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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부흥을 위한 거룩한 말씀

속건제물의 실재이신 그리스도를 감상함

“보십시오,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takes away; 가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 
—요 1:29.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십자가에서 죽으시어
죄와 죄들을 처리하시고 
인류에게서 죄를 없애셨다.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의와 거룩함과 영광의 
요구들을 
이루셨다.

하나님은 
구속하는 어린양이신 
그리스도를 
창세전에, 
곧 우주가 창조되기 전에 
미리 알고 계셨으나, 
우리를 위해 
나타내셨다.

그리스도는
‘창세 때부터, 
곧 창조물이 존재하게 된 때부터
죽음을 당한
(was slain; 살해되신,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시다.

속건제물의 실재이신
‘그리스도는 
우리 죄들 때문에 
죽으셨다’ 
—고전 15:3.

바울이 
복음으로 
성도들에게 
첫 번째로 전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들 때문에 
죽으셨다는 것이었다.

‘때문에’라는 말은 
그리스도께서 
대속하시는 죽음을 
죽으신 것을 
가리킨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대속자로서 죽으시는 
그리스도가 필요했다.

우리의 구주이신 
그리스도는 
구속을 성취하시기 위해,
우리를 대표해서 
우리 죄들 때문에 
죽으셨다.

속건제물의 실재이신
‘그리스도는 
또한 죄들 때문에 
한 번의 고난을 받으셨는데, 
곧 의인으로서 
불의한 사람들을 대신하여 
죽으셨다’. 

이것은 
우리를 
하나님께 이끌기 위한 것이었다
— 벧전 3:18.

여기서‘ 죄들’은 
우리의 외적인 행위로 범하는 
죄들을 가리킨다.

‘대신하여’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순교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구속을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스도는 
의로우신 분으로서 
우리의 죄들의 장벽을 
없애시고 
우리를 
하나님께 이끄시기 위해서, 
불의한 사람들인
우리를 대신하여 
의로우신 하나님께 
심판받으셨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죄들에서 구속하여 
하나님께로, 
곧 불의한 생활 방식에서 
의로우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셨다.

속건제물의 실재이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들을 
직접 자기의 몸에 짊어지시고 
나무에 달리셨다. 
그것은 우리가 
죄들을 향하여 죽음으로써 
의를 향하여 살도록 
하시려는 것이다. 
그분께서 
채찍에 맞으시어 
상처 받으심으로써 
우리가 낫게 되었다’ 

— 벧전 2:24.

이사야서 53장 6절에 따르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계셨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들을 가져다가 
하나님의 어린양 위에 두셨다.

히브리서 9장 28절은
‘그리스도께서 
많은 사람의 죄들을 짊어지시려고 
한 번 드려지셨다.’

고 말한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들을 짊어지시려고 
한 번 죽으셨으며,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심판을 받으셨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리셨을 때, 
그분은 
화해를 이루시기 위해 
참된 제단인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들을 
자신의 몸에 
짊어지셨다.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 
우리는 
죄들을 향하여 
죽음으로써
의를 향하여 
살게 되었다. 
이렇게 의를 향하여 
사는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이루어진다.

의는 
하나님의 통치의 문제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 아래서 
의로운 방식으로 
살기 위해,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통치의 
의로운 요구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살기 위해 
구원받았다.

“그분께서 
채찍에 맞으시어 
상처 받으심으로써 
여러분이
낫게 되었습니다.” 
—벧전 2:24하.

한 면에서, 
우리를 낫게 하는 
그리스도의 상처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분의 죽음에 의해 
죄들로부터 지켜진다.

또 다른 면에서, 
이러한 치료는 
우리를 소생시켜 
의를 향해 
살게 한다.

속건제물의 실재이신 
그리스도 
‘그분 자신은 
우리의 죄들에 대한
화해 제물이시다’ 
— 요일 2:2.

“사랑은 
이렇습니다. 
곧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그분의 아들을 
우리의 죄들에 대한 
화해 제물로 
보내신 것입니다.” 
—요일 4:10.

주 예수님은 
우리의 죄들에 대한 
화해 제물이시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속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만족을 위해서, 
우리의 죄들에 대한 
희생 제물로서 
그분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셨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대속하는 죽음을 통하여, 
그리고 우리의 대속자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만족하시고 
진노를 가라앉히신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화해이시다.

히브리서 2장 17절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에 대해 
화해를 이루셨다는 것을 
계시한다.

주 예수님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의로운 요구를 
만족시키심으로써, 
우리의 죄들에 대한 
화해를 이루시어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을 통하여, 
우리의 죄들에 대한 
화해를 이루셨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하나님을 진정시키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의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모든 요구를 
이루어 드림으로써,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셨다.

속건제물의 실재이신 
그리스도는
‘우리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악한 이 시대에서 
우리를 
건져 내시려고, 
우리의 죄들 때문에 
자신을 내주셨다’ 

—갈 1:4.

그리스도께서 
비록 우리의 죄들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지만, 
그 목적은 
우리를 
악한 이 시대에서 
건져 내시는 것이었다.

시대는 
사탄의 체계인 
세상의 한 부분이다.

한 시대는 
사탄의 체계의 
한 부분, 
한 방면, 
현재의 모습 
혹은 현대적인 모습을 
가리킨다. 
사탄은 
이 체계를 사용하여 
사람들을 
강탈하고 
점유하며, 
그들을 
하나님과 그분의 목적에서 
멀어지게 한다.

현시대는 
사탄의 코스모스, 
곧 사탄의 세상 체계의 
현재의 부분이다.

죄들은 
마귀적인 반면에, 
현시대는 
사탄적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떠나서는 
우리가 
배후에 마귀가 숨어 있는 
죄들이나, 
배후에 사탄이 숨어 있는 
악한 시대를 
처리할 길이 없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우리를 
악한 이 시대에서 
건져 내시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악한 이 시대에서 
건져지려면, 
반드시 죄들이 
처리되어야 한다.

갈라디아서의 문맥에 따르면, 
1장 4절의
‘악한 이 시대’는
종교적인 세상, 
세상의 종교 체계를 
가리킨다.

이것은 
갈라디아서 6장 14절과 15절에 있는 
말씀으로 확증되는데, 
그 구절들에서 
할례는 
세상의 한 부분, 
곧 사도 바울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던 
종교적인 세상으로 
여겨진다.

그리스도는 
종교, 
곧 악한 이 시대에서 
우리를 건져 내시려고 
우리의 죄들 때문에 
그분 자신을 
내주셨다. 
이 원칙은 
바울 시대의 믿는 이들이나 
오늘날 우리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

속건제물의 실재이신 
주 예수님은
“이것은 
죄들이 용서받을 수 있도록 
많은 사람을 위하여 
쏟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입니다.”

라고 말씀하셨다
— 마 26:28.

죄들이 
용서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의에 따라 
주님의 피가 
요구되었다.

피 흘림이 
없으면 
죄들의 용서가 
있을 수 없다.

죄들이 
용서받도록 
주님의 피가 
쏟아졌으며, 
새 언약이 
그분의 피를 통해 
세워졌다.
주 예수님의 피는 
우리를 위한 
완전한 구속을 이루어, 
우리의 모든 죄들이 
용서받을 수 있게 하였다.

그분의 피는 
하나님의 의를 
만족시켰고, 
우리의 타락한 상태로부터 
우리를 구속하여 
하나님과 그분의 축복으로
돌아가게 했다.

그리스도는 
속죄제물로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그분의 피를 쏟으셨는데, 
이것은 
새 언약이 세워지고 
믿는 이들의 죄들이 
용서받기 위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피는 
우리를 
온갖 죄에서 
깨끗하게 하며’,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의로우셔서 
우리 죄들을 
용서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신다’

—요일 1:7, 9.

속건제물의 실재이신 
그리스도는
‘죄들을 정결하게 하시고 
(having made purificaion of sins;
죄들을 깨끗하게 하셨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 있으신 분의 
오른편에 앉으셨다’ 

— 히 1:3.

“그리스도는 
죄들에 대한 
하나의 희생 제물을 
드리심으로써, 
영원히 
하나님 오른편에 
앉으셨습니다.” 

—히 10:12.

그리스도는 
죄들에 대한 
희생 제물로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심으로써 
죄들을 제거하셨다
(has put away sins;
죄들을 없애셨다).

그리스도께서 
영원히 
하나님 오른편에 
앉으신 것은 
죄들을 제거하는 일이 
성취되었다는 
표시와 증거이다
(a sign and proof;
한 표시이자 증거이다).

그리스도는
‘죄들을 정결하게’ 
하셨다 
—히 1:3.

히브리서 1장 3절에서
‘정결하게 하시고’는 
우리의 죄들을 
깨끗이 씻으셨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스도는 
한 번 만에 영원히 
죄들을 정결하게 하시는
일을 
성취하셨다. 
그분은 
한 번 
자신의 피를 
흘리심으로
영원한 씻음을 
성취하셨다.

레위기 16장에 있는 
예표에 따르면, 
주 예수님은 
자신의 피를 
하늘들에 있는 
지성소 안으로 가져가서 
하나님 앞에 뿌리셨는데, 
이것은 
우리의 죄들에 대한 
화해를 이루심으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게 되고
‘모든 죄들이 
정결하게 되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 
그분 자신을 
영원하신 영을 통해 
하나님께 
드리셨기 때문에, 
그분께서 
자신을 드리신 것은 
한 번 만에 영원히 
이루어진 일이었고, 
그분의 죽음을 통해 성취된 
구속은 
영원하며 
영원한 효능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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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replies on “속건제물의 실재이신 그리스도를 감상함”

6일

히 1:3 
그분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시고, 
하나님의 실질의 
표현이십니다. 
그분은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들어 주시고 
보존해 주시며, 
죄들을 
정결하게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 있으신 분의 
오른편에 
앉으셨습니다.

히 10:12 
그러나 그리스도는 
죄들에 대한 
하나의 희생 제물을 
드리심으로써
(having offered;
드리셨고), 
영원히 
하나님 오른편에 
앉으셨습니다.

그리스도는 
그분 자신을 
죄에 대한 
유일한 희생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심으로
죄를 없애셨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10장 12절은
“그리스도는 
… 영원히 
하나님 오른편에 
앉으셨습니다.”

라고 말한다. 
그분께서 
하늘에 앉아 계신다는 것은 
죄들을 제거하는 일이 
성취되었다는 
표시와 증거이다. 
… 그분은 더 이상 
죄 때문에 
어떤 일도 하실 
필요가 없다. 
이는 그분께서 
한 번 만에 영원히 
구속을 이루셨기 때문이다. 
그분께서 
죄에 대한 
하나의 희생 제물을 
드리신 후에
하나님의 오른편에 
영원히 앉아 계신 것은, 
제사장들이 
거듭해서 
동일한 희생 제물을 드리며 
매일 서 있는 것과 
대조된다.

하나님의 구속에는 
… 세 단계가 있다
(there are … three time periods;
세 시기들이 있다). 
첫째로, 
주님은 
우리의 과거의 죄들을 
정결하게 하셨다. 
주님은 
우리의 죄들을 
대속하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죄들을 
정결하게 하셨다. 
대속은 
(atoning; 속죄함은, 갚음은)
덮는 것을 의미하지만 
정결하게 하는 것은 
우리의 죄들이 
완전히 씻어졌음을
(have been washed away; 
씻어져 깨끗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구약의 예표에서 
대속은 다만 
죄들을 덮을 수 있었을 뿐(시 32:1) 
죄들을 없애지는 못했다. 
그래서 대속을 위해 
제사장들은 
매일 
서서
같은 희생 제물을 
드려야 했고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히 10:11). 
그러나 아들은 
죄를 없애셨으며
(has taken away sin)
(요 1:29), 
한 번 만에 영원히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이루셨다. 
그러므로 그분은 
영원히 
앉아 계신다(히 10:12). 
하나님께서 보실 때 
죄는 
끝났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온 우주 가운데서 
죄는 
이미 정결하게 된 것이다
(has been washed away;
씻어져 깨끗하게 되었다). 
여러분 안에 
죄가 
없을 뿐 아니라, 
교회 안에도, 
혹은 여러분의 가정 안에도 
죄는 
더 이상 없는 것이다
(should not be;
틀림없이 없다).
죄는 이미 씻어졌다.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은 
이미 이루어졌다. 
아들은 
과거에 
이일을 
완성하셨다
(completed; 마무리지으셨다).

주 예수님은 
구속을 성취하셨을 때 
씻는 일을
(the work of cleansing;
깨끗하게 함의 일을)
완성하셨다. 
십자가에서 
주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완전한 씻음을
(a perfect cleansing;
한 완전한 정화를)
이루시어
(finished; 끝내셨고)
그 일을 
하나님 앞에 
두셨다. 
그러한 씻음은
어느 때든지 
우리에게 
적용될 수 있다.

우주와 인류의 더러움은 
죄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구속하는 피에 의해서만 
깨끗하게 될 수 있다. 
반드시 구속을 위한 
피 흘림이 
먼저 있고, 
그런 다음 
죄로 인한 더러움을 
씻는 것이 
있다.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구속을 성취하셨기 때문에, 
그분의 피는 
죄로 말미암은 
(that results from sin;
죄에서 유래된, 죄로부터 생긴)
사람의 모든 더러움을 
씻어 낸다
(cleanses away;
씻어서 없앤다).

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사람의 죄들을 
씻으시는 일을 
성취하신 후에,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 오른편에 
앉으셨다. 
… 레위기 16장에 있는 
예표에 따르면, 
주 예수님은 
자신의 피를 
하늘들에 있는 
지성소 안으로 
가져가서 
하나님 앞에 
뿌리셨는데(히 12:24), 
이것은 
우리의 죄들에 대한 
화해를 이루심으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게 되고
‘모든 죄들이 
정결하게 되도록’ 
하려는 것이었다(레 16:30).

우리가 
구원받을 때에 체험하는 
씻음은
(the cleasing; 
깨끗하게 함은, 정화는)
바로 주 예수님께서 성취하셨던 
그 씻음이며, 
하나님은 
그것을 
우리에게 
적용하신다. 
십자가에서 
주님께서 성취하신 
씻음은 
하나님 앞에 있는 
객관적인 사실이다. 
이것은 
우리가 
구원받을 때, 
우리에게 
주관적인 체험이 
된다.

히브리서 9장 14절은 
그리스도께서 
그분 자신을 
영원하신 영을 통해
(through the eternal Spirit)
하나님께 드리셨다고 말한다. 
십자가에서 
그리스도는 
사람의 몸 안에서 
그분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셨는데, 
이 몸은 
시간에 속한 것이다
(a matter of time;
한 시간의 문제이다, 시간적인 경우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시간의 제한이 전혀 없는 
영원에 속한 
영원하신 영을 통하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셨다. 
그분께서 
자신을 
드리신 것은 
한 번 만에 영원히 
이루어진 일이었고(히 7:27), 
그분의 죽음을 통해 
성취된 구속은 
영원하며(9:12), 
영원한 효능을 갖는다.

그리스도께서 
죄에 대한 
희생 제물로 
자신을 
드리신 것은 
그분께서 
속죄제물이신 것과 
관련된다. 
그분께서 
십자가에 계셨던 
후반부 세 시간 동안, 
그분은 
하나님의 눈에 
유일한 죄인으로서 
그분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리고 계셨다. 
이 일은 
한 번 만에 영원히 
성취되었으며, 
그것의 효능은 
영원하다
(is eternally effective;
영원토록 효과가 있다).

 

5일

마 26:28 
이것은 
죄들이 용서받을 수 있도록 
많은 사람을 위하여 
쏟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입니다.

요일 1:7 
그러나 하나님께서 
빛 안에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안에서 행하면, 
우리는 
서로 교통을 갖게 되고, 
그분의 아들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온갖 죄에서 
깨끗하게 합니다.

그리스도는 
그분의 죽음 안에서 
이루신 일의 
한 부분으로서, 
새 언약을 위해
또한 믿는 이들이 
죄들을 용서받기 위해 
그분의 피를 
쏟으셨다.

마태복음 26장 28절에서 
주 예수님은
“이것은 
죄들이 용서받을 수 있도록 
많은 사람을 위하여 
쏟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입니다.”

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의 피는 
우리의 죄들이 
용서받기 위하여 
하나님의 의에 따라 
요구된 것이었다. 
피 흘림이 
없으면 
죄들의 용서가 
있을 수 없다. 
죄들이 
용서받지 않고서는
새 언약이 
세워질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의의 요구를 
이룰 길이 없다. 
그러나 죄들이 
용서받도록 
그리스도의 피가 
쏟아졌으며, 
새 언약이 
그분의 피를 통해 
세워졌다. 
주 예수님의 피는 
우리를 위한 
완전한 구속을 이루어, 
우리의 모든 죄들이
용서받을 수 있게 하였다. 
그분의 피는 
우리의 타락한 상태로부터 
우리를 구속하여 
하나님과 그분의 축복으로 
돌아가게 했다. 
하나님의 의를 만족시킨 
주님의 피는 
새 언약을 세웠다. 
이 새 언약 안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죄들의 용서와
생명과 구원, 
그리고 영적이고 하늘에 속하고 신성한 
모든 축복들을 주셨다.

그리스도는 
그분의 피를 
쏟으심으로 
새 언약이 
세워지고 
믿는 이들의 죄들이 
용서받는 
일을 이루셨다.

찰스 웨슬리(Charles Wesley)는 
그의 찬송가 중 하나에서 
그리스도께서 
갈보리에서 받으신 
다섯 군데의 
피 흘린 상처에 대하여 
말한다. 
이 상처들 중 
넷은 
그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받은 
손과 발의 상처들이었으며, 
다섯 번째 상처는 
그분의 옆구리에 
입은 
상처였다. 
처음 네 곳의 
피 흘린 상처는 
박해의 문제였지만, 
다섯번째 상처는 
구속의 문제였다.

누가복음 22장 20절과 
마태복음 26장 28절은 
둘 다 
그리스도의 피가 
쏟아졌음을 
가리킨다. 
물론 이 피는 
주 예수님 자신이 
쏟으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의 피가
쏟아진 것은 
바로 군인들이 
주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기 때문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로마 군인들이 
주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기 때문에 
피가 흘러나왔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의 관점에서 보면, 
그분은 
구속을 위해 
그분의 피를 
쏟으셨다. 
누가복음 22장 20절과 
마태복음 26장 28절은 
주님의 피가 
쏟아지는 것을 
언급하는데, 
이 피는 
그분의 손과 발의 상처에서 나온 
피가 아니라 
그분의 옆구리에서 쏟아진 
피를 말한다. 
전자는 
박해와 관련되고 
후자는 
구속과 관련된다.

종종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것에 대하여 
말한다. 
그러나 주 예수님은 
그분의 피가 
쏟아졌다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박해를 받은 것 때문이 아니라 
구속을 성취하시기 위해 
그분의 피를 
쏟으셨다.

우리는 
주님의 피가 
쏟아져 나온 것이 
로마 군인들이 
주님의 옆구리를 
찔렀기 때문이며 
그들이 주도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상 
주님의 피가 
쏟아져 나온 것은 
주 예수님께서 
주도하신 것이다. 
만일 주님의 피가 
쏟아진 것이 
군인들이 
창으로 찌른 결과였다면, 
그것은 단지 
박해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 자신의 
말씀에 따르면, 
그분의 피가 
쏟아진 것은 
구속을 위한 것이었다. 
이 둘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만일 그리스도의 피가 
쏟아진 것이 
군인들에 의해 
창에 찔린 문제였다면, 
이것은 
군인들이 
이룬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피를 쏟으신 것은 
로마 군인들이 
이룬 일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눈에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죽음 안에서 
이루신 일이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그분의 피를 쏟으셨을 때 
위대한 일을 
이루셨다. 
그 일은 
주님께서 
사람에 의해 
박해받으셨던 
십자가에서의 
전반부 세 시간 동안에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구속을 성취하시려고 
일하고 계셨던 
십자가에서의 
후반부 세 시간 동안에 
일어났다. 
물론 군인들이 
그리스도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기 때문에 
그분의 피가 
쏟아지는 일이 
일어났다. 
그러나 우리의 구속을 위해 
그분의 피가 
쏟아진 것은 
사실상 그리스도 자신이 
이루신 일이었다.

 

4일

히 2:17 
그러므로 그분은 
모든 일에 
그분의 형제들과 
같이 되셔야만 했습니다. 
그것은 
그분께서 
하나님에 관한 일에 있어서 
긍휼이 많으시고 
신실하신 
대제사장이 되셔서, 
백성의 죄들에 대하여 
화해를 이루시기 위한 것입니다.

갈 1:4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악한 이 시대에서 
우리를 
건져 내시려고, 
우리의 죄들 때문에 
자신을 
내주셨습니다.

요한일서 2장 2절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에 대한 
화해 제물이시라고 말하고, 
4장 10절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을 
우리의 죄들에 대한 
화해 제물로 
보내셨다고 
말한다. 
… 주 예수님은 
우리의 죄들에 대한 
화해 제물이시다.

히브리서 2장 17절에서 
주 예수님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의로운 요구를 
만족시키심으로써, 
우리의 죄들에 대한 
화해를 이루시어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을 통하여, 
우리의 죄들에 대한 
화해를 이루셨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하나님을 
진정시키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의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모든 요구를 
이루어 드림으로써,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셨다.

갈라디아서 1장 4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 우리의 죄들 때문에 
자신을 내주셨습니다.”

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들 때문에 
그분 자신을 
주신 것을 
본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떠나서는 
우리가 
우리의 죄들로부터 
구속받을 
길이 없다.

그리스도께서 비록 
우리의 죄들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지만, 
그 목적은 
우리를 
악한 이 시대에서 
건져 내시는 것이었다. 
시대는 
사탄의 체계인 
세상의 한 부분이다. 
한 시대는 
사탄의 체계의 
한 부분, 
한 방면, 
현재의 모습 
혹은 현대적인 모습을 
가리킨다. 
사탄은 
이 체계를 
사용하여 
사람들을 
강탈하고 
점유하며, 
그들을 
하나님과 
그분의 목적에서 
멀어지게 한다. 
사탄의 세상 체계는 
다양한 시대, 
다양한 부분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매 십 년을 
사탄의 세상 체계를 
구별되게 하는 
한 시대 
또는 한부분으로 
여길 수 있다. 
현시대는 
사탄의 코스모스, 
곧 사탄의 세상 체계의 
현재의 부분이다. 
죄들은 
마귀적인 반면에, 
현시대는 
사탄적이다. 
마귀로서 
하나님의 원수는 
죄들과 관련되고, 
사탄으로서 
하나님의 원수는 
악한 시대와 관련된다. 
하나님의 원수는 
간교하며 
죄들과 
악한 시대 뒤에 
웅크리고 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떠나서는 
우리가 
배후에 마귀가 숨어 있는 
죄들이나, 
배후에 사탄이 숨어 있는 
악한 시대를 
처리할 
길이 없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우리를 
악한 이 시대에서 
건져 내시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마귀와 사탄으로부터 
구원하실 수 있음을 
가리킨다. 
죄들과 악한 시대는 
둘 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에 의해 
처리되었다. 
그분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그분 자신을 
주셨다. 
그분은 
우리를 
악한 이 시대에서 
건져 내시려고 
우리의 죄들 때문에 
죽으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악한 이 시대에서 
건져지려면, 
반드시 죄들이 
처리되어야 한다. 
만일 우리가 
복음 전파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죄들의 용서를 받도록 
도와준다면, 
그들은 
악한 이 시대에서 
건져질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할 것이다.

갈라디아서 1장 4절에서
‘건져 내시려고’라는 말은 
직역하면
‘빼내시려고, 
끌어내시려고, 
구출하시려고’를 
의미한다. 
이 구절에서 말하는
‘악한 이 시대’는 
문맥에 따르면, 
종교적인 세상, 
세상의 종교 체계를 
가리키며, 
바울 시대에는 
유대 종교였다. 
이것은 
갈라디아서 6장 14절과 15절에 있는 
말씀으로 확증되는데, 
그 구절들에서 
할례는 
세상의 한 부분, 
곧 사도 바울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던 
종교적인 세상으로 
여겨진다. 
여기에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 때문에 
자신을 
내주신 목적이 
악한 이 시대인 
유대 종교에서 
우리를 
건져 내시는 것, 
즉 우리를 
빼내시는 것임을 
강조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을 
율법의 감시에서 
해방시키는 것이며, 
양 우리에서 
이끌어 내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1장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종교, 
곧 악한 이 시대에서 
우리를 
건져 내시려고 
우리의 죄들 때문에 
자신을 
내주신 것을 
본다. 
유대교도들은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러나 주 예수님은 
그분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를
종교적인 양 우리에서 
건져 내시기 위해 
우리의 죄들 때문에 
그분 자신을 
주셨다. 
이 원칙은 
바울 시대의 믿는 이들에게뿐 아니라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3일

벧전 2:24 
그분은 
우리의 죄들을 
직접 자기의 몸에 짊어지시고 
나무에 달리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죄들을 향하여 죽음으로써 
의를 향하여 살도록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채찍에 맞으시어 
상처 받으심으로써 
여러분이 
낫게 되었습니다.

요일 2:2 
그분은 
우리의 죄들에 대한 
화해 제물이시며, 
또한 우리의 죄들뿐만 아니라 
온 세상에 대한 
화해 제물이십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은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리셨을 때, 
그분은 
화해를 이루시기 위해 
참된 제단인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들을 
자신의 몸에 
짊어지셨다고 
말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는 
죄들을 향하여 
죽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우리가 
죄들을 향해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그 결과 
의를 향하여, 
곧 하나님을 향하여 
의롭게 살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 
우리는 
죄들을 향하여 
죽었다. 
우리는 
죄들을 향하여 
죽음으로써 
의를 향하여 
살게 된다. 
이렇게 
의를 향하여 
사는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이루어진다. 
의는 
하나님의 
통치의 문제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 아래서 
의로운 방식으로 
살기 위해,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통치의 
의로운 요구들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살기 위해 
구원받았다.

사람들이 
죄들이나 죄로부터 
멀어지는 
최상의 길은 
죽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많은 죄들을 
범할 수 있지만, 
일단 죽으면 
그 사람은 
죄들로부터 벗어난다. 
베드로는
죄들로부터 
멀어지는 것에 대해 
말하지만, 
바울은 
사람이 죽음으로써 
죄로부터 
해방되는 것에 대해 
말한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우리는 
죄들로부터 
멀어져 
의를 향하여 
살 수 있게 된다. 
겉으로 볼 때, 
죄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우리를 
끝내는 것이지만, 
사실상 이것은 
의를 향하여 
살 수 있도록 
우리를 
살리는 것이다.

타락한 사람인 
우리는 
죽어 있고 
죄로 가득하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들을 
그분 자신 위에 두시고, 
나무 곧 십자가에 달리셔서 
우리의 모든 죄들 때문에 
이 죄들을 담당하심으로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을 
받으셨다. 
십자가에서의 
그리스도의 죽음은 
상처였고, 
그 상처 곧 그 죽음은 
우리의 죽음을 
치료하였다. 
이제 우리는 
살아났다. 
한 면에서, 
우리를 낫게 하는 
그리스도의 상처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분의 죽음에 의해 
죄들로부터 지켜졌다. 
또 다른 면에서, 
이러한 치료는
우리를 소생시켜 
의를 향해 
살게 하였다.

요한일서 2장 2절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다.
“그분은 
우리의 죄들에 대한 
화해 제물이시며, 
또한 우리의 죄들뿐만 아니라 
온 세상에 대한 
화해 제물이십니다.” 

이 구절과 
요한일서 4장 10절에서 쓰인
‘화해 제물’에 대한 
헬라어 단어는
‘힐라스모스(hilasmos)’이다. 
1장 7절에는 
예수님의 피가 나오고, 
2장 1절에는 
우리의 변호자이신 
그리스도의 인격이 언급되며, 
이제 2장 2절에는 
우리의 죄들에 대한 
화해 제물이신 
그리스도가 나온다. 
우리의 죄들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 
피를 흘리신 
우리의 변호자께서 
바로 우리의 
화해 제물이시다. 
화해라는 말은
‘진정시킴’ 
또는‘ 화평을 이룸’을 
뜻한다. 
자녀가 
잘못을 범하여 
아버지 앞에서 
문제가 생길 때, 
자녀와 아버지 사이에는 
화평이 없다. 
그런 경우에는 
화평을 이루고 
아버지를 
진정시켜 드리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화평을 이루고 
진정시켜 주는 것이 
화해이다.

요한일서 2장 2절에 있는 
화해 제물이란 말을 
이해하기 위해, 
로마서 3장 25절에서 
화해 장소에 관해 
바울이 말한 것을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드러내시어 
화해 장소로 
삼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전에 사람들이 지은 
죄들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면서 
지나쳐 가심으로 
그분의 의를 
나타내시기 위한 것이며”. 

여기서 ‘화해 장소’에 대한 
헬라어 단어는
‘힐라스테리온(hilasterion)’이다. 
이 단어는 
요한일서 2장 2절과 
4장 10절에 있는
‘힐라스모스(hilasmos)’나 
히브리서 2장 17절에 있는
‘힐라스코마이(hilaskomai)’와는 
다르다.
‘힐라스모스’는
‘화해시키는 것’, 
즉 화해 제물이다. 
요한일서 2장 2절과 
4장 10절에서 
주 예수님은 
우리의 죄들을 위한 
화해 제물이시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속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만족을 위해서,
우리의 죄들에 대한 
희생 제물로서 
그분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셨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대속하는 죽음을 통하여, 
그리고 우리의 대속자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만족하시고 
진노를 가라앉히신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화해이시다.

 

2일

고전 15:3 
내가 우선적으로 
여러분에게 전해 준 것은 
나도 전해 받았던 것인데,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들 때문에 
죽으셨다는 것과

벧전 3:18 
그리스도께서 
또한 죄들 때문에 
한 번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곧 의인으로서 
불의한 사람들을 대신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을 
하나님께 
이끌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육체 안에서는 
죽으셨으나, 
영 안에서는 
살아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절은 
바울이 
복음으로 
성도들에게 
첫 번째로 전한 것이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들 때문에 
죽으셨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때문에’라는 말은 
그리스도께서 
대속하시는 죽음을 
죽으신 것을 
가리킨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대속자로서 죽으시는 
그리스도가 필요했다. 
우리의 구주이신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구속을 성취하시기 위해, 
우리를 대표해서 
우리 죄들 때문에 
죽으셨다. 
이것은 정확한 말이지만,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깊은 이해는 아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음 아래서 
살고 행하는 
이들이 되고자 한다면,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베드로전서 3장 18절은
“그리스도께서 
또한 죄들 때문에 
한 번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곧 의인으로서 
불의한 사람들을 대신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을 
하나님께 
이끌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육체 안에서는 
죽으셨으나, 
영 안에서는 
살아나셨습니다.”

라고 말한다. 
그리스도는 
의인이시고 
우리는 
불의한 사람들이지만,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 때문에 
죽으셨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하나님께로 이끄시기 위해 
우리의 죄들로 인해 
죽으셨다. 
그분의 죽음은 
모든 장벽들, 
특히 우리의 죄들과 불의라는 
장벽들을 제거하셨다. 
그분의 죽음이 
죄들과 불의의 
장벽들을 없앴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이르는 
길을 얻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하나님께로 
이끄시기 위해 
죽으셨다.

베드로전서 3장 18절과 2장 24절, 
고린도전서 15장 3절, 
히브리서 9장 28절에 언급된 
죄들은 
우리의 외적인 행위로 범하는 
죄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고린도후서 5장 21절, 
요한복음 1장 29절, 
히브리서 9장 26절에 언급된 
죄는 
우리의 본성 안에 있는 
타고난 죄를 가리킨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들이 
하나님께 용서받을 수 있도록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들을 짊어지시고 
우리의 죄들 때문에 
죽으셨다. 
그러나 그분은 
죄가 되셨고 
세상의 죄를 
없애심으로,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셨다. 
베드로는
우리의 본성 안에 있는 
죄를 
먼저 다루지 않고, 
우리의 행실과 우리의 행위에서 범하는 
죄들을 다룬다. 
베드로전서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은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헛된 생활 방식에서 
우리를 구속하였다.

의인이신 그리스도께서 
불의한 사람들을 대신하여 
죽으셨다는 사실은, 
그분의 죽음이 
순교를 위한 것이 아닌 
구속을 위한 것이었음을 
가리킨다. 
십자가에서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들을 담당하시는 
우리의 대속자이셨으며, 
또한 의로우신 분으로서 
우리의 죄들의 장벽을 없애시고 
우리를 하나님께 이끄시기 위해서, 
불의한 사람들인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의에 따라 
의로우신 하나님께 
심판받으셨다. 
이것은 
우리를 
우리의 죄들에서 구속하여 
하나님께로, 
곧 우리의 불의한 생활 방식에서 
의로우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신 것이었다.

십자가에서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들을 
짊어지셨다. 
이사야서 53장 6절에 따르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계셨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들을 가져다가 
하나님의 어린양 위에 두셨다. 
히브리서 9장 28절은
‘그리스도께서 
많은 사람의 죄들을 짊어지시려고 
한 번 드려지셨다.’

고 말한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들을 
짊어지시려고 
한 번 죽으셨으며,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심판을 받으셨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은
“그분은 
우리의 죄들을 
직접 자기의 몸에 짊어지시고 
나무에 달리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죄들을 향하여 죽음으로써 
의를 향하여 살도록
하시려는 것입니다.”

라고 말한다. 
이 구절에 언급된 
나무는 
나무로 만들어진 십자가, 
곧 구약에 예언되었듯이 
범죄자를 사형시키는 데에 사용된
로마의 사형 도구였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서
‘죄들을 향하여 죽음으로써’를
직역하면
‘죄들에서 멀어짐으로써’를 
의미한다. 
따라서 그것은 
죄들을 향해 죽는 것을 
뜻한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들을 
담당하시고 
죽으셨을 때, 
그 죽음은 
많은 것들을 
성취하였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를 끝냈고, 
이런 끝냄은 
우리를 
죄에서 
멀어지게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는 
의를 향하여 살 수 있도록 
죄들에서 
멀어질 수 있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와 죄들 사이를 분리하는 
선을 그었다. 
이제 그분의 죽음을 통해 
우리는 
죄들에서 멀어진다.

 

1일

요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십시오,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

벧전 1:20 
하나님은 
이 그리스도를 
창세전에 
미리 알고 계셨으나, 
모든 시대의 마지막에 
여러분을 위하여 
나타내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에서 
우리는 
구속의 방면에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것을 본다. 
… 이 구절은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서 
인류로부터 
죄를 없애신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 구절에서
‘세상의’라는 말은 사실상 
‘인류로부터’를 
의미한다. 
사탄을 통하여 
죄가 
사람 안으로 들어왔는데, 
왜냐하면 사탄이 
그의 독 있는 본성인 
죄를 
인류 안으로 
주입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어린양께서 
오셔서 
세상 곧 인류로부터 
이 죄를 없애셨다.

그리스도는 
죄와 죄들을 
처리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고린도전서 15장 3절과 
베드로전서 2장 24절과 
히브리서 9장 28절로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주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들 때문에 
죽으셨음을 본다. 
더 나아가 
고린도후서 5장 21절과 
히브리서 9장 26절에 따르면,
그분의 죽음은 
죄를 처리하였다. 
그러므로 죄와 죄들은 
십자가에 달려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신 
하나님의 어린양에 의해 
처리되었다.

구속의 방면에서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요구들, 
그분의 의와 거룩함과 영광의 
요구들을 
만족시키셨다. 
타락한 인류는 
어느 누구도 
이 요구들을 
성취할 수 없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의롭고 거룩하며 영광스러운 
요구들을 
성취하기 위하여 
하나님에 의해 정해지신,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구속자가 
필요한 것이다.

요한복음에서 
하나님의 어린양은 
구약의 모든 제물들의 
완성으로서 
하나님의 완전한 구속을 
성취하시는, 
육체 안에 계신 
말씀으로 
상징되신다. 
그리스도는 
모든 제물들의 
총체이시다. 
그분은 
속죄제물이실 뿐 아니라(the sin offering; 贖罪祭物) 
속건제물(the trespass offering; 贖愆祭物),
번제물(the burnt offering; 燔祭物), 
소제물(the meal offering; 素祭物),
화목제물(the peace offering; 和睦祭物, 和平安祭物), 
요제물(the wave offering; 搖祭物),
거제물(the heave offering; 擧祭物), 
자원제물(the free-will offering; 自願祭物, 樂獻祭),
전제물이시다(the drink offering; 奠祭物). 
… 우리는 
모든 제물들을 성취하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안으로 
들어갈 수 있고, 
신성한 생명과 본성에 
동참할 수 있다.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 안으로 
능히 들어갈 수 있고, 
들어가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통해 
나아가기 때문에 
그분께 
우리를 거절하실 
권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담대하게 
하나님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구속을 받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 
그분의 온 존재를 
누릴 수 있다.

베드로전서 1장 20절에 따르면, 
하나님은 
구속하는 어린양이신 
그리스도를 
창세전에, 
곧 우주가 창조되기 전에 
미리 알고 계셨다. 
… 하나님은 
창세전에 
그분의 미리 아심에 따라, 
그리스도를 
그분의 구속하는 어린양이 되도록 
예정하시고 준비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과 계획에 따라 
이루어졌다. 
그것은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미리 알고 계셨으나’라는 
말에 해당하는 
단어의 헬라어 어근은 
인정, 승인, 소유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미리 알고 계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케네스 웨스트(Kenneth S. Wuest)는 
그의〈확대역〉 신약 성경의 
베드로전서 1장 20절에서
‘미리 정하다’라는 
말을 사용해서
“(하나님은) 
우주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그리스도를 
미리 정하셨다.”
라고 말했다. 
이는 하나님께서 
영원 과거에 
그리스도를 
승인하셨고 인정하셨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또한 
기름 부음받은 분, 
곧 위임받은 분이신 
그리스도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모든 것을 
시간 안에서 이루어, 
그분의 영원한 목적을 
성취하도록 정하셨다. 
하나님은 특별히 
그리스도께서 
구속을 성취하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것을 
미리 아셨고 
또 그렇게 미리 정하셨다.

요한계시록 13장 8절은 
그리스도를 
‘창세 때부터 
죽음을 당한 
어린양’

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영원한 관점에서,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그리스도는 
창조물이 존재하게 되었을 때부터 
죽음을 당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눈에 
그리스도는 
이천 년 전에 
죽음을 당하신 것이 아니라, 
창조물이 
존재하게 되었을 때부터, 
즉 세상의 일부인 
사람이 
타락한 이래로 
죽음을 당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창조물의 타락을 
미리 아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그리스도는 
창조물이 존재할 때부터 
죽음을 당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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