 열린 샘이 되셨다.
스가랴서 12장부터 14장까지는 그리스도의 승리에 찬 두 번째 오심에 대해 말한다. 이 두 번째 오심에는 능력과 권위가 함께할 것이다.
그리스도는 두 번째 오실 때, 그분의 성도들 곧 이기는 이들과 함께 오실 것이다.
그분의 발은 예루살렘 앞 동쪽에 있는 올리브산 위에 설 것이다.
그리스도는 그분께서 선택하신 백성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해 그들을 에워싼 민족들에 맞서 싸우시어 이스라엘 자손을 멸망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그때 이스라엘 온 집은 그들이 찌른 그분을 바라볼 것이고 그분으로 인해 통곡할 것이다. 이렇게 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받을 것이다.
이후에 그리스도는 왕이 되시어 민족들을 다스리시고 통치하실 것이다. 모든 사람이 매년 예루살렘에 올라가 그분께 경배할 것이고, 모든 사람이 그분께로 거룩하게 분별될 것이다.
“여호와께서 온 땅의 왕이 되시리니, 그날에는 여호와께서 한 분 하나님이실 것이며 그분의 이름만이 하나의 이름일 것이다.” ― 슥 14:9.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건축물을 얻으시기 위해 인간 역사 안에서 하나님께서 움직이시는 것에 대한 역사이시다.
그리스도는 인류 역사 안에서 능숙하게 일하심으로 세계정세를 주권적으로 통제하시면서, 신성한 역사 안에서 그분 자신을 우리 안으로 능숙하게 일해 넣으심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무한한 지혜와 신성한 구상을 표현하는 하나님의 걸작품, 하나님의 시(詩), 하나님의 새로운 발명품으로 만들고 계신다.
그리스도는 그분의 인성 안에서 여호와의 천사로서, 곧 삼일 하나님이신 여호와 자신으로서, 골짜기의 가장 낮은 곳에서 굴욕을 당하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서 계시면서 그들을 돌보시고, 그들을 위해 중보기도 하시며, 그들을 바빌론에 포로 되어 있는 데서 신속하게 이끌어 내신다.
그리스도는 네 뿔을 부러뜨리기 위해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마지막 장인(匠人)이시다. 네 뿔은 왕이 다스리는 네 제국, 곧 바빌론과 메도-페르시아와 헬라와 로마 제국이다. 이 네 제국은 또한 다니엘서 2장 31절부터 33절까지에서는 네 부분을 지닌 거대한 인간 형상으로, 요엘서 1장 4절에서는 네 단계의 메뚜기들로, 다니엘서 7장 3절부터 8절까지에서는 하나님께 선택받은 백성을 해치고 멸망시킨 네 짐승으로 상징된다.
네 장인은 이 제국들과 그들의 왕을 멸망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쓰신 솜씨들이다. 앞의 세 제국(바빌론, 메도-페르시아, 헬라) 각각을, 뒤이은 제국이 솜씨 좋게 점령하였다.
네 번째 장인은 손을 대지 않고 떠 내어진 돌이신 그리스도일 것이며, 이 그리스도는 다시 오실 때 복원된 로마 제국을 산산이 부수심으로, 인간 정부의 총체인 거대한 인간 형상을 산산이 부수실 것이다.
이 돌은 개인적인 그리스도만이 아니라 단체적인 그리스도, 곧 그분의 ‘용사들’과 함께하시는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단체적인 그리스도, 곧 이기는 신부와 함께하시는 그리스도는 돌로서 오셔서 인간 정부의 총체를 산산이 부수심으로 하나님의 왕국을 이끌어 오실 것이다.
다니엘서 2장은 그리스도께서 손을 대지 않고 떠 내어진 돌로서 오시는 것에 대해 말하지만, 요한계시록 19장은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군대인 그분의 신부를 얻으신 분으로서 오시는 것에 대해 말한다.
에베소서 5장과 6장은 교회가 신부이자 전투원이라는 것을 계시한다. 요한계시록 19장에서도 우리는 교회의 이 두 방면을 본다.
인간 역사 안에서의 하나님의 움직임인 신성한 역사 안에서 신부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아름답게 하는 말씀이 필요하며, 인간 역사 안에서의 하나님의 움직임인 신성한 역사 안에서 전투원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죽이는 말씀이 필요하다.
그리스도는 그분의 결혼 날에,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의 원수와 대항해 전투를 치러 온 그분의 신부, 곧 이기는 이들과 결혼하실 것이다.
그리스도는 땅에 내려오셔서 적그리스도와 인간 정부의 총체를 처리하시기 전에, 결혼식을 하시어 그분의 이기는 이들을 그분 자신께 연결시켜 한 실체가 되게 하실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는 그 영 곧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으로서, 신부 곧 과정을 거치고 변화된 세 부분으로 된 사람인 교회와 결혼하실 것이다.
결혼식 후에 주님은 갓 결혼한 그분의 신부와 함께 오셔서, 적그리스도 곧 자기 군대를 이끌고 하나님께 직접 대항해 싸우려는 자를 멸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신 주 예수님은 그분의 입의 숨으로 불법의 사람인 적그리스도를 죽이실 것이고, 직접 오시어 나타나심으로 그를 제거하실 것이다.
그리스도의 입에서는 예리한 칼이 나오는데, 그것은 민족들을 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 정부를 산산이 부수신 후에 온 우주를 깨끗이 청소하실 것이다. 그런 다음에 단체적인 그리스도, 곧 이기는 이들과 함께하시는 그리스도께서 큰 산이 되어 온 땅을 채우시고 온 땅을 하나님의 왕국이 되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을 수행하기 위해 인간 역사 안에서 하나님의 움직임을 완수하는 길은 우리의 영을 사용하여 일곱 배로 강화되신 영이신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누리는 것이다.
스가랴서 1장 3절은 “너희는 나에게로 돌아오라. 만군의 여호와의 선포이다. 그러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겠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우리의 영을 사용하여 온 마음으로 주님께 돌아가야 한다. 이것은 하나의 원칙을 세우는데, 바로 우리가 반드시 먼저 주님께 돌아가야 하고 그럴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돌아오신다는 것이다.
스가랴서 12장 1절은 “이스라엘에 관한 여호와의 부담의 말씀이다. 여호와, 곧 하늘들을 펼치시고 땅의 기초를 놓으시며 사람 안에 영을 지으시는 분께서 이렇게 선포하신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창조를 통해 결정적이고도 공히 중요한 세 가지 항목, 곧 하늘들과 땅과 사람의 영을 창조하셨다.
하늘들은 땅을 위해 있고, 땅은 사람을 위해 있으며, 사람은 하나님을 접촉하고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경배하고 하나님을 살고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고 하나님과 하나 될 수 있도록 하나님에 의해 영을 가진 존재로 창조되었다.
사람의 존재에서 다스리는 중심과 가장 두드러진 부분은 사람의 영이어야 한다. 자신의 영의 다스림과 통제를 받는 사람이 영적인 사람이다.
스가랴서는 우리에게 우리 사람의 영에 온전히 주의를 집중하라고 명령한다. 그럴 때 우리는 이 책에 계시되신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그분에 관하여 이 책에 계시된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일곱 배로 강화되신 영이신 그리스도를 다음의 방면들에서 누려야 한다.
그리스도는 손에 측량줄을 가지고 계신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하나님의 백성을 시험하고 심판하고 조사하고 소유하시기 위하여 그들을 측량하고 계신다.
“내가 예루살렘을 둘러싼 불 성벽이 되고 성안의 영광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선포이다.” ― 슥 2:5.
예루살렘 성벽과 그 안의 영광이 여호와 그분 자신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이신 여호와께서 예루살렘 둘레에서 예루살렘의 보호가 되시고, 예루살렘 중심에서 예루살렘의 영광이 되심을 가리킨다. 이것은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중심과 전부이심을 보여 준다.
오늘날 그리스도는 교회의 중심에서 영광이시고, 또한 교회를 보호하시기 위해 교회 둘레에서 타오르는 불이시다. 새 예루살렘에서 그리스도 안에 계신 삼일 하나님은 새 예루살렘의 중심에서 영광이 되실 것이고(계 21:23, 22:1, 5), 이 영광은 투명한 성벽을 투과해 빛남으로써(계 21:11, 18상, 24) 새 예루살렘을 보호하는 불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는 만군의 여호와에 의해 보내어지신 분이시자 보내시는 분이신 만군의 여호와로서, 그분께 매우 소중한 그분의 백성을 돌보신다. 누구든지 그분의 백성을 건드리는 자는 그분의 눈동자를 건드리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목자로서 오시어 지팡이 두 개를 가지고 양 떼를 목양하시는데, 하나는 ‘은총(은혜)’이라 불리고, 다른 하나는 ‘결합(묶는 것)’이라 불린다. 은혜는 우리가 하나님과 연합되기 위한 것이고, 묶는 것은 우리가 하나로 묶이기 위한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은총을 많이 베푸시는 동안에, 우리는 그분께 훨씬 더 많은 은총, 더 많은 은혜, 더 많은 ‘비’를 보내 주시기를 구해야 한다.
목자이신 주님께서 방문하신 후에,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있는 약한 양들은 모두 위풍당당한 말이 된다.
우리가 아침 부흥의 시간을 갖는 동안 주님은 자주 우리에게 휘파람을 부시어, 우리를 그분께로 부르고 모으신다. 주님의 휘파람은 날카롭지 않고 온화하고 부드러우며, 다소 새의 노랫소리와 같다.
주님은 그분 자신 안에서 우리를 강하게 하시어 우리가 그분의 이름 안에서 행하게 하신다.
인간 역사 안의 신성한 역사인 하나님의 움직임이 있을 때 새 창조물이 있다. 새 창조물은 바로 새 마음, 새 영, 새 생명, 새 본성, 새 역사, 새 완결이 있는 새사람이다. 우리가 신성한 역사 안에 있으면서 우리의 유기적인 구원을 위해 비밀하고 신성한 것들을 체험하고 누리는 것에 대해 주님을 찬양한다. 이러한 체험과 누림의 결과로 우리는 그분을 다시 모셔 올 그분의 이기는 신부가 되도록 자신을 준비할 것이다 ― 찬송가 1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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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하늘들은 땅을 위해 있고, 땅은 사람을 위해 있으며, 사람은 하나님을 접촉하고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살고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고 하나님과 하나 될 수 있도록 하나님에 의해 영을 가진 존재로 창조되었다. 인간 역사와 정치에 밀접하게 연관되시는 그리스도를 계시하는 구약에, 스가랴서 12장 1절과 같은 말씀이 있다는 것은 놀랍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경륜 안에서 계획하신 것이 그리스도를 이 땅에서 그분의 움직임의 중심과 전부로 삼으시는 것이었음을 가리킨다. 하나님 자신이신 그리스도께서 수천 년 동안 해를 거듭하여 세계정세를 주관하심으로 인류 전체를 다스리셨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들 곧 하나님을 창조주와 구속자로 사랑할 사람들을 위하여, 하나님은 그들에게 일종의 받아들이는 기관을 창조하실 필요가 있었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그리스도의 온 존재를 받아들일 역량을 갖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그리스도는 놀라우시지만, 우리에게 영이 없다면 어떻게 우리가 그분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우리가 우리 사람의 영을 소홀히 한다면, 하나님을 접촉할 길이 없을 것이다.
스가랴서 10장의 예언은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애정 어린 방식으로 방문하시는 것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애정 어린 방문은 사실상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에게 오시는 것이다.
“ ‘봄비 때에 / 여호와 곧 번개를 만드는 여호와에게 / 비를 구하여라. / 그가 그들에게 소나기를 내려 / 각 사람에게 밭의 푸성귀를 주리라.”(슥 10:1) 더 많은 비를 구한다는 것은 더 많은 복을 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주님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그분께서 그들을 은혜롭게 대하실 때 복을 더 많이 구하라고 격려하신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은총을 많이 베푸시는 동안에, 우리는 그분께 훨씬 더 많은 은총을 보내 주시기를 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소나기를 내리고 계시므로, 우리는 그분께 더 많은 비를 구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주님의 넘치는 복을 위해 기도해야 함을 가리킨다.
“이는 만군의 여호와가 자기 양 떼인 유다 집을 방문하였고 / 그들을 전쟁터의 위풍당당한 말처럼 만들 것이기 때문이라.”(슥 10:3하)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에게 오실 때 이렇게 은혜로운 방식으로 그들을 방문하셨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방문하신 것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오신 것이었다. 그분은 사람 예수님 안에서 오셨다.
이 부분의 말씀은 하나님의 양 떼의 목자에 대해 말한다. 신약에서 주 예수님은 자신을 목자에 비유하셨다. 그분은 양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자이셨다.
그분은 그분의 양 떼를 방문하심으로써 그들을 위풍당당한 말처럼 만드신다. 우리는 양인가 아니면 위풍당당한 말인가? 우리는 모두 전진하여 더 이상 양이 아닌 위풍당당한 말이 되어야 한다. 목자가 만지신 후에 약한 양들은 모두 위풍당당한 말이 될 것이다.
스가랴서 10장 8절부터 12절까지는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애정 어린 방식으로 방문하신 것의 더 전진된 방면들을 계시한다. 8절에 언급된 주님의 휘파람은 날카롭지 않고 온화하고 부드러우며, 다소 새의 노랫소리와 같다. 우리가 아침 부흥의 시간을 갖는 동안 주님은 자주 우리에게 휘파람을 부시어, 우리를 그분께로 부르고 모으신다.
“내가 여호와 안에서 그들을 강하게 하리니 / 그들이 그의 이름 안에서 행하리라. / 여호와의 선포이다.’ ”(슥 10:12) 여기에서 ‘내가’는 여호와이며, 여호와께서 그분의 백성을 그분 자신 안에서 강하게 하실 것임을 가리킨다. 그러면 그들은 그분의 이름 안에서 행할 것이다. 어떤 사람의 이름 안에 있다는 것은 그 이름의 실재인 그 사람의 인격과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 안에 있는 것은 우리의 매일의 행함에서 하나님의 이름 안에서 살고 행하고 처신함으로써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이다.
종종 우리가 이러한 애정 어린 방문을 누린 후에 우리의 상황이 바뀐다. 그분은 방문하셔서 우리에게 더 많은 복을 구하라고 격려하신다. 우리는 그렇게 담대하거나 견고하지 않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를 방문하셔서 애정 어린 방식으로 만지시면, 우리는 강하게 되어 싸우는 위풍당당한 말들이 된다. 결국 주님은 우리를 그분 자신 안에서 강하게 하셔서 그분의 이름 안에서 행하게 하신다.
5일
요한계시록 19장에 따르면, 교회는 그리스도 앞에 세워진 신부인 동시에 하나님의 원수를 대항해 그리스도와 함께 싸우는 전투원이다. 다시 오실 때, 주 예수님은 먼저 신부를 만나실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신부를 맞이하신 후에, 그리스도와 이기는 이들은 원수와 맞서 싸우기 시작할 것이다. 주님은 흰색 말을 타실 것이며(11절),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은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흰색 말을 타고서 그분을 따를 것이다(14절). 요한계시록 17장 14절도 이것을 언급한다. “그들이 어린양과 싸울 것입니다. 그런데 어린양께서 그들을 이기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모든 주인의 주님이시고 모든 왕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또 어린양과 함께 있는 사람들, 곧 부름받고 선택받은 신실한 사람들도 그들을 이길 것입니다.’ ”
요한계시록 19장 7절과 8절에서는 신부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은 것을 볼 수 있다. 그런 다음 14절에서는 전쟁에서 주님을 따르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교회인 우리는 단지 몸, 하나님의 거처, 하나님의 왕국, 하나님의 가족, 새사람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신부와 전투원이기도 하다. 신부로서 우리는 아름다워야 하고, 점도 주름도 없어야 하며, 세마포 옷을 입어야 한다. 전투원으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원수와 맞서 싸우도록 반드시 무장해야 한다.
자아가 가장 큰 원수이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죽이는 능력을 체험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말씀을 기도로 읽을 때, 한편으로는 자양분을 얻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요소들이 죽음당한다. 어쩌면 우리는 의심과 미움과 시기와 교만과 이기심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말씀을 기도로 읽는 것을 통해 이런 것들을 죽일 수 있음을 알고 있는가? 우리가 죽이는 능력을 가진 말씀을 취할수록, 우리의 교만과 우리 속에 있는 부정적인 모든 요소들은 더욱더 죽음당하게 된다. 말씀을 기도로 읽을 때 내부의 대적이 죽는다. 한 차례 말씀을 기도로 읽은 후에 우리는 우리를 공격하고 있던 대적이 사라졌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매우 실지적인 의미에서, 우리가 안으로 취한 말씀에 의해 대적이 죽음당한다.
에베소서 5장에서 말씀은 신부를 아름답게 만드는 영양 공급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에베소서 6장에서 말씀은 죽이기 위한 것으로서 단체적인 전투원인 교회가 영적 전쟁에 참여할 수 있게 한다.
그리스도는 그분의 결혼 날에,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의 원수와 대항해 전투를 치러 온 이들과 결혼하실 것이다. 이것은 요한계시록 19장에서 그리스도께서 이기는 이들, 곧 이미 악한 자를 이긴 이들과 결혼하실 것임을 의미한다. … 그리스도께서 적그리스도와 그의 군대에 맞서 싸우러 오실 때, … 사람의 아들로서 그분은 그분과 어울리고 그분을 온전하게 할 배필이 필요하실 것이다. 이 배필이 그분의 신부일 것이다. 인간 정부를 산산이 부수러 오실 때, 그리스도는 그분의 신부인 이기는 이들과 함께하는 남편이실 것이다. 이것은 그분께서 이 땅에 내려오셔서 열 발가락을 처리하시고 그런 후 형상 전체를 처리하시기 전에 결혼식을 치르실 것임을 의미한다(계 19:7-9). 결혼식 후에 주님은 갓 결혼한 그분의 신부와 함께 오셔서, 적그리스도 곧 자기 군대를 이끌고 하나님께 직접 대항해 싸우려는 자를 멸하실 것이다.
그리스도는 그분의 신부와 결혼하신 후, 손을 대지 않고 떠 내어진 돌로 오셔서 거대한 인간 형상을 발가락부터 머리까지 산산이 부수시어, 하나님을 직접 대항해 싸우는 인간 정부를 멸망시키실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인간 정부를 산산이 부수심으로 온 땅이 깨끗이 정리될 것이다. 옛 창조물에 속한 인간 정부라는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그때 그리스도는 돌에서 온 땅을 채우는 큰 산으로 증가하실 것이다.
4일
고린도후서 13장 14절의 이 삼중 축복은 삼일 하나님과 연관된다. 왜냐하면 이 절에서 우리는 아들 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을 얻기 때문이다.
스가랴서 1장 8절 상반절의 이 사람은 인성을 지니신 그리스도이다. 이 절의 이 사람은 여호와의 천사이다. 여호와의 천사는 삼일 하나님이신 여호와 자신이시다. 여호와의 천사는 또한 삼일 하나님의 체현이시자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신 그리스도이시다. 여호와의 천사는 또한 이집트에서 약속된 땅으로 가던 길에서, 이스라엘을 호위하시고 보호하신 하나님의 천사이시다.
이 이상에 나오는 사람은 붉은색 말을 타고 있다. 여기의 붉은색 말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를 흘리심으로 이루신 구속 안에서 신속하게 움직이시는 것을 상징한다.
스가랴서 1장 8절 중반절에 언급된 이 화석류나무들은 포로 된 상태에서 굴욕을 당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한다. 포로 된 이스라엘은 골짜기의 가장 낮은 곳에 있었고, 그리스도는 그들을 위해 무엇이든 신속하게 행하실 준비가 되어 있으셨다. 붉은색 말 위에 계신 분이신 그리스도는 포로 된 이스라엘 백성을 돌보는 보호자이셨다.
“그분 뒤에는 붉은색 말과 적갈색 말과 흰색 말이 있었다.”(슥 1:8하) 이것은 그리스도의 구속(붉은색 말)이 회개한 이스라엘(적갈색 말)을 인도하여 하나님께 신속하게 의롭게 되고 받아들여지게 함(흰색 말)을 의미한다. ‘붉은색’이라는 표현은 구속을 가리키며, ‘적갈색’은 혼합을 가리킨다. 결국 흰색 말로 상징되듯이, 구속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와서 처리받을 때, 그들은 의롭게 될 것이다.
스가랴서 1장 18절부터 21절까지에서 우리는 네 뿔과 네 장인에 대한 이상을 본다. “내가 눈을 들어 보니, 네 뿔이 있었다. 나는 나와 말하던 천사에게 말하였다. ‘이것들은 무엇입니까?’ 그가 나에게 말하였다. ‘이것들은 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흩어 버린 뿔들입니다.’ ”(슥 1:18-19) 이 네 뿔은 왕이 다스리는 네 제국 곧 바빌론과 메도-페르시아와 헬라와 로마 제국으로서, 이 네 제국은 다니엘서 2장에서는 거대한 인간 형상으로, 다니엘서 7장 3절부터 8절까지에서는 하나님께 선택받은 백성을 해치고 멸망시킨 네 짐승으로 상징된다.
스가랴서 1장 20절과 21절에 언급된, 손을 대지 않고 떠 내어진 돌을 포함하는 네 장인은 이스라엘 나라를 멸망시킨 이 제국들과 그들의 왕을 멸망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쓰신 솜씨들이다. 그리스도는 장인들 중 하나로서, 손을 대지 않고 떠 내어진 돌로 오셔서 그 거대한 형상을 산산이 부서뜨리실 것이다.
앞의 세 제국인 바빌론과 메도-페르시아와 헬라는 각각을, 뒤이은 제국이 솜씨 좋게 점령하였다. 어느 날 밤에 메디아의 다리오가 와서 벨사살을 패배시켰을 때, 바빌론은 패배당했다. 다리오는 얼마나 솜씨가 좋았는지! 그다음으로 다니엘서 8장이 계시하듯이, 마케도니아(알렉산드로스 대왕 통치 아래 있던 헬라 제국)의 숫염소가 와서 페르시아의 숫양을 짓밟았다. 역사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매우 솜씨가 좋았음을 말해 준다. 그는 네 뿔을 처리한 장인들 중 하나였다. 나중에 로마 제국이 등장하여 헬라 제국을 처리하였다. 이 네 제국이 인간 역사의 중심 요인들이다. 마침내 복원된 로마 제국은 최고의 장인이신 그리스도에 의해 산산이 부서질 것이다.
네 제국은 모두 이스라엘을 황폐하게 만들었고 멸망시켰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네 장인에 의해 멸망했으며, 복원된 로마 제국의 경우에는 장차 멸망할 것이다. 이것은 위로하고 격려하는 약속의 말씀이다.
3일
이 시대의 끝에 그리스도는 오셔서 올리브산 위에 서실 것이고, 예루살렘을 포위하는 민족들과 싸우실 것이다(슥 14:3-4). 여호와이신 그리스도는 천년왕국에서 온 땅의 왕이 되실 것이다(9절).
스가랴서에 계시되신 그리스도, 곧 열린 샘이 있는 찔리신 분은 하나님의 경륜의 중심과 전부이시다. 이러한 분으로서 그분은 인간 역사에 밀접하게 연관되시는데, 특히 페르시아 제국과 헬라 제국과 로마 제국에 밀접하게 연관되신다. 특히 로마 제국은 그리스도께 도움이 되었다. 그리스도는 로마 제국의 통치 아래서 태어나셨다. 그분은 로마 제국의 통치 아래서 성장하시고, 사역을 수행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셨다. 하나님의 영원한 구속을 성취하시기 위한 그리스도의 죽음은 로마 제국의 통치 아래서 완성되었다. 교회의 형성과 복음 전파 역시 로마 제국의 통치 아래서 일어났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법이나 문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로마 제국은 분명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그분의 경륜의 중심과 전부로 만드시려는 의도를 이루시는 데 사용되었다.
이스라엘은 대환난 기간 동안 적그리스도와 그의 군대에 의해 짓밟힐 것이다(계 11:2). 게다가 대환난의 주요 재난들이 그 땅에서 발생할 것이다(마 24:16-22). 마지막으로 적그리스도는 많은 유대인을 죽일 것이고 올리브산에 있는 유대인들을 포위할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위험에 처한 바로 그 순간, 그리스도께서 능력과 큰 영광을 가지고 하늘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이다. 그때 온 이스라엘은 그들이 찌른 그분을 바라볼 것이고 슬피 울며 회개할 것이다(마 24:30, 슥 12:10). 그리스도는 올리브산에 오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실 것이다(슥 14:4-5). 그리스도는 민족들을 심판하신 후에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시어, 사방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좋은 땅 곧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으로 모으실 것이다. 그때는 이스라엘 나라가 복원될 때이며(마 24:31), 또한 만물의 복원을 가져올 것이다(행 3:21). 그때부터 왕국 시대가 시작된다.
스가랴서 12장부터 14장까지에서 우리는 두 번째 오실 때의 그리스도를 본다. 그분은 다시 오실 때 이스라엘뿐 아니라 땅의 모든 백성들의 왕이실 것이다(비교 14:9). 그분은 이 땅 전체를 왕으로서 다스리실 것이고, 땅의 모든 백성들은 왕이신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러 해마다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장막절을 지킬 것이다(16절).
백성이 예루살렘에 거주하고 그곳에 더 이상 저주가 없을 것인데, 왜냐하면 예루살렘이 안전하게 거주할 것이기 때문이다(슥 14:11). 저주 대신 축복과 안전이 있을 것이다. 예루살렘을 치러 온 민족 가운데 살아남은 이들은 모두 왕이신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러 해마다 올라와서 장막절을 지킬 것이다(16절). 누구든지 왕이신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러 예루살렘으로 올라오지 않으면, 그들 위에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고, 여호와께서 그들을 치는 재앙을 내리실 것이다. 이것이 그들의 죄가 될 것이다(17-19절). 은혜 시대에 하나님은 의로운 사람과 불의한 사람에게 동일하게 비를 내리신다(마 5:45). 그러나 장차 올 의의 시대에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왕께 경배하지 않고 장막절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의로운 일이다.
2일
스가랴서에 계시되신 그리스도는 인간 역사에 밀접하게 연관되신 그리스도이시다. 처음 여섯 장은 그분께서 페르시아 제국에 연관되심을 계시하고, 나중 여섯 장은 그분께서 헬라 제국과 로마 제국에 연관되심을 계시한다. 9장부터 11장까지에 있는 예언들의 중심은 배척받으신 메시아이신 그리스도이다. 12장부터 14장까지에서 그리스도는 다시 오셔서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온 세상을 다스리는 왕으로서 보좌에 앉으실 메시아로 계시되신다. 그분의 첫 번째 오심은 겸손하고도 친밀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분의 두 번째 오심에는 능력과 권위가 함께할 것이다.
스가랴서 9장 9절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한 구원을 가지고 의로운 방식으로 오실 것이며, 나귀 심지어 나귀 새끼를 타실 것임을 계시한다. 이 절은 사복음서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을 때 성취되었다. 그분은 왕으로서 오셨지만, 위풍당당한 말이 아닌 나귀를 타신 낮아지신 왕, 겸비하신 왕으로 오셨다.
스가랴서 11장 12절과 13절은 이스라엘의 합당한 목자이신 메시아께서 미움받으시고, 공격받으시고, 배척받으시고, 노예 몸값인 은 삼십에 팔리셨음을 계시한다(출 21:32). 여기에 예언된 것은 복음서들에서 성취되었다. 주 예수님은 로마 제국의 통치 아래서 팔리셨고, 로마 통치자들에게 심판받으셨다.
스가랴서 11장 12절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가 좋게 여기면 내 품삯을 주고, …’ 그러자 그들은 내 품삯으로 은 삼십을 달아 주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미움받으시고, 공격받으시고, 배척받으시고, 팔리셨음을 분명하게 가리킨다. 12절과 13절을 이해하려면, 또한 누가 은을 주었고 누가 그 은을 여호와의 집 안으로 던졌는지를 알고자 한다면, 우리는 사복음서를 연구해야 한다.
여호와의 동료이신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목자로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오셨다. 그러나 그분은 그들에게 공격받으시고 죽으셨다. 스가랴서 13장 7절은 “칼아, 깨어나서 내 목자를 치고 / 내 동료인 그 사람을 쳐라. / 만군의 여호와의 선포이다. / 목자를 쳐서 / 양들을 흩어지게 하여라.”라고 말한다. 그리스도는 이스라엘 자손의 친척이셨고 또한 여호와의 동료이셨다. 그분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그분의 친척들은 그분께 상처를 입혔고, 하나님은 칼을 부르셔서 그분을 치게 하셨다. 그분의 친척들이 그분을 쳤고 하나님 또한 자신의 동료이신 그분을 치셨다. 그리스도는 바로 그러한 상황 가운데 계셨다.
마태복음 26장 31절에서 주 예수님은 목자를 치는 것에 관한 스가랴서 13장 7절의 말씀을 인용하셨다. 목자를 친다는 것은 목자를 공격한다는 뜻이다. 상을 세우신 직후에 주 예수님은 자신이 공격당하실 것과 양들인 제자들이 흩어질 것을 말씀하셨다.
스가랴서 13장 6절은 계속하여 이렇게 말한다. “누가 그에게 ‘그대의 두 팔 사이에 있는 상처들은 어떻게 된 것이오?’라고 하면, 그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집에서 입은 상처들이오.’라고 할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은 그분을 죽였지만, 그분은 그들의 행위를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상처를 입힌 것으로 여기셨다. 이것은 매우 달콤한 말이다.
하나님은 다윗 집과 이스라엘 주민들에게 죄와 불결을 씻는 열린 샘(그리스도의 찔린 옆구리)을 마련해 주셨다. “그날에 다윗 집과 예루살렘 주민들을 위하여 죄와 불결을 씻는 샘이 열릴 것이다.”(슥 13:1) 그리스도께서 찔리심으로 그러한 샘이 열렸다. 이것은 구속의 문제이다.
신언노트, 2022 01 22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을
수행하기 위한
인간 역사 안에서의
하나님의 움직임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을
수행함을 위한
사람의 역사 안에 있는
그분의 움직이심
역대기상과 역대기하의 중심 사상은
첫째, 아담부터 사무엘까지의
계보를 포함하는
인간 역사 안에서 진행된
하나님의 움직임에 관한
완전한 연대기를
우리에게 제시한다.
이 연대기는
다음 사항을 보여 준다.
인간 역사 안에서의
하나님의 움직임은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셔서
사람을
하나님이 되게 하심으로써
인성 안에서
그분의 영원한 경륜을 수행하실
길을 준비하시기 위한 것이며,
이러한 그분의 움직임은
하나님의 선민의 역사와
관련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
사무엘기와 열왕기는
하나님께 선택받은
백성을 중점적으로 보지만,
역대기상과 역대기하는
인류 전체를 중점적으로 본다.
따라서 사무엘부터가 아니라
아담부터 시작하여
그리스도께 이르는
계보가 필요한데,
이러한 계보는
마태복음 1장에 제시된
그리스도의 계보와는
일치하지 않지만,
누가복음 3장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계보와는 일치한다.
마태복음 1장의 조망은
이스라엘에 국한된
좁은 조망이고,
누가복음 3장의 조망은
인류 전체를 포함하는
넓은 조망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체현으로서
장차 오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선택받은
한 족속을 위한 분만이 아니시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류 전체를 위한 분이심을
보여 주는
분명한 증거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움직임이
인간 역사 안에 있음을
보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간 역사 안에서
인간 역사를 통해
움직이셨고
여전히 움직이고 계심을
믿어야 한다.
나는
1918년 이래로
세계정세를 관찰해 온 것과
성경에 있는 예언들을 연구한 것에
근거해서
하나님께서 확실히
인간 역사 안에서 움직이신다는 것을
증언할 수 있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분쟁을 살펴보자.
좋은 땅의 지주(地主),
좋은 땅의 합법적인 주인은
누구인가?
이스라엘인가,
아랍 국가들인가?
하나님께서
팔레스타인의 지주이시며,
오직 그분만이
이 땅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다.
나는
정치가들이
좋은 땅의 소유권을 놓고
협상하고 있는 동안
주님께서
하늘들에서 웃고 계신다고
믿는다.
주 예수님께서 곧
다시 오셔서
이 문제를 정리하실 것이다.
그분은
오셔서
세상 정치가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이것은
너희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이다.”
역대기상과 역대기하에 있는
연대기는
인간 역사 안에서 진행된
하나님의 움직임이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셔서
사람을
하나님이 되게 하심으로써
인성 안에서
그분의 영원한 경륜을
수행하실 길을
준비하기 위한 것임을
보여 준다.
이것이
성취되지 않는다면,
오늘날 세계정세의 문제는
해결될 길이 없다.
이 땅에 있는 모든 문제는
한 가지를 기다리고 있다.
즉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사람들이 되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
이 문제는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의 역사와
관련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의 역사와 관계있다.
에베소서 1장 4절은
우리 모두가
창세전에
하나님께 선택받았다고
말한다.
주님을 찬양한다.
주님은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셨다.
이 세상에는
사람이 해결할 수 없는
여러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오직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야
해결될 수 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첫 번째로 해결되는 것은
정의일 것이다.
이사야서 11장 4절에서
주님은
장래에
세상을
정의와 의로 채우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두 번째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세상의 모든 전쟁은
끝날 것이다.
이사야서 2장 4절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사람들이
모든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모든 창을 쳐서
낫을 만들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요한계시록 11장 15절은
어느 날
땅의 모든 민족이
우리 주님과
그분의 그리스도의
왕국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때는 어떤 정부도
백성을 억압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땅에는
의와 정의가 가득할 것이다.
주님의 두 번째 오심이 없다면,
구원은 완성되지 못할 것이다.
구약의 열두 역사서
(여호수아기, 사사기,
룻기, 사무엘기상·하,
열왕기상·하, 역대기상·하,
에스라기, 느헤미야기, 에스더기)의
내재적인 의미는
하나님께서
인간 역사 안에서의
움직임을 통하여
그분의 영원한 경륜을 수행하실
길을 준비하신다는 계시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되심으로
사람을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이 되게 하셔서,
그리스도의 유기적인 몸인
교회를
산출하시고 건축하시어
그분의 궁극적인 표현을 위한
새 예루살렘을 완결하심으로써
그분의 영원한 경륜을
수행하신다.
우리는
구약의 열두 역사서를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과
연결시켜야 한다.
성경은 사실상
오직 한 가지,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을
우리에게 말해 준다.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은
그분의 선한 기쁨,
곧 그분의 마음의 갈망에
근거한 것이다.
이 열두 역사서는
우리에게
경고와 빛 비춤을 주려고
하나님의 신성한 계시에 의해
기록되었다.
우리가
주님을 다시 모셔 오는
그분의 신부로 준비되도록
(하나님의 법리적인 구속을
절차로 하고
하나님의 유기적인 구원을
목표로 하는)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을
수행하는 것이
오늘날
세계정세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유일한 길이다.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을
수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의 갈망이며,
하나님은
이것을 성취하실 것이다.
주님의 두 번째 오심이
불공정, 전쟁,
질병, 기근,
교육, 죄악된 제도,
모든 창조물의 괴로움,
땅에 있는 정부들 등과 같은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스가랴서에 계시되신 그리스도는
인간 역사에 밀접하게 연관되신
그리스도이시다.
처음 여섯 장은
그분께서
페르시아 제국에
연관되심을 계시하고,
나중 여섯 장은
그분께서
헬라 제국과 로마 제국에
연관되심을 계시한다.
9장부터 11장까지에 있는
예언들의 중심은
배척받으신 메시아이신
그리스도이다.
12장부터 14장까지에서
그리스도는
다시 오셔서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온 세상을 다스리는 왕으로서
왕좌에 앉으실
메시아로 계시되신다.
그분의 첫 번째 오심은
겸손하고도 친밀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분의 두 번째 오심에는
능력과 권위가
함께할 것이다.
스가랴서 9장 9절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한 구원을 가지고
의로운 방식으로 오실 것이며,
나귀 심지어 나귀 새끼를 타실 것임을
계시한다.
이 절은
사복음서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을 때
성취되었다.
그분은
왕으로서 오셨지만,
위풍당당한 말이 아닌
나귀를 타신
낮아지신 왕,
겸비하신 왕으로
오셨다.
스가랴서 11장
12절과 13절은
이스라엘의 합당한 목자이신
메시아께서
미움받으시고,
공격받으시고,
배척받으시고,
노예 몸값인
은 삼십에 팔리셨음을
계시한다.
여기에 예언된 것은
복음서들에서 성취되었다.
주 예수님은
로마 제국의 통치 아래서 팔리셨고,
로마 통치자들에게 심판받으셨다.
스가랴서 11장 12절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가
좋게 여기면
내 품삯을 주고, …’
그러자 그들은
내 품삯으로
은 삼십을 달아 주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미움받으시고, 공격받으시고,
배척받으시고, 팔리셨음을
분명하게 가리킨다.
12절과 13절을 이해하려면,
또한 누가
은을 주었고
누가
그 은을
여호와의 집 안으로 던졌는지를
알고자 한다면,
우리는
사복음서를 연구해야 한다.
여호와의 동료이신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목자로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오셨다.
그러나 그분은
그들에게 공격받으시고
죽으셨다.
스가랴서 13장 7절은
“칼아,
깨어나서
내 목자를 치고
/ 내 동료인
그 사람을 쳐라.
/ 만군의 여호와의 선포이다.
/ 목자를 쳐서
/ 양들을 흩어지게 하여라.”
라고 말한다.
그리스도는
이스라엘 자손의 친척이셨고
또한 여호와의 동료이셨다.
그분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그분의 친척들은
그분께 상처를 입혔고,
하나님은
칼을 부르셔서
그분을 치게 하셨다.
그분의 친척들이
그분을 쳤고
하나님 또한
자신의 동료이신
그분을 치셨다.
그리스도는 바로
그러한 상황 가운데 계셨다.
마태복음 26장 31절에서
주 예수님은
목자를 치는 것에 관한
스가랴서 13장 7절의
말씀을 인용하셨다.
목자를 친다는 것은
목자를 공격한다는 뜻이다.
상을 세우신 직후에
주 예수님은
자신이 공격당하실 것과
양들인
제자들이 흩어질 것을
말씀하셨다.
스가랴서 13장 6절은 계속하여
이렇게 말한다.
“누가
그에게
‘그대의 두 팔 사이에 있는
상처들은 어떻게 된 것이오?’
라고 하면,
그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집에서 입은 상처들이오.’
라고 할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은
그분을 죽였지만,
그분은
그들의 행위를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상처를 입힌 것으로
여기셨다.
이것은
매우 달콤한 말이다.
하나님은
다윗 집과
이스라엘 주민들에게
죄와 불결을 씻는
열린 샘을
(그리스도의 찔린 옆구리를)
마련해 주셨다.
“그날에
다윗 집과
예루살렘 주민들을 위하여
죄와 불결을 씻는
샘이 열릴 것이다.”
(슥 13:1)
그리스도께서 찔리심으로
그러한 샘이 열렸다.
이것은
구속의 문제이다.
스가랴서는
인간 역사 안에서의
하나님의 움직임의
초점과 주된 내용이
예수님의 증거,
곧 하나님의 건축물을 위한
그리스도의 두 번 오심이라는 것을
계시한다.
스가랴서 9장부터 11장까지는
그리스도께서 낮아지셔서
첫 번째 오시는 것을 말하는데,
이러한 첫 번째 오심은
겸손하고도 친밀한 것이었다.
그리스도는
왕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구원을 가지고
의로운 방식으로 오셨지만,
위풍당당한 말이 아닌
나귀 심지어 어린 나귀를 타신
낮아지신 왕,
겸비하신 왕으로 오셨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을 때
성취되었다.
여호와의 동료이신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목자로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오셨다.
그리스도는
사람으로서
이스라엘 자손의 친척이셨고
또한 여호와의 동료이셨다.
목자이신 그분은 맞으셨고,
양들인 그분의 제자들은 흩어졌다.
이스라엘 집에서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상처를 입으셨지만,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집에서 입은 상처들이오.”
라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자손은
그리스도를 죽였지만,
이 달콤한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리스도는
그들의 행위를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상처를 입힌 것으로
여기셨다.
그리스도의 옆구리는 찔렸고,
그분은
죄와 불결을 씻는
열린 샘이 되셨다.
이 시대의 끝에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올리브산 위에 서실 것이고,
예루살렘을 포위하는
민족들과 싸우실 것이다.
여호와이신 그리스도는
천년왕국에서
온 땅의 왕이 되실 것이다.
스가랴서에 계시되신 그리스도,
곧 열린 샘이 있는
찔리신 분은
하나님의 경륜의
중심과 전부이시다.
이러한 분으로서 그분은
인간 역사에
밀접하게 연관되시는데,
특히 페르시아 제국과
헬라 제국과
로마 제국에
밀접하게 연관되신다.
특히 로마 제국은
그리스도께
도움이 되었다.
그리스도는
로마 제국의 통치 아래서
태어나셨다.
그분은
로마 제국의 통치 아래서
성장하시고,
사역을 수행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셨다.
하나님의 영원한 구속을
성취하시기 위한
그리스도의 죽음은
로마 제국의 통치 아래서
완성되었다.
교회의 형성과
복음 전파 역시
로마 제국의 통치 아래서
일어났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법이나 문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로마 제국은 분명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그분의 경륜의
중심과 전부로 만드시려는
의도를 이루시는 데
사용되었다.
이스라엘은
대환난 기간 동안
적그리스도와
그의 군대에 의해
짓밟힐 것이다.
게다가 대환난의 주요 재난들이
그 땅에서 발생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적그리스도는
많은 유대인을 죽일 것이고
올리브산에 있는
유대인들을 포위할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위험에 처한
바로 그 순간,
그리스도께서
능력과 큰 영광을 가지고
하늘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이다.
그때 온 이스라엘은
그들이 찌른
그분을 바라볼 것이고
슬피 울며
회개할 것이다.
그리스도는
올리브산에 오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실 것이다.
그리스도는
민족들을 심판하신 후에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셔서,
사방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좋은 땅
곧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으로
모으실 것이다.
그때는
이스라엘 나라가
복원될 때이며,
또한 만물의 복원을
가져올 것이다.
그때부터
왕국 시대가 시작된다.
스가랴서 12장부터 14장까지에서
우리는
두 번째 오실 때의
그리스도를 본다.
그분은
다시 오실 때
이스라엘뿐 아니라
땅의 모든 백성들의
왕이실 것이다.
그분은
이 땅 전체를
왕으로서 다스리실 것이고,
땅의 모든 백성들은
왕이신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러
해마다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장막절을 지킬 것이다.
백성이
예루살렘에 거주하고
그곳에 더 이상
저주가 없을 것인데,
왜냐하면 예루살렘이
안전하게 거주할 것이기 때문이다.
저주 대신
축복과 안전이 있을 것이다.
예루살렘을 치러 온
민족 가운데 살아남은 이들은 모두
왕이신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러
해마다 올라와서
장막절을 지킬 것이다.
누구든지
왕이신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러
예루살렘으로 올라오지 않으면,
그들 위에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고,
여호와께서
그들을 치는
재앙을 내리실 것이다.
이것이
그들의 죄가 될 것이다.
은혜 시대에
하나님은
의로운 사람과
불의한 사람에게
동일하게 비를 내리신다.
그러나 장차 올
의의 시대에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왕께 경배하지 않고
장막절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의로운 일이다.
스가랴서 12장부터 14장까지는
그리스도의
승리에 찬
두 번째 오심에 대해 말한다.
이 두 번째 오심에는
능력과 권위가
함께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오실 때,
그분의 성도들
곧 이기는 이들과
함께 오실 것이다.
그분의 발은
예루살렘 앞
동쪽에 있는
올리브산 위에
설 것이다.
그리스도는
그분께서 선택하신 백성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해
그들을 에워싼
민족들에 맞서 싸우셔서
이스라엘 자손을
멸망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그때
이스라엘 온 집은
그들이 찌른
그분을 바라볼 것이고
그분으로 인해
통곡할 것이다.
이렇게 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받을 것이다.
이후에 그리스도는
왕이 되시어
민족들을 다스리시고
통치하실 것이다.
모든 사람이 매년
예루살렘에 올라가
그분께 경배할 것이고,
모든 사람이
그분께로
거룩하게 분별될 것이다.
“여호와께서
온 땅의 왕이 되시리니,
그날에는
여호와께서
한 분 하나님이실 것이며
그분의 이름만이
하나의 이름일 것이다.”
― 슥 14:9.
고린도후서 13장 14절의
이 삼중 축복은
삼일 하나님과 연관된다.
왜냐하면 이 절에서
우리는
아들 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을
얻기 때문이다.
스가랴서 1장 8절 상반절의
이 사람은
인성을 지니신
그리스도이다.
이 절의 이 사람은
여호와의 천사이다.
여호와의 천사는
삼일 하나님이신
여호와 자신이시다.
여호와의 천사는 또한
삼일 하나님의 체현이시자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신
그리스도이시다.
여호와의 천사는 또한
이집트에서
약속된 땅으로 가던 길에서,
이스라엘을
호위하시고 보호하신
하나님의 천사이시다.
이 이상에 나오는
사람은
붉은색 말을 타고 있다.
여기의 붉은색 말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를 흘리심으로 이루신
구속 안에서
신속하게 움직이시는 것을
상징한다.
스가랴서 1장 8절 중반절에 언급된
이 화석류나무들은
포로 된 상태에서
굴욕을 당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한다.
포로 된 이스라엘은
골짜기의 가장 낮은 곳에 있었고,
그리스도는
그들을 위해
무엇이든
신속하게 행하실
준비가 되어 있으셨다.
붉은색 말 위에 계신 분이신
그리스도는
포로 된 이스라엘 백성을 돌보는
보호자이셨다.
“그분 뒤에는
붉은색 말과
적갈색 말과
흰색 말이 있었다.”
(슥 1:8하)
이것은
그리스도의 구속(붉은색 말)이
회개한 이스라엘(적갈색 말)을 인도하여
하나님께
신속하게 의롭게 되고
받아들여지게 함(흰색 말)을
의미한다.
‘붉은색’이라는 표현은
구속을 가리키며,
‘적갈색’은
혼합을 가리킨다.
결국 흰색 말로 상징되듯이,
구속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와서
처리받을 때,
그들은
의롭게 될 것이다.
스가랴서 1장
18절부터 21절까지에서
우리는
네 뿔과
네 장인에 대한
이상을 본다.
“내가
눈을 들어 보니,
네 뿔이 있었다.
나는
나와 말하던
천사에게 말하였다.
‘이것들은 무엇입니까?’
그가
나에게 말하였다.
‘이것들은
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흩어 버린
뿔들입니다.’ ”
(슥 1:18-19)
이 네 뿔은
왕이 다스리는
네 제국
곧 바빌론과 메도-페르시아와
헬라와 로마 제국으로서,
이 네 제국은
다니엘서 2장에서는
거대한 인간 형상으로,
다니엘서 7장
3절부터 8절까지에서는
하나님께 선택받은
백성을 해치고 멸망시킨
네 짐승으로
상징된다.
스가랴서 1장
20절과 21절에 언급된,
손을 대지 않고 떠 내어진
돌을 포함하는
네 장인은
이스라엘 나라를 멸망시킨
이 제국들과
그들의 왕을
멸망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쓰신
솜씨들이다.
그리스도는
장인들 중 하나로서,
손을 대지 않고 떠 내어진
돌로 오셔서
그 거대한 형상을
산산이 부서뜨리실 것이다.
앞의 세 제국인
바빌론과 메도-페르시아와 헬라는 각각을,
뒤이은 제국이
솜씨 좋게 점령하였다.
어느 날 밤에
메디아의 다리오가 와서
벨사살을 패배시켰을 때,
바빌론은 패배당했다.
다리오는
얼마나 솜씨가 좋았는지!
그다음으로
다니엘서 8장이 계시하듯이,
마케도니아
(알렉산드로스 대왕 통치 아래 있던
헬라 제국)의
숫염소가 와서
페르시아의 숫양을
짓밟았다.
역사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매우 솜씨가 좋았음을
말해 준다.
그는
네 뿔을 처리한 장인들 중
하나였다.
나중에
로마 제국이 등장하여
헬라 제국을 처리하였다.
이 네 제국이
인간 역사의
중심 요인들이다.
마침내 복원된 로마 제국은
최고의 장인이신
그리스도에 의해
산산이 부서질 것이다.
네 제국은 모두
이스라엘을
황폐하게 만들었고
멸망시켰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네 장인에 의해
멸망했으며,
복원된 로마 제국의 경우에는
장차 멸망할 것이다.
이것은
위로하고 격려하는
약속의 말씀이다.
모든 것을 포함하시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위한
하나님의 건축물을 얻으시기 위해
사람의 역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움직이심의
역사이시다.
그리스도는
인류 역사 안에서
능숙하게 일하심으로
세계정세를
주권적으로 통제하시면서,
신성한 역사 안에서
그분 자신을
우리 안으로
능숙하게 일해 넣으심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무한한 지혜와
신성한 구상을 표현하는
하나님의 일의 걸작품,
곧 하나님의 시(詩),
곧 하나님의 새로운 발명품으로
만들고 계신다.
그리스도는
그분의 인성 안에서
여호와의 천사로서,
곧 삼일 하나님이신
여호와 자신으로서,
골짜기의 가장 낮은 곳에서
굴욕을 당하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서 계시면서
그들을 돌보시고,
그들을 위해
중보기도 하시며,
그들을
바빌론에 포로 되어 있는 데서
신속하게 이끌어 내신다.
그리스도는
네 뿔을 부러뜨리기 위해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마지막 장인(匠人)이시다.
네 뿔은
왕이 다스리는
네 제국,
곧 바빌론과 메도-페르시아와
헬라와 로마 제국이다.
이 네 제국은 또한
다니엘서 2장
31절부터 33절까지에서는
네 부분을 지닌
거대한 인간 형상으로,
요엘서 1장 4절에서는
네 단계의 메뚜기들로,
다니엘서 7장
3절부터 8절까지에서는
하나님께 선택받은 백성을
해치고 멸망시킨
네 짐승으로 상징된다.
네 장인은
이 제국들과
그들의 왕을
멸망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쓰신
솜씨들이다.
앞의 세 제국
(바빌론, 메도-페르시아, 헬라) 각각을,
뒤이은 제국이
솜씨 좋게 점령하였다.
네 번째 장인은
손을 대지 않고 떠 내어진
돌이신 그리스도일 것이며,
이 그리스도는
다시 오실 때
복원된 로마 제국을
산산이 부수심으로,
인간 정부의 총체인
거대한 인간 형상을
산산이 부수실 것이다.
이 돌은
개인적인 그리스도만이 아니라
단체적인 그리스도,
곧 그분의 ‘용사들’과 함께하시는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단체적인 그리스도,
곧 이기는 신부와 함께하시는 그리스도는
돌로서 오셔서
인간 정부의 총체를
산산이 부수심으로
하나님의 왕국을
이끌어 오실 것이다.
다니엘서 2장은
그리스도께서
손을 대지 않고 떠 내어진
돌로서 오시는 것에 대해
말하지만,
요한계시록 19장은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군대인
그분의 신부를 얻으신 분으로서
오시는 것에 대해
말한다.
요한계시록 19장에 따르면,
교회는
그리스도 앞에 세워진
신부인 동시에
하나님의 원수를 대항해
그리스도와 함께 싸우는
전투원이다.
다시 오실 때,
주 예수님은 먼저
신부를 만나실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신부를 맞이하신 후에,
그리스도와 이기는 이들은
원수와 맞서 싸우기
시작할 것이다.
주님은
흰색 말을 타실 것이며,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은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흰색 말을 타고서
그분을 따를 것이다.
요한계시록 17장 14절도
이것을 언급한다.
“그들이
어린양과 싸울 것입니다.
그런데 어린양께서
그들을 이기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모든 주인의 주님이시고
모든 왕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또 어린양과 함께 있는 사람들,
곧 부름받고 선택받은
신실한 사람들도
그들을 이길 것입니다.’ ”
요한계시록 19장
7절과 8절에서는
신부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은 것을
볼 수 있다.
그런 다음 14절에서는
전쟁에서
주님을 따르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교회인 우리는
단지 몸, 하나님의 거처,
하나님의 왕국, 하나님의 가족,
새사람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신부와 전투원이기도 하다.
신부로서 우리는
아름다워야 하고,
점도 주름도 없어야 하며,
세마포 옷을 입어야 한다.
전투원으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원수와 맞서 싸우도록
반드시 무장해야 한다.
자아가
가장 큰 원수이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죽이는 능력을
체험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말씀을 기도로 읽을 때,
한편으로는
자양분을 얻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요소들이 죽음당한다.
어쩌면 우리는
의심과 미움과
시기와 교만과
이기심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말씀을 기도로 읽는 것을 통해
이런 것들을 죽일 수 있음을
알고 있는가?
우리가
죽이는 능력을 가진
말씀을 취할수록,
우리의 교만과
우리 속에 있는
부정적인 모든 요소들은
더욱더 죽음당하게 된다.
말씀을
기도로 읽을 때
내부의 대적이 죽는다.
한 차례
말씀을 기도로 읽은 후에
우리는
우리를 공격하고 있던
대적이 사라졌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매우 실지적인 의미에서,
우리가
안으로 취한
말씀에 의해
대적이 죽음당한다.
에베소서 5장에서
말씀은
신부를 아름답게 만드는
영양 공급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에베소서 6장에서
말씀은
죽이기 위한 것으로서
단체적인 전투원인 교회가
영적 전쟁에
참여할 수 있게 한다.
그리스도는
그분의 결혼 날에,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의 원수와 대항해
전투를 치러 온 이들과
결혼하실 것이다.
이것은
요한계시록 19장에서
그리스도께서
이기는 이들,
곧 이미 악한 자를 이긴 이들과
결혼하실 것임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께서
적그리스도와 그의 군대에 맞서
싸우러 오실 때,
사람의 아들로서
그분은
그분과 어울리고
그분을 온전하게 할
배필이 필요하실 것이다.
이 배필이
그분의 신부일 것이다.
인간 정부를
산산이 부수러 오실 때,
그리스도는
그분의 신부인
이기는 이들과 함께하는
남편이실 것이다.
이것은
그분께서
이 땅에 내려오셔서
열 발가락을 처리하시고
그런 후
형상 전체를 처리하시기 전에
결혼식을 치르실 것임을
의미한다.
결혼식 후에
주님은
갓 결혼한
그분의 신부와 함께 오셔서,
적그리스도
곧 자기 군대를 이끌고
하나님께 직접 대항해 싸우려는 자를
멸하실 것이다.
그리스도는
그분의 신부와 결혼하신 후,
손을 대지 않고 떠 내어진
돌로 오셔서
거대한 인간 형상을
발가락부터 머리까지
산산이 부수셔서,
하나님을 직접 대항해 싸우는
인간 정부를 멸망시키실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인간 정부를
산산이 부수심으로
온 땅이
깨끗이 정리될 것이다.
옛 창조물에 속한
인간 정부라는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그때 그리스도는
돌에서
온 땅을 채우는
큰 산으로
증가하실 것이다.
에베소서 5장과 6장은
교회가
신부이자 전투원이라는 것을
계시한다.
요한계시록 19장에서도
우리는
교회의 이 두 방면을 본다.
인간 역사 안에서의
하나님의 움직임인
신성한 역사 안에서
신부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아름답게 하는 말씀이 필요하며,
인간 역사 안에서의
하나님의 움직임인
신성한 역사 안에서
전투원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죽이는 말씀이 필요하다.
그리스도는
땅에 내려오셔서
적그리스도와
인간 정부의 총체를
처리하시기 전에,
결혼식을 하셔서
그분의 이기는 이들을
그분 자신께 연결시켜
한 실체가 되게 하실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는
그 영
곧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으로서,
신부
곧 과정을 거치고 변화된
세 부분으로 된 사람인
교회와 결혼하실 것이다.
결혼식 후에
주님은
갓 결혼한
그분의 신부와 함께 오셔서,
적그리스도
곧 자기 군대를 이끌고
하나님께 직접 대항해 싸우려는 자를
멸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신
주 예수님은
그분의 입의 숨으로
불법의 사람인
적그리스도를 죽이실 것이고,
직접 오셔서 나타나심으로
그를 제거하실 것이다.
그리스도의 입에서는
예리한 칼이 나오는데,
그것은
민족들을 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 정부를
산산이 부수신 후에
온 우주를
깨끗이 청소하실 것이다.
그런 다음에
단체적인 그리스도,
곧 이기는 이들과 함께하시는 그리스도께서
큰 산이 되어
온 땅을 채우시고
온 땅을
하나님의 왕국이 되게 하실 것이다.
하늘들은
땅을 위해 있고,
땅은
사람을 위해 있으며,
사람은
하나님을 접촉하고
하나님을 받아들이며
하나님을 살고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며
하나님과 하나 될 수 있도록
하나님에 의해
영을 가진 존재로
창조되었다.
인간 역사와 정치에
밀접하게 연관되시는
그리스도를 계시하는 구약에,
스가랴서 12장 1절과 같은
말씀이 있다는 것은
놀랍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경륜 안에서 계획하신 것이
그리스도를
이 땅에서
그분의 움직임의
중심과 전부로 삼으시는 것이었음을
가리킨다.
하나님 자신이신 그리스도께서
수천 년 동안
해를 거듭하여
세계정세를 주관하심으로
인류 전체를 다스리셨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들
곧 하나님을
창조주와 구속자로 사랑할 사람들을 위하여,
하나님은
그들에게
일종의 받아들이는 기관을 창조하실
필요가 있었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그리스도의 온 존재를 받아들일
역량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 놀라우시지만,
우리에게 영이 없다면
어떻게 우리가
그분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우리가
우리 사람의 영을 소홀히 한다면,
하나님을 접촉할
길이 없을 것이다.
스가랴서 10장의 예언은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애정 어린 방식으로
방문하시는 것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애정 어린 방문은 사실상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에게 오시는 것이다.
“ ‘봄비 때에
/ 여호와 곧 번개를 만드는 여호와에게
/ 비를 구하여라.
/ 그가 그들에게 소나기를 내려
/ 각 사람에게 밭의 푸성귀를 주리라.”
(슥 10:1)
더 많은 비를 구한다는 것은
더 많은 복을 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주님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그분께서
그들을 은혜롭게 대하실 때
복을 더 많이 구하라고
격려하신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은총을 많이 베푸시는 동안에,
우리는
그분께
훨씬 더 많은 은총을 보내 주시기를
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소나기를 내리고 계시므로,
우리는
그분께
더 많은 비를 구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주님의 넘치는 복을 위해
기도해야 함을
가리킨다.
“이는
만군의 여호와가
자기 양 떼인
유다 집을 방문하였고
/ 그들을
전쟁터의 위풍당당한 말처럼
만들 것이기 때문이라.”
(슥 10:3하)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에게 오실 때
이렇게 은혜로운 방식으로
그들을 방문하셨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방문하신 것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오신 것이었다.
그분은
사람 예수님 안에서
오셨다.
이 부분의 말씀은
하나님의 양 떼의 목자에 대해
말한다.
신약에서
주 예수님은
자신을
목자에 비유하셨다.
그분은
양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자이셨다.
그분은
그분의 양 떼를 방문하심으로써
그들을 위풍당당한 말처럼 만드신다.
우리는
양인가
아니면 위풍당당한 말인가?
우리는 모두
전진하여
더 이상 양이 아닌
위풍당당한 말이 되어야 한다.
목자가
만지신 후에
약한 양들은 모두
위풍당당한 말이 될 것이다.
스가랴서 10장
8절부터 12절까지는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애정 어린 방식으로 방문하신 것의
더 전진된 방면들을
계시한다.
8절에 언급된
주님의 휘파람은
날카롭지 않고
온화하고 부드러우며,
어느 정도는 새의 노랫소리와 같다.
우리가
아침 부흥의 시간을 가지는 동안
주님은 자주
우리에게 휘파람을 부시어,
우리를
그분께로
부르고 모으신다.
“내가
여호와 안에서
그들을 강하게 하리니
/ 그들이
그의 이름 안에서 행하리라.
/ 여호와의 선포이다.’ ”
(슥 10:12)
여기에서
‘내가’는
여호와이며,
여호와께서
그분의 백성을
그분 자신 안에서
강하게 하실 것임을
가리킨다.
그러면 그들은
그분의 이름 안에서
행할 것이다.
어떤 사람의 이름 안에 있다는 것은
그 이름의 실재인
그 사람의 인격과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 안에 있는 것은
우리의 매일의 행함에서
하나님의 이름 안에서
살고 행하며 처신함으로써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이다.
종종 우리가
이러한 애정 어린 방문을
누린 후에
우리의 상황이 바뀐다.
그분은
방문하셔서
우리에게
더 많은 복을 구하라고
격려하신다.
우리는 그렇게
담대하거나 견고하지 않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를 방문하셔서
애정 어린 방식으로 만지시면,
우리는
강하게 되어
싸우는
위풍당당한 말들이 된다.
결국 주님은
우리를
그분 자신 안에서
강하게 하셔서
그분의 이름 안에서
행하게 하신다.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을
수행하기 위해
인간 역사 안에서
하나님의 움직임을 완수하는 길은
우리의 영을 사용하여
일곱 배로 강화되신 영이신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누리는 것이다.
스가랴서 1장 3절은
“너희는
나에게로 돌아오라.
만군의 여호와의 선포이다.
그러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겠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다.”
라고 말한다.
우리는
우리의 영을 사용하여
온 마음으로
주님께 돌아가야 한다.
이것은
하나의 원칙을 세우는데,
바로 우리가
반드시 먼저
주님께 돌아가야 하고
그럴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돌아오신다는 것이다.
스가랴서 12장 1절은
“이스라엘에 관한
여호와의 부담의 말씀이다.
여호와,
곧 하늘들을 펼치시고
땅의 기초를 놓으시며
사람 안에 영을 지으시는 분께서
이렇게 선포하신다.”
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창조를 통해
결정적이고도
똑같이(동일하게) 중요한
세 가지 항목들,
곧 그 하늘들과
그 땅과
또 사람의 영을
창조하셨다.
하늘들은
땅을 위해 있고,
땅은
사람을 위해 있으며,
사람은
하나님을 접촉하고
하나님을 받아들이며
하나님께 경배하고
하나님을 살며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고
하나님과
하나 될 수 있도록
하나님에 의해
영을 가진 존재로
창조되었다.
사람의 존재에서
다스리는 중심과
가장 두드러진 부분은
사람의 영이어야 한다.
자신의 영의
다스림과 통제를 받는 사람이
영적인 사람이다.
스가랴서는
우리에게
우리 사람의 영에
온전히 주의를 집중하라고
명령한다.
그럴 때 우리는
이 책에 계시되신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그분에 관하여
이 책에 계시된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일곱 배로 강화되신 영이신
그리스도를
다음의 방면들에서
누려야 한다.
그리스도는
손에
측량줄을 가지고 계신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하나님의 백성을
시험하고 심판하며
조사하고 소유하시기 위하여
그들을 측량하고 계신다.
“내가
예루살렘을 둘러싼
불 성벽이 되고
성안의
영광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선포이다.”
― 슥 2:5.
예루살렘 성벽과
그 안의 영광이
여호와 그분 자신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이신 여호와께서
예루살렘 둘레에서
예루살렘의 보호가 되시고,
예루살렘 중심에서
예루살렘의 영광이 되심을
가리킨다.
이것은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중심과 전부이심을
보여 준다.
오늘날 그리스도는
교회의 중심에서 영광이시고,
또한 교회를 보호하시기 위해
교회 둘레에서 타오르는 불이시다.
새 예루살렘에서
그리스도 안에 계신 삼일 하나님은
새 예루살렘의 중심에서
영광이 되실 것이고,
이 영광은
투명한 성벽을 투과해 빛남으로써
새 예루살렘을 보호하는
불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는
만군의 여호와에 의해
보내어지신 분이시자
보내시는 분이신
만군의 여호와로서,
그분께 매우 소중한
그분의 백성을 돌보신다.
누구든지
그분의 백성을 건드리는 자는
그분의 눈동자를 건드리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한 목자로서 오셨고
두 지팡이들을 가지고
양 떼를 목양하시는데,
하나는
‘은총(은혜)’이라 불리고,
다른 하나는
‘결합(묶음)’이라 불린다.
은혜는
우리가
하나님과 섞이기 위해 있고,
묶음은
우리가
하나임 안으로
묶이기 위해 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은총을(호의를, 친절을)
많이 베푸시는 동안에,
우리는
그분께
훨씬 더 많은 은총,
더 많은 은혜,
더 많은 ‘비’를
보내 주시기를
구해야 한다.
목자이신 주님께서
방문하신 후에,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있는
약한 양들은 모두
위풍당당한 말이 된다.
우리가
아침 부흥의 시간을
가지는 동안
주님은 자주
우리에게
휘파람을 부셔서,
우리를
그분께로
부르고 모으신다.
주님의 휘파람은
날카롭지 않고
온화하고 부드러우며,
어느 정도는
한 새의 지저귐과 같다.
주님은
그분 자신 안에서
우리를 강하게 하셔서
우리가
그분의 이름 안에서
행하게 하신다.
인간 역사 안의 신성한 역사인
하나님의 움직임이 있을 때
새 창조물이 있다.
새 창조물은 바로
새 마음, 새 영,
새 생명, 새 본성,
새 역사, 새 완결이 있는
새사람이다.
우리가
신성한 역사 안에 있으면서
우리의 유기적인 구원을 위해
비밀하고 신성한 것들을
체험하고 누리는 것에 대해
주님을 찬양한다.
이러한 체험과 누림의 결과로
우리는
그분을 다시 모셔 올
그분의 이기는 신부가 되도록
자신을 준비할 것이다
― 찬송가 11장.
1일
역대기상과 역대기하의 중심 사상은 첫째, 아담부터 사무엘까지의 계보를 포함하는 인간 역사 안에서 진행된 하나님의 움직임에 관한 완전한 연대기를 우리에게 제시한다. 이 연대기는 다음 사항을 보여 준다. 인간 역사 안에서의 하나님의 움직임은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셔서 사람을 하나님이 되게 하심으로써 인성 안에서 그분의 영원한 경륜을 수행하실 길을 준비하시기 위한 것이며, 이러한 그분의 움직임은 하나님의 선민의 역사와 관련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 사무엘기와 열왕기는 하나님께 선택받은 백성을 중점적으로 보지만, 역대기상과 역대기하는 인류 전체를 중점적으로 본다. 따라서 사무엘부터가 아니라 아담부터 시작하여 그리스도께 이르는 계보가 필요한데, 이러한 계보는 마태복음 1장에 제시된 그리스도의 계보와는 일치하지 않지만, 누가복음 3장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계보와는 일치한다. 마태복음 1장의 조망은 이스라엘에 국한된 좁은 조망이고, 누가복음 3장의 조망은 인류 전체를 포함하는 넓은 조망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체현으로서 장차 오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선택받은 한 족속을 위한 분만이 아니시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류 전체를 위한 분이심을 보여 주는 분명한 증거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움직임이 인간 역사 안에 있음을 보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간 역사 안에서 인간 역사를 통해 움직이셨고 여전히 움직이고 계심을 믿어야 한다.
나는 1918년 이래로 세계정세를 관찰해 온 것과 성경에 있는 예언들을 연구한 것에 근거해서 하나님께서 확실히 인간 역사 안에서 움직이신다는 것을 증언할 수 있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분쟁을 살펴보자. 좋은 땅의 지주(地主), 좋은 땅의 합법적인 주인은 누구인가? 이스라엘인가, 아랍 국가들인가? 하나님께서 팔레스타인의 지주이시며, 오직 그분만이 이 땅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다. 나는 정치가들이 좋은 땅의 소유권을 놓고 협상하고 있는 동안 주님께서 하늘들에서 웃고 계신다고 믿는다(시 2:4). 주 예수님께서 곧 다시 오셔서 이 문제를 정리하실 것이다. 그분은 오셔서 세상 정치가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이것은 너희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이다.”
역대기상과 역대기하에 있는 연대기는 인간 역사 안에서 진행된 하나님의 움직임이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셔서 사람을 하나님이 되게 하심으로써 인성 안에서 그분의 영원한 경륜을 수행하실 길을 준비하기 위한 것임을 보여 준다. 이것이 성취되지 않는다면, 오늘날 세계정세의 문제는 해결될 길이 없다. 이 땅에 있는 모든 문제는 한 가지를 기다리고 있다. 즉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사람들이 되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 이 문제는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의 역사와 관련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의 역사와 관계있다. 에베소서 1장 4절은 우리 모두가 창세전에 하나님께 선택받았다고 말한다. 주님을 찬양한다. 주님은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셨다.
이 세상에는 사람이 해결할 수 없는 여러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오직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야 해결될 수 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첫 번째로 해결되는 것은 정의일 것이다. 이사야서 11장 4절에서 주님은 장래에 세상을 정의와 의로 채우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두 번째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세상의 모든 전쟁은 끝날 것이다. 이사야서 2장 4절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사람들이 모든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모든 창을 쳐서 낫을 만들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요한계시록 11장 15절은 어느 날 땅의 모든 민족이 우리 주님과 그분의 그리스도의 왕국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때는 어떤 정부도 백성을 억압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땅에는 의와 정의가 가득할 것이다. 주님의 두 번째 오심이 없다면, 구원은 완성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