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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부흥을 위한 거룩한 말씀

왕국과 교회

The Kingdom and the Chruch
그 왕국과 또 그 교회

성경은 먼저
왕국을 제시하고
그 후에
교회를 제시한다.
왕국이 있을 때
교회가 산출된다
― 마 4:23, 16:18-19.

하나님의 생명이
하나님의 왕국이다.
신성한 생명이
왕국이며,
이 생명이
교회를 산출한다
― 요 3:3, 5, 마 7:14, 21,
19:17, 29, 25:46.

왕국은
생명이
움직이고 다스리고 통치함으로
그 목적을 이루는
생명의 영역이며,
이 영역이 왕국이다.

복음은
신성한 생명을 가져오고
이 생명은
그 영역을 가지는데,
이 영역이 바로
왕국이다.
영역을 가지고 있는
신성한 생명이
교회를 산출한다
― 딤후 1:10.

왕국 복음은
교회를 산출하는데,
그것은
왕국이
생명 자체이고
교회는
생명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 마 4:23, 행 8:12.

왕국은
교회의 실재이다.
그러므로 왕국 생활을 떠나서
우리는
교회생활을 할 수 없다
― 마 5:3, 16:18-19, 계 1:4-6, 9.

천국의 실재가
(마 5-7장)
교회생활의 내용이다.
왕국의 실재가 없다면
교회는 공허한 것이다.

왕국 생활이
교회생활을 산출하기 때문에,
우리가
단체적으로
왕국 생활 안에서 살 때
자연스럽게
교회생활을 하게 된다
― 롬 14:17.

왕국의 실재 안에
살지 않는 믿는 이는
교회의 구조물 안으로
건축될 수 없다
― 엡 2:22.

교회의 실재인
왕국이 없다면
교회가 건축될 수 없다
― 마 16:18-19.

교회는
왕국의 권위를 통해
존재하게 된다.

교회 건축을
가능하게 하도록
왕국 열쇠들이 주어졌다
― 마 16:19, 18:18, 요 20:23.

천국이
한 무리의 믿는 이들에게
그 권위를 행사할 수 있을 때,
이 믿는 이들은
교회로 건축될 수 있다
― 골 2:19, 엡 4:15-16.

교회생활 안에 있는
활력 그룹들의 목적은
왕국 생활,
곧 하나님-사람의 생활을
하는 것이다.
활력 그룹은
교회를 참되게 대표한다
― 마 18:15-22.

진정한 교회는
이 시대에 있는
하나님의 왕국이다.
오늘날 믿는 이들은
교회 안에서
왕국 생활을 한다
― 마 16:18-19, 18:17-18,
13:44-46, 롬 14:17, 고전 4:20,
엡 2:19, 골 4:11, 계 1:4-6.

주 예수님은
교회에 대해
말씀하실 때마다
왕국과 연관 지어
교회를 언급하셨다.
이것은
왕국과 교회가 얼마나
긴밀히 연관되어 있는지를
보여 준다
― 마 16:18-19, 18:17-18.

로마서 14장 17절은
이 시대에 있는 교회가
하나님의 왕국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고린도전서 4장 20절에서
‘하나님의 왕국’은
교회생활(17절)을 가리키는데,
이것은
권위의 측면에서
이 시대의 교회가
하나님의 왕국이라는 것을
함축한다.

에베소서 2장 19절에 나오는
‘동일한 시민’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권위를 행사하시는 영역인
하나님의 왕국을
가리킨다.

요한계시록 1장 6절에서
‘왕국’이라는 단어는
교회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왕국이 있다는 것을
계시한다.
교회는
왕국을 대표한다.

왕국인 교회 안에서
우리는
다스림과 통치와
징계와 훈련을
받고 있다
― 고전 6:9-10, 갈 5:19-21, 엡 5:5.

주님의 회복 안에서
우리는
보물인 왕국과
진주인 교회
두 가지 안에
동시에 있다
― 마 13:44-46.

비록 오늘날의 교회가
하나님의 왕국이지만,
우리는
타고난 사람 안에서가 아니라
영 안에서
살고 행하고 존재할 때에만
실지로
왕국 안에 있게 된다
― 롬 8:4, 갈 5:16, 25.

아버지는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출하시어,
그분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 안으로
옮기셨다
― 골 1:12-13.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은
세 시대,
곧 교회가 존재하는
현시대와
천년왕국이 있을
다가올 시대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새 예루살렘이 있을
영원한 시대로
이루어진다
― 골 1:13.

골로새서 1장 13절에서
강조하는 것은
이 시대에 있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이며,
이 왕국이
곧 교회의 실재이다.

오늘날 교회생활은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이며,
이 왕국은
하나님의 아들만큼이나
아버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린다
― 골 4:15-16.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인
교회의
내재적인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 골 1:13.

하나님의 아들은
신성한 생명의
체현과 표현이시다.
따라서 아들의 왕국은
생명의 영역이다
― 요일 5:11-12, 요 1:4.

우리가
옮겨져 들어간
왕국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이다.
이 생명의 영역은
두려움 안에 있지 않고
사랑 안에 있다
― 골 1:13.

오늘날 우리가 있는 곳인
왕국은
생명과 빛과 사랑이
충만한 영역이다
― 벧전 2:9.

아버지의 아들은
생명의 근원이신
아버지의 표현이시다
― 요 1:18, 4, 요일 1:2.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은
아버지의 사랑의
대상으로서,
부활 안에 있는
권위를 가지시고
신성한 사랑 안에서
우리에게
생명의 체현이 되신다
― 마 3:17.

신성한 생명의 체현이신
아들은
아버지의 사랑의
대상이시다
― 마 17:5.

아들 안에 체현된
신성한 생명은
신성한 사랑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다
― 요일 5:11-12, 요 3:16.

신성한 사랑의 대상은
부활 안에 있는
권위를 가지시고
신성한 사랑 안에서
우리에게
생명의 체현이 되신다.
이것이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이다.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 안으로
옮겨지는 것은
우리에게 생명이 되시는
아들 안으로
옮겨지는 것이다
― 요일 5:11-12.

부활 안에 계신 아들은
지금 생명 주시는 영이시고,
그분의 부활 생명 안에서
사랑으로써
우리를 통치하신다
― 벧전 1:3, 롬 6:4-5, 고전 15:45하.

우리가
부활 안에 있는
우리의 생명이신
아들에 의해 살 때,
우리는
그분의 왕국 안에 살면서
아버지의 사랑 안에서
그분을 누린다.
여기에서 우리는
교회생활을 한다
― 골 3:4, 요 6:57.

아버지께서
그분의 아들을 기뻐하시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은
유쾌한 것,
곧 기쁨의 문제이다
― 마 3:17, 17:5.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인
교회 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유기적인 몸의
실재와 실지 상태를 가진다
― 골 2:19.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인
교회 안에서
우리는
우주적인 한 새사람의
실재와 실지 상태를 가진다
― 엡 2:15, 4:24, 골 3: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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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replies on “왕국과 교회”

6일

요일 5:11
그 증언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으며,
이 생명이
그분의 아들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골 3:4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이십니다.
그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영광 가운데 나타날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 안으로
옮겨지는 것은
우리에게 생명이 되시는
아들 안으로
옮겨지는 것이다
(요일 5:12).
부활 안에 계신 아들은
(벧전 1:3, 롬6:4-5)
지금 생명 주시는 영이시고
(고전 15:45하),
그분의 부활 생명 안에서
사랑으로써
우리를 통치하신다.
이것이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이다.
우리가
부활 안에 있는
우리의 생명이신
아들에 의해 살 때,
우리는
그분의 왕국 안에 살면서
아버지의 사랑 안에서
그분을 누린다.

우리는
생명과 함께
사랑으로 다스림을 받는
영역 안으로 옮겨졌다.
여기에서
하늘에 속한
다스림과 제한을 받으며,
우리는
사랑 안에서,
생명을 가지고,
빛 아래서
참된 자유,
올바른 자유를 가진다.
이것이
어둠의 권세에서 구출되어
그분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 안으로
옮겨졌다는 말의
의미이다.
이 왕국 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누리며
교회생활을 한다.
여기에는
의견도 분쟁도 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만을 가진다.
그것은
우리에게 모든 것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소유하는
교회생활이다.
이것이
골로새서의 계시이다.

골로새서 1장 13절에서 말하는
어둠의 권세란
문화의 좋은 면들,
그리고 우리의
성격과 기질과 타고난 존재의
좋은 면들을 가리킨다.
어둠의 권세는 또한
우리의
미덕과 종교와
철학과 관례와
의식과 도의와
윤리적인 기준 등을 포함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 모든 것에서 구출하시어
그분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 안으로
옮겨 놓으셨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늘에 속한
다스림과 제한을 받으며 산다.
이 왕국 안에서
우리는
가혹한 다스림 아래 있지 않고,
아들의 사랑스러운 다스림 아래 있다.
이곳에서 우리는
의나 권세나 권위의
다스림 아래 있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주 예수님의 다스림 아래 있다고
느낀다.
우리가
주 예수님께
사랑한다고 말할수록
우리는
한편으로는
더 많은 자유를
가지게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더 많은 제한과 다스림을
받게 된다.
우리는
그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분을
우리의
인격과 생명으로 삼기를
갈망한다.
이것이
교회생활을 위한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생활이다.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의
잘못은
그리스도 외의 것을
받아들이고 따른 것이었다.
그리스도 대신
무언가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둠 가운데 있는 것일 뿐 아니라
어둠의 권세의 조종 아래 있는 것이다.
철학, 종교,
성격, 미덕,
관념, 의견 등과 같은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우리를 조종하는
어둠의 세력이 된다.
골로새에 있던
어둠의 권세는
유대교의 관례,
이교도의 의식,
철학, 신비주의, 금욕주의 등이었다.
이런 것들이 좋아 보일지라도
그리스도를 대치하는 것이므로
사실상 어둠의 권세였던 것이다.
이러한 것들에 의해
골로새의 성도들은
빛이신 그리스도를
옆으로 제쳐 놓았다.
그리하여 어둠이 다시 한번
교회 안의 성도들을
다스리게 되었다.
이것이
골로새 교회의 상황이었으며,
바로 오늘날의 상황이기도 하다.

많은 믿는 이들이
성경을 가리켜
빛으로 충만한 책이라고
말한다.
물론 이것은
옳은 말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주님의 임재 가운데서
성경을 읽지 않는다면,
우리가 성경을 읽는 것까지도
어둠 가운데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요한복음 5장
39절과 40절에서
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리새인들과 같이 될 것이다.
“여러분이
성경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기 때문에
성경을 자세히 연구하는데,
이 성경은 바로
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생명을 얻기 위하여
나에게 오려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손에 들고도
눈이 감겨
어둠 가운데 있을 수 있다.
종교인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소경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화를 냈다
(요 9:39-41).
그들은
외견상으로
성경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이 빛 가운데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실상 그들은
세상의 유일한 빛이신
그리스도를 소유하지 못했으므로
소경이었다.
주 예수님이 없는 곳은
다 어둠의 권세 아래 있는 곳이다.

그리스도께서
몸의 머리가 되시고,
또 그분을 믿는 우리가
그분의 몸의
지체들이 되기 위해,
그분은
사탄의 왕국인
어둠의 권세에서
우리를 구출하시어
(마 12:26)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분의 왕국
곧 그리스도의 왕국 안으로
옮기셨다.

 

5일

벧전 2:9
그러나 여러분은
선택받은 족속이고,
왕들인 제사장 체계이며,
거룩한 나라이고,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시어
자신의 기묘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분의
미덕들을
널리 알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 1:4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며,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신약 성경을 볼 때,
하나님의 아들은
신성한 생명의
표현이시고 체현이시다.
이것은
아들의 왕국이
생명의 영역임을 뜻한다.
우리가
옮겨져 들어간
왕국이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이라는 것은
이 생명의 영역이
두려움 안에 있지 않고
사랑 안에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오늘날
우리가 있는 곳인
왕국은
생명과 빛과 사랑이
충만한 영역이다.

아버지의 아들은
생명의 근원이신
아버지의 표현이시다
(요 1:18, 4, 요일 1:2).
생명의 근원이신
아버지는
아들 안에서 표현되신다.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은
아버지의 사랑의
대상으로서,
부활 안에 있는
권위를 가지시고
신성한 사랑 안에서
우리에게
생명의 체현이 되신다.
신성한 생명의 체현이신
아들은
아버지의 사랑의
대상이시다.
아들 안에 체현된
신성한 생명은
신성한 사랑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다.
그러므로 신성한 사랑의 대상은
부활 안에 있는
권위를 가지시고
신성한 사랑 안에서
우리에게
생명의 체현이 되신다.
이것이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이다.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에 대해서는
어떤 정의를 내리기보다
하나의 예시를 들어 설명하는 것이
더 쉬울 것 같다.
여러분의 체험을 보라.
주 예수님께서
참으로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분이신 것을
깨닫게 되면서부터
우리는
그분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주 예수님을 사랑하면서
우리는
어떤 달콤한 사랑의
느낌을 가지게 된다.
이 느낌은
주 예수님에 대한 것일 뿐 아니라
우리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우리 역시
신성한 사랑의
대상임을
깨닫는다.
신성한 사랑의 대상인
우리는
자연스럽게
어떤 통제 혹은 다스림 아래로
들어가게 된다.
주 예수님을 사랑하기 전에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지 자유롭게 행했다.
그러나 우리가
“주 예수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라고 더 많이 말할수록
우리의 자유는
더 없어진다.
주 예수님을 사랑하기 전에
우리는
이러한 다스림이나 제한을
느끼지 못했다.
우리는
이러한 내적인 제한을
전혀 느끼지 못한 채,
사람들을 괴롭히기도 하고
세상적인 오락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주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로서
우리는
그분의 다스림 아래
들어오게 되었다.
이 다스림은
거친 것이 아니다.
반대로 달콤하고도
즐거운 것이다.
우리는 참으로
달콤한 제한과
달콤한 다스림을 받는다.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의
즐거운 다스림으로 인해,
우리는
헛된 말을 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그분을 슬프시게 하는 어떤 생각도
좋아하지 않게 된다.
사랑의 달콤함 속에서
우리는 극도로
다스림과 제한을 받는다.
이것이
그분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이다.

우리가
주 예수님을 사랑함으로
그분께 기꺼이 제한을 받고
다스림을 받으려고 할수록,
우리는
생명을 얻고
심지어 넘치는 생명을 얻어
더욱더 자라게 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이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생명으로
누리게 하기 위한 것임을
가리킨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리스도 외의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된다.
악한 것뿐만 아니라
철학과 의식과
관례와 금욕주의로부터
해방된다.
철학과 윤리와
금욕주의와 의식에
집착했을 때,
우리는
어둠의 권세 아래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이 권세로부터 구출하시어
생명과 빛으로 충만한
사랑의 왕국 안으로
옮기셨다.
여기에는
관례도, 종교적인 의식도,
행위도, 철학도,
신비주의도, 영지주의도,
금욕주의도 없다.
우리에게는
그분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인
그리스도만이 있을 뿐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랑과 빛과 생명을
소유한다.
이것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는 것이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산다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외의 그 어떤 것으로 말미암아
살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면,
우리는
우리 중의 많은 사람이
아직도 자아가 세워 놓은
어떤 통제,
즉 자아가 정해 놓고 수행하는
어떤 통제 아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통제는
어둠의 권세이다.
어둠의 권세 아래 있으면
성경을 읽어도
어떤 빛도 얻지 못하고,
기도를 해도
어떤 말씀도 들을 수 없다.
아버지께서
우리를
어둠의 권세,
즉 우리의 옛사람의
생각과 감정과
취향과 행동으로부터
구출해 주셨지만,
우리는 아직도
옛사람의 어떤 방면 안에
머물러 있을 수 있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우리를
어둠의 권세 아래
붙잡혀 있게 한다.

 

4일

골 1:12-13
여러분이
빛 가운데에서
성도들에게 할당된
몫을 받을
자격이 있도록 하신
아버지께 감사드리기를
바랍니다.
아버지께서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출하시어,
그분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 안으로
옮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은
세 시대,
곧 교회가 존재하는
현시대와
천년왕국이 있을
다가올 시대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새 예루살렘이 있을
영원한 시대로
이루어진다.
골로새서 1장 13절에서
바울은
왕국의 이 세 방면들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으로
여긴다.

아버지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을
듣기를
기뻐하신다.
주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셨을 때,
아버지는
“그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나를 기쁘게 하는 아들이다.”
(마 3:17)
라고 선포하셨다.
주님께서
변형되셨을 때에도
아버지는
동일한 선포를 하셨다
(마 17:5).
아버지는
그분의 아들을 기뻐하시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은
즐거움과 기쁨의 문제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 왕국은
오직 세 부분,
곧 교회생활의 부분과,
천년왕국의 하늘에 속한 부분과,
교회와 왕국의 최종 완결인
새 예루살렘이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의 부분으로
구성되는 것이다.
이 세 부분 모두에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은
기쁨의 문제이다.
아버지는
그분의 긍휼과 은혜로
우리를
사탄의 어둠에서
왕국의 이 즐거운 부분 안으로
옮기셨다.

골로새서 1장 13절에서
강조하는 것은
이 시대에 있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이며,
이 왕국이
곧 교회의 실재이다.
오늘날 교회생활은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이며,
이 왕국은
하나님의 아들만큼이나
아버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린다.
우리 모든 믿는 이들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인
이 기쁨의 왕국 안으로
옮겨졌다.
아버지 하나님은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아들을 사랑하시듯이,
왕국의 즐거운 부분을
그분 자신의 것으로
사랑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든 것을 포함한 몫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책인
골로새서에서
사도 바울은
신성한 왕국의
즐거운 부분인
교회를
하나님께서 구속하신
백성들에게 주어진
큰 축복으로
여긴다
(1:12).

요한복음 3장 5절은
모든 믿는 이들이
거듭남을 통해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 안으로
옮겨졌음을
알려 준다.
거듭남을 통해서
우리는
사탄의 어둠에서
왕국의 이 즐거운 방면 안으로
옮겨졌다.
하나님은
아들을 사랑하셨으므로
왕국의 이 즐거운 부분을
아들에게 주셨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은
모든 믿는 이들은
하나님의 구원과 거듭남을 통해
왕국의 이 부분 안으로
옮겨졌다.

우리는
결혼 생활 중에서도
아직 어둠의 권세 아래
있을 수 있다.
어떤 형제가 아내와
말다툼을 할 때,
그 둘은 모두
어둠 가운데 있는 것이다.
어둠 가운데 있으므로
그들은
서로 비난하고 힐책한다.
형제들 간이나
자매들 간에
말다툼이 있을 때에도
똑같다.
우리의 체험은
우리가
자아 안에서
살고 행하고 처신할 때마다
언제나 어둠 안에 있었음을
증명할 수 있다.
무슨 흉악한 죄를 지어야만
어둠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자아에 따라 살기만 해도
우리는
어둠 안으로 넣어진다.
왜냐하면 이러한 생활이
우리를
그리스도로부터
분리하기 때문이다.

타고난 사람 안에 있으면서
그리스도를
우리의 인격으로 삼지 않고
그분에 의해 살지 않을 때,
우리는 언제나
어둠 가운데 있다.
우리는
오직 그분만이 빛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그분께서
우리 생활의
모든 방면을
적시시고
다스리셔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적어도 우리의 생활의
어떤 부분은
그리스도로
채워지지 않을 것이고,
어둠 가운데
있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에 대해
닫혀 있는
그 부분들은
자연히 어둠 안에 있게 된다.
왜냐하면
빛 자체이신 그리스도께서
그 부분들 안에서
입지를 얻지 못하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자신의 모든 부분과
우리 생활의 모든 방면을
차지하실 때,
우리는 온전히
빛 가운데 있을 수 있고,
어둠의 권세의 지배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

 

3일

엡 2:19
그러므로 이제부터
여러분은
나그네도 아니고,
체류자도 아니며,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

롬 14:17
왜냐하면 하나님의 왕국은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의와
화평,
그리고 성령 안에 있는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2장 19절은
오늘날
교회가
하나님의 왕국이라고 말할
근거를 준다.
여기에서 언급된
시민은
가족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왕국 혹은 나라와 관련된 것이다.
하나의 가족은
시민들이 아닌
식구들로 이루어진다.
…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의
식구들이며,
…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왕국의
시민들이다.

비록 오늘날의 교회가
하나님의 왕국이지만,
우리는
영 안에서
살고 행할 때에만
실지로
왕국 안에 있게 된다.
우리가
옛사람에 따라서
행하거나
육체 안에서나 자아 안에서
살 때마다
우리는 사실상
하나님의 왕국 밖에 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육체 안에 있을 때
타락한 인간 본성이라는
옛 영역 안에
있게 된다는 것이다.
타락한 인간 본성은
그의 왕국을 이루려는
사탄에게
완전히 점유되었다.
그러므로 참된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영 안에서 사는 대신
육체 안에서 산다면,
실지적인 면에서
그는
하나님의 왕국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탄의 왕국 안에 있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타고난 사람 안에서가 아닌,
전적으로
우리의 영 안에서
살고 행하며 행동하고 존재할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왕국 안에 있으며
실지로
하나님의 왕국이다.

하나님의 왕국은
교회생활이다.
이것을
강하게 증명해 주는 절이
로마서 14장 17절이다.
… 어떤 성경 교사들에 따르면,
왕국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들은
지금은
교회 시대이고
다음 시대가
왕국 시대가 될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로마서 14장 17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왕국이
미래에
‘…일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고
현재의
‘…이다’라고 말한다.
믿는 이들을 받는 것에 대하여 말하는
로마서 14장의 문맥에 따르면,
왕국은
오늘날의 교회생활이다.
교회생활의 실재는
왕국이다.
로마서 12장은
몸의 생활에 대해 말하고,
14장은
왕국 생활에 대해 말한다.
이것은
로마서에서
왕국 생활이
몸의 생활의 실재임을
가리킨다.

어떤 의미에서
현시대는
교회 시대이고
다음 시대는
왕국 시대일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또 다른 의미에서
하나님의 왕국은
오늘날
이곳에 있다.
왜냐하면 왕국은
교회의 실재이며
교회생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는
곧 왕국이다.

정상적인 교회생활은
왕국 생활이다.
우리가
우리 안에 살아 계신
하나님의 다스림,
즉 천국의 다스림 아래 산다면,
우리는
마태복음 5, 6, 7장에 기록된
그러한 생활을
가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또한
교회생활 안에서
왕국 생활을
실행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왕국을
교회와 분리해서는 안 된다.

로마서 14장 17절에서
우리는
교회생활인
하나님의 왕국이
의와
화평,
그리고 성령 안에 있는
기쁨이라는 것을
본다.
하나님의 왕국의 권위가
우리 안에서 운행할 때,
의와 화평과 기쁨은
우리의 매일의 생활의
특징이 될 것이다.

의와 화평과 기쁨은
사실상 그리스도의 표현이다.
그리스도께서 표현되실 때
그분은
우리 자신에 대하여는
우리의 의이시고,
타인들에 대하여는
우리의 화평이시며,
하나님께 대하여는
우리의 기쁨이 되실 것이다.

믿는 이들이
교회 안에서
왕국 생활을 할 때,
그들은
자신에 대하여
의롭게 생활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자신에 대하여
엄격해야 하고
우리 자신을 위해
어떤 변명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교회 안에서
왕국 생활을 한다는 것은 또한
우리가
타인에 대하여
화평 가운데 산다는 것을
뜻한다.
… 다른 이들에 대하여
우리는
화평을 추구해야 하며,
계속해서
그들과 화평 가운데 있기를
힘써야 한다.
이러한 화평은
우리의 존재로부터
살아 나타난
그리스도 자신이다.

교회 안에서
왕국 생활을 산다는 것은 또한
우리가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향해
기쁨으로 생활할 것을
요구한다.
성령은
기쁨의 영이시다.
우리가
즐겁지 않다면
이것은
우리가
성령 안에
있지 않다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가
참으로
왕국 생활을 산다면,
우리는
하나님에 대하여
기뻐할 것이고
그분을
찬양할 것이다.
우리가
자신에 대하여
의롭고
타인에 대하여
화평 가운데 살 때마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기쁨으로 생활할 것이다.
그러한 생활이 바로
교회생활인
하나님의 왕국이다.

 

2일

마 16:18-19
…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건축할 것이니,
음부의 문들이
교회를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내가
천국 열쇠들을
그대에게 주겠습니다.
그대가
땅에서 묶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늘에서 이미 묶인 것이고,
그대가 땅에서 푸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늘에서 이미 풀린 것입니다.”

주님께서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건축할 것이니”
라고 말씀하실 때,
그분은 즉시로
“내가
천국 열쇠들을
그대에게 주겠습니다.”
라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마 16:18-19).
교회 건축을 가능하게 하도록
왕국 열쇠들이 주어졌다.
왕국의 권위가 없는 곳에는
교회의 건축도 없을 것이다.
왕국의 권위에 복종하는 것을
거절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간에,
비록 그가
구원받은 사람일지라도
절대로 교회의 구조물 안으로
건축될 수 없을 것이다.

천국이 권위를 갖는 곳에서
교회가 건축될 것이다.
교회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하늘의 통치를
받아들이는 곳에서
산출된다.

성경은
심오한 방면을 제시하는데,
그것은 바로 교회가
하늘에 속한
주권적인 통치를 통해
얻어졌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천국이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
권위를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이
교회로 건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 어떻게 교회가
산출될 수 있었는가?
왕국의 권위에 의해서이다.
하나님의 목적은
그분의 하늘에 속한 통치를
이 땅에 가져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교회를 떠나서는
그분의 목적이
성취될 수 없다.
하나님은
하늘의 통치에 복종하고,
그 통치 아래서
교회로 건축되는
한 백성을 필요로 하신다.
건축이 있기 위해서는
충족되어야 할
조건이 있다.
절대적으로 필요한
한 가지 조건은
왕국의 권위에
복종하는 것이다.
우리의 구주는
우주의 머리로 높여지셨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위가
그분께 주어졌다.
하나님은
만물을
그분의 발아래에 두셨고,
그분을
만물 위에
머리가 되게 하시어
교회에게 주셨다.
첫째로, 이것은
교회가 반드시
머리의 권위 아래에
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머리의 권위는
무엇인가?
그것은
머리의 통치를
의미한다.
우리는
교회가 건축되려면 반드시
머리의 권위에
복종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머리가 없는 곳에는
권위도 없다.
그리고 교회 건축의 문제는
제기조차 할 수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교회의 건축에 관해
말하고 있는
에베소서 4장 15절과 16절은
우리가
‘모든 일에서
그리스도,
곧 머리이신 분 안으로
자라야’ 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얼마나 많은 일에서
우리는 진정
그분 안으로 자랐는가?
심지어는
우리의 겸손,
우리의 사랑,
다른 많은 선한 자질들도
그분의 머리의 권위 아래서 자란 것이
아닐 수 있다.
우리는 아직
우리의 애정이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아야 한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다른 바람직한 자질들이
그분의 머리의 권위 아래서
발전해야 한다는 말이
무엇인지도 이해하지 못했다.
진정 모든 일에서
머리 안으로 자라는 것이
있는 곳에는
16절이 보여 주듯이
몸의 건축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온몸은
… 함께 결합되고
함께 짜입니다.
그래서 몸이 자람으로써
사랑 안에서
스스로 건축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2장 19절은
‘머리를 붙드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모든 일에서
머리의 권위에
복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절이
‘구주를 붙잡으라’고
하지 않고,
또 ‘생명을 붙잡으라’고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주목하라.
이것은
우리가
머리의 권위에 복종할 때
같은 절에서 말하는
건축이 있을 것임을
의미한다.
“온몸은
마디와 힘줄을 통하여
머리로부터
풍성하게 공급을 받고
함께 짜여,
하나님께서 자라심으로
자라는 것입니다.”
머리의 권위에 복종할 때,
우리는
몸의 건축을
얻게 될 것이다.
하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에서
교회가 얻어진다.
우리 가운데서
교회가 건축되는 정도는
전적으로
교회의 머리이신 분께
지위를 내어 드리는지에
달려 있다.

 

신언노트, 2019 05 26

그 왕국과 또 그 교회

그 성경은 맨 먼저
 (first; 첫째로, 우선)
 그 왕국을 제시하고
 또 그 후에
 그 교회를 제시합니다;
그 왕국의 그 임재가
 (the presence;
 그 존재가, 그 있음이)
 그 교회를 산출합니다:

하나님의 그 생명이
 하나님의 그 왕국입니다;
그 신성한 생명이
 그 왕국이고,
또 이 생명이
 그 교회를 산출합니다:

그 왕국은
 생명이
 움직이고,
 다스리며,
 또 통치하기 위한
 생명의 그 영역이고
그 결과(so that)
 생명이
 그것의 목적을
 성취할 수 있고,
 또 이 영역이
 그 왕국입니다.

그 복음이
 그 신성한 생명을
 안으로 가져오고
 (brings in;
 들여오고, 받아들이고, 도입하고),
또 이 생명이
 그것의 영역을 가지는데,
이것이
 (which; 그것이)
 그 왕국입니다;
그것의 영역을 가지고 있는
 그 신성한 생명이
 그 교회를 산출합니다.

그 왕국의 그 복음이
 그 교회를 생산하는데
 (brings forth;
 산출하는데, 낳는데, 내놓는데),
(이는)
 그 왕국이
 생명 그 자체이고,
 또 그 교회가
 생명의
 그 유출이기(the issue;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그 왕국이
 그 교회의
 그 실재입니다;
그러므로,
 그 왕국 생활을 떠나서,
 우리가
 그 교회 생활을
 살 수 없습니다:

그 하늘들의 그 왕국의
 그 실재가
 (마 5-7장)
그 교회 생활의
 그 내용입니다;
그 왕국의 그 실재가 없이,
 그 교회는 공허합니다
 (is empty;
 비어 있습니다).

그 왕국 생활이
 그 교회 생활이라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issues in;
 …를 산출[유출]하기 때문에),
우리가
 그 왕국 생활 안에서
 단체적으로 살 때,
우리는
 자발적으로
 (spontaneously;
 자연스럽게, 자동적으로)
 그 교회 생활을 삽니다
 (live; 생활합니다).

그 왕국의
 그 실재 안에
 살지 않는
 한 믿는 이는
그 교회의
 그 구조물 안으로
 (into the structure;
 그 건축물[구조, 구성, 체계] 안으로)
 건축될 수 없습니다.

그 교회의 그 실재인
 그 왕국 없이,
 그 교회는 건축될 수 없습니다:

그 교회는
 그 왕국의 그 권위를 통하여
 존재 안으로 가져와집니다
 (is brought into being;
 존재하게 됩니다).

그 왕국의 그 열쇠들이
 그 교회를 건축함을
 가능하게 만들도록
 주어졌습니다.

그 하늘들의 그 왕국이
 일단의 믿는 이들 위에
 (over a company of believers;
 한 단체의[무리의] 믿는 이들 위에)
 그것의 권위를
 확고하게 할 수 있을 때
 (When … is able to assert;
 강하게 주장할 수[옹호할 수] 있을 때),
그 믿는 이들이
 그 교회 안으로
 건축될 수 있습니다.

그 교회 생활 안에 있는
 그 활력 그룹들의
 그 목적은
그 왕국 생활,
 ―그 하나님-사람 생활을
 사는 것입니다;
한 활력 그룹은
 그 교회의
 한 참된 대표입니다
 (a real representation;
 한 진정한[진짜의, 실재하는, 실감 나는]
 표현[표시, 묘사, 초상화, 대표단]입니다).

그 진짜 교회는
 (The genuine church;
 그 참된[진정한, 순수한] 교회는)
 이 시대 안에 있는
 하나님의 그 왕국입니다;
오늘날
 그 믿는 이들은
 그 교회 안에서
 그 왕국 생활을
 삽니다:

주 예수님께서
 그 교회에 관하여(of)
 말씀하실 때마다,
 그분께서
 그 왕국에 관하여
 (in relation to;
 …에 관련하여, …에 연관 지어)
 그것을(it; 그 교회를)
 언급하셨습니다;
이것은
 그 왕국과 또 그 교회가
 얼마나 친밀하게
 (intimately;
 상세하게, 깊이, 직접적으로)
 관련되는지를
 가리킵니다:

로마서 14장 17절은
 이 시대 안에 있는
 그 교회가
 하나님의 그 왕국이라는 것을
 증명합니다.

고린도전서 4장 20절 안에 있는
 ‘하나님의 그 왕국’은
 그 교회 생활을(17절)
 언급하고,
권위의 그 의미 안에서
 (in the sense of authority;
 권위의 그 뜻으로[그 요점 안에서])
이 시대 안에 있는
 그 교회가
 하나님의 그 왕국이라는 것을
 함축합니다
 (implying;
 내포합니다, 넌지시 뜻합니다, 암시합니다).

에베소서 2장 19절 안에 있는
 그 용어 ‘동료 시민들’은
 (The term fellow citizens;
 동일한[동시대의, 동지의, 같은 처지의
 {신분의}] 시민들이라는 그 말은)
하나님의 그 왕국,
 곧 그 안에서 하나님께서
 그분의 권위를 행사하시는
 그 영역을(the sphere)
 가리킵니다.

요한계시록 1장 6절 안에 있는
 그 단어 ‘왕국’은
그 교회가 있는 곳에
 (where; 장소에, 거기에)
 하나님의 그 왕국이 있다는 것을
 계시합니다;
그 교회는
 그 왕국을 대표합니다
 (represents;
 보여 줍니다, 제시합니다, 나타냅니다,
 묘사합니다, 의미합니다, …의 전형이 됩니다).

그 왕국인 그 교회 안에서,
 우리는
 다스림(rule),
 통치(government),
 훈육(discipline; 징계, 규율),
 또 훈련(exercise; 연습) 아래에
 있습니다.

주님의 회복 안에서,
 동시에
 우리는
 그 왕국 안에뿐 아니라
 또 그 교회 안에도
 (both in the kingdom and in the church;
 그 왕국 안에와 또 그 교회 안에 둘 다[양쪽에]),
 곧 그 보물 안에뿐 아니라
 또 그 진주 안에도
 있습니다.

오늘날
 그 교회가
 하나님의 왕국이기는 하지만(Although),
우리가
 우리의 타고난 사람 안에서가 아니라,
 오직(only)
 그 영 안에서(in the spirit)
 살고,
 걸으며(walk; 행하며),
 또 우리의 존재를 가질 때에만
 (and have our being;
 또 존재할 때에만)
우리가
 실재 안에서
 (in reality; 실제로)
 그 왕국 안에 있습니다.

그 아버지께서
 우리를
 어둠의 그 권세에서부터 밖으로
 구출하셨고
 또 그분의 사랑의(of; …인)
 그 아들의 그 왕국 안으로
 옮기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그 아들의 그 왕국은
 세 시대들로
 구성됩니다
 (comprises;
 이루어집니다, …을 포함합니다):
그 현재의 시대,
 그 안에(in which)
 그 교회가 있습니다;
그 오고 있는 시대,
 그 안에
 그 천년의 왕국이 있을 것입니다;
또 그 새 하늘과 또 새 땅 안에 있는
 그 새 예루살렘을 가지는
 (with; …과 함께하는)
 그 영원한 시대입니다:

골로새서 1장 13절 안에 있는
 그 강조는
이 시대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그 아들의 그 왕국이고,
이는(which)
 그 교회의 그 실재입니다.

오늘날의 그 교회 생활은(life; 생명은)
 그 아버지의 사랑의
 그 아들의 그 왕국이고,
이는(which)
 하나님의 그 아들께서
 그러하신 것처럼(as … is)
 그 아버지 하나님께
 기쁨을 줍니다
 (is as delightful;
 매우 기쁩니다, 대단히 즐겁습니다,
 매혹적입니다, 매력적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그 아들의 그 왕국인
 그 교회의
 그 내재적인 의미를
 (the intrinsic significance;
 그 고유한[본질적인] 중요성을[의의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그 아들께서는
 그 신성한 생명의
 그 체현과 또 표현이십니다;
이런 이유로,
 그 아들의 그 왕국은
 생명의 한 영역입니다.

그 안으로(into which)
 우리가 옮겨진
 (have been transferred)
 그 왕국은
하나님의 사랑의
 그 아들의 그 왕국입니다;
생명의 이 영역은
 사랑 안에 있고,
 두려움 안에 (있지) 않습니다.

오늘날
 그 안에서(in which)
 우리가
 우리 자신들을 발견하는(find)
 그 왕국은
생명, 빛, 또 사랑으로 충만한
 한 영역입니다.

그 아버지의 그 아들께서는
 생명의 그 근원이신
 그 아버지의
 그 표현이십니다:

그 아버지의 사랑의(of …; …이신)
 그 아들께서
 그 아버지의 사랑의
 그 대상이시고
 (the object;
 그 목적[목표]이시고)
부활 안에 있는
 그 권위를 가지는
 (with; 가지시며, …와 함께하는)
 그 신성한 사랑 안에서
 우리에게
 생명의 그 체현이 되십니다
 (to be …; … 그 체현이십니다).

그 아들께서는,
 그 신성한 생명의
 그 체현으로서,
그 아버지의 사랑의
 그 대상이십니다:

그 아들 안에 체현된
 그 신성한 생명은
그 신성한 사랑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그 신성한 사랑의 그 대상은
 우리에게
 부활 안에 있는
 그 권위를 가지는
 그 신성한 사랑 안에서
 생명의 그 체현이 됩니다
 (becomes; 되십니다);
이것이
 그 아버지의 사랑의
 그 아들의 그 왕국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의
 그 아들의 그 왕국 안으로
 옮겨지는 것은
그 아들 안으로
 옮겨지는 것이고,
그분은(who)
 우리에게 생명이십니다:

부활 안에 계시는
 그 아들께서는 지금
 생명 주시는 그 영이시고
 (the life-giving Spirit),
또 그분께서
 사랑을 가지는
 (with; …과 함께하는, 과 함께,
 …으로, …을 가지시며)
 그분의 부활 생명 안에서
 우리를 다스리십니다(rules).

우리가
 부활 안에 있는(in; 계시는)
 우리의 생명이신
 그 아들에 의하여 살 때,
우리는
 그분의 왕국 안에서
 살고 있고,
 그 아버지의 사랑 안에서
 그분을 누리고 있습니다(enjoying);
여기에서 우리가
 그 교회 생활을 가집니다.

그 아버지께서
 그분의 아들 안에서
 (in His Son;
 그분의 아들로)
 기뻐하시기 때문에,
그 아버지의 사랑의
 그 아들의 그 왕국은
 한 즐거운 것
 (a pleasant thing;
 한 기분 좋은[유쾌한, 상냥한]
 일[상황, 사정, 사항]),
 곧 기쁨의 한 문제입니다
 (a matter of delight;
 큰 기쁨의[환희의]
 한 사안[일, 사정, 상황]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그 아들의 그 왕국인
 그 교회 안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그 유기적인 몸의
 그 실재와 또 실용성을
 (practicality;
 현실성을, 실제적임을, 실지 상태를,
 실제 형편을, 실질적인 측면을)
 가집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그 아들의 그 왕국인
 그 교회 안에서,
우리가
 그 우주적인
 (the universal;
 그 전 세계의[보편적인, 일반적인,
 만능의, 못 하는 일이 없는])
 한 새사람의
 그 실재와 또 실용성을
 가집니다.

 

1일

마 4:23
예수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왕국 복음을 선포하시며, …

마 7:14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좁고,
그 길이 비좁아
찾는 사람이 적습니다.

비록 교회와 왕국이
서로 관련되어 있다고는 할지라도
교회와 왕국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다.
어떤 유형의 생명은
일종의 왕국이기 때문에,
왕국은
생명 자체이다.
… 하나님의 생명이
하나님의 왕국이다.
그러나 교회는
생명이 아니며
생명이
교회인 것도 아니다.
그보다 교회는
생명의 산물이다.
신성한 생명이
왕국이며
이 생명이
교회를 산출한다.

신약의 개념은
복음이
왕국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 복음은
하나님의 왕국을 가져오며,
복음은 또한
하나님의 교회를 산출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신약의 복음은
왕국 복음이라 불린다
(마 4:23, 9:35, 24:14).
그러나 복음이
교회의 복음이라고
말하는 절은
하나도 없다.
왕국은
생명 자체이고
교회는
생명의 산출물이기 때문에,
왕국 복음은
교회를 산출한다.

신약에서
복음이 처음 전파되었을 때,
사람들은
천국이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는
말을 들었다
(마 3:2, 4:17, 10:7).
이것은
하나님께서
생명이신 그분 자신을
사람들 안에
분배할 때가 이르렀음을
의미했다.
복음은
생명이신 하나님을 가져오며,
이 생명은
왕국이다.
왕국은
생명이
움직이고 다스리고 통치함으로
그 목적을 이루는
생명의 영역이다.
생명의 영역인 왕국은
사실상 생명 자체이다.
복음은
신성한 생명을 가져오고
이 생명은
그 영역을 가지는데,
이 영역이 바로
왕국이다.
영역을 가지고 있는
신성한 생명이
교회를 산출한다.

신약의 계시에 따르면,
왕국은
교회의 실재이기 때문에,
우리는
합당한 왕국 생활을 떠나서는
교회생활을 할 수 없다.
…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는 것은
거듭남에 의해서이다.
우리는
거듭남이
왕국에 들어가기 위한 것임을
깨닫지 못한 채
거듭남에 대하여
말할 수도 있다.
… 거듭남은
왕국으로 귀결된다.
왜냐하면 거듭남이
왕국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산출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셨을 때,
우리를
그분의 왕국 안으로
거듭나게 하셨다.

우리는
천국의 실재가
교회생활의 내용이라는 사실에
깊은 인상을 받을
필요가 있다.
이것은
왕국의 실재가 없다면
교회가 공허하다는 것을
뜻한다.
왕국의 실재는 사실상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 자신이다.
생명이신 그리스도는
우리가
합당한 생활을 하기 위한
본질이자 실체이시며,
이 생명 안에서
우리는
삼일 하나님의 체현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표현인
참된 교회생활을
가져오기 위해
다른 믿는 이들과 함께
건축될 수 있다.
그리스도는
삼일 하나님의 체현이시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표현되실 때
완전한 삼일 하나님께서
표현되신다.
이러한 표현은
믿는 이들이
왕국의 실재를 가진 생활,
곧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에
완전히 계시되고 묘사된
실재를 가진
생활을 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이 장들은
천국 헌법에 대한
온전한 메시지이며,
이 헌법은
왕국 생활의 실재이다.
이 실재가
교회생활의 참내용이다.

우리가
교회생활의 내용인
왕국의 실재를 가지려면,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생명과 생명 공급이 되시도록
할 필요가 있다.
삼일 하나님께서
우리 존재 안으로
분배되시는 것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누릴
필요가 있다.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도로 체현되시고
그 영으로 완결되신,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을
소유하고 있다.
날마다 우리는
그분께 열고,
그분의 이름을 부르며,
그분의 임재 안에 머물고,
그분과 교통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그분께서
그분의 온 존재,
그분께서 가지신 모든 것,
그분께서 이루신 모든 것,
그분께서 하고 계시는 모든 것을
우리 존재 안으로 분배하는
일을 하시도록
허락해 드려야 한다.
이러한 분배의
자연스러운 결과로
우리는
왕국 생활을 가지게 될 것이며,
이 왕국 생활은
우리의 교회생활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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