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nsecration of the Priests
시나이에서
율법이 반포되고
성막이 건축된 후에,
하나님은
레위기의 모든 장들을
그분의 백성에게
전해 주셨는데,
이것은
하나님께 경배하고 참여하며,
거룩하고 정결하고 기뻐하는 삶을 살도록
그들을
훈련시키기 위해서였다.
레위기 8장의 기록은
제사장들인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헌신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1장부터 7장까지에 나오는
제물들이
제사장들의
헌신 또는 임명을 위한 것임을
가리킨다.
‘헌신하다’(출 28:41, 29:9, 33, 35)라는 단어는
히브리어에서
‘손을 채우다’를
의미한다.
아론은
대제사장의 거룩한 신분을
받기 위해
헌신함으로써
그의 빈손이
채워지게 하였다
(레 8:25-28).
제사장 직분을 위해
헌신할 때
우리는
우리의 누림을 위해
다섯 가지 제물(번제물, 소제물, 속죄제물, 속건제물, 화목제물) 모두이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로
‘우리의 손을 채워야 한다’.
제물들은
그리스도의 예표인데,
그분께서
우리에게
어떤 분이시든지,
우리를 위해
어떤 일을 하시든지
그 모든 것은 바로
우리를
제사장들로
조성하기 위한 것이다
— 벧전 2:5, 9, 계 1:6, 5:10, 비교 2:6.
우리가
제물들이신 그리스도를
누림으로써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조성되시는 것이
신성한 임명이다.
헌신은
우리 편에서의 일이고
(우리가
자신을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이고),
임명은
하나님 편에서의 일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임명하시는 것이다).
회막 입구에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헌신한 것은
제사장 직분을 위한
우리의 헌신이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일 뿐 아니라
교회를 위한 것임을
의미한다
— 레 8:1-3.
모세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물로 씻기는 것은
우리가
제사장 직분을 위해
헌신하기 위해서는
그 영으로
씻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레 8:6, 고전 6:11.
모세가
성막과 제단과 물두멍과 그 모든 집기에
기름을 발라
거룩하게 한 것(레 8:10-11)은
그리스도와 교회(성막),
십자가(제단),
그 영의 씻음(물두멍)이
신약의 제사장 직분과 관련이 있으며
제사장을 거룩하게 하기 위한 것임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제사장들로
임명하시는 것은
거룩하게 되는 문제,
곧 우리가
하나님께로 분별되고
거룩한 분이신 하나님으로
적셔지는 문제이다.
기름 바름은
그리스도의
인성, 인간 생활, 죽음, 부활, 승천으로 복합되신
삼일 하나님을
제사장들에게로
그리고 교회생활로
모셔 온다.
이것은
제사장 체계에
기름을 바르는 것이
하나님을
우리와 하나 되게 하는 것임을
분명하게 나타낸다.
왜냐하면 기름 바름은
하나님의 온 존재와
하나님께서 지금 하고 계신 일과
하나님께서 장차 하실 일이
모두
우리의 것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 요일 2:20, 27, 출 30:22-26.
제사장이
헌신할 때,
기름 바름이 있은 후 즉시
속죄제물과 번제물을
바쳤다
(레 8:14-21).
이러한 제물들은
우리가
누구이며
어떠한 존재인가와
우리가
마땅히 어떠한 존재가 되어야 하지만
아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
모세가
아론의 아들들에게
제사장의 의복을 입힌 것은
신약의 제사장들인 믿는 이들이
그리스도의 인간 미덕들과 연합된
그분의 신성한 속성들로
단장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외적인 표현은
그리스도의 인간 미덕들 안에서 표현된
그분의 신성한 속성들이어야 한다
— 레 8:13.
예표에서
의복은
표현을 상징한다
(비교 사 64:6, 계 19:8).
제사장의 의복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들에게서 나타난
그리스도의 표현을
의미한다.
아울러 제사장들은
거룩한 의복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거룩하게 되었고 분별되었다
(출 28:2-3).
주로 영화로움과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제사장의 의복(출28:2)은
그리스도의 신성한 영광과
인간적인 아름다움의 표현을
상징한다.
영광은
그리스도의 신성
곧 그분의 신성한 속성들과 관계있고
(요 1:14, 히 1:3),
아름다움은
그리스도의 인성
곧 그분의 인간 미덕들과 관계있다.
제사장의 의복에 있는
금으로 예표된
그리스도의 신성은
영광을 위한 것이고,
청색 실과 자주색 실과 진홍색 실과 세마포로
예표된
그분의 인성은
아름다움을 위한 것이다
(출 28:4-6).
신성한 영광과 인간적인 아름다움을 지니신
그리스도를 표현하는 생활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고
제사장 체계가 될 자격이 있게 한다
(비교 롬 13:14).
속죄제물로 바치는 황소는
우리의 속죄제물로서
육체와 옛사람과
내주하는 죄와 사탄과
세상과 세상 통치자를
처리하시는
더욱 강하시고 더욱 풍성하신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이러한 제물로 말미암아
우리는
신약의 제사장 직분을
감당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우리 자신이
위에서 열거한
모든 부정적인 것들의
조성체라는 것과
우리가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기 위하여
날마다
그리스도를
우리의 속죄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 레 8:14.
제사장들은
“회중의 죄악을
짊어지고
여호와 앞에서
그들을 위해
속죄하도록”
성소에서
속죄제물을
먹어야 했다
—레 10:17.
제사장들이
속죄제물에 참여하여
백성의 죄악을 짊어지는 것은
신약의 제사장인 우리가
다음과 같은 의미에서
믿는 이들의 속죄제물이신
그리스도께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다른 이들의 죄들을
짊어지는 생명인
그리스도의 생명에 참여하여
그분을
우리의 생명 공급으로 누림으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의 문제를
짊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교회생활 안에서
우리의 속죄제물이신 그리스도를
풍성하게 누림으로써
죄를 처리할 수 있는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에게 공급할 수 있으며,
그럴 때 그들은
자신의 죄들을 처리하여
단절된 하나님과의 교통을
회복할 수 있다
— 갈 6:1-2, 엡 4:2.
우리는
죄를 처리하는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누리는 동안에,
하나님의 백성의
죄악을 짊어지는 역량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
즉 죄 가운데 있는
사랑스러운 이들에게
그리스도를 공급하기를
반드시 배워야 한다.
죄를 처리하는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누군가에게 공급하는 것은
그를 찾아가
그의 잘못을 지적하고
그를 유죄 판결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손상만 줄 것이다.
죄를 짓는 사람은
보통 마음이 굳어져 있다
(히 3:13).
죄를 짓는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공급하려면,
우리는
그의 굳어진 마음을
부드럽고 따뜻하게 해 주기 위해
그 영과 함께하는
은혜를 가질 수 있도록
주님을 신뢰해야 한다.
그럴 때
생명이신 그리스도 자신이
실지로 참되고 풍성하게
그에게 공급될 것이며,
이 생명 곧 그 영께서
그 사람 안에서
일하실 것이다.
그러면 그는
우리를 통해
자신 안으로 공급받은
그리스도의 생명
곧 그 영 자신에 의해
치료받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레위기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백성의
죄악을 짊어진다는 것의
의미이다.
이것이 바로
어떤 성도들 안에 있는
죄들을 제거하여
결국 그들을
회복하는 길이다.
번제물로 바치는
숫양(레 8:18)은
우리가
신약의 제사장 직분을
감당할 수 있도록
우리의 번제물이 되시는
강하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이 제물은
섬기는 이들인 우리가
하나님께
절대적이어야 하는데도
그렇지 않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두운 밤인
이 시대를 거쳐
아침까지,
곧 주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때까지(6:9)
날마다
그리스도를
번제물로 삼아야 한다
(12절).
헌신을 위해 바치는
숫양(레 8:22)은
우리가
제사장 직분을
감당할 수 있도록
우리의 헌신이 되시는
강하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헌신을 위해 바치는
숫양의 피 얼마를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오른쪽 귓불과 오른손 엄지와 오른발 엄지에
발랐다(레 8:23-24).
이것은
그리스도의 구속하는 피가
듣기 위한
우리의 귀와
일하기 위한
우리의 손과
행하기 위한
우리의 발을
정결하게 하는 것을
상징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길 때,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눅 10:38-42)과
그분께서 명령하신 것을 준행하는 것과
그분의 길을 따라 행하는 것을
반드시 배워야 한다.
레위기 14장 14절에서는
동일한 절차를 밟아
나병 환자를
깨끗하게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그분의 제사장이 되도록 임명된
죄인들인 우리가
나병 환자처럼
부정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우리의 듣는 것이
먼저 언급된 것은
그것이
우리의 일과 움직임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이사야서 50장 4절과 5절이 보여 주듯이,
하나님의 종은 반드시
듣는 귀를 가져야 한다.
주인의 말씀을
듣지 않는 종은
그분의 뜻과 마음과 갈망에 따라
그분을 섬길 수가 없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헌신하는 과정은
속죄를 위해
칠 일동안
매일 반복되었는데(레 8:33-36),
이것은
신약의 제사장인 우리가
헌신과 임명에 관련된 모든 일을
잘 기억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8장 35절에는
제사장의 헌신과 임명의
엄숙함이 나타나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부주의한 방식으로
신약의 제사장 직분을 맡거나
그리스도를 누려서는
안 된다는 경고이다.
Hits: 3
7 replies on “제사장들의 헌신”
신언노트, 2018 08 05
시나이에서
율법이 반포되고
성막이 건축된 후에,
하나님은
레위기의 모든 장들을
그분의 백성에게
전해 주셨는데,
이것은
하나님께 경배하고 참여하며,
거룩하고 정결하고 기뻐하는 삶을 살도록
그들을
훈련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레위기 8장의 기록은
제사장들인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헌신에 관한 것입니다.
이것은 1장부터 7장까지에 나오는
제물들이
제사장들의
헌신 또는 임명을 위한 것임을
가리킵니다.
‘헌신하다’(출 28:41, 29:9, 33, 35)라는 단어는
히브리어에서
‘손을 채우다’를
의미합니다.
아론은
대제사장의 거룩한 신분을
받기 위해
헌신함으로써
그의 빈손이
채워지게 하였습니다.
제사장 직분을 위해
헌신할 때
우리는
우리의 누림을 위해
다섯 가지 제물(번제물, 소제물, 속죄제물, 속건제물, 화목제물) 모두이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로
‘우리의 손을 채워야 합니다’.
제물들은
그리스도의 예표인데,
그분께서
우리에게
어떤 분이시든지,
우리를 위해
어떤 일을 하시든지
그 모든 것은 바로
우리를
제사장들로
조성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제물들이신 그리스도를
누림으로써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조성되시는 것이
신성한 임명입니다.
헌신은
우리 편에서의 일이고
(우리가
자신을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이고),
임명은
하나님 편에서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임명하시는 것입니다).
회막 입구에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헌신한 것은
제사장 직분을 위한
우리의 헌신이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일 뿐 아니라
교회를 위한 것임을
의미합니다.
모세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물로 씻기는 것은
우리가
제사장 직분을 위해
헌신하기 위해서는
그 영으로
씻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세가
성막과 제단과 물두멍과 그 모든 집기에
기름을 발라
거룩하게 한 것(레 8:10-11)은
그리스도와 교회(성막),
십자가(제단),
그 영의 씻음(물두멍)이
신약의 제사장 직분과 관련이 있으며
제사장을 거룩하게 하기 위한 것임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제사장들로
임명하시는 것은
거룩하게 되는 문제,
곧 우리가
하나님께로 분별되고
거룩한 분이신 하나님으로
적셔지는 문제입니다.
기름 바름은
그리스도의
인성, 인간 생활, 죽음, 부활, 승천으로 복합되신
삼일 하나님을
제사장들에게로
그리고 교회생활로
모셔 옵니다.
이것은
제사장 체계에
기름을 바르는 것이
하나님을
우리와 하나 되게 하는 것임을
분명하게 나타냅니다.
왜냐하면 기름 바름은
하나님의 온 존재와
하나님께서 지금 하고 계신 일과
하나님께서 장차 하실 일이
모두
우리의 것임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이
헌신할 때,
기름 바름이 있은 후 즉시
속죄제물과 번제물을
바쳤습니다.
이러한 제물들은
우리가
누구이며
어떠한 존재인가와
우리가
마땅히 어떠한 존재가 되어야 하지만
아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줍니다.
모세가
아론의 아들들에게
제사장의 의복을 입힌 것은
신약의 제사장들인 믿는 이들이
그리스도의 인간 미덕들과 연합된
그분의 신성한 속성들로
단장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외적인 표현은
그리스도의 인간 미덕들 안에서 표현된
그분의 신성한 속성들이어야 합니다.
예표에서
의복은
표현을 상징합니다.
제사장의 의복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들에게서 나타난
그리스도의 표현을
의미합니다.
아울러 제사장들은
거룩한 의복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거룩하게 되었고 분별되었습니다.
주로 영화로움과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제사장의 의복은
그리스도의 신성한 영광과
인간적인 아름다움의 표현을
상징합니다.
영광은
그리스도의 신성
곧 그분의 신성한 속성들과 관계있고,
아름다움은
그리스도의 인성
곧 그분의 인간 미덕들과 관계있습니다.
제사장의 의복에 있는
금으로
예표된
그리스도의 신성은
영광을 위한 것이고,
청색 실과 자주색 실과 진홍색 실과 세마포로
예표된
그분의 인성은
아름다움을 위한 것입니다.
신성한 영광과 인간적인 아름다움을 지니신
그리스도를 표현하는 생활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고
제사장 체계가 될 자격이 있게 합니다.
속죄제물로 바치는 황소는
우리의 속죄제물로서
육체와 옛사람과
내주하는 죄와 사탄과
세상과 세상 통치자를
처리하시는
더욱 강하시고 더욱 풍성하신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이러한 제물로 말미암아
우리는
신약의 제사장 직분을
감당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이
위에서 열거한
모든 부정적인 것들의
조성체라는 것과
우리가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기 위하여
날마다
그리스도를
우리의 속죄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제사장들은
“회중의 죄악을
짊어지고
여호와 앞에서
그들을 위해
속죄하도록”
성소에서
속죄제물을
먹어야 했습니다.
제사장들이
속죄제물에 참여하여
백성의 죄악을 짊어지는 것은
신약의 제사장인 우리가
다음과 같은 의미에서
믿는 이들의 속죄제물이신
그리스도께 참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다른 이들의 죄들을
짊어지는 생명인
그리스도의 생명에 참여하여
그분을
우리의 생명 공급으로 누림으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의 문제를
짊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교회생활 안에서
우리의 속죄제물이신
그리스도를
풍성하게 누림으로써
죄를 처리할 수 있는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에게
공급할 수 있으며,
그럴 때 그들은
자신의 죄들을 처리하여
단절된 하나님과의 교통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죄를 처리하는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누리는 동안에,
하나님의 백성의
죄악을 짊어지고 가버리는
역량을
반드시 가져야 합니다.
즉 죄 가운데 있는
사랑스러운 이들에게
그리스도를 공급하기를
반드시 배워야 합니다.
죄를 처리하는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누군가에게 공급하는 것은
그를 찾아가
그의 잘못을 지적하고
그를 유죄 판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손상만 줄 것입니다.
죄를 짓는 사람은
보통 마음이 굳어져 있습니다.
죄를 짓는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공급하려면,
우리는
그의 굳어진 마음을
부드럽고 따뜻하게 해 주기 위해
그 영과 함께하는
은혜를
가질 수 있도록
주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럴 때
생명이신 그리스도 자신이
실지로 참되고 풍성하게
그에게 공급될 것이며,
이 생명 곧 그 영께서
그 사람 안에서
일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그는
우리를 통해
자신 안으로 공급받은
그리스도의 생명
곧 그 영 자신에 의해
치료받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레위기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백성의
죄악을 짊어진다는 것의
의미입니다.
이것이 바로
어떤 성도들 안에 있는
죄들을 제거하여
결국 그들을
회복하는 길입니다.
번제물로 바치는
숫양은
우리가
신약의 제사장 직분을
감당할 수 있도록
우리의 번제물이 되시는
강하신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이 제물은
섬기는 이들인 우리가
하나님께
절대적이어야 하는데도
그렇지 않다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두운 밤인
이 시대를 거쳐
아침까지,
곧 주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때까지
날마다
그리스도를
번제물로 삼아야 합니다.
헌신을 위해 바치는
숫양은
우리가
제사장 직분을
감당할 수 있도록
우리의 헌신이 되시는
강하신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헌신을 위해 바치는
숫양의 피 얼마를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오른쪽 귓불과 오른손 엄지와 오른발 엄지에
발랐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구속하는 피가
듣기 위한
우리의 귀와
일하기 위한
우리의 손과
걷기 위한
우리의 발을
정결하게 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길 때,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과
그분께서 명령하신 것을
준행하는 것과
그분의 길을 따라
걷는 것을
반드시 배워야 합니다.
레위기 14장 14절에서는
동일한 절차를 밟아
나병 환자를
깨끗하게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그분의 제사장이 되도록 임명된
죄인들인 우리가
나병 환자처럼
부정하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우리의 듣는 것이
먼저 언급된 것은
그것이
우리의 일과 움직임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서 50장 4절과 5절이 보여 주듯이,
하나님의 종은 반드시
듣는 귀를 가져야 합니다.
주인의 말씀을
듣지 않는 종은
그분의 뜻과 마음과 갈망에 따라
그분을 섬길 수가 없습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헌신하는 과정은
속죄를 위해
칠 일동안
매일 반복되었는데,
이것은
신약의 제사장인 우리가
헌신과 임명에 관련된 모든 일을
잘 기억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8장 35절에는
제사장의 헌신과 임명의
엄숙함이 나타나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부주의한 방식으로
신약의 제사장 직분을 맡거나
그리스도를 누려서는
안 된다는 경고입니다.
6일
레 8:18
…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번제물로 바칠) 그 숫양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레 6:9
… 번제물은
아침까지
밤새도록
제단 위 석쇠 위에
있어야 하고,
제단의 불은
계속 타고 있어야 한다.
고전 11:29
왜냐하면 그 몸을
분별하지 않고
(떡을) 먹고 (잔을) 마시는 사람은
자신에 대한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레위기 8장 18절부터 21절까지는
제사장 직분의
위임을 위한
번제물인 숫양에 대해 말한다.
하나님께서
제사장들을 임명하시는 것에 포함되는
이 번제물은
우리가
신약의 제사장 직분을
감당할 수 있도록
우리의 번제물이 되시는
강하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번제물은
섬기는 이들인 우리가
하나님께
절대적이어야 하는데도
그렇지 않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절대적이지 않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우리의 번제물로
취해야 한다.
레위기 6장 9절에서
‘아침까지
밤새도록’은
번제물이
어두운 밤인
이 시대를 거쳐
아침까지,
곧 주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때까지
태우는 장소에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벧후 1:19, 말 4:2).
헌신을 위해 바치는
숫양의 피 얼마를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오른쪽 귓불과 오른손 엄지와 오른발 엄지에
발랐다
(레 8:23-24).
이것은
그리스도의 구속하는 피가
듣기 위한 우리의 귀와
일하기 위한 우리의 손과
행하기 위한 우리의 발을
정결하게 하는 것을
상징한다.
이것은
우리가
신약의 제사장 직분을
맡기 위한 것이다.
우리의 듣는 것이
먼저 언급된 것은
그것이
우리의 일과 움직임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피는
하나님의 말씀,
곧 하나님의 말씀하심을
들을 수 있도록
우리의 귀를
처리한다.
… 이사야서 50장 4절과 5절에서
말한 것처럼,
종은 반드시
듣는 귀를
가져야 한다.
주인의 말을
듣지 못하는 종은
주인의 뜻과 마음과 갈망에 따라
주인을 섬길 수 없다.
우리가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려면,
우리가
듣고(귀) 일하고(손) 행하는(발) 것이
그리스도의 구속하는 피로 말미암아
깨끗하게 되고
거룩하게 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길 때,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비교 출 21:2-6, 사 50:4-5)과
그분께서 명령하신 것을
준행하는 것과
그분의 길을 따라
행하는 것을
반드시 배워야 한다.
레위기 14장 14절에서는
동일한 절차를 밟아
나병 환자를
깨끗하게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그분의 제사장이 되도록
임명된
죄인들인 우리가
나병 환자처럼
부정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헌신하는 제사장들은
속죄를 얻기 위해
회막 입구에
칠 일 동안 머물렀다
(레 8:33-36).
이것은
우리가
교회생활 안으로
들어갈 때에
우리를 위한
화해를 이루기 위하여
신약의 제사장 직분을
철저하고 완전하게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레위기 8장 33절부터 35절까지는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은
헌신하는 기간이
끝나는 날까지,
칠 일 동안
회막 입구 바깥으로
나가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헌신하는 데
칠 일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 여러분은
칠 일 동안
밤낮으로
회막 입구에 머물면서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죽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내가 받은
명령입니다.”
칠 일 동안
똑같은 절차가
반복되었다.
매일
모든 과정이
엄숙히 수행되었는데,
이것은
이 과정의 각 방면이 모두
엄중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죽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말은
엄중함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감히
부주의하거나 느슨하지 않았다.
모든 사람은
당시 일어나고 있는 일이
얼마나 엄중한 일인지
알고 있었으며,
만일 누군가가
부주의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알고 있었다.
이 구절들은
부주의하게
그리스도에 대한 누림 안으로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를 준다.
특별히 주님의 상과 관련해서
이러한 경고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떡은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하고,
포도주는
그분의 피를 상징한다.
우리가
합당한 분별력 없이
떡을 먹고
포도주를 마신다면,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은
우리 자신에게
심판이 될 것이다
(고전 11:27-29).
우리는
가볍거나 느슨하게
그리스도에 대한
누림의 교통에
참여하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에 대해
경고를 받아야 한다.
5일
레 8:14
그런 다음
모세는
속죄제물로 바칠
황소를 끌어왔고,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속죄제물로 바칠
그 황소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레 10:17
“너희는 왜
그 속죄제물을
성소에서 먹지 않았느냐?
그것은
지극히 거룩한 것으로서,
너희가
회중의 죄악을 짊어지고
여호와 앞에서
그들을 위해 속죄하도록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에게
육신의 질병이 있다면
여러분은
그의 병을 언급할
필요가 없다.
이 병든 사람에게
합당한 약을 준다면
그는 좋아질 것이다.
나는
성도들을 돌보면서
그러한 것을 체험했다.
나는
그의 약함이나 잘못이나 죄에 대해
말하지 않았지만
그 성도는 치유되었다.
그는
나의 말에 의해서가 아니라
나를 통해 공급된
그 영, 그리스도의 생명에 의해
치유된 것이다.
이것이
레위기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백성의
죄악을 짊어진다는 것의
의미이다.
이것이
어떤 성도들 가운데서
죄들을 제거하는
길이다.
죄 많은 성도들을
회복하는 일은
시간이 걸린다.
그것은
빨리 이루어질 수 없다.
여러분은
인내해야 한다.
죄 많은 한두 명의 성도들을
회복하는 데
여덟 달이나 일 년이 걸린다 해도
그것은 대단한 일일 것이다.
갈라디아서 6장 1절은
어떤 형제가
어쩌다가 잘못을 저지른다면,
영적인 사람들은
그를 바로잡아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타락한 성도를
회복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백 명의 성도들이
함께 모일 때,
아마도 두세 명은
죄악된 상태에
있을지도 모른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누리고 있으므로
그들 중 한 사람을 돌볼
부담을 가질 수 있다.
또 다른 형제도
동일한 사람에 대해
부담을 가질 수 있다.
그러면 여러분과 그 형제는
그 성도에 대해 교통하면서
함께 일하여
그를 도울 수 있다.
만일 여러분 두 사람이
반년 동안 함께 일하여
이 죄 많은 형제를
회복할 수 있다면,
이것은
교회생활에
너무나 큰 도움이 된다.
이런 종류의 사역이
우리로 하여금
교회생활 안에서
그 영의 하나를 유지하게 하는
요소이다.
하나는
그 영에 의해
사랑 안에서만
유지될 수 있다.
비판은
분열을 일으키고
하나를 파괴할 뿐이다.
우리 모두는
부정적인 말을
피해야 하고,
그리스도를
죄를 처리하는 생명으로,
곧 속죄제물로
취하기를
배워야 한다.
이럴 때 우리는
죄 많은 성도들에게
그리스도를 공급할 수 있는
분량과 역량을
어느 정도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러면 그 성도들은
조만간 회복될 것이다.
우리가
한 형제를 회복한다면,
우리는
교회생활 안에서
하나와 관련된 문제들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여러분이
주님 앞에서
인정받았다면,
문제가 있는 다른 사람을
도우기를 힘쓰라.
여러분이
죄를 처리하는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여섯 달 동안
그에게 공급한 후에는
그의 문제가
없어질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의
죄악을 짊어지는 것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것이
성도들 가운데서
그 영의 하나를 유지하는
실지적인 길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상과 관련해서
우리는
두 가지를 실행해야 한다.
첫째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살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죄 많은 성도에 대해
이야기하지 말고,
그를 위해
기도하며
그에게
우리가 누린
이 그리스도를 공급하기를
힘써야 한다.
조만간 이러한 사역은
그에게
참된 구원이 될 것이다.
그러면
교회의 문제는
우리를 통해
해결될 것이고,
우리는
그 영의 하나에 있어서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또한
평안을 가지고
주님의 상에
참여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하나를 힘써 지키고,
교회생활 안에서
사랑하는 생활을
하기를 힘쓰자.
사랑은 건축하지만,
지식은 죽인다
(고전 8:1, 고후 3:6).
항상
사랑하는 생활을 하자.
여러분이
어떤 사람을
도우러 가는가의 여부는
이차적인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좋든 나쁘든
모든 성도를
동일한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강한 성도들은 사랑하고
약한 성도들은 사랑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반드시
동일한 사랑으로
모든 성도들을
사랑해야 한다.
어떤 사람이
성도인 한,
그는
교회 안의 지체이다.
따라서 우리는
다른 성도들을 사랑하는
동일한 사랑으로
그를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세균을 죽일 것이고,
문제를 없앨 것이며,
그 영의
영구적이고 지속적인 하나를
건축할 것이다.
4일
레 8:14-15
그런 다음 모세는
속죄제물로 바칠
황소를 끌어왔고,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속죄제물로 바칠
그 황소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모세는
그 황소를 잡고,
피를 가져다가
손가락으로
제단의 뿔 위와 주위에 발라
제단을 정결하게 하였으며,
그 나머지 피는
제단 밑에 쏟아
제단을 거룩하게 하고
제단을 위하여 속죄하였다.
속죄제물로 바치는 황소는
우리의 속죄제물로서
육체와 옛사람과
내주하는 죄와 사탄과
세상과 세상 통치자를
처리하시는
더욱 강하시고 더욱 풍성하신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이러한 제물로 말미암아
우리는
신약의 제사장 직분을
감당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우리 자신이
위에서 열거한
모든 부정적인 것들의
조성체라는 것과
우리가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기 위하여
날마다
그리스도를
우리의 속죄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속죄제물은
우리의 타고난 사람,
우리의 육체,
우리 안에 거하는 인격화된 죄,
사탄,
사탄에게 매달려 있는 세상,
권력을 잡기 위한 다툼을
처리한다.
우리가
신약의 제사장들이
되고자 한다면,
이 모든 것을
속죄제물이신 그리스도에 의해
처리해야 한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속죄제물로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타고난 사람, 육체,
내주하는 죄, 사탄,
세상, 권력을 잡기 위한 다툼을
처리하셨다.
신성한 임명 안에서
그러한 속죄제물은
우리에게 적용되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는
탁월한 제사장들이
되게 한다.
제사장들이
속죄제물에 참여하여
백성의 죄악을 짊어지는 것은
신약의 제사장들인 우리가
다음과 같은 의미에서
믿는 이들의 속죄제물이신
그리스도께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다른 이들의 죄들을
짊어지는 생명인
그리스도의 생명에 참여하여
그분을
우리의 생명 공급으로
누림으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의 문제를
짊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교회생활 안에서
우리의 속죄제물이신
그리스도를 풍성하게 누림으로써
죄를 처리할 수 있는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에게
공급할 수 있으며,
그럴 때 그들은
자신들의 죄들을
처리하여
하나님과 단절된
교통을 회복할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이
주님의 상에 참여하기에
문제가 없다고 느끼면서,
죄들을
계속해서 범하고 있는
다른 이들에 대해
염려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떤 성도들이
죄들을 계속해서 범하면서
여전히 주님의 상에 오는 상황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고린도전서 11장에 있는
바울의 말을
기억해야 한다.
바울은
우리 자신을 살피라고 말했다.
즉 우리 자신이 적합한지를
점검하라는 것이다.
바울은
다른 이들을 살피거나 점검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우리는
다른 이들을
주님께 맡겨야 하며
그들의 재판관이
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다만
우리 자신을
심판하며
다른 이들은
심판하지 말아야 한다.
여러분이
누군가가
어떤 죄들을 범한 것을
알게 되었다면,
그를 위해 기도할 뿐 아니라
또한 그가
자신의 죄들을 처리할 수 있도록
그에게
죄를 처리하는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공급하기를
배워야 한다.
그리스도의 생명은
죄를 처리하는 생명이다.
가장 먼저 여러분 자신이
죄를 처리하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누림으로써
처리를 받아야 한다.
그런 다음
죄를 처리하는
생명이신 이 그리스도를
다른 이들에게
공급해야 한다.
레위기는
제사장들이
성소에서
속죄제물을 먹어야 했는데,
이것은
‘회중의 죄악을 짊어지고
여호와 앞에서
그들을 위해 속죄하도록’
(10:17)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우리는
죄를 처리하는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누리는 동안에,
하나님의 백성의 죄악을
짊어지는 역량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
즉 죄 가운데 있는
사랑스러운 이들에게
그리스도를 공급하기를
반드시 배워야 한다.
죄를 처리하는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누군가에게 공급하는 것은
그를 찾아가
그의 잘못을 지적하고
그를 유죄 판결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손상만 줄 것이다.
여러분은 먼저
그의 굳어진 마음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가야 한다.
죄를 짓는 사람은 보통
마음이 굳어져 있다
(히 3:13).
죄를 짓는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공급하려면,
우리는
그의 굳어진 마음을
부드럽고 따뜻하게 해 주기 위해
그 영과 함께하는
은혜를 가질 수 있도록
주님을 신뢰해야 한다.
우리는
그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따뜻하게 해야 한다.
그럴 때
생명이신 그리스도 자신이
실지로 참되고 풍성하게
그에게 공급될 것이며,
이 생명 곧 그 영께서
그 사람 안에서
일하실 것이다.
이 생명이
생명 공급으로서
그의 안에 들어가
많은 일을 할 것이므로
우리는
그의 잘못을
언급할 필요가 없다.
3일
출 28:2
너는
네 형 아론을 위해
거룩한 의복을 만들어
그를 영화롭고 아름답게 하여라.
출 28:4
그들이 만들
의복은
가슴받이와 에봇과
겉옷과 각양의 무늬를 넣어 짠 긴 속옷과
두건과 허리띠이다.
이렇게
네 형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거룩한 의복을 만들어 주어,
그가
제사장으로서
나를 섬기게 하여라.
예표에서
의복은
표현을 상징한다
(비교 사 64:6, 계 19:8).
제사장의 의복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들에게서 나타난
그리스도의 표현을
의미한다.
아울러 제사장들은
거룩한 의복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거룩하게 되었고 분별되었다
(출 28:3).
주로 영화로움과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제사장의 의복은
그리스도의 신성한 영광과 인간적인 아름다움의
표현을 상징한다.
영광은
그리스도의 신성
곧 그분의 신성한 속성들과 관계있고
(요 1:14, 히 1:3),
아름다움은
그리스도의 인성
곧 그분의 인간 미덕들과 관계있다.
제사장의 의복에 있는
금으로 예표된
그리스도의 신성은
영광을 위한 것이고,
청색 실과 자주색 실과 진홍색 실과 세마포로
예표된
그분의 인성은
아름다움을 위한 것이다.
신성한 영광과 인간적인 아름다움을 지니신
그리스도를 표현하는 생활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고
제사장 체계가 될 자격이 있게 한다.
(출 28:2)
레위기 8장 7절부터 9절까지에서
모세는
아론에게
대제사장의 의복을
입혔다.
“모세는
아론에게
긴 속옷을 입히고
허리띠를 매어 주고
겉옷을 입힌 다음
그 위에 에봇을 입혔다.
그리고 정교하게 짠
에봇 띠를 매어 주어
에봇이 꼭 붙어 있게 하였다.
모세는
아론에게
가슴받이를 달아 주고
그 가슴받이 안에
우림과 둠밈을 넣어 주었다.
모세는
아론의 머리에
두건을 씌우고,
두건 앞쪽에
금패 곧 거룩한 관을
달아 주어,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였다.”
이것은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신성한 속성들과 인간 미덕들이라는
모든 탁월한 것으로
단장되셨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속성들과 미덕들이
그리스도의 의복이다.
모세가
아론의 아들들에게
제사장의 의복을 입힌 것은
신약의 제사장들이
그리스도의 모든 속성들과 미덕들로
단장되는 것을
의미한다.
신약은
우리의 외적 표현을 가리키기 위해
옷을 사용한다
(마 21:7, 요 13:4).
우리의 외적 표현은
그리스도의 신성한 속성들의
표현이어야 한다.
이 속성들에는
신성한 사랑과 친절과 거룩함이
포함된다.
그리스도의 신성한 속성들은
사람의 생활 가운데서
미덕들로 표현된다.
이것은
신성한 속성들이
인간 미덕들이 되고,
인간 미덕들은
신성한 속성들의 표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신성한 속성들과 인간 미덕들은
단지 결합되고 합병되었을 뿐 아니라
섞여 있다
(are not merely combined and united but mingled;
단지 결합되고 연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연합되어 있다).
예를 들어,
사람이신 그리스도는
인간적인 사랑을 가지셨으나
이 인간적인 사랑은
신성한 사랑과
연합된 것이었다.
하나님의 어떠함(기름)이
인성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어떠함(고운 가루)과
연합되었다.
이처럼 하나님의 본성은
그리스도의 인성의 표현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한 속성들이
인간 미덕들과
연합되었기 때문에,
그분의 사랑과 친절과 긍휼은
비범하였다.
그분 안에서
신성한 사랑과 친절과 긍휼이
인간적인 사랑과 친절과 긍휼과
연합되었다.
신성한 속성들과 인간 미덕들은
이렇게 연합되어
우리의 옷이 되었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 받은 우리가
그리스도로 옷 입었기 때문이다
(갈 3:27).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은
그리스도를 입는 것이다.
우리가 입은
그리스도 자신이
우리의 제사장 의복이다.
우리가
남편이든 아내든,
부모든 자녀든,
선생이든 학생이든
우리는
우리의 제사장 의복,
곧 그리스도의
신성한 속성들과 섞인 그분의 인간적인 미덕들의
(of Christ’s divine attributes mingled with His human virtues;
신성한 속성들과 인간 미덕들이 연합된 것의)
표현을 입어야 한다.
특별히 우리는
죄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갈 때
이 의복을 입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표현이
우리의 제복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다른 이들을 접촉할 때,
우리는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표현으로,
즉 우리가 옷으로 입은
그리스도로
깊은 인상을 주어야 한다.
이렇게 한다면
우리는
복음을 전할 때
능력과 권위를
가지게 될 것이다.
우리가
제사장들로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그분에 의해
임명될 때,
그분은
우리에게
그리스도로 옷 입히신다.
어느 날 여러분은
제사장이 되려고
주님께
자신을 헌신할 것이다.
그러면 그 즉시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성령께서
여러분을 단장하실 것이다.
2일
레 8:4
… 회중은
회막 입구에 모였다.
레 8:6
모세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가까이 데려다가
물로 씻겼다.
고전 6:11
여러분 가운데
이런 사람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서,
또 우리 하나님의 영 안에서
씻어졌고
거룩해졌고
의롭게 되었습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회막 입구에서
헌신하였다.
이것은
제사장 직분을 위한
우리의 헌신이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일 뿐 아니라
교회생활을 위한 것임을
의미한다.
… 레위기 8장에서
회막은
교회생활을 의미한다.
우리는
교회 안에 있으며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제사장들이다.
레위기 8장 6절에서
‘씻기는 것’은
우리가
제사장 직분을 위해
헌신하기 위해서는
그 영으로
씻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전 6:11).
레위기 8장 6절에서
모세는
어느 정도
그리스도를 의미하며,
물은
성령을 예표한다.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우리를 씻으신다.
제사장 봉사를 가리키는
제사장 직분과
제사장 무리를 가리키는
제사장 체계를 위해서
우리는
그 영으로
씻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6장 11절은
우리가
그 영으로
씻어지고 정결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모세는
바르는 기름을 가져다가,
성막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에
발라
그것들을
거룩하게 하였다.
모세는
또 그 기름 얼마를
제단 위에
일곱 번 뿌리고,
그 제단과 그 모든 그릇과
물두멍과 그 받침에
기름을 발라
그것들을 거룩하게 하였다.”
(레 8:10-11)
이것은
그리스도와 교회,
십자가,
그 영의 씻음이
신약의 제사장 직분과 관련이 있으며
제사장을 거룩하게 하기 위한 것임을
의미한다.
성경에서
성막은
개인적인
그리스도(요 1:14)를 예표하며,
또한 하나님의 거처인
교회를 예표한다.
레위기 8장에서
성막은
그리스도를 나타내기보다는
교회를 더 많이 나타낸다.
… 성막에
기름을 바르는 것은
신약의 제사장들인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곳인
교회에
기름을 바르는 것을
의미한다.
기름 바름은
인성과 연합되신
삼일 하나님을
제사장들에게로
그리고 교회생활로
모셔 온다.
이러한 기름 바름은
그리스도의
인간 생활과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을
포함한다.
출애굽기 30장에 따르면,
바르는 기름은
하나님의 영을 예표하는
기름과
인성(4라는 숫자로 예표됨)과 인간 생활과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는
네 가지 향료로
구성된 관유였다.
우리가 제사장들로서
그리고 교회로서
기름 발라질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인성과 인간 생활과 죽음과 부활로 복합되신
삼일 하나님으로
기름 발라진다.
제사장들과 성막에
기름을 바르는 것은
또한 속죄제물(레 8:14-17)과 번제물(18-21절)을
포함한다.
바르는 기름인
관유의 모든 요소와 함께
속죄제물과 번제물이
우리의 존재 안으로
조성되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타고난 출생에 따른
우리의 어떠함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인성과 인간 생활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으로 복합되신
삼일 하나님에 의해서
하나님께
참된 제사장들이 될 것이다.
레위기 8장 12절은
“모세는
바르는 기름 얼마를
아론의 머리 위에 붓고
그에게 발라
그를 거룩하게 하였다.”
라고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 기름을 바르셔서
거룩하게 하셨음을
의미한다.
제사장 직분을 위한
헌신 혹은 기름 바름은
하나님을
우리와 하나 되게 한다.
왜냐하면 기름 바름은
하나님의 온 존재와
하나님께서 지금 하고 계신 일과
하나님께서 장차 하실 일이
모두
우리의 것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과
지금 하고 계신 일과
장차 하실 일에는
그리스도의
육체 되심과 인간 생활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과 재림과 같은
많은 항목들이
포함된다.
이 모든 것이
우리 위에
기름 발라졌다.
즉 우리와
하나 되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헌신할 때,
기름 바름이 있은 후 즉시
제물들을 바쳤다.
이러한 제물들은
우리가
누구이며
어떠한 존재인가와
우리가
마땅히 어떠한 존재가 되어야 하지만
아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
1일
출 28:41
… 그들에게
기름을 부어
헌신하게 하고
그들을 거룩하게 하여,
제사장으로서
나를 섬기게 하여라.
레 8:26-28
… 무교 과자 하나와
기름 섞은 과자 하나와
전병 하나를
가져다가
그것들을
기름진 부분들과 오른쪽 넓적다리 위에 놓았다.
모세는
그 전부를
… 여호와 앞에
요제물로
흔들어 바치게 하였다.
그런 다음
… 제단의 번제물 위에 놓고
불태웠다.
그것들은
여호와를 만족시키는
향기로 바쳐진
헌신을 위한
제물로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였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 곧 그분의 선민을
인도하여
광야를 통과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움직이셨고
그들을
시나이산으로 이끄셨다.
시나이산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낸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을
시나이산에 있는
그분 자신께로
이끄셨으며,
그곳에서
그들과 함께
머무셨다
(출 19:1, 비교 민 10:11).
… 하나님은
시나이산에서
밤낮으로
그분의 백성과 함께 머무시면서
그들을 훈련시키셨다.
시나이산에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율법과 성막의 모형을
주셨다.
한편으로 하나님은
율법으로
그들을 규제하셨고,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은
성막으로
그들을 격려하셨다.
시나이에서
율법이 반포되고
성막이 건축된 후에,
하나님은
레위기의 모든 장들을
그분의 백성에게
전해 주셨는데,
이것은
하나님께 경배하고 참여하며,
거룩하고 정결하고 기뻐하는 삶을 살도록
그들을
훈련시키기 위해서였다.
‘헌신하다’(출 28:41, 29:9, 33, 35)라는 단어는
히브리어에서
‘손을 채우다’를 의미한다.
아론은
대제사장의 거룩한 신분을
받기 위해
헌신함으로써
그의 빈손이
채워지게 하였다
(레 8:25-28).
‘헌신(consecration)’이라는 말은
종종 ‘임명(ordination)’으로
번역된다.
헌신은
우리 편에서의 일,
곧 우리가
자신을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이고,
임명은
하나님 편에서의 일,
곧 하나님께서
우리를
임명하시는 것이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제사장들로서
봉사하기 위해
헌신하는 것은
그들의 빈손을
채우는 것을
의미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회막 입구에서
모세 앞에
빈손으로 나왔다.
그러나 그들이
헌신했을 때
그들의 빈손은
그리스도의 여러 방면을 나타내는
예표들로
채워졌다.
레위기의 처음 일곱 장은
다섯 가지 제물들,
곧 번제물과 소제물과 화목제물과 속죄제물과 속건제물을
기술한다.
그런 다음
다섯 가지 제물들을 적용하는 것에 관한
다섯 가지의 법이
주어진다.
이 제물들을 적용한
결과는 화목이다.
화목은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누린
그리스도의 어떠함의
총체이다.
그리스도의 구속 아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이러한 총체로
누리고 있으며,
이 총체는
안식과 누림과 만족을
함축하는 화목이다.
제물들의 기록에 이어서
레위기는
제사장 직분을 위한
헌신에 대해 기술한다.
이것은 1장부터 7장까지에 나오는
제물들이
제사장들의 헌신 또는 임명을 위한 것임을
가리킨다.
레위기의 영적인 의미에 따르면,
우리 모두는
제사장들이다.
우리는
제사장들이 되기 위해
거듭났다
(계 1:6, 5:10).
…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이렇게 말하는
헌신의 날이
필요하다.
“주님,
당신이
저를 사셨기에
저는
당신의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피로
저를 구속하셨고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이제 저는
당신의 생명을
가지고 있고
당신의 구속을
누리고 있기 때문에,
제 자신을
당신께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당신의 종으로서,
심지어 당신의 노예로서
당신을 섬기기 위해
당신께
제 자신을
드립니다.”
하나님은
그 즉시
우리의 헌신을
기쁘게 받으시고,
우리를
그분을 섬기는 이들인
제사장들로
임명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헌신은
우리 편에서의 일이며
임명은
하나님 편에서의 일이다.
레위기는
일반적인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책이 아니라
제사장들을 위한 책이다.
우리는
거룩하게 되었고
평범한 사람들로부터 분별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일반적인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는
특별한 사람들,
곧 제사장들이다.
모든 제물들은
그리스도의 예표인데,
그분께서
우리에게
어떤 분이시든지,
어떤 일을 하시든지
그 모든 것은 바로
우리를
제사장들로 조성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조성이 바로
신성한 임명이다.
첫 번째 출생에서
우리는
죄인들로
조성되어 있었다
(롬 5:19).
…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은 우리는
두 번째 출생으로 말미암아
제사장들로
조성되었다.
이제 우리에게는
우리의 제사장 직분을
공식적인 직분이 되게 하는
우리의 헌신과
하나님의 임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