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is of All Our Priestly Service—the Fire from the Altar of Burnt Offering
하나님은
태워 없애시는
(consuming; 전소시키는, 태워 버리는)
불이시다.
그 타오르는 한 분이신,
(As the burning One; 타오르는 분이신)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거룩함은
그분의 본성이며,
태워 없애는 불이신
하나님은
그분의 거룩한 본성에 맞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지 태워 없애실 것이다.
다니엘서 7장 9절과 10절에서
하나님의 보좌는
불꽃들이었고,
그 바퀴는
하나의 타오르는 불이었으며,
하나의 불의 흐름이
그분 앞에서부터
솟아나와
밖으로 나왔다.
여기서 불은
하나님께서
절대적으로 의로우시고
전적으로 거룩하시다는 것을
가리킨다.
주님은
이 땅에서 타오르시기 위해
죽음을 통해
자신을
생명의 불로서
사람 안으로
방출하셨다
(released; 해방하셨다).
일곱 배로 강화되신
생명 주시는 영,
곧 공기 같은 영이신
그리스도는
타오르는 불이시다.
이 불은
영적 생명의 충격
(impact; 영향: the impelling force; 추진력),
곧 주님께서 해방하신
신성한 생명에서 오는
충격이다.
“우리 모두에게
이 불이
타오르고 있다.
우리는
이 불에 의해
함께 이끌렸고,
이제는 이 불이
다른 많은 이들에게서
타올라야 한다는
부담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의 신성의
숨겨진 영광이
해방되었을 때,
신성한 불이
온 땅에서 타오르도록
땅에 던져졌다.
이 불이
계속 타오르게 하자!
아무도
그것을
멈추게 할 수 없다.”
— 위트니스 리 고봉 메시지, 3권,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에 의해
신성한 영광으로
영화롭게 되신 결과, 16쪽.
하나님의 일곱 영은
보좌 앞에서 불타는
일곱 등불이시다.
이 등불은
하나님의 행정을
수행하기 위해 있다.
가시나무 떨기 가운데서부터
타오르는 불은
삼일 하나님 곧 부활의 하나님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와
우리가
그 안에 확신을 가지는
많은 것들을
태우는
하나의 불이다.
하나님을 섬기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불태우고
힘을 주는,
태워 없애는 불이신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불이
이 땅에 오고,
하나님께서
사람 속에 들어가실 때
불이
사람 속에 들어가
그 안에서 타오른다.
번제단에서
타오르는 불은
하늘에서
내려왔다.
하늘에서
내려온 후에
이 불은
계속해서
제단 위에서
타올랐다.
신성한 불
곧 타오르시는 삼일 하나님은
우리를
봉사하게 하시고,
심지어 목숨까지
희생할 수 있게 하신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모든 제사장 봉사는
반드시 번제단에서 온 불에
근거해야 하며,
우리의 봉사는
반드시 이 불로 태워진
결과여야 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의 봉사가
이 불에 근거하기를
원하셨다.
향을 피우는 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께 드리는 봉사였지만,
향을 피우기 위해
사용된 불은
반드시 번제단에서
가져온 것이어야 했다.
우리의 봉사는 반드시
하나님의 불의 태움에서부터
나온 것이어야 한다.
불은
힘의 근원이다.
우리의 봉사에
힘이 가득하려면,
우리의 봉사가 반드시
제단 위의 불을
통과해야 한다.
이 불이
우리 안에서
힘과 추진력과 충격력이
되어야 한다.
우리에게
이 불이 있다면,
우리의 봉사는
우리 자신이 아닌
하나님에게서 나올 것이다.
신약의 봉사를 위한
힘과 원동력은
하늘에서 온 불로
시작되었다.
갈릴리 출신의 어부들 위에
내려온 불이
그들 안에서
힘과 원동력이 되었다.
이 불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며,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버리고자 하고,
파쇄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하나님 손에 맡기고자 하는
이들 위에서
타오른다.
제단에서 온 불이
봉사의 참된 원동력이다.
우리의 봉사와 관련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그분의 불을 보내어
우리 속에서 타오르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다면,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우리를 태울 것이다.
이러한 불태움이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 될 것이고,
이러한 불태움의 결과로
봉사가 나올 것이다.
제단에서 온 불이
강력한 봉사를
산출한다.
번제단은
주 예수님의 십자가이고,
불은
그 영이다.
참된 봉사의 기초는
우리가
십자가를 알고
자신을
십자가 위에 두는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얻으시고
신성한 불이
우리 속에서
타오르도록
허락해 드리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봉사를 산출한다.
제단에서 온
불을 체험하는 사람들은
금과 은과 보석으로
건축한다.
그러한 일은
하나님의 요소로 충만하고,
십자가의 능력을 가지며,
하나님을 표현한다.
불태움을 통해
산출된 일만이
금과 은과 보석에
속한 일이다.
불태움을 통해
산출된 것이 아닌 일은
나무와 풀과 짚에 속한 일이다
— 고전 3:12.
각 사람의 일이
불에 의해
시험을 받을
날이 올 것이다.
우리의 일이
불의 결과라면,
그 일은
불의 시험을
견딜 것이다.
우리는
다른 불로
하나님을 섬겨서는 안 되며,
반드시 제단에서 온 불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성경의 예표에 따르면,
제단에서 타오르는 불 이외의 모든 불은
다른 불이다.
나답과 아비후의 실패는
그들이
제단에서 온 불을
사용하지 않은 것에 있었다.
그들이 사용한 불은
거룩한 불이 아니라
속된 불이었다.
다른 불은
사람이 하나님께 바치는,
자신의 타고난 열심과 타고난 애정과
타고난 힘과 타고난 능력을
상징한다.
다른 불은
자아에서 나온 불이다.
이 불은
혼 생명과 육체의 생명과 타고난 생명에서
나온 불이다.
다른 불은
자아 생명이
하나님의 일들을 방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비록 일들이
하나님의 일들일지라도,
자아 생명은
그 일들이 수행되는
방식을 지시하기를
원한다.
다른 불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봉사에서
자신의 방법과 지혜를
사용하는 것이고
자신의 제안을
고집하는 것이다.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을 위하지 않는
어떤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타고난 생명에 따라
행동하고,
천연적인 방식으로
하나님을 위해
어떤 일을 했기 때문에
심판을 받았다.
다른 불을
드린 것은
주제넘은 죄였다.
나답과 아비후는
주제넘은 방식으로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를 했다.
이것은
강력한 경고이며
우리가
신성한 일들을 대할 때
우리의 타고난 생명에
십자가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영적인 죽음을
겪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불이 있는가 없는가에
주의를 기울이실 뿐만 아니라,
그 불의 근원과 본성에도
주의를 기울이신다.
우리의 열심은 반드시
제단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안에 타는 불을 가진
가시나무 떨기이고
이 불은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을
반드시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한 가지 공과를
배워야 한다.
즉 하나님을 위해
일하되,
자신의 타고난 생명과
그 에너지와 힘과 능력을
연료로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서
불타시도록
허락해 드림으로써
일하는 것이다.
우리는
영 안에서
불타야 하며,
영적인 죽음을 가져오는
다른 불이 아니라
주님의 생명의 불로
노예로서
주님을 섬겨야 한다.
번제단 위의 불은
계속 타고 있어야 한다.
‘그 불은 반드시
꺼지지 않게 해야 하고,
꺼지지 않을 것이다’
— 레 6:12-13.
매일 여러 차례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지속적인 번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서
하나님에 의해
태워져야 하며,
그럴 때
우리는
다른 이들을
불태울 수 있다,
그 영은
우리의 영을
불타게 하시고
우리의 은사들을
불타오르게 하신다.
따라서 우리는
그 영을
끄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우리의 영을 부채질하여
불타오르게 함으로써,
주님께서
우리를 불태우시고
계속해서 불타게 하시도록
허락해 드려야 한다.
우리는
사랑의 불이신
하나님을 누림으로써,
그분의 사랑으로
하나님과 다른 이들을
사랑해야 한다.
우리는
매일 아침
주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새로운 시작을 가지고
주님에 의해
부흥되어야 한다.
우리는
주님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우리 자신을
분발시켜
주님을
붙잡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도로 읽음으로써,
우리의 영을
성경 말씀의
그 영과 마찰시켜
신성한 불이
붙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아무 보류함 없이
자신을
주님께 열어 드려
주님에 의해
빛 비춤받고
불태워지며
주님을
주입받음으로써,
일곱 등불과
그리스도의 불타는 일곱 눈이신
일곱 배로 강화되신 영으로
충만하게 되어야 한다.
우리는
항상 기뻐하고,
끊임없이 기도하며,
모든 일에 감사해야 한다
— 살전 5:16-18.
우리는
하나님의 경륜적인 움직임 안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고
또 밀어내는 강렬한 능력이신
주님을 누리면서,
주님을 위해 말하여
다른 이들 안에
주님을 분배해야 한다.
우리는
교회들 안에서와
교회들 가운데서
서로 협력함으로써,
그분의 한 움직임을 위해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불이신 하나님을
누려야 한다.
일곱 등불이신,
일곱 배로 강화되신
영의 타오름은
우리에게
동기를 부여하여,
하나님의 경륜을 수행하기 위해
일어나 행동을 취하게 한다
— 단 11:32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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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replies on “우리의 모든 제사장 봉사의 기초—번제단에서 온 불”
6일
롬 12:11
열심을 내어
게으르지 않도록 하십시오.
영 안에서 불타서
주님을 섬기십시오.
딤후 1:6-7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대에게 일깨워 줍니다.
… 하나님의 은사를
부채질하여
불타오르게 하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겁내는 영이 아니라
능력의 영과
사랑의 영과
맑은 생각의 영이기 때문입니다.
살전 5:19
그 영을 끄지 마십시오.
그 영은
우리의 영을
불타게 하시고,
우리의 은사를
불타오르게 하신다.
따라서 우리는
그 영을
끄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성취된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왕국이
되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제사장들이
되었다
(벧전 2:5).
왕국은
하나님의 통치를
수행하기 위한 것이고,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왕의 존귀를 가진,
왕들인 제사장 체계이며
(벧전 2:9),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원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창 1:26-28).
오늘 우리는
교회생활 안에서
왕의 존귀를 가진
제사장 체계를
훈련하고 있다
(계 5:10).
이 제사장 체계는
천년왕국에서
강화된 방식으로
실행될 것이며
(계 20:6),
새 예루살렘에서
최종적으로 완결될 것이다
(계 22:3, 5).
하나님께서
그분의 경륜 안에서
의도하신 것은
그분의 모든 백성이 직접
그분을 섬기는
제사장들이 되는 것이었다.
출애굽기 19장 6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이
제사장의 왕국이 되도록
정하셨다.
…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금송아지를 숭배했기 때문에
(출 32:1-6)
제사장 직분을
잃어버렸고,
하나님께 신실했던
레위 지파만이
온 이스라엘 민족을 대신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들로
선택되었다
(출 32:25-29, 신33:8-10).
그래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중간 계급이
있게 되었다.
… 신약에서
하나님은
그분의 경륜에 따라
원래의 의도로 돌아오셔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믿는 이를
제사장들이 되게 하셨다
(계 1:6, 5:10, 벧전 2:5, 9).
그러나 초대 교회의 끝 무렵에,
심지어 1세기에
니골라당이
중간 계급으로 들어와
하나님의 경륜을
손상시켰다.
… 합당한 교회생활 안에는
성직자도 평신도도
있어서는 안 되며
모든 믿는 이가
하나님의 제사장들이
되어야 한다(계 2:6).
그리스도의 신성의 영광이
해방되는 것은
땅에
불을 던지는 것이었다.
누가복음 12장 49절에서
주님은
“나는
이 땅에
불을 던지러 왔습니다.
이 불이
이미 붙었다면,
내가
얼마나 좋겠습니까!”
라고 말씀하셨다.
이 불은
영적 생명의 충격력,
곧 주님께서 해방하신
신성한 생명에서 오는
충격력이다.
땅에
불을 던지는 것은
이 땅의 사람들을
태우기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침례를 받으셨을 때,
그분의 신성의 영광이
해방되었다.
부활의 때로부터
불이
이 땅에서
계속 타오르고 있다.
이 불은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되어
유대와 사마리아를 거쳐
땅끝까지 퍼졌다.
오늘날 이 불은
미국, 러시아,
루마니아, 폴란드,
브라질,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
온 땅에서
타오르고 있다.
세 종류의 태움이 있다.
첫째 종류는
제단에서의 태움이다.
이것은
구원과 기쁘게 받아들여짐을 위한 것이며,
귀하고 영광스러운 것이다.
이러한 태움의 결과는
우리가
하나님께
달콤한 향기가 되고
보석의 모양을 가지는 것이다.
둘째 종류의 태움은
기꺼이 다룸을 받고 파쇄되려고 하지 않는
믿는 이들을 위한 것이다.
어느 날
그들의 일이
불로 말미암아
검증될 것이다.
그들은
손실을 입게 될 것이며,
그들 자신은
구원을 받지만
불을 통과하여 받는 것과
같을 것이다.
이 두 종류의 태움은
믿는 이들을 위한 것이다.
셋째 종류의 태움은
주님을 거절하고
그분의 구원을 거절한
이들을 위한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영원히 불 못으로 던져질 것이다.
모든 사람이
태워질 것이다.
아무도
피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십자가의 제단 위에
두어야 하며,
우리 자신을
불쌍히 여기거나
사랑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얻으시도록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제단 위에 둠으로써
자신을
미워하고
처리해야 한다.
그러면 불이
제단 위에 내려와
우리를 태울 것이다.
이러한 태움의 결과가
봉사일 것이다.
5일
레 10:1-2
아론의 아들들인
나답과 아비후가
각자 자기 향로를 가져다가,
거기에 불을 담고
그 위에 향을 놓았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여호와 앞에 바쳤다.
그러자
여호와 앞에서
불이 나와
그들을 태워 버렸고,
그들은
여호와 앞에서 죽었다.
나답과 아비후가 바친
다른 불은
거룩한 불이 아니라
속된 불이었다.
이 불은
제단에서 온 불(레 16:12),
곧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자
하늘에서 내려온 불(레 9:24)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온 것이자
땅에서 온 불이며,
속죄의 근거를
가지지 못한 불이었다.
다른 불은
사람이
하나님께 바치는,
자신의 타고난 열심과 타고난 애정과
타고난 힘과 타고난 능력을
상징한다.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을 위하여
무언가를 했지만
천연적인 방식으로
그것을 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 두 제사장을
태워 버리심으로써
그렇게
다른 불을 바치는 것을
심판하셨다(레 10:2).
이것은
강력한 경고로서
우리가
신성한 일들을 대할 때
우리의 타고난 생명에
십자가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일들을
부주의하게 대한다면,
영적 죽음을
초래하게 되며,
심지어는
육신적으로
죽을 수도 있는데,
이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심판이다.
다른 불은
십자가로 처리받지 않고
부활 안에 있지도 않은
타고난 열심을
상징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주님을 섬길 수 있도록
우리의 열심이
십자가로 처리받는 것의
의미를
강조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부활 안에 있기 위해서는
십자가의 처리를
통과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타고난 열정을
가져와서는 안 된다.
그것은
선한 것이든 나쁜 것이든,
순수한 것이든 불순한 것이든
여전히 타고난 것이다.
제사장의 봉사에서
다른 불은
하나님 앞에서
죽음을 초래한다.
… 아마도 아론의 두 아들은
선한 마음, 곧 선한 의도로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불에 타서 죽었다.
다른 불을
드렸기 때문에
그 두 제사장은
하나님 앞에서
죽음을 맞았다.
우리는
… 오늘날의 제사장들이다.
…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
무엇을 바치는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무언가를 드리려는
선한 마음과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잘못된 것을 드린다면,
그것이
우리에게
죽음을 가져올 수 있다.
이것은
겉으로 볼 때
심각한 것처럼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심각한 것이다.
이 죽음은 주로
영적인 의미에서의 죽음을
가리킨다.
우리가
타고난 열심으로
주님을 섬길 때마다
그것은
우리의 영에
죽음을 가져온다.
우리는 모두
봉사해야 하고,
기능을 발휘해야 하며,
우리의 한 달란트
곧 우리의 은사를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천연적인 방식,
곧 우리의 타고난 열정으로
봉사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물론 주님은
우리가
영 안에서
뜨겁기를 원하시고,
차갑거나 미지근하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영 안에서
뜨거워야지
타고난 생명 안에서
뜨거워서는 안 된다.
로마서 12장 11절에서
바울은
“영 안에서 불타서
주님을 섬기십시오.”
라고 말한다.
타고난 생명 안에 있는
뜨거움은
어떤 것이든지
하나님께
다른 불이며
죽음을 가져온다.
다른 불을
바치는 것은
아마도 포도주를 마시는 것과
관련되어 있었을 것이다.
나답과 아비후가
죽은 직후에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고
명하셨다(레10:8-9).
… 성경에서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세상적이고 천연적인 것들이나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것들에 대한
과도한 누림을
상징한다.
달리 말해서
우리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을
과도하게 누린다면,
그것은 항상
우리를 취하게 한다.
술에 취하게 될 때,
우리는
흥분하며 자제력을 잃고
제한 없이 일을 하게 된다.
아마 아론의 두 아들이
술에 취하여
흥분되어 자제력을 잃고
제한 없이
어떤 일을 행했을 수 있다.
이것은
그들이
주제넘은 방식으로
다른 불을 바쳤음을
의미한다.
다른 불을 바친 것은
주제넘은 죄였다.
그들은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를 할 때
주제넘게 했다.
사실 그것은
하나님께
참된 것을
드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규례를 거스른
주제넘은 일이었다.
사람들이
주제넘은 일들을 하는 것은
어떤 것을
지나치게 누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취했다.
제사장들이
술에 취할 때,
그들은
거룩한 것에 대한
분별력을 잃어버리며(레10:10),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르칠 수 없게 된다(11절).
술 취함으로 인해
분별력을 잃을 때,
우리는
통제를 받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확실히
다른 사람들이 통제받을 수 있도록
그들을
가르칠 수 없게 된다.
신언노트, 2018 08 12
하나님은
태워 없애시는
불이십니다.
그 타오르는 한 분이신,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거룩함은
그분의 본성이며,
태워 없애는 불이신
하나님은
그분의 거룩한 본성에 맞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지 태워 없애실 것입니다.
다니엘서 7장 9절과 10절에서
하나님의 보좌는
불꽃들이었고,
그 바퀴는
하나의 타오르는 불이었으며,
하나의 불의 흐름이
그분 앞에서부터
솟아나와
밖으로 나왔습니다.
여기서 불은
하나님께서
절대적으로 의로우시고
전적으로 거룩하시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주님은
이 땅에서 타오르시기 위해
죽음을 통해
자신을
생명의 불로서
사람 안으로
해방하셨습니다.
일곱 배로 강화되신
생명 주시는 영,
곧 공기이신
그리스도는
타오르는 불이십니다.
이 불은
영적 생명의 충격(영향; 추진력),
곧 주님께서 해방하신
신성한 생명에서 오는
충격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 불이
타오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불에 의해
함께 이끌렸고,
이제는 이 불이
다른 많은 이들에게서
타올라야 한다는
부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신성의
숨겨진 영광이
해방되었을 때,
신성한 불이
온 땅에서 타오르도록
땅에 던져졌습니다.
이 불이
계속 타오르게 합시다!
아무도
그것을
멈추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곱 영은
보좌 앞에서 불타는
일곱 등불이십니다.
이 등불은
하나님의 행정을
수행하기 위해 있습니다.
가시나무 떨기 가운데서부터
타오르는 불은
삼일 하나님 곧 부활의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와
우리가
그 안에 확신을 가지는
많은 것들을
태우는
하나의 불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불태우고
힘을 주는,
태워 없애는 불이신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불이
이 땅에 오고,
하나님께서
사람 속에 들어가실 때
불이
사람 속에 들어가
그 안에서 타오릅니다.
번제단에서
타오르는 불은
하늘에서
내려왔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후에
이 불은
계속해서
제단 위에서
타올랐습니다.
신성한 불
곧 타오르시는 삼일 하나님은
우리를
봉사하게 하시고,
심지어 우리의 삶들을
희생할 수 있게까지 하십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모든 제사장 봉사는
반드시 번제단에서 온 불에
기초해야 하며,
우리의 봉사는
반드시 이 불의 불태움의
결과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의 봉사가
이 불에 기초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향을 피우는 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께 드리는 봉사였지만,
향을 피우기 위해
사용된 불은
반드시 번제단에서
가져온 것이어야 했습니다.
우리의 봉사는 반드시
하나님의 불의 불태움에서부터
나온 것이어야 합니다.
불은
에너지의 한 근원입니다.
우리의 봉사에
힘이 가득하려면,
우리의 봉사가 반드시
그 제단으로부터의 불을
통과해야만 합니다.
이 불이
우리 안에서
힘과 추진력과 충격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이 불이 있다면,
우리의 봉사는
우리 자신이 아닌
하나님에게서 나올 것입니다.
신약의 봉사를 위한
에너지와 동기를 부여하는 능력은
하늘에서부터의 불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갈릴리의 어부들 위에
내려온 불이
그들 안에서
에너지와 동기 부여 능력이 되었습니다.
이 불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신들을 하나님께 드리며,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버리고자 하고,
파쇄되기 위해 기꺼이
자신들을
하나님의 손들 안에 두고자 하는
사람들 위에서
타오릅니다.
제단에서 온 불이
봉사의 참된 동기 부여 능력입니다.
우리의 봉사와 관련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그분의 불을 보내어
우리 안에서 타오르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우리 자신들을
하나님께 드린다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올 것이고
우리를 불태울 것입니다.
이러한 불태움이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 될 것이고,
이러한 불태움의 결과는
우리의 봉사일 것입니다.
그 제단에서부터의 불이
한 강력한 봉사를
산출합니다.
번제단은
주 예수님의 십자가이고,
그 불은
그 영입니다.
참된 봉사의 기초는
그 십자가를 알고
우리 자신을
그 십자가 위에 두는 것인데,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얻어지도록,
또 그 신성한 불이
우리 안에서
타오르게
허락해 드리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봉사를 산출합니다.
제단에서부터의
불을 체험하는 사람들은
금과 은과 보석들을 가지고
건축합니다.
그러한 일은
하나님의 요소로 충만하고,
그 십자가의 능력을 가지며,
하나님을 표현합니다.
불태움을 통해
산출된 그 일만이
금과 은과 보석들에 속합니다.
불태움을 통해
산출되지 않은 일은
나무와 풀과 그루터기에 속합니다.
각 사람의 일이
불에 의해
검사 받을 날이
올 것입니다.
우리의 일이
불의 결과라면,
그 일은
불의 검사를
견딜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불로
하나님을 섬겨서는 안 되며,
반드시 제단에서 온 불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성경의 예표에 따르면,
제단에서 타오르는 불 이외의 모든 불은
다른 불입니다.
나답과 아비후의 실패는
그들이
제단에서 온 불을
사용하지 않은 것에 있었습니다.
그들이 사용한 불은
거룩한 불이 아니라
속된 불이었습니다.
다른 불은
사람이 하나님께 바치는,
자신의
타고난 열심과
타고난 애정과
타고난 힘과
타고난 능력을
상징합니다.
다른 불은
자아에서 나온 불입니다.
이 불은
혼 생명과
육체의 생명과
타고난 생명에서
나온 불입니다.
다른 불은
자아 생명이
하나님의 일들을 방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비록 일들이
하나님의 일들일지라도,
자아 생명은
그 일들이 수행되는
방식을 지시하기를
원합니다.
다른 불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봉사에서
자신의 방법과 지혜를
사용하는 것이고
자신의 제안을
고집하는 것입니다.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을 위하지 않는
어떤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타고난 생명에 따라
행동하고,
천연적인 방식으로
하나님을 위해
어떤 일을 했기 때문에
심판을 받았습니다.
다른 불을
드린 것은
주제넘은 죄였습니다.
나답과 아비후는
주제넘은 방식으로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를 했습니다.
이것은
강력한 경고이며
우리가
신성한 일들을 대할 때
우리의 타고난 생명에
십자가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영적인 죽음을
겪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불이 있는가 없는가에
주의를 기울이실 뿐만 아니라,
그 불의 근원과 본성에도
주의를 기울이십니다.
우리의 열심은 반드시
제단에서 비롯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안에 타는 불을 가진
가시나무 떨기이고
이 불은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을
반드시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한 가지 공과를
배워야 합니다.
즉 하나님을 위해
일하되,
자신의 타고난 생명과
그 에너지와 힘과 능력을
연료로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서
불타시도록
허락해 드림으로써
일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 안에서
불타야 하며,
영적인 죽음을 가져오는
다른 불이 아니라
주님의 생명의 불로
노예로서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번제단 위의 불은
계속 타고 있어야 합니다.
‘그 불은 반드시
꺼지지 않게 해야 하고,
꺼지지 않을 것입니다’
— 레 6:12-13.
매일 여러 차례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지속적인 번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서
하나님에 의해
태워져야 하며,
그럴 때
우리는
다른 이들을
불태울 수 있습니다,
그 영은
우리의 영을
불타게 하시고
우리의 은사들을
불타오르게 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영을
끄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우리의 영을 부채질하여
불타오르게 함으로써,
주님께서
우리를 불태우시고
계속해서 불타게 하시도록
허락해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사랑의 불이신
하나님을 누림으로써,
그분의 사랑으로
하나님과 다른 이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주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새로운 시작을 가지고
주님에 의해
부흥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우리 자신을
분발시켜
주님을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도로 읽음으로써,
우리의 영으로
성경의 영을 부딪치게 해서
신성한 불이
불붙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무 보류함 없이
자신을
주님께 열어 드려
주님에 의해
빛 비춤받고
불태워지며
주님을
주입받음으로써,
일곱 등불과
그리스도의 불타는 일곱 눈이신
일곱 배로 강화되신 영으로
충만하게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기뻐하고,
끊임없이 기도하며,
모든 일에 감사해야 합니다
— 살전 5:16-18.
우리는
하나님의 경륜적인 움직임 안에서
깨끗하게 하고
또 동기를 부여하기 위한
우리의 타오르는 능력이신
주님을 누리면서,
주님을 위해 말하여
다른 이들 안에
주님을 분배해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들 안에서와
교회들 가운데서
서로 협력함으로써,
그분의 하나의 움직임을 위해
우리의 거룩하게 하시는
불이신 하나님을
누려야 합니다.
일곱 등불이신,
일곱 배로 강화되신
영의 타오름은
우리에게
동기를 부여하여,
하나님의 경륜의 수행을 위해
일어나서 행동을 취하게 합니다.
4일
눅 12:49
나는
이 땅에
불을 던지러
왔습니다.
이 불이
이미 붙었다면,
내가
얼마나 좋겠습니까!
고전 3:12-13
누구든지
이 기초 위에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건축하면,
그날에
각 사람의 일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날이
그 일을
밝혀 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일이
불로 말미암아
드러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불이
각 사람의 일이
어떠한 종류의 것인지를
검증해 줄 것입니다.
제단에서 온 불이
봉사의 참된 원동력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봉사에 관해 하시는
유일한 일은
그분의 불을 보내어
사람 속에서
타오르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것은
하나님과 연결되고 연합되는 것을
의미한다.
…봉사는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이지
사람에게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봉사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
움직이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미 제단을 세우셨고,
자원하는 이들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들은
제단 앞에 나아와,
기꺼이 다룸을 받고
파쇄되도록
자신을
제단에 둘 것이다.
그러한 사람은
“주님,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의 갈망은 오직
주님의 필요를
만족시켜 드리는 것입니다.”
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진정으로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다면,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우리를 태울 것이다.
이러한 불태움이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 될 것이고,
이러한 불태움의 결과로
봉사가 나올 것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불이
우리 안에서
타오르기를 원하신다.
누가복음 12장 49절에서
주 예수님은
“나는
이 땅에
불을 던지러 왔습니다.”
라고 말씀하셨다.
주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뿐 아니라
우리에게서
불이 타오르게 하기 위해서
오셨다.
만일 주님께서
그분 자신을
아버지의 손에
두지 않으셨다면,
불이
땅에
던져질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불은
그 영이다.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가셔서 죽으셨을 때,
그분은
하나님에 의해
얻어지셨고,
하나님은
불이신 그 영을
하늘에서부터
쏟아부으셨다.
이 불은
백이십 명의 제자들 위에 내려와
그들 안에서 불탔다.
신약 시대의 모든 봉사는
그러한 불탐에서 나온다.
제단의 불은
타오르고 있으며,
강력한 봉사를
산출한다.
… 번제단은
주 예수님의 십자가이고,
불은
그 영이다.
그 영은
내려오셨고,
지금 번제단인 십자가를 통해
불타고 계신다.
누구든지
기꺼이 십자가를 접촉하기
원하는 사람,
즉 그리스도의 죽음을
적용함으로
십자가를 받아들이기를
원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얻어질 것이다.
그러면 번제단의 불,
즉 그 영께서
봉사를
산출하실 때까지
그 사람 안에서
불타오르실 것이다.
모든 참된 봉사는
그러한 불탐에서 나온다.
참된 봉사의 기초는
우리가
십자가를 알고
자신을
십자가 위에
두는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얻으시고
신성한 불이
우리 속에서
타오르도록
허락해 드리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봉사를 산출한다.
기도하며
십자가의 죽음을 적용하는
성도들은
하나님에게서
은혜를 받을 것이고,
그분의 거룩한 불이
그들 속에서
불탈 것이다.
그러한 성도들은
그들 자신을
관심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그들 자신에게 두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의 갈망을
만족하게 하는 것만을
관심한다.
번제단을
체험하는 사람들은
금과 은과 보석으로
건축한다
(고전 3:12).
금은
신성한 생명과 본성을
가리킨다.
은은
그리스도의 구속과
십자가의 원칙을
가리킨다.
보석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리킨다.
번제단을 체험하는
믿는 이들의 일은
하나님의 요소로
충만하고,
십자가의 능력을
가지며,
하나님을
표현한다.
불태움을 통해
산출된 일만이
금과 은과 보석에
속한 일이다.
불태움을 통해
산출된 것이
아닌 일은
나무와 풀과 짚에
속한 일이다.
각 사람의 일이
불로 시험을 받을
날이 올 것이다
(고전 3:13).
우리의 일이
불의 결과라면,
그 일은
불의 시험을
견딜 것이다.
… 우리의 일이
타고난 사람에 따른 것이고
육체에 의한 것이며
흙에 속한 것이라면,
나무와 풀과 짚에
속한 것이다.
각 사람의 일이
불에 의해 드러날 때,
그러한 일은
시험을 견디지 못하고
소멸될 것이며,
우리는
손실을 입을 것이다
(고전 12:15).
3일
레 6:13
불은
제단 위에서
항상 타고 있어야 하며
꺼지지 않게 해야 한다.’
대하 7:1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매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 성전에 가득하니
행2:3
불꽃같은 혀들이
그들에게 나타나 분배되면서
각 사람 위에 내렸다.
불은
힘의 근원이다.
… 우리의 봉사에
힘이 가득하려면,
우리의 봉사가 반드시
제단 위의 불을
통과해야 한다.
이것은
사람에게 속하거나
땅에 속한
다른 불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거룩한 불이다.
이 불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하늘에 속한 것이다.
우리의 봉사는 반드시
하나님의 불로
태워진 것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이 불이
우리 안에서
힘과 추진력과 충격력이
되어야 한다.
그럴 때
우리의 봉사는
우리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 될 것이다.
하나님은
번제단에서 나온
불에 근거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봉사를
기쁘게 받으셨다.
… 황폐했던 기간 후에,
다윗이
하나님에 의해
일으켜졌다.
다윗은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위해
집을 건축하려는
갈망을 가지고 있었다.
이 갈망은
그의 아들 솔로몬을 통해
이루어졌다.
솔로몬은
성전 건축을 마친 후에
놋 제단 즉 번제단을 가져다가
성전 안에 두었다.
그는 또한
그 번제단 위에
희생 제물들과 번제물들을
바쳤다
(대하 7:1).
그때
하나님께 드리는
봉사가 재개되었다.
그러므로 성전 안에서의
이스라엘 자손의 봉사는
번제단에서 온
불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향을 피우고
봉사할 때마다
번제단을 통과해야만 했다.
… 그 불은
성전이 파괴되기 전까지
계속 번제단에서 타올랐다
(레 6:13).
주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
하나님의 성막, 하나님의 성전이셨다
(요 1:14, 2:21).
하나님을 섬기려는
갈망을 가진 사람은 누구든지
주 예수님을 통해
섬겨야 했다.
… 주님께서도
번제단-골고다 위의 십자가-을
세우셨으며,
그 위에
그분 자신을
번제물로 드리셨다.
그리고 어느 날
불이 내려왔다.
이 불은 성령이었다
(행 2:1-4).
주 예수님은
자원하여
십자가로 가셔서
그분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셨다.
그분은 또한
자신이 하셨던 것처럼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
그리고 그분을 사랑하고 따르는
나머지 사람들을
인도하여
그들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게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만족스러운 그리스도의 향기로
기쁘게 받으셨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백이십 명의 제자들이
오순절 전에
예루살렘에 있는
다락방에 모여
(행 1:13-15)
그들 자신을
하나님께 드렸다.
그 결과
오순절날에
그 영이
불꽃 같은 혀들처럼
그들 위에
내려오셨다.
이것이
신약의 봉사의
시작이었다.
신약의 봉사는
오순절날에
백이십 명의 제자들 위에
내려와서
타기 시작한
불과 함께
시작되었다.
신약의 봉사를 위한
힘과 원동력은
하늘에서 온
불로 시작되었다.
갈릴리 출신의
어부들 위에
내려온 불이
그들 안에서
힘과 원동력이 되었다.
오순절날 후에
그들은
하나님을 위해 말하고,
복음을 전파하며,
죄인들을 구원하고,
교회들을 세울 수 있었다.
제자들은
일을 위한
능력의 근원이
아니었다.
그 능력의 근원은
하늘이었다.
그 능력은
하늘에서 내려온
불에서 왔다.
오순절 때에
… 불은 오직
백이십 명에게만 내려왔는데,
그것은
그들이
번제단 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 영의 불은 오직
번제단에만 내려온다.
이것은
장래에 임할
심판의 불이
아니었다.
이것은
구원의 불이었다
(눅 12:49).
이 불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며,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버리고자 하고,
죽음당하고
파쇄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자 하는
이들 위에서
타오른다.
그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봉사는
불태워진 결과이다.
구약의 예표에서나
신약의 실재에서나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의 봉사는 항상
번제단에 있는
불에서 나온다.
2일
레 9:24
그때
여호와 앞에서
불이 나와
제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진 부분들을
불태웠다.
온 백성이
보고
환호성을 지르며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
대상 21:26
다윗이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려
여호와께 아뢰었더니
여호와께서
하늘에서부터
번제단 위에
불을 내려
응답하시고
하나님을
섬기기 원하는 이들은 반드시
우리의 하나님께서
태워 없애시는
불이시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땅에 오실 때,
불이
땅에 왔다.
하나님께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실 때,
불이
사람 안으로 들어가
사람 속에서
불탄다.
… 하나님은
차갑지 않으시다.
그분은
힘을 주며
타오르게 하는
불이시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오는 이들은
불타는 것을
체험한다.
하나님은
태워 버리는 불이시고,
그분의 눈은
불꽃과 같다(계 1:14).
누구든지
그분을 만지는 사람은
불태워질 것이다.
놋 제단 위에 있는
모든 제물을 태우는
이 불은
하늘에서부터 왔다.
그 불은
사람에 의해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에게서 온
불이었다.
그리고 그 불은
임한 그때부터
결코 꺼지지 않았다.
매일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불탔다(레 6:9).
그 불은
거룩한 불이었으며
다른 불이 아니었다.
번제단 위의 불은
모든 타고난 부정적인 것들을
하나님 앞에서
태워 버린다.
… 하나님께
올라갈 수 있는 것은
어느 것이나
먼저 번제단에서
신성한 불로
태워져야 한다.
번제단 위에서
신성한 불로
태워진 것은 모두
하나님께
기쁘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이처럼
분향단에서
하나님 앞에서
향을 피우기 위해서는
하나님에게서 내려온
불이 필요하다.
모든 타고난 부정적인 것들을
태워 버리는
이러한 신성한 불이
우리의 봉사를 위해
필요하다.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봉사는 반드시
번제단에서 온
불에 근거해야 한다.
구약에서 제사장들은
하나님 앞에서
향을 피웠다.
향을 피우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께 드리는
봉사를 상징한다.
향을 피우는 데
사용된 불은
번제단에서
취한 것이어야 했다.
만일 누군가가
번제단에서 온 불로
향을 피우지 않으면,
즉 다른 불을 드리면,
그의 봉사는
하나님께
기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는
죽음의 심판을 당했다
(레 10:1-2).
이러한 예는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봉사가 반드시
번제단에서 온 불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를 통과하는 여정에서
성막을 따를 때,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봉사는
번제단에
불이 타오름으로써
시작되었다.
번제단에 있는 불은
하나님에게서 내려왔다
(레 9:24).
이스라엘 자손은
불이 내려오기 전까지는
하나님께 드리는
그들의 봉사를
시작할 수 없었다.
그들은
이집트에서
하나님에 의해 구출되었고,
홍해를 건넜고,
시나이산 기슭에 성막을 세웠지만,
그들에게
봉사의 기반이 없었으므로
하나님을
섬길 수 없었다.
그들의 봉사의 기반은
불이 타고 있는
번제단이었다.
번제단이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번제단에는
하나님에게서 내려온
불이 있어야 했다.
레위기의 시작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앞에
계셨지만,
그들은 아직
그분을
섬길 수 없었다.
… 번제물을 드리는 것은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기 위한
선결 조건이었다.
단지 번제단이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고,
번제물을
번제단에 드려야 했다.
번제물로 드리는 희생 제물을
죽이고, 껍질을 벗기고,
각을 뜨고, 씻고,
번제단 위에 둔 후에야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올 수 있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의 봉사가
이러한 불에 근거하기를
원하셨다.
향을 피우는 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께 드리는
봉사였지만,
향을 피우기 위해
사용된 불은 반드시
번제단에서
가져온 것이어야 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봉사는 반드시
번제단의 불에서
비롯된 것이어야 하며,
우리의 봉사는 반드시
이 불로 태워진 것의
결과여야 한다.
1일
히 12:28-29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왕국을 받았으니
은혜를 지닙시다.
은혜를 통하여
우리가
경건함과 경외함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섬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은
태워 버리는
불이시기 때문입니다.
단 7:9-10
내가 보니
보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 그분의 보좌는
불꽃들이고
(flames of fire; 불꽃이요)
그의 바퀴는
하나의 타오르는 불이며
(a burning fire)
하나의 불의 흐름이
그분 앞에서부터
솟아나와
밖으로 나오고 …
(a stream of fire
issued forth
and came out
from before Him;
불이
강처럼 흘러
그의 앞에서 나오며 …)
하나님은
거룩하시며,
거룩함은
그분의 본성이다.
하나님은
태워 버리는 불이시며,
하나님의 거룩한 본성에
일치되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지
태워 없애 버리실 것이다.
… 하나님의 의를
만족시키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
의롭게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거룩함의
요구를 충족하려면,
우리는
거룩하게 되어야 한다.
즉 하늘에 속하시고
지금 존재하시며
살아 계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룩해져야 한다.
다니엘서 7장 9절과 10절에서
불은
하나님께서
절대적으로 의로우시고
완전히 거룩하시다는 것을
의미한다.
거룩하지 않다면
누구도
주님을
보거나 접촉할 수 없다.
불은
영적 생명의 충격력이다.
이 충격력은
주님의
해방된 신성한 생명에서 온다
(눅 12:49).
주님의 죽음은
하나님-사람이 되신
그분을 통하여
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구속을 성취하고
(눅 23:42-43),
땅 위에서 타오르는
생명의 불이신
그분 자신을
사람 안으로
해방하기 위한 것이었다
(눅 12:49-50).
요한계시록 5장 6절은
“또 내가 보니,
보좌와 네 생물 한가운데에,
그리고 장로들 한가운데에
갓 죽음을 당하신 것 같은
한 어린양께서
서 계셨습니다.
그 어린양은
일곱 뿔과 일곱 눈을
가지셨는데,
이것은
온 땅에 보내어지신
하나님의 일곱 영입니다.”
라고 말한다.
이 일곱 눈, 이 일곱 영은
‘불꽃’과 같으시다
(계 1:14, 2:18).
다른 곳에서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
‘보좌 앞에서 불타는
일곱 등불’
(계 4:5)이라고 말한다.
오늘날 그리스도는
태워 버리는 불이시다.
우리 모두에게
이 불이
타오르고 있다.
우리는
이 불에 의해
함께 이끌렸고,
이제는
이 불이
다른 많은 이들에게서
타올라야 한다는
부담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의 신성의
숨겨진 영광이
해방되었을 때,
신성한 불이
온 땅에서 타오르도록
땅에 던져졌다.
이 불이
계속 타오르게 하자!
아무도
그것을
멈추게 할 수 없다.
(위트니스 리 고봉 메시지, 3권,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에 의해
신성한 영광으로
영화롭게 되신 결과,
16쪽)
“그때
여호와 앞에서
불이 나와
제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진 부분들을
불태웠다.
온 백성이
보고
환호성을 지르며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
(레 9:24)
이 불은
태워 버리는 불이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제물들을
불태우심으로써
이 제물들을
기쁘게 받으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거룩하신 하나님은
그분의 거룩한 본성에
일치하는 것은
무엇이든 불태우심으로써
기쁘게 받아들이시지만,
하나님의 거룩함의 요구를
충족하지 못하는 모든 것은
불태워 없애 버리심으로
심판하실 것이다.
그런 경우에
불은
태워 버리는 불(히 12:29)이신
하나님을 나타낸다.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와
그분의 영광의 나타남과
주님의 축복을
누린 후,
태워 버리는
불을 받을
준비를 해야 한다.
하나님의 축복 다음에
고난이라는
태워 버리는 불이
뒤따르는 것은
영적인 법칙이다.
이 불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께 드린 것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셨다는
표시이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대표하는
동일한 불이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기 위한
태워 버리는 불이
될 수 있고
심판하는 불이
될 수도 있다.
태워 버리는 불은
스데반이
자신을 제물로 드린 것을
기쁘게 받은 반면에
(행 7:55-59),
주후 칠십 년경에
티투스 장군과 함께 온
태워 버리는 불은
예루살렘의 혼합된 것을
심판했다.
오늘날
우리에게
태워 버리는 불은
우리가
하나님께 드린 제물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아들이시는 것이
될 수 있고,
혹은
우리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될 수도 있다.
… 우리가
그리스도를 누리고
그리스도를 하나님께 드린다면,
태워 버리는 불은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아들이시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를
손상한다면,
이 태우는 불이
우리에게 올 때
이 불은
그분의 통치를
잘못 만진 대가로
우리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이 될 것이다.
이것은 엄중한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