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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부흥을 위한 거룩한 말씀

민수기에 나오는 그리스도에 관한 주요 예표들과 예언

The Major Types and the Prophecy
concerning Christ
그리스도에 관한
그 주요한 예표들과 또 그 신언

우리는
민수기에 나오는
그리스도에 관한
주요 예표들을
보고 체험해야 한다.

아론의 싹 난 지팡이는
죽으신 그리스도가 아니라
부활하신 그리스도
곧 싹이 나신 그리스도의
예표인데,
그분은
싹을 내실 뿐만 아니라
꽃을 피우며
익은 열매를 맺으신다
― 민 17:8.

민수기 16장 3절에 있는 말과
9절과 10절에 있는 모세의 말은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있는
이 반역의 근원이
야심
곧 권력과 더 높은 지위를 얻기 위한
분투라는 것을
보여 준다.
야심은
하나님의 계획을
무산시키고
그분의 백성에게
손상을 입힌다.
수 세기에 걸쳐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발생한
많은 문제들이
야심에서 비롯되었다
― 마 20:20-28, 요삼 9-11.

하나님의 대표 권위자
혹은 위임받은 권위자로서
모세는
이 일을
최고의 권위자이신
하나님께 맡겨
그분께서
말씀하시게 하고,
드러내시게 하고,
심판하시게 했다.
권력을 얻으려
분투하는 일이 발생할 때,
참된 상황을
판단하시고
드러내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 자신뿐이다
― 민 16:4-5.

고라와
그와 함께한 다른 사람들은
산 채로
스올에 내려갔다
(민 16:33).
그들은 곧바로
그곳으로 갔는데,
그들은 먼저
죽음을 거칠 필요도 없었다
(계 19:20).
이것은
여호와께서 하신
새로운 일이었다
(민 16:29-30).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함께 반역한
이백오십 명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심판은
사람의 의견에 따라,
자신의 육체로,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며
하나님께 드린
사람의 모든 봉사에 내려진
십자가의 심판을
상징한다.

민수기 16장에 언급된
고라와 그의 무리의 반역이
제사장 직분과 관련된 것이었으므로
(3, 8-10절),
아론의 지팡이에 싹이 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제사장 직분의 사역에서
권위가 있다고 인정된 사람이
아론임을
하나님께서 입증하신 것이다
(5절).

모든 봉사의 원칙은
싹 난 지팡이에
달려 있다.
부활은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봉사에서
영원한 원칙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타고난 영역에 속하고,
우리가 하기에 불가능한 일은
부활의 영역에 속한다
― 롬 1:9, 7:6, 고후 1:8-9.

붉은 암송아지는
부정을 씻는
물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주된 요소로서,
구속하시는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 민 19:2, 9.

붉은색은
죄의 육체의 모양을
상징하며,
이것은
외적으로
사람의 죄를
담당하기 위한 것이다.

흠 없는 암송아지는
비록 그리스도께서
죄의 육체의 모양을
지니셨을지라도
그분께는
죄의 본성이
없으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암송아지가
흠이 없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온전하셨다는 것을
가리킨다.

암송아지가
한 번도
멍에를 멘 적이 없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결코
누군가에게
특히 하나님의 원수인
사탄에게나 사탄을 위해서
이용된 적이 없으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붉은 암송아지처럼,
그리스도는
진영 밖에서
곧 예루살렘성 밖에 있는
작은 언덕인 갈보리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 민 19:3, 히 13:12-13, 마 27:33.

“제사장은
백향목과 우슬초와 진홍색 실을
가져다가
암송아지가 불타고 있는
그 가운데로 던져야 한다.”
― 민 19:6.

백향목은
고귀하게 높아진 인성을 지니신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우슬초는
낮아진 인성을 지니신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진홍색은
지고한 의미를 지닌
구속을
상징한다.

이것은
높고 위엄 있으신 그리스도와
구속 안에서
낮추시고 겸손하신 그리스도가
부정을 씻는 물의
요소이시라는 것을
의미한다
― 민 19:9.

민수기 19장 9절은
“정결한 사람이
그 암송아지의 재를 거두어
진영 밖 정결한 곳에
갖다 놓아야 한다.
그것은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을 위해
보관하여
부정을 씻는 물을 만드는 데
사용해야 한다.
이것이 속죄제이다.”
라고 말한다.

재는
그리스도께서
감소되시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셨음을
의미한다
(막 9:12).
그 재는
부정을 정결하게 하는
물을 만들기 위해
보관되었다.
그것은
죄를 정결하게 하는 것이었으며,
일종의 속죄제였다.

민수기 19장에서
부정은
죽음을 말한다.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죽음이 만연하게 되었다
(민 16:49).
따라서 정결하게 하는
물이 필요했다.

“부정하게 된
사람들을 위해서는
속죄제물을 태운
재의 일부를 가져다가
흐르는 물과 함께
그릇에 담아야 한다.”
― 민 19:17.

오직 그리스도의 구속이
그분의
위엄 있으면서도 낮아진
인성을 통하여
그분의 죽음과
그분의 부활의 영과 함께
운행할 때에만
(민 19:17),
죽음으로 부정하게 된
상황이
치료되고
정결하게 될 수 있다.

여기에서
살아 있는(흐르는) 물은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 계신
성령을 의미한다.
부정을 정결하게 하는
물 안에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효능과
부활의 영의 씻는 능력이 있다.

민수기 20장 8절에서
반석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예표이고,
반석에서 흘러나온
물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에게서 흘러나오신
생수이신
그 영의 예표이다
― 고전 10:4, 요 19:34.

그리스도께서
이미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그 영께서도
이미 주어지셨으므로
그리스도께서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실
필요가 없다.
즉, 생수가 흐르도록
다시 반석을 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그리스도는
오직 한 번만
십자가에 못 박히셔야 한다
― 히 7:27, 9:26-28상.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에게서
생수를 받기 위해서
우리는 다만
‘지팡이를 들고
반석을 향해
말하면’ 된다.
지팡이를 드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
그분과 동일시되며,
그리스도의 죽음을
우리 자신과
우리의 상황에
적용하는 것이다.
반석을 향해
말하는 것은
매 맞은 반석이신
그리스도께
직접 말하는 것이며,
그 영께서
이미 주어지신
사실에 근거하여
생명의 영을 주시도록
그분께
요청하는 것이다
― 요 4:10.

민수기 20장에서
모세는
백성을
반역자라고
유죄 판결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거슬러
반역한 사람은 바로
모세였다
― 민 20:10-11, 24, 27:14.

모세는
하나님을 속되게 만듦으로써,
하나님을
거룩하시게 하지 못하였다.
모세는
백성에게
화를 낸 일과
반석을 두 번 치는
잘못을 저지른 일에서
하나님을
거룩하시게 하지 못하였다.

하나님은
화를 내지 않으셨는데
모세는
화를 냄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한 본성을
합당하게 대표하지 못했고,
반석을 두 번 침으로써
그는
하나님의 경륜과 관련된
그분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다.
결국 모세는
하나님의 거룩한 본성과
그분의 신성한 경륜을
둘 다
손상한 것이다.

비록 모세가
하나님과 친밀했고,
하나님의 동반자로
여겨지기도 했지만
(출 33:11),
이 일 때문에
그는
좋은 땅으로 들어갈
권리를 잃어버렸다.

하나님의 백성에 관하여
우리가 말하고
하나님의 백성 앞에서
우리가 행동하는
모든 것에서,
우리의 태도는 반드시
하나님의 거룩한 본성을
따라야 하며,
우리의 행동은 반드시
그분의 신성한 경륜을
따라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의 말과 행동에서
우리는
그분을 거스르고
그분께 죄를 짓게 될 것이다.

민수기 21장
4절부터 9절까지에 나오는
놋 뱀은
주 예수님의 예표이며
(요 3:14-15),
그분은
우리의
대속자와 대치물로서
죄의 육체의 모양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이것은
우리가
그분을 ‘쳐다보고(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시려는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을 거슬러
범죄했을 때,
그들은
뱀에게 물렸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들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놋 뱀을 들어 올리라고
말씀하셨으며,
누구든지
그 놋 뱀을 쳐다보는 사람마다
살리셨다.

주 예수님은
놋 뱀의 형체와 같은
‘죄의 육체의
모양’(롬8:3)으로
오셨다.
놋 뱀은
뱀의 형체는
가지고 있었지만,
뱀의 독은 없었다.

그리스도는
‘죄의 육체의
모양’이 되셨지만,
그분은
어떤 방식으로도
육체의 죄에
참여하지 않으셨다
― 고후 5:21.

주님께서
육체를 입으시고
십자가에
높이 들어 올려지셨을 때,
옛 뱀 사탄은
그분의 죽음을 통하여
처리되었다.
이것은 또한
타락한 사람 속에 있는
뱀의 본성이
처리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 히 2:14, 요 1:29.

날마다 우리는
속죄제물의 실재이신
주님을 누릴 수 있고
이러한 주님을
우리의 존재에
적용할 수 있다.
그분은
죄를
처리하는 생명,
곧 우리의 죄악된 본성을
처리하는 생명이시다.

도피성은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체현이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의 예표이며,
실수로
죄를 지은 사람들은
그분 안으로 도망하여
피신할 수 있다
― 민 35:6-7, 9-34.

그리스도는
하나님에 의해
죄인들,
곧 실수로
그분을 죽게 한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셨다
― 행 2:23, 롬 4:25,
눅23:34, 고전 2:8.

만일 어떤 죄인이
회개하면
하나님은
그를
실수로
죄를 지은 사람으로 여기시고
용서하실 것이다.
그러한 사람은
그리스도 안으로
피신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어떤 사람이
복음을 거절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그를
자의로
죄를 지은 사람
곧 멸망할 운명에
처한 사람으로
여기실 것이다
― 눅 24:47, 행 2:38,
민 35:16, 요 3:16-18.

도피성 여섯은
셋씩
요단강 양쪽으로
있었다.
숫자 6은
실수하는 사람
곧 하나님께서
여섯째 날에
창조하신 사람을
상징한다
― 민 35:14, 창 1:26-27, 31.

숫자 3은
실수한 사람을 위한
도피처이신
삼일 하나님을
상징한다.
숫자 2는
(세 성씩 두 편)
우주 안에 세워진
증거를 상징하는데,
그 증거는
삼일 하나님께서
이 땅의 인류 가운데
살아 계시며
그들을 위한
도피성이 되신다는 것을
우주를 향하여
증언하고
선포하는 것이다.

레위인들에게
마흔여덟 개의 성이
주어졌다
(민 35:7).
이 마흔여덟 개의 성은
이스라엘 가운데
흩어져 있었고,
이스라엘에게
놀라울 만큼 유용한
축복이 되었다.

도피성들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것일 뿐 아니라
그들 가운데 있는
나그네와 체류자를 위한 것이었다.
이것은
실수하는 사람을 위한
도피처이신
삼일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를 위한 분이시라는 것을
상징한다
― 민 35:15.

더 나아가
여섯 도피성이
여러 곳에
분포되어 있었다는 것은
삼일 하나님의 체현이신
그리스도께서
가까이 계시며
유용한 분이시라는 것을
보여 준다.
삼일 하나님은
사람들 가운데로,
즉 우리가 있는
바로 그곳까지
널리 퍼지셔서,
실수한 모든 사람을 위한
도피성이 되신다.

엄격히 말해서,
민수기에서
예언으로 볼 수 있는
유일한 부분은
24장 14절부터 25절까지이며,
성경 해설가들은
이 부분을
‘발람의 예언’이라고
부른다.
이 예언은
14절의
‘훗날(in the last days:
직역하면 ‘마지막 때’)’
이라는 표현이
가리키듯이
주님께서 두 번째 오실 때
일어날 일들에 대해
말해 준다.

야곱에게서 나온
별과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는
왕의 지휘봉은
모두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 민 24:17.

주님은
태어나셨을 때
밝은 별로 나타나셨고
(마 2:2),
두 번째 오실 때에도
밝은 별로
나타나실 뿐 아니라
(계 2:28, 22:16),
그분의 두 번 나타나심 사이에 있는
이 시대에서도
그분께 속한 이들의
마음속에
샛별처럼 떠오르신다
(벧후 1:19).

왕의 지휘봉은
그리스도의 통치를
가리킨다.
왕의 지휘봉을 가진 사람은
보좌 위에 있고
모든 것을 포함한
능력과 권위를
가진 사람이다
― 시 2:9, 45:6,
창 49:10, 계 2:26-27.

민수기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역사는
교회의 역사를
상징한다
(고전 10:5-6, 민 24:9하).
이 역사들 마지막에
그리스도는
별과
왕의 지휘봉으로서
나타나셔서
모든 백성들에게
빛을 비추시고
온 땅을
통치하실 것이다.
그때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는
모든 것들이
제거될 것이고,
하나님의 백성은 더 이상
고통을 겪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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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replies on “민수기에 나오는 그리스도에 관한 주요 예표들과 예언”

6일

민 24:17-19
내가
그분을 보나
당장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분을 바라보나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별 하나가
야곱에게서 나오고
왕의 지휘봉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리라.
그분은
모압의 네 모퉁이를
깨뜨리시고
셋의 모든 자손을
멸망시키시리라.
에돔은
그의 소유가 되며
―원수 세일도
그의 소유가 되며―
이스라엘은
용맹을 떨치리라.
야곱에게서 나온 이가
통치권을 갖고
그 성에서 나온 남은자들을
멸망시키리라.”

민수기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여 주는 책이며,
이스라엘의 역사는
교회의 역사의 예표이다.
엄격히 말해서,
민수기에서
예언으로 볼 수 있는
유일한 부분은
24장 14절부터 25절까지이며,
성경 해설가들은
이 부분을
‘발람의 예언’이라고 부른다.
이 예언은
14절의
‘훗날’(in the last days:
직역하면 ‘마지막 때’)
이라는 표현이 가리키듯이
주님께서
두 번째 오실 때
일어날 일들에 대해
말해 준다.

민수기 24장 17절에 나오는
별과
왕의 지휘봉은
모두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 별은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별은 밤에 나타난다.
둘째,
별은 하늘에 있다.
셋째,
별은 밝다.
주 예수님의
두 번의 나타나심에 대해
말할 때,
성경은
그분을
별로 언급한다.
그분의 첫 번째 나타나심은
그분의 출생이었다.
이방인 박사들은
동쪽에서
그분의 별을
보았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분께서
어디 계십니까?
우리가
그분의 별이
떠오르는 것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마 2:2)
라고 말했다.
주님의 두 번째 나타나심은
그분의 두 번째 오심이다.
요한계시록 2장에서
주님은
두아디라 교회의
이기는 이들에게
“나는 또
그에게
샛별을 줄 것이다.”
(28절)
라고 말씀하셨으며,
22장에서
주님은 다시
“나는
… 빛나는 샛별이다.”
(16절)
라고 말씀하셨다.
이 두 부분 모두
두 번째 오실 때의 주님을
샛별로
언급하고 있다.

주님의
두 번의 나타나심 사이에 있는
이 시대에서
주님은 또한
그분께 속한 이들의
마음속에
샛별처럼 떠오르신다
(벧후 1:19).
구원받은 모든 사람 안에는
별처럼 떠오르시는
그리스도께서 계신다.
그분은
가장 먼저
우리의 구주로
우리에게 나타나셨고,
영광 안에서
두 번째 나타나실 때까지
거듭해서
우리 안에서
떠오르실 것이다.
오늘날
그분께서
우리 안에서
샛별로서 떠오르시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두 번째 오심을
바라보게 한다.

민수기 24장 17절에서
왕의 지휘봉은
그리스도의 통치를
가리킨다.
왕의 지휘봉을
가진 사람은
보좌 위에 있고
권위를 가진 사람이다.
예를 들면
시편 2편 9절은
그리스도에 관해서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라고 말한다.
시편 45편 6절은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원하며
주의 나라의 지휘봉은
공평한 지휘봉이니이다”
라고 말하고,
시편 110편 2절은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지휘봉을
내보내시리니
주는
원수들 중에서
다스리소서”
라고 말한다.
창세기 49장 10절은
“왕의 지휘봉이
유다에게서
떠나지 않으며
통치자의 지휘봉이
그의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않으리니
실로께서 오실 때까지
그러할 것이며
백성들이
그분께 순종할 것이다.”
라고 말한다.
… 이 절들에서
우리는
왕의 지휘봉이
그리스도께서
보좌에 앉으시고
왕권을 얻으셔서
그분의 왕국의 권위를
행사하시는 것을
언급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가
별에 관한 절들과
왕의 지휘봉에 관한 절들을
함께 둔다면,
우리는
주님께서
두 번째 오실 때
보좌에 앉아
그분의 왕국 안에서
그분의 권위를
행사하실 것임을
볼 수 있다.

발람의 예언은
현시대가
완전히 어둡다는 것을
가리킨다.
현시대는
어둠이 통치하는 시대이고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하지 않는 시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과
왕의 지휘봉이
야곱에게서 나왔으며,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날 것이다.
그리스도는
밝은 샛별로서
이 어둠의 세상을
비추실 것이고,
또한 왕의 지휘봉으로서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시어
이 불법의 땅을
통치하실 것이다.
오늘날 이 땅은
비추는 빛이
없기 때문에
어둡다.
또한 이 땅은
권위가 없기 때문에
혼돈이 가득하다.
주 예수님께서 오실 때,
그분은
별로서 나타나셔서
우주의 빛이 되실 것이고,
또한 왕의 지휘봉으로 나타나셔서
우주의 권위가 되실 것이다.

민수기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역사는
교회의 역사를
상징한다.
이 역사들 마지막에
그리스도는
별과
왕의 지휘봉으로서
나타나실 것이다.
그분은
오셔서
모든 백성들에게
빛을 비추시고
온 땅을
통치하실 것이다.
그때
에돔 족속과 아말렉 족속,
그리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는
모든 것들이
제거될 것이고,
하나님의 백성은 더 이상
고통을 겪지 않을 것이다.

 

5일

민 35:6-7
너희가
레위인들에게 줄
성들 가운데
여섯은
도피성이 되게 하여
사람을 죽인 이가
그곳으로
피신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리고 이와는 별도로
마흔두 성을
더 주어야 한다.
너희는
레위인들에게
마흔여덟 성과
그 초지를
주어야 한다.

도피성은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체현이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의 예표이며,
실수로
죄를 지은 사람들은
그분 안으로 도망하여
피신할 수 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에 의해
죄인들,
곧 실수로
그분을 죽게 한
사람들(눅 23:34, 고전 2:8)의 손에
넘겨지셨다
(행 2:23, 롬 4:25).
만일 어떤 죄인이
회개하면
하나님은
그를
실수로
죄를 지은 사람으로
여기시고
용서하실 것이다
(눅 24:47, 행 2:38).
그러한 사람은
그리스도 안으로
피신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어떤 사람이
복음을 거절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그를
자의로
죄를 지은 사람
곧 멸망할 운명에
처한 사람으로
여기실 것이다
(민 35:16, 요 3:16-18).

도피성 여섯은
셋씩
요단강 양쪽으로
있었다
(민 35:14).
숫자 6은
실수하는 사람
곧 하나님께서
여섯째 날에
창조하신 사람을
상징한다
(창 1:26-27, 31).
숫자 3은
실수한 사람을 위한
도피처이신
삼일 하나님을
상징한다.
숫자 2(세 성씩 두 편)는
우주 안에 세워진
증거를 상징하는데,
그 증거는
삼일 하나님께서
이 땅의 인류 가운데
살아 계시며
그들을 위한
도피성이 되신다는 것을
우주를 향하여
증언하고
선포하는 것이다
(민 35:6).

레위인들에게 준
마흔여덟 성은
이스라엘 가운데
흩어져 있게 되었다.
이것은
창세기 49장 7절에 있는
레위에 대한
야곱의 저주가
축복으로 바뀐 것이다
(민 35:8).

도피성들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것일 뿐 아니라
그들 가운데 있는
나그네와 체류자를 위한 것이었다.
이것은
실수하는 사람을 위한
도피처이신
삼일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를 위한 분이시라는 것을
상징한다.
더 나아가
여섯 도피성이
여러 곳에
분포되어 있었다는 것은
삼일 하나님의 체현이신
그리스도께서
가까이 계시며
유용한 분이시라는 것을
보여 준다.
삼일 하나님은
사람들 가운데로,
즉 우리가 있는
바로 그곳까지
널리 퍼지셔서,
실수한 모든 사람을 위한
도피성이 되신다
(민 35:15).

우리가
여섯 개의 도피성을
지도에 표시해 본다면,
이 성들이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숫자 6은
2 곱하기 3으로
되어 있다.
3은
하나님을 위한 숫자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삼일성 안에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와 관계를 맺으심으로
우리의 구원이 되신다.
… 복음은
사람들을
삼일 하나님,
곧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 안으로
침례를 주는 것이다
(마 28:19).
누가복음 15장 역시
이 삼일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오셔서
그들을
하나님께
다시 돌아오게 하신다는 것을
보여 준다.
누가복음 15장에서
목자는
주 예수님을 예표하고
(4절),
여인은
그 영을 예표하며
(8절),
아버지는
아버지 하나님을 예표한다
(20절).
고린도후서 13장 14절 역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의 세 방면을
말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이 절들은 모두
삼일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주가 되시며,
은혜이신 분으로서
우리와
친밀한 관계를 맺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계시한다.
또한 2는
증거를 위한 숫자이다.
이것은
좋은 땅 안에는
삼일 하나님께서
사람들 가운데 오셔서
사람들을 접촉하시고
사람들의 안전이 되시는 것을
나타내는 증거가
항상 있었음을
가리킨다.

민수기 35장에 따르면,
좋은 땅을 배분하는 문제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유업으로 얻은 소유 중
일부를
레위인들에게 주기를
원하셨다.
이것의 결과로
레위인들은
성들을 얻을 수 있었고,
그것들 중 일부가
도피성으로 분별되었다.
레위인들의 성들은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을 상징하고,
도피성은
죽음의 심판에서
우리를
살려 주시고
구출하시어
우리의 영적인 소유지를
회복해 주시는
우리의 구주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이것은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이
복음을 전하는 기능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구속을 받아들이고,
의롭다 함을 얻으며,
영적인 유업을 받게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거처를 얻는다.
또한 하나님은
사람들 가운데서
그분의 거처를
얻으신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안배를 하심으로 인해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하나님은
함께 건축되어
상호 거처가 되며,
이 거처는
하나님과 사람 모두에게
안식을 준다.

 

4일

민 21:7-8
백성이
모세에게 와서
말하였다.
“우리가
… 죄를 지었습니다.
여호와께 기도하여
우리에게서
뱀을 없애 달라고
해 주십시오.”
그래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불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아 놓아라.
누구든지 뱀에 물린 사람은
그것을 쳐다보면
살 것이다.”

요 3: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같이,
사람의 아들도 반드시
들어 올려져야 합니다.

놋은
심판을 상징한다.
놋 뱀은
주 예수님의 예표이며,
그분은
우리의
대속자와 대치물로서
죄의 육체의 모양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이것은
우리가
그분을
‘쳐다보고(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시려는 것이다
(민 21:9).

창세기 3장에서
뱀, 곧 사탄은
그의 본성을
사람의 육체 안에
주입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을 거슬러
범죄했을 때,
그들은
뱀에게 물렸다
(민 21:4-9).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들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놋 뱀을 들어 올리라고
말씀하셨으며,
누구든지
그 놋 뱀을
쳐다보는 사람마다
살리셨다.
그것은 예표였다.
여기 요한복음 3장 14절에서
주 예수님은
그 예표를
그분 자신에게 적용하셨는데,
이것은
주님께서
육체를 입고 계셨을 때,
놋 뱀의 형체와 같은
‘죄의 육체의
모양’(롬 8:3)으로
계셨다는 것을
가리킨다.
놋 뱀은
뱀의 형체는
가지고 있었지만,
뱀의 독은
없었다.
그리스도는
‘죄의 육체의
모양’이 되셨지만,
그분은
어떤 방식으로도
육체의 죄에
참여하지 않으셨다
(고후 5:21, 히 4:15).
주님께서
육체를 입으시고
십자가에
높이 들어 올려지셨을 때,
옛 뱀 사탄은
그분의 죽음을 통하여
처리되었다
(요 12:31-33, 히 2:14).
이것은 또한
타락한 사람 속에 있는
뱀의 본성이
처리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성한 생명으로
거듭날 때,
사람의
사탄적인 본성이
끝나게 된다.

옛 뱀은
아담의 후손인
니고데모에게
독을 주입하여
뱀의 본성이
그 속에 있게 하였다.
니고데모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께서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시어
그의 죄를 없애실 뿐 아니라
(요 1:29),
뱀의 형체가 되시어
뱀의 본성을
십자가에서 처리하시고
그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것이었다
(요 3:14).

먼저 놋 뱀은
주 예수님을
상징한다.
둘째로 놋 뱀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상징하는데,
이는
그들이
죄를 지어
장대에 달려
저주받고
심판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셋째로 놋 뱀은
뱀인 사탄을
상징한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죄를 짓기를
원했던 것이 아니라,
그들 속에 있는
뱀이
그들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한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심판하실 때
사실상 뱀을
심판하고 계셨다.
그러므로 장대에 달린 것은
사실상 뱀이었다.
사람이 죄를 지었지만,
뱀이 심판을 받았다.
이것은
죄를 지은 자가
사실상 사람 안에 있는 뱀
곧 마귀였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뱀과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장대에 달린 뱀을
심판하신 것은
또한 이스라엘 자손들을
심판하신 것이었다.

우리는 또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아니라
대속자가
하나님께 심판받은 것을
보아야 한다.
이 대속자이신 그리스도는
이스라엘 자손들과
동일시되어
그들의 대치물이 되심으로써
심판을 받으셨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두 가지 동일시를
보여 준다.
곧 그리스도께서 구속하신
백성이
사탄과
동일시된 것과,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구속받은 백성과
동일시되신 것을
보여 준다.

민수기 21장
8절과 9절은
이렇게 말한다.
“ ‘누구든지
뱀에 물린 사람은
그것을 쳐다보면
살 것이다.’
… 뱀에게 물린 사람마다
놋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
이것은
자신이
내적으로
뱀이라는 것을 본
모든 사람이
자신 안에 있는
사탄을
유죄 판결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영접하여
생명을
얻을 것임을
의미한다.

거듭남의 원칙은
우리가
사탄과 동일시되어
사탄의 일부가
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러한 동일시를
처리하셨다는 것을
보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동일시를
유죄 판결하고
주님의 구원을
받아들이며,
그 결과 우리는
살게 되고
우리 안에서 운행하는
부활 생명을
얻게 된다.
오직 이러한 방식으로만
우리는
부활과 부활 생명을
누리며
영원한 생명 안에서
살게 된다.

 

3일

민 20:8
너는
지팡이를 들고,
너의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불러 모아라.
그리고 그들의 눈앞에서
저 반석을 향해
물을 내라고
말하여라.
너는
그들을 위하여
반석에서
물이 나오게 하고
회중과 그들의 가축이
마시게 하여라.

고전 10:4
모두
똑같은 영적인 물을
마셨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을 따르는
영적인 반석에서
마셨는데,
그 반석은
그리스도였습니다.

민수기 20장에서
반석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예표이고
(고전 10:4하),
반석에서 흘러나온
물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에게서 흘러나오신
(요 19:34…)
생수이신 그 영의 예표이다
(고전 10:4상).
… 이 반석은
하나님의 백성이
광야를 통과하는 여정에
그들을 따랐던
영적인 반석이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그분의 백성을 따르는
반석이 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백성을 따르는
이 반석은
생명 주시는 영(고전 15:45)이신
부활하신 그리스도이다.
그분은 항상
교회와 함께하시며
믿는 이들에게
생명수를 공급하신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그 영께서도
이미 주어지셨으므로
그리스도께서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실
필요가 없다.
즉, 생수가 흐르도록
다시 반석을 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그리스도는
오직 한 번만
십자가에 못 박히셔야 한다
(히 7:27, 9:26-28상).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에게서
생수를 받기 위해서
우리는 다만
‘지팡이를 들고
반석을 향해
말하면’ 된다.
지팡이를 드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
그분과 동일시되며,
그리스도의 죽음을
우리 자신과
우리의 상황에
적용하는 것이다.
반석을 향해
말하는 것은
매 맞은 반석이신
그리스도께
직접 말하는 것이며,
그 영께서
이미 주어지신
사실에 근거하여
생명의 영을 주시도록
그분께 요청하는 것이다
(요 4:10).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음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하고,
우리에게
그 영을 주시도록
믿음 안에서
그리스도께 요청할 때
우리는
생명의 넘치는 공급(빌 1:19)이신
살아 계신 영을
받게 된다
(민 20:8).

하나님을
거룩하시게 하는 것은
그분을
다른 모든 거짓 신과
분별함으로써
그분을
거룩하시게 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거룩하시게 하지 않는 것은
그분을
속되시게 만드는 것이다.
모세는
백성에게 화를 낸 일(민 20:10)과
반석을 두 번 치는 잘못을
저지른 일(11절)에서
하나님을
거룩하시게 하지 못하였다.
하나님은
화를 내지 않으셨는데
모세는
화를 냄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한 본성을
합당하게 대표하지 못했고,
반석을
두 번 침으로써
그는
하나님의 경륜과 관련된
그분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다.
… 결국 모세는
하나님의 거룩한 본성과
그분의 신성한 경륜을
둘 다
손상한 것이다.
비록 모세가
하나님과 친밀했고,
하나님의 동반자로
여겨지기도 했지만
(출 33:11),
이 일 때문에
그는
좋은 땅으로 들어갈
권리를 잃어버렸다.

하나님의 백성에 관하여
우리가 말하고
하나님의 백성 앞에서
우리가 행동하는
모든 것에서,
우리의 태도는 반드시
하나님의 거룩한 본성을
따라야 하며,
우리의 행동은 반드시
그분의 신성한 경륜을
따라야 한다.
이것이
그분을
거룩하시게 하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의 말과 행동에서
우리는
그분을 거스르고
그분께 죄를 짓게 될 것이다
(민 20:12).

모세는
화를 냄으로써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의 거룩한 본성을
합당하게 대표하지 못했다.
반석을 두 번 쳤을 때,
그는
하나님의 행하심과 관련하여
하나님을
잘못 대표했다.
그러므로 그와 그의 형은
하나님께 징벌을 받아
좋은 땅에 들어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민 20:12-13, 24, 27:12-14).

민수기 20장에서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에게
화를 내지 않으셨지만
모세는
그들에게
화를 냈다.
… 화가 났을 때
모세는
하나님을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소멸시킬 때가 왔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민수기 20장에서의 문제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목마름으로 인해
일어난 것임을
알고 계셨다.
어머니가
목말라 우는 어린아이에게
화내지 않고
그 아이를 보양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그분의 목마른 백성들에게
화내지 않으시고
오히려 물을 공급할
책임을 맡으셨다.

민수기 20장 24절에서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 같다.
“너희는
나에게 순종하지 않았다.
내가
너희에게 시켰던
일을 하는 대신
너희는
다른 일을 했다.
이 백성들은
나를 비방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그들은
단지 물을 필요로 했으며,
오직 나만이
그들에게
물을 공급할 수 있다.
그들이
목마른 것은
잘못이 아니며,
그들은
나에게 반역하지 않았다.
너희는
그들을
반역자들로
유죄 판결했지만,
너희가
나의 말을 거슬러
반역한 사람들이다.”

 

2일

민 19:2
이것은
여호와가 명령하는
율법의 율례이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흠 없는 붉은 암송아지 한 마리를
너희에게 끌어오게 하여라.
그것은
흠 없고
한 번도 멍에를 멘 적이 없는
것이어야 한다.

민 19:9
그리고 정결한 사람이
그 암송아지의 재를 거두어
진영 밖 정결한 곳에
갖다 놓아야 한다.
그것은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을 위해
보관하여
부정을 씻는
물을 만드는 데
사용해야 한다.
이것이
속죄제이다.

암송아지는
부정을 씻는
물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민 19:9)
주된 요소로서,
구속하시는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붉은색은
죄의 육체의 모양을
상징하며,
이것은
외적으로
사람의 죄를
담당하기 위한 것이다.
흠 없는 암송아지는
비록 그리스도께서
죄의 육체의 모양을
지니셨을지라도
그분께는
죄의 본성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롬 8:3).
암송아지가
흠이 없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온전하셨다는 것을
가리킨다.
… 암송아지가
한 번도 멍에를 멘 적이
없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결코
누군가에게
특히 하나님의 원수인
사탄에게나 사탄을 위해서
이용된 적이 없으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출 12:5, 민 19:2)

그리스도는
진영 밖에서
(히 13:12-13)
곧 예루살렘성 밖에 있는
작은 언덕 갈보리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마 27:33, 민 19:3)

민수기 19장 6절에서
백향목은
고귀하게 높아진
인성을 지니신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우슬초는
낮아진 인성을 지니신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진홍색은
지고한 의미를 지닌
구속을
상징한다.
… 높고 위엄 있으신
그리스도와
낮추시고 겸손하신
그리스도는
구속 안에서
부정을 씻는
물의 요소이시다
(9절, 민 19:6)

민수기 19장에서
부정은
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말한다
(11, 13-16절).
죽음은
죄에서 오며,
죄는
죽음의 뿌리이다
(롬 5:12).
반역의 죄로 말미암아
(11-14, 16장)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죽음이 만연하게 되었다
(16:49).
따라서 정결하게 하는
물이 필요했다.
오직 그리스도의 구속이
그분의
위엄 있으면서도 낮아진
인성을 통하여
그분의 죽음과
부활의 영과 함께
운행할 때에만
(민 19:17)
죽음으로 부정하게 된 것을
치료하고
정결하게 할 수 있다
(민 19:9).

민수기 19장 17절에 나오는
살아 있는 물은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 계신
성령을 의미한다.
… 부정을 정결하게 하는
물 안에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효능과
부활의 영의 씻는 능력이 있다
(민 19:17).

재는
그리스도께서
감소되시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셨음을
의미한다
(막 9:12).
그 재는
부정을 정결하게 하는
물을 만들기 위해
보관되었다.
그것은
죄를 정결하게 하는 것이었으며,
일종의 속죄제였다
(민 19:9).

민수기 19장 9절에서
재는
붉은 암송아지를 태우고
남은 것을 가리키며,
주님의 구속하는 죽음이
부활 안에서
영원한 효능을
가진다는 것을
상징한다.
바로 이 영원한 효능이
주님의 죽음과 부활 후에
남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주님의 구속의
영원한 효능은
그분의 부활 안에 있다
(롬 4:25).

암송아지의 재를
진영 밖의
정결한 곳에 두는 것은
(민 19:9)
주님의 구속의 효능이
죄인들이 있는 곳에
남아 있다는 것을
상징하며,
반면에 구속하는 피를
회막 앞으로 가져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주님의 구속의
효능을
상징한다.

흐르는 물은
성령을 예표한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더럽혀질 때마다,
우리는
이 더러움을 제거하기 위해
주님의 구속의
영원한 효능으로 복합되신
성령께서
우리에게 적용되시도록
허락해 드려야 한다.
이것은
다음과 같이 말하는
요한일서 1장 7절과
일치한다.
“하나님께서
빛 안에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안에서 행하면,
우리는
서로 교통을 갖게 되고,
그분의 아들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온갖 죄에서
깨끗하게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죄를 지은 것을
인식할 때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교통을 회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우리의 죄들을
씻기 위해
주 예수님의 피를
취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언노트, 2019 03 31

그리스도에 관한
그 주요한 예표들과 또 그 신언

우리는
 민수기에 안에 있는
 그리스도에 관한
 그 주요한 예표들을
 보고 또 체험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론의
 싹트기 시작하는
 (budding;
 싹트는, 발아하려고 하는)
 지팡이는
 한 죽으신 그리스도가 아니라
 오직 그 부활하신 그리스도,
 곧 그 싹트기 시작하시는 그리스도를
 예표하는데,
그분께서는
 싹트기 시작하실 뿐 아니라
 또한 꽃 피시며
 또 열매를 맺어
 성숙에 이르십니다(to maturity).

민수기 16장 3절 안에 있는
 그 말씀과
 9절과 또 10절 안에 있는
 모세의 말은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에 있는(among)
 이 반역의 그 뿌리가
 야심,
 곧 권력을 위한
 (for power;
 힘[능력, 세력]을 위한)
 또 더 높은 한 지위를 위한
 그 투쟁이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야심은
 하나님의 계획의
 기반을 약화시키고
 (undermines;
 밑을 파고, …을 해치고[서서히 약화시키고])
 또 그분의 백성을
 손상시킵니다;
그 세기들 동안 내내
 (throughout; … 쭉)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에
 (among; 중에, 사이에)
 많은 문제들이
 야심에 의하여
 야기되어 왔습니다
 (have been caused;
 초래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대표 권위자
 (deputy; 대리인, 대행자),
 또는 위임받은 사람
 (delegated),
 곧 권위자로서
 (authority),
모세는
 이 사건을
 그 최고의 권위자이신
 하나님께
 문의하였는데
 (referred;
 알아보았는데, 의지하였는데),
그분의
 말씀하심,
 폭로하심
 (exposing;
 노출하심, 공개하심),
 또 심판하심을 위해서였습니다;
권력을 위한
 한 투쟁 안에서
 그 참된 상황을
 심판하실 수 있고
 (can judge;
 판단할 수 있고)
 또 폭로하실 수 있는
 그 유일하신 한 분은
 하나님 그분 자신이십니다.

고라와
 또 그 다른 사람들은
 산 채로(alive)
 또 곧장(directly; 즉시)
 음부로(to Sheol; 시올에)
 내려갔습니다;
그들은
 우선 죽을(to die first)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초래하셨던
 (brought about;
 유발하신)
 새로운 어떤 것이었습니다.

고라, 다단, 또 아비람과 함께
 반역했던
 그 이백오십 명의 사람들 위에의
 하나님의 심판은
사람의 의견들에 따르는,
 그의 육체에 의한,
 또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 안에 있는
 하나님을 향한(to; …께로의)
 사람의 봉사의
 모든 것들 위에의
 그 십자가의 그 심판을
 나타냅니다.

민수기 16장 안에 있는
 고라와 또 그의 일행의
 (and his company;
 또 그의 동료들의[한 패의])
 그 반역이
 그 제사장 체계에
 (to the priesthood;
 그 제사장 직분과)
 관련되었기 때문에,
아론의 지팡이의
 (of … rod; 막대기의)
 그 싹트기 시작함은
아론이
 그 제사장 체계의
 하나님에 의하여 주어진
 그 사역 안에서
 권위를 가진 것으로
 하나님에 의하여
 받아들여진
 그 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가리키는
 한 증명이었습니다
 (a vindication;
 한 입증[옹호, 변호, 확립]이었습니다).

각각의 모든 봉사를 향한
 (to; …에의)
 그 원칙은
 그 싹트기 시작하는 지팡이 안에
 있습니다
 (lies in;
 … 놓여[위치해] 있습니다);
부활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봉사 안에서
 영원한 한 원칙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무엇은(what)
 자연적인
 (natural; 천연적인, 타고난)
 그 영역 안에 속하고
 (belongs in;
 … 있고[살고]),
또 우리가 하는 것이
 불가능한 무엇은
 부활의 그 영역 안에 속합니다.

그 붉은 암송아지,
 곧 부정을 위한
 (for impurity;
 불결[불순, 불순물, 더러운 행위]에 대한)
 그 물의
 그 주요한 구성 요소는,
 그 구속하시는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그 붉은색은
 죄의 그 육체의
 그 모양을
 (the likeness of;
 …를 닮음을)
 나타내고,
이는(which)
 겉으로
 (outwardly;
 외견상, 표면상, 외부적으로)
 사람의 죄를
 떠맡음을 위하여
 (for the bearing;
 가지고 감을 위해)
 있습니다.

흠(defect) 없는 그 암송아지는
 그리스도께서
 죄의 그 육체의
 그 모양 안에
 계셨을지라도,
 그분께서
 그 죄 많은(sinful; 죄 있는) 본성을
 가지고 계시지 않으셨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 암송아지가
 흠이(blemish) 없었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온전하셨다는 것을
 (was perfect;
 완벽[무결]하셨다는 것을,
 흠이 없으셨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 암송아지가
 한 멍에 아래에
 있은 적이 없었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결코
 어떤 존재에 의해서도
 (by anyone;
 누군가에 의하여도),
 특히 하나님의 적,
 곧 사탄에 의하여
 또는 (그를) 위하여
 이용되신 적이 없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 붉은 암송아지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그 진영 밖에서,
 갈보리,
 곧 그 예루살렘시 밖에 있는
 한 작은 언덕 위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 제사장은
 백향목과
 또 우슬초와
 또 진홍색 가닥들을(scarlet strands)
 취할 것이고(shall take),
또 그 암송아지의 그 불탐의
 그 한가운데 안으로
 그것들을 던질 것이다”
― 민 19:6 :

백향목은
 (Cedar wood;
 삼나무는, 향나무는)
 그분의
 고귀하게 된
 (dignified;
 존엄하게 된, 위엄 있는)
 인성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우슬초는
 (hyssop;
 히솝풀은)
 그분의
 겸허하게 된
 인성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를
 나타내며,
또 진홍색은
 (scarlet;
 심홍색[다홍색, 새빨간 색]은)
 그것의
 가장 높은
 (highest; 최고의)
 의미 안에 있는
 구속을
 나타냅니다.

그분의 구속 안에서
 높으시고
 또 고귀하게 되신
 그 그리스도와
 또 낮으시고
 또 겸허하게 되신
 그 그리스도께서
부정을 위한
 그 물의
 그 구성을 위한
 (for the composition;
 그 혼성[합성, 배합, 구조]를 위한)
 요소들이십니다.

민수기 19장 9절이 말하기를,
 “깨끗한 한 사람이(A man)
 그 암송아지의
 그 잿더미를
 (the ashes;
 회분灰分을, 재를)
 주워 모을 것이고
또 그것들을
 진영 밖에
 한 깨끗한 장소 안에
 둘 것이며
 (shall … place),
또 그것은
 이스라엘의 자손의
 그 회합을 위하여
 (for the assembly;
 그 모임[집합, 집결, 집회, 회의]을 위해)
 부정을 위한 물로(as)
 보관될 것이다
 (shall be kept;
 남겨질[지켜질, 계속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이
 한 속죄 제물이다
 (a sin offering)”:

잿더미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to nothing)
 감소되신
 (reduced;
 줄어드신, 축소되신, 쇠퇴되신,
 정복되신, 제련되신)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이 잿더미는
 부정을 위한
 그 물을 위하여
 보관되었습니다;
그것은
 죄의 한 정결하게 함
 (a purification of sin),
 또는 한 속죄 제물이었습니다.

민수기 19장 안에 있는
 그 부정은
 죽음을 언급하는데,
이는(which; 죽음은)
 이스라엘의 그 자손 가운데에
 만연하게 되었습니다
 (became prevailing;
 우세하게[팽배하게, 지배적으로]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thus; 그래서),
 부정을 위한
 그 물에 대한
 (for; 그 물을 위한)
 그 필요가
 있었습니다.

“깨끗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하여
 그들이
 그 속죄 제물의
 그 불탐의
 그 잿더미에서(of; …를)
 취할 것이고,
또 흐르는 물이(running water)
 한 그릇 안에
 그것들에(to them)
 더해질 것이다”
― 민 19:17 :

오직 그리스도의 구속의
 그 일함이,
 그분의
 고귀하게 된
 또 겸허하게 된
 인성을 통하여,
 그분의 죽음과
 또 그분의 부활의 영과 함께(with),
죽음의 그 부정함으로부터
 (from the uncleanness)
 그 상황을
 치료할 수 있고
 또 깨끗하게 할 수 있습니다
 (could … cleanse;
 씻을[정화할, 제거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그 살아 있는(흐르는) 물은
 그리스도의 그 부활 안에 계신
 그 성령을
 나타냅니다;
부정을 위한
 그 물 안에,
 그리스도의 구속의
 그 효능이
 (the efficacy;
 그 효험이[유효성이])
 그분의 부활의
 그 영의
 그 씻는 능력과 함께
 있습니다.

민수기 20장 8절 안에 있는
 그 반석은
 (The rock;
 그 바위는[암석은])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또 부활하신
 그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또 그 반석에서부터 흘러나온
 (flowed; 흐른)
 그 물은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또 부활하신
 그 그리스도께로부터
 밖으로 흘러나오신
 그 살아 있는 물이신
 그 영을
 예표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또 그 영께서
 주어지셨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실
 필요가 없습니다,
즉, 그 살아 있는 물이
 흘러나오도록,
 다시 그 반석을 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한 번
 십자가에 못 박히셔야만 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그리스도께로부터
 그 살아 있는 물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우리는 단지
 (only; 오직)
 “그 지팡이를 취하고”
 또 “그 반석을 향하여 말하는” 것을
 필요로 합니다;
그 지팡이를 취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으심 안에서
 그분과 동일시하는 것이고,
또 그리스도의 그 죽으심을
 우리 자신들과
 또 우리의 상황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그 반석을 향하여
 말하는 것은
 그 매 맞은 반석이신
 그리스도께
 한 직접적인 말씀을
 (a direct word;
 한 직행하는[솔직한] 말씀을)
 드리면서
 (to speak …, asking Him;
 이야기하는[전하는] 것이고),
그 영께서
 이미 주어지신
 그 사실에 근거하여(based on)
 생명의 그 영을
 우리에게 주시도록
 그분께 요청하는 것입니다.

민수기 20장 안에서
 모세가
 그 백성을
 반역자들로(as)
 유죄 판결했지만
 (condemned;
 유죄를 선고했지만, 정죄했지만,
 비난했지만, 책망했지만),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반대하여(against)
 반역한
 (rebelled;
 반란을 일으켰던, 반항한,
 저항한, 반감을 나타낸)
 그 한 사람이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거룩하시게 하는 것에
 (to sanctify;
 신성하시게 하기를, 정당화하는 데에)
 실패하였고
 (failed; …을 하지 못하였고),
 그분을
 평범하게 만들었습니다
 (making … common;
 일반적이게[통상적이게, 흔하게,
 범속하게] 하였습니다);
그 백성에게
 화를 냄 안에서
 또 두 번
 그 반석을
 잘못 침 안에서
 (in wrongly striking;
 틀리게[부당하게] 침으로),
모세는
 하나님을 거룩하시게 하는 것에
 실패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화내지 않으셨을 때
 화를 냄 안에서
 (In being angry;
 화냄으로),
모세는
 하나님의 거룩한 본성 안에서
 올바르게
 (rightly;
 제대로, 정확히, 알맞게, 합당하게)
 그분을 대표하지 않았고,
또 두 번
 그 반석을 침 안에서
그는
 하나님의 경륜 안에 있는
 그분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이,
 모세는
 하나님의 거룩한 본성과
 또 그분의 신성한 경륜
 둘 다를
 거슬렀습니다
 (offended;
 위반하였습니다, 어겼습니다, 범하였습니다).

이것 때문에,
 그가
 하나님과 친밀했고
 (was intimate; 친밀했었고)
 또 하나님의 한 동반자로
 여겨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even though … may be),
모세는
 그 좋은 땅으로 들어가는
 그 권리를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에 관하여
 (concerning; 관련되어)
 우리가 말하고
 또 행하는
 (do; 하는)
 모든 것들 안에서,
우리의 태도는 반드시
 하나님의 거룩한 본성에 따라
 있어야만 하고,
또 우리의 행동들은(actions) 반드시
 그분의 신성한 경륜에 따라
 있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말들과 또 행위들(deeds) 안에서
 우리는
 그분을 반대하여 반역할 것이고
 (will rebel;
 반항할[저항할, 반감을 나타낼] 것이고)
 또 그분을 거스를 것입니다
 (will … offend Him;
 그분의 마음을 상하게 할 것입니다).

민수기 21장
 4절부터 9절까지 안에 있는
 그 청동 뱀은
 (The bronze serpent;
 그 놋 뱀은)
 주 예수님의
 한 예표인데,
그분께서는(who)
 우리의(our; 우리를)
 대신하는 분과
 (Substitute;
 교체자와, 대체자와, 대리인과)
 또 교체하는 분으로서
 (as … Replacement;
 대신하는 사람으로)
죄의 그 육체의
 그 모양 안에서
 (in the likeness;
 그 닮음 안에서, 그 흡사한 겉모습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는데
이는(that)
 우리가
 그분을 “바라볼 수 있고
 (might look at;
 쳐다볼(유심히 볼) 수 있고)”
 ([그분] 안으로 믿을 수 있고)
 또 영원한 생명을
 가질 수 있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그 자손이
 하나님을 반대하여
 (against;
 맞서서, 거슬러, …에 반항하여)
 죄를 지었을 때,
그들은
 뱀들에 의하여 물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위하여
 그들을 대신하는
 한 청동 뱀을
 위로 들어 올리라고
 (to lift up)
 말씀하셨는데,
이는(that)
 그 청동 뱀을 바라봄에 의하여
 (by looking upon …;
 지켜봄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살 수 있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죄의 그 육체의
 그 모양” 안에서
 오셨는데,
이 모양은(which likeness)
 그 청동 뱀의
 그 형태와
 (the form; 모양과)
 동일합니다;
그 청동 뱀이
 그 뱀의 그 형태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 뱀의 독은
 없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죄의 그 육체의
 그 모양”이 되셨지만
 (was made in …;
 … 안으로 보이게 되셨지만),
그분께서는
 어떤 방식 안에서도
 그 육체의 그 죄 안에
 참여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께서
 그 십자가 위에
 그 육체 안에서
 위로(up; 높이) 들어 올려지셨을 때,
그분의 죽음에 의하여
 사탄,
 곧 그 옛 뱀이,
 처리되었습니다
 (was dealth with;
 해결되었습니다);
이것은 또한
 타락한 사람 속에 있는(within)
 뱀의 그 본성이
 처리되었다는 것을
 (has been dealth with)
 의미합니다.

매일매일 우리가
 그 속죄제물의
 그 실재로서
 주님을
 누릴 수 있고
 또 우리의 존재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
 죄를 처리하시는
 그 생명,
 곧 우리의
 죄 많은 본성을 처리하시는
 그 생명이십니다.

… 한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 신성한 생명으로
 거듭나게 될 때,
그의 사탄적인 본성이
 무효로 됩니다
 (is annulled;
 폐지[취소, 소멸, 제거]됩니다).

아담의 한 후손으로서,
 니고데모는
 그 옛 뱀에 의하여
 독이 넣어졌고,
 또 그 뱀의 본성이
 그의 속에 있었습니다.
그는
 주님께서
 하나님의 그 어린양이 되셔서
 그의 죄를
 없애시는 것 뿐 아니라
또한 그 뱀의 그 형태가 되셔서
 그 결과(that)
 그의 뱀의 본성이
 그 십자가 위에서 처리될 수 있고
 또 그가
 영원한 생명을
 가질 수 있는 것을
 필요로 했습니다.

… 그리스도의 그 십자가는
 두 동일시들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에 의하여 구속된 그 백성이
 사탄과
 동일시되었고,
또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구속받은 백성과
 동일시되셨습니다.

민수기 21장
 8절부터 9절까지가
 말하기를,
“물린 사람은 누구든지,
 그가 그것을 볼 때,
 살 것이다.
 … 만약 한 뱀이
 어떤 사람이든지 물었다면,
 그가
 그 청동 뱀을 바라보았을 때,
 그는 살았다.”
이것은
 그가
 내적으로
 뱀이라는 것을
 (is … serpentine;
 뱀같다는[음흉하다는, 교활하다는] 것을)
 보고(sees; 알고)
그의 안에 있는
 사탄을
 유죄 판결하며,
또 그리스도의 그 십자가를
 받아들이는
각각의 모든 사람들이,
 생명을 가질 것임을
 의미합니다.

거듭남의 그 원칙은
 우리가
 사탄의 한 부분으로서
 사탄과 동일시되었다는 것을
 우리가 보는 것이고,
또 주 예수님께서
 그 십자가 위에서
 이 동일시를
 처리하셨다는 것을
 (has dealt with)
 우리가 보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이 동일시를
 유죄 판결하고
 또 주님의 구원을
 받아들이며
그 결과(with the result that)
 우리가
 살고
 또 우리 안에서
 일하는
 (operating;
 작용하는, 효력이 나타나는,
 움직이는, 운행하는)
 그 부활 생명을
 가집니다.
오직 이 방식 안에서
 우리가
 부활과
 또 그 부활 생명을
 누릴 수 있고
 또 그 영원한 생명 안에서
 살 수 있습니다.

도피의 그 도시들은
 (The cities of refuge;
 피난처인 그 도시들은, 그 도피성들은)
 그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그 체현이신
 모든 것들을 포함하시는
 그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그분 안으로
 (into whom;
 그 그리스도 안으로)
 잘못 생각한 죄인들이
 (mistaken sinners;
 판단을 잘못한[오해한, 잘못이 있는,
 실수한, 실수로 죄를 지은] 죄인들이)
 도피를 위하여
 도망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에 의해
 죄인들의 그 손들 안으로
 넘겨지셨고,
그들은(who)
 잘못 생각하여
 (mistakenly;
 판단 착오로, 오해하여,
 잘못하여, 실수로)
 그분을
 죽였습니다
 (put Him to death).

만약 어떤 죄인이든지
 회개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를
 잘못 생각한
 한 죄인으로
 여기실 것이고
 또 그를
 용서하실 것입니다;
그러한 한 사람은
 그리스도 안으로
 도망칠 수 있지만,
만약 누구든지
 그 복음을 거절하고
 또 회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그를
 고의적인
 (willful;
 의도적인, 계획적인, 고집 센)
 한 죄인,
 즉 갑자기 죽기로
 (to perish;
 멸망하기로, 소멸되기로,
 사라지기로, 썩어 없어지기로)
 미리 정해진
 (is destined;
 예정된, 운명 지어진)
 한 사람으로
 여기실 것입니다.

도피의 여섯 도시들이
 있었고,
 셋이
 요단강의
 각 편(side; 측면) 위에
 (있었습니다);
그 숫자 여섯은
 잘못을 만드는 사람을
 (mistake-making man;
 실수하는 사람을)
 나타내고,
그는(who)
 그 여섯 번째 날에(on)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되었습니다.

그 숫자 셋은
 잘못들을 만드는
 (makes mistakes;
 실수하는)
 그 사람을 위한
 그 도피처이신
 그 삼일 하나님을
 나타냅니다;
그 숫자 둘은
 (각각 세 도시들의[of; …인]
 그 두 조들은[sets; 세트들은])
그 우주 안에
 서 있는(standing)
 한 증거를
 나타내고,
그 삼일 하나님께서
 땅 위에(on)
 사람들 가운데에서
 (among human beings;
 사람의 존재들 중에[사이에])
 살고 계셔서(is living)
그들의
 도피의 도시가
 되신다는 것을
 (to be;
 …이시라는 것을)
그 우주를 향하여
 증언하고
 또 선포합니다
 (declaring;
 선언합니다, 공표합니다, 단언합니다).

그 레위인들에게
 주어진
 그 도시들은
 마흔여덟 개의 도시들이었습니다;
그 마흔여덟 개의 도시들은
 이스라엘 가운데에(among)
 흩어져야 했고
 (were to be scattered)
그녀의(her; 이스라엘의)
 놀라울 만큼
 (marvelously;
 기이하게, 불가사의하게,
 믿을 수 없을 만큼)
 유용한
 (available;
 유효한, 쓸모 있는)
 축복이 되었습니다
 (to be … blessing;
 축복이었습니다).

도피의 그 도시들이
 이스라엘의 그 자손을
 위할 뿐만 아니라
 또한 그들 가운데에 있는
 그 이방인들과
 (the strangers;
 그 외국인들과, 그 낯선 사람들과)
 또 체류자들을
 (sojourners;
 일시 체류자들을, 체재자들을)
 위한다는 것은
잘못을 만드는 사람을 위한
 그 도피처이신
 그 삼일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for all mankind;
 모든 인류를 위해)
 계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더 나아가
 (Furthermore; 게다가),
 각각 다른 장소들 안의
 그 여섯 도피 도시들은
그리스도,
 곧 그 삼일 하나님의 그 체현께서,
 가까이 계시고
 또 유용하시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 삼일 하나님께서
 사람들 가운데에서,
 곧 우리가 있는
 바로 그 장소까지
 확산되셨고
 (has spread;
 퍼지셨고, 번지셨고,
 펼쳐지셨고, 전해지셨고),
 잘못들을 만드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도피의 한 도시가 되셨습니다
 (has spread …, to be a city of refuge;
 도피처인 한 도시이십니다).

그 레위인들에게 주어진
 그 마흔여덟 도시들은
 이스라엘 가운데에
 흩어져야 했고,
창세기 49장 7절 안에 있는
 레위 위에의
 야곱의 저주를
 한 축복 안으로 바꿉니다.

… 만약 우리가
 도피의 이 도시들을
 한 지도 위에 표시한다면
 (mark out;
 선을 그어 표시한다면),
우리는
 그것들이
 고르게 분포된다는 것을
 (are evenly distributed;
 균등하게 분배된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육은(Six)
 2 곱하기 3으로
 구성됩니다.
삼은(Three)
 하나님을 위한
 그 숫자입니다.
그분의 삼일 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르시고
 (reaches; 도달하시고)
 또 우리와
 한 관계를(a relationship) 가지셔서
 우리의 구원이 되십니다.
… 그 복음은
 사람을
 삼일 하나님,
 ―그 아버지, 그 아들, 또 그 성령의
 그 이름 안으로
 침례를 주는 것입니다.

… 이는(two)
 증거를 위한
 그 숫자입니다.
이것은
 그 좋은 땅 안에,
 사람 가운데에(among man)
 오셔서
 그를 접촉하시고
 또 그의 안전이 되시는
 (to … be his security;
 그의 보호[안심, 안도감, 보안,
 무사, 담보, 보증]이 되시는)
 그 삼일 하나님의
 한 증거가
 항상 있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민수기 35장은
 그 좋은 땅의 그 분배의
 그 문제 안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그 자손이
 그들의 상속받은 소유물들의
 (possessions; 재산의 ,영토의)
 일부를(some)
 드리기를(to offer up)
 원하셨습니다.
이것은
 그 레위인들의 그 도시들을
 산출함의 결과를 가져왔고,
이로부터(from which)
 일부가(some)
 도피의 도시들로
 분별되어 나왔습니다
 (were separated out).
그 레위인들의 그 도시들은
 지방의 그 교회들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도피의 그 도시들은
 죽음의 그 심판으로부터
 우리의 목숨을 살려 주시고
 (sparing us from;
 우리를 피하게 해 주시고,
 우리를 따로 떼어 놓으시고)
 또 우리를 구출하셔서
 우리의 영적인 소유물들을
 회복하시는
 (so as to recover),
 우리의 구주이신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이것은
 지방의 그 교회들이
 그 복음을 전함 안에서
 기능을 할
 (to fuction;
 작용할, 역할을 할, 일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 결과(so that)
 사람이
 그리스도의 구속을
 받아들일 수 있고,
 의롭게 될 수 있으며,
 영적인 상속 재산을
 받아들일 수 있고,
 또 이렇게 하여
 (thus; 이와 같이,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in; 안에서)
 한 거처를 얻을 수 있으며
또 그 결과(and so that)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에(among)
 한 거처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배치들을
 (these arrangements;
 이 안배들을[정렬들을,
 체계들을, 설비를, 준비를])
 만드셨고
그 결과(so that)
 하나님과 또 사람,
 사람과 또 하나님은,
 함께 건축되어
 둘 다
 안식을 얻는
 (to find rest;
 휴식을 찾아내는)
 한 상호적인 거처가
 될 수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한 신언인
 (a prophecy; 한 예언인)
 민수기의 그 유일한 부분은
 24장 14절부터 25절까지 안에 있는
 그 부분이고,
이를(which)
 성경 해설자들이
 “발람의 신언”이라고
 부릅니다;
이 신언은
 14절 안에 있는
 그 구
 “그 마지막 날들 안에
 (in the last days)”에 의하여
 가리켜지는 대로(as),
주님의 두 번째 오심의 때에(at)
 일어날
 그 일들에 관하여
 말합니다:

야곱에게서 밖으로 나오는
 (out of Jacob coming forth)
 그 별과(the Star)
 또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는
 한 홀은
 (a Scepter;
 왕권의 상징인 한 笏홀은, 한 權杖권장은,
 왕의 한 지휘봉은)
 둘 다
 그리스도를 언급합니다:

주님은
 그분의 탄생의 때에
 한 밝은(bright; 빛나는) 별로
 나타내지셨고
또 그분의 두 번째 오심의 때에
 한 밝은 별로
 나타내지실 것이지만,
그분의 두 나타나심들 사이에 있는,
 이 시대 안에서,
 그분은 또한
 그분께 속한 사람들의
 그 마음들 안에
 그 샛별로
 (as the morning star;
 그 金星금성으로서)
 일어나십니다
 (rises;
 떠오르십니다)

그 홀은
 그리스도의 통치하심을(ruling)
 가리킵니다;
그 홀을 가지고 계시는
 그 한 분께서는
그 왕좌 위에 계시고
 또 모든 것을 포함하는
 능력과 또 권위를 가지시는
 한 분이십니다.

민수기의 그 책 안에 있는
 이스라엘의 그 역사는
 그 교회의 그 역사를
 나타냅니다;
이 역사들의 그 끝에,
 그리스도께서
 그 별과
 또 그 홀로서
 나타나실 것이고
 (그래서; to)
 그 모든 백성들(peoples) 위에
 빛나실 것이며
 또 그 온 땅을
 통치하실 것입니다;
그때에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는
 (harassess;
 애먹이는, 시달리게 하는,
 속썩이는, 끊임없이 공격하는)
 땅 위에 있는
 각각의 모든 것들이
 제거될 것이고,
또 하나님의 백성이
 더 이상 고통을 겪지 않을 것입니다.

… 구원받은 사람마다
 (Every saved one)
 그의 안에
 일어나시는
 (rising; 떠오르시는)
 그 별이신
 그리스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분께서
 우리의 구주로서
 처음
 (the first time; 처음에)
 우리에게 나타나셨고,
또 그분께서는
 영광 안에서의
 그분의
 두 번째 나타나심까지
 다시 또 다시
 (again and again;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우리 안에서
 일어나실 것입니다.
오늘날
 그분의
 그 샛별로서
 우리 안에
 일어나심은
그분의 두 번째 오심을
 가리킵니다
 (points to;
 암시합니다).

… 발람의 신언은
 현재의 그 시대가
 전적으로 어둡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어둠에 의하여 통치되는
 또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하지 않는
 한 시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별과
 또 그 홀이
 야곱에게서(out of)
 밖으로 나왔고(came forth)
 또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날 것입니다(will rise).
그리스도께서
 이 어두운 세상을
 비추시는
 (to illuminate;
 밝게 하시는)
 그 밝은 샛별이시며,
또 그 홀이신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실 것이고
 이 무법의
 (lawless;
 무법 상태의, 법을 지키지 않는[무시하는])
 땅 위에
 통치하실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은
 어둡고,
 빛의 그 빛남이 없습니다;
그것은 또한
 혼돈 상태이고(chatoic),
 권위가 없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오실 때,
 그분께서
 그 별로서 나타나실 것이고
 그 우주의 그 빛이 되실 것이며,
그분께서 또한
 그 홀로서 나타나실 것이고
 그 우주의 그 권위가 되실 것입니다.

 

1일

민 17:8
다음 날
모세가
증거막 안에 들어가 보니,
레위 집안을 위한
아론의 지팡이에
싹이 나 있었다.
심지어 그 지팡이에
싹이 나고
꽃이 피어
익은 아몬드가
달려 있었다.

민 16:5
그러고 나서
모세는
고라와
그의 모든 무리에게
말하였다.
“내일 아침에
여호와께서
누가
그분께 속한 사람이고,
누가
거룩한 사람인지를
알려 주실 것이며,
그 사람을
자신에게
가까이 오게 하실 것입니다. …

지팡이는
죽은 나무토막이다.
그것은
잘라졌을 뿐만 아니라
마른 것이다.
그러나 민수기 17장에서
그렇게 죽고 마른 나무토막에
싹이 났다!
싹은
유기적인 것이며
생명에 속한 것이다.
아론의 싹 난 지팡이는
죽으신 그리스도가 아니라
부활하신 그리스도
곧 싹이 나신 그리스도의
예표인데,
그분은
싹을 내실 뿐만 아니라
꽃을 피우며
익은 열매를 맺으신다.
그리스도는
이러한 분으로서
다른 이들에게
생명을 분배하신다
(요 12:24, 벧전 1:3).
오늘날에도
그분은 여전히
싹을 내고 계시는데,
그 열매인 아몬드가
바로 우리이다
(민 17:8).

민수기 16장에 나오는
이 반역의 근원은
야심
곧 권력과 더 높은 지위를
얻기 위한
분투이다.
야심은
하나님의 계획을
무산시키고
그분의 백성에게
손상을 입힌다.
수 세기에 걸쳐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발생한
많은 문제들이
야심에서 비롯되었다
(마 20:20-28, 요삼 9-11, 민 16:3)

비록 모세가 겸손하여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지만
(민 16:4),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하나님의 대표 권위자로서의 위치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민 16:5-11, 16-18).
모세는
맞서 싸우지 않고
오히려 반역자들과
그들이 거슬러 반역했던 사람들을
모두
하나님께 이끌었다.
하나님의 대표 권위자
혹은 위임받은 권위자로서
모세는
이 일을
최고의 권위자이신
하나님께 맡겨
그분께서
말씀하시게 하고,
드러내시게 하고,
심판하시게 했다.
권력을 얻으려
분투하는 일이
발생할 때,
참된 상황을
판단하시고
드러내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 자신뿐이시다
(민 16:5).

고라와
그와 함께한 다른 사람들은
산 채로
스올에 내려갔다.
그들은 곧바로
그곳으로 갔는데,
그들은 먼저
죽음을 거칠 필요도 없었다
(계 19:20).
이것은
여호와께서 하신
새로운 일이었다
(민 16:29-30, 33)

하나님께서
이백오십 명을
심판하신 것은
사람의 의견에 따라,
사람의 육체로,
다른 사람과 경쟁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의
모든 봉사를
십자가로 심판하시는 것을
의미한다
(민 16:35).

민수기 16장에 언급된
고라와 그의 무리의
반역이
제사장 직분과
관련된 것이었으므로
(3, 8-10절),
아론의 지팡이에
싹이 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제사장 직분의 사역에서
권위가 있다고 인정된 사람이
아론임을
하나님께서
입증하신 것이다
(민 17:8).

모든 봉사의 원칙은
싹이 난 지팡이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은
다른 열한 개의 지팡이를
다 돌려주시고
오직 아론의 싹 난 지팡이만을
언약궤 안에
영원한 기념으로 두셨다.
이것은
부활이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봉사에서
영원한 원칙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이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그분의 백성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권위가
부활에 근거한 것이지
자신에 근거한 것이 아님을
증언하신다.
주님께 드리는
모든 봉사는 반드시
죽음과 부활을 통과해야만
하나님께
기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부활은
모든 것이
우리가 아닌
하나님에게서 나왔음을
의미한다.
부활은
하나님만이 홀로
하실 수 있고
나는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활은
모든 것을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릇 자신을 괜찮다고
잘못 평가하는 사람은
영원히
부활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 만일 어떤 사람이
자신은
대단한 사람이고,
유능하고
유용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사람은
부활을 모르는 사람이다.
그러한 사람은 아마
부활에 관한 교리와
부활이 필요한 이유와
부활의 결과는
알지 모르나,
부활은
모르는 사람이다.
부활을 아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 대하여
절망하며
자신은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
타고난 힘이
남아 있을 때
부활의 능력은
나타날 길이 없다.
사라가
아기를 낳을 수 있을 때
이삭은
태어날 수 없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타고난 영역에 속하고,
우리가 하기에 불가능한 일은
부활의 영역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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