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ners of Christ
Fighting for God’s Interest
하나님의 이익을 위하여 싸우는
그리스도의 동반자들
고린도전서는
구약에 나오는
이스라엘 자손의 역사를
신약의 믿는 이들의
예표로 삼는다
― 고전 10:5-11, 5:7-8, 10:1-2.
바울은
믿는 이들에게
하나님께
악한 일을 범하였던
이스라엘 자손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 것을
경고하였다
― 고전 10:6-1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부르신 목표는
그들이
약속된 땅에 들어가
그 풍성을 누림으로
이 땅에서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고
하나님의 표현이 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 출 3:7-8.
그러나 비록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유월절을 통해
구속받고,
이집트인들의 폭정에서
구출되고,
하나님의 산에 이끌려
하나님의 거처인
성막에 대한
계시를 받았지만,
거의 모든 사람이
광야에서 쓰러져 죽음으로써
이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는데,
이는
그들의 악행과 불신 때문이었다
― 히 3:7-19, 고전 10:5, 7-10.
오직 갈렙과 여호수아만이
이 목표에 도달하여
좋은 땅 안으로
들어갔다
― 민 14:27-30.
이것은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
구속받고
사탄의 속박에서
구출되고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계시 안으로
이끌렸을지라도,
여전히 하나님의 부르심의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현시대에서
하나님의 표현이 되고
왕국 시대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가장 충만한 누림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마 25:21, 23),
우리의 좋은 땅이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
이러한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빌 3:12-14)
하나님의 왕국을 위한
그분의 풍성을 누리는 데
실패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서
실패한 것을
반복하는 것과 관련해서
신약의 모든 믿는 이들에게
엄중한 경고가
되어야 한다
― 고전 10:6, 11.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가 없다면
우리도
이스라엘 자손과 똑같을 것이다
― 롬 9:15-16.
우리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우리의 역사로서 읽으면서,
민수기 13장과 14장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집트에서 나온
모든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오직 두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좋은 땅에 들어갔다
― 신 1:34-38, 민 13:17-14:38.
모두가 구속받았을지라도,
오직 두 명의 이기는 이들인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좋은 땅을
상으로 받았다
― 수 14:6-14, 19:49-51.
민수기 13장과 14장의
기록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은
불신의 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 민 13:31-33, 14:1-3, 9, 11.
불신보다
하나님을
더 불쾌하게 하는 것은 없다
― 히 3:8-12.
불신은
살아 계시고 신실하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기 때문에
악하다.
우리가
하나님과
그분의 일과
그분의 길들(시 103:7)을
믿지 않는다면,
그분을 모욕하는 것이다.
우리의 불신보다
하나님을
더 모욕하는 것은 없으며,
그분에 대한
우리의 믿음보다
그분을 더 존중해 드리는 것은 없다
― 요 14:1, 롬 10:9-10.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도,
그분의 말씀도
믿지 않고
심지어 하나님께
불평했기 때문에
(민 14:1-4),
하나님은
믿지 않는 세대 중
한 사람도
좋은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진노하며 맹세하셨다.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좋은 땅에
들어가는 것이
허락되었다
(신 1:34-38).
열 명의 정탐꾼이
악하게 보고한 것(민 13:31-33)과
백성이
불평한 것(14:1-4)에서
볼 수 있듯이,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을 관심하지 않고
오직 자신들만 관심하였다.
모든 일과 모든 면에서
그들은
자신들만 위했을 뿐
하나님의 권익을
위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으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혐오하실 정도로
하나님을 언짢게 했다.
그들의 상태는
하나님의 심판과 징벌을
초래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의 믿음으로 취했다
― 민 13:30, 14:7-9.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고,
주님께 순종했으며,
목표를 향해
힘써 나아갔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을 존중했으며,
이에 대한 반응으로
하나님도
그들을 존중하셨다
― 민 14:38.
하나님 한 분만이
믿음의 근원이시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자 한다면,
반드시 우리의 유익이 아닌
하나님의 권익을 관심하기를
배워야 한다.
성경에 나오는
여호수아와 갈렙의 예는
믿는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 준다
― 민 13:30, 14:7-9.
민수기 13장과 14장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은
이기는 이들이 아니었다.
이기는 이는 바로
그들이 신뢰하는 분이셨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하셨고,
그들은 단순히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누렸다
― 민 14:8.
우리는
여호수아와 갈렙의
본을 따라야 한다.
그들은
믿음으로 가득한
마음을 가졌다
― 민 13:30.
우리는
오늘날의 갈렙들,
곧 참여호수아이신 그리스도의 동반자들이
되어야 한다
― 민 14:24, 수 14:6-14, 히 2:10, 3:14.
구원의 대장이신 그리스도는
참여호수아로서
우리를 인도하여
땅을 차지하게 하시며,
오늘날의 갈렙들인
우리는
그분의 동반자들로서
그분과 함께
원수들에 맞서 싸우며,
땅을 차지하고 소유하는 일에
그분과 함께 참여한다
― 히 2:10, 3:14.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위임을 수행하도록
하나님께 기름 부음을 받으셨고,
우리는
그분의 동반자들로서
하나님의 위임을 수행하는 일에
그분과 함께 참여한다.
히브리서 3장
7절부터 14절까지는
좋은 땅에 들어가는 것을
다룬다.
예표에 있어서
좋은 땅에 들어가는
이 일은
여호수아의 인도 직분 아래서
이루어졌고
(수 1:1-6),
갈렙은
좋은 땅을 소유하는 일에서
그의 동반자였다
(민 32:12, 수 14:6-8).
오늘날
그리스도는
참여호수아이시며,
우리는
그분의 갈렙들
곧 그분의 동반자들이다
― 히 2:10, 3:14.
그리스도의 동반자들인
우리는
그분과 함께 일하고
그분과 협력하면서,
하나님 자신의
단체적인 표현을
얻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갈망을
이루어 드리고 있다.
갈렙의 영은
다른 모든 사람들의 영과 달랐으며,
갈렙은
이렇게
다른 영을 가짐으로써
주님을 온전히 따랐다
― 민 14:24.
갈렙이
온전히 하나님을 따랐던 것처럼,
우리도 반드시
단호하고 확고한 의지로
주님 편에 서야 한다
― 민 14:6-9, 24, 신 1:36, 수 14:14.
갈렙이
주님을
온전히 따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이
좋은 땅 안에 들어가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 민 14:24, 신 1:36, 수 14:8.
하나님은
그들이
좋은 땅에 들어가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
싸우고
그들을 위해
모든 것을 성취하고자 하셨다
― 민 14:7-8.
갈렙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싸우시고
원수들을 멸하실 것을
알았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네피림이나 가나안 땅의 주민들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도리어
“그들은 우리의 밥입니다.”
라고 말하였다
― 민 14:9.
갈렙은
네피림(아낙 자손)이
패배당하고
그들의 밥이 될 것이라고
믿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땅 안으로 인도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 민 13:30, 33.
갈렙의 체험은
우리가
더 많은 네피림을 먹을수록
더욱더 강해지리라는 것을
보여 준다.
그는
팔십오 세에도
활력이 가득했는데,
이는 그가
오랜 세월에 걸쳐
매우 많은 네피림을 소화함으로써
나이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체질을 발전시켜 왔기 때문이다
― 수 14:10-14.
우리는
원수와 전투할 때
원수를 패배시킬 것이고,
그는
우리를 위한 밥이 될 것이다.
패배당한 원수는
가장 맛있는 밥이다
― 민 14:9.
원수는
우리의 음식일 것이며,
그를 삼킬 때
우리는
만족을 얻을 것이다.
하나님의 권익을 위해 싸우는
오늘날의 갈렙들로서
우리가
좋은 땅으로 예표되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이상을 보며,
사탄적인 혼돈을
정복하고
신성한 경륜 안에서
승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 신 8:7-10, 엡 1:10, 롬 16:20.
좋은 땅인 가나안 땅은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
곧 모든 것이시고
모든 것 안에 계시며
우리에게 모든 것이 되시는
그리스도의 예표이다
― 신 8:7-10.
좋은 땅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필요한
모든 것,
즉 물, 밀, 보리,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올리브나무,
동물, 젖, 꿀,
돌, 철, 구리 등을
제공했다.
좋은 땅은 분명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의 예표이며,
이 그리스도는
우리의 유업으로
우리에게 주어지신
삼일 하나님의 체현이시다
― 행 26:18, 골 1:12.
좋은 땅을 소유하기 위해
우리는
사탄적인 혼돈을
정복하고
신성한 경륜 안에서
승리하도록
영적 전쟁에
참여해야 한다
― 엡 1:10, 6:10-12, 롬 16:20.
우주의 역사는
하나님의 경륜과
사탄의 혼돈의 역사이다
― 창 1:1-2, 26, 계 20:10-21:4.
사탄은
혼돈의 근원이고,
하나님 자신은
신성한 경륜이시다.
성경과 우리의 체험 모두에서
사탄적인 혼돈은 항상
신성한 경륜과
나란히 간다
― 고후 4:6, 딤전 1:4.
하나님은
우리를
혼돈에서 구출하시는 대신,
우리가
그분과 하나 되어
파괴적인 사탄적인 혼돈을
정복하고
건설적인 신성한 경륜을
수행하기를
원하신다
― 엡 3:8-10, 고후 5:17.
우리는
혼돈을 겪는 동안에,
신성한 경륜을 위해
서 있고
신성한 경륜을
살아 내야 한다
― 딤전 1:4, 18, 딤후 4:7.
이기는 이들은
사탄적인 혼돈을
정복하고
신성한 경륜 안에서
승리한다
― 딤전 1:3-4, 19-20, 4:1-2,
딛 3:10, 딤후 4:7-8.
이기는 이들은
혼돈을 겪지만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힘과 능력을 얻어
진리에 따른
신성한 경륜을 위해
서서
이 신성한 경륜을
살아 낸다
― 엡 3:16, 6:10-12.
우리는
모든 것을 충족하는
은혜이신,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에 의해
혼돈을 정복한다
― 고전 15:10, 고후 12:9, 딤후 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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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replies on “하나님의 권익을 위해 싸우는 그리스도의 동반자들”
6일
롬 16:20
화평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여러분의 발아래
짓밟히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의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딤후 4: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웠고,
달려야 할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신명기는
…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목적이자 목표이신
그리스도를 보여 준다
(8:7-10).
이러한 목표이신
그리스도는
모든 것을 포함한
좋은 땅이시다.
좋은 땅인
가나안 땅은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
곧 우리에게
모든 것이 되시는
그리스도의 예표이다.
좋은 땅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필요한
모든 것,
즉 물, 밀, 보리,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올리브나무,
동물, 젖, 꿀,
돌, 철, 구리 등을
제공했다.
신명기 8장
7절부터 10절까지에서
대부분 언급되어 있는
이 모든 항목들은
그리스도의 예표들이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각 지파들은
유업으로
좋은 땅의 한 몫을
할당받았다.
좋은 땅은
우리의 유업으로
우리에게 주어지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예표이다.
경륜과 혼돈의
혼합인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온 우주의 축소판이다.
우주의 역사는
하나님의 경륜과
사탄의 혼돈의
역사이다.
더욱이 창세기 1장부터
요한계시록 마지막 장까지
성경 전체가
신성한 경륜과
사탄적인 혼돈에 대한
기록이다.
결혼 생활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경륜과
사탄의 혼돈을
가진다.
이런 상황이 있는
이유는
우주 안에
두 근원으로서
하나님과 사탄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경과 우리의 체험 모두에서
사탄적인 혼돈이 항상
신성한 경륜과
나란히 간다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 신성한 경륜이 있는 곳에
사탄적인 혼돈이 있다.
하나님께서 계신 곳에
사탄도 있다.
우리는
주님과 하나 되어
그분의 원수를
정복하고 이기도록
그분의 부르심을 받았다.
우리 가운데 어떤 이들은
오늘날
너무 많은 혼돈이 있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 우리는
주님께
이러한 혼돈에서
우리를 구출해 달라고
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혼돈에서 구출하시는 대신,
우리가
주님과 하나 되어
혼돈을
정복하고 이기는 것을
배울 수 있도록
우리가 있는 곳에
혼돈이 일어나는 것을
허락하실 수도 있다.
우리는
주님의 회복 안에 있으며,
주님의 회복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경륜을
수행하기 위한 것이다.
… 이기는 이들은
현재의 이 혼돈에서
구출받지 않는다.
그 대신 이기는 이들은
모든 파괴적인 혼돈을
정복하고
유일한 건설적인 경륜 안에서
승리한다.
이기는 이들은
혼돈을 겪지만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그 대신 그들은
힘과 능력을 얻어
신성한 경륜을 위해
서서
이 신성한 경륜을
살아 낸다.
사탄적인 혼돈은
우리 주변의 기독교계에서
여전히 계속되고 있으며,
심지어 주님의 회복 안에서도
우리는
이러한 혼돈을
체험했다.
… 우리 모두는
이러한 파괴적인 혼돈을
정복해야 한다.
우리가
주님에 의해
강해져서
모든 파괴적인 혼돈을
정복할 수 있다면,
우리는
승리에 차서
왕국 안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주님께 필요한 것은
모든 사탄적인 혼돈을
정복하고
신성한 경륜 안에서
승리하는
이기는 이들의 족속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충족하는
은혜이신,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에 의해
사탄적인 혼돈을
정복해야 한다
(고전 15:10, 고후 12:9, 딤후 4:22).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가
그와 함께했다고
말하고,
갈라디아서 6장 18절에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의 영과 함께한다고 말하며,
디모데후서 4장 22절에서는
주님께서
우리의 영과 함께하신다고
말한다.
모든 것을 충족하는
은혜이신 주님께서
우리의 영과 함께하시며,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을 충족하는
은혜이신 그분에 의해
모든 사탄적인 혼돈을
정복하고
유일하고 신성한 경륜을
수행할 수 있다.
우리는
모든 사탄적인 혼돈을
정복할 수 있고,
육체 안에서의
하나님의 나타남인
교회가
기둥과 기반으로서
떠받치고 있는
진리에 따라
신성한 경륜을
수행할 수 있다
(딤전 3:15-16).
5일
수 14:8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으므로
(fully followed;
…를 전적으로 따랐습니다)
수 14:14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라
(fully followed;
전적으로 따랐기 때문입니다)
갈렙이
온전히 하나님을 따랐던 것처럼,
우리도 반드시
단호하고 확고한 의지로
주님 편에 서야 한다
(민 14:6-9, 24, 신 1:36, 수 14:14).
갈렙이
주님을
온전히 따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이
좋은 땅 안에 들어가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그들의 원수들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싸우시리라는 것을
알았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틀림없이 그분께서
그들을 위해
모든 것을 이루실 것이다.
갈렙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우리가
자신의 약함을 아는데,
하나님께서
그것을 모르시겠는가?
우리가
가나안의 일곱 족속의 사람들이
크고 강하다는 것을 아는데,
하나님께서
그것을 모르시겠는가?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분명히 알고 계시는데,
왜 그분은 여전히
우리에게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라고 하시는가?
하나님은
이러한 것들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그분의 의도가
우리를 대신해 싸우시고
우리의 원수들을
멸망시키시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라고
요구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갈렙의 눈에는,
가나안 주민들이
신장이 장대해도
하나님의 백성이
먹고 소화할 수 있는
음식으로 보였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귀중히 여겼을 뿐 아니라
모든 어려움을
경시했다.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을 존중하며,
모든 어려움들을
가볍게 여긴다.
이것은
우리가
교만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누구든지 먼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주님의 승리 위에
설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려움을 만나고
방법이 없는
상황에 처할 때마다,
우리는
“나는
이번에 굶을 것인가,
먹을 것인가?”
라고 자문해 보아야 한다.
만일 우리가
그러한 일에서
그리스도를 의지해
승리하고
그리스도의 이기는 생명이
나타나게 한다면,
우리는
한 번 더
자양분을 얻고,
한 번 더
힘을 증가시키며,
한 끼의 식사를
더 먹은 것이다.
먹지 않는 사람은
성숙에 이르도록
자랄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라.
우리의 밥은
하나님의 말씀만이 아니다.
우리의 음식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만이 아니다.
우리의 밥은 또한
우리가
우리의 노정에서 만난 어려움인
아낙 자손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먹었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을
그들의 음식으로 삼았지만,
아낙 자손을 먹지 않았다.
먹더라도
너무 적게 먹었다.
우리는
아낙 자손을 많이 먹을수록
강해진다.
갈렙은
이것에 대한
좋은 예이다.
그는
아낙 자손을
‘밥’으로 취했기 때문에
팔십오 세가 되었어도
매우 강건했다.
그의 힘은
팔십 세 때나 사십 세 때나
일반이었다.
그는
오랜 세월에 걸쳐
매우 많은 아낙 자손을
소화함으로써
나이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체질을 발전시켜 왔다.
영적인 영역에서도
이것은 사실이다.
많은 형제자매들은
어려움들을
거의 만나지 않았는데도,
그들의 생활 가운데
많은 연약함이 있다.
그들은
아낙 자손을
충분히 먹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능력이 없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만나는 어려움이나 시험을
다 이긴다.
그들은
아낙 자손을
많이 먹었기 때문에
매우 강건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려움과 시험을
먹어야 한다.
사탄이
우리의 노정에서
우리에게 준
어려움과 시험은 모두
우리의 밥이다.
이것이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이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어려움을 볼 때
겁을 먹는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은
“이것은 밥이다.”
라고 말한다.
주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자.
우리의 모든 시련은 예외 없이
우리를 위한 밥이다.
어떤 시련이든지
우리가
그것을 먹으면
우리에게
성장을 가져다준다.
한 번 시련을 받아들이고
또 한 번 시련을 받아들일 때에
우리는 더욱 더 풍성하게
자양분을 얻게 된다.
만일 우리가
그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배고파질 것이다.
매일의 만나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원수를
삼켜 버려야 한다.
원수는
우리의 음식이 될 것이며,
그를 삼켜 버릴 때
우리는
만족할 것이다.
형제자매들이여,
여러분과 나는
살아 있는 믿음을 가지고서,
계속 전진하고 전쟁하며
원수를 삼켜 버려야 한다.
… 패배당한 원수는
가장 좋은 밥이며
가장 맛있는 밥이다.
4일
히 2:10
만물은
하나님을 위하여 존재하고
또 하나님을 통하여 존재하므로,
하나님께서
많은 아들들을
영광 안으로 이끄시려고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시는 것은
합당한 것입니다.
히 3:14
우리가
처음에 가진 확신을
끝까지 굳게 붙잡는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동반자들이
될 것입니다.
민수기 13장 33절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우리는 거기서
네피림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도
우리가 메뚜기 같았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우리가 그랬을 것입니다.”
라고 따지는 듯이 말했다.
이것은
불신의 논리,
곧 천연적인 관념에 따라
이치를 따지고
하나님의 길을 의지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신뢰하지 않는
논리이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런 식으로
이치를 따지는 것에
대항하였고,
그 땅을
능히 취할 수 있다고
선포하였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을 존중했으며,
이에 대한 반응으로
하나님도
그들이
하나님을 존중한 것으로 인해
그들을 존중하셨다.
우리 가운데
누가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할 수 있는가?
믿음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이며,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이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자 한다면,
우리의 유익이 아닌
하나님의 권익을 관심하기를
배워야 한다.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날마다
자신의 안전과 유익에 대해
염려하지만,
우리는
하나님과 그분의 권익을
관심해야 한다.
믿음은
우리의 활동을
멈추게 한다.
믿음은 항상
하나님을 찬양한다.
성경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의 예는
믿는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 준다.
민수기 13장과 14장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은
이기는 이들이 아니었다.
이기는 이는 바로
그들이 신뢰하는 분이셨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하셨고,
그들은 단순히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누렸다.
여호수아 3장에서
그들은
요단강을 건넜지만
물을 멈추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셨다.
그들은 단지
건넜을 뿐이다.
나는
그 일을 할 수 없지만
그리스도는
하실 수 있고
그분은
내 안에 계신다.
우리는
주님의 부활 능력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
또 꿈꾸는 것이나 상상하는 것보다
더욱 넘치도록
능히 하실 수 있다.
하나님은 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이루실 것이다.
여호수아와 갈렙의
본을 따르자.
그들은
믿음이 충만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우리가
당장 올라가서
그 땅을 차지합시다.
우리는 충분히
이길 수 있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었다.
구원의 대장이신
그리스도는
참여호수아로서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여
땅을
차지하고 소유하게 하신다.
그분의 동반자들인
우리는
참갈렙들로서
땅을
차지하고 소유하는 일에
그분과 함께 참여한다.
히브리서 3장 14절은
“우리는
그리스도의 동반자들이
될 것입니다.”
라고 말한다.
그리스도는
맏아들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형제들이다.
그리스도는
몸의 머리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지체들이다.
…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위임을 수행하도록
하나님께
기름 부음을 받으셨다.
이제 우리는
그분의 동반자들로서
하나님의 위임을
수행하는 일에
그분과 함께 참여한다.
히브리서 3장
7절부터 14절까지는
좋은 땅에 들어가는 것을
다룬다.
예표에 있어서
좋은 땅에 들어가는 이 일은
여호수아의 인도 직분 아래서
이루어졌다.
여호수아는
인도자였고,
갈렙은
좋은 땅을 소유하는 일에서
그의 동반자이자 동료이자 동지였다.
오늘날 그리스도는
참여호수아이시며,
우리는
그분의 갈렙들이다.
… 우리가
그리스도를 누릴 때,
우리는
그분의 동반자들이다.
우리가
그분을 따를 때,
우리는
그분의 동반자들이다.
그리스도의 동반자들인
우리는
그분과 함께 일하고
그분과 협력하면서,
하나님 자신의
단체적인 표현을
얻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갈망을
이루어 드리고 있다.
민수기 14장 24절에 따르면,
대부분의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께
매우 반역적이었지만
갈렙은 달랐다.
그는
다른 생각, 다른 의지,
다른 마음, 혹은 다른 결정을
가지지 않았다.
갈렙은
다른 영을 가지고 있었다.
24절은
갈렙이
주님을
온전히 따랐다고
말한다.
우리에게는
주님을 따르기 위한
다른 길이 없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려면 반드시
합당한 기관인
우리 사람의 영을
사용해야 한다.
갈렙은
다른 모든 사람의 영과 다른,
그러한 다른 영으로
주님을 따랐다.
3일
민 13:30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잠잠케 하면서
말하였다.
“우리가
당장 올라가서
그 땅을 차지합시다.
우리는
충분히 이길 수 있습니다.”
민 14:9
다만 여러분은
여호와를
거스르지 말며
그 땅의 백성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우리의 밥입니다.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을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밤에는 불 속에서,
낮에는 구름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가시면서,
그들이 진 칠 곳을
찾으셨고
그들이 가야 할 길을
보여 주셨다
(신 1:33).
그러나 모세가
좋은 땅을 정탐하라고 보낸
열두 명 중에
열 명이 악하게 보고했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그들을 돌보신 것을
기억하지 않았다.
또한 하나님께서 어떻게
광활하고 두려운 광야를 통과하도록
이끄셨는지에 대해서도
잊어버렸고
(31절)
오히려 불신의 악한 마음을
품게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분의 약속도 믿지 않았고
심지어 하나님께 불평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칼에 쓰러지게 하시고,
그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노략을 당하도록
그들을
그 땅으로 인도하셨다고
말했다
(민 14:1-3).
결국 하나님은
믿지 않는 세대 중 한 사람도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좋은 땅을 보지 못하리라고
진노하며 맹세하셨다.
하나님은 오직
갈렙과 여호수아만이
그 땅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셨다
(신 1:34-38).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노략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
그들의 어린 자녀들을
그 땅 안으로 이끄셨다.
이스라엘 백성과
그들의 자녀들은
광야에서
사십 년 동안 방황하며
그들의 죄악을 짊어졌다.
결국 나쁜 소식을 전한 사람들은 모두
여호와 앞에서
재앙을 당하여 죽었다
(민 14:26-38).
이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를
보여 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신의 악한 마음을
품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우리의 믿음은
너무도 연약하고 작으며,
거의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우리의 상황일 때,
우리는
우리의 믿음의
연약함을 자백하고
그분께
우리를 용서해 달라고 구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기를
배워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가져야 할 영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이 한
말에서 볼 수 있듯이
그들은
하나님을 관심하지 않고
그들 자신만을 관심했다.
그들이 고려한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유익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조금도 관심하지 않았고,
그들의 안전과 평안과 생계만을
관심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연약함을 자백하거나
자신을 겸손히 낮추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혐오하실 정도로
하나님을 언짢게 했다.
그들은 너무나
자신만을 위했기 때문에
혐오스럽게 되었다.
모든 일과 모든 면에서
그들은
자신들만 위했을 뿐
하나님의 권익을 위하지 않았다.
그들이
하나님의 권익을
조금이라도 생각했었더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하나님,
당신은
우리에게
너무나 좋은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다만
당신을 사랑합니다.
우리는
당신의 목적을 위해
우리의
장래와 안전과
보호와 생계와
모든 것을
희생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유익을
잊어버립니다.
우리는
당신께서
당신의 목적을
성취하시는 것만을
관심합니다.
당신의 목적을 위하여
우리로
가서
그 땅을 소유하게 하소서.”
그들이 한 일은 대부분
그들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그들의 상태는
하나님의 심판과 징벌을
초래했다.
믿음은 항상
참되고 실재이다.
환경은
거짓이다.
믿음에 귀를 기울이고
거짓에 귀를 기울이지 말라.
우리의 환경이 좋다면
우리는 믿을 필요가 없다.
어려운 환경에 있을 때
우리는 믿을 필요가 있다.
걱정과 염려,
심지어 육신의 질병까지도
다 거짓이다.
믿음은 항상
환경은 거짓된 것이며
거인이 아니라고 말한다.
환경을 부인하는 것이
믿음이다.
민수기 13장과 14장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의 믿음으로 취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광야에서 방황했을 때,
그들은 항상
원망하고 따지고 불평했다.
그것은 분명히
그들이
그들의 영 안에 있지 않고
그들의 혼 안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고,
주님께 순종했으며,
목표를 향해
힘써 나아갔다.
이것은 분명히
그들이
그들의 혼 안에 있지 않고
그들의 영 안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2일
요 14:1
“여러분은
마음에 근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으십시오.
히 3:12
형제 여러분,
여러분 중에 누구든지
불신의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히브리서 3장 12절은
“형제 여러분,
여러분 중에 누구든지
불신의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라고 말한다.
불신의 마음보다
더 악한 마음은 없다.
불신보다
하나님을
더 불쾌하게 하는 것은 없다.
다윗은
사람을 죽이고
그 사람의 아내를 취하는
끔찍한 죄를 지었다.
그러나 행정적인 면으로 말한다면,
이 죄는
하나님으로 하여금
다윗을 포기하게 하실 정도로
심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광야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불신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들을
포기하시게 했다.
불신은
하나님 자신을
모욕하고
마음 상하게 하는 것이다.
모든 죄가
하나님의 의로운 법을
어기는 것이지만,
불신의 죄만큼
하나님 자신을 모욕하는
죄들은 많지 않다.
우리의 하나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다.
불신은
매우 악한 것인데,
왜냐하면 그것이
살아 계시고 신실하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그분의 일과 그분의 길들을
믿지 않는다면
그분을 모욕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불신을 주의해야 하는
이유이다.
히브리서 3장 10절은
“그래서 내가
그 세대에 대하여
언짢아하며 말했다.
‘그들이 항상
마음이 빗나가서
나의 길을
알지 못하였다.’ ”
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길은
하나님의 행사와 다르다.
하나님의 행사는
그분의 행동이고,
하나님의 길은
그분의 행사의 원칙이다.
이스라엘 자손은 단지
하나님의 행사를 알았지만
모세는
하나님의 길을 알았다
(시 103:7).
광야에서
이스라엘 자손은
거의 매일 아침에
만나가 내리는
기적을 보았다.
만일 그와 같은 기적이
오늘날 일어난다면
전 세계의 신문에
실릴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은
그와 같은 기적을 보았지만
모세와는 달리
오직 하나님의 행사만 보았을 뿐
하나님의 신실하고 거룩한 길을
알지 못했다.
우리는
이스라엘 자손과
같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반드시
우리 하나님의 길, 곧 원칙을
알아야 한다.
이스라엘 자손은
음식과 물이 떨어졌을 때
불평했고 원망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행동하셨을 때,
그들은
일시적으로 기뻐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하나님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돌아본다면
우리는
그들을 비평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느 날 저녁 집회에서
“주님을 찬양합니다!”
라고 외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에는 다시
주님을 원망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하나님의 길을 아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지!
우리의 하나님은
살아 계신 분이시며,
일을 하시는 데 있어서
그분의 원칙을
가지고 계신다.
그분은 결코
자신을 부인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능하시고, 전능하시며,
신실하시고, 항상 약속을 지키시며,
자신이 하신 말씀을 성취하신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신실하시지만,
악한 마음은
하나님을 향해
굳어 있다
(히 3:8).
어떤 의미에서
악한 마음은
매우 합리적이며,
많은 것을
이치에 맞게 생각한다.
그러나 또 다른 의미에서
그것은
굳어 있기 때문에
완고하고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것은
올바른 궤도를 벗어나 빗나가고,
하나님의 길들, 하나님의 원칙들을
알지 못한다.
악한 마음은
하나님을
떠보며 시험한다
(9절).
결국 그러한 마음은
스스로 속이고
속임을 당할 것이다
(13절).
이것이
악한 마음의 상태이다.
그와 같은 악한 마음은 항상
굳어진 데서 온다.
우리의 마음이
굳어진다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해 주시기를
다음과 같이
거듭해서 기도해야 한다.
“주님,
저에게
긍휼을 베푸소서.
저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고
결코 굳어지게 하지 마소서.”
여호수아와 갈렙은
“다만 여러분은
여호와를 거스르지 말며
그 땅의 백성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우리의 밥입니다.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을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민 14:9)
라고 말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진리를 말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진리를 따라서가 아니라
거짓을 따라서
이치를 따졌으며,
하나님의 길을
의지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그분을 믿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가장 악한 사람이다.
믿지 않는 마음이
가장 악한 마음이다.
우리의 불신보다
하나님을
더 모욕하는 것은 없으며,
그분에 대한
우리의 믿음보다
그분을
더 존중해 드리는 것은 없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시든지
다 믿어야 한다.
만일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불신의 마음이다.
신언노트, 2019 04 07
하나님의 이익을 위하여 싸우는
그리스도의 동반자들
고린도전서는
구약 안에 있는
이스라엘의 그 자손의 그 역사를
신약 믿는 이들의
한 예표로 취합니다:
바울은
그 믿는 이들에게
하나님을 반대하여
악한 일들을 행함 안에서
이스라엘의 그 자손의 그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경고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이스라엘의 그 자손을
부르심의
그 목표는
그들이
그 약속된 땅 안으로 들어가서
그것의 부를
(riches; 재물을, 풍부를)
누려
그 결과(so that)
그들이
땅 위에
하나님의 왕국을 수립할 수 있고
(might establish)
또 하나님의 표현이 될 수 있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전체의(all; 모든) 이스라엘이
그 유월절을 통하여
구속받았고,
이집트의 폭정에서부터(tyranny)
구출되었으며,
또 하나님의 그 산에
데려가져서
하나님의 거처,
곧 그 성막에 관한
그 계시를 받아들였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 황무지 안에서
쓰러졌고 또 죽었으며,
이 목표에 이르지 못했는데
그들의
악행들과 또 불신 때문이었습니다.
오직 갈렙과 또 여호수아만이
이 목표에 이르렀고
또 그 좋은 땅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속받았고,
사탄의 속박에서부터
구출되었으며,
또 하나님의 경륜의
그 계시 안으로
데려가졌지만,
우리가 아직(yet; 그래도)
하나님의 부르심의
그 목표에 이르는 것에(to reach)
즉, 우리가
그 현재의 시대 안에서
그분의 표현이 될 수 있고
또 그 왕국 시대 안에서
그리스도에 관한
그 가장 충만한 누림 안에
참여할 수 있도록
우리의 좋은 땅, 곧 그리스도의
그 소유(possession; 소유물, 영토) 안으로
들어가는 것과,
또 하나님의 그 왕국을 위한
그분의 부를(riches; 재물을)
누리는 것에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그 황무지 안에서의
이스라엘의 그 자손의
그 실패를 반복함에 대하여
모든 신약 믿는 이들에게
한 엄중한 경고가
되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또 은혜 없이는,
우리도
이스라엘의 그 자손과
같을 것입니다
(would be the same).
우리는
이스라엘의 그 역사를
우리의 역사로(as)
읽으면서,
민수기 13장과 14장에
세심한 주의를
(careful attention;
꼼꼼한[조심하는] 주목을)
기울일(paying; 줄) 필요가 있습니다.
이집트에서부터 나온
모든 이스라엘의 그 자손 중에서,
오직 둘,
곧 여호수아와 또 갈렙만이
그 좋은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모두가 구속받았지만,
오직 두 이기는 이들,
곧 여호수아와 또 갈렙만이,
그 좋은 땅의(of; …인)
그 상을
받아들였습니다.
민수기 13장과 또 14장의
그 기록에 따라,
그 백성은
불신의
(of unbelief;
믿으려고 하지 않음의,
믿지 않음의, 의심의, 회의의)
한 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불신보다
하나님께
더 모욕적인 것은 없습니다
(Nothing is more offensive;
더 불쾌한[거슬리는, 화나게 하는,
공격적인, 마음 상하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불신은
그것이
살아 계시고, 신실하시며, 또 전능하신
그 하나님을
모욕하기 때문에
(because … insults;
모독하기[공격하기] 때문에)
악합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 안에,
그분의 일 안에,
또 그분의 길들 안에
(and in His ways;
또 그분의 방식으로)
믿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분을 모욕합니다.
우리의 불신보다 더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 없고,
또 그분 안에의
우리의 믿음보다 더
그분을
존중하는 것이 없습니다.
… 불신의 한 마음보다
더 악한 마음은 없습니다.
우리의 불신만큼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은 없습니다.
다윗은
한 사람을 죽이고
또 그의 아내를 취하는
한 끔찍한 죄를
저질렀습니다.
통치적으로 말해서
(Governmentally speaking),
하지만,
이 죄는
그만큼 심각하지 않았는데
(was not that serious;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았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다윗을 포기하시게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황무지 안에서의
이스라엘의 그 자손의
그 불신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들을 포기하시게 했습니다.
불신은
하나님 그분 자신을
모욕하고
또 불쾌하시게 합니다
(offends;
마음 상하시게 합니다).
각각의 모든 죄들이
하나님의 의로운 법을
어기지만
(breaks;
범하지만, 위반하지만),
어떤 죄들은
불신의 그 죄가 하는 것처럼,
하나님 그분 자신을
모욕하지 않습니다.
… 히브리서 3장 10절이 말하기를,
“그래서 내가
그 세대에게(with)
불쾌하게 되었고
(was displeased;
화가 났고),
또 내가 말하기를,
‘그들이 항상
그들의 마음 안에서
길을 잃고
(go astray;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빗나가고),
또 그들이
나의 길들을
알지 못하였다.’ ”
하나님의 길들은(ways)
그분의 행동들과(acts) 다릅니다.
그분의 행동들은
그분의 활동들입니다(activities);
그분의 길들은
그것에 의하여(by which)
그분께서 행동하시는
그 원칙들입니다(the principles).
이스라엘의 그 자손은
오직 그분의 행동들을 알았지만,
모세는
그분의 길들을 알았습니다.
그 황무지 안에서
이스라엘의 그 자손은
거의 모든(every; 매) 아침에(아침마다)
한 기적―그 만나를
보았습니다.
만약 그러한 한 기적이
오늘날 일어난다면,
그것은
그 세상 도처에서
신문들 안에
(in newspapers; 신문들로)
알려질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그 자손이
그러한 한 기적을 목격하였지만,
그들은,
모세와 다르게,
오직 하나님의 그 행동들만
보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신실하고, 신성한 길들을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그 자손과
같지 않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하나님의,
그 길들, 곧 그 원칙들을
배워야만 합니다.
… 얼마나 우리가
하나님의 그 길들을 알
필요가 있는지!
우리의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또 일들을 하심 안에서
그분의 원칙들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결코
그분 자신을
부인하지(deny; 부정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능력이 있으시고(is able),
전능하시며,
또 신실하셔서,
항상 그분의 약속들을 지키시고,
또 그분의 말씀을 성취하십니다.
… 우리의 마음이
굳어지는 것이
(to be hardened;
딱딱해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해 주시기를
“주님,
제 위에
긍휼을 가지십시오.
저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고
또 그것이 굳어지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마십시오.”
라고 말하면서,
다시 또 다시
(again and again;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호수아와 또 갈렙이 말하기를,
“오직
여호와를 반대하여
반역하지 마시고,
여러분이
그 땅의 그 백성을
두려워하지도 마십시오,
왜냐하면 그들이
우리의 밥이기 때문입니다
(for they are our bread;
… 빵[양식, 주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보호물이
(protection;
보호책이, 보호는)
그들에게서 제거되었고,
또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민 14:9).
여호수아와 또 갈렙은
그 진리를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그 자손은
그 진리를 따라서
판단하지 않았고
(did not reason;
사고하지[추론하지] 않았고)
오직 그 거짓말을 따랐으며,
하나님의 그 길들을
확신하지 않았습니다
(not counting on …;
믿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그 눈들 안에서,
그분 안에 믿으려고 하지 않는
(who will not believe in Him;
… 믿지 않을)
그 한 사람만큼
악한 한 사람이 없습니다.
믿지 않는 그 마음이
가장 악한 그 마음입니다.
…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 안에서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우리가 반드시
믿어야만 합니다.
만약 우리의 마음이
(out heart)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눈들 안에서
악한, 곧 불신의
(evil, unbelieving;
악하고, 믿지 않는[의심 많은])
한 마음입니다.
그 백성이
하나님 안에도
또는 그분의 말씀 안에도
믿지 않았고
또 심지어
그분을 반대하여
중얼거렸기 때문에
(murmured;
불평했기 때문에, 투덜거렸기 때문에,
조용하게 작은 소리를 계속 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믿지 않는 그 세대 중의
한 사람도(not one)
그 좋은 땅 안으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그분의 분노 안에서
(in His wrath;
그분의 격분[노여움, 복수, 천벌] 안에서)
맹세하셨습니다;
오직 여호수아와 또 갈렙만이
들어가는 것이
허락되었습니다.
그 열 첩자들의
(the ten spies;
그 열 명의 정찰들의)
그 악한 보고와
또 백성의
그 중얼거림에 의하여
가리켜지는 것과 같이,
이스라엘의 그 자손은
하나님을 돌보지 않았고
(did not care for God;
하나님을 관심하지[마음을 쓰지,
배려하지, 염려하지, 좋아하지] 않았고)
오직 그들 자신들만을
돌보았습니다:
각각의 모든 것들 안에서
또 각각의 모든 길들 안에서
그들은
그들 자신들만 위하여 있었고,
하나님의 이익들을 위하여
(not for God’s interests;
하나님의 관심사들을[권리들을,
사업들을] 위하여)
(있지) 않았습니다.
이것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 안에 믿지 않았고
(did not believe in God;
하나님을 신앙하지[믿고 받들지,
신뢰하고 복종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존재를[인격을] 믿지 않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좋다고[옳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또 그들은
그들이
그분께
혐오스럽게 되었던
그러한 한 정도까지
하나님을 불쾌하시게 했습니다
(offended God;
하나님의 마음이 상하시게 했습니다).
그들의 상황이
하나님의
심판과 또 처벌을
가져왔습니다
(brought in;
생기게 했습니다, 참가시켰습니다).
여호수아와 또 갈렙은
하나님의 그 말씀을
그들의 믿음으로
취했습니다:
여호수아와 또 갈렙은
하나님의 그 말씀 안에 믿었고,
주님께 순종했으며,
또 그 목표를 향하여
밀어붙였습니다
(pressed;
밀어젖히고 나아갔습니다, 압박했습니다,
몰려들었습니다, 쇄도했습니다, 서둘렀습니다).
그 백성이
약탈이 될 것이라고
(would become plunder;
약탈물이 될 거라고)
말했던,
그 어린 사람들이(the little ones),
하나님에 의하여
그 땅 안으로
데려가졌습니다.
그 백성과 또 그들의 아이들이
사십 년 동안
그 황무지 안에서 헤맸고
(wandered;
배회하였고, 방랑하였고,
빗나갔고, 다른 데로 갔고)
그들의 죄악들을
(iniquities;
부정[불법] 행위들을, 부당한 것들을)
떠맡았습니다.
그 악한(evil; 사악한, 불길한) 보고를
주었던 사람들은 모두
여호와 앞에서
한 전염병에 의하여
(by a plague;
한 역병으로)
죽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안에 믿지 않는 것이
한 끔찍한(terrible) 일이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우리는
불신의 한 악한 마음을
가지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아주 약하고 또 작을 수,
곧 거의 존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상황일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들을
겸허하게 하는 것을
(to humble;
겸손하게 만드는 것을,
…의 자만심을 꺽기를)
배워야만 하고,
우리의 믿음의
그 약함을
자백해야만 하며
또 그분께
우리를 용서하시는 것을
구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가져야만 하는
그 영입니다(the spirit).
하지만 그들이 말했던
무엇에 의하여
(by what; 것에 의해)
가리켜지는 것과 같이,
이스라엘의 그 자손은
하나님을 돌보지 않았고
오직 그들 자신들만 돌보았습니다.
그들의 고려는
(considertion;
이유는, 동기는, 중요성은, 고려 사항은)
하나님을 위하여
있지 않았고
오직 그들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조금도(in the least)
하나님을 돌보지 않았지만,
오직 그들의 안전,
그들의 평안,
또 그들의 생존만을
(existence;
존재만을, 생활만을, 생계만을)
돌보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약함을 자백하거나
또는 그들 자신들을
겸허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그들이
그분께
혐오스럽게 되었던
그러한 한 정도까지
하나님을 불쾌하시게 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많이(so much)
그들 자신들을 위하여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혐오스럽게 되었습니다.
각각의 모든 일들 안에서
또 각각의 모든 길들 안에서
그들은
그들 자신들을 위하여 있었고,
하나님의 이익들을 위하여
(있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들이
하나님의 이익들에 관하여
조금이라도(even a little)
생각했었다면,
그들은 말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당신께서
우리에게
정말 좋으셨던 것처럼
(have been so good),
우리도
정말
(just;
단지, 그저, 다만, 틀림없이, 아주)
당신을 사랑합니다.
우리는
당신의 목적을 위하여
우리의 장래(future),
우리의 안전(safety),
우리의 보호(security),
우리의 생존(existence),
또 각각의 모든 것들을
희생 제물로 바치고 싶습니다
(would like to sacrifice;
희생시키는 것을 바랍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득에 관하여
(about our benefit;
… 혜택[이익, 수당, 특전]에 대하여)
잊어버립니다.
우리는 오직
당신께서
당신의 목적을
성취하시는 것에만
관심을 가집니다
(care only that …;
…것만을 돌봅니다).
당신의 목적을 위하여,
우리로 하여금
가서
그 땅을 소유하게 하십시오.”
그들이 했던 것은
대부분(mostly; 주로)
그들 자신들을 위하여
있었습니다.
이 상황이
하나님의
심판과 또 처벌을
가져왔습니다.
믿음은(Faith) 항상
실재하고
(real;
참되고, 진짜이고, 현실적이고, 실감나고)
또 사실입니다
(true;
참입니다, 옳습니다, 정확합니다, 들어맞습니다).
그 환경은
한 거짓말입니다
(a lie;
한 속임[사기]입니다).
믿음에 귀를 기울이고,
거짓말에 (귀를 기울이지) 마십시오.
만약 우리의 환경이 좋다면,
우리는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한 어려운 환경 안에 있을 때
우리는
믿을 필요가 있습니다.
걱정, 염려,
또 심지어 육체적인 질병까지도(sickness)
모두가
거짓말들입니다.
믿음은 항상
그 환경에게
그것이 한 거짓말이고,
한 거인이(giant; 거대한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tells;
말합니다, 전합니다, 알립니다, 표현합니다).
그 환경을 부인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민수기 13장과 또 14장 안에서
여호수아와 또 갈렙은
하나님의 그 말씀을
그들의 믿음으로(as)
취했습니다.
그 이스라엘 사람들이(the Israelites)
그 황무지 안에서
헤매고 있었을 때,
그들은 항상
중얼거리고 있었고,
판단하고 있었으며
(were … reasoning;
사고하고[추론하고] 있었으며),
또 비난하고 있었습니다
(were … chiding;
잔소리하고[꾸짖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확실히
그들의 혼 안에 있었고,
그들의 영 안에 (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와 또 갈렙은
하나님의 그 말씀 안에 믿었고,
주님께 순종했으며,
또 그 목표를 향하여
밀어붙였습니다.
이것은 확실히
그들의 혼 안에 있지 않았고
오직 그들의 영 안에 (있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을 존중했고,
또 하나님께서도,
교대로
(in turn;
차례로, 다음에, 결국,
이에 대한 반응으로),
그들을 존중하셨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만이
믿음의 그 원천이십니다
(source; 근원이십니다);
만약 우리가
믿음을 가지려고 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이득이 아니라
(and not for our benefit)
하나님의 이익을
돌보는 것을
배워야만 합니다.
그 성경 안에 있는
여호수아와 또 갈렙의
그 본은
(The example; 그 예가)
믿는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여호수아와 또 갈렙은
민수기 13장과 또 14장 안에서
이긴(이겼던) 그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were not the ones who overcame);
그것은
(it; 이기신[이기셨던] 분은)
그분 안에(in whom)
그들이 신뢰했던
그 한 분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각각의 모든 것들을
하셨습니다;
그들은 그저
(simply;
그냥, 간단하게, 쉽게, 자연스럽게)
하나님께서 하신 무엇을
(what God did;
… 하셨던 것을)
누렸습니다.
우리는
여호수아와 또 갈렙의
그 본을
따라야만 합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가득 찬
마음들을 가졌습니다.
우리는
오늘날의 갈렙들,
곧 그리스도의 동반자들이
될 필요가 있고,
그분께서(who; 그리스도께서)
그 진정한 여호수아이십니다
(the real Joshua;
진짜 그 여호수아이십니다):
그리스도,
곧 구원의 대장께서
(the Captain of salvation;
… 그 지휘관께서[선장께서]),
그 진정한 여호수아이시고,
우리를 이끄셔서
그 땅을 소유하게 하시며
(to take possession of;
… 소유를 취하게 하시며),
또 우리,
곧 오늘날의 갈렙들은,
그분의 동반자들이고,
그분과 함께
그 적들에 반대하여 싸우며
또 그 땅을
취함과 또 소유함 안에서
그분과 나누어 가집니다
(sharing with Him;
그분과 함께 공유합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에 의하여
기름 발라지셨고
(has been anointed;
기름 바름을[부음을] 받으셨고)
(그래서) 하나님의 위임을
수행하셨으며,
또 그분의 동반자들인
우리는
하나님의 위임을
수행함 안에서
그분과 나누어 가집니다.
히브리서 3장
7절부터 14절까지는
그 좋은 땅으로 들어감을
다룹니다;
예표에 있어서
이(this; 이렇게) 그 좋은 땅으로 들어감의
그 예표는
여호수아의 그 인도 직분 아래에서
(under the leadership;
그 지도자의 지위[지도력] 아래에서)
그 땅의(of) 그 들어감이었고,
또 갈렙은
그 좋은 땅을 소유함 안에서
그의 동반자였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께서
그 진정한 여호수아이시고,
또 우리는
그분의 갈렙들,
곧 그분의 동반자들입니다.
그리스도의 동반자들로서,
우리는
그분 자신의
한 단체적인 표현을
가지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갈망을
성취하기 위하여
(to fulfill;
충족[만족]시키기 위하여, 실현하기 위하여,
수행하기 위하여, 따르기 위하여)
그분과 함께 일하고 있고
또 그분과 협력하고 있습니다.
갈렙은
한 다른
(a different;
차이가 나는[특이한] 한)
영을 가지고 있었고
또 한 다른 영에 의하여
주님을
전적으로
(fully; 완전히)
따랐는데,
이는(which)
모든 그 밖의 영들과
(from all the other spirits;
그 모든 다른 영들로부터,
그 다른 영들 모두와)
달랐습니다.
히 3:14
왜냐하면
만약 참으로
(indeed; 정말)
우리가
그 끝까지 단단히
(firm to the end)
그 확신의 그 시작을
(the beginning of the assurerance;
그 시작의 그 보증을[확실성을, 확약을],
처음에 가진 확신을)
꽉 붙잡는다면
(hold fast),
우리가
그리스도의 동반자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have become).
… 우리 가운데에 누가
그가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할 수 있습니까?
믿음은
하나님께 속하고,
믿음은
하나님 안에 있으며,
또 믿음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옵니다.
만약 우리가
믿음을 가지려고 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이득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익들을
돌보는 것을
배워야만 합니다.
그 세상적인 사람들은
매일
그들 자신의
안전과 또 이득을
걱정하게 되지만,
오직 우리는
하나님과 또 그분의 이익들을
돌보아야만 합니다
(should care for;
대단히 좋아해야만[관심을 가져야만] 합니다).
믿음은
우리의 활동들을
멈추게 합니다
(stops;
중단시킵니다, 끝냅니다).
믿음은 항상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 성경 안에 있는
여호수아와 또 갈렙의
그 본은
믿는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여호수아와 또 갈렙은
민수기 13장과 또 14장 안에서
이긴 그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분 안에
그들이 신뢰했던
그 한 분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각각의 모든 것들을
하셨습니다.
그들은 그저
하나님께서 하신 무엇을
누렸습니다.
여호수아 3장 안에서
그들이
그 요단강을 건넜지만,
그 물을 멈추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들은 그저
위로 걸어갔습니다
(walked over;
걸어서 건넜습니다, 일방적으로 이겼습니다).
나는
해낼 수 없지만
(cannot make it;
성공할 수 없지만, 그것을 만들 수 없지만),
오직 그리스도께서는
해내실 수 있고,
또 그분께서
내 안에 계십니다.
우리는 반드시
그분의 부활의
그 능력 안에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거나 또는 생각하는
모든 것들
또 우리가
꿈꾸거나 상상하는
모든 것들 위에
풍부하게 초월하여
(exceeding abundantly;
아주 많이 초과하여, 충분히 넘어서)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해내실 것입니다
(will make it).
우리가
여호수아와 또 갈렙의
그 본을 따릅시다.
그들은
믿음으로 가득 찬
마음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 백성에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당장(at once; 한꺼번에) 올라가서(and)
그것을(it; 그 땅을) 소유합시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것을
충분히
(well; 잘)
이길(overcome; 정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민 13:30).
히브리서 3장 14절이 말하기를,
“우리가
그리스도의 동반자들이
되었습니다
(have become).”
그리스도께서
그 맏아들이시고,
또 우리가
그분의 형제들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그 몸의 그 머리이시고,
또 우리가
그분의 지체들입니다.
…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위임을
수행하시도록
하나님에 의하여
기름 발라지셨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의 동반자들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위임을
수행함 안에서
그분과 나누어 가집니다.
… 여호수아는
그 인도자였고,
또 갈렙은
그 좋은 땅을 소유함 안에서
그의
동반자
(partner;
애인, 동업자, 파트너),
곧 동료
(comrade;
동무, 동지, 친구),
곧 동지였습니다
(companion;
동반자[친구, 동행,
짝, 한쪽, 도우미]였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께서
그 진정한 여호수아이시고,
또 우리는
그분의 갈렙들입니다.
… 우리가
그리스도를 누릴 때,
우리는
그분의
함께 나누는 사람들입니다
(partakers;
공유자들[분담자들, 참여자들,
관계자들, 동반자들,
같이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그분을 따를(follow) 때,
우리는
그분의 동반자들입니다.
민수기 14장 24절의 때에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상당히
(quite;
꽤, 완전히, 사실상, 거의)
반역적이었지만,
오직 갈렙은
달랐습니다
(different;
차이가 났습니다. 특이했습니다).
그는
한 다른 생각,
한 다른 의지,
한 다른 마음,
또는 한 다른 결정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갈렙은
한 다른 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24절은
그러고 나서
(then; 그때)
갈렙이
주님을
전적으로 따랐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따르는
다른 길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가
주님을
따르려고 한다면
(are going to follow),
우리는 반드시
그 적절한 기관,
곧 우리의 사람의 영을
사용해야만 합니다.
갈렙은
한 다른 영에 의하여
주님을 따랐고,
이는(which)
모든 그 밖의 영들과
달랐습니다.
갈렙이
전적으로
하나님을 따랐던 것과 똑같이(just as),
우리도 반드시
우리의 의지 안에서
(in our will;
우리의 의지로)
단호하고
(resolute;
확고하고, 강한 의지력을 나타내고)
또 굳게 결심하여
(determined;
단호해야만[결정되어야만] 하고)
주님과 함께
서 있어야만 합니다
(must be … to stand with …;
주님과 일치해야만 합니다,
주님께 찬성해야만 합니다,
주님을 지지해야만 합니다):
갈렙이
주님을
온전히 따랐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그 자손이
그 좋은 땅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원하셨다는 것을
그가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그 좋은 땅으로 들어가는 것을
원하셨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싸우려고 하셨고
(would fight;
싸우실 것이었고)
또 그들을 위하여
각각의 모든 것들을
성취하려고 하셨습니다.
갈렙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대신하여
(on their behalf)
싸우려고 하셨고
그 적들을
파괴하려고
(destroy; 죽이려고)
하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호수아와 또 갈렙은
네피림이나
또는 가나안의 그 땅의
그 주민들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오직
“그들은
우리의 밥입니다”
(민 14:9)
라고 말하였습니다:
갈렙은
네피림이(아낙 사람들이)
패배당할 것이고
또 그들의 밥이 될 것이라고
믿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땅 안으로 데려가신다고
약속하셨던 것을
(that … had promised)
그가 알았기(knew) 때문입니다.
갈렙의 체험은
더 많은 네피림을
우리가 먹을수록,
우리가
더 강해질 것이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demonstrates;
실례를 들어 보여 줍니다, 입증합니다);
그는
팔십오 세에
활력으로
(vitality;
활기가, 원기가, 생명력이, 체력이)
가득 차 있었는데
(was full of),
(이는)
그 여러 해 동안
(over the years; 그 수년간)
아주 많은 아낙 사람들을
동화함에 의하여
(by assimilating;
소화 흡수함으로, 완전히 소화시켜),
그가
나이의 흔적을
보여 주지 않았던
한 체질을
(a constitution;
기질을, 구조를)
발전시켰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의
그 적과의 전투는
그에게
한 패배가
(a defeat;
한 격퇴가[실패가, 좌절이])
될 것이지만,
그것은
우리를 위한
밥이 될 것입니다;
그 패배당한 적은
그 가장 맛있는
(the most tasteful;
그 가장 멋있는[고상한])
밥입니다.
그 적은
우리의 음식이 될 것이고
(will be our food;
우리의 음식일 것이고),
또 그를 삼킴은
우리의 만족이 될 것입니다.
그 땅의(가나안의) 그 주민들은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바와 같이
(admittedly;
의심할 여지 없이, 명백히)
“거대한 크기의 사람들”이었지만,
갈렙의 눈들 안에서는,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음식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들을
존중했을 뿐 아니라;
그는 또한
모든 그 어려움들을
경멸했습니다
(despised;
업신여겼습니다).
진짜의(genuine; 진정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을 존중하고
모든 어려움들을
가볍게
(lightly;
쉽게,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esteems).
하지만 이것은
교만을 위한 여지를
남겨 두지 않는데,
왜냐하면
오직 그들 자신들을
하나님 앞에서
겸허하게 하는 사람들만이
그분의 승리 위에
서 있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will be able to stand).
당신이
한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곧 당신이
한 불가능한 상황 안에 있는
당신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당신 자신에게
이 문제를
(question; 질문을)
물어 보십시오:
나는
여기에서 굶어 죽을 것인가
(Am I going to starve;
굶으려고 하는가),
아니면 나는
먹을 것인가?
만약 당신이
승리를 위하여
주님을 의존하고 있고
(are relying on;
의지하고[신뢰하고] 있고)
그분의 이기는 생명이
여러분 안에 나타내지도록
허락한다면,
당신은
신선한 영양 공급과
(nourishment; 음식물과)
증가된 활력을
얻을 것이고(will find),
또 당신은
다시 한번
먹게 될 것입니다
(will be fed;
먹여질 것입니다).
잘 먹지 않는 사람들은
성숙에 이르도록
자랄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우리의 밥은(bread)
오직 하나님의 그 말씀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음식물은
(meat; 고기는, 살은, 식사는)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do) 것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밥은 또한
그 아낙 사람들(the Anakim)
―우리의 길 안에 있는
그 어려움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밥인
하나님의 그 말씀을
또 그들의 음식물인
그분의 뜻을 행함을
취하지만(take),
그 아낙 사람들은
먹지 않았습니다
(have not eaten).
많은 사람들이
그 아낙 사람들을
(of; …에게서, …의 일부를)
너무 적게 먹습니다(eat).
더 많이
우리가
그 아낙 사람들을 먹을수록,
우리는
더 강해질 것입니다.
갈렙은
이것의
한 웅장한 실례입니다
(a grand illustration;
한 큰[장대한, 당당한]
예증[삽화]입니다).
그가
그 아낙 사람들을
“밥”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팔십오 세의 그 나이에
여전히
활력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의 강함은(strength; 힘은)
팔십오 세에도
사십 세에 그것이 어떠하였던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아주 많은 아낙 사람들이
그 여러 해 동안
그에 의하여
동화되었고
그 결과(that)
그는
나이의 흔적을
보여 주지 않은
한 체질을
발전시켰습니다.
이것은 또한
그 영적인 영역 안에서도
참됩니다
(is … true;
사실입니다, 해당됩니다).
어떤 형제자매들은
어려움들을
거의 만나지 않았지만,
그들의 생활들 안에
많은 연약함들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is obvious;
명백합니다, 빤히 들여다보입니다).
그들은
주님 앞에서
약한데
(are weak;
힘이 없는데)
(이는)
그들이
아낙 사람들을
충분히
먹어 치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because … have not consumed;
먹지[소모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려움 뒤에 어려움을
(difficulty after difficulty;
곤란[난관, 장애, 반대, 다툼] 후에 곤란을),
유혹 뒤에 유혹을
(temptation;
유혹하는 것을, 시험을)
만났고
또 이긴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활력으로
가득 차 있는데
(이는)
그들이
아낙 사람들을
항상 잘 먹었기 때문입니다
(have fed well on;
충분히 상식常食했기
[제대로 먹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어려움들과
또 우리의 유혹을
먹어야만 합니다.
사탄이
우리의 길 안에 둔
어려움들마다(Every difficulty)
또 유혹들마다
우리를 위한 음식입니다(food).
이것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영적인 진보의
(of … progress;
전진의, 발달의, 발육의)
한 수단입니다
(a … means;
한 방법입니다).
어떤 곤란을
(any trouble;
어떠한 곤경[고난, 괴로움]이든지)
봄도(The sight)
믿음을 가지지 않는
사람들의 그 마음 안으로
두려움이 엄습하게 하지만
(strikes terror;
공포가 덮치게 하지만),
그분을(Him) 신뢰하는 사람들은
“여기에 내 음식이 옵니다!”
라고 말합니다.
주님께
찬양과 또 감사를 드립시다,
우리의 모든 시련들은
(trials;
고난들은, 시험들은, 골칫거리들은)
예외 없이,
우리를 위한
밥입니다.
시련들마다(Every trial)
우리가
그것을
(of it; 그것에서)
먹은 후에
(after we have eaten)
성장을 가져옵니다.
한 시련 뒤에
또 하나를
우리가 받아들일 때,
우리는
더욱 더 풍부하게
영양분을 공급 받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 전투에
참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배고프게 될 것입니다.
매일의 만나는
충분히 좋지 않습니다
(is not good enough;
충분하게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그 적을
취해야만 하고
또 삼켜 버려야만 합니다.
그 적은
우리의 음식이 될 것이고,
또 그를 삼키는 것은
우리의 만족이 될 것입니다.
형제자매님들,
여러분과 저는
살아 있는 믿음을 가지고
계속 나아가야만 하며,
그 전투를 계속해야만 하고
(to take up the battle),
그 적을 삼켜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이익을 위하여 싸우는
오늘날의 갈렙들로서,
우리가
그 좋은 땅으로 예표되시는
모든 것을 포함하시는
그리스도의(of)
한 이상을 보고,
또 그 사탄적인 혼돈을
(chaos;
혼란을, 무질서를)
정복하며
(conquer;
극복하며, 이기며, 물리치며)
또 그 신성한 경륜 안에서
승리하는 것은
중대합니다
(crucial;
결정적입니다, 필수적입니다):
그 좋은 땅,
곧 가나안의 그 땅은
모든 것을 포함하시는 그 그리스도,
곧 모든 것이시고
또 모든 것 안에 계시며
또 우리에게
각각의 모든 것이신
그 그리스도의
한 예표입니다:
그 좋은 땅은
이스라엘의 그 자손이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제공했습니다
(provided;
공급했습니다, 주었습니다):
물, 밀, 보리,
포도나무들, 무화과나무들,
석류나무들, 올리브나무들,
동물들, 젖, 꿀,
돌들, 철, 구리 등입니다.
그 좋은 땅은
확실히
(surely; 분명히)
모든 것을 포함하시는
그 그리스도,
곧 우리의 상속 재산으로서
우리에게 주어지신
그 삼일 하나님의 그 체현의
한 예표입니다.
그 좋은 땅을 소유하기 위하여,
우리는
영적인 전투에
참전하여
그 사탄적인 혼돈을
정복하고
또 그 신성한 경륜 안에서
승리를 거둘
(triumph;
이길, 극복할, 개가凱歌를 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그 우주의 그 역사는
하나님의 경륜과
또 사탄의 혼돈의
한 역사입니다:
사탄은
혼돈의 그 근원이고,
또 하나님 그분 자신께서는
그 신성한 경륜이십니다.
그 성경 안에서와
또 우리의 체험 안에서
모두,
그 사탄적인 혼돈은
항상
그 신성한 경륜과 함께
계속 갑니다
(goes along with;
진행합니다).
우리를
혼돈에서부터
구출하심 대신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과 하나가 되어
그 파괴적인 사탄적 혼돈을
정복하고
또 그 건설적인 신성한 경륜을
수행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그 혼돈의 고통을 겪는 동안에,
우리는
그 신성한 경륜을 위하여
서 있고
(to stand for;
…을 나타내고, 옹호하고, 찬성하고)
또 (그 신성한 경륜을)
살아 낼
(live out; 실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이기는 이들은
그 사탄적인 혼돈을
정복하고
또 그 신성한 경륜 안에서
승리를 거둡니다:
그 이기는 이들은
그 혼돈의 고통을 겪지만
(suffer the chaos;
그 혼란에 시달리지만)
실망하게 되거나
낙담하게 됨 대신에,
그들은
강하게 되고
(are strengthened;
강화되고, 더 튼튼하게 되고, 격려받고)
또 능력을 받아
(are … enabled;
자격을 받아, 할 수 있게 되어)
그 진리에 따라
그 신성한 경륜을 위하여
서 있고
또 (그 신성한 경륜을)
살아 냅니다.
우리는
모든 것에 충분하신
(all-sufficient;
모든 것들에 충분한 능력이 있으신)
그 은혜이신
과정을 거치셨고
또 완결되신
그 삼일 하나님에 의하여
그 혼돈을
정복합니다.
우리는
주님에 의하여
그분과 하나가 되어
그분의 적을 정복하도록,
곧 그를 이기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 중에 어떤 사람들은
오늘날
너무 많은 혼돈이 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 우리는
이것에서부터 밖으로
우리를 구출하시도록
주님께 구하기를
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구출하심 대신에,
혼돈이 우리의 장소에 와서
그 결과(so that)
우리가 어떻게
그분과 하나가 되어
그것을 정복하는지를,
곧 그것을 이기는지를
배우도록
주님께서
허락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회복 안에 있고,
이는(which; 주님의 회복은)
그 땅 위에서
하나님의 경륜의(of; …을)
수행함을 위하여 있습니다.
… 그 이기는 이들은
현재의 이 혼돈에서부터 밖으로
구출되지 않습니다.
대신에,
그 이기는 이들은
모든 그 파괴적인 혼돈을
정복하고
그 유일한 건설적인 경륜 안에서
승리를 거둡니다.
1일
고전 10:11
그들에게 일어난
이러한 일들은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그 일들이
성경에 기록된 것은
시대들의 끝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경고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민 14:29-30
너희 시체는
이 광야에서 뒹굴 것이다.
… 군대의 수에 든
사람들 가운데
나에게 불평한 사람들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내가 너희에게 주어
살게 해 주겠다고
맹세한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0장 6절에서
‘본보기’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 고린도전서는
구약에 나오는
이스라엘 자손의 역사를
신약의 믿는 이들의
예표로 삼는다.
5장과 7장과 8장에서
그들은
그리스도를
그들의 유월절로 체험했고
무교절을 지키기 시작했다.
이제 10장에서
그들은
침례를 받아
모세(그리스도)에게 속하게 되었으며
홍해(그리스도의 죽음)를 건넜다.
이제 그들은
좋은 땅(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을 향한
여행(그리스도인의 경주)을 하기 위해
영적인 음식을 먹고
영적인 물을 마시고 있다.
또한 10장
6절부터 11절까지에
설명되었듯이,
하나님께
악한 일을 범하였던
이스라엘 자손들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라고
경고를 받는다
(11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부르신 목표는
그들이
약속된 땅에 들어가
그 땅의 풍성을 누림으로
이 땅에서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고
하나님의 표현이 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비록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유월절을 통해
구속받고,
이집트인들의 폭정에서
구출되고,
하나님의 산에
이끌려
하나님의 거처인
성막에 대한 계시를
받았지만,
거의 모든 사람이
광야에서 쓰러져 죽음으로써
이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는데
(히 3:7-19),
이는
그들의 악행과 불신 때문이었다.
오직 갈렙과 여호수아만이
이 목표에 도달하여
좋은 땅 안으로
들어갔다
(민 14:27-30).
이것은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
구속받고
사탄의 속박에서
구출되고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계시 안으로
이끌렸을지라도,
여전히 하나님의 부르심의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현시대에서
하나님의 표현이 되고
왕국 시대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가장 충만한 누림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마 25:21, 23),
우리의 좋은 땅이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
이러한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빌 3:12-14)
하나님의 왕국을 위한
그분의 풍성을
누리는 데
실패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신약의 모든 믿는 이들에게
엄중한 경고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우리의 역사로
읽을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가 없다면
우리도
이스라엘 자손과
똑같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극도로 깨어 있어야 한다.
우리는
교회, 교회생활,
교회의 길, 교회의 터를
만지는 것을
작은 일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 교회가 없다면,
하나님은
나아가실 길이 없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의 길이었다.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그분의 목적을
성취하실 수 없었다면,
그분은
이 땅에서
길을 가지실 수 없었을 것이다.
오늘날 교회는
하나님의 길이다.
그러므로 교회를 만지는 것,
즉 교회에 대해
옳고 그름을 말하는 것은
매우 엄중한 문제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은
유월절 어린양을 통한 구속,
이집트에서 나오는 것,
하늘에 속한 만나로
양육하는 것,
갈라진 반석에서 나온 생수로
목마름을 해결하는 것,
가나안 좋은 땅의
풍성에 참여하는 것을
포함한다.
모든 이스라엘 사람은
유월절 어린양과
하늘에 속한 만나와 생수에
참여했지만,
이집트에서 나온 사람들 중에서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좋은 땅 안으로 들어가
그 땅에 참여했으며
나머지 모든 사람들은
광야에서 쓰러졌다
(민 14:30, 고전 10:1-11).
모두가 구속받았을지라도,
오직 두 명의 이기는 이들인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좋은 땅을
상으로 받았다.
이스라엘 자손에 대해
묘사한 것에 따르면,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속받은
모든 믿는 이들이
교회 시대와 오는 왕국 시대 모두에서
그들의 안식과 만족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