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하나님의 경륜에 관한 책이다.
성경 전체 곧 구약과 신약은 먼저는 하나님의 경륜에 관한 그림이고, 그다음은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완전한 정의와 성취이다.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중심과 실재이신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에 관한 신성한 계시의 기록이다.
그리스도는 삼일 하나님의 체현이시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리스도와 교회는 성경의 기본 구조이다.
성경을 여는 열쇠인 하나님의 경륜은 계획과 안배를 가지신 삼일 하나님께서 그분의 신성한 삼일성 안에서 그분 자신을 그분께서 선택하시고 구속하시고 거듭나게 하신 백성 안으로 그들의 생명과 생명 공급과 모든 것으로 분배하심으로써 그들을 그분의 단체적인 표현이 되게 하시는 것이다. 이 단체적인 표현은 먼저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궁극적으로는 새 예루살렘이다.
하나님의 경륜이 성경을 여는 열쇠라는 것을 본다면, 우리는 성경의 각 권을 연구할 때 이 열쇠를 사용할 것이다.
우리가 이 열쇠를 보고 사용한다면, 성경은 하나님께 신성한 경륜의 계시이듯이 우리에게도 신성한 경륜의 계시가 될 것이다.
열왕기상과 열왕기하는 역사적인 사실에 관한 책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내재적인 계시에 관한 책이다.
겉으로 볼 때, 열왕기상과 열왕기하는 이스라엘 왕들의 역사이다. 사실상 열왕기상과 열왕기하는 하나님의 영의 영감에 의해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과 관련된 방식으로 기록되었다.
다윗과 솔로몬은 예표들로서, 이스라엘 왕들의 역사가 하나님의 체현이신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관한 하나님의 경륜과 관계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분명한 증거이다.
솔로몬과 그가 건축한 성전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뚜렷한 역할을 담당하고 그러한 역사에서 광범위한 영역을 차지한다. 따라서 솔로몬과 그가 건축한 성전은 이스라엘의 역사가 구약에서 예표의 방식으로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이 성취되는 것과 매우 많은 관계가 있음을 보여 주는 증거이다.
그리스도와 교회가 하나님의 경륜의 중심과 전부라는 것은 신약과 구약 모두에서 공통적이다.
우리는 역사서들이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한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의 관점에서 기록되었다는 것을 보아야 한다.
열왕기상과 열왕기하를 읽을 때, 우리는 구약의 역사서들과 신약을 연결하는 고리를 보아야 한다. 이 연결 고리는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몸을 위한 하나님의 경륜이다.
구약의 역사는 예표의 방식으로 하나님의 경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구약은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이 비유적으로 묘사된 것이고, 신약은 그것이 실지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열왕기상과 열왕기하의 내재적인 계시는 예표를 통해 밝혀지고 전달된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교회 전체의 예표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경륜의 예표이다.
이스라엘은 신약의 하나님의 선민인 교회의 예표이다.
하나님의 의도는 단체적인 몸을 가지는 것이다.
이스라엘 나라로 예표된 이 단체적인 몸을 위하여, 하나님은 그분 자신을 단체적인 이스라엘 안으로 일해 넣으심으로써 그들이 하나님의 집 곧 땅에 있는 하나님의 처소가 되게 하셨다.
이 단체적인 이스라엘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예표이다.
이스라엘의 역사 전체가 교회의 예표이다. 바울은 이스라엘 자손의 역사를 신약의 교회생활에 적용한다.
구약에 한 백성인 이스라엘이 있고, 신약에 한 백성인 교회가 있다. 이 두 백성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한 가지 일, 곧 하나님의 경륜의 성취를 묘사해 준다.
다윗은 고난받으신 그리스도의 예표이고, 솔로몬은 하나님의 왕국과 그 광채 안에서 영광스럽게 되신 그리스도의 예표이다.
성전은 우주 안에서 하나님의 유일한 건축물인 그리스도와 교회의 예표이다.
성경의 예표에서 왕의 궁전과 하나님의 성전은 분리되어 있었으나, 신약의 실재에서 이 둘은 하나의 건축물이다.
한 면에서 신약의 믿는 이들인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며 경배하는 제사장들이다.
다른 면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여 다스리는 하나님의 왕들이다.
신약의 모든 믿는 이들은 하나님께 구원받아 왕들이 되므로, 왕들은 신약의 믿는 이들의 예표이다.
신약의 믿는 이들은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왕들이라는 예표를 성취하는 이들이 되어야 한다.
신약에서 모든 믿는 이들은 왕들과 제사장들이 되도록 구원받는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시지만, 그분은 직접 다스리시지 않는다. 그분은 왕들인 우리 믿는 이들을 통하여 다스리신다.
우리는 신성하고 영적이고 하늘에 속하고 왕의 신분을 지니고 왕가에 속한 생명으로 거듭났다. 이 생명이 우리를 보좌에 앉혀 왕들로서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한다.
역사서들이 성경에 포함된 것은 예표를 통해 우리에게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생생한 조망을 주기 때문이다. 구약의 예표의 본질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몸이 그 중심과 실재인 하나님의 경륜이다.
Hits: 43
7 replies on “예표를 통해 밝혀지고 전달되는 열왕기상과 열왕기하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에 관한 내재적인 계시”
6일
처음 두 왕인 다윗과 솔로몬은 두 방면에서 그리스도의 중요한 예표이다. 먼저, 다윗은 부활하시기 전에 이 땅에서 고난받으신 그리스도의 예표이다. 그리스도는 출생 때부터 고난받으셨다. 그분의 삶은 가장 비천한 구유에서 시작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으로 끝났다. 다윗은 고난받으신 그리스도의 예표이다. 다윗도 어려서부터 고난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고난은 강탈하는 원수들을 정복하고 좋은 땅, 즉 하나님의 건축물을 위한 터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왕국과 그 광채 안에서 영광스럽게 되신 그리스도의 예표이다. 이것은 천년왕국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예표이다. 이 두 예표는 이스라엘 왕들의 역사가 하나님의 체현이신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유기적인 몸인 교회에 관한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과 관계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분명한 증거이다.
이스라엘은 주로 좋은 땅을 누리고 있었다. 좋은 땅을 가장 높은 수준에서 누리고 있었던 사람들, 곧 가장 높은 사람들은 왕들이었다. 신약의 모든 믿는 이들은 하나님께 구원받아 왕들이 되므로, 이 왕들은 신약의 믿는 이들의 예표이다. 신약의 모든 믿는 이는 왕이며 제사장이다.
왕들과 제사장들은 모두 하나님의 대표 권위이다. 하나님의 대표 권위는 하나님의 신탁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과 다스리는 하나님의 권위자로 구성된다.
신약에서 모든 믿는 이는 구원받고 왕들과 제사장들이 되었다. 제사장들은 하나님을 위해 말할 때 하나님의 대변인, 하나님의 대언자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이들이 신언자들이다. 그러므로 신약에서 우리 믿는 이들은 왕들이고 제사장들이며 신언자들이다. 구약의 왕들은 예표이고, 이 예표는 왕들인 신약의 믿는 이들에 의해 성취된다. 이들은 그리스도를 극도로 누리는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 오셔서 사람이 되셨을 때, 그것은 은혜가 온 것이었다. 은혜는 우리의 누림이 되시는 삼일 하나님이다. 우리 모두는 이 은혜를 넘치게 받았다. 그것은 단지 넘치는 은혜만이 아니라 항상 증가하는 넘치는 은혜이다. 우리는 이러한 은혜를 받았고, 또한 하나님에게서 넘치는 선물을 받았다. 이 선물은 우리를 법리적으로 구속하기 위한 하나님의 의이다. 이처럼 우리는 이 두 가지, 곧 은혜와 의를 받았다. 이것들은 우리가 생명 안에서 왕으로서 다스리고 생명 안에서 왕들이 되게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왕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합당한 수준에 아직도 이르지 못한 것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누림은 겨우 ‘1인치’ 높이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제한이 없으시다.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누림은 왕의 직분의 수준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신언자들과 제사장들인 우리는 또한 하나님의 모든 원수를 다스리는 왕들이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시지만, 그분은 직접 다스리시지 않는다. 그분은 왕들인 우리 믿는 이들을 통하여 다스리신다. 신약의 믿는 이들은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왕들이라는 예표를 성취하는 이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으로 거듭난 사람들이 되고 요소이신 하나님으로 변화됨으로써 그러한 왕들이 될 수 있으며,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생명으로 살지 않고, 스스로 살지 않으며, 우리의 타고난 사람이나 육체로 살지 않게 된다. 오히려 우리는 지금 우리와 하나로 연합되신 하나님으로 살게 된다. 믿는 이들의 생활은 이처럼 인간적이지만 신성한 생명을 사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생명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정하신 몫, 곧 우리의 좋은 땅이신 그리스도를 누리는 왕들이 될 수 있다.
5일
하나님의 의도는 단체적인 몸을 가지시는 것이다. 이스라엘 나라는 이 몸의 예표였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창세기에서 출애굽기로 나아가시어, 그분 자신을 단체적인 이스라엘 안으로 일해 넣으심으로 그들을 하나님의 집이 되게 하셨다. 하나님의 집은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있는 성막으로 예표된 것처럼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처소이다. 이 단체적인 이스라엘은 이 땅에서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의 거처가 되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예표이다.
신약 시대 이전에, 즉 주님께서 육체가 되시기 이전에 하나님은 이 땅에서 이스라엘이라 불리는 한 백성을 선택하셨다. 그들의 조상은 아브라함이었다. 그러고 나서 모세 시대에 그들이 이집트에서 나올 때, 그들은 적어도 이백만 명의 사람들로 이루어진 한 족속이 되었다. 그때 이후로 그들은 신약의 하나님의 선민인 교회의 예표가 되었다. 구약에는 이스라엘이 있고, 신약에는 교회가 있다. 이 두 백성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한 가지 일, 곧 하나님의 경륜의 성취를 묘사해 준다.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단지 예표와 그림과 그림자일 뿐이다. 이스라엘은 교회를 예표한다.
아브라함의 후손이 한 백성이 된 후에, 그들은 결국 이집트와 이집트의 왕 파라오의 손안으로 떨어졌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이 사탄의 손안으로, 사탄의 세상 안으로 떨어졌으므로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했음을 의미한다.
구속은 하나님의 타락한 백성을 구속하여 하나님께 되돌리는 것이고, 구원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사탄의 손아귀와 세상과 결국 그들 자신에게서 구원하심으로 하나님께서 그들 안에 오셔서 그들을 하나님 자신과 똑같이 만드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출애굽기에서 우리는 먼저 어린양이 죽음을 당하고 그 흘린 피가 이스라엘 집에 뿌려진 것을 본다. 그것은 유월절이라고 불린다. 이것은 하나님 곧 공정하신 하나님,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그분의 의로운 요구를 만족시키심으로써 법리적인 어떤 것을 이루시어 그분의 백성을 구속하셨음을 의미한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구속이었다.
그러한 구속에 이어서 하나님은 그분의 구원을 행사하시어 이스라엘을 파라오의 손과 이집트에서 구원하셨고, 그들을 광야로 이끄셨다. 광야에서 하나님은 ‘성막’이 되시려고 오셨는데, 이것은 어떻게 그분께서 그분의 백성과 함께 거하시려고 오셔서 그들을 더욱더 구원하심으로 그들이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이 되게 하셨는지를 나타낸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5장에서 우리의 유월절이 곧 그리스도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에 의해 심판하시고 처리하심으로써 우리를 넘어가실 수 있었다. 유월절에 이어서 이스라엘은 무교절을 지켰다(8절).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이 구속받은 후에, 그분의 구원 안에서 죄 곧 누룩이 없어야 하고, 누룩 없는 명절을 지내야 함을 정하셨다. 이것이 이스라엘 역사의 시작이었고, 이 시작은 교회가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것으로 성취된다. 이로써 여러분은 이스라엘에 관한 것은 예표이고, 교회에 관한 것은 성취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신약의 끝에서 주 예수님은 타락한 교회를 이세벨이라 부르셨다(계 2:20). 타락한 교회는 이세벨이 되었고 큰 바빌론 곧 비밀이라 불린다(17:5). 이스라엘의 결말은 바빌론의 포로가 된 것이었다. 결국 그들은 바빌론이 되었다. 요한계시록 17장에서 주님은 타락한 교회를 큰 창녀, 큰 바빌론, 창녀들의 어미라고 부르셨다(1, 5절). 이것은 교회가 이스라엘이라는 예표의 성취임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역사 전체는 교회의 예표이다.
4일
우리는 구약이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이 비유적으로 묘사된 것임을 보았다. 신약은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의 실지적인 성취이다. 묘사는 그림 곧 사진이다. 구약은 마치 비디오와 같다. 신약은 실물이다. 성취인 그 사람은 그의 사진과 정확히 똑같다. 이것이 바로 세 부분, 곧 복음서와 사도행전과 서신서로 된 신약 스물일곱 권이다. 복음서는 네 권이고, 사도행전은 한 권이며, 서신서는 스물두 권이다.
우리는 사복음서의 중심적이고 내재적인 계시를 보고자 한다. 마태복음부터 요한복음까지의 이 계시는 삼일 하나님께서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시어 모든 것을 포함하신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다는 것이다. 삼일 하나님은 육체 되심과 인간 생활과 죽음과 부활의 과정을 거치셨다. 그분은 또한 완결되시어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다. 사복음서의 끝에서 그분은 부활하신 날에 제자들에게 돌아오셔서 그들 안으로 숨을 불어 넣으시며 “성령을 받으십시오.”라고 말씀하셨다(요 20:22). 그리스도는 부활하신 후에 그 영으로서 우리 안에 계신다. 고린도전서 15장 45절에서 바울은 마지막 아담 곧 체현되신 하나님, 즉 사람 안에 체현되신 하나님께서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다고 말한다.
삼일 하나님은 육체 되심이라는 과정을 거치심으로써 하나님-사람이 되셨고, 인간 생활이라는 과정을 거치심으로써 하나님-사람의 생활을 하셨으며, 모든 것을 포함한 죽음이라는 과정을 거치심으로써 그분께서 잃어버린 창조물을 구속하시고 그분의 신성한 생명을 해방하셨으며, 부활이라는 과정을 거치심으로써 그분께서 선택하시고 구속하신 백성 안으로 그분 자신을 그들의 생명과 모든 것으로 분배하신다. 따라서 모든 것을 포함하신 생명 주시는 영이신,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은 그분께서 선택하시고 구속하신 백성 안으로 그들의 생명과 모든 것으로 분배되신다.
사도행전은 모든 것을 포함하신 생명 주시는 영께서 하나님의 교회들을 산출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체현이신 그리스도의 실재이신 그분 자신을 확산시키시는 것을 밝혀 준다. 우리는 주 예수님을 믿었을 때, 그분을 그 영으로서 우리 안에 받아들였다. 사실상 이 영은 그리스도, 곧 그리스도의 실재이시다.
그리스도의 몸은 오직 서신서에서만 언급된다. 사실 처음 스물한 권의 서신서는 그리스도의 몸을 밝혀 주는 데 비해, 요한계시록은 그리스도의 몸의 완결인 새 예루살렘을 밝혀 준다. 로마서 12장 5절은 신약 전체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언급하는 절이다. 이것은 모든 서신서가 그리스도의 몸을 위한 것임을 시사한다. 그리스도의 몸에 대해 말하는 다른 서신서들에는 고린도전서와 에베소서와 골로새서가 있다. 이 네 권의 책, 곧 로마서와 고린도전서와 에베소서와 골로새서는 신약의 주된 책들이다. 만일 이 책들을 없애 버린다면 신약은 공허하게 될 것이다.
로마서부터 요한계시록까지는 모든 것을 포함하신 생명 주시는 영께서 그들을 하나님의 맏아들이신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시키심으로 말미암아 교회들을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의 유기체, 곧 그리스도의 몸으로 건축하시고, 이 몸이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의 영원한 확대와 표현인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될 것임을 밝혀 준다.
3일
구약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은 서른아홉 권에 걸쳐서 비유적으로 묘사되지만, 이 구약은 오직 예표와 역사와 시가와 신언이라는 네 부분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다섯 권의 예표서와 열두 권의 역사서와 다섯 권의 시가서와 또 다른 다섯 권의 대신언서와 열두 권의 소신언서가 있다. 우리는 구약의 이 네 부분의 내재적인 의미를 보고자 한다.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의 예표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의 중심과 둘레이신 그리스도 안에 체현되신 삼일 하나님을 밝혀 준다. 그것들은 또한 삼일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에게 축복과 모든 것이신 그리스도를 밝혀 준다.
여호수아기부터 에스더기까지 열두 권의 역사서들은 삼일 하나님께서 그분의 선민이 그분께서 약속하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좋은 땅으로서 차지하고 물려받고 누리도록 그들 안에서 움직이시는 것을 밝혀 준다. 이 책들은 또한 하나님께 선택받은 백성의 실패들을 밝혀 준다. 이것에 대한 성경의 기록은 오늘날 신약의 교회 사람들인 우리를 향한 일종의 경고이다.
구약의 시가서는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 다섯 권뿐이다. 이 책들은 사람이 추구해야 할 온전함이 윤리나 도덕이 아니라 바로 삼일 하나님 그분 자신임을 밝혀 준다. 이 한 문장은 욥기의 중심적이고 내재적인 계시를 담고 있다. 시편은 이 하나님께서 육체가 되시어 육체 안에 계신 한 사람이 되심으로써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으신 분이 되셨는데, 기름부음 받으신 이분은 하나님의 기쁨이신 분이시고, 하나님께서 높이신 분이시며, 하나님께 선택받은 백성이 받아들이고 소중히 여기며 높이는 분이심을 밝혀 준다. 전도서는 해 아래에서의 인생의 모든 것이 허무 중의 허무임을 밝혀 주고, 아가는 삼일 하나님의 체현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선택받은 백성에게 유일한 만족이시라는 것을 밝혀 준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온전함으로 추구해야 하고, 그리스도를 우리의 만족으로 추구해야 한다.
이사야서부터 말라기서까지의 열일곱 권의 신언서는 그리스도 안에 체현되신 삼일 하나님께서 구약의 앞의 세 범주의 책들에 따라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을 성취하기 위하여 구속을 이루시는(사 53장) 하나님-사람(7:14, 9:6)이 되시려고 오실 것임을 밝혀 준다. 그 책들은 또한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하신 것이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완결될 것임을 밝혀 준다.
위의 모든 요점들은 구약이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 안에 계시고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을 위하시는 분이심을 생생하게 묘사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예표서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의 중심과 둘레이시고, 하나님께 선택받은 모든 백성에게 신성한 복이심을 본다. 역사서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선택받은 모든 백성이 취하고 차지하고 물려받고 극도로 누려야 하는, 심지어 왕의 직분에 이를 정도로 누려야 하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좋은 땅이심을 본다. 시가서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이 추구해야 할 유일한 온전함이시며,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이 얻고 누려야 할 유일한 만족이시라는 것을 본다. 그다음 신언서에서 우리는 삼일 하나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완결되는 그분의 영원한 경륜을 이루시기 위하여, 하나님-사람이 되셔서 그분의 완전한 구속을 성취하신 것을 본다.
2일
솔로몬은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을 하시고(마 13:35)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를 건축하시는(16:18, 고전 3:16, 엡 2:21-22) 그리스도(마 12:42)를 예표하고, 성전은 그리스도(마 12:6)와 우주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유일한 건축물인 교회를 예표한다. 이 두 가지, 즉 그리스도와 그분의 몸인 교회는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의 중심과 실재와 목표이다.
그리스도와 교회가 하나님의 경륜의 중심과 전부라는 것은 신약과 구약 모두에서 공통적이다. 우리는 역사서들이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한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의 관점에서 기록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보아야 한다.
사무엘기와 열왕기를 읽을 때, 우리는 구약의 역사서들과 신약을 연결하는 고리를 보아야 한다. 이 연결 고리는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몸을 위한 하나님의 경륜이다. 이러한 연결 고리가 왕들의 역사에 나타나는데, 왕들의 역사에는 하나님의 이기는 이들인 신언자들이 포함된다. 신언자들은 거듭해서 왕들을 돕거나 다루었다.
이사야서에는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는 고리를 분명하게 보여 주는 두 개의 짧은 예언이 있다. 이사야서 7장 14절은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부를 것이라고 말한다. 이사야서 9장 6절은 한 아들께서 우리에게 주어지셨는데, 그분의 이름은 전능하신 하나님과 영원하신 아버지라 불리실 것임을 말한다. 이 예언들은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작은 아이가 되셨음을 계시한다. 전능하신 하나님, 곧 영원하신 아버지는 사람을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이 되게 하시려고 사람이 되셨다. 그러나 사람이 이런 식으로 하나님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구속이 필요했다. 이사야서 53장은 그리스도의 구속에 대해 분명하게 말하는 장이다. 인성 안에서 사람이 되신 하나님은 사람의 구속자로서 사람의 죄 때문에 죽으셨다. 하나님은 사람을 구속하심으로써 구속된 사람이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이 되게 하시어, 그리스도의 확대인 그리스도의 몸으로 그분의 경륜을 완결하실 수 있다. 그리고 이 그리스도의 몸은 영원토록 하나님의 완전한 표현과 확대인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될 것이다. 예표에서 왕들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사람을 그분 자신께로 구속하심으로써 그분께서 구속하신 백성을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이 되게 하시고, 그 결과 영원토록 우주적이고 단체적인 그분 자신의 표현을 얻으시는 것과 연결된다. 간단히 말해서, 이것이 하나님의 경륜이다.
하나님의 경륜의 목표는 하나님께서 구속하신 백성에게 일하심으로써 그들을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이 되게 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오직 생명 주시는 영을 통하여, 생명 주시는 영으로 말미암아, 생명 주시는 영과 함께, 생명 주시는 영 안에서만 성취될 수 있다. 주님의 회복 안에 있는 우리가 오늘날 우리의 그리스도께서 부활 안에 계심을 보는 것과, 부활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공기 같은 영이신 그리스도, 곧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의 완결이신 생명 주시는 영이심을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모든 것을 포함하시고 복합되신 영이신 그분께서 우리의 영 안에 계신다. 이 생명 주시는 영께서 우리를 변화시키시고 그분과 같은 형상이 되게 하시며 결국 영광스럽게 하심으로 생명과 본성에서 우리를 하나님이 되게 하시려면, 이제 우리는 매일 모든 일을 우리의 영 안에서 해야 한다.
신언노트, 2022 08 07
예표를 통해 밝혀지고 전달되는
열왕기상과 열왕기하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에 관한
내재적인 계시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경륜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다면,
성경 전체의
실지적인 의미 안으로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
성경을
거듭해서 읽더라도
그 중심 사상을
깨닫지 못할 수 있다.
주님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 주셔서
하나님의 경륜을
보게 하실 때,
하나님의 경륜은 즉시로
성경 전체를
우리에게 열어 주는
열쇠가 된다.
성경의
모든 것을 열기 위해,
우리에게는
이 일관된 열쇠가
필요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경륜에 관하여
신약에서
구약의 예표가
성취되는 것을 볼
필요가 있다.
구약에 있는 것은
일종의 예표
곧 일련의 예표들이다.
그리고 신약에 있는 것은
하나님의 경륜에 관한
구약의 예표의
완전한 성취이다.
따라서 성경 전체
곧 구약과 신약은
먼저는
하나님의 경륜에 관한
그림이고,
그다음은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완전한 정의와 성취이다.
한편으로 우리가
구약을 알기 원한다면,
반드시 신약의 정의로
가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신약을 알기 원한다면,
시간을 들여서
이 모든 그림을
살펴보아야 한다.
그림과 정의는
우리가
성경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분명한 기본 원칙을
형성한다.
하나님의 경륜은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신성한 안배로서,
그분의 목적인
그분의 뜻 안에 있는
그분의 선한 기쁨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형제회 교사들이 지적했던 것처럼
교회 전체의
예표에 불과한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하나님의 경륜의
예표이다.
이 경륜의 성취는
신약에 있다.
신약은
구약의 왕들이라는
예표에 대한
완전한 성취를
제시한다.
하나는 그림이고,
다른 하나는 정의이다.
성경은
역사책이 아니다.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중심과 실재이신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에 관한
신성한 계시의 기록이다.
그리스도는
삼일 하나님의 체현이시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유기적인 몸이다.
이 두 항목이
성경의 기본 구조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의 어떤 책을
이해하려고 할 때
이러한 관점을
붙잡아야 하는데,
특히 열왕기상·하에 대한
‘라이프 스타디(생명 수업)’
훈련을 할 때
그러하다.
겉으로 볼 때,
이 두 권의 책은
이스라엘 왕들의 역사이다.
사실상 이 책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과 관련해서
하나님의 영의
영감으로 기록된
책들이다.
그리스도와 교회가
하나님의 경륜의
중심과 전부라는 것은
신약과 구약 모두에서
공통적이다.
우리는
역사서들이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한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의 관점에서
기록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보아야 한다.
사무엘기와 열왕기를 읽을 때,
우리는
구약의 역사서들과 신약을
연결하는 고리를
보아야 한다.
이 연결 고리는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몸을 위한
하나님의 경륜이다.
이러한 연결 고리가
왕들의 역사에 나타나는데,
왕들의 역사에는
하나님의 이기는 이들인
신언자들이 포함된다.
신언자들은 거듭해서
왕들을 돕거나 다루었다.
예언들은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작은 아이가 되셨음을
계시한다.
전능하신 하나님,
곧 영원하신 아버지는
사람을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이 되게 하시려고
사람이 되셨다.
그러나 사람이
이런 식으로
하나님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구속이 필요했다.
이사야서 53장은
그리스도의 구속에 대해
분명하게 말하는 장이다.
인성 안에서
사람이 되신
하나님은
사람의 구속자로서
사람의 죄 때문에
죽으셨다.
하나님은
사람을 구속하심으로써
구속된 사람이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이 되게 하시어,
그리스도의 확대인
그리스도의 몸으로
그분의 경륜을
완결하실 수 있다.
그리고 이 그리스도의 몸은
영원토록
하나님의 완전한 표현과 확대인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될 것이다.
예표에서
왕들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사람을
그분 자신께로 구속하심으로써
그분께서 구속하신
백성을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이 되게 하시고,
그 결과
영원토록 우주적이고 단체적인
그분 자신의 표현을
얻으시는 것과
연결된다.
간단히 말해서,
이것이
하나님의 경륜이다.
하나님의 경륜의 목표는
하나님께서 구속하신
백성에게 일하심으로써
그들을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이 되게 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오직
생명 주시는 영을 통하여,
생명 주시는 영으로 말미암아,
생명 주시는 영과 함께,
생명 주시는 영 안에서만
성취될 수 있다.
주님의 회복 안에 있는
우리가 오늘날
우리의 그리스도께서
부활 안에 계심을
보는 것과,
부활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공기 같은 영이신 그리스도,
곧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의 완결이신
생명 주시는 영이심을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모든 것을 포함하시고
복합되신 영이신
그분께서
우리의 영 안에 계신다.
이 생명 주시는 영께서
우리를 변화시키시고
그분과 같은
형상이 되게 하시며
결국 영광스럽게 하심으로
생명과 본성에서
우리를
하나님이 되게 하시려면,
이제 우리는 매일
모든 일을
우리의 영 안에서
해야 한다.
우리는
구약의 이 네 부분의
내재적인 의미를
보고자 한다.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의 예표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의
중심과 둘레이신
그리스도 안에 체현되신
삼일 하나님을
밝혀 준다.
그것들은 또한
삼일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에게
축복과 모든 것이신
그리스도를
밝혀 준다.
여호수아기부터 에스더기까지
열두 권의 역사서들은
삼일 하나님께서
그분의 선민이
그분께서 약속하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좋은 땅으로서
차지하고 물려받고 누리도록
그들 안에서 움직이시는 것을
밝혀 준다.
이 책들은 또한
하나님께 선택받은
백성의 실패들을
밝혀 준다.
이것에 대한
성경의 기록은
오늘날 신약의 교회 사람들인
우리를 향한
일종의 경고이다.
구약의 시가서는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
다섯 권뿐이다.
이 책들은
사람이 추구해야 할
온전함이
윤리나 도덕이 아니라
바로 삼일 하나님 그분 자신임을
밝혀 준다.
이 한 문장은
욥기의
중심적이고 내재적인
계시를 담고 있다.
시편은
이 하나님께서
육체가 되시어
육체 안에 계신
한 사람이 되심으로써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으신 분이 되셨는데,
기름부음 받으신
이분은
하나님의 기쁨이신 분이시고,
하나님께서 높이신 분이시며,
하나님께 선택받은 백성이
받아들이고
소중히 여기며
높이는
분이심을
밝혀 준다.
전도서는
해 아래에서의
인생의 모든 것이
허무 중의 허무임을
밝혀 주고,
아가는
삼일 하나님의 체현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선택받은
백성에게
유일한 만족이시라는 것을
밝혀 준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온전함으로
추구해야 하고,
그리스도를
우리의 만족으로
추구해야 한다.
이사야서부터 말라기서까지의
열일곱 권의 신언서는
그리스도 안에 체현되신
삼일 하나님께서
구약의
앞의 세 범주의 책들에 따라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을
성취하기 위하여
구속을 이루시는(사 53장)
하나님-사람(7:14, 9:6)이 되시려고
오실 것임을
밝혀 준다.
그 책들은 또한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하신 것이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완결될 것임을
밝혀 준다.
위의 모든 요점들은
구약이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 안에 계시고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을 위하시는 분이심을
생생하게 묘사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예표서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의
중심과 둘레이시고,
하나님께 선택받은
모든 백성에게
신성한 복이심을
본다.
역사서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선택받은
모든 백성이
취하고
차지하고
물려받고
극도로 누려야 하는,
심지어 왕의 직분에 이를 정도로
누려야 하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좋은 땅이심을
본다.
시가서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이 추구해야 할
유일한 온전함이시며,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이 얻고 누려야 할
유일한 만족이시라는 것을
본다.
그다음 신언서에서
우리는
삼일 하나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완결되는
그분의 영원한 경륜을
이루시기 위하여,
하나님-사람이 되셔서
그분의 완전한 구속을
성취하신 것을
본다.
우리는
구약이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이
비유적으로 묘사된 것임을
보았다.
신약은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의
실지적인 성취이다.
묘사는
그림 곧 사진이다.
구약은 마치
비디오와 같다.
신약은
실물이다.
성취인 그 사람은
그의 사진과
정확히 똑같다.
이것이 바로
세 부분,
곧 복음서와 사도행전과 서신서로 된
신약 스물일곱 권이다.
우리는
사복음서의
중심적이고 내재적인
계시를 보고자 한다.
마태복음부터 요한복음까지의
이 계시는
삼일 하나님께서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시어
모든 것을 포함하신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다는 것이다.
삼일 하나님은
육체 되심과
사람의 생활과
죽음과
부활의
과정을 거치셨다.
그분은 또한
완결되셔서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다.
사복음서의 끝에서
그분은
부활하신 날에
제자들에게 돌아오셔서
그들 안으로
숨을 불어 넣으시며
“성령을 받으십시오.”
라고 말씀하셨다
(요 20:22).
그리스도는
부활하신 후에
그 영으로서
우리 안에 계신다.
고린도전서 15장 45절에서
바울은
마지막 아담
곧 체현되신 하나님,
즉 사람 안에 체현되신 하나님께서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다고
말한다.
삼일 하나님은
육체 되심이라는
과정을 거치심으로써
하나님-사람이 되셨고,
인간 생활이라는
과정을 거치심으로써
하나님-사람의
생활을 하셨으며,
모든 것을 포함한
죽음이라는
과정을 거치심으로써
그분께서 잃어버린
창조물을 구속하시고
그분의 신성한 생명을 해방하셨으며,
부활이라는
과정을 거치심으로써
그분께서
선택하시고 구속하신
백성 안으로
그분 자신을
그들의 생명과 모든 것으로
분배하신다.
따라서 모든 것을 포함하신
생명 주시는 영이신,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은
그분께서
선택하시고 구속하신
백성 안으로
그들의 생명과 모든 것으로
분배되신다.
사도행전은
모든 것을 포함하신
생명 주시는 영께서
하나님의 교회들을
산출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체현이신
그리스도의 실재이신
그분 자신을
확산시키시는 것을
밝혀 준다.
우리는
주 예수님을 믿었을 때,
그분을
그 영으로서
우리 안에 받아들였다.
사실상 이 영은
그리스도,
곧 그리스도의 실재이시다.
그리스도의 몸은 오직
서신서에서만 언급된다.
사실 처음 스물한 권의 서신서는
그리스도의 몸을
밝혀 주는 데 비해,
요한계시록은
그리스도의 몸의 완결인
새 예루살렘을
밝혀 준다.
로마서 12장 5절은
신약 전체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언급하는 절이다.
이것은
모든 서신서가
그리스도의 몸을 위한 것임을
시사한다.
그리스도의 몸에 대해 말하는
다른 서신서들에는
고린도전서와 에베소서와 골로새서가 있다.
이 네 권의 책,
곧 로마서와 고린도전서와 에베소서와 골로새서는
신약의 주된 책들이다.
만일 이 책들을 없애 버린다면
신약은 공허하게 될 것이다.
로마서부터 요한계시록까지는
모든 것을 포함하신
생명 주시는 영께서
그들을
하나님의 맏아들이신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시키심으로 말미암아
교회들을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의 유기체,
곧 그리스도의 몸으로
건축하시고,
이 몸이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의
영원한 확대와 표현인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될 것임을
밝혀 준다.
하나님의 의도는
단체적인 몸을
가지시는 것이다.
이스라엘 나라는
이 몸의 예표였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창세기에서
출애굽기로 나아가시어,
그분 자신을
단체적인 이스라엘 안으로
일해 넣으심으로
그들을
하나님의 집이
되게 하셨다.
하나님의 집은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있는
성막으로 예표된 것처럼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처소이다.
이 단체적인 이스라엘은
이 땅에서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의 거처가 되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예표이다.
신약 시대 이전에,
즉 주님께서
육체가 되시기 이전에
하나님은
이 땅에서
이스라엘이라 불리는
한 백성을 선택하셨다.
그들의 조상은
아브라함이었다.
그러고 나서 모세 시대에
그들이
이집트에서 나올 때,
그들은 적어도
이백만 명의 사람들로 이루어진
한 족속이 되었다.
그때 이후로 그들은
신약의 하나님의 선민인
교회의 예표가 되었다.
구약에는 이스라엘이 있고,
신약에는 교회가 있다.
이 두 백성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한 가지 일,
곧 하나님의 경륜의 성취를
묘사해 준다.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단지
예표와 그림과 그림자일 뿐이다.
이스라엘은
교회를 예표한다.
아브라함의 후손이
한 백성이 된 후에,
그들은 결국
이집트와 이집트의 왕 파라오의
손안으로 떨어졌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이
사탄의 손안으로,
사탄의 세상 안으로
떨어졌으므로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했음을
의미한다.
구속은
하나님의 타락한 백성을 구속하여
하나님께 되돌리는 것이고,
구원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사탄의 손아귀와
세상과
결국 그들 자신에게서
구원하심으로
하나님께서
그들 안에 오셔서
그들을
하나님 자신과
똑같이 만드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출애굽기에서
우리는
먼저 어린양이 죽음을 당하고
그 흘린 피가
이스라엘 집에
뿌려진 것을
본다.
그것은
유월절이라고 불린다.
이것은
하나님
곧 공정하신 하나님,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그분의 의로운 요구를 만족시키심으로써
사법적인(재판의) 어떤 것을 이루셔서
그분의 백성을 구속하셨음을
의미한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구속이었다.
그러한 구속에 이어서
하나님은
그분의 구원을 행사하셔서
이스라엘을
파라오의 손과
이집트에서
구원하셨고,
그들을
광야로 이끄셨다.
광야에서
하나님은
‘성막’이 되시려고
오셨는데,
이것은
어떻게 그분께서
그분의 백성과 함께 거하시려고
오셔서
그들을
더욱더 구원하심으로
그들이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이 되게 하셨는지를
나타낸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5장에서
우리의 유월절이 곧
그리스도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에 의해
심판하시고
처리하심으로써
우리를 넘어가실 수 있었다.
유월절에 이어서
이스라엘은
무교절을 지켰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이
구속받은 후에,
그분의 구원 안에서
죄 곧 누룩이
없어야 하고,
누룩 없는 명절을
지내야 함을
정하셨다.
이것이
이스라엘 역사의
시작이었고,
이 시작은
교회가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것으로
성취된다.
이로써 여러분은
이스라엘에 관한 것은
예표이고,
교회에 관한 것은
성취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신약의 끝에서
주 예수님은
타락한 교회를
이세벨이라 부르셨다.
타락한 교회는
이세벨이 되었고
큰 바빌론
곧 비밀이라 불린다.
이스라엘의 결말은
바빌론의 포로가 된 것이었다.
결국 그들은
바빌론이 되었다.
요한계시록 17장에서
주님은
타락한 교회를
큰 창녀,
큰 바빌론,
창녀들의 어미라고
부르셨다.
이것은
교회가
이스라엘이라는 예표의
성취임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역사 전체는
교회의 예표이다.
처음 두 왕인
다윗과 솔로몬은
두 방면에서
그리스도의 중요한 예표이다.
먼저, 다윗은
부활하시기 전에
이 땅에서 고난받으신
그리스도의 예표이다.
그리스도는
출생 때부터 고난받으셨다.
그분의 삶은
가장 비천한 구유에서 시작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으로 끝났다.
다윗도
어려서부터 고난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고난은
강탈하는 원수들을 정복하고
좋은 땅,
즉 하나님의 건축물을 위한
터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왕국과
그 광채 안에서
영광스럽게 되신
그리스도의 예표이다.
이것은
천년왕국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예표이다.
이 두 예표는
이스라엘 왕들의 역사가
하나님의 체현이신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유기적인 몸인
교회에 관한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과
관계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분명한 증거이다.
이스라엘은 주로
좋은 땅을 누리고 있었다.
좋은 땅을
가장 높은 수준에서
누리고 있었던 사람들,
곧 가장 높은 사람들은
왕들이었다.
신약의 모든 믿는 이들은
하나님께 구원받아
왕들이 되므로,
이 왕들은
신약의 믿는 이들의 예표이다.
신약의 모든 믿는 이는
왕이며
제사장이다.
왕들과 제사장들은 모두
하나님의 대표 권위이다.
하나님의 대표 권위는
하나님의 신탁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과
다스리는 하나님의 권위자로
구성된다.
신약에서
모든 믿는 이는
구원받고
왕들과 제사장들이 되었다.
제사장들은
하나님을 위해 말할 때
하나님의 대변인,
하나님의 대언자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이들이
신언자들이다.
그러므로 신약에서
우리 믿는 이들은
왕들이고
제사장들이며
신언자들이다.
구약의 왕들은
예표이고,
이 예표는
왕들인
신약의 믿는 이들에 의해
성취된다.
이들은
그리스도를
극도로 누리는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
오셔서
사람이 되셨을 때,
그것은
은혜가 온 것이었다.
은혜는
우리의 누림이 되시는
삼일 하나님이다.
우리 모두는
이 은혜를
넘치게 받았다.
그것은 단지
넘치는 은혜만이 아니라
항상 증가하는
넘치는 은혜이다.
우리는
이러한 은혜를 받았고,
또한 하나님에게서
넘치는 선물을 받았다.
이 선물은
우리를
사법적으로 구속하기 위한
하나님의 의이다.
이처럼 우리는
이 두 가지,
곧 은혜와 의를 받았다.
이것들은
우리가
생명 안에서
왕으로서 다스리고
생명 안에서
왕들이 되게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왕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합당한 수준에
아직도 이르지 못한 것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누림은
겨우 ‘1인치’ 높이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제한이 없으시다.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누림은
왕의 직분의 수준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신언자들과 제사장들인
우리는 또한
하나님의 모든 원수를
다스리는 왕들이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시지만,
그분은
직접 다스리시지 않는다.
그분은
왕들인
우리 믿는 이들을 통하여
다스리신다.
신약의 믿는 이들은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왕들이라는 예표를
성취하는 이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으로 거듭난 사람들이 되고
요소이신 하나님으로 변화됨으로써
그러한 왕들이 될 수 있으며,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생명으로
살지 않고,
스스로 살지 않으며,
우리의 타고난 사람이나
육체로
살지 않게 된다.
오히려 우리는 지금
우리와 하나로 연합되신
하나님으로 살게 된다.
믿는 이들의 생활은
이처럼
인간적이지만
신성한
생명을 사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생명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정하신 몫,
곧 우리의 좋은 땅이신
그리스도를 누리는
왕들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신성하고
영적이며
하늘에 속하고
왕의 신분을 지니며
왕가에 속한 생명으로 거듭났다.
이 생명이
우리를
왕좌에 앉혀서
왕들로서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한다.
역사서들이
성경에 포함된 것은
예표를 통해
우리에게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생생한 조망을
주기 때문이다.
구약의 예표의
본질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몸이
그 중심과 실재인
하나님의 경륜이다.
1일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경륜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다면, 성경 전체의 실지적인 의미 안으로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 성경을 거듭해서 읽더라도 그 중심 사상을 깨닫지 못할 수 있다. 주님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 주셔서 하나님의 경륜을 보게 하실 때, 하나님의 경륜은 즉시로 성경 전체를 우리에게 열어 주는 열쇠가 된다. 성경의 모든 것을 열기 위해, 우리에게는 이 일관된 열쇠가 필요하다.
성경 전체 곧 구약과 신약은 먼저는 하나님의 경륜에 관한 그림이고, 그다음은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완전한 정의와 성취이다. 한편으로 우리가 구약을 알기 원한다면, 반드시 신약의 정의로 가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신약을 알기 원한다면, 시간을 들여서 이 모든 그림을 살펴보아야 한다.
그림과 정의는 우리가 성경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분명한 기본 원칙을 형성한다.
‘경륜’에 해당하는 ‘이코노미(economy)’라는 영어 단어는 ‘오이코노미아(oikonomia)’라는 헬라어 단어를 영어화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코노미(economy)’라는 영어 단어에 대해 생각할 때, 그것을 돈과 관련해서 생각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경륜에 대해 말할 때 그러한 뜻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경륜은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신성한 안배로서, 그분의 목적인 그분의 뜻 안에 있는 그분의 선한 기쁨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형제회 교사들이 지적했던 것처럼 교회 전체의 예표에 불과한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하나님의 경륜의 예표이다. 이 경륜의 성취는 신약에 있다. 신약은 구약의 왕들이라는 예표에 대한 완전한 성취를 제시한다. 하나는 그림이고, 다른 하나는 정의이다.
성경은 역사책이 아니다.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중심과 실재이신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에 관한 신성한 계시의 기록이다. 그리스도는 삼일 하나님의 체현이시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유기적인 몸이다. 이 두 항목이 성경의 기본 구조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의 어떤 책을 이해하려고 할 때 이러한 관점을 붙잡아야 하는데, 특히 열왕기상·하에 대한 ‘라이프 스타디(생명 수업)’ 훈련을 할 때 그러하다. 겉으로 볼 때, 이 두 권의 책은 이스라엘 왕들의 역사이다. 사실상 이 책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과 관련해서 하나님의 영의 영감으로 기록된 책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