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아침 부흥을 위한 거룩한 말씀

몸의 하나와 몸의 기능

The Oneness of the Body
and the function of the Body
그 몸의 그 하나임과
또 그 몸의 그 기능

그리스도의 몸은
우주적으로
유일하게 하나이다
― 롬 12:4-5, 고전 12:12-13,
엡 4:4상, 2:16상.

주님의 회복은
그리스도의 몸의
하나의 회복이다
― 엡 4:4-6.

몸은
오직 하나 안에서만
존재하고
존속할 수 있다
― 시 133:1.

주님의 부담은
그리스도의 몸의
하나를 회복하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의 실행이
상실되었지만,
우리는
이 하나를 회복하고자 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만족시켜 드리기를
원한다
― 요 17:21-23.

그리스도의 몸의
유일한 하나는
‘그 영의 하나’이다
― 엡 4:3.

그 영은
그리스도의 몸의
본질이시다.
따라서 그 영은
그리스도의 몸의
하나의 실재이시다
― 요일 5:6, 요 16:13.

이 하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는 이들이
생명의 영에 의해
생명이신 그리스도로
거듭났을 때
그들의 영 안에
넣어졌다
― 요 3:5-6, 롬 8:2.

우리는
화평의 매는 띠로,
변화된 인간 미덕들로
그 영의 하나를
지켜야 한다
― 엡 4:1-3.

지방에 있는
교회의 터는
그리스도의 몸의
유일한 하나,
곧 그 영의 하나이다
― 엡 4:3.

모든 지방에 있는 교회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유일한 하나 안에
지켜져야 한다
― 계 1:11.

몸의 진정한 하나는
믿는 이들과 연합되신,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이다.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은
그분 자신을
그분께 선택받고 구속받은
사람들의 인성과
연합하셨으며,
이러한 연합이
그리스도의 몸의
진정한 하나이다.

몸이
이러한 연합이기 때문에,
몸 자체가
곧 하나(oneness)이다.

그리스도의 몸의 하나는
신성한 삼일성의 하나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몸의 하나는
신성한 삼일성의 확대된 하나이다.

우리는
조직됨으로써가 아니라,
우리 안에서
하나가 되시는
삼일 하나님으로
소생되고
거듭나고
살아나게 됨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된다
― 엡 1:22-23, 2:4-5.

모든 지방에 있는 교회들은
우주적으로나
교리적으로나
실행적으로
한 몸이며
한 몸이어야 한다
― 고전 12:27, 1:2, 4:17.

섞임은
그리스도의 우주적인 몸의
하나를 지키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것이다
― 고전 12:24하.

하나를 지키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첫째가는 미덕이다
― 엡 4:1-3.

모든 믿는 이들은
하나를 지키기 위해,
공기 같은 영이신 그리스도와
완결되신 영이라는
신성하고 비밀한
영역 안에 있으면서
삼일 하나님과
연합되어야 한다
― 요 17:21-23, 엡 4:3.

몸의 기능은
그리스도를 표현하는 것이다
― 엡 1:22-23, 3:17.

우주적으로 위대하신
그리스도는
그분의 충만,
곧 그분의 표현인
한 몸을
필요로 하신다
― 엡 1:22-23.

그리스도의 충만은
그리스도의 풍성을
누리는 데서
나온다
― 엡 3:8.

그리스도의 풍성을
누림으로써
우리는
그리스도를 표현하는
그분의 충만이 된다
― 엡 1:22-23.

그리스도의 충만은
우리가 체험하고
우리 안으로 조성되신
그리스도이다
― 엡 3:8, 19.

객관적인 풍성은
주관적인 충만이 되며,
이 충만이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리스도의 몸은
이 땅에 있는
그리스도의
연장과 연속이다
― 행 9:4, 고전 12:12.

우리 믿는 이들이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서로 지체가 된
목적은
함께 그리스도를 살고
그리스도를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 롬 12:5.

그리스도의 몸은
그리스도이다.
우리가
몸 안에 있고자 한다면 반드시
그리스도가 되어야 한다
― 고전 12:12, 골 3:10-11.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며,
그분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었다
― 롬 12:5.

몸 안에서
그리스도는
모든 것이시고
모든 것 안에 계신다
― 골 3:10-11.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그리스도에게서 나오고
그리스도와 하나이다
― 창 2:22-23, 엡 5:23-32.

믿는 이 안에 있는
오직 한 가지만이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를
구성하는데,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이다.

우리가
실재와 실행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몸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로
조성하고 계신다.

그리스도의 몸은
단체적인 그리스도이다
― 고전 12:12-13.

고린도전서 12장 12절에서
‘그 그리스도’는
개인적인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단체적인 그리스도,
곧 몸-그리스도를
가리킨다.

단체적인 그리스도는
머리이신 그리스도 자신과
그분의 몸인 교회,
즉 지체들인 모든 믿는 이로
구성된다.

그리스도의 모든 믿는 이가
그분과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롬 12:4-5)
그분의 생명과 요소로 조성되어
(골 3:4, 11),
그분을 표현하는 유기체인
그분의 몸이 되었다.
그러므로 그분은
머리이실 뿐 아니라
몸이시다.

성경은
그리스도와 교회를
한 분의 비밀한 그리스도로
간주한다.
그리스도는
이 비밀한 그리스도의 머리이시고,
교회는
이 비밀한 그리스도의 몸이다
― 행 9:4-5, 엡 5:32.

 

Hits: 5

7 replies on “몸의 하나와 몸의 기능”

6일

고전 12:12-13
왜냐하면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모두가 한 몸인 것같이,
그리스도도
그와 같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노예나 자유인이나
모두
한 영 안에서
한 몸 안으로
침례 받았고,
또 모두
한 영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그리스도’는
때때로 개인적인 그리스도,
즉 그리스도 자신을 가리키고,
때때로 단체적인 그리스도,
즉 그리스도와 교회를 가리킨다
(고전 12:12).
성경은
그리스도와 교회를
한 분의 비밀한 그리스도로
간주한다.
그리스도는
이 비밀한 그리스도의 머리이시고,
교회는
이 비밀한 그리스도의 몸이다.
이 둘은
하나로 연합되어
한 분의 비밀한 그리스도,
즉 우주적으로 위대한
한 사람이 된다.
모든 시대, 모든 장소에 걸쳐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이
함께 모아질 때,
그들이
이러한 비밀한 그리스도의
몸이 된다.
개별적으로 말하면,
구원받은 사람들인 우리는
몸의 특별한 지체들이다
(고전 12:27).
단체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비밀한 몸이다.

고린도후서 12장 12절에서
‘그리스도’는
헬라어로 직역하면
‘그 그리스도’로서,
단체적인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단체적인 그리스도는
머리이신 그리스도 자신과
그분의 몸인 교회,
즉 지체들인 모든 믿는 이로
구성된다.
그리스도의 모든 믿는 이가
그분과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그분의 생명과 요소로 조성되어,
그분을 표현하는 유기체인
그분의 몸이 되었다.
그러므로 그분은
머리이실 뿐 아니라
몸이시다.

포도나무가
줄기만이 아니라
가지들도 포함하고 있는 것과 같이,
단체적인 그리스도
곧 몸-그리스도 또한
그리스도 자신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도 포함한다.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은
그리스도의 지체들,
곧 그리스도의 부분들이다.
타고난 조성에 따르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 될 수 없다.
그리스도 자신이
우리를
그분의 부분들이 되게 하는
요소이시자 요인이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부분들이 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께서 반드시
그분의 지체들인
우리의 존재 안으로
일해 넣어지셔야 한다.

그리스도는
단체적인 그리스도,
곧 몸-그리스도가 되시기 위해
한 과정의
여러 단계들을
통과하셔야 했다.
먼저, 하나님 자신이신
그분은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
육체가 되셨다.
그다음에 부활 안에서
그분은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셔서
우리 안에 들어오시고
우리 안에서 일하신다.
이런 방식으로
그분은
몸-그리스도가 되신다.
이제 교회생활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구속자와
생명 주시는 영을
누릴 뿐 아니라,
몸이신 그리스도도
누린다.

교회는
지체들이
그리스도의 생명과 본성을 소유하고
그리스도로 조성될 때에만
그리스도의 몸이 될 수 있다.
우리의 몸을
살펴본다면,
우리는
우리의 생명과 본성을 가지지 않은
어떤 것도
우리의 몸의 일부가
될 수 없음을
깨달을 것이다.
우리의 몸이
우리의 일부이듯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도
그분의 일부이다.
몸의 지체들로서
우리는
그리스도로 조성된
그리스도의 부분들이다.

그리스도의 실재는
그 영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리스도로 조성되어
그분의 몸이 되는 길은
그 영을
마시는 것이다.
몸은
한 영 안에서
침례를 받음으로
형성되었다.
우리는 모두
한 영 안에서
한 몸 안으로
침례를 받았다
(고전 12:13).
한 몸 안으로
침례를 받은 것은
우리 모두를
그 영을 마실 수 있는
위치에 두었으며,
그 영을 마심으로써
우리는
몸으로 조성된다.
그 영을 마심으로써
우리는
신성한 삼일성이
우리의 존재 안으로 분배되는 것을
체험하며
몸으로 조성된다.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는 것은
전적으로
조성의 문제이다.
몸은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의
신성한 요소로 조성된
유기적인 한 실체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것은
그러한 조성으로 말미암는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에
필요한 것은
조직이 아닌
특별한 조성이다.
즉 우리가
한 영을 마심으로
신성한 요소가
우리의 내적 존재 안으로
일해 넣어짐으로써
이루어지는 조성이다.
우리가
한 영을
마시면 마실수록,
신성한 요소는 더욱더
우리를
한 몸
즉 단체적인 그리스도로 만드는
우리의 조성 성분이 된다.

 

5일

롬 12:5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며,
각 사람이
서로 지체들입니다.

골 3:10-11
새사람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이 새사람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에 따라
온전한 지식에 이르도록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자와 무할례자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노예나, 자유인이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이시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

우리 믿는 이들이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서로 지체가 된
목적은
함께 그리스도를 살고
그리스도를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롬 12:5).
신약에 비추어 본다면,
우리 믿는 이들은
한 사람도
몸을 떠나서
단독적으로
살거나 일할 수 없다.
우리의 생활과
우리의 일은
모두 반드시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인 우리는
분리된 완전한 개별적인 단위가
아니다.
그보다 우리는
함께 조율되어
전체의
각 부분이 되는 것이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단독적인 지체들이 아니라
완전한 몸이다.
그러나 …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경외하고,
복음을 전하여
사람을 구원시키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주님의 몸의
표현에 있어서
그것은
전혀 좋지 않다.
우리는
주님의 회복 안에 있는
한 가지 큰 항목이 바로
주님의 몸을
회복하는 것임을
보아야 한다.
우리의 모든 생활과 일은 반드시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어야 한다.
우리는
단독적으로
그리스도를 사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모든 지체들과 함께
그리스도를 사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단체적으로
그리스도를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우리의 몸이 언제나
생명과 본성에서
머리와 하나라는 것을
반드시 깨달아야 한다.
우리의 몸은
우리의 머리와 함께
한 생명과 한 본성을
가진다.
이것은
교회가
생명과 본성에서
그리스도와 하나라는 것을
말해 준다.
다른 말로 한다면,
생명과 본성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곧 교회이다.
그리스도는
머리이실 뿐 아니라
또한 몸이시다.
왜냐하면 몸의 생명이
그리스도이고
몸의 본성도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몸은 그리스도이고,
그리스도는 몸이시다.

고린도전서 12장 12절은
몸이
그리스도라고 말한다.
그리스도는
몸이시다.
교회는
미국인, 일본인, 중국인,
프랑스인, 독일인, 또는 영국인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새사람인 몸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
할례자나 무할례자,
또는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
문명인이나 미개인이 없고,
오직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이시고
모든 것 안에 계신다
(골 3:11).

교회 안에는 오직
그리스도만 계신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 안에 있는
모든 것이시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에 의해
삼켜져야 한다.
그리스도만 계신다면 어떻게
우리의 의견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만 계신 곳에 어떻게
자신을 높이려는 요인들이
있을 수 있겠는가?
분열은
그리스도에게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들에게서 비롯된다.

교회의 표현인
몸 안에는
오직 한 인격,
곧 그리스도만 계신다.
우리는 반드시
그리스도를 누려서
서로 다른 모든 사람을
삼키시도록
그분께 허락해 드려야 한다.
이것이
교회 안에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문화인이나 야만인이
있을 수 없는 이유이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에 의해 삼켜지는데,
이것은
가르침을 받음으로써가 아닌
그리스도의 풍성으로
영양 공급을 받음으로써
이루어진다.

우리는 모두
이것을
분명히 보아야 한다.
우리는
어느 곳에 가든지 결코
다른 사람들을
교정하거나 고치려고 하지 말고
단지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먹여야 한다.
우리는
너무 종교적이고
가르침들을 지나치게 신뢰하기 때문에
아주 쉽게
다른 사람들을 교정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통하지 않는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교정하고자 하는
모든 유혹에서부터
자신을 지켜야 하며,
다만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누리는 법을
보여 주어야 한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를 공급함으로
그들을 먹여야 한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더 빠른 분이시라면,
그분은
빠르게 일하실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그처럼 빠르지 않으시다면,
우리는
이 문제를
그분께 맡겨야 한다.
우리는
그들을
고치거나 교정하려고 하지 말고
그리스도로
그들을 먹이고 양육해야 한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교정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자양분으로 공급받고
누리는 것이다.

 

4일

엡 1:22-23
또 하나님은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아래
복종시키시고,
그리스도를
만물 위에
머리가 되게 하시어
교회에게 주셨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분의
충만입니다.

엡 3:8
하나님께서
모든 성도들 중에
가장 작은 이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그리스도의
측량할 수 없는 풍성을
이방인들에게
복음으로
전하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몸은
이 땅에서의
그리스도의 삶의 연속이다.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생활하실 때,
그분의 몸을 통해
그분 자신을 표현하셨다.
지금 그분은 여전히
그분 자신을 표현할
‘몸’이 필요하시다.
… 그리스도의 몸의 기능은
그리스도의 모든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사람은
귀나 눈이나 코나
어떤 부분적인 지체만으로는
그 사람 전체의 성품을
나타낼 수 없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도
그분의 몸의
개별적인 지체만으로는
그분 자신을
나타내실 수 없다.
그분은 반드시
온몸을 얻으셔야
그분 자신을
나타내실 수 있다.
우리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모든 것이
그리스도의 몸을 통해서
표현된다는 것을
보아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은
이 땅에 있는
그리스도의 연장과 연속이다.
삼십여 년 동안
그리스도는
이 땅에서
그분 자신을
계시하셨는데,
그것은
개인적인 그리스도이다.
그러나 오늘날
그분은
교회를 통해서
그분 자신을 계시하시는데,
이것은
단체적인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는
전에는 개인적으로 표현되셨고
지금은 단체적으로 표현되신다.

에베소서 1장과 4장은 모두
충만을 언급하는 반면에,
3장은
그리스도의 풍성을 언급한다.
그리스도의 풍성과
그리스도의 충만의
차이는 무엇인가?
만일 여러분이
여기에
음식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는다면,
그것은
충만이라 할 수 없고
풍성이라 할 수 있다. …
그러나 일단 여러분이
이 풍성을
한 항목씩 먹고
그것들을 소화한다면,
그것들이
여러분의 세포가 되고
여러분의 몸의 요소들이 된다.
결과적으로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이 먹고 소화한 것으로
조성된다.
이렇게 조성된 몸이
충만이다.
… 그리스도의 풍성은
끝없고
무한하며
측량할 수 없지만,
여러분은 여전히
이 그리스도의 풍성을
먹고
동화시킬
필요가 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먹으면 먹을수록
더 많은 그리스도가
여러분 안으로 동화되고,
여러분은
충만의 더 많은 요소를
얻을 것이다.
… 그리스도의 충만은
여러분이 체험하고 동화하여
여러분의 존재 안으로
조성되게 함으로써
여러분의 요소가 되신
그리스도이다.
이것이 충만이고,
이 충만이 곧 그리스도의 몸이다.

엄격히 말해서,
타고난 사람으로서의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지체가 아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생명과 본성과
그리스도의 모든 것이
여러분의 존재 안으로 들어와
여러분을
거듭나게 하고
재조성했을 때에만,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한 지체가 된다.
…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기 위해서
여러분은
재조성되어야 한다.
…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으로 들어오셔서
여러분을 거듭나게 하셔야 한다.
그분께서 계속
여러분 안으로 들어오셔서
그분의 요소를
여러분 안에 분배하심으로써
여러분을 재조성하셔야 한다.
그 결과 여러분의 온 존재는
안에서부터 밖에까지
철저한 재조성의 과정을
거칠 것이다.
그럴 때 여러분은 더 이상
원래의 여러분이 아닌,
거듭나고 변화된
사람이 될 것이다.
오직 이렇게
거듭나고 변화된 사람만이
그리스도의 지체가
될 수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
그리스도의 충만이며,
이러한 충만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풍성을
누리는 데서 나오는 것임을
분명하게 보았다.
그러므로 이 충만은
우리가
누리고
동화하여
우리의 요소로서
우리 안으로 조성되신
그리스도 자신이다.
이 충만은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주관적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풍성이
객관적이고
우리 밖에 있으며,
그리스도의 충만은
전적으로 주관적이고
우리 온 존재의
요소 안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일 때,
갈라디아서 2장 20절이
말하는 것처럼
더 이상 우리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절은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더 이상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십니다.”
라고 말한다.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시도록
허락해 드릴 때,
우리는
그분을 입고
우리의 옛사람,
곧 우리의 타고난 사람을
벗는다.
우리는
그리스도 자신을 입었다.
바로 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모두가
하나이다.
바로 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모두가
그분의 몸,
곧 그분의 충만이다.
바로 이 하나(oneness),
곧 이 충만 안에는 더 이상
타고난 사람이 없다.
즉 중국인이나 외국인이나
허난(河南) 사람이나
허베이(河北) 사람이나
남자나
여자가
없다.
이 충만 안에서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이다.

 

3일

엡 2:4-5
그러나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
그분의 큰 사랑으로 말미암아,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여러분은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고전 12:24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들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몸을 고르게 섞으시어
부족한 지체에게
더욱 귀한 것을
주셨습니다.

우리 가운데에는
그리스도의 몸의
모든 개인적인 지체들 간의 섞임과,
권역에 있는 모든 교회들 간의 섞임과,
모든 동역자들 간의 섞임과,
모든 장로들 간의 섞임이
있어야 한다.
섞인다는 것은
우리가
다른 이들과
교통하기 위해
항상 멈추어야 함을
의미한다.
… 우리가
우리 자신을
고립시키고 분리시킨다면,
많은 영적인 유익을
잃을 것이다.
교통하기를 배우라.
섞이기를 배우라.
지금부터 교회들은
섞이기 위해
자주 함께 모여야 한다.
우리는
그것에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섞임을 몇 차례 실행한 후에는
그것에 대해
입맛을 가질 것이다.
섞임은
그리스도의 우주적인 몸의
하나를 지키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의 하나는
유일하다.
왜냐하면 이 하나는
삼일 하나님의
유일함 안에 있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 안에 계신다
(엡 4:6).
아들 예수님도
우리 안에 계신다
(고후 13:5).
그리고 그 영도
우리 안에 계신다
(롬 8:9-11).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이 되기를
갈망하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하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분과 함께
하늘에 있고 싶어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늘에 거하기를
좋아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우리 안에,
우리의 영 안에 거하기를
좋아하신다
(딤후 4:22, 롬 8:16).
오늘날 삼일 하나님은
우리 안에 계신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신 것을
알 수 있습니까?”
라고 물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와 같이 설명해 보겠다.
나는
오늘 아침에
어떤 사람 때문에
화가 나서,
참지 못하고
그를 교정해 주고 싶었다.
그러나 내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지 마라.”
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내 안에 계신다는
증거가 아닌가?
오늘날
예수님은
어디에 계신가?
확실히 그분은
승천하시어
하늘에 계신다.
왜냐하면 로마서 8장 34절은
그분이
하나님 오른편에 계신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로마서 8장 10절은
그분이
우리 안에 계신다고
말한다.
어떻게 예수님은
하늘에 계시고
동시에 우리 안에도 계실 수 있는가?
전기를
생각해 보자.
발전소에 있는
동일한 전기가
우리 집에도 있다.
오늘날
우리 예수님은
하늘에 계시며
동시에 그 영으로서
우리 안에도 계신다.
우리 안에 계신
그 영은
그리스도의 몸의 하나의
본질이시다.

그리스도의 몸의 하나에 관한
바울의 가르침은
삼일 하나님의 하나에
근거한다.
우리는 모두
그 영의 하나를
지켜야 한다.
왜냐하면 생명과 본성을 가진
한 하나님 아버지께서
근원이시고,
한 주님이신 아들은
신성한 본성을 지닌
신성한 생명의
요소 자체이시며,
한 영은
신성한 본성과 신성한 생명의 요소의
본질이시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는
근원과 요소와 본질이신
삼일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이다.
우리는
우리 모두가 하나임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인종이나 문화에 따라
하나가 아니라,
신성한 본성과 생명의 신성한 요소의
신성한 본질 안에서
하나이다.
우리는
신성한 본성,
신성한 생명,
신성한 요소,
신성한 본질이
우리의 하나임을 볼
필요가 있다.

사실상, 우리의 하나는
객관적인 삼일 하나님이 아니라
주관적인 삼일 하나님이다.
주관적인 삼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참된 하나이시다.
1963년에 나는
그리스도께서 주관적이심에 관한
찬송을 지었다
(찬송가 397장).
우리의 그리스도는
다만 객관적인 분이 아니시다.
그분이 다만 객관적이시라면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으시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우리와 한 영이 되실 정도로
주관적이시다
(고전 6:17).
그분과 우리는
한 영이다.
이 하나는
전적으로
신성한 삼일성의 본질이신
본질적인 영에 의한 것이다.

 

2일

엡 4:4-6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도
부름을 받았을 때
한 소망 안에서
부름을 받았습니다.
주님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침례도 하나입니다.
하나님도 한 분이시며,
모든 사람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분은
모든 사람 위에 계시고,
모든 사람을 통과하여 계시고,
모든 사람 안에 계십니다.

요 17:21
그들이 모두
하나 되도록 하여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도록 하여 주십시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도록 하여 주십시오.

신약의 계시들 중에서
가장 긍정적인 항목들 중
하나가
몸의 진정한 하나이다.
진정한 하나는 바로
구속되고 변화된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연합되신,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이다.
몸의 진정한 하나는
다름이 아니라,
삼일이실 뿐 아니라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이다.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은
그분 자신을
그분께 선택받은 사람들의
인성과 연합하셨으며,
이러한 연합이
진정한 하나이다.

진정한 하나는
단지 우리가 함께 모이는
문제만이 아니다.
… 우리의 하나는
그리스도의 유기적인 몸의 하나이다.
그리스도의 몸은
삼일 하나님과
그분께서 구속하시고 변화시키신
사람들의 연합이다.
몸이
이러한 연합이기 때문에,
몸 자체가
곧 하나(oneness)이다.
삼일 하나님의 셋,
곧 아버지와 아들과 영은
이 하나의
신성한 세 요소들이시며,
이 신성한 세 요소들이
인성이라는 한 요소와 연합하여
몸으로 완결된다.
이 몸이
진정한 하나이다.

이 하나는
주님의 갈망 안에 있는 것이었다.
주님의 이 갈망은
그분의 열망이 되었고,
이 열망은
요한복음 17장에서
주님께서 하신 기도로
표현되었다
(2, 6, 11, 14-24절).
… 주님은
신성한 열망으로부터
이 기도를 하셨다.
그때에
이 하나는 아직
실재가 아니었지만,
이 하나의 본
곧 신성한 삼일성의 셋 가운데 있는 하나는
그곳에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이시며
(11, 21절),
이 하나는
그 영을
함축하거나 포함한다.
요한복음 17장에서
주님은
삼일 하나님을
나타내시기 위해
복수 대명사 ‘우리’(11, 21절)를
사용하셨다.
삼일 하나님은
하나이시며,
이 하나는
그리스도의 몸의 하나의
본이다.
몸의 하나는
삼일성의 셋 가운데 있는 하나를
본으로 삼기 때문에,
요한복음 17장은
이 하나가
전적으로
삼일 하나님으로
싸여 있음을
말해 준다
(21절).
그리스도의 몸의 하나는 다만
신성한 삼일성의
확장된 하나이다.
… 이 확장된 하나는
오순절날에 왔다.
그 영이
쏟아부어지심으로
그리스도의 몸이
산출되었다
(고전 12:13).
몸은
견고한 하나이다.

진정한 하나는
삼일 하나님과
구속된 인성의
연합으로서,
세 방면을 가진다.
첫 번째 방면은
아버지의 이름 안에서
그분의 신성한 생명으로 말미암은
하나이고,
두 번째 방면은
삼일 하나님 안에서
그분의 거룩하게 하는 말씀으로 말미암은
하나이다.
첫 번째 방면은
하나의 근원과 요소와 관계되고,
두 번째 방면은
하나의 위치와 관계된다.
만일 우리가
세상에 있고
사탄의 손 아래 있다면,
우리는
하나를 실행할 수 없다.
하나를 실행하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세상으로부터
분별되어야 하고
사탄의 손안에서부터
벗어나야 한다.

진정한 하나의
세 번째 방면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는 이들이
신성한 영광 안에서
하나 되는 것이다
(요 17:22-24).
…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을 표현하는
신성한 본성을 지닌
신성한 생명이다.
만일 우리에게
아버지의 본성을 가진
아버지의 생명이 없다면,
우리가
아버지를 표현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아버지의 표현은
아버지의 본성을 가진
아버지의 생명으로부터 나온다.
아버지의 이러한 표현이
곧 영광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활동하거나 무언가를 해서는
안 된다.
도리어 우리는
아버지의 본성을 가진
아버지의 생명 안에서
아버지를 표현하는
일들을 해야 한다.
이것이 영광이며,
바로 이 영광 안에서
우리 모두는
하나이다.

 

신언노트, 2019 04 21

그 몸의 그 하나임과
 또 그 몸의 그 기능

그리스도의 그 몸은
 우주적으로
 유일하게 하나입니다:

주님의 회복은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하나임의
 (the oneness;
 그 하나의[일치의, 조화의, 합일의,
 일체의, 단일성의, 동일성의, 통일성의)
 그 회복입니다:

그 몸은
 오직 하나임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고
 또 생존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하나임을 회복하도록
 부담 지워지십니다(is burdened).

이 하나임의 그 실행이
 상실되었지만,
우리는
 이 하나임을 회복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만족시켜 드리기를
 원합니다.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유일한 하나임은
 “그 영의 그 하나임”입니다
(엡 4:3):

그 영께서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본질이십니다;
이런 이유로,
 그 영께서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하나임의 그 실재이십니다.

이 하나임은
 생명이신 그리스도와 함께하는(with)
 생명의 그 영에 의하여
 그 거듭남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 믿는 이들의
 그 영 안으로(into the spirit)
 주어졌습니다
 (was imparted;
 전해졌습니다).

우리는
 변형된 사람의 그 미덕들과 함께하는(with)
 평안의 그 결합시키는 끈 안에서(in; …으로),
 그 영의 그 하나임을
 지켜야만 합니다.

지방의 한 교회의
 그 터는
 (The ground;
 그 땅은[공터는, 땅바닥은, 장은])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유일한 하나임,
 즉,
 그 영의 그 하나임입니다.

지방의 그 모든 교회들은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유일한 하나임 안에
 지켜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 몸의
 그 진짜(genuine) 하나임은
 과정을 거치셨고 또 완결되신
 그 삼일 하나님이시고,
그분께서(who)
 그분 자신을
 그 믿는 이들과 섞으십니다:

과정을 거치셨고 또 완결되신
 그 삼일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을
 그분의
 선택받고 또 구속된 사람들과
 그들의 인성 안에서
 섞으시고,
또 이 섞임이
 (this mingling;
 이 섞음이, 이 혼합함이)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진짜 하나임입니다.

그 몸이
 그러한 한 섞임이기 때문에,
 그 몸 자체가
 그 하나임입니다.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하나임은
 그 신성한 삼일의
 그 하나임입니다;
이런 이유로,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하나임은
 그 신성한 삼일의
 그 확대된 하나임입니다.

우리가
 그 교회이고
조직됨에 의해서가 아니라
 (not by being organized;
 체계화됨에 의하지 않고)
 오직 생기가 북돋아지고
 (being enlivened;
 활기를 띠게 되고, 살아있게 되고),
 거듭나게 되며
 (being … regenerated;
 다시 생명을 받으며, 재생[회생]되며, 부흥되며),
 또 우리 안에 계시는
 그 하나임이신
 그 삼일 하나님으로(with; …과 함께)
 살아 있게 됨에 의하여
 (by being … made alive;
 활발하게 됨에 의하여, 생기 넘치게 됨으로써)
그리스도의 그 몸이 됩니다.

지방의 그 모든 교회들은
 우주적으로,
 교리적으로,
 또 실질적으로
 (practically;
 실제로, 사실상, 실용적으로)
 한 몸이고
 또 한 몸이어야만 합니다.

섞임은
 (Blending;
 섞음은, 혼합함은)
 그리스도의
 우주적인 그 몸의
 그 하나임을 지킴 안에서
 가장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the most helpful thing;
 그 가장 유용한 것입니다).

그 하나임을 지킴은
 우리의
 그리스도인의 행함의
 (of … walk;
 행실의, 걸음의)
 그 주요한
 (primary;
 근본적인, 기본적인, 초등의, 으뜸가는)
 미덕입니다.

그 모든 믿는 이들은
 공기이신
 (pneumatic;
 공기가 가득한, 영적인)
 그 그리스도와
 또 완결되신
 그 영의
 신성하고
 또 비밀한
 (mystical;
 신비한, 불가사의한)
 그 영역 안에
 있어야만 하고
(그래서; to)
 그 하나임의
 그 지킴을 위하여
 그 삼일 하나님과
 섞여야만 합니다.

그 몸의 그 기능은
 그리스도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우주적으로 크신
 그 그리스도께서
 (The universally great Christ;
 전 세계적으로[보편적으로, 일반적으로]
 위대하신 그 그리스도는)
 그분의 충만,
 곧 그분의 표현이 되는
 (to be; …인)
 한 몸을
 필요로 하십니다:

그리스도의 그 충만은
 그리스도의 그 부의
 (the riches; 그 풍부의[많음을])
 그 누림에서부터
 나옵니다
 (issue;
 흘러나옵니다, 유출됩니다, 생깁니다).

그리스도의 부의
 그 누림을 통하여,
우리는
 그분을 표현하는
 그분의 충만이 됩니다
 (become His fullness;
 … 가득함이[차 있음이, 충분함이, 풍부함이,
 넉넉함이, 통통함이, 완벽함이] 됩니다):

그리스도의 그 충만은
 우리에 의하여
 체험되시고
 또 우리 안으로
 조성되시는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객관적인 부는
 그 주관적인 충만이 되고,
또 이 충만이
 그리스도의 그 몸입니다.

그리스도의 그 몸은
 땅 위에 있는
 그리스도의
 그 연장과
 (the extension;
 그 확대와[확장과, 뻗음과, 증축 부분과])
 또 계속입니다
 (and continuation;
 연속[존속, 지속, 증축, 연장]입니다).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서로에게 지체들이 된
 (being members one of another;
 다른 사람에게 한 사람씩 지체들인)
 믿는 이들인 우리의
 그 목적은
우리가
 함께
 그리스도를 살고
 또 그분을 표현하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그 몸이
 그리스도입니다;
만약 우리가
 그 몸 안에 있으려고 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그리스도가 되어야만 합니다
 (must be made Christ;
 그리스도로 만들어져야만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고,
그분과
 한 유기적인 합일을
 (an organic union;
 한 유기체의 결합을[연합을, 합병을])
 가집니다.

그 몸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이시고
 또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

그리스도의 그 몸인
 그 교회가
 그리스도께로부터 밖으로 나오고
 (comes out of)
 또 그리스도와 하나입니다.

한 믿는 이 안에
 그리스도의 그 몸의
 일부를 형성하는
 (forms a part of;
 한 부분의 형태를 만드는)
 오직 하나의 것이(only one thing)
 있습니다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with)
 우리를 구성하고 계시는데
 (is constituting;
 … 조성하고 계시는데,
 얽어 짜서 하나의 통일체로 만들고 계시는데)
그 결과(so that)
 우리가
 실재와 또 실용성 안에서
 (in … practicality;
 실현 가능성 안에서, 현실성 안에서,
 실용적으로, 실제적으로)
 그리스도의 그 몸이 됩니다.

그리스도의 그 몸은
 그 단체적인 그리스도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12절 안에 있는
 ‘그 그리스도’는
 그 개인적인 그리스도가 아니라
 오직(but) 그 단체적인 그리스도,
 곧 그 몸-그리스도를
 언급합니다.

그 단체적인 그리스도는
 그 머리이신 그리스도 그분 자신과
 또 그분의 지체들인
 그 모든 믿는 이들을 가지는
 (with; …과 함께하는)
 그분의 몸인 그 교회로
 구성됩니다(is composed of).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 모든 믿는 이들이
그분과
 유기적으로 합일되고
 (are … united;
 합병[결합, 연합]되고)
또 그분의 생명과 또 요소로
 구성되며
또 이와 같이
 (thus; 그러므로)
 그분을 표현하는
 그분의 몸,
 곧 한 유기체가
 되었습니다(have … become);
이런 이유로,
 그리스도께서
 그 머리이실 뿐 아니라
 또한 그 몸이십니다.

그 성경은
 그리스도와 또 그 교회를
 하나의 비밀한 그리스도로
 (as one mysterious Christ;
 유일한 신비한[동일한 불가사의한] 그리스도로)
 여깁니다(considers);
그리스도께서
 이 비밀한 그리스도의
 그 머리이시고,
또 그 교회는
 이 비밀한 그리스도의
 그 몸입니다.

 

1일

엡 2:16
또한 적대감을
십자가로 소멸하셔서,
이 십자가를 통하여
이 둘을
한 몸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엡 4:3
화평의 매는 띠로
그 영의 하나를
힘써 지키십시오.

그리스도의 몸은
우주적으로
유일하게 하나이다
(엡 4:4-6).
우리는
개인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고,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은
그리스도의 이 유일한 몸의
일부분들이다.
몸 안에 있는
우리는
온 우주의 모든 성도들과
하나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에베소서 4장
4절부터 6절까지는
우주적인 하나를 묘사한다.
… 우리는
이 절들에서
삼일 하나님께서
몸과 연합하셨음을
볼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몸은
지방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우주적인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몸의
우주적인 하나이다.

그리스도의 몸의 하나는
그 영의 하나이고
(엡 4:3),
신성한 삼일성에 의한
신성한 조성의 하나이다
(요 17:21-23).
… 이 신성한 하나는
그리스도 안의
모든 믿는 이들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서
분별시키며,
모든 믿는 이들을
함께 묶어
그리스도의 한 몸이
되게 한다.

그 영은
그리스도의 유기적인 몸의
본질이시다.
따라서 그 영은
그리스도의 몸의
하나의 실재이시다.
다른 말로 하면,
그리스도인들의 하나는
그 영 자신이다.
우리에게
그 영께서 계신다면
우리에게는
하나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그 영 안에 있다면
우리는
하나 안에 있는 것이다.

교회의 지방적인 터는
기본적으로
각 지방에 있는
교회 안에서 실행되는
그리스도의 몸의
유일한 하나이다.
그리스도의 우주적인 몸이나
각 지방에 있는 교회는
다 유일하게 하나이다.
온 우주에는
그리스도의 유일한 한 몸이 있고,
각 지방에는
유일한 한 지방 교회가 있다.
이러한 유일한 하나가
교회생활의 기본 요소이다.
그리스도의 몸의 하나는
그 영의 하나이므로
(엡 4:3),
한 지방에 있는 교회에서
실행되는 하나는 반드시
그 영의 움직임 안에
있어야 하고
그 영의 통치 아래
있어야 한다.
따라서 그 영은 또한
교회의 터의
기본 요소이시기도 하다.
이뿐만 아니라,
각 지방에 있는 교회는
그것이 소재한 지방과
많은 관련이 있으므로,
교회가 소재한 지방 또한
교회의 터의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므로 한 지방의 교회가
건축되는
교회의 터는 반드시
그 영에 의해 집행되는 하나와
지방에 의해 보호되는 하나로
구성되어야 하고,
그러한 하나 안에서
나타나야 한다.

교회의 터는
단지 지방적이어서는 안 되며
반드시 우주적이어야 한다.
지방적으로 보자면
지방이
교회의 터이지만,
우주적으로 보자면
진정한 하나가
교회의 터이다.
그리스도는
오직 한 몸만을
가지고 계신다.
그리스도의 몸의 하나는
교회의 우주적인 터이다.

한국에 있는
모든 지방의 교회들이
그들 간에는 하나이지만
다른 대륙에 있는 교회들과는
하나가 아니라고 가정해 보라.
이런 경우,
한국에 있는 교회들은
지방적인 터,
곧 지방이라는 터는
가지고 있을지 모르지만,
몸의 우주적인 터,
곧 몸의 하나라는 터는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
온 우주 안에
그리스도의 몸은
유일하게 하나이다.
북미, 남미, 유럽,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아시아 등
육대주에 있는
모든 지방의 교회들은
한 몸이다.

영국에 있는 교회들이
독일에 있는 교회들에게
“우리는
영국에 있는 교회들이고
당신들은
독일에 있는 교회들이니
우리의 일에
상관하지 마시오.”
라고 말한다면,
그들이
지방적으로는 옳을지 모르지만
우주적으로는 그릇된 것이다.
그들은
지방적인 하나를
지키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우주적인 하나를
파괴하고 있다.
… 우주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우주적인 몸의 하나가
교회의 터이다.
따라서 하나에는
지방적인 면과
우주적인 면이 있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