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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부흥을 위한 거룩한 말씀

주님의 회복 ― 시온을 건축하는 것

시온은 다윗왕의 성이자(삼하 5:7) 예루살렘성의 중심으로, 그곳에 땅에 있는 하나님의 거처인 성전이 건축되었다.

예루살렘은 교회를 나타내는 예표이고, 시온은 교회 안의 이기는 이들을 나타내는 예표이다.

시온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서 가장 두드러지고 아름다운 곳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서 가장 두드러지고 아름다운 곳인 시온은 이기는 이들을 나타내는 예표이며, 그들은 교회의 고봉, 중심, 높아짐, 강화됨, 풍성함, 아름다움, 실재이다.

시온산은 전적으로 주님을 향하여 열려 있고 전적으로 주님의 소유이다.

시온인 이기는 이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이고,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 안에서 몸의 건축을 완결하여, 완결된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곧 영원 안에서의 하나님의 거처인 최종적인 지성소를 이끌어 온다.

교회생활은 오늘날의 예루살렘이며, 교회생활 안에는 반드시 오늘날의 시온인 한 무리의 이기는 이들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이 하나님의 목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분의 목표에 도달하시기 위하여 취하시는 절차라는 것을 계시한다.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 안으로 이끈다.

하나님의 경륜을 수행할 수 있는 주님의 회복의 최고봉은 하나님께서 물질적인 방식으로 많은 지방에 교회들을 산출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유기체인 유기적인 몸을 산출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회복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한다. 주님의 회복은 시온을 건축하는 것이다.

예루살렘의 특징들과 생명과 축복과 세워짐은 시온에서 온다.

요한계시록에서 주님께서 원하시고 건축하고자 하시는 것은 시온, 곧 이기는 이들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 안에 있는 영적인 계시의 내재적인 실재이다. 확실히 우리는 어떤 대가가 들더라도 필사적으로 기도해야 하며, 사도 바울이 지불했던 것처럼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우리가 활력화되는 것이 바로 이 시대에 이기는 이들을 부르시는 주님의 부름에 응답하는 것이다. 활력적인 것은 살아 계시고 활동하시는 우리 하나님과 하나 됨으로 살아 있고 활동적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영원한 경륜을 성취하시기 위해 이 땅에서 움직이시는 것은 최종적으로 이기는 이들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시온으로 예표된 이기는 이들은 영광의 왕이신 주님께서 온 땅을 그분의 왕국으로 소유하시기 위해 돌아오실 수 있도록 하는 교두보이다.

기도 외에는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의 고봉인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에 도달할 수 있는 다른 길이 없다. 우리가 이기는 이들, 곧 그리스도의 신부인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가 될 때, 이로 인하여 교회 시대인 이 시대가 마감될 것이고, 영광의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셔서 왕국 시대에 그분의 이기는 이들과 함께 이 땅을 차지하시고 소유하시며 통치하실 것이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의 성도들에게 쓴 서신은 연합된 영 안에 생활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 안에 사는 이기는 이들의 생활을 계시한다.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는 하나님의 경륜의 최고봉이자 성경의 최고의 계시이며, 지혜와 계시의 영을 통해 계시된다.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는 연합된 영 안에 사는 것이다. 연합된 영은 하나님의 거처, 하나님의 집, 오늘날의 벧엘, 하늘의 문이자, 지성소 곧 언약궤로 예표되신 삼일 하나님의 체현이시자 공기 같은 영이신 그리스도의 거처이다.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는 예수님 안에 있는 실재, 곧 사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의 일생의 실지 상태가 그분의 많은 지체들 안에 복사되어, 온전하게 된 하나님-사람들의 단체적인 생활이 된 것이다. 이러한 복사는 새롭게 하시는 영과 그들의 거듭난 영이 연합되어 생각이 새로워지는 것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교회는 아름답게 하시고 신부를 준비하시는, 우리의 영과 연합되신 영으로 충만하게 된다. 그 결과 우리는 그리스도의 거룩하고 아름답고 하나님을 표현하는 신부, 곧 흠이나 결함이 없는 신부가 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전 존재 안에서 승리하시는 분이 되시려면,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영과 연합되신 죽이시는 영을 체험해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의 대적에게 속한 모든 것이 우리 안에서 살육될 수 있고, 그로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를 위해 그 영의 신성한 생명 안에서 사탄과 죄와 죽음을 다스릴 수 있게 되며, 건강한 몸의 생활 곧 건강한 교회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이기는 이들은 육체 되신 삼일 하나님, 곧 하나님-사람이신 그리스도를 누리며, 그들의 마음에 시온을 향한 대로가 있는 이들이다. “주님께 힘을 얻고 / 그 마음에 시온을 향한 대로가 있는 이는 복이 있습니다. / 바카 골짜기를 지날 때에 / 그들이 그곳을 샘이 되게 하니 / 이른 비가 정녕 그곳을 복으로 덮습니다. / 그들은 힘에 힘을 얻으며 나아가 /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저마다 나아옵니다.” ― 시 84:5-7.

벗겨지고 눈물을 흘리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집의 사랑스러움과 달콤함을 누리게 한다.

우리가 눈물을 흘리는 동안, 우리는 그 영으로 채워지며, 그 영은 우리에게 샘과 이른 비가 되신다. 시온을 향한 대로는 두 단이 있는 하나님의 집인 교회 안에 들어가고자 하는 우리의 의도를 상징한다. 이 두 단은 육체 되신 삼일 하나님 곧 하나님의 증가를 위한 하나님의 체현이신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의 주요 완결을 상징한다.

시편 84편 11절은 우리가 하나님의 집 안에 거주할 때 받는 복을 계시한다. 그것은 육체 되시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을 우리에게 생명을 공급하는 우리의 해(요 1:4, 8:12)로, 하나님의 원수에게서 우리를 보호해 주는 우리의 방패(엡 6:11-17)로, 우리의 누림을 위한 은혜(요 1:14, 17)로, 광채 가운데 하나님을 나타내는 영광(계 21:11, 23)으로 누리는 것이다.

“그분의 기초가 거룩한 산들에 놓였다네. / 여호와는 … 시온의 문들을 더 사랑하시니” ― 시 87:1-2.

교회 안에 있는 이기는 이들의 예표인 시온은 ‘거룩한 산들’ 가운데 가장 높은 봉우리에 건축되었다. 거룩한 산들은 그 기초가 그리스도인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을 예표한다(시 87:1). 하늘에 속한 시온은 영광스럽다는 말을 들을 것이고(3절), 이기는 이들을 위한 최종 안식처가 될 것이다(계 14:1).

시온의 문들은 드나들기 위한 것으로서 교통을 상징한다. 새 예루살렘에 열두 문이 있다는 사실은(계 21:12, 21) 하나님의 거룩한 성이 교통으로 충만할 것임을 보여 준다.

“시온에 관해서는 이렇게들 말하리라. / ‘이 사람 저 사람이 시온에서 태어났고 / 가장 높으신 분께서 직접 시온을 세우시리라.’ / 여호와는 백성들을 등록하실 때에 / 그 수를 세시며 말씀하시리라. / ‘이 사람이 거기서 태어났다.’ ”(시 87:5-6) 유일하신 그리스도는 모든 성도이시고 모든 성도 안에 계신 분으로서(골 3:11), 모든 성도의 총체(‘이 사람 저 사람’)이시다.

“내 모든 샘들이 네 안에 있다.”(시 87:7) 이집트가 나일강을 자랑하고, 바빌론이 유프라테스강을 자랑하도록 두라. 그들에게는 샘들이 없지만, 시온 안에 있는 우리에게는 샘들이 있다.

올라가며 부르는 노래(시 120-134편)는 성도들이 체험하고 찬송한 시온과 예루살렘의 소중함에 대해 말한다.

시편 132편에는 이기는 이들이 시온에 올라가는 것과 관련된 일곱 항목이 언급된다. 이러한 항목들은 교회생활의 정상에 있는 것들이며, 하나님의 산의 최고봉인 시온에 있는 이기는 이들의 상황을 묘사한다.

하나님과 함께 안식함 ― “이곳은 나의 영원한 안식처” ― 시 132:14상.

하나님과 함께 거함 ― “내가 이곳을 갈망하였으니 나 여기 거하리라.” ― 시 132:14하.

만족할 만한 음식 ― “내가 이곳 양식에 풍성히 복을 주며 / 이곳 가난한 이들을 떡으로 만족하게 하리라.” ― 시 132:15.

영광스러운 옷 ― “내가 이곳 제사장들을 구원으로 옷 입히리니 / 이곳 신실한 이들이 환호하며 외치리라.” ― 시 132:16, 출 28:2.

승리의 뿔 ― “여기서 내가 다윗의 뿔이 돋아나게 하리니” ― 시 132:17상.

비추는 등불 ― “내가 나의 기름부음 받은 이를 위하여 등불을 준비하였노라.” ― 시 132:17하.

빛나는 면류관 ― “그의 원수들은 내가 부끄러움으로 옷 입히겠으나 / 그의 머리에는 면류관이 빛나리라.” ― 시 132:18, 사 62:3.

시편 132편에 묘사된 것처럼 시온이 건축될 때에, 우리는 함께 모일 수 있고 하나 안에 함께 거할 수 있는 장소를 갖게 된다. 이것은 얼마나 좋고 얼마나 즐거운가! ― 시 133:1-3.

“하늘과 땅을 만드신 여호와께서 / 시온으로부터 너에게 복 주시기를 바라노라.”(시 134:3) 몇몇 이기는 이들이 있는 곳마다 하나님의 복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시온으로부터, 가장 높은 봉우리로부터, 정상 곧 이기는 이들의 위치에 도달한 이들로부터 그분의 백성에게 복을 주신다. 하나님은 이러한 위치로부터 그분의 모든 백성에게 복을 주신다.

오늘날 교회 시대에서는 온전하게 되고 성숙한 하나님-사람들이 시온, 이기는 이들, 교회들 안에 있는 활력 그룹들이지만,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새 예루살렘 전체가 시온이 될 것이며(계 21:16), 모든 믿는 이들이 이기는 이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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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시 132:14-16 “이곳은 나의 영원한 안식처 내가 이곳을 갈망하였으니 나 여기 거하리라. 내가 이곳 양식에 풍성히 복을 주며 이곳 가난한 이들을 떡으로 만족하게 하리라. 내가 이곳 제사장들을 구원으로 옷 입히리니 이곳 신실한 이들이 환호하며 외치리라.

시 134:3 하늘과 땅을 만드신 여호와께서 시온으로부터 너에게 복 주시기를 바라노라.

시편 132편 15절부터 18절까지에서 여호와는 시온에 관하여, 그분께서 시온의 양식에 풍성히 복을 주실 것이고, 그곳 가난한 이들을 떡으로 만족하게 하실 것이며, 그곳 제사장들을 구원으로 옷 입히실 것이고, 그곳 ‘신실한 이들’이 환호하며 외칠 것이며, 그곳에서 다윗의 뿔이 돋아나게 하실 것이고, 그분의 기름부음 받은 분을 위하여 등불을 준비하실 것이며, 그분의 기름부음 받은 분의 원수들은 부끄러움으로 옷 입겠지만 그분의 머리에는 면류관이 빛나리라고 말씀하신다.

시편 132편에서 우리는 이기는 이와 관련된 일곱 항목, 즉 안식함, 거함, 음식, 옷, 승리의 뿔, 빛 비추는 등불, 빛나는 면류관을 본다. 이 항목들은 교회생활의 정상(頂上)에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집이 없으실 때, 우리 또한 집이 없다. 그분께 만족이 없으실 때, 우리 또한 만족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시온에서 안식하시며 거하실 때, 우리에게는 풍부한 양식이 있다. 더 나아가, 우리에게는 합당한 옷과 뿔과 등불과 면류관이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산의 최고봉인 시온에 있는 이기는 이들의 상황이다.

시편 133편은 성도가 시온으로 올라가면서 연합 안에 거하는 형제들에게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신 것에 관하여 찬양하는 시이다. 시편 133편을 가지기 전에, 우리는 시편 132편에 이르러야 한다. 시온이 건축되고 하나님께서 그곳에서 안식하시면서 예루살렘에 거하실 때, 우리는 함께 모일 수 있고 연합 안에 함께 거할 수 있는 장소를 갖게 된다. 이것이 교회 집회 가운데서 우리의 상황이라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복을 누릴 것이다.

“보라, 형제들이 연합하여 거하는 것이 / 얼마나 좋고 얼마나 즐거운가!”(시 133:1) 나는 ‘얼마나 좋고’는 2절에 있는 기름을 가리키고, ‘얼마나 즐거운가’는 3절에 있는 이슬을 가리킨다고 믿는다.

“머리 위의 좋은 기름이 / 수염을 타고 / 아론의 수염을 타고 흘러서 / 그의 옷단에 흘러내림 같고”(시 133:2). 기름이 머리에서 옷단까지 흘러내린다는 것은 머리와 몸, 즉 그리스도와 교회가 모두 하나님의 좋은 기름으로 발라지고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시편 133편 3절 상반절은 계속해서 그것이 마치 ‘헤르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다고 말한다. 이 이슬은 신선할 뿐 아니라 신선하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하는데, 이 은혜가 우리를 적신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으니 / 영원한 생명이라.”(시 133:3하) 교회생활 안에 함께 거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복인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 이것이 교회의 삶이다.

시편 132편에서는 교회의 생명을 보고, 시편 133편에서는 교회의 삶을 본다. 교회의 삶은 가장 높은 삶 곧 형제들이 연합 안에 거하는 삶이다. 그러한 삶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오셔서 좋은 기름과 신선한 이슬로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

‘올라가며 부르는 노래’의 마지막인 시편 134편은 성도가 시온으로 올라가면서 찬양하는 시이다. 이 시는 영적으로 가장 높은 단계에 있는 이들, 즉 시온에 있는 이들이 모든 이를 축복하고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 3절에서 우리는 복이 시온으로부터, 즉 가장 높은 단계에 있는 이들로부터 온다는 것을 본다. 교회 역사를 읽는다면, 모든 시대와 모든 세기에 이기는 이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복이 교회에 임했음을 볼 것이다. 몇몇 이기는 이들이 있는 곳마다 하나님의 복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시온으로부터, 가장 높은 봉우리로부터, 정상 곧 이기는 이들의 위치에 도달한 이들로부터 그분의 백성에게 복을 주신다. 하나님은 이러한 위치로부터 그분의 모든 백성에게 복을 주신다.

5일

시 84:5-7 주님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을 향한 대로가 있는 이는 복이 있습니다. 바카 골짜기를 지날 때에 그들이 그곳을 샘이 되게 하니 이른 비가 정녕 그곳을 복으로 덮습니다. 그들은 힘에 힘을 얻으며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저마다 나아옵니다.

시편 84편은 그리스도께서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집에 대한 시편 작가의 사랑에 관한 시로서, 하나님을 추구하는 이들이 벗겨지고 하나님의 집이 황폐하게 되는 것에 관한 시편 73편 이후의 시들 다음에 이어진다. 우리가 회복되고 복원될 때(시 80편) 하나님의 집은 사랑스러움과 달콤함이 더 깊어진다.

시온을 향한 대로에 있는 사람들은 한 면에서 하나님께 힘을 얻으며(시 84:5), 또 다른 면에서는 사탄의 반대를 받고 사탄 때문에 박해를 당한다. 사탄이 일으키는 어려움과 박해는 대로를 눈물 골짜기로 만든다. 이 특별한 용어는 시편 작가가 하나님께 징계를 받고 벗겨졌다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가 ‘눈물’을 의미하는 바카 골짜기를 지날 때에 하나님은 이 골짜기를 샘이 되게 하신다(비교 골 1:24, 히 10:34). 이 샘은 그 영이다(요 4:14, 7:38-39). … 우리가 눈물을 흘리는 동안, 우리는 그 영으로 채워지며, 그 영은 우리의 샘이 되신다.

눈물 골짜기를 지나서 교회생활 안에 들어온 이들은 이렇게 눈물을 흘린 것이 결국 자신에게 큰 복이 됨을 알게 된다. 이 복은 그 영이다(갈 3:14). 그들이 흘린 눈물은 자신의 눈물이지만, 이 눈물은 샘이 되고, 이 샘은 이른 비 곧 복이신 그 영이 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집 안에 거주할 때 받는 복은, 육체 되시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을 우리에게 생명을 공급하는 우리의 해(요 1:4, 8:12)로, 하나님의 원수에게서 우리를 보호해 주는 우리의 방패(엡 6:11-17)로, 우리의 누림을 위한 은혜(요 1:14, 17)로, 광채 가운데 하나님을 나타내는 영광(계 21:11, 23)으로 누리는 것이다.

시편 87편은 먼저 ‘그분(하나님)의 기초’라 불리는 시온의 기초를 말한다(1절).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건축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의 유일한 기초이신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이 신성한 기초(고전 3:11)는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을 예표하는 ‘거룩한 산들’에 놓인다. 예루살렘은 이 거룩한 산들 위에 세워졌고, 교회의 예표인 시온은 이 산들 가운데 가장 높은 봉우리에 건축되었다.

시편 87편 2절에서 출입을 위한 시온의 문들은 교통을 나타낸다. 새 예루살렘에 열두 문이 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이 교통으로 충만할 것임을 보여 준다. … 시온에는 교통을 위한 많은 문들이 있다.

시편 87편은 모든 성도와 함께하시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집이 되심으로, 하나님의 성을 건축하시고 온 땅을 하나님의 소유가 되게 하신다는 것을 밝혀 준다. 5절은 “시온에 관해서는 이렇게들 말하리라. / ‘이 사람 저 사람이 시온에서 태어났고 / 가장 높으신 분께서 직접 시온을 세우시리라.’ ”라고 말한다. ‘이 사람’과 ‘저 사람’이 시온에서 태어났다고 하는 것은 시온이 성도들로 가득함을 가리킨다. 6절은 ‘이 사람’ 곧 유일하신 그리스도께서 거기서 태어나셨다고 말한다. 그리스도 자신과 모든 성도들이 시온에서 태어났다.

모세, 여호수아, 다윗, 엘리야, 베드로, 바울, 루터, 칼뱅, 웨슬리, 친첸도르프, 다비, 워치만 니 등 많은 이들이 시온에서 태어났다. 결국 모든 성도들이시고 모든 성도들 안에 계신 분으로서(골 3:11) 모든 성도들의 총체이신 유일하신 그리스도도 거기서 태어나셨다. 이것이 시온에 대한 하나님의 계수, 하나님의 기록이다.

시온에서 태어난 모든 성도들이 다 유명한 사람들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노래하고 춤추는 이들(시 87:7) 가운데에는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 오늘 우리는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일 수 있지만, 하나님의 성인 시온에 대해 “내 모든 샘들이 네 안에 있다.”라고 말하면서 주님을 노래하고 찬양할 수 있다.

4일

엡 4:23 또한 생각의 영 안에서 새롭게 되어

엡 5:26-27 이것은 곧 그리스도께서 말씀 안에 있는 씻는 물로 교회를 깨끗이 하여 거룩하게 하시려는 것이며, 또한 점이나 주름이나 그 같은 것들이 없는 영광스러운 교회로 자기 앞에 세우시려는 것이며, 교회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고(1:22-23), 하나님의 왕국과 하나님의 가정이며(2:19), 하나님의 성전 곧 하나님의 거처인 것을 계시하며(2:21-22), 더 나아가 교회가 새사람임을 계시한다(2:15, 4:24).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생명이신 그리스도가 필요하며, 새사람인 교회는 인격이신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이 단체적인 새 인격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사셨던 삶, 즉 사람이 하나님을 표현하고 또한 하나님을 실재로서 실재화하는 진리의 삶을 살아야 한다.

에베소서는 연합된 영, 곧 신성한 영과 연합된 사람의 영을 크게 강조한다. 에베소서 1장 17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그분을 온전히 알도록 지혜와 계시의 영을 여러분에게 주셔서”라고 말한다. 이 절에 있는 영은 하나님의 영께서 내주하시는 우리의 거듭난 영이다. 그것은 성령과 연합된 사람의 영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과 그분의 경륜을 아는 지혜와 계시를 가질 수 있도록 그러한 영을 우리에게 주셨다.

에베소서 4장 23절의 영은 내주하시는 하나님의 영과 연합된 믿는 이들의 거듭난 영이다. 그러한 연합된 영이 우리 생각 안으로 확장되어 우리 생각의 영이 된다.

그리스도는 과거에 교회를 위해 자신을 주셨고, 현재에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며, 미래에 자신의 만족을 위한 배필로서 교회를 자신 앞에 세우실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것은 거룩하게 되기 위한 것이고, 거룩하게 되는 것은 세워지기 위한 것이다.

에베소서 5장 26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말씀 안에 있는 씻는 물로 교회를 깨끗이 하여 거룩하게 하신다고 말한다. 신성한 관념에 따르면 여기에서 물은 하나님의 흐르는 생명을 가리키는데, 이것은 흐르는 물로 예표되었다(출 17:6, 고전 10:4). 그리스도의 구속하는 피는 우리의 죄들을 씻어 내지만(요일 1:7, 계 7:14), 생명의 물은 ‘점이나 주름이나 그 같은 것들’(엡 5:27)인 우리 옛사람의 타고난 생명의 흠들을 씻어 낸다. 이것은 교회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그분 자신 앞에 세우시는 것은 그러한 영광스러운 교회이다. 결국 그리스도 앞에 세워진 교회는 하나님을 표현하는 교회일 것이다. 그러한 교회는 또한 거룩하고 흠이 없을 것이다. 거룩한 것은 그리스도로 적셔지고 변화되는 것이며, 흠이 없는 것은 우리 옛사람의 타고난 생명에 속한 것인 점이나 주름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죽이는 능력을 체험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기도로 말씀을 읽을 때, 한편으로는 영양 공급을 받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요소들이 죽음을 당한다. 아마도 여러분은 의심과 미움과 시기와 교만과 이기심 때문에 어려움을 당할 것이다. 우리가 죽이는 능력을 가진 말씀을 취하면 취할수록, 우리의 교만과 우리 속에 있는 부정적인 모든 요소들이 더욱더 죽음을 당하게 된다. 내부의 대적은 우리가 기도로 읽음으로 우리 안에 받아들인 말씀에 의해 죽음을 당한다.

영적 전쟁을 위한 전쟁터는 우리 안에 있다. 특별히 그것은 우리 생각 안에 있다. 우리의 생각 안에 있는 대적을 죽이는 방법은 말씀을 기도로 읽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도로 읽을 때, 우리 생각 안에 있는 대적의 요소들이 하나씩 죽음을 당할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우리는 승리를 얻는다. 우리 안에 있는 부정적인 것들이 말씀을 기도로 읽는 것을 통해 죽음을 당할 때, 주님은 승리하신다. 그분께서 승리하시기 때문에 우리 또한 승리한다.

3일

시 24:7 성문들아, 머리를 들어라. 오래 견디어 온 문들아! 들려라. 그리하면 영광의 왕께서 들어가시리라.

계 3:20 보아라, 내가 문밖에 서서, 문을 두드린다. 누구든지 나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시편 24편 3절은 “여호와의 산에 오를 이 누구이며 / 그분의 거룩한 곳에 설 이 누구인가?”라고 질문한다. 그 대답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형제들이다. 교회는 오늘날 주님께서 점유하신 하나의 산, 곧 그분께서 다시 오시기 위한 바로 그 디딤돌이자 교두보이다. 땅은 주님의 것이지만, 오늘날 땅은 강탈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강탈당한 땅에 주님께서 온 땅을 취하시기 위해 다시 오시도록 하는 디딤돌이 되는 한 지점인 산이 있다.

시온산으로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들어오시도록 우리 문을 열어 두어야 한다(비교 시 24:7). 시편 24편은 다윗이 시온으로 증거궤를 다시 가지고 왔을 때 쓰였다. 시온이 있고 성문들과 문들이 있었다. 증거궤는 그리스도의 예표였다. 증거궤가 들어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들어오시는 것을 예표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은 심지어 각 지방의 교회들 안에 있는 어떤 사람들도 주 예수님을 문밖에 두고 문을 닫을 수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가 한 지방에 있는 교회인 이상 주 예수님께서 우리 중에 계신다고 생각하지 말라. 어떤 의미에서 그분께서 계시지만, 또 다른 의미에서 그분은 문밖에 계실 수 있다. 심지어 오늘 우리가 주님의 임재를 매우 많이 누리고 있는 동안에도, 우리는 여전히 “성문들아, 머리를 들어라. / 오래 견디어 온 문들아! 들려라.”(시 24:7)라고 말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주님을 향하여 그렇게 열려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오늘 적절하고 더 완전한 방식으로 교회로 들어오실 수 없다면,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땅에 다시 오실 수 있겠는가? 만일 교회가, 시온이 절대적으로 그분을 향하여 열려 있지 않다면, 어떻게 땅이 그분을 향하여 열려 있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그렇다. 문들을 열자. 우리 모두 그분을 향하여 활짝 열자. 들어오십시오, 들어오십시오, 주님! 당신께서 땅에 다시 오시기 전에 교회로 들어오십시오. 들어오셔서 이 작은 산인 시온산을 완전히 소유하십시오.”라고 반응하며 말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이 고봉에 도달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 만일 여러분이 이 고봉에 도달하기가 너무 어렵고 대가가 너무 크다고 생각한다면, 준비하라. 다음 시대에 그 대가는 더 클 것이다. 조만간 여러분은 교회 시대에서나 혹은 오는 왕국 시대에서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 새 예루살렘은 변화되고, 영광스럽게 되고, 과정을 거쳐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과 연합된 하나님-사람들이다. 거룩한 성은 영원토록 하나님의 증가와 표현이 되는 하나의 연합일 것이다. 우리는 영원토록 이 신성한 연합을 누리고 그 안에 참여할 것이다.

확실히 우리는 어떤 대가가 들더라도 필사적으로 기도해야 하며, 사도 바울이 지불했던 것처럼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기도 외에는 이러한 고봉에 도달할 수 있는 다른 길이 없다. 여기에 예루살렘이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커다란 영역으로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어디에 시온 곧 이기는 이들이 있는가? 요한계시록에서 주님께서 원하시고 건축하고자 하시는 것은 시온, 곧 이기는 이들이다. 이기는 이들이 곧 하나님께서 계신 시온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 안에 있는 영적인 계시의 내재적인 실재이다. 우리는 주님의 회복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한다. 주님의 회복은 시온을 건축하는 것이다. 바울의 글들이 이것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바울은 모두가 달리기를 하지만,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뿐이라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이와 같이 우리도 상을 얻기 위해 달려야 한다고 말했다(고전 9:24). 바울은 말년에 자신이 선한 싸움을 싸웠고, 달려야 할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을 위해 의의 면류관이 준비되어 있다고 증언했다(딤후 4:7-8). 나는 우리가 생을 마칠 때, 우리 역시 동일한 일을 했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2일

왕상 8:1 … 솔로몬은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윗성인 시온에서 가지고 올라오려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지파들의 모든 우두머리…들을 예루살렘에 … 불러 모았다.

계 14:1 또 내가 보니, 어린양께서 시온산에 서 계시고 그분과 함께 십사만 사천 명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양의 이름과 그분의 아버지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안에는 시온산이 있었다. 전자는 전체 교회를 예표하고, 후자는 교회 안의 이기는 이들을 예표한다. 시온은 예루살렘의 요새이다. 하나님의 마음의 갈망에 관련된 것을 언급할 때에는 항상 시온을 말했다. 새 예루살렘은 있어도, 시온은 결코 묵은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새 시온이란 결코 없을 것이다. 예루살렘의 특징들과 생명과 축복과 세워짐은 시온에서 온다. 열왕기상 8장 1절을 보면, 장로들은 예루살렘에 있었고, 언약궤는 시온에 있었다. 시편 51편 18절에서 하나님은 시온에 선을 행하시며,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하신다. 시편 102편 21절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시온에 있고 그분에 대한 찬양은 예루살렘에 있다. 시편 128편 5절에서 하나님은 시온으로부터 복을 주시고, 선한 것은 예루살렘에서 본다. 시편 135편 21절에서 여호와는 예루살렘에 거하시고, 시온으로부터 찬양을 받으신다. 이사야서 41장 27절에서 말씀은 먼저 시온에게 선포되고, 그런 다음에 예루살렘에 전해졌다. 요엘서 3장 17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시온에 거하실 때, 예루살렘이 거룩하게 된다.

오늘날 하나님은 실패한 교회 안에서 시온산에 서 있을 십사만 사천 명을 찾고 계신다(계 14장). 하나님은 항상 소수의 믿는 이들을 사용하셔서 생명을 교회 안에 흐르게 하시고 교회를 부흥시키신다. 주님처럼 피를 흘려야 생명을 흘려 보낼 수 있다. 이기는 이들은 교회를 대신하여 이기는 위치에 서고 또한 고난과 수치를 견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기는 이들은 반드시 스스로 옳다 하는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 반드시 대가를 지불하여 옛 창조에서 나온 모든 것을 십자가로 끊어 버리고 음부의 문들(마 16:18)을 처리해야 한다.

여러분은 자신의 마음을 상처받게 함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얻기 원하는가? 여러분은 주님을 승리하시게 하고 자신을 실패에 두겠는가? 여러분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 하나님은 복종하지 않는 모든 사람을 여러분을 통해 처리하실 수 있다(고후 10:6).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는 한 무리의 하나님-사람들에 의한 이러한 생활의 총체이자 총합이다. 이러한 생활이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이며, 결국 이것이 이 교회 시대를 마감하고 그리스도를 다시 오시게 하여, 그분께서 왕국 시대 안에서 하나님-사람들과 함께 이 땅을 점령하시고 소유하시며 다스리시게 할 것이다. 그들은 교회 시대에 온전하게 되고 완성되고 완결되었다. 그러므로 오는 왕국 시대에 그들은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왕으로서 다스릴 것이다(계 20:4-6).

오늘날 교회 시대에 온전하게 되고 성숙된 하나님-사람들은 교회들 가운데서 시온이며, 이기는 이들이며, 또한 활력 그룹들이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에는 더 이상 시온이 없고 오직 예루살렘만 있을 것인데, 이는 자격 없던 모든 성도들이 시온이 될 자격을 얻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새 예루살렘 전체가 시온이 될 것이다. 시온은 바로 하나님께서 계신 곳 곧 지성소이다. 요한계시록 21장에는 새 예루살렘이 지성소일 것임을 상징하는 하나의 표징이 있다. 새 예루살렘의 치수는 입방체의 치수로서,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모두 만 이천 스타디온이다(16절). 그것은 바로 지성소인데, 왜냐하면 구약에서 성막과 성전의 지성소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모두 같은 입방체였기 때문이다(출 26:2-8, 왕상 6:20).

신언노트, 221009

주님의 회복 ― 시온을 건축하는 것
주님의 회복 ― 시온을 건축함

시온은
다윗왕의 성이자
예루살렘성의 중심으로,
그곳에
땅에 있는 하나님의 거처인
성전이 건축되었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서
가장 두드러지고 아름다운 곳인
시온은
이기는 이들을 나타내는
예표이며,
그들은
교회의
고봉, 중심,
높아짐, 강화됨,
풍성함, 아름다움,
실재이다.
시온인
이기는 이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이고,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 안에서
몸의 건축을 완결하여,
완결된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곧 영원 안에서의
하나님의 거처인
지성소를
이끌어 온다.

예루살렘은
산 위에 건축되었다.
예루살렘에는
정상(頂上)이 있는데,
그곳은 시온산이며
그 위에
성전이 건축되었다.
성전이 건축되기
약 천 년 전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들 이삭을
모리야산에서 바치라고
명령하셨는데,
모리야산은
시온산의 또 다른 이름이다.
오늘날
회복의 좋은 상태는 마치
예루살렘과 같다.
그러나 거기에
시온이 없다.
신약에서
이기는 이들은
시온에 비유된다.
요한계시록 14장 1절에서
십사만 사천 명의
이기는 이들은 다만
예루살렘에 있지 않고
시온산 위에 있다.
이기는 이들
곧 활력 그룹들이
오늘날의 시온이다.
오늘날 나의 부담은
여러분을 도와서
활력 그룹이라는 정상,
곧 이기는 이들이라는 시온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비록 우리에게
좋은 교회생활이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 가운데
몸의 생활의
실현이나 실행이나
실지나 실재가
거의 없다.
이것이 오늘날
회복의 필요이다.

니 형제님이
주님에 의해
일으켜졌을 때,
형제님은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이
주님께서
그분의 경륜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절차로서 필요하다는
빛을 보았다.
그러므로 형제님은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을
매우 강조했다.
우리도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을
계속해서 강조해 왔다.

하나의 교회가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로
표현되는 것은
물질적인 이유 때문이다.
우리 믿는 이들은
온 땅에 흩어져 있으므로
한 지방에 있을 수 없다.
우리가
많은 지방에서 살아야 하므로,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지방별로 분리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들이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사실을 잊을 수 없다.
에베소서 4장은
한 몸이 있다고
말한다.
바울은
우리 많은 사람이 여전히
한 떡이며
한 몸이라고
말했다.

요한계시록에는 결국
하나의 완결이 있다.
이 완결 안에서
일곱 등잔대는 모두
사라진다.
첫 번째 장에서
우리는
일곱 등잔대를 본다.
그러나 마지막 두 장에서
우리는
오직 한 도시를 본다.
결국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은
지나갈 것이다.
오직 몸만이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며,
이 그리스도의 몸은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거처인
유일한 장막이 되고,
또한 어린양의
유일한 신부가 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이것을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보다
그리스도의 몸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것은
내가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에 대한
가르침을 폐지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이
필요하다.
사람으로서
우리는
물질적인 틀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우리의 몸이다.
그러나 몸 그 자체만으로는
하나의 시체일 뿐이다.
육신의 몸은
내적인 생명이 필요하다.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한 면으로 교회는
틀인 몸을
가지고 있지만,
그 틀은
교회의
본성이나 본질이나 요소가 아니다.
에베소서 4장은
우리에게,
교회가
몸이며
이 교회 안에
그 영과 주님과 아버지께서 계신다고
말한다.
아버지는 근원이시고,
주님은 요소이시며,
그 영은 몸의 본질이시다.
이 네 실체가 함께
건축된다.

예루살렘 안에는
시온산이 있었다.
전자는
전체 교회를 예표하고,
후자는
교회 안의
이기는 이들을 예표한다.
시온은
예루살렘의 요새이다.
하나님의 마음의
갈망에 관련된 것을
언급할 때에는 항상
시온을 말했다.
새 예루살렘은 있어도,
시온은 결코
묵은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새 시온이란
결코 없을 것이다.
예루살렘의
특징들과 생명과
축복과 세워짐은
시온에서 온다.
열왕기상 8장 1절을 보면,
장로들은
예루살렘에 있었고,
언약궤는
시온에 있었다.
시편 51편 18절에서
하나님은
시온에
선을 행하시며,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하신다.
시편 102편 21절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시온에 있고
그분에 대한 찬양은
예루살렘에 있다.
시편 128편 5절에서
하나님께서
시온으로부터
복을 주시고,
선한 것은
예루살렘에서 본다.
시편 135편 21절에서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거하시고,
시온으로부터
찬양을 받으신다.
이사야서 41장 27절에서
말씀은 먼저
시온에게 선포되고,
그런 다음에
예루살렘에 전해졌다.
요엘서 3장 17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시온에 거하실 때,
예루살렘이
거룩하게 된다.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실패한 교회 안에서
시온산에 서 있을
십사만 사천 명을
찾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소수의 믿는 이들을 사용하셔서
생명을
교회 안에 흐르게 하시고
교회를
부흥시키신다.
주님처럼
피를 흘려야
생명을
흘려 보낼 수 있다.
이기는 이들은
교회를 대신하여
이기는 위치에 서고
또한 고난과 수치를 견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기는 이들은 반드시
스스로 옳다 하는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
반드시 대가를 지불하여
옛 창조에서 나온
모든 것을
십자가로
끊어 버리고
음부의 문들을
처리해야 한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마음을
얻도록
기꺼이 마음의 상처를
견디겠나?
여러분은
주님께서 승리자가 되시도록
기꺼이 여러분 자신이
패배하도록 하겠는가?
여러분의 복종이
완전히 성취될 때,
하나님께서
모든 불복종을
처리하실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는
한 무리의
하나님-사람들에 의한
이러한 생활의
총체이자 총합이다.
이러한 생활이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이며,
결국 이것이
이 교회 시대를 마감하고
그리스도를 다시 오시게 하여,
그분께서
왕국 시대 안에서
하나님-사람들과 함께
이 땅을
점령하시고
소유하시며
다스리시게 할 것이다.
그들은
그 교회 시대 안에서
온전하게 되었고
완전하게 되었으며
완결되었다.
그러므로 그 다음 시대,
곧 그 왕국 시대 안에서
그들은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왕으로서 다스릴 것이다.

오늘날
그 교회 시대 안에서
온전하게 되었고
성숙된
그 하나님-사람들이
시온,
그 이기는 이들,
곧 그 교회들 안에 있는
그 활력 그룹들이다.
하지만 그 새 하늘과 또 새 땅 안에서는
더 이상 시온이 없을 것이고
오직 예루살렘만 있을 것인데,
왜냐하면 자격이 없는 모든 성도들이
시온이 될
자격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그 전체 새 예루살렘이
시온이 될 것이다.
시온은 바로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
즉 지성소이다.
요한계시록 21장에는
새 예루살렘이
지성소일 것임을 상징하는
한 표징이 있다.
새 예루살렘의 치수는
입방체의 치수로서,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모두
만 이천 스타디온이다.
그것이
지성소인데,
왜냐하면 구약에서
성막과 성전의
지성소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모두 같은 입방체였기 때문이다.

시편 24편 3절은
“여호와의 산에 오를 이
누구이며
/ 그분의 거룩한 곳에 설 이
누구인가?”
라고 질문한다.
그 대답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형제들이다.
교회는 오늘날
주님께서 점유하신
하나의 산,
곧 그분께서
다시 오시기 위한
바로 그 디딤돌이자
교두보이다.
땅은
주님의 것이지만,
오늘날
땅은
강탈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강탈당한 땅에
주님께서
온 땅을 취하시기 위해
다시 오시도록 하는
디딤돌이 되는
한 지점인
산이 있다.

시온산으로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들어오시도록
우리 문을
열어 두어야 한다.
시편 24편은
다윗이
시온으로
증거궤를
다시 가지고 왔을 때
쓰였다.
시온이 있고
성문들과 문들이 있었다.
증거궤는
그리스도의 예표였다.
증거궤가 들어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들어오시는 것을
예표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은 심지어
각 지방의 교회들 안에 있는
어떤 사람들도
주 예수님을
문밖에 두고
문을 닫을 수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가
한 지방에 있는
교회인 이상
주 예수님께서
우리 중에 계신다고
생각하지 말라.
어떤 의미에서
그분께서 계시지만,
또 다른 의미에서
그분은
문밖에 계실 수 있다.
심지어 오늘 우리가
주님의 임재를
매우 많이 누리고 있는 동안에도,
우리는 여전히
“성문들아,
머리를 들어라.
/ 오래 견디어 온 문들아!
들려라.”
라고 말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주님을 향하여
그렇게
열려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오늘
적절하고 더 완전한 방식으로
교회로 들어오실 수 없다면,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땅에
다시 오실 수 있겠는가?
만일 교회가,
시온이
절대적으로
그분을 향하여
열려 있지 않다면,
어떻게 땅이
그분을 향하여
열려 있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그렇다.
문들을 열자.
우리 모두
그분을 향하여
활짝 열자.
들어오십시오,
들어오십시오,
주님!
당신께서
땅에 다시 오시기 전에
교회로 들어오십시오.
들어오셔서
이 작은 산인
시온산을
완전히 소유하십시오.”
라고 반응하며
말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이 고봉에 도달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
만일 여러분이
이 고봉에 도달하기가
너무 어렵고
대가가 너무 크다고
생각한다면,
준비하라.
다음 시대에
그 대가는
더 클 것이다.
조만간 여러분은
교회 시대에서나
혹은 오는 왕국 시대에서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
새 예루살렘은
변화되고,
영광스럽게 되고,
과정을 거쳐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과 연합된
하나님-사람들이다.
거룩한 성은
영원토록
하나님의 증가와 표현이 되는
하나의 연합일 것이다.
우리는 영원토록
이 신성한 연합을 누리고
그 안에 참여할 것이다.

확실히 우리는
어떤 대가가 들더라도
필사적으로
기도해야 하며,
사도 바울이 지불했던 것처럼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기도 외에는
이러한 고봉에 도달할 수 있는
다른 길이 없다.
여기에 예루살렘이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커다란 영역으로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어디에
시온
곧 이기는 이들이
있는가?
요한계시록에서
주님께서
원하시고
건축하고자 하시는 것은
시온,
곧 이기는 이들이다.
이기는 이들이
곧 하나님께서 계신 시온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 안에 있는
영적인 계시의
내재적인 실재이다.
우리는
주님의 회복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한다.
주님의 회복은
시온을 건축하는 것이다.
바울의 글들이
이것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바울은
모두가 달리기를 하지만,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뿐이라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이와 같이
우리도
상을 얻기 위해
달려야 한다고
말했다.
바울은
말년에
자신이
선한 싸움을 싸웠고,
달려야 할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을 위해
의의 면류관이
준비되어 있다고
증언했다.
나는
우리가
생을 마칠 때,
우리 역시
동일한 일을 했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에베소서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하나님의 왕국과
하나님의 가정이며,
하나님의 성전
곧 하나님의 거처인 것을
계시하며,
더 나아가 교회가
새사람임을
계시한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생명이신
그리스도가 필요하며,
새사람인
교회는
인격이신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이 단체적인
새 인격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사셨던 삶,
즉 사람이
하나님을 표현하고
또한 하나님을
실재로서 실재화하는
진리의 삶을
살아야 한다.

에베소서는
그 섞인(연합된) 영,
곧 신성한 영과 연합된
사람의 영을
크게 강조한다.
에베소서 1장 17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그분을
온전히 알도록
지혜와 계시의 영을
여러분에게 주셔서”
라고 말한다.
이 절에 있는
영은
하나님의 영께서 내주하시는
우리의 거듭난 영이다.
그것은
성령과 연합된
사람의 영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과
그분의 경륜을 아는
지혜와 계시를
가질 수 있도록
그러한 영을
우리에게 주셨다.

에베소서 4장 23절의
영은
내주하시는 하나님의 영과 연합된
믿는 이들의 거듭난 영이다.
그러한 연합된 영이
우리 생각 안으로 확장되어
우리 생각의 영이 된다.

그리스도는
과거에
교회를 위해
자신을 주셨고,
현재에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며,
미래에
자신의 만족을 위한
배필로서
교회를
자신 앞에 세우실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것은
거룩하게 되기 위한 것이고,
거룩하게 되는 것은
세워지기 위한 것이다.

에베소서 5장 26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말씀 안에 있는
씻는 물로
교회를
깨끗이 하여
거룩하게 하신다고
말한다.
신성한 관념에 따르면
여기에서
물은
하나님의 흐르는 생명을
가리키는데,
이것은
흐르는 물로
예표되었다.
그리스도의 구속하는 피는
우리의 죄들을 씻어 내지만,
생명의 물은
‘점이나
주름이나
그 같은 것들’인
우리 옛사람의
타고난 생명의 흠들을
씻어 낸다.
이것은
교회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그분 자신 앞에
세우시는 것은
그러한 영광스러운 교회이다.
결국 그리스도 앞에 세워진
교회는
하나님을 표현하는
교회일 것이다.
그러한 교회는 또한
거룩하고
흠이 없을 것이다.
거룩한 것은
그리스도로
적셔지고
변화되는 것이며,
흠이 없는 것은
우리 옛사람의
타고난 생명에 속한 것인
점이나 주름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죽이는 능력을
체험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기도-읽기를 할 때
(기도로 말씀을 읽을 때),
한편으로는
영양 공급을 받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요소들이
죽임을 당한다.
아마도 여러분은
의심과 미움과
시기와 교만과
이기심 때문에
어려움을 당할 것이다.
우리가 죽이는
능력을 가진
말씀을
취하면 취할수록,
우리의 교만과
우리 속에 있는 부정적인 모든 요소들이
더욱더 죽음을 당하게 된다.
내부의 대적은
우리가
기도로 읽음으로
우리 안에 받아들인
말씀에 의해
죽음을 당한다.

영적 전쟁을 위한
전쟁터는
우리 안에 있다.
특별히 그것은
우리 생각 안에 있다.
우리의 생각 안에 있는
대적을 죽이는
방법은
말씀을 기도로 읽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도-읽기할 때
(기도로 읽을 때),
우리 생각 안에 있는
대적의 요소들이
하나씩
죽음을 당할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가
그 승리를 얻을 것이다.
우리 안에 있는
부정적인 것들이
기도-읽기를 통해
죽음을 당할 때,
주님께서 승리하신다.
그분께서 승리하시기 때문에
우리 또한 승리한다.

시편 84편은
그리스도께서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집에 대한
시편 작가의
사랑에 관한 시로서,
하나님을 추구하는 이들이
벗겨지고
하나님의 집이
황폐하게 되는 것에 관한
시편 73편 이후의
시들 다음에 이어진다.
우리가
회복되고
복원될 때
하나님의 집은
사랑스러움과
달콤함이
더 깊어진다.

시온을 향한 대로에 있는 사람들은
한 면에서
하나님께 힘을 얻으며,
또 다른 면에서는
사탄의 반대를 받고
사탄 때문에 박해를 당한다.
사탄이 일으키는
어려움과 박해는
대로를
눈물 골짜기로 만든다.
이 특별한 용어는
시편 작가가
하나님께 징계를 받고
벗겨졌다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가
‘눈물’을 의미하는
바카 골짜기를 지날 때에
하나님은
이 골짜기를
샘이 되게 하신다.
이 샘은
그 영이다.
우리가
눈물을 흘리는 동안,
우리는
그 영으로 채워지며,
그 영은
우리의 샘이 되신다.

눈물 골짜기를 지나서
교회생활 안에
들어온 이들은
이렇게 눈물을 흘린 것이 결국
자신에게 큰 복이 됨을
알게 된다.
이 복은
그 영이다.
그들이 흘린
눈물은
자신의 눈물이지만,
이 눈물은
샘이 되고,
이 샘은
이른 비
곧 복이신
그 영이 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집 안에 거주할 때
받는 복은,
육체 되시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을
우리에게
생명을 공급하는
우리의 해로,
하나님의 원수에게서
우리를 보호해 주는
우리의 방패로,
우리의 누림을 위한
은혜로,
광채 가운데
하나님을 나타내는
영광으로 누리는 것이다.

시편 87편은 먼저
‘그분(하나님)의 기초’라 불리는
시온의 기초를 말한다.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건축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의 유일한 기초이신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이 신성한 기초는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을 예표하는
‘거룩한 산들’에 놓인다.
예루살렘은
이 거룩한 산들 위에
세워졌고,
교회의 예표인
시온은
이 산들 가운데
가장 높은 봉우리에
건축되었다.

시편 87편 2절에서
출입을 위한
시온의 문들은
교통을 나타낸다.
새 예루살렘에
열두 문이 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거룩한 도시가
교통으로 충만할 것임을
보여 준다.
시온에는
교통을 위한
많은 문들이 있다.

시편 87편은
모든 성도와 함께하시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집이 되심으로,
하나님의 도시를 건축하시고
온 땅을
하나님의 소유가 되게 하신다는 것을
밝혀 준다.
5절은
“시온에 관해서는
이렇게들 말하리라.
/ ‘이 사람 저 사람이
시온에서 태어났고
/ 가장 높으신 분께서 직접
시온을 세우시리라.’ ”
라고 말한다.
‘이 사람’과 ‘저 사람’이
시온에서 태어났다고 하는 것은
시온이
성도들로 가득함을
가리킨다.
6절은
‘이 사람’
곧 유일하신 그리스도께서
거기서 태어나셨다고
말한다.
그리스도 자신과
모든 성도들이
시온에서 태어났다.

모세, 여호수아,
다윗, 엘리야,
베드로, 바울,
루터, 칼뱅,
웨슬리, 친첸도르프,
다비, 워치만 니 등
많은 이들이
시온에서 태어났다.
결국 모든 성도들이시고
모든 성도들 안에 계신 분으로서
모든 성도들의 총체이신
유일하신 그리스도께서도
거기서 태어나셨다.
이것이
시온에 대한
하나님의 계수,
하나님의 기록이다.

시온에서 태어난
모든 성도들이
다 유명한 사람들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노래하고
춤추는 이들 가운데에는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
오늘 우리는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일 수 있지만,
하나님의 도시인
시온에 대해
“내 모든 샘들이
네 안에 있다.”
라고 말하면서
주님을
노래하고
찬양할 수 있다.

시편 132편
15절부터 18절까지에서
여호와께서
시온에 관하여,
그분께서
시온의 양식에
풍성히 복을 주실 것이고,
그곳 가난한 이들을
떡으로 만족하게 하실 것이며,
그곳 제사장들을
구원으로 옷 입히실 것이고,
그곳 ‘신실한 이들’이
환호하며 외칠 것이며,
그곳에서
다윗의 뿔이
돋아나게 하실 것이고,
그분의 기름부음 받은 분을 위하여
등불을 준비하실 것이며,
그분의 기름부음 받은 분의 원수들은
부끄러움으로 옷 입겠지만
그분의 머리에는
면류관이 빛나리라고
말씀하신다.

시편 132편에서
우리는
이기는 이와 관련된
일곱 항목,
즉 안식함, 거함,
음식, 옷,
승리의 뿔, 빛 비추는 등불,
빛나는 면류관을 본다.
이 항목들은
교회생활의 정상(頂上)에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집이 없으실 때,
우리 또한
집이 없다.
그분께
만족이 없으실 때,
우리 또한
만족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시온에서
안식하시며
거하실 때,
우리에게는
풍부한 양식이 있다.
더 나아가,
우리에게는
합당한 옷과
뿔과
등불과
면류관이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산의 최고봉인
시온에 있는
이기는 이들의 상황이다.

시편 133편은
성도가
시온으로 올라가면서
합일(일치, 통일, 단일, 합병) 안에 거하는
형제들에게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신 것에 관하여
찬양하는 시이다.
시편 133편을
가지기 전에,
우리는
시편 132편에
이르러야 한다.
시온이
건축되고
하나님께서
그곳에서 안식하시면서
예루살렘에 거하실 때,
우리는
함께 모일 수 있고
합일 안에 함께 거할 수 있는
장소를 가지게 된다.
이것이
교회 집회 가운데서
우리의 상황이라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복을 누릴 것이다.

“보라,
형제들이 연합하여
거하는 것이
/ 얼마나 좋고
얼마나 즐거운가!”
나는
‘얼마나 좋고’는
2절에 있는 기름을 가리키고,
‘얼마나 즐거운가’는
3절에 있는 이슬을
가리킨다고 믿는다.

“머리 위의
좋은 기름이
/ 수염을 타고
/ 아론의 수염을
타고 흘러서
/ 그의 옷단에
흘러내림 같고”.
기름이
머리에서 옷단까지
흘러내린다는 것은
머리와 몸,
즉 그리스도와 교회가 모두
하나님의 좋은 기름으로
발라지고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시편 133편 3절 상반절은 계속해서
그것이 마치
‘헤르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다고
말한다.
이 이슬은
신선할 뿐 아니라
신선하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하는데,
이 은혜가
우리를 적신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으니
/ 영원한 생명이라.”
교회생활 안에
함께 거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복인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
이것이
교회의 삶이다.

시편 132편에서는
교회의 생명을 보고,
시편 133편에서는
교회의 삶을 본다.
교회의 삶은
가장 높은 삶
곧 형제들이
합일 안에 거하는 삶이다.
그러한 삶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오셔서
좋은 기름과 신선한 이슬로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

‘올라가며 부르는 노래’의 마지막인
시편 134편은
성도가
시온으로 올라가면서
찬양하는 시이다.
이 시는
영적으로
가장 높은 단계에 있는 이들,
즉 시온에 있는 이들이
모든 이를
축복하고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3절에서
우리는
복이
시온으로부터,
즉 가장 높은 단계에 있는 이들로부터
온다는 것을
본다.
교회 역사를 읽는다면,
모든 시대와 모든 세기에
이기는 이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복이
교회에 임했음을
볼 것이다.
몇몇 이기는 이들이
있는 곳마다
하나님의 복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시온으로부터,
가장 높은 봉우리로부터,
정상
곧 이기는 이들의 위치에
도달한 이들로부터
그분의 백성에게
복을 주신다.
하나님은
이러한 위치로부터
그분의 모든 백성에게
복을 주신다.

1일

시 48:2 우뚝 솟아 아름다우며 온 땅의 기쁨인 … 시온산! 이는 크신 왕의 성이라네.

시 50:2 더없이 아름다운 시온에서부터 하나님은 빛나신다네.

시 125:1 여호와를 신뢰하는 이들은 흔들리지 않고 영원히 거하는 시온산 같아라.

시온은 다윗왕의 성이자(삼하 5:7) 예루살렘성의 중심으로, 그곳에 땅에 있는 하나님의 거처인 성전이 건축되었다(시 9:11, 74:2, 76:2하, 135:21, 사 8:18).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서 가장 두드러지고 아름다운 곳(시 48:2, 50:2)인 시온은 이기는 이들을 나타내는 예표이며, 그들은 교회의 고봉, 중심, 높아짐, 강화됨, 풍성함, 아름다움, 실재이다(시 48:2, 11-12, 20:2, 53:6상, 87:2). 시온인 이기는 이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이고,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 안에서 몸의 건축을 완결하여, 완결된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곧 영원 안에서의 하나님의 거처인 지성소를 이끌어 온다(계 21:1-3, 16, 22).

예루살렘은 산 위에 건축되었다. 예루살렘에는 정상(頂上)이 있는데, 그곳은 시온산이며 그 위에 성전이 건축되었다. 성전이 건축되기 약 천 년 전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들 이삭을 모리야산에서 바치라고 명령하셨는데, 모리야산은 시온산의 또 다른 이름이다(창 22:2, 대하 3:1). 오늘날 회복의 좋은 상태는 마치 예루살렘과 같다. 그러나 거기에 시온이 없다. 신약에서 이기는 이들은 시온에 비유된다. 요한계시록 14장 1절에서 십사만 사천 명의 이기는 이들은 다만 예루살렘에 있지 않고 시온산 위에 있다. 이기는 이들 곧 활력 그룹들이 오늘날의 시온이다. 오늘날 나의 부담은 여러분을 도와서 활력 그룹이라는 정상, 곧 이기는 이들이라는 시온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비록 우리에게 좋은 교회생활이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 가운데 몸의 생활의 실현이나 실행이나 실지나 실재가 거의 없다. 이것이 오늘날 회복의 필요이다.

니 형제님이 주님에 의해 일으켜졌을 때, 형제님은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이 주님께서 그분의 경륜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절차로서 필요하다는 빛을 보았다. 그러므로 형제님은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을 매우 강조했다. 우리도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을 계속해서 강조해 왔다.

하나의 교회가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로 표현되는 것은 물질적인 이유 때문이다. 우리 믿는 이들은 온 땅에 흩어져 있으므로 한 지방에 있을 수 없다. 우리가 많은 지방에서 살아야 하므로,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지방별로 분리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들이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사실을 잊을 수 없다. 에베소서 4장은 한 몸이 있다고 말한다(4절). 바울은 우리 많은 사람이 여전히 한 떡이며 한 몸이라고 말했다(고전 10:17).

요한계시록에는 결국 하나의 완결이 있다. 이 완결 안에서 일곱 등잔대는 모두 사라진다. 첫 번째 장에서 우리는 일곱 등잔대를 본다. 그러나 마지막 두 장에서 우리는 오직 한 성을 본다. 결국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은 지나갈 것이다. 오직 몸만이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며, 이 그리스도의 몸은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거처인 유일한 장막이 되고, 또한 어린양의 유일한 신부가 될 것이다(계 21:2-3). 우리 모두는 이것을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보다 그리스도의 몸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것은 내가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에 대한 가르침을 폐지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이 필요하다. 사람으로서 우리는 물질적인 골격을 갖고 있다. 그것이 우리의 몸이다. 그러나 몸 그 자체만으로는 하나의 시체일 뿐이다. 육신의 몸은 내적인 생명이 필요하다.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한 면으로 교회는 골격인 몸을 갖고 있지만, 그 골격은 교회의 본성이나 본질이나 요소가 아니다. 에베소서 4장은 우리에게, 교회가 몸이며 이 교회 안에 그 영과 주님과 아버지께서 계신다고 말한다(4-6절). 아버지는 근원이시고, 주님은 요소이시며, 그 영은 몸의 본질이시다. 이 네 실체가 함께 건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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