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Vital Sketch of
the Divine Revelation
in the Books of Exodus, Leveticus, and Numbers
concerning God’s Economy
with His Chosen and Redeemed People
하나님의 선택되고 또 구속되는 백성과 함께 하는
그분의 경륜에 관한
출애굽기, 레위기, 또 민수기의 그 책들 안에 있는
그 신성한 계시의
한 활력적인 스케치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한 개요
[매우 중요한 밑그림])
우리는
네 표어를 사용하여,
이 핵심 개요의
몇 가지 중요한 방면들을
요약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구속하신
백성은
타락으로 인한 속박에서
산 바 되고,
구속받고,
구원받는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구속하신
백성은
그리스도를 누리고 있고,
계시를 받고 있으며,
삼일 하나님 안에서 건축되고 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구속하신
백성은
제사장 군대로 편성되어
하나님을 위해 싸우고
하나님과 함께 여행한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구속하신
백성은
좋은 땅이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소유하도록
하나님의 소유가 된다.
이 네 표어는
구약의 성도들과
신약의 성도들
모두에게 적용되는데,
이는 신약은
구약 안에 감추어져 있고
구약은
신약 안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 눅 24:25-27, 44-49.
성도들은
선택받고
구속받고
타락으로 인한 속박에서 구원받았다.
성도들은
세상의 강탈과
사탄의 속박에서
구원받았다.
구원받은 후에
우리는
지금
그리스도를 누리고 있다.
시나이산에 있던
이스라엘 자손처럼
우리 또한
신성한 계시를 받았고,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으로,
곧 아버지의 체현이신 아들과
아들의 실재화이신 그 영으로
건축되고 있다.
더 나아가,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싸우고
하나님과 함께 여행하는
제사장 군대로 편성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좋은 땅이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소유하도록
각 방면에서
하나님에 의해 준비되었다.
‘경륜’이라는 단어는
구약의 책들에서
사용되지 않지만,
(출애굽기와 레위기와 민수기와 같은)
구약의 책들에 있는
예표는
하나님의 경륜을 밝혀 준다.
하나님의 경륜은
하나님의 마음의 갈망을 이루도록
그분의 계획을 성취하기 위한
하나님의 가정 행정이다.
이 갈망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을 뿐 아니라,
또한 거듭나고,
거룩하게 되고,
변화되고,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의 체현이신
그리스도의 형상과 같은 형상이 된
한 백성을 얻으시는 것이다.
결국 이 백성은
영광 안으로,
곧 삼일 하나님의 단체적인 표현 안으로
이끌릴 것이다
― 딤전 1:3-4, 18, 6:3,
고전 4:17, 딤후 1:6-9, 4:7.
구약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그림을 가지며,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경륜에 관한
분명한 말씀을 가진다.
구약에 나오는
이스라엘 자손의 역사는
신약에 나오는
믿는이들의 역사에 대한
예표이다
― 고전 10:6, 11, 롬 15:4.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구속하신
백성은
하나님의 증거로서
훈련받고 건축되기 위해
하나님 자신과
그분의 경륜에 관한
신성한 계시를
받아야 한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의 백성은
선택받았고,
출애굽기에서
그들은
하나님과 그분의 거처에 관한
신성한 계시를 받았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은
유월절에 실제로 이루어진 것처럼
하나님의 초기의 구원에 참여한 후에
신성한 계시를 받았다
― 출 12장, 고전 5:7-8.
하나님은
그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셔서
하나님의 산인
시나이산으로 인도하셨으며,
그곳에서
그들에게
그분 자신과
그분의 거처에 대한
완전한 계시를 주셨다.
우리는
이 계시가
하나님의 거처를 건축하기 위한
‘청사진’을 담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신성한 계시는
하나님의 선민이
하늘에 속한
만나와
매 맞은 반석에서 흘러나온
생수의
공급을 맛본 것처럼
신성한 공급을
누리는 것을 통해
임했다
― 출 16:1-17:7, 고전 10:3-4.
신성한 계시는 또한
하나님의 선민이
이집트 사람들과 아말렉 족속과
싸울 때처럼,
하나님의 원수들에게
맞서 싸우는
하나님의 전투에 참여하는
군대가 되는
체험을 통해
임했다
― 출 14장, 17:9-16, 갈 5:16-17, 벧전 2:11.
결국 출애굽기 19장에서,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구속하신
백성은
하나님의 산에
도달하고 도착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을
파라오의 손에서 구출하시려고
모세를 보내셨을 때,
그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낸 후에
그들이
이 산에서
주님을 섬길 것이라고
모세에게 말씀하셨는데
(출 3:12),
출애굽기 19장에서
이 말씀이 성취되었다.
시나이산에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 자신에 관한
계시를 받음으로써,
하나님께로 분별되었다.
율법은
하나님에 대한 묘사,
곧 하나님 자신에 대한 계시이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사랑과 빛과
거룩함과 의의
하나님이신 것을
계시한다
― 출 20-24장.
율법은
하나님에 대한
그러한 그림이다.
따라서 율법은
하나님의 증거라고 불리고
(출 25:16, 21, 31:18),
율법이 두어진 궤는
증거궤라고 불리며
(25:22),
성막은
증거의 성막이라고 불리었다
(38:21).
시편에서
율법은
자주 증거로 불린다
(19:7, 25:10, 119:2).
이 증거는
하나님에 대한
묘사 곧 그림이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거룩하게 된 백성으로서
거룩하신 하나님께 분별되기 위해
하나님 자신에 대한
계시를 받았다.
레위기는 특별히
이 문제를 강조한다
― 레 11:44.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증거인
율법의 실재이시다.
하나님의 증거는
하나님의 존재를
생생하게 묘사하시는
(시 119:2, 9, 11, 14-15, 133)
하나님의 체현이신
그리스도를
(골2:9)
상징한다.
율법을 지키는 것의
실재는
하나님을 살고
하나님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한 생활,
곧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 안에 있는 생활은
하나님-사람의 생활,
곧 하나님의
확대되고 확장된 표현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영의
넘치는 공급으로 말미암아,
지속적으로
자아를 부인하고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하나님의 증거이신
그리스도를 사는 생활이다
― 마 16:24, 갈 2:20, 빌 1:19-21상, 롬 8:4.
하나님 자신에 대한
신성한 계시를 받은 것에 더하여,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의 경륜에 관한
신성한 계시를 받았는데,
이것은
신성한 삼일성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건축되어
이 땅에서의
그분의 증거를 위한
그분의 거처가 되기 위해서였다
― 출 25-40장.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과 함께 건축되어야 한다는 것은
성막의 건축을 위해
사용되어야 했던
재료들을 통해 알 수 있다.
성막의 널빤지들은
금을 입힌
아카시아 나무로 만들어졌다.
아카시아 나무 널빤지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예표하고,
널빤지에 입혀진 금은
신성한 인격을 예표한다
― 출 26:15-30.
이처럼
아카시아 나무 널빤지들이
금으로 입혀진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과 함께 건축되어
그분의 거처가 되는 것을
상징한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거처를 위한
건축 재료일 뿐 아니라,
하나님 자신도
건축 재료이신 것을 보게 된다.
성막 안에서
우리는
신성한 삼일성에 대한
그림을 볼 수 있다.
궤와
임재의 떡 상과
분향단은
모두 아들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아버지는
금으로 상징되시는데,
이는
성경의 예표에서
금이
하나님의 신성한 본성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 영은
등잔대의 일곱 등잔에 있는
기름으로 상징되신다.
등잔에
기름이 없다면
등잔은 아무 쓸모가 없고
성막 안에는
어떤 빛도 없을 것이다.
또한 단일한 실체인
등잔대는
삼일 하나님을
상징한다.
금은
아버지를 상징하고,
대의 형태는
아들을 상징하며,
등잔과 기름은 둘 다
그 영을 상징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삼일 하나님과 함께
건축되어
이 땅에 있는
그분의 거처가 되는 것을
계시해 준다.
성막의
마흔여덟 개의 널빤지는
레위인들에게 주어진
마흔 여덟 성과
일치한다.
그 성들 가운데 여섯은
도피성으로 지정되었다.
도피성들과 관련하여
가장 두드러진 점은 바로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는 것이다
― 민 35:6-7, 9-34.
결국 레위인들의
이 마흔여덟 성은
유일한 성인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될 것이다.
출애굽기에 계시된
성막은
이 유일한 성의
축소판이다.
신약에서
하나님의 증거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이다.
그리고 영원 안에서
이 증거는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될 것인데,
새 예루살렘 또한
장막(혹은 성막)이라고 불린다
― 계 1:2, 9, 19:10, 21:3.
구약에서
성막은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하였고,
신약에서
성막은
먼저는 그리스도이며
(요 1:14),
그다음으로는
그리스도의 확대인
교회이다.
영원 안에서는
궁극적이며 완결된 성막인
새 예루살렘이 있을 것이다.
각각의 경우에서
두드러진 점은
성막이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이다.
할렐루야,
삼일 하나님은
우리가 들어갈 수 있는 분이시다!
레위기에서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을
하나님께 경배하고 참여하도록,
그리고 거룩하고 정결하며 기뻐하는
삶을 살도록
훈련시키셨다.
민수기의 중심 사상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삶의
의미와 증거와 중심이시며,
그들의 여정과 전쟁에서
인도자와 길과 목표이시라는 것이다.
성경 전체는
우리에게
한 가지,
곧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의도를
보여 준다.
하나님의 의도는,
그리스도를
자신의 삶의
의미와 증거와 중심과
인도자와 길과 목표로 취하고,
계속 나아가
하나님을 위해 싸우는
군대로 편성된
한 백성을 얻으심으로써,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될
그분의 왕국과
그분의 집으로 건축된
한 백성을
얻으시는 것이다
― 창 1:26-28, 출 12:41, 51, 13:18,
마 16:16-19, 엡 6:10-12,
계 17:14, 19:11-16, 21:2, 10-11.
민수기 전체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구속하신
백성이
거룩한 전쟁을 수행하도록
군대로 편성되어야 할
필요성을 계시한다
― 딤전 1:18, 딤후 2:3-4.
거룩한 군대로 편성되기 위해
하나님의 백성은 먼저
그들의 생명의 성숙에 따라
계수되어야 했다
― 민 1:3, 18.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구속하신
백성은 또한
한 몸으로 건축되었다
― 민 1:44-46.
그런 다음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과 함께 여행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여행에서
이스라엘 자손은
낮에는 구름으로,
밤에는 구름 속의 불로 상징되는
하나님의 임재를 가졌다
― 출 33:14, 40:36-38, 민 9:15-23.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과 함께 여행하는 동안
여호와의 천사께서
앞장서셨다
(출 32:34).
‘여호와의 천사’라는 칭호는
출애굽기 3장
2절부터 6절까지에 계시된 대로
구약에서 사용되는
그리스도에 대한
특별한 칭호이다.
이스라엘 자손은
여행하는 중에
삼일 하나님이신
여호와와 함께
움직이고 행하며 살았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구속하신
백성은
그 크고 두려운 광야를 통과하면서
온갖 시련과 고난,
그리고 신성한 돌봄과 공급과 징계를
받았다
― 신 1:19, 8:2-5.
광야를 통과하는 여정에서
이스라엘 자손은
마흔두 지점의 정거장을 통과하여,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좋은 땅 안에 있는
안식 안으로 들어갔다
― 민 33:1-49, 수 1:2.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구속하신
백성은
제사장 군대로서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을 위해 싸웠다
― 민 4:23, 30, 35, 벧전 2:5, 9.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을 위해
싸우면서
아랏 왕을 패배시켰고
그의 백성을 멸망시켰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가나안 족속 가운데서
첫 번째 원수를 이겼다
― 민 21:1-3.
하나님의 백성은 또한
아모리 족속의 시혼왕과
그의 백성,
그리고 바산 왕 옥과
그의 백성을
패배시켰다.
이것은
그들이
가나안의 두 ‘문지기’를
이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 민 21:21-35.
이스라엘 자손은 또한
미디안 족속과
그들의 다섯 왕을
패배시켰다.
그들을 패배시킴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의 입구를 지키는
군대를 이겼다
― 민 31:1-12.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구속하신
백성에게
패배한 왕들은
공중에 있는
영적 세력들과
지배자들과
권세자들을
상징한다.
우리는
그들을
반드시 패배시켜야 한다
― 엡 6:10-20.
하나님의 백성이
왕들에게 맞서 싸운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좋은 땅에 들어가
그곳에
하나님의 왕국을
확장하고 세우기 위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구속하신
백성은
하나님의 거룩한 전쟁을 수행하는
제사장 군대로서,
하나님의 거처인
증거의 성막과 함께
증거궤를 짊어지고 다녔다.
출애굽기의 핵심 단어는
‘구속’, ‘인도’, ‘계시’, ‘건축물’이다.
레위기의 핵심 단어는
‘교통’, ‘봉사’, ‘거룩함’이다.
민수기의 핵심 단어는
‘편성’, ‘여정’, ‘전쟁’이다.
민수기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구속하신
백성이
하나님을 위해 싸우고
하나님과 함께 여행하는
제사장 군대로 편성되어,
좋은 땅이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소유하도록
하나님에 의해
준비되는 것에 관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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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replies on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구속하신 백성과 연관된 하나님의 경륜과 관련하여 출애굽기와 레위기와 민수기에 나오는 신성한 계시의 핵심 개요”
6일
엡 6:10-12
마지막으로 말합니다.
여러분은
주님 안에서,
그리고 그분의 강한 권능 안에서
굳세게 되어야 합니다.
마귀의 계략에 대항해
설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완전한 전투 장비로
무장하십시오.
우리의 싸움은
피와 살이 있는 사람들에게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들과
권세자들과
이 어둠의 세상 지배자들과
하늘들의 영역에 있는
악한 영적인 세력들에게
대항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을 위해
싸우면서
아랏 왕을 패배시켰고
그의 백성을 멸망시켰다
(민 21:1-3).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가나안 족속 가운데서
첫 번째 원수를 이겼다.
하나님의 백성은 또한
아모리 족속의 시혼왕과
그의 백성,
그리고 바산 왕 옥과
그의 백성을
패배시켰다
(민 21:21-35).
이것은
그들이
가나안의 두 ‘문지기’를
이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스라엘 자손은 또한
미디안 족속과
그들의 다섯 왕을
패배시켰다
(민 31:1-12).
그들을 패배시킴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의 입구를 지키는
군대를 이겼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구속하신
백성에게
패배한 왕들은
공중에 있는
영적 세력들과
지배자들과
권세자들을
상징한다.
우리는
그들을 반드시 패배시켜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이
왕들에게 맞서 싸운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좋은 땅에 들어가
그곳에
하나님의 왕국을
확장하고 세우기 위한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원칙은 동일하다.
우리가
공중에 있는
지배자들과
세력들과
권세자들을
패배시킬 때,
하나님의 왕국은
분명히 확장되고 세워질 것이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구속하신
백성은
하나님의 거룩한 전쟁을 수행하는
제사장 군대로서,
하나님의 거처인
증거의 성막과 함께
증거궤를 짊어지고 다녔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생활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증거와 함께
하나님 자신을
짊어지고 있음을
가리킨다.
… 교회가
하나님의 증거를
짊어지고 있다면,
교회는
하나님의 거처인 것이다.
증거의 성막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구속하신
백성이
하나님으로 건축되어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거처가
(신약에서는 교회가)
된 것을
의미한다.
영적으로 말해서,
이스라엘의 역사와
교회의 역사는
하나이다.
… 출애굽기와 레위기와 민수기에
기록된 것은
사도행전과 서신서들에
기록된 것의
예시(豫示)이다.
증거궤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구속하신
백성 가운데서
하나님의 경륜의 중심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 가운데
언약궤를 가지고 있다.
즉 우리는
직접적으로 우리와 함께하시는
그리스도를 소유한다.
언약궤가 있는 성막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구속하신
백성이 짊어진
증거였다.
광야에 있던 기간 동안
… 이스라엘 자손은
… 생계를 위해
상업이나 일에
종사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만나를 보내시고
반석에서 물을 공급하심으로써
그들의 생계를 돌보셨다.
사십 년의 기간 동안
여호와의 천사가
앞장서서 인도하신
하나님의 백성은
광야에서
진을 치고
여행했다.
여러 민족들이 보기에,
이스라엘 자손은
그들의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보기에,
교회생활 안에서
하나님의 증거를 짊어지고
돌보기 위해
자신을 드려 온
우리 또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에 실지로
게으르고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사람들은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다
(마 20:3).
민수기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구속하신
백성이
하나님을 위해 싸우고
하나님과 함께 여행하는
제사장 군대로 편성되어,
좋은 땅이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소유하도록
하나님에 의해
준비되는 것에 관한 기록이다.
다음 세대는
첫 세대만큼
많은 과정을 통과하지 않았지만,
첫 세대가 체험한 것의
유익을 물려받았다.
나는 아마도
연장한 세대가
젊은 세대에게
그들이 체험하고 누리고 겪은
모든 것을 말해 주었으리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젊은 세대에게 말해 주는 것은
다음 세대를 일으키고 세우는
일의 일부였다.
첫 세대가 체험했던 것은
헛된 체험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다음 세대에게 전수되었기 때문이다.
5일
딤전 1:18
아들 디모데여,
전에 그대를 두고 했던
예언에 따라
내가
그대에게
이 명령을 합니다.
그대는
그 예언을 따라
선한 싸움을 싸우고,
딤후 2:3-4
그대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훌륭한 군인처럼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십시오.
군인으로 복무하면서
자기 생활 문제에 얽매이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은
모집한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민수기 전체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구속하신
백성이
거룩한 전쟁을 수행하도록
군대로 편성되어야 할
필요성을 계시한다.
거룩한 군대로
편성되기 위해
하나님의 백성은 먼저
그들의 생명의 성숙에 따라
계수되어야 했다
(민 1:3, 18).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구속하신
백성은
또한 한 몸으로
건축되었다
(민 1:44-46).
우리가
이스라엘 자손이
시나이산 기슭에서
어떻게 대형을 이루었는지를
고려한다면,
우리는
그들이 참으로
한 몸으로 편성되었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계수되고
한 몸으로 건축된 후에
하나님과 함께 여행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여행에서
이스라엘 자손은
낮에는 구름으로,
밤에는 구름 속의 불로 상징되는
하나님의 임재를 가졌다
(출 33:14, 40:36-38, 민 9:15-23).
구름과 불은 모두
삼일 하나님의 표현이다.
… 이 여행에서
그들은
하나님 자신에 의해
인도를 받았다.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과 함께 여행하는 동안
여호와의 천사께서
앞장서셨다
(출 32:34).
‘여호와의 천사’라는 칭호는
출애굽기 3장에 계시된 대로
구약에서 사용되는
그리스도에 대한
특별한 칭호이다.
여호와의 천사는 항상
앞장서시면서
이스라엘 군대 앞에서 행하셨다.
이스라엘 자손은
여행하는 중에
삼일 하나님이신
여호와와 함께
움직이고 행하며 살았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에 대한
예표이자 그림이다.
날마다 우리는
과정을 거치시고 분배하시는
삼일 하나님과 함께
움직이고 행하며 생활한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구속하신
백성은
그 크고 두려운 광야를 통과하면서
온갖 시련과 고난,
그리고 신성한 돌봄과 공급과 징계를
받았다
(신 1:19, 8:2-5).
이것 또한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대한
그림이다.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놀랍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의 예표에 따르면,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크고 두려운 광야를
통과하는 생활이다.
이 광야에서
우리에게는
온갖 종류의 시련과 고난이 있지만,
또한 신성한 돌봄과 공급도 있다.
더욱이 이스라엘 자손처럼
우리는 자주
‘말을 안 듣는 자녀들’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돌봄과 공급 외에도
그분의 징계가 필요하다.
광야를 통과하는 여정에서
이스라엘 자손은
마흔두 지점의 정거장을 통과하여,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좋은 땅 안에 있는
안식 안으로 들어갔다
(민 33:1-49, 수 1:2).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구속하신
백성은
제사장 군대로서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을 위해 싸웠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을 위해 싸우려면,
우리는 먼저
그분과 함께
움직이고 행하며 살아야 하고,
또한 광야에서
많은 것들을 통과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만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싸울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된다.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과 함께 싸웠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싸웠다.
오늘날 교회 생활 안에서
우리 또한
하나님을 위해 싸워야 한다.
이것은
우리의 교회생활이 사실상
주로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것임을 가리킨다.
그러나 교회생활에 대한
우리의 느낌은
너무도 주관적이고
이기적일 수 있다.
집회에서 누군가가
“교회 생활 안으로 오기 전에
내게는 집이 없었습니다.
이제 교회 안에서
나는 집에 있습니다.
오, 교회생활은
얼마나 좋은지!”
라고 말하면서
간증할 수 있다.
물론 우리는
교회 생활 안에서
집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교회생활이
단지 우리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것임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처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주님,
교회생활은 사실상
당신의 생활입니다.
당신은
이런 식으로 사시기를 원하고,
우리는
당신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당신과 함께
살고 움직이지 않는다면,
당신은
만족을 얻지 못하실 것입니다.
당신은
홀로 있기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움직임 안에서
당신과 동행하도록
우리를 선택하셨고,
구속하셨으며,
구원하셨습니다.
주님,
우리의 교회 생활은 참으로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4일
출 26:15
“너는
아카시아 나무로
성막을 세울
널빤지들을 만들어라.
시 84:1-4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혼이
여호와의 뜰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 주의 두 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
하나님 자신에 관한
신성한 계시를 받은 것에 더하여,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의 경륜에 관한
신성한 계시를 받았는데,
이것은
신성한 삼일성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건축되어
이 땅에서의
그분의 증거를 위한
그분의 거처가 되기 위해서였다
(출 25-40장).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과 함께
건축되어야 한다는 것은
성막의 건축을 위해
사용되어야 했던
재료들을 통해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성막의 널빤지들은
언약궤처럼
금을 입힌 아카시아 나무로
만들어졌다.
아카시아 나무 널빤지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예표하고,
널빤지에 입혀진 금은
신성한 인격을 예표한다.
이처럼
아카시아 나무 널빤지들이
금으로 입혀진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과 함께 건축되어
그분의 거처가 되는 것을
상징한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거처를 위한
건축 재료일 뿐 아니라,
하나님 자신도
건축 재료이신 것을
보게 된다.
성막 안에서
우리는
신성한 삼일성에 대한
그림을 볼 수 있다.
성막이
아들 그리스도를
계시해 준다는 것을
보기는 다소 쉽다.
예를 들어,
궤와
임재의 떡 상과
분향단은
모두 아들을 상징한다.
그러나 우리는
어디에서
아버지 하나님과
영 하나님을 보는가?
아버지는
금으로 상징되시는데,
이는
성경의 예표에서
금이
하나님의 본성을 상징하고,
하나님의 본성은 틀림없이
아버지 하나님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영 하나님은
등잔대의 일곱 등잔에 있는
기름으로 상징되신다.
등잔에
기름이 없다면
등잔은 아무 쓸모가 없고
성막 안에는
어떤 빛도 없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또한
단일한 실체인
등잔대가
삼일 하나님을 상징한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금은
아버지를 상징하고,
대의 형태는
아들을 상징하며,
등잔과 기름은 둘 다
그 영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성막에서
우리는
삼일 하나님,
곧 기구로 상징되신
아들과
금으로 상징되신
아버지와
기름으로 상징되신
그 영을 보며,
또한 아카시아 나무로 상징된
인성을 본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삼일 하나님과 함께 건축되어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거처가 되는 것을
계시해 준다.
성막 전체가
하나님의 증거이다.
… 이것은
성막이
삼일 하나님에 대한
묘사였음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삼일 하나님께서 사실상
그분 자신의 거처이시다.
왜냐하면 거주자와 거처가
하나이기 때문이다.
거주자가 곧 거처이다.
성막의 마흔여덟 개의 널빤지는
레위인들에게 주어진
마흔여덟 성과 일치한다.
그 성들 가운데 여섯은
도피성으로 지정되었다.
도피성들과 관련하여
가장 두드러진 점은 바로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레위인들의
이 마흔여덟 성은
유일한 성인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될 것이다.
출애굽기에 계시된
성막은
이 유일한 성의
축소판이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증거는
성막이었고,
신약에서
하나님의 증거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이다.
그리고 영원 안에서
이 증거는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될 것인데,
새 예루살렘 또한
장막(혹은 성막)이라고 불린다
(계 21:3).
따라서 구약에
성막이 있었고,
신약에도
성막이 있으며,
영원 안에도
성막이 있을 것이다.
구약에서 성막은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하였고,
신약에서 성막은
먼저는
그리스도이며
(요 1:14),
그다음으로는
그리스도의 확대인 교회이다.
영원 안에서는
궁극적이며 완결된 성막인
새 예루살렘이 있을 것이다.
각각의 경우에서
두드러진 점은
성막이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이다.
성막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오늘
우리에게 열려 있다.
할렐루야,
삼일 하나님은
우리가 들어갈 수 있는 분이시다!
3일
히 1:3
그분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시고,
하나님의 실질의 표현이십니다.
그분은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들어 주시고
보존해 주시며,
죄들을
정결하게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 있으신 분의
오른편에 앉으셨습니다.
시 119:97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
시 119:119
… 내가
주의 증거들을
사랑하나이다
신약에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묘사는 가지지만,
하나님에 대한
그림은 가지지 못한다.
요한은
하나님께서
사랑과 빛이심을
우리에게
분명히 알려 주며,
바울은
사랑과 빛이신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거룩하시고 의로우시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준다.
십계명은
하나님의 묘사이시자
하나님의 형상의 표현이신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예표이다.
히브리서 1장 3절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실질의 표현
혹은 나타난 형상이라고
말한다.
… 그분을 보는 것이
곧 하나님을 보는 것이다.
율법은 또한
하나님에 대한 묘사이다.
율법의 계명들을 연구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랑과 빛이시고,
거룩하시며 의로우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율법은
하나님에 대한
그러한 그림이다.
따라서 율법은
하나님의 증거라고 불리고
(출 25:16, 21, 31:18),
율법이 두어진 궤는
증거궤라고 불리며
(25:22),
성막은
증거의 성막이라고 불리었다
(38:21).
시편에서
율법은 자주
증거로 불린다
(19:7, 25:10, 119:2).
이 증거는
하나님에 대한
묘사 곧 그림이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거룩하게 된 백성으로서
거룩하신 하나님께
분별되기 위해
하나님 자신에 대한
계시를 받았다.
레위기는 특별히
이 문제를 강조한다.
예를 들어
레위기 11장 44절은
“왜냐하면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너희 자신을
거룩하게 분별하여
거룩하여져라.
왜냐하면 내가
거룩하기 때문이다.”
라고 말한다.
우리는
창세기의 첫 장에서
하나님께서
그분의 창조의 일에서
많은 것들을 성취하셨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창세기 1장은
우리의 하나님이
어떠한 하나님이신지를
계시해 주지 않는다.
우리는
이 장에서
그분이
사랑의 하나님이신지
미움의 하나님이신지,
어둠의 하나님이신지
빛의 하나님이신지를
알지 못한다.
우리는
그분께서
거룩하신지 세속적이신지,
의로우신지 불의하신지를
모른다.
율법이
우리에게 주어져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진과 묘사를
가지게 되었고,
그 결과
하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를
알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하나님은
율법을
자신의 증거로 여기신다.
하나님의 증거인 율법은
그리스도에 대한 예표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에 대한
생생한 그림,
즉 하나님에 대한
살아 있는 정의와 묘사이시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참된 증거이시다.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 모두의
관념과는 반대로,
율법이 주어진 것은
우리가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하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를
계시하기 위해서였다.
하나님의 증거인 율법은
진정 사랑스럽다.
로마서 7장 12절에서
바울은
“율법은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한 것입니다.”
라고 말한다.
14절에서 바울은
“우리는
율법이
영적인 것인 줄 압니다.”
라고 말한다.
율법은
하나님의 묘사이기 때문에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고 영적이다.
율법이
우리 하나님의
사진이기 때문에,
우리는
율법을 사랑해야 한다.
율법은
하나님의 증거이고
(출 16:34, 31:18, 32:15, 40:20, 시 19:7),
하나님의 표현이며,
하나님을
그분의 백성에게
계시하는 것이다.
… 하나님의 율법은
하나님의 속성을 계시한다.
즉 그분께서
질투하시는 분이시고
(출 20:4-6, 고후 11:2),
거룩하신 분이시며
(출 20:7-11),
사랑이 많으신 분이시고
(출 20:6, 12-15, 롬 13:8-10, 갈 5:14),
의로우신 분이시며
(출 20:5),
진실하신 분이시고
(출 20:16, 요일 1:5-6),
순수하신 분이시라는 것을
보여준다
(출 20:2-3, 17).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의 증거와 하나님의 표현인
율법은
하나님의 말씀이시며
하나님의 증거와 하나님의 표현이신
그리스도의 예표이다
(요 1:1, 18, 계 19:13, 1:5, 골 1:15).
율법을 지키는 것의
실재는
하나님을 살고
하나님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러한 생활,
곧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 안에 있는 생활이
하나님-사람의 생활이다.
이 생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의
넘치는 공급으로 말미암아
지속적으로
자아를 부인하고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하나님의 증거이신
그리스도를 살아 내는 생활이며,
하나님의 표현을
확대하고 확장하는 생활이다
(마 16:24, 갈 2:20, 빌 1:19-21상, 롬 8:4, 출 20:1).
2일
엡 1:10
때가 찰 때의
경륜을 위한 것입니다.
이 경륜은
만물,
곧 하늘들에 있는 것들이나
땅에 있는 것들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머리이신 그리스도 아래
통일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엡 3:9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영원부터 감추어져 있던
비밀의 경륜이 무엇인지를
모든 사람에게 밝히어,
‘경륜’이라는 단어는
구약에서는 사용되지 않지만,
신약에서
특히 바울의 서신서들에서
발견된다.
… 비록 이 단어가
출애굽기와 레위기와 민수기에서
사용되지 않지만,
이 책들에 있는 예표는
하나님의 경륜을 밝혀 준다.
하나님의 경륜은
계획과 목적과 안배를 포함하는
하나님의 행정으로서,
그분의 계획을 성취하고
그분의 목적에 도달하여
그분의 마음의 갈망을
이루어 드리기 위한 것이다.
그분의 갈망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을 뿐 아니라,
또한 거듭나고,
거룩하게 되고,
변화되고,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의 체현이신
그리스도의 형상과 같은 형상이 된
한 백성을 얻으시는 것이다.
결국 이 백성은
영광 안으로,
곧 삼일 하나님의
단체적인 표현 안으로
이끌릴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경륜이다.
구약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그림을 가지며,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경륜에 관한
분명한 말씀을 가진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구속하신
백성은
하나님의 증거로서
훈련받고
건축되기 위해
하나님 자신과
그분의 경륜에 관한
신성한 계시를 받아야 한다.
… 창세기에서
하나님의 백성은
선택받았고,
출애굽기에서
그들은
하나님과
그분의 거처에 관한
신성한 계시를 받았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은
유월절에 실제로 이루어진 것처럼
하나님의 초기의 구원에
참여한 후에
신성한 계시를 받았다
(출 12장).
하나님은
그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셔서
하나님의 산인
시나이산으로 인도하셨으며,
그곳에서
이 땅의 인류 가운데 있는
그분의 거처에 대한
완전한 계시를 주셨다.
우리는
이 계시가
하나님의 거처를 건축하기 위한
‘청사진’을 담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은
인류 가운데 거하시기 위하여,
선택받고 구속받았을 뿐 아니라
그분과
그분의 거처에 대한
신성한 계시를 받을 준비가 된
한 백성을 필요로 하신다.
출애굽기가
우리에게 보여 주듯이,
하나님의 백성은
이러한 계시를 받았으며
그것에 따라
성막을 건축했다.
성막이 세워졌을 때
하나님의 영광이
그 위에 내려왔다.
신성한 계시는
하나님의 선민이
하늘에 속한 만나와
매 맞은 반석에서 흘러나온 생수의
공급을 맛본 것처럼
신성한 공급을
누리는 것을 통해
임했다.
신성한 계시는 또한
하나님의 선민이
이집트 사람들과 아말렉 족속과
싸울 때처럼,
하나님의 원수들에게
맞서 싸우는
하나님의 전투에 참여하는
군대가 되는
체험을 통해
임했다.
결국 출애굽기 19장에서,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구속하신 백성은
하나님의 산에
이르렀고 도착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을
파라오의 손에서 구출하시려고
모세를 보내셨을 때,
그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낸 후에
그들이
이 산에서
주님을 섬길 것이라고
모세에게 말씀하셨는데
(출 3:12),
출애굽기 19장에서
이 말씀이 성취되었다.
시나이산에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 자신에 관한
계시를 받음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하게 된 백성으로서
거룩하신 하나님께로 분별되었다
(출 20-24장).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 자신에 관한 계시는
율법을 가리킨다.
율법은
하나님에 대한 묘사이다.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의 건축물에 관한
계시를 받기 전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자신이 어떠한 하나님이신지를
보여 주시기 위해
그분에 대해
묘사해 주셨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사랑과 빛의 하나님이시며,
거룩하시고 의로우시다는 것을
계시한다.
그러므로 사랑, 빛, 거룩함, 의는
전능하신 삼일 하나님의
특성들을 묘사하는
중요한 단어들이다.
사랑과 빛의 하나님이신 그분은
전적으로 거룩하시다.
즉 그분은
일반적이지 않으시며,
우주 안의 다른 모든 것과
다르시고 분별되신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전적으로 의로우시다.
그분은
그분 자신에 대해 의로우시고,
자신이 하시는 모든 일에서 의로우시며,
사람과 그분의 모든 피조물에 대해 의로우시다.
이것이
출애굽기 20장부터 24장까지의
그림에 계시되신
하나님이다.
신언노트, 2019 08 11
하나님의 선택되고 또 구속되는 백성과 함께 하는
그분의 경륜에 관한
출애굽기, 레위기, 또 민수기의 그 책들 안에 있는
그 신성한 계시의
한 활력적인 스케치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한 개요,
매우 중요한 한 밑그림)
우리는
네 표어들을
(four slogans; 네 개의 구호들을)
사용하여
이 활력적인 스케치의
어떤 중대한 측면들을
(certain crucial aspects;
약간의[어느 정도의] 결정적인 양상들을)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되고 구속되는 백성은
그 타락의 속박에서부터
얻어지고
(purchased;
구매되고, 사지고, 취득되고),
구속되며,
구원받습니다.
하나님의
선택되고 구속되는 백성은
그리스도를 누리고 있고,
계시를 받고 있으며,
그 삼일 하나님 안에
건축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되고 구속되는 백성은
제사장의 한 군대 안으로
형성되어
(are formed;
대형을 짓게 되어, 행태를 이루어, 편성되어)
하나님을 위하여 싸우고
또 하나님과 함께
여행합니다
(to journey;
장거리 여행을 합니다, 이동합니다).
하나님의
선택되고 구속되는 백성은
하나님에 의하여 소유되어
그 좋은 땅이신
모든 것을 포함하시는
그 그리스도를 소유합니다.
이 네 표어들은
그 구약과 또 신약
둘 다 안에서
그 성도들에게
적용되는데,
그 신약이
그 구약 안에
숨겨져 있고,
또 그 구약이
그 신약 안에
나타내지기 때문입니다:
그 성도들은
그 타락의 그 속박에서부터
선택되었고,
구속되었으며,
구원받았습니다;
그 성도들은
그 세상의 그 강탈에서부터
또 사탄의 그 속박에서부터
구원받았습니다.
구원받고서
(Having been saved;
구원받았으므로, 구원받은 후에),
우리는
지금
그리스도를 누리고 있습니다.
시나이산에서의(at)
이스라엘의 그 아이들과 같이,
우리가 또한
그 신성한 계시를 받아들였고,
과정을 거치신 그 삼일 하나님으로,
즉, 그 아버지의 그 체현이신 그 아들로
또 그 아들의 그 실재화이신 그 영으로
건축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Furthermore;
게다가, 더 나아가),
우리는
제사장의 한 군대 안으로
형성되고 있고,
이는(which; 이 군대는)
하나님을 위하여 싸우고
또 하나님과 함께 여행합니다.
마지막으로
(Finally;
마침내, 결국, 최종적으로),
우리는
각각의 모든 방식으로
(in every way; 각각의 길 안에서)
하나님에 의하여
준비되었고
(have been prepared … to; 준비되어 있어서)
그 좋은 땅이신
모든 것을 포함하시는
그 그리스도를 소유합니다.
그 단어 ‘경륜’은
그 구약의 책들 안에서
사용되지 않지만,
(출애굽기, 레위기, 또 민수기와 같은)
이 책들 안에 있는
그 예표는
(the typology;
그 예표론은[유형학은], 그 표상은[상징은])
하나님의 경륜을
밝힙니다
(unveils; …의 덮개를 벗깁니다):
하나님의 경륜은
그분의 마음의 그 갈망의
그 완수를 위하여
(for the fulfillment;
그 수행을[실현을, 달성을, 성취를] 위하여)
그분의 계획을 성취하는
그분의 가정 관리입니다
(household administration; 가정 행정입니다);
이 갈망은
그분에 의하여 창조될 뿐 아니라,
또한 거듭나게 되고,
거룩하게 되며,
변형되고,
또 과정을 거치신 그 삼일 하나님의
그 체현이신 그리스도의 그 형상과
같은 형상이 되는
한 백성을
가지시는 것입니다;
결국, 이 백성은
영광 안으로,
곧 그 삼일 하나님의
그 단체적인 표현 안으로
데려와질 것입니다.
그 구약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경륜의
한 그림을 가집니다;
그 신약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경륜에 관한
한 분명한 말씀하심을
(a clear speaking;
알아듣기 쉬운[명백한, 또렷한,
맑은, 밝은] 한 말씀하심을)
가집니다.
그 구약 안에 있는
이스라엘의 아이들의 그 역사는
그 신약 안에 있는
그 믿는이들의 그 역사의
한 예표입니다(a type).
하나님의
선택되고 또 구속되는 백성은
그분의 증거로서
그들의 훈련함과 또 건축함을 위하여
하나님 그분 자신과
또 그분의 경륜에 관한
그 신성한 계시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창세기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은
선택되었고(were chosen),
또 출애굽기 안에서
그들은
하나님과
또 그분의 거처에 관한
그 신성한 계시를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은
그 유월절에 실현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초기의 구원 안에의
(in God’s initial salvation;
하나님의 처음의 구원 안에의)
그들의 참여 후에
그 신성한 계시를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이집트에서 밖으로
하나님의 그 산,
곧 시나이산으로
데려오셨고,
또 거기에서
그들에게
그분 자신과
또 그분의 거처의
(of …; …에 관한)
한 완전한 계시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계시가
하나님의 거처를 건축함을 위한
그 “청사진”을 담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신성한 계시는
하늘에 속한 그 만나와
또 매 맞은 그 반석에서
밖으로 흐르는
그 살아 있는 물의
그 공급 안에
(in the supply; 그 공급으로)
맛보아진 것과 같이,
그 신성한 식료품들을
(provisions;
식량들을, 저장품들을, 준비들을, 공급들을)
누림을 통하여 있습니다.
그 신성한 계시는 또한
그 이집트 사람들과
또 그 아말렉 사람들에 반대한
그들의 싸움 안에서와 같이,
하나님의 적들에 반대한
그분의 싸우심 안에 참여하는
한 군대가 됨의
그 체험을 통하여 있습니다.
결국, 출애굽기 19장 안에서
하나님의
선택되고 또 구속되는 백성은
하나님의 그 산에
이르렀고 또 도착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파라오의 그 손에서 밖으로
이스라엘의 그 아이들을
구출하시기 위하여
모세를 보내셨을 때,
그가
이집트에서 밖으로
그 백성을 데려온(had brought) 후에,
그들이
이 산 위에서
주님을 섬길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고
(출 3:12),
또 출애굽기 19장 안에서
이 말씀이 성취되었습니다:
시나이산에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 그분 자신에 관한
그 계시를 받아들였고,
그 결과(so that)
그들은
그분의 거룩하게 된(sanctified) 백성으로
그 거룩하신 하나님께
(unto the holy God; … 하나님께 이르도록)
분별될 수 있었습니다
(might be separated; 분리될 수 있었습니다).
그 율법은
하나님의
한 묘사
(a portrait;
한 초상화[얼굴 사진, 꼭 닮은 것]),
곧 하나님 그분 자신의
그 계시입니다;
그 율법은
하나님께서
사랑, 빛, 거룩함, 또 의의
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계시합니다:
그 율법이
하나님의(of)
그러한 한 그림이기 때문에,
그 율법은
하나님의 그 증거라고 불렸고,
그 안에
(the Ark in which; 그 궤 안에)
그 율법이 두어졌던
그 궤는
그 증거의 그 궤라고
불렸으며,
또 그 성막은
그 증거의 그 성막이라고
불렸습니다.
그 시편 안에서
그 율법은 자주
그 증거로 언급됩니다;
이 증거는
하나님의
한 묘사, 곧 그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 그분 자신에 관한
그 계시를 받아들였고
그 결과(so that)
그들은
그분의 거룩하게 된 백성으로서
그 거룩하신 하나님께 이르도록(unto)
분별될 수 있었습니다;
이 문제는
레위기의 그 책 안에서
한 특별한 강조가 주어집니다
(레 11:4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그 증거인
그 율법의
그 실재이십니다;
하나님의 그 증거는
하나님께서 무엇이심의(of what)
그 살아 있는
(the living; 그 활발한[생생한, 꼭 닮은])
묘사이신,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그 체현을 나타냅니다
(signifies; 의미합니다):
그 율법을 지킴의
그 실재는
하나님을 살고
또 하나님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한 생활함
(a living; 한 생활[삶]),
곧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 안에 있는
한 생활함은,
한 하나님-사람의 그 생활함,
곧 하나님의
확대되는 또 확장되는
(the enlarged and expanded;
확대된 또 확장된)
그 표현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그 영의
그 풍부한 공급에 의해,
하나님의 증거이신,
그리스도를 살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그 자아를 부인함과
또 십자가에 못 박힘의
한 생활입니다(a life).
하나님 그분 자신에 관한
그 신성한 계시를 받아들임에 더하여,
이스라엘의 그 아이들은
하나님의 경륜에 관한
그 신성한 계시를 받아들였는데,
그 결과(so that)
그들이
하나님의(His) 증거를 위하여
땅 위에 있는
그분의 거처로(as)
그분의 신성하신 삼일 안에 계시는
하나님과 함께
(together with God; 하나님으로 함께)
건축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그분과 함께 건축되어야 했다는 것은
(That … were to be built up with Him;
그분으로 건축될 예정[운명]이었다는 것은)
그 성막을 건축함을 위하여
사용되어야 했던(that were to be used)
그 재료들에 의하여
가리켜집니다
(is indicated; 나타내집니다):
그 성막의 널빤지들은
(boards; 판자들은)
금으로 입혀진
(overlaid with gold;
금으로 덮어씌워진[칠해진, 발라진])
아카시아 나무로(of)
만들어졌습니다;
아카시아 나무의 그 널빤지들은
하나님의 백성의
한 예표이고,
또 그 널빤지들을 입히는 그 금은
그 신성한 인격의
한 예표입니다.
이렇게 하여,
금으로 입혀진
아카시아 나무의 그 널빤지들은
하나님과 함께 건축되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
그분의 거처가 되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것으로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그분의 거처를 위한
그 건축하는 재료들일 뿐 아니라,
또한 하나님 그분 자신께서
그 건축하는 재료이시라는 것을
봅니다
(see; 압니다).
그 성막 안에서
우리는
그 신성하신 삼일의
한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그 궤,
그 임재의 그 떡의 그 상,
또 그 분향단은
(the incense altar; 그 향 제단은)
모두 그 아들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그 아버지께서는
그 금으로
나타내지시는데,
왜냐하면(for)
예표 안에서
금이
하나님의 그 신성한 본성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그 영께서는
그 등잔대 안에 있는
(in the lampstand; 그 등대 안에 있는)
그 일곱 등잔들 안의
(in the seven lamps; 그 일곱 등들 안의)
그 기름에 의하여
나타내지십니다;
만약 그 등잔들이
기름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그것들은
쓸모없었을 것이고(woud be useless),
또 그 성막 안에
어떤 빛도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한 단일한
(a single;
하나뿐인, 단 하나의))
실체였던,
그 등잔대는,
그 삼일 하나님을
나타냅니다:
그 금은
그 아버지를 나타내고,
그 형태는
(the form; 그 등잔대의 형태는)
그 아들을 나타내며,
또 그 등잔들과 또 그 기름은 둘 다
그 영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그 삼일 하나님과(with)
건축되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
땅 위에 있는
그분의 거처가 되는 것의
한 계시입니다.
그 성막의
그 마흔여덟 개의 널빤지들은
그 레위인들에게 주어진
그 마흔 여덟 도시들과
일치합니다
(corresond to;
부합합니다, …에 해당[상응]합니다);
이 도시들 중의(of) 여섯은
도피성들이
(cities of refuge; 피난의 도시들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 도피성들과 관련하여
그 가장 두드러진(striking) 점은
그것들이(they; 그것들에)
들어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 레위인들의
이 마흔여덟 도시들은
한 유일한 도시
―그 새 예루살렘 안에
완결될 것입니다;
출애굽기에 계시된
그 성막은
이 유일한 도시의
한 축소판입니다
(a miniature; 한 축소 모형[축소물]입니다).
그 신약 안에서,
하나님의 증거는
그 교회,
곧 그리스도의 그 몸이고,
또 영원 안에서
이 증거는
그 새 예루살렘 안에
완결될 것인데,
이는(which; 그 새 예루살렘은) 또한
한 성막이라고
(a tabernacle; 한 장막으로)
불립니다.
그 구약 안에서,
그 성막은
이스라엘의 그 아이들과 함께 있었고,
또 그 신약 안에서
그 성막은
맨 먼저 그리스도이시고
(요 1:14),
그러고 나서(and then)
그리스도의 그 확대인
그 교회입니다;
영원 안에서
궁극적인, 곧 완결된
그 성막, 곧 그 새 예루살렘이
있을 것입니다;
각각의 경우 안에서
그 두드러진 점은
그 성막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the tabernacle is enterable;
그 성막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 삼일 하나님께
들어갈 수 있습니다
(is enterable;
…께서는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분이십니다)!
레위기의 그 책 안에서,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훈련하셨고
그 결과 그들이(to)
하나님을 경배하고
또 (하나님께) 참여하며
또 거룩한,
깨끗한
(clean; 정결한),
또 크게 기뻐하는
생활을
(life;
삶을, 생명을)
삽니다.
민수기의 그 중심적인 사상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백성의
삶의 그 의미
(the meaing of life; 생활[생명]의 그 의미),
곧 그 증거,
곧 그 중심이시고,
또 그들의 여정과 또 싸움의
그 인도자(the Leader),
그 길,
또 그 목표이시라는 것입니다:
그 전체의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의 것
―하나님의 의도가
한 군대 안으로 형성되어
그리스도를
그들의 삶의 의미, 증거, 중심,
인도자, 길, 또 목표로 취하고
또 계속 나아가며(and to proceed on)
또 하나님을 위하여 싸우는
한 백성을 가지시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 주고
그 결과(so that)
그분께서
그분의 왕국과 또 그분의 집으로
건축된 한 백성을 가지시는데,
이것이
(which; 그분의 왕국과 또 그분의 집이)
그 새 예루살렘 안에 완결될 것입니다
(… 완결될 것이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한 전체로서
민수기의 그 책은
하나님의
선택되고 또 구속되는 백성이
그 거룩한 전쟁을 수행하는
한 군대 안으로 형성될
그 필요를 계시합니다:
한 거룩한 군대 안으로
형성되기 위하여,
하나님의 백성은 맨 먼저
그들의 생명 안에서의 성숙에 따라
계수되어야만 했습니다
(had to be numbered;
헤아려져야[셈해져야, 계산되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되고 또 구속되는 백성은 또한
한 몸 안으로(into one body)
건축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과 함께 여행했습니다:
그들의 하나님과의 여행 안에서,
이스라엘의 그 아이들이
그 낮에는
그 구름에 의하여
또 밤에는
그 구름 안에 있는 그 불에 의하여
나타내지는
하나님의 그 임재를
가졌습니다.
이스라엘의 그 아이들이
하나님과 함께 여행했을 때,
여호와의 그 천사께서(the Angel of Jehovah)
선두에 서셨습니다
(took the lead;
그 인도를 취하셨습니다, 앞장서서 이끄셨습니다);
그 칭호 ‘여호와의 그 천사’는
출애굽기 3장 2-6절 안에
계시된 것과 같이,
그 구약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한 특정한 칭호입니다.
그들의 여정 안에서
이스라엘의 그 아이들은
여호와, 곧 그 삼일 하나님과 함께
움직이고 있었고,
걷고 있었으며
(were … walking; 행하고 있었으며),
또 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되는 또 구속되는 백성은
모든 종류들의
시련들, 곧 고통을 겪음들,
또 신성한 돌봄, 공급들, 또 징계와 함께
크고 또 무시무시한
(terrible;
끔찍한, 지독한, 심한, 즐겁지 않은)
그 황무지를
(the wilderness; 그 황야[광야]를)
통과했습니다.
그 황무지를 통과하는
그들의 여정 위에서,
이스라엘의 그 아이들은
마흔두 정거장들을 통과하였고
하나님에 의해 약속된
그 좋은 땅 안에 있는
안식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제사장의 한 군대로서,
하나님의
선택되고 또 구속되는 백성은
하나님과 함께
또 하나님을 위하여
싸웠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또 하나님을 위한
그들의 싸움 안에서,
이스라엘의 그 아이들은
아랏의 그 왕을 패배시켰고
또 그의 백성을 멸망시켰습니다;
이것을 함에 의하여,
그들은
그 가나안 사람들 중에서
그 첫 번째 적을
이겼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또한
그 아모리 사람들의 그 왕 시혼을
그의 백성과 함께
또 바산의 그 왕 옥을
그의 백성과 함께
패배시켰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가나안의 두 “문 경계병들을”
(gate guards; 문지기들을)
이겼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민 21:21-35).
이스라엘의 그 아이들은 또한
그 미디안 사람들을
그들의 다섯 왕들과 함께
패배시켰습니다;
그들을 패배시킴에 의하여,
그 백성은
가나안의 문 군대를
(gate army)
이겼습니다.
하나님의
선택되고 또 구속되는
백성에 의하여 패배 당한
그 왕들은
그 공중에 있는
그 영적인 세력들,
그 지배자들,
또 그 권세자들을
나타내고,
그들을(whom)
우리가 반드시
패배시켜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그 왕들에 반대하는
그 싸움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좋은 땅 안으로
들어감을 위하여 있었고
그 결과(that)
하나님의 그 왕국이
거기에
펼쳐지고
(might be spread;
퍼지고, 번지고, 넓어지고, 전개되고, 확산되고)
또 세워질 수 있었습니다
(… established;
설립[수립, 확립]될 수 있었습니다,
확고하게[자리 잡게] 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전쟁을 수행하는
제사장의 그 군대로서,
하나님의
선택되고 또 구속되는 백성은
그들에게
(with them; 그들과 함께)
하나님의 거처,
곧 그 증거의 그 성막을
그 증거의 그 궤와 함께
지녔습니다
(bore;
떠맡았습니다, 감당했습니다,
지탱했습니다, 짊어지고 다녔습니다).
출애굽기 안의 그 열쇠 단어들은
(The key words; 그 핵심 단어들은)
‘구속’, ‘인도함’, ‘계시’, 또 ‘건축물’입니다;
레위기 안의 그 열쇠 단어들은
‘교통’, ‘봉사’, 또 ‘거룩함’입니다;
또 민수기 안의 그 열쇠 단어들은
‘형성(formation; 편성)’, ‘여행함(journeying)’, 또 ‘싸움’입니다.
민수기의 그 책은
제사장의 한 군대 안으로 형성되어
하나님을 위하여 싸우고
또 하나님과 함께 여행하며
그 결과(so that)
그들이
하나님에 의하여 준비되어
그 좋은 땅이신
모든 것을 포함하시는
그 그리스도를 소유할 수 있는
하나님의
선택되고 또 구속되는 백성의
한 기록입니다.
1일
출 33:14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나의 임재가
너와 함께하며,
내가
너에게
안식을 주겠다.”
민 9:15
성막이 세워지던 날에
구름이
성막…을 덮었다.
저녁에는
그 구름이
불의 모양 같았으며
아침까지
성막 위에 있었다.
민 9:22
… 구름이
성막 위에 지체하며
그 위에 내려앉아 있으면,
이스라엘 자손은
진을 친 곳에 머물며
진군하지 않았다.
그러나 구름이 떠오르면
그들은 진군하였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구속하신
백성과 연관된
하나님의 경륜과 관련하여
출애굽기와 레위기와 민수기에 나오는
신성한 계시의
핵심 개요를 제시할 때에,
우리는
네 표어를 사용하여
이 핵심 개요의
몇 가지 중요한 방면들을
요약할 수 있다.
‘타락으로 인한 속박에서
산 바 되고,
구속받고,
구원받음’,
‘그리스도를 누리고,
계시를 받으며,
삼일 하나님 안에서 건축됨’,
‘제사장 군대로 편성되어
하나님을 위해 싸우고
하나님과 함께 여행함’,
‘좋은 땅이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소유하도록
하나님의 소유가 됨’.
이 표어들은
구약의 예표와
이 예표에 대한
신약의 성취를
조합한 것이다.
… 우리는
신약이
구약 안에 감추어져 있고,
구약이
신약 안에 나타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네 표어는
구약의 성도들과
신약의 성도들
모두에게 적용된다.
성도들은
선택받고
구속받고
타락으로 인한 속박에서
구원받았다.
구약의 성도들은
이집트의 속박에서 구원받았으며,
우리는
사탄의 속박에서 구원받았다.
구원받은 후에
우리는
지금
그리스도를 누리고 있다.
시나이산에 있던
이스라엘 자손처럼
우리 또한
신성한 계시를 받았고,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
곧 아버지의 체현이신 아들과
아들의 실재화이신 그 영으로
건축되고 있다.
더 나아가, 우리는
… 제사장 군대로
편성되고 있다.
… 이 제사장 군대는
하나님을 위해 싸우고
하나님과 함께 여행한다.
… 마지막으로 우리는
좋은 땅이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소유하도록
각 방면에서
하나님에 의해 준비되었다.
이러한 준비는
민수기의 마지막 다섯 장에
계시되어 있는데,
거기에서 우리는
좋은 땅을 나누는 일을
미리 안배하는 것을 본다.
이렇게 미리 안배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좋은 땅에 들어가
그것을 소유하도록
이스라엘 자손을
준비시킨 것이었다.
출애굽기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내려오셔서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출하시고
(3:8)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심으로써
(18절),
그분의 움직임에서
큰 발걸음을 내딛으셨음을
보여 준다.
이집트는
사람들이
생계로 점유되어 있고
쾌락을 즐기는 삶을 사는
세상을 예표한다.
세상은
안락한 삶과 즐거움의 장소이며,
또한 죄와 우상숭배의 장소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출하시어
광야로 이끄셨다.
… 소란스러운 세상에서 나와서
하늘과
땅과
하나님만이 계시고
그 밖의 어떤 것도 없는
장소에 들어가도록
하나님에 의해 구원받는 것은
매우 좋은 것이다.
그러나 결국
광야는
좋은 곳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인도를 받아서
오랜 여정을 거쳐
광야를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움직이셨고
그들을
시나이산으로 이끄셨다.
시나이산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을
상징한다.
… 이스라엘 자손은
시나이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대략 십일 개월 동안 머물렀다
(출 19:1, 민 10:11).
하나님은
그곳에서
그분의 백성과
밤낮으로 함께 머무시면서
그들을 훈련시키셨다.
시나이산에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율법과 그리고 성막의 모형을
주셨다.
한편으로 하나님은
율법으로
그들을 규제하셨고,
다른 한편으로
성막으로
그들을 격려하셨다.
시나이산에서
율법을 반포하시고
성막을 건축하게 하신 후에,
하나님은
레위기의 모든 말씀을
그들에게 주셨는데,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분께 참여하며,
거룩하고 정결하며 기뻐하는
삶을 살도록
그들을 훈련시키기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