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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부흥을 위한 거룩한 말씀

소제물이신 그리스도를 먹음으로 그리스도의 재생산이 되어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함

소제물은 
하나님을 위한 음식이시며, 
특별히 
하나님과 교통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이들을 위한 음식이신, 
인성을 가지신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그분의 
신성하게 부요하게 된 
인성 안에서 
우리를 통해 
다시 사실 수 있도록, 
우리는 
우리의 소제물이신 
그리스도를 
먹을 필요가 있다.

우리는 
우리의 소제물이신 
그리스도를 먹음으로써 
소제물이신 그리스도의 
재생산과 복사판과 확장이 된다. 
이 제물은
그분의 죽음을 통해 
부활 안에서, 
기름과 같은 신성으로 적셔진
(oiled with divinity;
신성으로 기름 발라진)
인성으로 구성되며 
누룩이나 꿀은 없다.

우리는 
우리의 소제물이신 
그리스도를 먹음으로써, 
복음서들에서 
놀랍고 뛰어나며 비밀하신 
하나님-사람으로서 사신 
그분을 
살고 
확대할 수 있다.

누가복음은 
소제물로 예표되신 
사람-구주이신 
주 예수님의 
하나님-사람의 생활을 
밝혀 준다.

누가복음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세기 1장과 2장에서
어떠한 사람을 
가지려 의도하셨는지를 
본다 .

하나님의 목적은 
그분을 표현하고 대표하기 위해 
단체적인 한 하나님-사람을 
얻으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육체 되심은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나님-사람이신 
주 예수님은 
모든 신성한 속성들을 포함한 
신성한 본질과 
모든 인간 미덕들을 포함한 
인간 본질로 
구성되신 분이시다.

구주의 잉태는 
하나님의 육체 되심
(소제물로 예표되는 것처럼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이었다. 
하나님의 육체 되심은 
신성한 능력에 의해서뿐 아니라 
신성한 본질이 
인간 본질에 더해짐으로써 
이루어졌으며, 
그 결과로 
신성과 인성, 
이 두 본성을 가진 
하나님-사람을 
산출하였다.

사람-구주는 
실재의 인간 본성과 
온전한 인간 미덕들을 가진 
진정한 사람이시며, 
이것은 
그분께서 
사람의 구주가 되실 
자격을 갖추시기 위한 것이다.

 그분은 또한 
 참된 신성한 본성과 
 뛰어난 신성한 속성들을 가지신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이러한 그분의 
 신성한 본성과 신성한 속성들은 
 사람을 구원하는 
 그분의 능력을 
 강력하게 하고 
 확실하게 한다.

사람-구주는 
이 땅에 계셨을 때, 
신성한 속성들과 인간 미덕들의 
연합이었던 
생활을 사셨다. 
이것이 바로
최고 수준의 도덕성이다.

그리스도는 
풍성한 속성들을 지니신 
넘치는 하나님을 
그분의 인성 안에서 
그분의 향기로운 미덕들을 통해 
표현하셨고, 
이것으로 말미암아, 
다시 말하면 
육체 안에서 
그분의 인간 생명을 
사신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부활 안에서 
그분의 신성한 생명을 
사신 것에 의해서 
사람들을 매혹하고 
사로잡으셨다.

속성들을 지닌 
신성한 본성은 
미덕들을 지닌 
주님의 인간 본성 안에서 
표현되었다. 
따라서 주 예수님의 생활은 
인간적으로 신성했고 
신성하게 인간적이었다.

누가복음은 
신성한 속성들을 지닌 
인간 미덕들 안에 계신 
사람-구주의 사역을 
밝혀 준다.

누가복음에 계시된 것과 같이, 
주 예수님은 
최고 수준의 도덕성을 가지셨다.

최고 수준의 도덕성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수준의 생활, 
즉 신성한 속성들이 
인간 미덕들 안에서 
표현되는 생활이다.

최고 수준의 도덕성은 
사람-구주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생활, 
곧 신성한 속성들을 지니신 
하나님과 
인간 미덕들을 지니신 
사람으로 구성된 
생명을 가지신 분의 
생활이다.

우리는 
인간 생명이 
신성한 생명으로 충만하게 되고, 
인간 미덕들이 
신성한 속성들에 의해 
강화되고 풍성하게 된 
그러한 생활을 가리켜 
최고 수준의 도덕성이라고 부른다.

하나님은 
최고 수준의 도덕성에 따른 
생활 안에서 
표현되신다.

소제물이신 그리스도께 참여함으로써 
우리는 
그리스도의 재생산, 
곧 단체적인 소제물인 
교회가 된다.

로마서 8장은 
그리스도 안의 믿는 이들인 
우리가 
소제물이신 그리스도의 
복사판이 되어야 함을 
계시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사본과 재생산이 되어 
그분과 똑같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소제물이신 그리스도를 먹는다면, 
우리는 그리스도로 조성됨으로써 
소제물이신 그리스도의 확장, 
곧 단체적인 그리스도이자 
단체적인 소제물인 
교회가 될 것이다.

우리에게 
매일의 공급이 되는 
소제물은 
단지 그리스도만이 아니라 
교회생활과 함께하시는 그리스도이다.

우리의 배고픔은 
그리스도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교회생활에 의해서 
만족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먹을 뿐 아니라 
교회생활을 먹어야 한다.

우리는 
첫 번째 형태인 
고운 가루 형태의 소제물, 
곧 개인적인 그리스도를 
먹을 뿐 아니라, 
두 번째 형태인 
과자 형태의 소제물, 
곧 단체적인 그리스도인 
교회를 
먹는다.

우리는 
소제물인 
교회생활을 함으로써 
한 몸으로 
함께 섞여야 한다.

고운 가루인 소제물은 
개인적인 그리스도와 
개개인의 그리스도인들 
둘 다를 상징하며, 
과자인 소제물은 
단체적인 그리스도, 
곧 그분의 몸인 
교회와 함께하시는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소제물은 
하나님의 경륜을 
성취하기 위한 
섞임을 보여주는 
예표이다.

몸의 생활, 
곧 소제물인 교회생활 안에서 
섞이기 위해
우리는 
십자가를 통과하고 
그 영에 의해 
존재해야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위해 
그리스도를 
다른 이들에게
분배해야 한다.

교통은 
우리를 섞는다. 
즉 우리를 
조절하고 조정하며
조화되게 하고 연합되게 함으로, 
우리의 차이점들을
잃어버리게 하고, 
교회생활과 교회의 일에 
우리의 개성의 자국을 남기는 것에서 
우리를 구원하여,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이시고 
모든 것 안에 계실 수 있게 한다.

소제물이신 
그리스도께 참여함으로써, 
우리는 
주님의 회복과 
영적 전쟁과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예수님의 인성을 
소유할 수 있다.

우리는 
주님의 회복을 위해 
예수님의 인성이 
필요하다.

교회가 타락했고 
사회가 부패했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의 회복을 위해 
그분의 인성이 요구되는 
상황에 있게 되었다.

이렇게 타락한 시대에서 
주님의 회복을 가지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합당한 인성이 
필요하다.

타락한 이 시대에서 
서 있을 수 있기 위해 
우리에게 주로 필요한 것은 
신성한 능력이 아니라 
예수님의 인성이다.

주님은 
회복의 일을 
하고 계시는데, 
이 회복의 일에서
주님은 
그분을 
자신의 인성으로 취하는 
한 백성을 
필요로 하신다.

교회가 타락하고 
사회가 부패한 가운데서 
우리는 
주님의 회복을 위해 
여기에 있으며, 
이것을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예수님의 인성이 
필요하다.

우리는 
영적 전쟁을 위해 
예수님의 인성이 
필요하다.
원수와 성도들 사이의 
영적 전쟁은 
주로 예수님의 인성에 좌우된다.

교회가 
영적 전쟁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에게 
합당한 인성이 
필요하다.

원수에게 대항해 
전쟁을 하려면, 
우리는 반드시 
예수님의 인성을 
사용해야 한다.

우리 자신 안에는 
합당한 인성이 없다. 
그러나 우리 안에는 
그리스도께서 계시며, 
그분의 인성은 
영적 전쟁을 위한 
합당한 인성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예수님의 인성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왕국을 가지시려면, 
그분의 구속받고 거듭난 백성이 
예수님의 인성을 
소유하고 
합당한 인간 미덕들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에게 
예수님의 인성이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왕국 안에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왕국일 것이다.

이기는 이들은 
그들 안으로 일해 넣어진 
예수님의 인성을 가짐으로써 
그리스도와 함께 
왕으로서 다스릴 
자격을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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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replies on “소제물이신 그리스도를 먹음으로 그리스도의 재생산이 되어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함”

6일

롬 14:17 
왜냐하면 
하나님의 왕국은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의와 화평, 
그리고 성령 안에 있는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계 1:9 
여러분의 형제이며 
예수님 안에서 
환난과 왕국과 인내에 참여한 
사람인 나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증거 때문에 
밧모라는 섬에 
있었습니다.

주님은 
회복의 일을 하고 계시는데, 
이 회복의 일에서 
주님은 
그분이 
사람들의 인성이 되심을 
깨닫고 
그분을 
자신의 인성으로 
취하는 
한 백성을 
필요로 하신다. 
… 우리는 
우리가 참된 사람들로서 
여기에 있다는 것을 
온 우주에 선포하고 
심지어 선언해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의 인성으로 취하는 
단체적인 한 사람으로서 
여기에 있다. 
이것은 
원수를 두렵게 할 것이다. 
유혹하는 자는 
주 예수님께 와서
“그대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주 예수님은 
그분 자신을 
사람으로 언급하시면서 
대답하셨다(마 4:3-4). 
그것은 
원수를 두렵게 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인간적이어야 한다. 
주님의 회복 안에 있는
교회의 모든 지체들은 
합당한 사람, 
심지어‘ 아카시아나무’와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강한 증거가 될 것이고, 
원수의 입은 
닫힐 것이다.

원수와 성도들 사이의 
영적 전쟁은 
신성한 능력에 달려 있기보다 
합당한 인성에 
더 많이 달려 있다. 
우리는 
영적 전쟁을 위해 
예수님의 인성이 
필요하다. 
원수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 
우리는 
매일의 행함에서 
예수님의 인성을 
훈련해야 한다. 
우리의 가정생활에 
예수님의 인성이 필요하다. 
교회 안의 성도들 사이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인성이 
필요하다. 
달리 말해서, 
만일 우리가 
인성이 합당하지 않다면, 
사탄을 패배시키기는 
불가능하다. 
우리는 이미 
패배당한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그러한 사람이 될 수 없지만, 
그분께서 
우리 안에서 
그러한 인격이 되시고, 
그분의 인성이 
영적 전쟁을 위하여 
그러한 합당한 인성이 된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소제물은 
그러한 인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왕국을 위해서는 
예수님의 인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젊은 세대 가운데 
왕국을 가지시려면, 
구속받고 거듭나서
예수님의 인성을 취한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필요하다. 
이 인성에 의해서 
그들은 
모든 일에서 
균형이 잡힌다. 
하나님의 왕국을 위하여 
우리에게 
합당한 인간 미덕이 
필요하며, 
이 모든 합당한 인간 미덕을 
갖추기 위하여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인성이 
필요하다. 
우리가 
이러한 합당한 인성을 
가지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왕국 안에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왕국일 것이다. 
… 사탄은 
여러 세대 동안 
교회를 속여 오고 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영적인 것들에서 벗어나게 하거나, 
그들로 하여금 
합당한 인성을 소홀히 한 채 
신성한 방면에 있는 
영적인 것들에만 
관심을 쏟게 한다. 
그러나 주님은 
예수님의 인성을 
회복하고자 하신다. 
이것은 
주님께서 
교회생활에 대한 
그분의 회복을 
강화하시기 위해 
회복하신 
또 다른 항목이다. 
합당한 인성이 없다면 
각 지방에서 
합당한 교회생활을 가지기란 
불가능하다.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 안에서 
사람들은 
인간 존재 안에서부터 표현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아야 한다. 
그들이 
처신하는 법, 
옷을 입는 법, 
서로를 대하는 법, 
가정생활을 꾸리는 법, 
일상생활을 해 나가는 법은 
참으로 인간적이어야 하지만,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표현해야 한다. 
이것이 
합당한 교회생활이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성경의 끝에 이를 때,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왕으로서 다스릴 
이기는 이들을 본다. 
… 어떻게 이 이기는 이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왕으로서 다스릴 
자격을 갖추게 되는가? 
나는 
그들 안으로 
일해 넣어지신 
예수님의 인성을 힘입어 
그렇게 된다고 믿는다.

우리에게 
그분의 인성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깨닫도록 
주님께서 
우리를 도우시기를 바란다. 
사탄을 수치스럽게 하려면, 
우리에게는 
모든 인간 미덕들이 
필요하다.
우리 일상생활의 한 부분 한 부분이 
우리의 영 안에 있는 
주님의 인성에 
부합해야 한다. 
… 우리가 
이렇게 한다면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인성 안에서 
합당한 매일의 삶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럴 때 
우리에게는 
합당한 교회생활이 있을 것이고, 
이 교회생활이 
오늘날 이 땅에서 
하나님의 왕국이 될 것이다. 
이것은 
사탄에게는 
참으로 수치가 될 것이고, 
하나님께는 
참된 자랑이 될 것이다.

5일

요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딤후 1:9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룩한 부름으로 부르신 것은 
우리의 행위에 따른 것이 아니라, 
그분 자신의 
목적과 은혜에 따른 것입니다. 
그 은혜는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것인데,

섞임의 사상은 
성경에서 
매우 뚜렷하다. 
구약에는 
하나님의 경륜을 
성취하기 위한 
섞임의 예표가 있다. 
… 레위기 2장 4절에 있는 
소제물은 
고운 가루와 기름을 
섞어 만든 
과자로 이루어졌다. 
모든 가루가 
기름과 섞이고 연합되었다. 
이것이 섞임이다. 
바울은 
우리에게 
교회가 
고운 가루로 만들어진 
한 떡이자 한 과자라고 
말한다. 
이 고운 가루는 
밀알들로부터 나왔으며, 
밀알들은 
한 알의 밀이신 
그리스도로부터 나왔다. 
요한복음 12장 24절은 
그리스도께서 
한 알의 밀로 
땅에 떨어져 
죽으셨고 
부활 안에서 자라셨으며 
많은 밀알들, 
곧 그분의 믿는 이들인
우리를 산출하셨다고 
말한다. 
우리는 
많은 밀알들이므로 
고운 가루로 갈려서
과자이자 떡인 
교회를 
이룰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에 있는 
섞임의 사상을
볼 수 있다.

몸의 생활 안에서 
조화되고(harmonized; 어울리고, 잘 맞고, 잘 배합되고), 
섞이며(blended; 혼합되며, 잘 어우러지며), 
조정되고(adjusted; 적응되고, 바로잡히고, 정돈되고), 
연합되며(mingled; 섞이며, 어울리며, 교제하며), 
조절되기(tempered; 조율되기, 누그러뜨려지기, 가라앉혀지기, 반죽되기) 위해, 
우리는
십자가를 통과하고 
그 영에 의해 존재해야 하며 
(have to go through the cross
and be by the Spirit;
그 십자가를 통과해야만 하고
그 영 곁에[그 영에 따라] 있어야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위해 
그리스도를 
다른 이들에게 
분배해야 한다. 
…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그 영에 의해, 
그리스도를 분배하기 위해 
그 일을 해야 한다. 
또한 우리가 하는 일은 
우리의 입맛에 따른 것이거나
(to our taste;
우리의 기호를[취향을] 따라서나)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for our interest; 
우리의 이익을[이권을, 이해관계를, 관심사를, 호기심을, 중요함을] 위하지 않고),
교회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우리가 
이 중점들을
(these points;
이 요점들을, 이 요소들을, 이 사항들을)
실행한다면 
우리에게 
그 섞임이(the blending) 있을 것이다.

한 동역자가 
어떤 것을 할 때 
그는 
다른 동역자들과 
교통해야 한다. 
한 장로는 
다른 장로들과 
교통해야 한다. 
교통은 
우리를 조절하고 
교통은 
우리를 조정하며, 
교통은 
우리를 조화되게 하고, 
교통은 
우리를 연합되게 한다.

섞임은 
조용히 있거나 
말을 많이 하는 
문제가 아니라 
조절되는 문제이다. 
우리는
조절되었기 때문에 
조화될 수 있다. 
결국 
모든 차이점들은 
사라질 것이다. 
섞임은
차이점들을 잃어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모두는 
섞임을 실행하기 위해 
얼마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바울이 
디모데와 디도에게 
편지를 썼을 때의 
초대 교회가 처한 것과 
정확히 같은 
상황에 있다. 
그 당시 
교회는 
타락했고
(was degraded; 하락했고, 강등됐고, 낮아졌고)
사회는 
부패했는데
(was ruined; 타락했는데, 망쳐졌는데, 황폐하게 되었는데),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모두는 
주님의 회복을 위해 
그분의 인성이 요구되는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흐름에 
거슬러 맞서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거슬러 맞서는가? 
신성한 능력에 의해서인가? 
이 세 권의 책에서는 
신성한 능력에 관한 것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이 책들은
바울의 후기 사역에서 
나온 것들인데, 
바울의 후기 사역은 
예수님의 인성과 
깊은 관계가 있다.

동역자들, 장로들, 
집사들, 여집사들을 포함하는 
교회 봉사를 위해서 
예수님의 인성이 
필요하다. 
봉사하는 
이 모든 사람들과 관련된 
모든 구절이 
합당한 인성에 속한 
인간 미덕들에 대해 
무언가를 말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능력에 있어서 
본이 되라고 말하지 않고, 
사랑과 말과 행실에 있어서 
본이 되라고 말했다. 
이것은 모두 
인성에 관한 
문제이다. 
교회 봉사를 위하여 
갖추어야 할 
모든 자격은 
인간 미덕들이다. 
동일한 원칙이 
그리스도인의 
행함에(walk; 행실에, 생활 태도에) 
적용된다. 
젊은 형제자매들을 대할 때뿐만 아니라
연장한 형제자매님들을 대할 때에도 
(To deal with the older brothers and sisters
as well as the young brothers and sisters;
연상의 형제들과 자매들 뿐만 아니라
젊은 형제들과 자매들을 대할 때에도)
높이 올려진 
예수님의 인성이 
필요하다.

이 세 권의 책을 볼 때, 
우리는 그러한 타락의 때에 
주님의 회복을 가지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강하고 적합하고 합당한 
인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처럼 타락한 시대에 
서 있을 수 있기 위해서는
(to stand up;
선 채로 있기 위해서)
우리에게 
신성한 능력보다 
예수님의 인성이 
더 많이 필요하다. 
… 주님의 회복을 위하여 
우리는 오늘날 
이 시대의 흐름을 거슬러 
서 있을 수 있기 위해 
강한 등뼈가
(a strong backbone;
척추가, 중추가, 근간이, 중요한 요소가)
필요하며, 
이 등뼈는 
오직 예수님의 인성으로부터 
산출될 수 있다.

4일

레 2:3 
소제물 가운데 남은 것은 
아론과 그 아들들의 것이다. 
이것은 여호와에게 바치는 
화제물 가운데 
지극히 거룩한 것이다.

고전 10:17 
떡이 
하나이요, 
우리 많은 사람이 
한 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한 떡에 참여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생활은 
고린도전서 10장 17절의 
한 떡으로 상징되는 
단체적인 소제물이다.
“떡이 
하나이요, 
우리 많은 사람이 
한 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한 떡에 참여하기 때문입니다.” 

이 떡은 
단체적인 생활을 
상징한다.

우리는 
단체적으로 
떡과 잔에 참여한다. 
이렇게 떡과 잔에 
단체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교회생활을 나타내는 상징이며, 
또한 교회생활의 증거이다.

고린도전서가 다루는 
모든 요점은 
단체적인 생활인 
교회생활과 관련된다. 
이 책에 따르면, 
이러한 단체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 
우리는 
성령으로 기름 발라진 
사람이 되어야 하고, 
유향인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십자가 아래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며, 
누룩이나 꿀을 
갖지 않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소제물인 
교회생활이다.

교회생활 전체가 
소제물이다. 
이 소제물의 
최상의 부분은 
하나님의 누림을 위한 것이며, 
우리는 
그 남은 부분을 
하나님을 섬기면서 
우리의 매일의 음식으로 
취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만족을 위한 
음식이자 
다른 이들의 영양 공급을 위한 
음식인 
소제물이다.

하나님은 
각 지방에서 
소제물을 
가지려고 하신다. 
하나님은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이 
그분을 만족시켜 드리고 
성도들에게 매일 
충분한 양식을 공급해 주는 
소제물이 되기를 
갈망하신다.

우리의 배고픔은 
그리스도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교회생활에 의해서 만족된다.
교회생활은 
단체적인 소제물이기 때문에 
우리를 만족시켜 준다. 
단체적인 소제물인 
교회생활의 최상의 부분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고, 
나머지 부분은 
우리를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생활에 의해 
교회생활을 먹는다. 
교회생활은 
우리에게
매일의 공급이 되는 
소제물이다. 
소제물인 
교회생활로 인하여 
주님을 찬양한다!

소제물에는 
개인적인 방면이 있는 동시에 
단체적인 방면이 있다. 
오늘날 그리스도는 
단지 개인적으로 사실 뿐 아니라 
또한 그분의 몸인 
교회와 함께 사신다. 
그리스도는 
단체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사신다. 
그분은 
머리이시며, 
지체들로 이루어진 
몸을 가지고 계신다. 
그러므로 과자 형태의 소제물에서 
우리는 
교회생활을 
본다.

과자 형태의 소제물을 
가지기 위해서 
우리는 
기름과 연합된 
고운 가루가 
필요하다.
고운 가루가 
기름과 연합되면 
반죽이 된다. 
그런 다음 
이 반죽은 
화덕에 구워져 
과자가 된다. 
이 과자는 
교회생활의 상징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생활과 
우리의 
개인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결국 하나의 총체가 되고, 
이 총체가 
바로 교회생활이라는 것을 
가리킨다.

교회생활은 
천사와 같은 생활이 아니라 
인성이 충만한 생활이다. 
그러나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천사처럼 되도록 노력해야 하며 
더 이상 사람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는 
말을 들었다. 
이러한 관념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 교회생활을 가지기 위해서 
우리는 
매우 인간적이 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 인성은 
성령과 분리되어서는 안된다. 
도리어 이 인성은 
성령과 연합되어야 하며, 
성령이 
이 인성 위에 
부어져야 한다. 
바꾸어 말하자면, 
교회생활을 위해 
우리는 
기름 발라진 사람들, 
곧 성령에 의해,
성령으로 
기름 발라진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소제물인 
교회생활은 
하나님을 만족시켜 드리는 
향기를 내기 위해 
태워질 수 있으며, 
이 제물의 
남은 부분은 
우리의 음식이 
될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의 교회 생활을 
먹게 될 것임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교회생활이 
우리의 
매일의 공급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매일의 공급이 되는 
소제물은 
단지 그리스도만이 아니라 
교회생활과 함께하시는 
그리스도이다. 
지금 우리는 
그리스도를 먹고 있으며 
또한 교회생활을 먹고 있다. 
우리는 첫 번째 형태인 
고운 가루 형태의 소제물,
곧 개인적인 그리스도를 
먹을 뿐 아니라, 
두 번째 형태인 
과자 형태의 소제물, 
곧 단체적인 그리스도인 
교회도 먹는다. 
나는 
우리가 
장차 모든 교회들에서 
하나님을 먼저 만족시켜 드리고 
또한 우리를 먹이는 생활인, 
소제물인 
교회생활을 
보게 될 것임을 
믿는다.

3일

눅 2:40 
그 아기 예수님은 
자라시면서 
강하여지시고 
지혜가 충만해지셨으며,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하였다.

마 5:48 
그러므로 
여러분의 하늘의 아버지께서 
온전하신 것같이, 
여러분도 
온전하게 되십시오.

누가복음은 
또한 사람-구주 안에 
최고 수준의 도덕성을 산출하는 
신성한 속성들과 
인간 미덕들의 
연합이 있음을 
계시한다. 
누가복음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사람, 
곧 완전한 하나님이시자 
온전한 사람이신 
사람-구주 안에 
인간 미덕들과 
신성한 속성들의 
연합이 있음을 
본다. 
완전한 하나님이신 그분은 
신성한 속성들을 지닌 
신성한 본성을 소유하셨으며, 
온전한 사람이신 그분은 
인간 미덕들을 지닌 
인간 본성을 소유하셨다. 
그러므로 
그분의 인격 안에서 
우리는
최고 수준의 도덕성을 가진 
생활을 살기 위한, 
신성한 속성들을 지닌 
신성한 본성과 
인간 미덕들을 지닌 
인간 본성을 
본다.

사람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는 
풍성한 속성들을 지니신 
넘치는 하나님을 
그분의 인성 안에서 
그분의 향기로운 미덕들을 통해 
표현하셨다. 
하나님은 
사랑과 빛과 
거룩함과 의와 같은 
그분의 풍성하고 다양한 
속성들에 있어서 
넘치시며, 
하나님의 속성들은 
사람 예수님을 통해 
살아 나타났고, 
하나님의 모든 속성들은 
사람 예수님의
미덕들이 되었다.

예수님의 사랑은 
신성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신성한 사랑으로 
채워지고 강화되며 
높여지고 부요해진 
인간적인 사랑이다. 
이 기이한 사랑은 
신성한 사랑과 
인간적인 사랑이 
연합하여 
하나로 구성된 것이다. 
이 사랑이 
사람-구주의 삶, 
곧 하나님-사람의 삶이었다.

바로 이러한 종류의 삶이 
주 예수님께 
우리의 사람-구주가 되실 
자격을 주었다. 
그분은 
이렇게 인간적이고도 신성한 삶, 
즉 인간적이지만 신성하고, 
신성하지만 인간적인 삶에 의해 
죄인들을 구원하셨다. 
… 주님의 삶은(His living)
그분께서 
불쌍한 죄인들을 
구원하실 수 있게 하는 
역동적인 능력이었다.

우리가 
최고 수준의 도덕성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도덕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우리는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의 분배를 통해 
얻어지는 
최고 수준의 도덕성과 미덕들을 
말하는 것이다. 
최고 수준의 도덕성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수준의 생활이다. 
이것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삶인데, 
그분의 생활은 
신성한 속성들을 지니신 
하나님과 
인간 미덕들을 지닌 
사람으로
구성된 생활이었다. 
그분은 
이 땅에서 
사람의 미덕들 안에서 
하나님의 속성들을 표현하는 
그러한 생활을 하셨다. 
신약 경륜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의도는 
그리스도 안의 모든 믿는 이들이 
하나님-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재생산이 되어,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해 창조하신 
모든 인간 미덕들 안에서 
그분을 표현하는 것이다. 
하나님-사람의 신성한 속성들로 말미암아 
이러한 미덕들은 
강화되고, 풍성해지며, 
높여지고, 충만하게 된다.

로마서 8장은 
우리가 
소제물이신 그리스도의 
복사판이 되어야 함을 
분명하게 계시한다. 
우리는 
그분의 복사본과 재생산이 되어 
그분과 똑같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는 
육체 안에 있는 사람이 되셨으며, 
오늘날 우리도 
육체 안에 있는 사람들이다.
육체 안에 있는 사람이신 
그리스도는 
그 영으로 
기름 발라지셨다. 
오늘날 우리도 
내주하시는 영으로 
기름 발라지고 있다. 
그 영은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우리에게 기름 바르시는 일을 
하고 계신다. 
내주하시는 영께서 
우리에게 기름을 바르시기 때문에,
우리는 
생각을 
육체가 아닌 
우리의 영에 
두어야 한다. 
이럴 때 우리는 
그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일 수 있다. 
이럴 때 우리는 
살게 될 것이며, 
이러한 생활은 
부활 안에 있는 
생활일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의 만족을 위한 
소제물이 되기에 
적합하게 될 것이다.

소제물의 목적은 
하나님을 만족시켜 드리는 것이다. 
소제물의 최상의 부분, 
곧 유향을 포함하는 부분은 
하나님의 만족을 위하여 
불로 태워졌다. 
오늘날 
그리스도는
소제물의 실재이시다. 
그분만이 홀로 
하나님의 만족을 위해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향기를 가지고 계신다. 
온 우주 안에서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께 불로 태워 드려져, 
하나님을 만족하게 하고 
하나님을 기쁘고 즐겁게 하는 
향기를 내는 
유일한 분이시다.

그리스도의 지체들인 
우리는 
그분의 복사판이 되어 
그분이 사셨던 것과 똑같은
생활을 살아야 한다.

2일

눅 1:35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그대 위에 임하시고,
가장 높으신 분의 능력이 
그대를 덮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태어나실 거룩하신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실 것입니다.

눅 2:52 
예수님은 
지혜와 키, 
그리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그분 안에 나타난 은혜가 
자라 가셨다.

그리스도의 육체 되심이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는 것은 
매우 중대한 일이다. 
비록 우리가 과거에 
이것을 간략하게 살펴보았지만 
충분하게 다루지는 못하였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육체 되심이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에 
깊은 인상을 
받아야 한다. 
… 하나님께서 
그분의 형상대로 
그분의 모양에 따라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은, 
사람이 
하나님을 
생명으로 받아들여 
그분의 모든 속성들을 
표현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 사람-구주의 
육체 되심은 
하나님을 
사람 안으로 이끌어 와 
손상되고 잃었던 
인성을 복원하고 회복하여, 
인간 미덕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속성들을 
표현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깊고 심오하며 
신성하고 비밀하여
우리의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다.

하나님-사람이신 
주 예수님은 
모든 신성한 속성들을 포함한 
신성한 본질과 
모든 인간 미덕들을 포함한 
인간 본질로 
구성되신 분이시다. 
그분은 
이 땅에 계실 때,
신성한 속성들과 
인간 미덕들로 
구성된 생활을 사셨다. 
이것이 
최고 수준의 도덕성이다. 
최고 수준의 도덕성은 
주 예수님의 생활인데, 
그분의 생활은 
바로 신성한 속성들을 지니신 
하나님과 
인간적인 미덕들을 지니신 
사람으로 
구성된 생활이었다.

침례자 요한의 잉태는 
구주 예수님의 잉태와 
본질상 현저하게 다르다. 
침례자가 잉태된 것은 
신성한 본질과는 관계없이, 
하나님께서 
단지 신성한 능력을 통해 
나이 많은 사람의 
본질을 가지고 
이루신 기적이었다. 
이 일의 결과로 
하나님의 성령은 
충일했지만, 
하나님의 본성이 없는 
한 사람이 
출생했을 뿐이었다. 
구주의 잉태는 
하나님께서 
육체가 되신 것으로서, 
신성한 능력으로 
조성되었을 뿐 아니라 
사람의 본질에 
신성한 본질이 더해져서 
조성되었으며, 
이로써 두 본성
—신성과 인성—을 지니신 
하나님-사람이 
산출되었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은 
그분 자신을 
인성과 연결하셔서
육체 안에서 나타나셨고 
사람-구주가 되셨다.

사람-구주는 
실재의 인간 본성과 
온전한 인간 미덕들을 가진 
진정한 사람이시다. 
여기서 우리는 
인성 면에서 
사람-구주를 묘사하기 위해
‘진정한’, ‘실재의’, ‘온전한’이라는 
세 개의 수식어를 
사용했다. 
사람으로서 사람-구주는 
진정한 사람이시다. 
그분의 본성은 
실재의 인간 본성이다. 
즉 그분은 
유령이 아니라 
실재의 사람이셨다. 
더 나아가 
사람-구주의 인간 미덕들은 
온전하다. 
사람의 구주가 되실 
자격을 갖추시기 위하여 
주 예수님은 
실재의 인간 본성과 
온전한 인간 미덕들을 지니신
진정한 사람이셔야 했다. 
그분은 
진정한 사람이시고, 
실재의 인간 본성을 가지고 계시며, 
온전한 인간 미덕들을 가지고 계시므로 
사람-구주가 되실 
자격이 있으셨다.

우리는 
사람-구주께서 
진정한 사람이시고 
완전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그분은 
실재의 인간 본성과 
온전한 인간 미덕들을 지니신 
진정한 사람이시며, 
참되고 신성한 본성과 
뛰어나고 신성한 속성들을 지니신 
완전한 하나님이시다. 
… 인성에 관하여 
사람-구주는 
참이시고 실재이시며 온전하시다. 
… 신성에 관하여 
그분은 
완전하시고 참되시며 뛰어나시다. 
그분은 
완전한 하나님이시고, 
참된 신성한 본성을 지니셨으며, 
뛰어난 신성한 속성들을 지니셨다. 
그분의 인간 미덕들은 온전하지만 
그분의 신성한 속성들은 뛰어나다. 
그분의 속성들은 
우수하고 탁월하다.

사람-구주의 
신성한 본성과 
뛰어난 신성한 속성들은 
사람을 구원하는 
그분의 능력을 
강력하게 하고 
확실하게 한다. 
그분의 인성 안에는 
우리를 구원하는 능력,
곧 구원을 위한 능력이 있다. 
그러나 이 능력은 
그분의 신성으로 인해 
강력하고 확실하게 된다. 
우리를 구원하는 
그분의 능력은 
그분의 신성에 의해 
보장된다.

 

1일

레 2:1 
누구든지 
여호와에게 
소제물을 
제물로 바칠 때에는 
고운 가루를 바치되,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야 한다.

요 6: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셔서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입니다.

소제물은 
하나님을 위한 
음식이시며, 
특별히 
하나님과 교통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이들을 위한 
음식이신, 
인성을 가지신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인성을 가지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음식이시고, 
우리의 끊임없는 만족이시다.

소제물은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만든 것이다. 
고운 가루는 
곱고 고르며, 
그리스도의 
균형 잡혀 있고 곱고 고른 
완전한 인성을 
예표한다. 
사복음서는 
주님께서 
그분의 인간 생활에서 
보여 주신 
고운 행실을 
묘사해 준다. 
고운 가루와 연합된 기름은 
신성한 영을 상징한다. 
이 연합은 
주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인성과 신성의 연합을 
예표한다. 
소제물에 더해진 
유향은 
부활 생명의 향기를 
상징한다. 
이것이 
소제물로 예표되신 
그리스도, 
곧 신성과 인성의 연합으로서 
부활 생명의 향기를 나타내심으로 
우리의 매일의 영양분과 공급이 되시는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사셨던 생활은 
누룩과 꿀이 없는 생활이었으며, 
오늘날 우리도 
이와 같은 생활을 
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네 가지 긍정적인 요소들, 
곧 고운 가루와 기름과 유향과 소금이 
필요하지만, 
두 가지 부정적인 요소들인 
누룩과 꿀은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상황이 이러하다면, 
우리는 
합당한 소제물, 
곧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부활 안에서, 
기름과 같은 신성으로 적셔진 
(신성으로 기름 발라진)
인성으로 구성되며 
누룩이나 꿀이 없는 
제물이 될 것이다. 
이런 생활은 
하나님을 만족시키는 음식이며, 
또한 하나님의 섬기는 이들인 
우리를 양육하는 
음식이기도 하다.

사도행전 27장과 28장에서 
바울은 
그의 문화와 성격에 
완전히 반대되는 상황에서 
그리스도를 살았다. 
많은 것들이 
실망과 낙심을 주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가장 높은 표준의 
생활을 하였다. 
… 사복음서에서 사셨던 
놀랍고 뛰어나고 비밀하신
‘하나님-사람’께서 
바울 안에서 사셨다. 
바로 이분께서 
그분의 많은 지체들 중의 
한 지체를 통하여 
계속해서 사신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그분의
신성하게 부요하게 된 
인성 안에서 
다시 사신 것이었다. 
그러므로 바울의 삶은 
예수님의 삶의 반복이었다.

그리스도는 
이처럼 
모든 것을 포함하시고 
탁월하시며 
놀라우신 분으로서 
여러 방면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이러한 분을 
체험하기 위하여 
우리는 
그분을 
믿고
사랑하며
먹고 마시고
누려야 하며
그분을 살고 
확대해야 한다.

누가복음에서 우리는 
창세기 1장과 2장에서 
하나님께서 
얻으려고 하셨던 
사람을
본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사람을 
얻는 것이었음을 
의미한다. 
창세기 1장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사람을 본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속성들에 따라 
창조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은 
사랑과 빛이시며 
거룩하시고 의로우시다. 
사랑과 빛과 거룩함과 의는 
하나님의 속성들이며, 
하나님은 
이러한 속성들에 따라 
사람을 창조하셨다. 
그러나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은 
단지 
하나님의 형상을 
가졌을 뿐이다. 
이 사람은 
그 안에 
하나님을 소유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는 
단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이었을 뿐, 
아직 
하나님-사람은 아니었다.

디모데전서 3장 16절은
“모두가 인정하듯이, 
경건의 비밀은 
위대합니다! 
그분은
육체로 나타나셨고”

라고 말한다. 
… 여기에서 
경건은 
독실함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 
하나님께서 사시는 것, 
즉 교회 안에서 
우리가 살아 낸 
생명이신 
하나님을 가리킨다. 
경건은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시고 
사람이 하나님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우주 안에 있는 
위대한 비밀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신 것은 
사람이 
하나님이 되게 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육체 안에서 
새사람으로서 나타나시도록 
단체적인 한 하나님-사람을 
산출하시기 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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