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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부흥을 위한 거룩한 말씀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에 따라 맏아들이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번식시킴

Propagating
the Resurrected Christ
as the Firstborn Son
according to the Promise
Made to the Fathers
(그 아버지들에게
약속된 대로
그 첫 번째로 나신 아들로서
부활하신 그 그리스도를
번식시킴[증가시킴, 전달하심])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나신
구주 예수님을
이스라엘에게로
이끌어 오셨는데,
… 우리도
조상들에게 하신
그 약속을
여러분에게
복음으로
전합니다.”
— 행 13:23, 32.

사무엘기하 7장 12절에 언급된
다윗의 씨는 사실상
하나님의 맏아들이신
그리스도이다
(삼하 7:14, 히 1:5-6).
이 그리스도는
신성과 인성을 둘 다
가지고 계시며,
솔로몬으로
예표되신다.

사무엘기하 7장 12절의
‘네 씨’와
14절의
‘나의 아들’(영어 회복역 참조)에 관한
말씀은
다윗의 씨가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임을,
곧 사람의 씨가
신성한 아들이 될 것임을
함축한다.

이것은
다윗의 씨이신
그리스도께서
부활 안에서
그리고 그분의 인성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시는 것에 관해
바울이
로마서 1장 3절과 4절에서
한 말과
일치한다.

이 절들은
사람의 씨,
곧 사람의 아들이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계시한다.

신성한 분이신
하나님 자신이
사람의 씨,
곧 사람인
다윗의 씨가
되셨다.

이 씨는
하나님-사람이신
예수님이셨으며,
그분은 오직
그분의 신성으로 인해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 눅 1:35.

사람의 씨이신
그분은
부활을 통하여
그분의 인성 안에서도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심으로
그들의 자녀인
우리에게
이 약속을
온전히 이루어 주셨습니다.
이것은
시편 제이 편에
기록된 것과도
같습니다.
‘너는 내 아들이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
— 행 13:33.

사도행전 13장 32절과 33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맏아들이신
그리스도가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분이시고,
하나님은
예수님을
다시 살리심으로
이 약속을
성취하셨다는 것을
본다.

부활은
사람 예수님께
일종의 출생이었다.

그분은
부활 안에서
하나님에 의해
태어나셔서
많은 형제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맏아들이
되셨다
— 롬 8:29.

그분은
영원부터
독생자이셨다
— 요 1:18, 3:16.

육체가 되신 후
부활을 통해
그분은
인성 안에서
하나님에 의해
태어나셔서
하나님의 맏아들이
되셨다
— 히 1:6.

바울은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라고 말하는
시편 2편 7절에서
주님의 부활을
볼 수 있었다.

바울은
‘오늘’이라는 말을
주님의 부활의 날에
적용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그분께서
하나님의 맏아들로
태어나신 것임을
의미한다.

사람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심으로써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것이 곧
그분을
하나님의 맏아들로
낳으신 것이었다
— 행 13:33.

육체 되심을 통해
하나님의 독생자는
인성을 입으셨고
하나님-사람이
되셨다
(요 1:14, 18, 눅 1:35).
그런 다음
부활 안에서
이 하나님-사람은
하나님에게서
그분의 맏아들로
태어나셨다
(행 13:33, 히 1:6, 롬 8:29).

육체 되심 이전에
하나님의 독생자는
인간 본성을
가지지 않으셨다.
그분은 오직
신성한 본성만을
가지셨다.

부활 안에서
하나님의 맏아들은
신성한 본성뿐 아니라
인간 본성도
가지고 계신다.

그리스도는
부활을 통해
맏아들로 태어나셨고,
동시에
그분의 모든 믿는 이들도
하나님의 많은 아들들로
태어났다
— 벧전 1:3, 히 2:10.

이 많은 아들들 중에
오직 맏아들만이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다
— 요 1:18, 요일 4:9.

이 독생자는
그분의 부활한 인성 안에서
하나님의
맏아들이기도 하시다
— 롬 8:29.

맏아들은
신성과 인성을 둘 다
가지고 계시며,
그분의 믿는 이들인
우리도
하나님의 많은 아들들로서
인간 본성과 신성한 본성을
둘 다
소유하고 있다
— 벧후 1:4.

사도행전 13장에서
바울은
요한복음에서
말하는 것처럼
(1:18, 3:16),
독생자이신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있지 않았다.
그보다 사도행전 13장에서
바울은
그리스도를
번식시키기 위해
하나님의 맏아들이신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있었다.

독생자이신 주님은
신성한 생명의
체현이시다.
요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께서
신성한 생명의
체현이신 것을
강조한다
— 요 1:4.

부활을 통해
그리스도는
생명을 번식시키기 위해
생명을 분배하는 분이신
하나님의 맏아들이
되셨다
— 롬 8:29.

먼저 그리스도는
생명의 체현이신
독생자이셨고,
이제 그분은 또한
생명의 번식을 위한
맏아들이시다.

그리스도께서
부활 안에서
하나님의 맏아들이 되심으로써,
신성한 생명이
그분의
모든 믿는 이들 안으로
분배되어,
그분 안에 체현된
생명의 번식을
산출했다.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것에 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다윗의
거룩한 것들,
신실한 것들을
너희에게
주겠다.’ ”
— 행 13:34.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다윗의
거룩하고 신실한 것들이시다.

‘다윗의
거룩한 것들,
신실한 것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 행 13:33-34.

‘다윗의
거룩한 것들,
신실한 것들’이라는
표현은
그리스도께서
다윗에게서
나셨다는 것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바로
다윗의 씨로부터
그러한 분을
일으키셨기 때문이다
— 롬 1:3-4.

‘다윗의
거룩한 것들,
신실한 것들’이라는
표현은 사실상
신성한 칭호,
곧 그리스도에 대한 칭호이다.

이 거룩하고 신실한 것들은
생명, 빛, 은혜,
의, 거룩함, 생명의 떡,
생수, 능력, 지혜,
영광, 하나님의 깊이들, 머리,
몸, 첫 열매, 둘째 사람과 같은
그리스도의 어떠하심의
모든 방면들이다.

거룩하고 신실한 모든 것들은
우리에게
긍휼들이 되시는
그리스도 자신이다
— 사 55:3, 대하 6:42, 시 89:1.

우리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포함한
선물로 주신
모든 거룩하고 신실한 것들이심을
보아야 한다.
이분이 바로
바울이
사도행전 13장에서 전파한
그리스도였다.

“바로 이분을 통하여
죄들이
용서받게 된다는 것이
여러분에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 이분 안에서
믿는 이는 모두
의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 행 13:38-39.

죄들이
용서받는 것은
부정적인 방면과 관련되며,
우리가
유죄 판결에서
해방받기 위한 것이다
— 행 13:38.

의롭게 되는 것은
긍정적인 방면과 관련되며,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하나님께
기쁘게 받아들여지기 위한 것이다
— 행 13:39, 갈 2:16, 롬 3:24-25.

사도행전 13장 38절과 39절에서
바울은
‘이분’을
두 번 언급했다.

이분은
부활하여
하나님의 맏아들과
우리의 구주와
많은 거룩하고 신실한 것들이
되신 분이시다.

맏아들과 구주와
거룩하고 신실한 것들이신
이분을 통하여
죄들이
용서받게 된다는 것이
우리에게
전해졌고,
이분을 통해
우리가
의롭게 된다.

우리는
이분에 의해
죄들이
용서받고
의롭게 되는데,
이분 자신이
우리가 받은
죄들의 용서와
의롭게 됨이시다.

죄들의 용서와
의롭게 됨은
둘 다
하나님에게서
우리에게 온
긍휼들이며,
이러한 긍휼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여러 방면이다
— 행 13:33-34, 38-39.

부활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받은
죄들의 용서와
의롭게 됨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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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replies on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에 따라 맏아들이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번식시킴”

6일

갈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을
알고,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기 위한 것입니다. …

행 13:38-39
… 바로 이분을 통하여
죄들이
용서받게 된다는 것이
여러분에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여러분이
모세의 율법으로
의롭게 될 수 없었던
모든 일에 있어서도
이분 안에서
믿는 이는 모두
의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년
하나님의 말씀을 말해도
고갈되지 않은 것은
확실히
우리에게
긍휼이 되시는
그리스도이다.
이것은
우리의 능력이나 은사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긍휼의 문제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말해 내는 것이
긍휼일 뿐 아니라,
심지어
우리의 사랑스러운 구주께서
우리의 말함이신 것 또한
긍휼이다.
우리의 말함은
그리스도이며,
이렇게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은
우리에게
긍휼이다.
비록 우리가
말하는 것이
유창하지 않을지라도,
우리의 말에
그리스도가
충만할 수 있다.
이것은
전적으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말해 내는 것에서
우리에게
긍휼이 되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거룩하고 신실한 모든 것들,
곧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포함한
선물로 주신
긍휼들이심을
보아야 한다.
이분이 바로
바울이
사도행전 13장에서
전파한
그리스도였다.
바울은
그의 복음 메시지에서
구약으로부터
그리스도를
전파했을 뿐 아니라,
거룩하고 신실한 것들이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전파했다.
사실상
여기에 나오는
복음 전파에서
바울이
말한 것을
정의하려면,
그가 쓴
모든 서신서들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거룩하고 신실한 것들이신
그리스도에 관해
더 많은 것을
보기 원한다면,
바울의 열네 서신서들을
연구해야 한다.
바울은
복음 전파에 있어서
뛰어난 본을
세웠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의 복음 전파를 위해
바울의 본을
따라야 한다.
바울처럼
우리도
풍성하고 높은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해야 한다.

사도행전 13장 38절과 39절에서
바울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다.
“… 형제 여러분,
바로 이분을 통하여
죄들이
용서받게 된다는 것이
여러분에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여러분이
모세의 율법으로
의롭게 될 수 없었던
모든 일에 있어서도
이분 안에서
믿는 이는 모두
의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죄들이
용서받는 것(38절)은
부정적인 방면과 관련되며,
우리가
유죄 판결에서
해방받기 위한 것이다.
의롭게 되는 것(39절)은
긍정적인 방면과 관련되며,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하나님께
기쁘게 받아들여지기 위한 것이다.

사도행전 13장 38절과 39절 모두에서
바울은
‘이분’을
언급했다.
이분은
누구이신가?
이분은
부활하여
하나님의 맏아들과
우리의 구주와
많은 거룩하고 신실한 것들이
되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거룩하고 신실한 것들,
곧 우리에게
하나님의 긍휼들이 되시는
분을 통해
우리는
죄들이
용서받고
의롭게 된다.
맏아들과 구주와
거룩하고 신실한 것들이신
이분을 통하여
죄들이
용서받게 된다는 것이
우리에게
전해졌다.
그리고 이전에
모세의 율법으로는
의롭게 될 수 없던
모든 것들에서
우리는
이분을 통하여
의롭게 된다.

우리를
용서하시고
의롭다 하신 분은
우리의
구주이실 뿐 아니라,
이분 자신이
우리가 받은
죄들의 용서와
의롭게 됨이시다.
죄들의 용서와
의롭게 됨은
둘 다
하나님에게서
우리에게 온
긍휼들이며,
이러한 긍휼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여러 방면이다. …
죄들의 용서와
의롭게 됨을
그리스도와 분리된 것으로
여기지 말라.
죄들의 용서와
의롭게 됨
둘 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긍휼들이신
그리스도의 방면들이며,
이러한 긍휼들이
거룩하고 신실한 것들이다.
분명히
죄들의 용서와
의롭게 됨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확실히 그것들은
거룩하고 신실한 것들이다.
우리가
이러한 이해를
가지고 있다면,
죄들의 용서와
의롭게 됨이
평범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그보다
그것들은
거룩하다.
더 나아가
신실하고
확실하며
신뢰할 만하다.
바울은
사도행전 13장에서
이런 방식으로
하나님의 맏아들이신
그리스도를 전파했고,
이러한 복음 전파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다.

사도행전 13장 32절부터 39절까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맏아들이신
그리스도를
본다.
하나님은
이분을
조상들에게
약속하셨고,
부활 안에서
그분의 맏아들로
낳으셨다.
하나님의 맏아들로서
그분은
다윗의 거룩한 것들,
신실한 것들이시다.
그분을 통하여
죄들이
용서받게 된다는 것이
전해지며,
그분을 믿는
모든 사람은
모든 일에서
의롭게 된다.

 

5일

사 55:3-4 …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긍휼들이니라
보라 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인으로
세웠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로
삼았나니

대하 6:42
여호와 하나님이여
… 주의 종 다윗에게
베푸신 은총을
기억하옵소서 …

시 89:1
내가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노래하며
주의 성실하심을
내 입으로
대대에 알게 하리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다윗의
거룩하고 신실한 것들,
곧 우리에게
긍휼들과 축복들이
되신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긍휼들이시며 축복들이시다.
이것들은
이사야서 55장 3절에
예언되어 있고
사도행전 13장 34절에서
성취된
다윗의
거룩하고 신실한 것들이다.

사도행전 13장 34절은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심으로
더 이상 썩어질 것으로
돌아가지 않으시게
하신 것에 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다윗의 거룩한 것들,
신실한 것들을
너희에게 주겠다.’ ”
라고 말한다.
33절과 34절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말씀이다.
33절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심으로
그들의 자녀인 우리에게
이 약속을
온전히 이루어 주셨습니다.
이것은
시편 제이 편에
기록된 것과도
같습니다.
‘너는
내 아들이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
라고 말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이
그분을
하나님의 맏아들로
산출하는
그분의
두 번째 출생이라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에게
그분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으며,
부활하신 이분이
다윗의
거룩하고 신실한 것들이시다.
‘다윗의 거룩한 것들,
신실한 것들’이라는
표현은
그리스도께서
다윗에게서 나셨다는 것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바로
다윗의 씨로부터
그러한 분을
일으키셨기 때문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하나님께는
맏아들이시지만,
우리에게는
구주이시다.
더 나아가 그분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에게 주신
큰 선물이시며,
이 선물은
‘거룩한 것들, 신실한 것들’이라고
불린다.

거룩하고 신실한 것들은
그리스도의 어떠하심의
모든 방면들이다.
신약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생명, 빛, 은혜,
의, 거룩함, 거룩하게 하심,
의롭다 하심 등이시다.
그분은 또한
생명의 떡이시고
생수이시다.
더 나아가
거룩하고 신실한 것들은
고린도전서에서 밝힌
그리스도의 모든 방면들,
곧 능력, 지혜, 의,
거룩하게 하심, 구속, 영광,
하나님의 깊이들,
하나님의 건축물을 위한 유일한 기초,
유월절, 무교병, 영적인 음식,
영적인 음료, 영적인 반석,
머리, 몸, 첫 열매,
둘째 사람, 마지막 아담 등을
포함한다.
우리는
요한복음에서
목자와 풀밭과 같은
그리스도의 더 많은 방면들을
볼 수 있다.
거룩하고 신실한 것들이신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얼마나 놀라운 분이신지!
부활하신 분이신
그리스도는
맏아들과 구주와
거룩하고 신실한 모든 것들이시다.

구약에서
거룩하고 신실한 것들은
긍휼들로
간주되었다.
이사야서 55장 3절은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긍휼들’(흠정역 참조)을
언급한다.
역대기하 6장 42절은
주님의 종 ‘다윗의 긍휼들’(흠정역 참조)을
언급하고,
시편 89편 1절은
“내가
여호와의 긍휼들을
영원히 노래하며”
(흠정역 참조)라고 말한다.
긍휼은
사랑과 은혜 모두를
함축하지만,
사랑보다
더 멀리까지 미친다.
사랑과 은혜가
도달할 수 없는 곳에도
긍휼은
도달할 수 있다.
거룩하고 신실한 모든 것들은
우리에게
긍휼들이 되시는
그리스도 자신이다.
생명은
긍휼이다.
빛 또한
긍휼이다.
마찬가지로
의, 거룩함,
의롭다 하심, 거룩하게 하심도
긍휼들이다.
요한복음 10장에서
우리는
문과 풀밭과 목자를
보는데,
이 모든 것이
긍휼들이다.
우리가
시간을 내어
이러한 긍휼들의
모든 방면을 세어 본다면,
긍휼들의 긴 목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아내에 대한
남편의 사랑과
남편에 대한
아내의 복종은
우리에게
긍휼들이 되시는
그리스도이다.
남편이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아내를
사랑한다면,
그것은 확실히
긍휼이다.
아내에 대한
남편의 사랑은
남편에게
긍휼이 되시는
그리스도 자신이다.
마찬가지로,
한 자매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남편에게
복종한다면,
그것 또한
긍휼이다.
그녀의 복종은
그녀에게
긍휼이 되시는
그리스도 자신이다.

 

4일

행 13:34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심으로
더 이상
썩어질 것으로
돌아가지 않으시게
하신 것에 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다윗의 거룩한 것들,
신실한 것들을
너희에게
주겠다.’

롬 1:3-4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것입니다.
이 아들은,
육체에 따라 말하자면
다윗의 씨에서
나셨고,
거룩한 영에 따라 말하자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부활하시어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습니다.
이분은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독생자와 맏아들의
차이점이 무엇인지를
자문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선뜻
독생자는
형제가 없는 사람을,
맏아들은
많은 형제들이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부활 안에서
하나님의 맏아들이
되심으로써,
신성한 생명이
그분의
모든 믿는 이들 안으로
분배되어,
그분 안에 체현된
생명의 번식을
산출했다.

사도행전 13장에서
바울은
요한복음에서처럼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있지 않았다.
그보다 여기에서
바울은
번식을 위한
하나님의 맏아들이신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그는
주 예수님의
두 번째 출생인
그분의 부활을
전파했다.
두 번째 출생,
곧 부활 안의 출생을 통해
그리스도는
신성한 생명의
번식을 위한
하나님의 맏아들이
되셨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맏아들로
출생하신 것이
그리스도께서
부활을 통해 이루신
위대한 일이었다는 것을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이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인데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 문제를
결코 보지 못했다.

사도행전 13장 33절과 34절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이다.
33절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그분을
하나님의 맏아들로
산출한
그분의
두 번째 출생이었음을
말해 준다.

34절에서
‘거룩한 것들’에 대한
헬라어는
복수형이다.
동일한 헬라어 단어가
다음 절에서
‘거룩한 분’으로
사용되지만
거기서는
단수형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거룩한’에 대한
통상적인 단어가 아니며,
히브리어 ‘헤세드’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이다.
그 단어는
〈칠십인역〉과 〈흠정역〉의
이사야서 55장 3절과
역대기하 6장 42절과
시편 89편 1절에서
모두
‘긍휼들’로
번역되어 있다.
시편 89편 1절에서
복수형인 ‘긍휼들’에
사용된 단어와
19절에서
단수형인 ‘거룩한 분’에
사용된 단어는
동일한 단어이다.
이 거룩한 분은
그리스도
곧 다윗의 자손이시며,
하나님의 긍휼들이
그분 안에 집중되고
그분 안에서 전달된다.
그러므로
다윗의
거룩한 것들과
신실한 것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이것은
문맥에 의해서,
특히 다음 절에 있는
‘주님의 거룩한 분’과
이사야서 55장 3절 하반절로
충분히 증명된다.

사도행전 13장 33절과 34절에
나타난
바울의 사상은
매우 깊다.
두 번째 출생인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맏아들로 나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거룩하고 신실한 것들이시다.
34절에서
‘신실한’이라는 단어는
‘신뢰할 만한’을
뜻한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거룩하고 신실한 것들이시다.
여기서 바울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단지 우리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가져다주시는
우리의 구주만이 아니시고,
단지 하나님의
맏아들만이 아니시라고
말한다.
부활하신 이분은 또한
하나님께서
선물로
우리에게 주신
거룩하고 신실한 것들이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주이신 것은
이해하기가 쉽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맏아들이신 것은
이해하기가
조금 더 어렵다.
그러나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거룩하고 신실한 것들이심을
이해하기란
매우 어렵다.
거룩하고 신실한 것들은
넓은 범위를
다룬다.
이 범위는
‘구주’와 ‘맏아들’이라는
칭호가
다루는 범위보다
훨씬 더 넓다.
‘거룩한 것들, 신실한 것들’이라는
표현은 사실상
신성한 칭호,
곧 그리스도에 대한 칭호이다.
이 절들에서
그리스도는
거룩하고 신실한 것들이라고
불리신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씨로부터
일으키신 구주는
거룩하고 신실한 것들이
되셨다.

 

3일

요 1:18
일찍이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었으나,
아버지의 품속에 계시는
독생자이신 그분께서
하나님을
나타내 보이셨다.

롬 8:29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사람들을
그분의 아들과
같은 형상을 이루게 하시려고
또한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분의 아들을
많은 형제들 가운데서
맏아들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영원 과거의
하나님의 독생자와
부활 안의
하나님의 맏아들의
차이점은,
그분께서
육체가 되시기 전인
영원 과거에
그분께는
인성이 없고
신성만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육체 되심의
과정을 통해
그분은
인성을 입으셨다.
그분은
인간 생활을 통과하셨고,
죽음 안으로 들어가셨으며,
부활 안에서 나오셨다.
부활 안에서
그분은
그분의 신성에 따라
여전히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그분께
무언가가 더해진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분께서
육체 되심을 통해
인성을 소유하셨다는 것이다.
육체 되심 안에서
그분이 입으신 인성 또한
아들의 자격에
참여할 수 있도록
부활 안으로
이끌렸다.
사도행전 13장 33절에서
부활하신 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에게서 태어나셨다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것은
부활이
그분의 인성을
‘아들화’하여
그분의 인성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절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의 출생으로서
그분을
신성만 있는
하나님의 독생자가 아니라,
신성과 인성이 있는
하나님의 맏아들이
되게 하셨다.

오늘날 그리스도는
두 방면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분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며
또한 하나님의 맏아들이시다.
그러나 만일 그분이 단지
하나님의 독생자이실 뿐이라면,
그분께는
어떤 형제도
없으실 것이다.
우리를
그분의 형제들로
얻으시려면
그분은 반드시
인성을
소유하셔야 한다.
그러나 영원 과거에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그분은
인성이 없이
단지 신성만을
소유하셨다.
그러나 육체 되심 안에서
그리스도는
인성을 입으셨고
부활을 통해
이 인성을
아들의 자격 안으로
이끄셨다.
이렇게 하여
그분은
신성과 인성을 모두 가진
하나님의 맏아들이
되셨다.
그런 다음에 그분은
생명 주시는 영으로서
우리 안으로 들어오시어
우리 또한
하나님의 아들들로
만드셨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형상이 아닌
하나님의 맏아들과
같은 형상을 이루는
하나님의 많은 아들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맏아들이신
그리스도께는
많은 형제들이 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맏아들로
출생하신 것이
그리스도께서
부활을 통해 이루신
위대한 일이었다는 것을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이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인데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 문제를
결코 보지 못했다.

부활하신 날에
그리스도는
그분의 인성 안에서
하나님에게서
태어나셨다.
그분은
하나님의 많은 아들들을
산출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맏아들이
되셨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이
우리가
거듭난 날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부활하셨을 때
믿는 이들인
우리 모두도
그분과 함께
부활했다
(벧전 1:3).
그리스도는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맏아들로
태어나셨고,
동시에
그분의 모든 믿는 이들도
하나님의 많은 아들들로
태어났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에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모든 사람들이
부활하여
하나님의 많은 아들들로
출생하였다.
이제 하나님은
신성과 인성을 지닌
많은 아들들을
가지고 계신다.
그러나 이 많은 아들들 가운데
오직 맏아들만이
그분의 독생자이시다.
하나님의
이 독생자는
그분의 부활한 인성 안에서
하나님의
맏아들이기도 하시다.
하나님의 맏아들이신
그분은
신성과 인성을 둘 다
가지고 계시며,
그분의 믿는 이들인
우리도
하나님의 많은 아들들로서
인간 본성과 신성한 본성을 둘 다
소유하고 있다
(벧후 1:4).
이제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맏아들과
같은 형상을 이루고 있다
(롬 8:29).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주님은
신성한 생명의
체현이시다.
요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께서
신성한 생명의
체현이신 것을
강조한다
(1:4).
부활을 통해
그리스도는
생명을 번식시키기 위해
생명을 분배하는 분이신
하나님의 맏아들이
되셨다.
먼저 그리스도는
생명의 체현이신
독생자이셨고,
이제 그분은
생명의 번식을 위한
맏아들이시다.

 

2일

히 1:5-6
하나님께서 천사들 중
누군가에게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으며,
또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에게
아들이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맏아들을 이끄시어
세상에
다시 오게 하실 때,
“하나님의 모든 천사는
그분께 경배하여라.”
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주 예수님께는
두 번의 출생이
있었다.
첫 번째로
그분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셔서
사람의 아들이 되셨다.
그리고 삼십삼 년 반 후에
그분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장사되시고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셨다.
부활을 통해
그분은
두 번째로 출생하셨는데,
그것은
사람이신 그분이
부활 안에서 태어나셔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분은
첫 번째 출생에서
마리아에게서 태어나
사람의 아들이
되셨고,
두 번째 출생에서는
부활 안에서 태어나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다.

두 번째 출생에서
주 예수님은
하나님의 맏아들로
태어나셨다.
신약에 따르면,
그분은
두 방면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첫째로,
그분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셨다.
둘째로,
그분은 이제
하나님의 맏아들이시다.
‘독생자’라는 말은
하나님께
오직 한 아들이
있으시다는 것을
가리킨다.
요한복음 1장 18절과 3장 16절은
하나님의 독생자를
말한다.
영원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다.
이것은
그분의 영원한 신분이다.
그러나 사람이신 그분은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맏아들로
태어나셨다.
‘맏아들’이라는 말은
하나님께 이제
많은 아들들(히 2:10)이
있으시다는 것을
가리킨다.
로마서 8장 29절과 히브리서 1장 6절은
둘 다
맏아들이신
그리스도에 대해
말한다.
그리스도를 믿은
우리는
하나님의 많은 아들들과
주님의
많은 형제들,
곧 하나님의 맏아들의
많은 형제들이다
(롬 8:29).

물론 그리스도의 육체 되심도
하나의 출생이었다.
그러나 그 출생은
그분을
사람의 아들이
되게 했을 뿐이다.
그리스도는
육체 되심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
되지 않으셨다.
그리스도는
영원 과거에,
곧 육체 되시고
부활하시기 이전에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성경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영원하시다는 것을
계시한다.
하나님은
삼일—아버지와 아들과 영—이시며,
셋 모두
영원하시다.
아버지 하나님이
영원하시고
(사 9:6),
아들 하나님이
영원하시며
(히 7:3),
영 하나님이
영원하시다
(9:14).

영원하다는 것은
시작과 끝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학자들은 때때로
영원을 설명하기 위해
원을 사용한다.
원은
시작도 끝도 없으며,
원 위의 어떤 점이
다른 점 앞에 오는지
아니면 뒤에 오는지
말하기가 어렵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버지와 아들과 영은 모두
영원하셔서
시작도 없으시고
끝도 없으시다.
히브리서 7장 3절은
하나님의 아들이 영원하셔서,
생애의 시작도
생명의 끝도
없으시다고
말한다.
성경의 계시는
아버지께서
아들 전에 존재하셨다고,
아들은
아버지 후에 생겨나셨다고,
그 영은
아들 후에 오셨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경은
셋 모두가
영원하시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아들은
영원하시다.
그러나 이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약 이천 년 전에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셨다.
육체 되심 안에서
그분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으며,
그 출생에 의해
사람의 아들이 되셨다.
그러므로 그분의 육체 되심은
그분의 첫 번째 출생이었다.
그러나 성경은 또한
그리스도께
두 번째 출생이 있었음을
우리에게 말한다.
첫번째 출생에서
그리스도는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셨다.
두 번째 출생에서
그분은
하나님의 맏아들로
태어나셨다.
한편으로
요한복음 3장 16절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시어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이 절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독생자이셨음을
지적한다.
또 한편으로
로마서 8장 29절은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그분의 아들을
많은 형제들 가운데서
맏아들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께서
두 방면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첫 번째 방면은
그분이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것이고,
두 번째 방면은
그분이
많은 아들들 가운데
맏아들이신 것이다.
로마서 8장 29절은
믿는 이들이
독생자의
형상이 아닌
하나님의 맏아들과
같은 형상을 이루게 된다고
말한다.

 

신언노트, 2018 10 28

“이 사람의 씨에서부터,
 하나님께서,
 약속에 따라,
 한 구주, 예수님을
 이스라엘에게
 이끌어 오셨는데
 … 또 그 아버지들에게 하신
 그 약속의 복음을
 우리가
 여러분에게
 전합니다.”
 — 행 13:23, 32.

사무엘기하 7장 12절에 언급된
 다윗의 씨는 사실상
 하나님의 첫 번째로 나신 아들이신
 (first-born Son; 맏아들이신)
 그리스도이시고,
 그분께서
 신성과 인성을 둘 다
 가지고 계시며,
 또 솔로몬으로
 예표되십니다.

사무엘기하 7장 12절의
 ‘네 씨’와
 14절의
 ‘나의 아들’(영어 회복역 참조)에 관한
 그 말씀은
 다윗의 씨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실 것임을;
 곧 사람의 한 씨가
 한 신성한 아들이 되실 것임을
 함축합니다:

이것은
 다윗의 씨이신
 그리스도께서
 부활 안에 있는
 그분의 인성(humanity; 사람의 속성)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지명되시는 것에(being designated; 불려짐에) 관하여
 바울이
 로마서 1장 3절과 4절에서
 한 말과
 일치합니다.

이 절들은
 사람의 한 씨,
 곧 사람의 한 아들이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계시합니다:

하나님 그분 자신,
 곧 신성하신 한 분께서,
 사람의 한 씨,
 곧 한 사람, 다윗의 씨가
 되셨습니다.

이 씨는
 예수님,
 곧 그 하나님-사람이셨으며,
 그분은 오직
 그분의 신성의 미덕에 의해서만
 (by …; 미덕으로만)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그분의 부활을 통하여
 사람의 그 씨이신
 그분께서
 그분의 인성 안에서도 또한
 (in …; 인성으로도)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위로 일으키심 안에서
 (in raising up; 다시 살리심으로)
 그들의 아이들인
 우리에게
 이 약속을
 완전히 성취하셨고,
 (has fully fulfilled;
 온전히 이루어 주셨습니다.)
시편 제이 편에
 기록된 대로,
‘너는
 내 아들이다;
이 날에
 (this day;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
 (하셨습니다:)
 — 행 13:33.

사도행전 13장 32절과 33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첫 번째로 나신 분이신
 (as the Firstborn; 맏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그 아버지들에게
 약속되셨고,
 또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위로 일으키심에 의해
 이 약속을
 성취하셨다는 것을
 봅니다.

부활은
 그 사람 예수님께
 한 출생이었습니다:

그분께서는
 그분의 부활 안에서
 하나님에 의해
 태어나셨고
 많은 형제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첫 번째로 나신 아들이
 되셨습니다.

그분은
 영원으로부터
 그 유일하게 나신 아들이셨습니다
 (the only begotten Son; 독생자이셨습니다).

그분의 육체 되심 후에,
 부활을 통하여
 그분께서
 그분의
 인성 안에서
 (in His humanity; 인성으로)
 하나님에 의해
 태어나셨고
 하나님의
 첫 번째로 나신 아들이
 되셨습니다.

바울은
 시편 2편 7절에서
 주님의 부활을
 볼 수 있었습니다:
“너는
 내 아들이라
 /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바울은
‘오늘’이라는 단어를
 주님의 부활의 날에
 적용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하나님의
 첫 번째로 나신 아들로서
 그분의
 출생이었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
 곧 사람의 아들께서,
 죽은 사람들로부터
 위로 일으켜지심을 통하여
 태어나셨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사람들로부터
 위로 일으키심은
 그분께서
 그분을 낳으심이었고
 그분의
 첫 번째로 나신 아들이
 되게 하심이었습니다.

육체 되심을 통하여
 하나님의
 유일하게 나신 아들께서
 인성을 입으셨고
 그 하나님-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부활 안에서
 이 하나님-사람께서
 하나님에게서 나셨고
 그분의
 첫 번째로 나신 분이
 되셨습니다:

육체 되심 전에
 하나님의
 유일하게 나신 아들께서
 그 인간적인 본성을
 가지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오직
 그 신성한 본성만을
 가지셨습니다.

부활 안에서
 하나님의
 첫 번째로 나신 아들께서
 그 신성한 본성뿐 아니라
 그 인간적인 본성도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그분께서
 태어나셨고
 그 맏아들이
 되셨으며,
그와 동시에
 그분의 모든 믿는 이들도
 태어났고
 하나님의 많은 아들들이
 되었습니다:

이 많은 아들들 중에서,
 오직 첫 번째로 나신 그분만이
 하나님의
 유일하게 나신 아들이십니다.

하나님의
 이 유일하게 나신 아들께서,
 그분의 부활하게 된 인성 안에서,
 또한 하나님의
 첫 번째로 나신 아들이십니다.

첫 번째로 나신 그분께서
 신성과 인성을 둘 다
 가지고 계시고,
 또 우리,
 곧 그분의 믿는 이들도
 하나님의 많은 아들들로서,
 그 인간적인 본성과 그 신성한 본성을
 둘 다
 소유합니다.

사도행전 13장에서
 바울은
 요한복음이
 하는 것처럼,
 그 유일하게 나신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도행전 13장에서
 바울은
 번식을(propagation; 증가를) 위하여,
 하나님의
 첫 번째로 나신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있었습니다:

그 유일하게 나신 아들로서,
 주님은
 그 신성한 생명의
 체현이십니다;
요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또,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분께서
 신성한 생명의
 체현이신 것을
 강조합니다.

부활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생명의 번식을 위한
 그 생명-분배자이신
 하나님의
 첫 번째로 나신 아들이
 되셨습니다.

처음에,
 그리스도께서
 생명의 체현이신
 하나님의
 유일하게 나신 아들이셨습니다;
 이제
 그분께서는 또한
 생명의 번식을 위한
 첫 번째로 나신 그 아들이십니다.

그분께서
 부활 안에서
 하나님의
 첫 번째로 나신 아들이 되심을 통하여,
 그 신성한 생명이
 그분의
 모든 믿는 이들 안으로
 분배되었고
 그분 안에 체현된
 생명의 번식을
 산출했습니다
 (to bring forth; 야기했습니다).

“그분께서(His;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사람들로부터
 위로 일으키심에 관하여,
 … 그분께서
 이 방식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다윗의 거룩한 것들,
 곧 그 신실한(faithful) 것들을
 너희에게
 주겠다.’ ”
 — 행 13:34:

그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거룩하고 신실한 것들이십니다;
‘다윗의 거룩한 것들,
 곧 그 신실한 것들’은
 그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다윗의
 거룩한 것들,
 신실한 것들’이라는
 구는(The phrase; 표현은)
 그리스도께서
 다윗에게서
 나셨다는 것을
 가리키는데,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러하신 한 분을
 위로 일으키셨던 것이
 다윗의 씨에서였기
 (out of …; 씨에서부터 일으키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거룩한 것들,
 곧 그 신실한 것들’이라는
 구는 사실상
 한 신성한 칭호(title; 경칭, 호칭),
 곧 그리스도의 한 칭호입니다.

이 거룩하고 신실한 것들은
 그리스도의
 무엇이심의
 (what; 어떤 것이심의, 어떠하심의)
 모든 면들이고
 (aspects; 모습들이고, 방면들이고),
 생명, 빛, 은혜,
 의, 거룩함, 생명의 떡,
 그 살아있는 물(그 생수), 능력, 지혜,
 영광, 하나님의 깊이들(depths; 깊은 것들), 그 머리,
 그 몸, 그 첫 열매들, 또 그 둘째 사람 등과 같습니다.

그 거룩하고 신실한
 모든 것들은
 우리에게
 긍휼들이신
 그리스도 그분 자신이십니다.

우리는
 그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에 의해
 우리에게
 모든 것을 포함하는
 한 선물로 주어지신
 그 거룩하고 신실한
 모든 것들이시라는 것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분이 바로
 사도행전 13장에서
 바울에 의하여
 전해지신(preached; 전파되신)
 그 그리스도이셨습니다.

“이 한 분을 통하여
 죄들의 용서가
 여러분에게
 전해집니다,”
 또 “… 이 한 분 안에
 믿는 사람들은 누구나
 의롭게 됩니다.”
 — 행 13:38-39.

죄들에서
 용서받는 것은
 부정적인 면에 관한 것이고,
 또 우리의 유죄 판결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있습니다.

의롭게 되는 것은
 긍정적인 면에 관한 것이고,
 또 우리의
 하나님께
 화목하게 됨과
 (reconcillation; 화해함과)
 우리의
 하나님에 의하여
 기꺼이 받아들여짐을
 (being accepted; 기쁘게 받아들여짐을)
 위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13장 38절과 39절에서
 바울은
 “이 한 분”을
 두 번
 말했습니다:

이분은
 부활하게 되셨고
 (has been resurrected; 부활하셔서)
 하나님의
 첫 번째로 나신 아들,
 우리의
 구주,
 또 그 많은
 거룩하고 신실한 것들이
 되신
 그 한 분이십니다.

그 첫 번째로 나신 아들,
 그 구주,
 또 그 거룩하고 신실한 것들이신
 그 한 분을 통하여
 죄들의 용서가
 우리에게 전해졌고,
 또 이 한 분을 통하여
 우리가 의롭게 됩니다.

그분에 의해서
 우리가
 용서받고
 의롭게 되는
 그 한 분께서
 스스로(직접)
 우리의
 용서와 의롭게 하심이십니다
 (Himself our forgiveness and justification;
 우리의
 용서와 의롭게 하심이신
 그분 자신이십니다):

용서와 또 의롭게 하심은 둘 다
 하나님께로부터
 우리에게의
 긍휼들이고,
 또 이 긍휼들은
 그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측면들입니다(aspects).

그분의(His; 그리스도의) 부활 안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용서와
 의롭게 하심이십니다.

 

Our speaking
the word of God
year after year
inexhaustibly
is certainly Christ
as a mercy to us.

This is
not a matter of
our ability or gift.
It is
altogether a matter of
mercy.

Not only is it
a mercy
for us
to speak
the word of God,

but even the dear Savior
is our speaking.

Our speaking
is Christ,

and to us
this speaking Christ
is a mercy.

Though our speaking
may not be eloquent,

our speaking
may be
full of Christ.

This is
wholly due to
Christ being a mercy
to us
in speaking
the word of God.

우리를
용서하시고
의롭게 하시는
그 한 분께서
우리의
구주이실 뿐 아니라,
그분 자신께서
우리의
용서와
의롭게 함이십니다.

죄들의 용서와
의롭게 함은
둘 다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에게의
긍휼들이며,
이러한 긍휼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측면들(모습들)입니다.

오늘날
그분의 부활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용서와
우리의 의롭게 하심이십니다.

죄들의 용서와
의롭게 함을
그리스도께로부터 떨어진 어떤 것으로
여기지 마십시오.

죄들의 용서와
의롭게 함
둘 다
하나님께로부터
우리에게의
긍휼들이신
그리스도의
측면들(모습들)이며,
또 이 긍휼들이
거룩하고 신실한 것들입니다.

확실히,
용서와 의롭게 함은
하나님의 선물들이고,
또 그것들은 분명히
거룩하고 신실한 것들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이해를
가지고 있다면,
용서와
의롭게 함이
평범하지 않음을(not common)
알게 될 것입니다.

오히려
그것들은
거룩합니다.

더 나아가,
그것들은
신실하고
확실하며
신뢰할 만합니다.

이것은
바울이
사도행전 13장에서
하나님의
첫 번째로 나신 분이신
그리스도를
전함이고,
이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았습니다.

사도행전 13장 32절부터 39절까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맏아들이신
그리스도를
봅니다.

하나님은
이분을
조상들에게
약속하셨고,
부활 안에서
그분의 맏아들로
낳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맏아들로서
그분은
다윗의 거룩한 것들,
곧 신실한 것들이십니다.

그분을 통하여
죄들의 용서가
전해지며,
그분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모든 일에서
의롭게 됩니다.

구약에서
거룩하고 신실한 것들은
긍휼들로
간주되었습니다.
이사야서 55장 3절은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긍휼들’을
언급합니다.
역대기하 6장 42절은
주님의 종 ‘다윗의 긍휼들’을
언급하고,
시편 89편 1절은
“내가
여호와의 긍휼들을
영원히 노래하며”
라고 말합니다.
긍휼은
사랑과 은혜 모두를
함축하지만,
사랑보다
더 멀리까지 미칩니다.
사랑과 은혜가
도달할 수 없는 곳에도
긍휼은
도달할 수 있습니다.
거룩하고 신실한 모든 것들은
우리에게
긍휼들이 되시는
그리스도 자신이십니다.

아내에 대한
남편의 사랑과
남편에 대한
아내의 복종은
우리에게
긍휼들이 되시는
그리스도입니다.
남편이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아내를
사랑한다면,
그것은 확실히
긍휼입니다.
아내에 대한
남편의 사랑은
남편에게
긍휼이 되시는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마찬가지로,
한 자매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남편에게
복종한다면,
그것 또한
긍휼입니다.
그녀의 복종은
그녀에게
긍휼이 되시는
그리스도 자신이십니다.

1일

행 13:32-33
우리도
조상들에게 하신
그 약속을
여러분에게
복음으로
전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심으로
그들의 자녀인
우리에게
이 약속을
온전히 이루어 주셨습니다.
이것은
시편 제이 편에
기록된 것과도
같습니다.
‘너는
내 아들이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사무엘기하 7장 12절에서
‘네 씨’는
문자적으로는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가리키는데,
그는
구약 시대의
하나님의 거처인
성전을 건축하였다
(왕상 5:5, 8:15-20,
대상 22:9-10, 28:6).
그러나 사무엘기하 7장 14절
상반절을 인용한
히브리서 1장 5절 하반절에 따르면,
다윗의 씨는 사실상
하나님의 맏아들이신
그리스도이다
(히 1:5하-6).
이 그리스도는
신성과 인성을 둘 다
가지고 계시며,
여기서
솔로몬으로
예표되신다
(마 1:1 각주 3 참조).
하나님의 아들은
다윗의 집안,
곧 다윗의 존재 안으로
조성(건축)되심으로써
다윗의 씨가
되셨다.
사실상 이 절에서
하나님은
다윗에게 필요한 것이
그가
하나님을 위하여
무언가를
건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을
다윗 안으로
건축하시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다윗이
그분께
백향목 집을
건축해 드리는 것이
아니었다
(삼하 7:5-7).
또한 하나님은
다윗이
그분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는 것만으로도
만족하지 않으셨다
(삼상 13:14).
하나님의 갈망은
그분 자신을
그리스도 안에서
다윗의 인성 안으로
일해 넣으시어
그분께서
다윗의
생명과 본성과 조성이
되시는 것이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는
다윗에게
그의 집(거처)과 그의 씨를 포함한
모든 것이 되신다.

사무엘기하 7장 12절의
‘네 씨’와
14절의
‘나의 아들’(영어 회복역 참조)에 관한
말씀은
다윗의 씨가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임을,
곧 사람의 씨가
신성한 아들이
될 것임을
함축한다.
이것은
다윗의 씨이신
그리스도께서
부활 안에서
그리고 그분의 인성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시는 것에 관해
바울이
로마서 1장 3절과 4절에서
한 말과
일치한다.
… 이 말씀은 또한
마태복음 22장 41절부터 45절까지에 있는
주님의 질문과도
관련이 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다윗의 자손이신 동시에
다윗의 주님으로서
하나님의 아들이실 수 있는지,
즉 신성과 인성이라는
두 본성을 지니신
놀라운 인격이신
하나님-사람이실 수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이 절들은
사람의 씨,
곧 사람의 아들이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계시한다.
신성한 분이신
하나님 자신이
사람의 씨,
곧 사람인
다윗의 씨가
되셨다.
이 씨는
하나님-사람,
곧 여호와 구주이신
예수님이셨으며
(마 1:18-21, 딤후 2:8),
그분은 오직
그분의 신성으로 인해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눅 1:35).
사람의 씨이신
그분은
부활을 통하여
그분의 인성 안에서도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사람 안으로
조성되시고
사람이
하나님 안으로
조성되어,
하나님과 사람이
한 실체인
하나님-사람으로
함께 연합되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경륜 안에서
그분 자신이
사람이 되심으로써
사람을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이 되게 하고자
하셨다는 것을
암시한다.

사도행전 13장 32절과 33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도
조상들에게 하신
그 약속을
여러분에게
복음으로
전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심으로
그들의 자녀인
우리에게
이 약속을
온전히 이루어 주셨습니다.
이것은
시편 제이 편에 기록된 것과도
같습니다.
‘너는
내 아들이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맏아들이신
그리스도가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분이시고,
하나님은
예수님을
다시 살리심으로
그들의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성취하셨다는 것을
본다.
부활은
사람 예수님께
일종의 출생이었다.
그분은
부활 안에서
하나님에 의해
태어나셔서
많은 형제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맏아들이
되셨다
(롬 8:29).
그분은
영원부터
하나님의 독생자이셨다
(요 1:18, 3:16).
육체가 되신 후
부활을 통해
그분은
인성 안에서
하나님에 의해
태어나셔서
하나님의 맏아들이
되셨다.

바울은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라고 말하는
시편 2편 7절에서
주님의 부활을
볼 수 있었다.
바울은
‘오늘’이라는 말을
주님의 부활의 날에
적용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그분께서
하나님의 맏아들로
태어나신 것임을
의미한다.
사람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심으로써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것이 곧
그분을
하나님의 맏아들로
낳으신 것이었다.
우리는
주님의 부활이
그분의 출생이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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