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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부흥을 위한 거룩한 말씀

실재의 영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이심

The Spirit of Reality
Being the Reality
of the Body of Christ

요한의 글들은
그 영께서
실재의 영이심을
계시한다
— 요 14:17, 15:26, 16:13,
요일 5:6, 20.

온 우주에서
실재이신 분은
오직 한 분이신데,
바로 삼일 하나님이시다.
삼일 하나님만이
실재이시다
— 요 14:6, 요일 5:20.

하나님의 신약 경륜 안에서
그 영은
실재라는 속성을
가지고 계신다
— 요 14:17, 15:26, 16:13.

실재는
하나님의 영의
모든 것을 포함한
속성이다.
왜냐하면 실재는
아버지, 아들 그리스도,
그리고 모든 신성한
항목들과 실체들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 요 1:17.

그 영은
모든 것을 포함한
실재이시다.
그러므로 실재는
그 영의
가장 기이한 속성들 중
하나이다
— 요일 5:6.

문맥에 따르면,
요한복음 16장 13절에서 말하는
실재는
삼일 하나님의 모든 어떠하심과
그분께서 소유하신 모든 것을
가리킨다.

실재의 영은
삼일 하나님의 실재이시다.
즉 그분은
삼일 하나님의 모든 어떠하심과
삼일 하나님께서 성취하신 모든 것과
삼일 하나님께서 도달하시고 획득하신 모든 것의
실재이시다
— 요 14:17, 15:26.

실재의 영을 떠나서
우리는
체험에 있어서
삼일 하나님이나
신성한 속성들 중
그 어떤 것도
소유할 수 없다.
삼일 하나님과
그분의 모든 속성들의
실재는
실재의 영이다
— 요 16:13.

실재의 영은
우리를
모든 실재 안으로
인도하신다
— 요 16:13-14.

오직 실재의 영 안에
있는 것만이
영적인 실재이다
— 요 14:17, 15:26.

모든 영적인 것들은 반드시
먼저 실재의 영 안에
있어야만
실지적이고
살아 있으며
유기적일 수 있다
— 요일 5:6.

실재의 영은
모든 영적인 것들의
집행자이시다
— 요 16:13-14.

실재의 영은
삼일 하나님의
모든 실재와
모든 신성한 일들의
모든 실재 안으로
믿는 이들을 인도하신다
— 고후 13:14.

요한복음 16장 13절에서
‘실재’는
아버지께서 소유하신 것과
아들께서 소유하신 것,
그리고 그 영께서
아들에게서와 아버지께서
소유하신 것에서
받으신 것을
가리킨다.

아버지께서 소유하신 것이
실재이고,
아들께서 소유하신 것이
실재이며,
그 영께서 받으신 것 또한
실재이다
— 요 14:6, 17.

아버지께서 소유하신 것은
아들의 것이 되었고,
아들께서 소유하신 것은
그 영께서 받으셨으며,
그 영께서 받으신 것은
우리에게 밝혀진다
— 요 15:26.

아버지는
아들 안에 체현되셨고,
아들은
그 영으로 변형되셨으며,
그 영은
우리에게 도달하신
신성한 삼일성이시다
— 고후 13:14.

그 영을 통해
삼일 하나님의 실재가
우리 안으로
전달된다.
따라서 그 영께서
우리를 인도하셔서
들어가게 하시는
이 실재는
삼일 하나님의 실재이다
— 요일 4:13-14, 5:6.

실재의 영께서
신성한 실재를
우리 안으로
전달하심으로써
우리를
이 실재 안으로
인도하시는 동안,
신성한 실재
곧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은
우리 존재의
조성 성분이 되신다
— 엡 3:14-17상.

아들의 완전한 실재화이신
실재의 영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모든 실재 안으로
인도하시는데,
이 실재에는
그리스도의
모든 어떠하심과
그분께서 소유하신
모든 것과
그분께서 도달하시고 획득하신
모든 것이
포함된다
— 요 16:13-14.

실재의 영은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 안으로
우리를 인도하신다
— 엡 4:4.

삼일 하나님의 실재이신
그 영은 또한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이시다
— 요 14:17, 15:26, 16:13,
요일 5:6, 고전 12:12-13, 엡 4:4.

그리스도의 몸은
교회이고,
교회의 모든 실재는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의
실재의 영이다.
따라서 실재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몸도, 교회도
없을 것이다
— 요 16:13.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는
우리가
여러 방면에서
받아들였고
체험했고
누린
그 영이다
— 요 7:37-39, 20:22.

실재의 영은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의
모든 것을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실재가 되게 하신다
— 고후 13:14, 고전 12:12-13, 27.

모든 것을
충족하시는
하나님(창 17:1, 빌 1:19),
곧 우리의 영 안에
거하시면서
우리의 영과 합하여
하나의 연합된 영이 되신
실재의 영(롬 8:10, 고전 6:17)은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의
모든 어떠하심을
열어 주는
비결이시다.

육체 되심과
십자가에 못 박히심과
부활을 포함하여,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께서
체험하신 모든 것은
실재의 영에 의해
실재화되어,
실제로
그리스도의 몸의
속성들과 체험들이 된다
— 엡 4:4-6.

우리는
실재의 영을 통해
실재를 접촉할 때에만
몸의 생활을
살아 낼 수 있다
— 요일 5:6, 요 16:13-14,
엡 4:4, 12, 15-16.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 안에
있고자 한다면,
실재의 영이
우리의 존재 안으로
조성되시게 해야 한다
— 요 14:16-20.

실재의 영께서
믿는 이들 안에 오셔서,
그들 안에서
그리스도의 실재가 되셨다
— 요 15:26, 16:13-14.

삼일 하나님의 체현이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거하시는
실재의 영으로
완전히 실재화되셨다.
이 내주하시는
실재의 영께서
그리스도의 실재이시다
— 요 14:10-11, 16-20.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 안에 있다는 것은
실재의 영께서
우리 안으로
일해 넣어지시고
우리의 존재 안으로
조성되시게 하는 것이다
— 엡 3:16-21, 4:4-6, 12, 16.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는
‘예수님 안에 있는
실재’이다
— 엡 4:21.

예수님 안에 있는
실재는
사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의 생활의
실지 상태를 가리킨다
— 엡 4:21.

예수님의 생활의
본질은 실재이다
— 요 1:14, 17, 14:6.

에베소서 4장 24절의
‘그 실재’는
인격화된 것으로서
하나님을 가리킨다.

이 실재는
예수님의 생활 가운데서
볼 수 있었다.

예수님의 인간 생활은
실재에 따른 것,
곧 하나님 자신에 따른 것이었다.

하나님은
예수님과 함께하셨고,
예수님은
하나님과 하나이시며
하나님을 표현하셨다.
이것이
‘예수님 안에 있는
실재’의 의미이다.

주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사셨던 방식이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
오늘날 살아야 하는 방식이다
— 엡 4:17, 20-21, 5:1-2, 8.

우리의 생활의 표준은 반드시
예수님 안에 있는 실재,
곧 주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
살아 내신 실재와
일치해야 한다
— 엡 4:20-21.

우리는
그리스도를 배우고
그분 안에서 가르침을 받아
실재의 생활을
해야 한다
— 엡 4:20-21, 요이 1, 요 4:23-24.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로서
우리는
예수님 안에 있는 실재대로,
실재의 생활
곧 하나님을 표현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 엡 5:30, 4:20-21.

예수님 안에 있는 실재는
그분의 많은 지체들 안에서
복사되어야 한다.
그럴 때 그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 안에서
단체적인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 요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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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replies on “실재의 영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이심”

6일

엡 4:21
여러분이
참으로
그리스도에게서 들었고
예수님 안에 있는 실재대로
그리스도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다면,

엡 4:24
새사람,
곧 하나님을 따라
그 실재의 의와 거룩함으로
창조된 새사람을
입은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21절은
“여러분이
참으로
그리스도에게서 들었고
예수님 안에 있는 실재대로
그리스도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다면”
이라고 말한다.
예수님 안에 있는 실재는
사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의 생활의
실지 상태를 가리킨다.
타락한 이방인의
경건하지 못한 행위는
헛된 것이다
(17절).
그러나 예수님의
경건한 생활 안에는
진리, 즉 실재가 있다.
예수님은
생활 가운데 항상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을 위해
행하셨다.
하나님은
그분의 삶 안에 계셨고,
그분은
하나님과 하나이셨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 안에 있는
실재이다.
믿는 이들인 우리는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로 거듭났고
그분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으므로
예수님 안에 있는 실재대로
그리스도께 배워야 한다.

실재에 따른
예수님의 생활은
믿는 이들인 우리의
삶의 모형이다.
그러한 모형 가운데서
우리는
예수님 안에 있는 실재대로
그리스도를 배워야 한다.
이것은
복음서들에 나타난
실재에 따라,
다시 말하면
주 예수님의 생활에 따라
그리스도를 배우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생활은
빛을 비춘다.
이러한 빛의 비춤이
실재이고,
실재는
하나님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생활 속에는
실재가 있었다.
예수님의 생활의 본질이
실재이다.
주 예수님은
이 땅에서 사셨을 때 항상
실재 안에서,
신성한 빛의 비춤 안에서,
하나님의 표현 안에서
행하셨다.

새사람은
그 실재의
의와 거룩함으로
창조되었다.
의는
하나님의 의로운 방식에 따라
하나님과 사람에 대해서
옳은 것이다.
한편 거룩함은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고 독실한 것이다.
의는
외적인 행위를
가리키는 데 반해,
거룩함은
내적인 본성을
가리킨다.
외적으로는
새사람과 관련된
모든 것이 의롭고,
내적으로는
새사람과 관련된
모든 것이 거룩하다.
의는 주로
사람에 대한 것이고,
거룩함은 주로
하나님에 대한 것이다.

새사람의
의와 거룩함은
실재에 속한 것이다.
에베소서 4장 24절에서
‘실재’ 앞에 있는
‘그’는
강조를 나타낸다.
옛사람과 관련된
22절의
‘그 속이는 것’이
인격화되어
사탄을 가리키듯,
새사람과 관련된
이 절의
‘그 실재’는
인격화되어
하나님을 가리킨다.
이 실재는
21절에서 언급된 것과 같이
예수님의 생활 가운데서
볼 수 있었다.
실재의
의와 거룩함은
예수님의 생활에서
항상 나타났다.
새사람은 바로
이 실재의
의와 거룩함으로
창조되었으며,
그 실재는
실재화되시고 표현되신
하나님이다.

에베소서 4장 24절에서
바울은
새사람이
하나님을 따라
그 실재의
의와 거룩함으로
창조되었다고
말한다.
이 실재는
의심할 바 없이
예수님 안에 있는
실재이다.
우리의 생활 표준은
율법이나 사회의 표준에
따른 것이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반드시
예수님 안에 있는 실재,
곧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살아 내신 실재에
따른 것이어야 한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생활이 오늘날
교회 안에서
우리의 생활이
되어야 한다.
달리 말해서,
새사람의 생활은
예수님의 생활과
정확히 똑같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사셨던 방식이
새사람이 오늘날
살아야 하는 방식이다.

만일 우리가
그런 식으로
살고자 한다면
우리는
옳고 그름에 따라
논리적으로 따지지 말아야 한다.
그 대신 우리는
예수님 안에 있는 실재대로,
그 실재에 따라
일상생활의 여러 방면들을
살펴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만일 우리가
물건을 사러 가려고 한다면,
우리는
주 예수님께
물건을 사러 가실 것인지
여쭈어보아야 한다.
한 새사람의 생활은 반드시
예수님의
실재의 생활이어야 한다.
만일 우리 모두가
하늘에 속하고,
신성하고,
의롭고,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방식으로 산다면,
우리는
교회 안에서
놀라운 공동 생활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것이
새사람의
단체적인 생활이다.

 

5일

요 14:18-20
나는
여러분을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돌아옵니다.
잠시 후면
세상은
나를
더 이상 보지 못하겠지만,
여러분은
나를 볼 것인데,
이것은
내가 살므로
여러분도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여러분이
내 안에 있으며,
내가
여러분 안에 있는 것을
여러분이
알 것입니다.

사도행전 15장에
기록된 일은
몸의 생활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 준다.
사도들과 장로들은
이방인들이
할례를 받는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모였다.
그리고 마지막에
야고보가
결론을 내렸다.
이 결론은
성령으로부터 나온 것이므로
그들은
편지를 써서 보낼 때
“성령과 우리는
… 좋다고 여겼습니다.”
(28절)라고 말했다.
결론은
야고보가 내렸으나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22절)
모두 아멘 하고
이렇게 행하기로
결정할 수 있었던 것은
이것이
성령으로부터 나온
결정이었고,
그들이 모두
영적인 실재를
접촉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몸의 생활이다.
성령 안에 있는
실재를 접촉할 때에만,
우리는 비로소
몸의 생활을
살아 낼 수 있다.
올바른 절차가
몸의 생활을
이끌어 오는 것이 아니다.
몸의 생활이
있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실재를 접촉해야 한다.

그 영은
믿는 이들 안에 오셔서
그들 안에서
그리스도의 실재가 되셨다
(요 14:17, 20, 15:26, 16:12-15).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의 체현이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 영으로
완전히 실재화되신다.
내주하시는 영은
그리스도의 실재,
바로 실재화이신 분이시다.

요한복음 14장 17절과
15장 26절과
16장 13절에서
그 영은
실재의 영이라고
불리신다.
그 영이
실재의 영으로
불리는 이유는
아들 안에 계신
아버지의 모든 어떠하심과
아들의 모든 어떠하심이
그 영 안에서
실재화되기 때문이다.
주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
실재는 아직
사람 안에
들어오지 못했다.
물론 실재는
존재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자신이
실재이시기 때문이다
(요 14:6).
그러나 이 실재는
제자들 가운데서만 있었다.
그것은 아직
그들 안으로
들어오지는 못했다.
그러므로 주님은
그분이 떠나가시는 것이
그들에게 유익하다고
말씀하셨다
(요 16:7).
그분이 떠나가시는 목적은
육체에서
그 영으로
그분의 형태를
바꾸시려는 것이었다.
이러한 변화가
성취되자마자
그분의 실재는
그 영의 실재가 되었고,
그 영은
실재의 영이 되셨다.
그런 다음에
이 실재의 영은
제자들 안에
거하러 오셔서
그들 안에서
그리스도의 실재가 되셨다.
이렇게 실재의 영께서
우리 안에 오셨기 때문에
이제 그리스도의 실재는
우리 안에 거하고 있다.

실재의 영은
아들의
완전한 실재화이시다.
그 영은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시고
거듭나게 하신 후에
우리 안에서 바로
아들 자신의
실재가 되실 것이다.

그 영은
몸의
본질과 실질이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반드시 본질적으로나 실질적으로
그 영 자신이어야 한다.
그 영이 없으면
몸이 없다.
그 영을 떠나서
우리에게 있는 것은
인간적인 회중이
전부이다.
그 영이 없으면
교회의 실질이 없다.
그 영이 없으면
교회는 단지
사교적인 조직체일 뿐이다.
교회는 반드시
그 영을
실질로서 가진
한 몸이어야 한다.

그 영은
몸을 위하실 뿐 아니라
몸 안에 계신다.
그 영은 단지
개인적인 지체들 안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몸 안에 계신다.
고린도전서 12장 13절은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노예나 자유인이나
모두
한 영 안에서
한 몸 안으로
침례 받았고,
또 모두
한 영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라고 말한다.
이 절은
한 영이
몸의
본질이실 뿐 아니라
몸의
생명과 생명 공급이심을
계시한다.
한 영이 없으면
몸은
공허하고
생명이 없을 것이다.

더욱이 고린도전서 12장 13절은
우리가
한 몸으로 조성되도록
한 영이
우리 안으로
일해 들어오셔서
우리 속으로
조성되셨다는 것을
가리킨다.
몸은
한 영의 조성체이고,
한 영은
한 몸의 존재 안으로
일해 넣어지셨다.
결국 몸은
한 영의 조성체이므로
우리는
한 몸이
그 영과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4일

요일 5:6
물과 피를 통하여
오신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물로만 아니라
물과 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증언하시는 분은
그 영이십니다.
왜냐하면 그 영께서
실재이시기 때문입니다.

엡 4:4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도
부름을 받았을 때
한 소망 안에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오늘날
교회이며,
이 몸의 모든 실재는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의
실재의 영이다.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의
실재는
완결되신
실재의 영이다
(요 14:17, 15:26,
16:13, 요일 5:6).
삼일 하나님의
모든 어떠하심과
그분께서
소유하시고
이루실 수 있는
모든 것의 실재는 바로
이 실재의 영이다.
또한 삼일 하나님께서
거치신
죽음과 부활의 실재 역시
이 실재의 영이다.

이 실재의 영은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의
모든 것을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실재가 되게 하신다
(요 16:13-15).
동일한 이 실재의 영께서
삼일 하나님의 모든 풍성,
곧 그분의 실재를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가능하고 실지적인 것이
되게 하신다.
의와 거룩함과
생명과 빛과
능력과 은혜 및
모든 신성한 속성들을
포함하는,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의
모든 어떠하심이
이 실재의 영에 의해
실재화되어,
그리스도의 몸의
참된 속성들이 된다
(롬 15:16하, 14:17, 엡 3:16).
본래 이 속성들은 단지
하나님의 속성들일 뿐이었지만,
이제 그리스도의 몸 안에 계신
그 영에 의해
교회 안에서
실재화되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도
신성한 속성들의
실재를
가지게 된다.

육체 되심과
십자가에 못 박히심과
부활을 포함하여,
삼일 하나님께서
체험하신 모든 것은
실재의 영에 의해
실재화되어,
그리스도의 몸의
참된 체험이 된다.
… 실재의 영께서
오실 때,
그분은
삼일 하나님의
이러한 체험들을
우리 안에서
실재가 되게 하시어
우리의 참된 체험이
되게 하신다.
이것으로 인해
우리는
오늘날
이 땅에서
정상적인 인간 생활을
할 수 있다.
… 우리가
화를 내지 않고
사람을 원망하지 않으며
사람을 책망하지 않는 것은
실재의 영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죽음이
우리 안에서
실재화되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 영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가지고
우리 안에서 일하시어,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게 하신다.
이 예들은
삼일 하나님 자신의
체험들이 어떻게
실재의 영에 의해
교회 안에서
실재화되어
교회의
참된 체험이 되는지를
보여 준다.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는
우리가
여러 방면에서
받아들였고
체험했고
누린
그 영이며,
교회생활의 실재는
우리가
그 안에서
살고
따라 행하는
그 영이다.

그 영은
그리스도의 몸의
내적 본질과
표현된 실재이시다.
그 영은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삼일 하나님의
모든 어떠하심을
체험하는
비결이시다.
이 영께서 지금
우리의 거듭난 영 안에
거하시며
우리의 영과 합하여
연합된 영이 되신다
(롬 8:9-11, 고전 6:17).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영으로 돌이켜서
우리의 생각을
영에 두고
우리의 영을 따라
행해야 한다.
우리가
연합된 영 안에 살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을
살아 낼 수 있을 것이고
그분의 단체적인 표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영적인 실재를
접촉할 때,
우리는
교회를 접촉하게 되며
단독적으로 행하지 않고
몸 안에서 행동하게 된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어떤 일을 할 때,
모든 형제자매들과 의논하고
합당한 절차에 따라
일을 했다고 해서
그것이
몸의 생활인 것은 아니다.
여러분이
(인수의 많고 적음과 관계없이)
다른 형제자매들과
교통하는 가운데
영적인 실재를 만졌다면,
그것이 바로
몸의 생활이다.
만일 영적인 실재를
접촉하는 것이 없다면,
비록 모든 사람이 의논해서
만장일치로 결정한 것이라고 해도
그것은
육체의 의견일 뿐
몸의 생활이 아니다.
오직 영적인 실재를
접촉한 사람만이
몸의 생활을
살아 낼 수 있다.

 

3일

고전 12:12-13
왜냐하면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모두가 한 몸인 것같이,
그리스도도
그와 같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노예나 자유인이나
모두
한 영 안에서
한 몸 안으로
침례 받았고,
또 모두
한 영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엡 4:4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도
부름을 받았을 때
한 소망 안에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 영을 통해
신성한 삼일성의 실재가
우리 안으로
전달된다.
이 전달을 통해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의
모든 어떠하심과
그분이 소유하신
모든 풍성이
우리 안으로
분배된다.
이제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의
모든 어떠하심과
그분께서 소유하신
모든 것이
우리의 요소가 되었다.
이것은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을 바로
우리 존재의 본질이 되게 했다.
이렇게 하여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의 완결이신
그 영은
우리의 몫이 되신다.
우리의 몫이신
그 영은
우리의 체험과 누림을 위한
삼일 하나님의
실재이신 분이시다.

실재의 영은
아들의
완전한 실재화이시다.
그 영은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오신 후에,
우리 안에서
아들 자신의
실재가 되실 것이다.
아들의
모든 어떠하심과
그분이
소유하시고 성취하시고
도달하시고 획득하신 것은 무엇이든지
그 영을 통하여
우리 안으로
완전히 일해 넣어질 것이다.
그 영은 결국
아들의 실재화가 되신다.
그분은
아들의 모든 어떠하심과
아들이 소유하신 모든 것의
실재이시다.

그 영은
아버지와 아들의
모든 어떠하심의
실재이시다.
그 영이 없다면
아버지와 아들의
어떠하심의
본질은 있겠지만
실재화는 없을 것이다.
전기를
예로 들어 보자.
우리에게
전기가 있을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특정한 용도에
전기를 적용해야 한다.
이렇게 전기를 적용하는 것이
전기의 실재화이다.
이와 같이
그 영은
아버지와 아들의
모든 어떠하심의
적용이시다.
실재화와 적용이신
그 영이 없다면,
모든 것이 실재일지라도
유용하거나 적용되지 못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모든 어떠하심과
그리스도의 모든 어떠하심을
적용하려면
그 영이 필요하다.
주님을 찬양하자.
그분은
아버지와 아들이실 뿐 아니라
또한 그 영이시다.
그분은
근원과 과정이실 뿐 아니라
또한 적용이시다.
그 영은
우리에게 도달하시고
우리 안으로 들어오셔서,
우리에게 필요한
아버지와 아들의
모든 것을
적용해 주신다.
이것은 놀라운 것이다.

교회생활은 전적으로
그 영께 달려 있다.
단지 아버지와 아들에 관한
교리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우리는
그 영에 의해
아들 안에 계신
아버지를
생생하게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삼일 하나님의 본질이신
그 영은
한 몸의 본질이 되셨다.
그리스도의 몸의 본질은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의
완결이신 그 영이다
(요 7:39, 계 22:17상).
삼일 하나님의
신성을 담고 있는
그리스도의 몸의
본질은
신성한 생명을 공급하는
역량을 가지고 있다
(빌 1:19).
예수님의 뛰어난 인성을
담고 있는
그리스도의 몸의
본질은
이 뛰어난 인성을 공급하는
역량을 가지고 있다
(행 16:7).
그리스도의 모든 것을 포함한
죽음을 담고 있는
그리스도의 몸의
본질은
부정적인 것들을
죽음에 넘기는
역량을 가지고 있다
(롬 8:13).
그리고 그리스도의 뛰어난 부활을
담고 있는
그리스도의 몸의
본질은
부활(빌 3:10)의
뛰어난 역량을 가지고 있다.

삼일 하나님의 실재이신
그 영은 또한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이시다.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의 실재는
완결되신 실재의 영이다
(요 14:17, 15:26, 16:13, 요일 5:6).
실재의 영은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의 모든 것을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실재가 되게 하신다
(요 16:13-15).
실재의 영은
삼일 하나님의 모든 풍성을
그리스도의 몸에게
실재가 되게 하신다.
그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몸도, 교회도 없다.

 

2일

요 16:13-14
그러나 실재의 영께서 오시면,
그분께서
여러분을
모든 실재 안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스스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듣는 것만 말씀하시며,
장차 올 일들을
여러분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나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인데,
왜냐하면 그분께서
내 것을 받으셔서
여러분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에서
우리는
그 영께서
믿는 이들 안에서
하시는 일이
그들을
모든 실재 안으로
인도하시는 것임을
본다.
“그러나 실재의 영께서
오시면,
그분께서
여러분을
모든 실재 안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스스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듣는 것만 말씀하시며,
장차 올 일들을
여러분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재의 영은
믿는 이들을
삼일 하나님의 실재와
모든 신성한 것들의 실재 안으로
인도하신다.
실재의 영은
우리를
의롭게 됨과 거룩함과 사랑과
다른 모든 신성한 것들의
실재 안으로 인도하신다.
그분은
우리를
이러한 것들의 실재 안으로
이끄시고 인도하신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하나님과 관계된 모든 것은
영 안에 있어야 한다.
진리의 영은
곧 실재의 영이시므로,
영적인 실재는 반드시
성령 안에
있는 것이어야 한다.
영적인 실재는
사람과 사물을 초월하며,
성령 안에 있는 것만이
영적인 실재이다.
영적인 것들은 모두
성령 안에서 지속된다.
영적인 것들이
성령 안에 있지 않을 때는
즉시 문자와 형식이 되며
죽은 것이다.
모든 영적인 것들은 반드시
먼저 실재의 영 안에
있어야만
실지적이고
살아 있으며
유기적일 수 있다.
성령은
우리를
모든 실재 안으로
인도하신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도하심 없이는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어떠한 체험도
영적인 실재가 아니다.
단지 듣는 것이나
생각이나 감정에 의지하여 얻은 것은
영적인 실재가 아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에 의해
들어갈 수 있는 것만이
영적인 실재이다.
우리는
성령이
모든 영적인 것들의
집행자이시고,
오늘날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이
성령이 집행하시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성령이 하시는 것만이
참된 것이며
실재이다.

아버지께서 소유하신 것이
실재이고,
아들께서 소유하신 것이
실재이며,
그 영께서 받으신 것 또한
실재이다.
아버지께서 소유하신 것은
아들의 것이 되었고,
아들께서 소유하신 것은
그 영께서 받으셨으며,
그 영께서 받으신 것은
우리에게 밝혀진다.
아버지와 아들과 그 영과
믿는 이들인 우리는 모두
이 과정에 연관되어 있다.

근원 즉 기원이신
아버지는
많은 풍성을
가지고 계신다.
아버지의 모든 것은
아들의 것이 되었다.
아들에게는
측량할 수 없는
풍성이 있다
(엡 3:8).
아버지께서 소유하신 것은
아들의 것이 되었고,
아들께서 소유하신 것은
그 영께서 받으셨다.
그 영께서 받으신 것은
우리에게
밝혀지고
전달되기 때문에
우리는
종착지가 되었다.
아버지는
아들 안에
체현되셨고,
아들은
그 영으로
변형되셨으며,
그 영은
우리에게 도달하신
신성한 삼일성이시다.
삼일 하나님의
모든 풍성이
그 영 안에서
우리에게 도달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삼일 하나님의
종착지이다.
삼일 하나님의
모든 어떠하심과
그분께서 소유하신
모든 것이
우리에게
열렸고
전달되었으며
전송되었다.
우리는
유기적으로
그 영,
곧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께
연결되었기 때문에,
그분의 모든 어떠하심과
그분께서 소유하신 모든 것은
이제 우리의 실재로서
우리의 몫이다.

그 영의 인도하심에 의해
우리가 들어가게 된
실재는
신성한 삼일성의 실재이다.
실지적으로
신성한 삼일성의 실재는
내주하시는 영이다.
우리 위에 계신
그 영이 아니라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 영이
이 실재이시다.
그 영은
아버지와 아들의
모든 어떠하심의
실재이시다.
그 영이 없다면
아버지와 아들의 어떠하심의
본질이 있을지라도
실재화는 없다.
그 영은
아버지와 아들의
모든 어떠하심의
적용이시다.
만일 우리가
아버지와 아들의
모든 어떠하심을
적용하려고 한다면,
우리에게는
그 영이 필요하다.
이제 내주하시는 영은
믿는 이들을
삼일 하나님에 대한 교리가 아니라
삼일 하나님의 실재 안으로
인도하고 계신다.

 

신언노트, 2018 12 30

요한의 그 글들은
 (The writings; 그 저서들은)
 그 영께서
 실재의 그 영이시라는 것을
 계시합니다:

그 전체 우주 안에서
 오직 한 분께서만
 실재적이신데(real; 참되신데)
 —그 삼일 하나님이십니다;
그 삼일 하나님께서만
 그 실재이십니다.

하나님의 신약 경륜 안에서
 그 영께서는
 실재의 그 속성을
 가지고 계십니다:

실재는
 하나님의 그 영의
 모든 것을 포함하는
 그 속성인데,
왜냐하면 그것이(it)
 그 아버지,
 그 아들 그리스도,
 또 모든 신성한
 그 항목들과 또 실체들을
 (entities; 실재물들을)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그 영께서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그 실재이십니다;
실재는, 그러므로,
 그 영의
 가장 기이한 그 속성들 중의(of)
 하나입니다.

그 문맥에 따르면,
 요한복음 16장 13절 안에 있는
 그 실재는
 그 삼일 하나님께서 무엇이신
 또 가지고 계시는
 모든 것을
 언급합니다
 (refers to; 가리켜 말합니다).

실재의 그 영께서는
 그 삼일 하나님의 그 실재이십니다;
즉, 그분께서는
 그 삼일 하나님의 무엇이신 모든 것,
 그분께서 성취하신 모든 것,
 또 그분께서 도달하시고 획득하신 모든 것의
 그 실재이십니다.

실재의 그 영을 떠나서,
 우리의 체험 안에서
 우리는
 삼일 하나님
 또는 그 신성한 속성들 중의 어떤 것도
 가질 수 없습니다;
그 삼일 하나님과
 또 그분의 모든 속성들의
 그 실재는
 실재의 그 영이십니다.

실재의 그 영께서
 우리를
 그 모든 실재 안으로
 인도하십니다
 (guides;
 안내하십니다, 이끄십니다, 관리하십니다):

오직 실재의 그 영 안에
 있는 것만
 영적인 실재입니다:

모든 영적인 것들은 반드시
 그것들이
 참되고
 (real; 실재하고, 현실적이고,
 생생하고, 실감 나고),
 살아 있으며,
 또 유기적이기 전에
먼저 실재의 그 영 안에
 있어야만 합니다.

실재의 그 영께서
 모든 영적인 것들의
 그 집행자이십니다
 (the Executor;
 그 실행자[유언 집행자]이십니다).

실재의 그 영께서
 삼일 하나님의
 또 모든 신성한 일들의
 (matters;
 문제들의, 사안들의, 내용들의)
 그 모든 실재 안으로
 그 믿는 이들을
 인도하십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 안에 있는
 ‘그 실재’는
 그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시는 무엇,
 그 아들께서 가지고 계시는 무엇,
 또 그 영께서
 그 아들에게서
 또 그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시는 무엇에서
 받아들이시는 무엇을
 언급합니다:

그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시는 무엇이
 실재이고,
 그 아들께서 가지고 계시는 무엇이
 실재이며,
 또 그 영께서 받아들이시는 무엇이 또한
 실재입니다.

그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시는 무엇이
 그 아들의 것이 되고,
 그 아들께서 가지고 계시는 무엇이
 그 영에 의하여 받아들여지며,
 또 그 영께서 받아들이시는 무엇이
 우리에게 밝혀집니다
 (is disclosed; 드러내집니다).

그 아버지께서는
 그 아들 안에 체현되시고,
그 아들께서는
 변형되셔서(is transfigured)
 그 영이 되시며,
또 그 영께서는
 우리에게의
 그 신성하신 삼일의(Trinity)
 그 도달하심이십니다
 (the reaching;
 그 이르심[그 도착하심, 그 내뻗으심]이십니다).

그 영을 통하여
 삼일 하나님의 그 실재가
 우리 안으로
 전달됩니다
 (is transmitted;
 유전됩니다, 옮겨집니다, 전해집니다);
그러므로,
 그 영께서
 그 안으로
 (the reality into which)
 우리를 인도하시는
 그 실재는
 삼일 하나님의
 그 실재입니다.

실재의 그 영께서
 이 실재를
 우리 안으로
 전달하심에 의하여
 그 신성한 실재 안으로
 우리를
 인도하실 때,
그 신성한 실재가
 —과정을 거치셨고
 또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존재의
 그 조성 성분이
 (the constituent; 그 구성 요소가)
 됩니다.

실재의 그 영께서
 —그 아들의
 완전한 그 실재화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그 모든 실재 안으로
 인도하시는데,
(이는) 그분께서
 무엇이신
 또 가지고 계시는
 모든 것과
 또 그분께서
 성취하신
 (has attained; 도달하신)
 또 획득하신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실재의 그 영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그 실재 안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삼일 하나님의
 그 실재이신
 그 영께서 또한
 그리스도의 몸의
 그 실재이십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그 교회이고,
 또 그것의(its; 교회의)
 모든 실재는
 과정을 거치셨고 또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의
 그 실재의 그 영이십니다;
만약 실재의 영께서
 (Spirit of reality)
 계시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의 몸도
 (Body of Christ),
 곧 교회도
 (church)
 없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실재는
 우리가
 많은 측면들로
 (in many aspects;
 많은 양상들[모양들, 방향들] 안에서)
 받아들였고,
 체험했으며,
 또 누린
 그 영이십니다.

실재의 그 영은
 과정을 거치셨고
 또 완결되신
 그 삼일 하나님의
 각각의 모든 것들을
 그리스도의 그 몸 안에 있는
 (in; 안에서)
 한 실재로
 만드십니다.

모든 것에 충분하신
 (All-sufficient;
 모든 것을 충족시키시는)
 그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 안에
 거주하셔서
 하나의 섞인(mingled; 연합된) 영으로서
 결합되시는
 (to be joined;
 연합되시는, 합쳐지시는, 연결되시는)
 실재의 그 영으로서,
과정을 거치셨고
 또 완결되신
 그 삼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그 몸에게(to)
 무엇이신
 모든 것에(to)
 그 비결이십니다.

과정을 거치셨고
 또 완결되신
 그 삼일 하나님께서
 체험하신 모든 것은,
육체 되심,
 십자가에 못 박히심,
 또 부활을 포함하며,
실재의 그 영에 의하여
 실재화되어
 실재 안에 있는
 (in reality;
 실재 안에서, 실제로는, 사실은, 현실적으로)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속성들과 체험들이
 됩니다.

오직 우리가
 실재의 그 영을 통하여
 실재를 접촉할 때에만
 그 몸 생활을
 살아 낼 수 있습니다
 (can … live out; 실행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실재 안에
 있고자 한다면,
실재의 그 영께서
 우리의 존재 안으로
 구성되시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재의 그 영께서
 그 믿는 이들 안으로 오셨고
 그들 안에서(within; 안의)
 그리스도의 그 실재가 되셨습니다.

모든 것을 포함하시는
 그 그리스도께서,
 그 삼일 하나님의
 그 체현이시고,
 우리 안에
 거주하시는
 실재의 그 영으로서
 완전히 실재화되십니다;
내주하시는 실재의 그 영께서
 그리스도의 그 실재이십니다.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실재 안에 있는 것은
 실재의 그 영께서
 우리 안으로
 차츰 넣어지시고
 (wrought into;
 차차[서서히] 섞여지시고, 일해 넣어지시고)
 또 우리의 존재 안으로
 구성되시게
 (constituted; 조성되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실재는
 “예수님 안에 있는
 그 실재”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그 실재는
 그 네 복음서들에
 기록된 것과 같이(as)
 예수님의 그 생활의
 실제의(actual; 사실상의)
 그 상태입니다.

예수님의 그 생활의
 그 본질은
 실재입니다.

에베소서 4장 24절 안에 있는
 “그 실재”는
 하나님의 체현입니다
 (personification;
 화신[의인화, 인격화]입니다):

이 실재는
 예수님의 그 생활 안에
 전시되었습니다
 (was exhibited;
 보여졌습니다, 나타내졌습니다).

예수님의
 사람의 생활은
 그 실재에 따른,
 즉, 하나님 그분 자신에 따른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그분과 함께 계셨고,
 또 그분은
 하나님과 하나이셨으며
 또 하나님을 표현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 안에 있는
 그 실재”의
 의미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땅 위에 사셨던
 그 방식이
 (The way; 그 길이)
 오늘날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지체들이
 (the members;
 그 구성원들이, 그 신체 기관들이)
 살아야만 하는
 그 방식입니다:

우리의
 생활함의 표준은
 예수님 안에 있는
 그 실재,
 곧 주 예수님께서
 땅 위에 계셨을 때
 그분에 의해
 살아 내진
 (lived out; 실행된)
 그 실재에 따라
 있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배우고
 (to learn Christ; … 알게 되고)
 그분 안에서
 가르침을 받아
 실재의 한 생활을 살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그 몸의
 지체들로서,
 우리는 반드시
 그 실재가
 예수님 안에 있는 것과 같이
 (as …; 있는 그대로, 있는 것으로),
 실재의 한 생활
 —하나님을 표현함의 한 생활을
 살아야만 합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그 실재는 반드시
 그분의 많은 지체들 안에
 복사되어야만 하고
그 결과 그들은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실재 안에서
 단체적으로
 살 수 있습니다
 (may live; 생활할 수 있습니다).

 

1일

요 14:17
그분은
실재의 영이십니다.
세상은
그분을
받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분을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여러분과 함께 거하시고,
여러분 안에
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 15:26
그러나 내가
아버지에게서
여러분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실재의 영께서 오시면,
그분께서
나에 대하여
증언하실 것입니다.

그 영은
실재의 영이라고
불리신다.
왜냐하면 아들 안에 계신
아버지의 모든 어떠하심과
아들의 모든 어떠하심이
성령 안에서
실재화되기 때문이다.
그 영은
아버지 하나님의 어떠하심과
아들 하나님의 어떠하심의
실재화이시다.
아버지 하나님은
빛이시며,
아들 하나님은
생명이시다.
이 빛과 생명의
실재는
그 영이다.
만일 우리에게
그 영이 없다면,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의 빛을
가질 수 없다.
만일 우리에게
그 영이 없다면,
우리는
아들 하나님을
우리의 생명으로
가질 수 없다.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의
모든 신성한 속성들의
실재는
그 영이다.
요한복음 14장 17절과
15장 26절과
16장 13절에서
주 예수님은
실재의 영에 대해
말씀하신다.
요한일서 4장 6절 역시
그 영에 대해
이 칭호를 사용한다.
더 나아가 요한일서 5장 6절은
그 영께서
실재이시라고
말한다.
실재의 영이신
그 영은
하나님과 아들의
실재이시다.

그 영은
모든 신성한 것들의
실재이시며,
그러한 분으로서
그 영은
영원한 생명의
실재이시다.
결국 그 영은
실재이시기 때문에
그분은
하나님이시고
아들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시다.
실재의 영을 떠나서는
영원한 생명은
공허하고 헛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 영은
하나님과 아들과
영원한 생명과 은혜와
모든 신성한 것들의
실재이시다.
그 영은
신성하고 영적인
모든 실체들과 항목들의
실재이시기 때문에
실재의 영이라고
불리신다.

온 우주에서
실재이신 분은
오직 한 분이신데,
바로 삼일 하나님이시다.
삼일 하나님만이
실재이시다.
오늘날 그 영은
실재이시다.
왜냐하면 그 영은
삼일 하나님의
참된 본질이시기 때문이다.
… 워치만 니 형제님은
… 그 영이
곧 부활의 실재이시라고
말했다.
부활은
어떤 실재를
필요로 하는데,
그 실재는
곧 그 영이다.
만일 우리가
그 영 안에 있지 않다면,
부활 안에 있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의 신약 경륜 안에서
그 영은
실재라는 속성을
가지고 계신다
(요 14:17, 15:26, 16:13).
실재는
하나님의 영의
모든 것을 포함한
속성이다.
왜냐하면 실재는
아버지,
아들 그리스도,
그리고 모든 신성한
항목들과 실체들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 영은
그리스도의 실재이시며,
신성한 계시의 실재이시다.
그러므로 그 영은
실재이시다
(요일5:6).
성령은
모든 것을 포함한
실재이시다.
그러므로 실재는
그 영의
가장 기이한 속성들 중
하나이다.

실재의 영을 떠나서
우리는
체험에 있어서
삼일 하나님이나
신성한 속성들 중
그 어떤 것도
소유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그러한 것들이
단지 용어에 불과하게 된다.
삼일 하나님과
그분의 모든 속성들의
실재는
실재의 영이다.

문맥에 따르면,
요한복음 16장 13절에서 말하는
‘실재’는
아버지께서 소유하신 것과
아들께서 소유하신 것,
그리고 그 영께서
아들에게서와
아버지께서 소유하신 것에서
받으신 것을
가리킨다.

요한복음 1장에서
비둘기는
어린양 위에
내려오셨다.
어린양은
구속을 상징하고,
비둘기는
생명 주시는 영을
상징한다.
이것은
생명 주시는 영께서
오시는 것이
그리스도의 구속에
기초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삼일이시므로
그 영께서
누구이신지를
생각할 때
우리는 반드시
그리스도께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런 다음에
그리스도께서
누구이신지
물을 때 반드시
하나님께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하나님은
충만이시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충만의
체현과 표현이시며
(골 2:9),
그 영은
그리스도의 모든 어떠하심의
실재이시다
(요 14:17).
달리 말하면,
아버지 하나님은
근원이시고,
아들 하나님은
표현이시며,
영 하나님은
전달이시다
(고후 13:14).
따라서 그 영은
삼일 하나님의 실재,
곧 삼일 하나님의
모든 어떠하심과
그분께서
성취하시고 획득하시고 도달하신
모든 것의
실재이시다.
아브라함에게 전해진
복음의 중심 항목과 복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모든 이에게
이 영을
주시겠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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