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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부흥을 위한 거룩한 말씀

몸을 위해 십자가의 일을 체험하고 몸의 유일한 교통 안에서 삶

Experiencing the Work of the Cross
for the Body
and Living in the Unique Fellowship
of the Body
그 몸을 위하여
그 십자가의 그 일을 체험함과
또 그 몸의
그 유일한 교통 안에서 생활함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 안에서
살고자 한다면,
몸을 위해
그리고 몸 안에서
십자가의 일을
체험해야 한다
― 고전 1:23, 2:2, 12:12-13, 27,
골 1:20, 3:15.

십자가는
우리를
몸으로 이끈다.
십자가에 대한 인식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인식을
가져다준다
― 고전 1:18, 12:12-13, 27,
롬 6:6, 8:13, 12:4-5.

십자가는
몸을 이끌어 오고,
몸의 영역 안에서
작용한다.

십자가의 일은
그리스도의 몸에까지 미치고
그리스도의 몸으로 완결된다
― 고전 1:18, 23, 2:1-2, 12:12-27.

십자가의 일은
우리를
몸 안으로 인도하며,
몸은
십자가가 운행하는
영역이 된다
― 골 1:20, 3:15.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우리는
십자가 없이
전진할 수 없다
― 엡 2:16.

십자가는
우리를 시험하고
우리의 모든 혼합물과 더러움을
걸러 낼 것이다
― 마 16:24, 눅 22:31-32.

십자가는
우리의 타고난 생명,
우리 자신의 활동들,
균형을 이루지 못한 모든 성장을
파낼 것이다
― 마 16:24-26.

몸 안에서의
생활과 일을 위해서는
육체를
철저히 처리하는 것이 필요하고,
그러한 처리를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깊은 인식이 필요하다
― 갈 5:24.

몸의 제한은
우리의 자유를 빼앗고,
우리를 십자가로 몰아넣을 것이다
― 롬 12:3, 고후 10:13-15, 엡 4:7, 16.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루신
그 모든 일들은
몸을 위해
우리를
준비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 안에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은
일종의 제거하는 과정인데,
이것은
우리가
몸 안에서
기능을 발휘하는
지체가 될 수 있게 한다
― 롬 6:6, 8:13, 12:4-8.

우리의 타고난 생명이
십자가에 의해 처리된다면,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머리의 권위에 복종하고
몸의 생활을 한다면,
우리는
그 영의 기름 바름을 가지고
몸의 교통을 누릴 것이다
― 골 1:18, 고전 10:16.

몸에 대한 계시는
큰 대가를 요구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우리의 타고난 생명의
근원을 만지기 때문이다
― 롬 6:6, 갈 2:20.

우리는
몸의 이상 아래서
파쇄될 것이고,
몸을 알고
몸 안에서 건축되는
유일한 길이
파쇄되는 것임을
깨달을 것이다
― 행 9:3-6.

십자가가
우리 안에서
깊은 일을 이루어 낸 후에만,
우리는
몸의 다른 지체들에게
제한을 받으며
그들과
동역할 수 있을 것이다
― 고전 12:14-20.

몸에 대한 계시는
우리의 영적 생활에
변혁을 가져다줄 것이다.
이러한 계시를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속한
그 무엇도 아닌,
오직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몸의 지체로
조성하실 수 있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 골 1:27, 3:10-11.

그리스도의 몸은
우주적으로
유일하게 하나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몸의 교통 또한
우주적으로 유일하게 하나이다
― 행 2:42, 요일 1:3, 7, 고전 10:16-17.

사람의 몸 안에
혈액 순환이 있듯이
그리스도의 몸 안에도
순환이 있다.
신약은
이러한 순환을
교통이라고 부른다
― 요일 1:3, 7.

그리스도의 몸의 교통은
신성한 생명의 흐름이다.
신성한 생명의 흐름이
우리 안에서 흐를 때,
그리스도의 몸의
교통이 있다
― 행 2:42, 요일 1:3, 7.

신성한 교통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생활하는 것의
실재이다.
이러한 교통 안에서
제한받을 때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 안에서 지켜진다
― 고전 1:9, 12:12-13, 27.

그리스도의 몸의
유일한 교통은
그리스도의 몸의
유일한 하나와 관련된다
― 고전 6:17, 10:16-17, 12:20.

몸 안에 있는
신성한 생명의 교통,
신성한 생명의 순환은
몸의 모든 지체들을
하나 안으로 이끈다
― 엡 4:3-6.

이 하나는
그 영의 하나이며
또한 그리스도의 몸의 하나이다
― 엡 4:3-4, 고전 12:12-13.

유일한 교통은
믿는 이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지켜주는
유일한 터인
그리스도의 몸의
진정한 하나이다
― 엡 4:3-6.

교회들 사이의 교통은
그리스도의 몸의 교통이다
― 고전 10:16-17.

한 영이 있기 때문에
오직 한 몸만 있으며,
몸 안에는 오직
생명의 한 순환만 있다.
이러한 순환이
그리스도의 몸의
교통이다
― 엡 4:4, 요일 1:3, 7.

한 지방에 있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유일한 몸의
일부이고,
몸의 교통은
우주적으로 하나이다.
교통 안에는
분리가 없다
― 계 1:11, 2:7상.

어떤 교회나 권역도
스스로를
몸의 교통에서
고립시켜서는 안 된다.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교통을
계속 가지기 위해
온 땅의
모든 참된 지방 교회들과
교통해야 한다
― 골 4:16.

그리스도의
우주적인 한 몸을 구성하는
모든 교회들 가운데는
조직이 없으며,
그리스도의 몸의 교통이
있을 뿐이다
― 빌 1:5.

주님의 상에
올 때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우주적인 몸의
유일한 교통을
실행하기 위해
오는 것이다
― 고전 10:16-17, 11:24-26.

주님의 상은
그리스도께 속한
우리가
하나라는 것을
보여 주는 증거이다.

우리가
주님의 상에서
그리스도의
피와 몸에 참여함으로
그분을 누릴 때,
그리스도의
몸의 교통,
곧 교회들 가운데 있는
유일한 교통을
표현하고 실행한다
― 행 2:42, 요일 1:3, 7,
빌 1: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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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replies on “몸을 위해 십자가의 일을 체험하고 몸의 유일한 교통 안에서 삶”

신언노트 요약, 2019 04 28
그 몸을 위하여

 그 십자가의 그 일을 체험함과

 또 그 몸의

 그 유일한 교통 안에서 생활함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실재 안에서
 (in the reality; 그 실재로)
 살려고 한다면,

우리는
 그 몸을 위하여

 또 그 몸 안에서

 그 십자가의 그 일을

 체험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십자가가

 우리를
 그 몸으로 인도합니다;

그 십자가의 그 지식은
 (of the knowledge;
 …를 앎은, …에 대한 인식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지식을
 가져옵니다.

그 십자가는
 그 몸에 안내하고,

또 그 십자가는
 그 몸의 그 영역 안에서
 작용합니다
 (operates;
 운용됩니다, 효력이 나타납니다,
 움직입니다, 일합니다):

그 십자가의 그 일은

 그리스도의 그 몸에까지 이르고(goes; 가고)
 또 그리스도의 그 몸으로 완결됩니다.

그 십자가의 그 일이

 우리를
 그 몸 안으로 데려갈 뿐만 아니라,

또한 그 몸이

 그 안에서
 그 십자가가 일하는
 그 영역이 됩니다.

그리스도의 그 몸 안에서
 우리가

 그 십자가 없이는
 계속하여 갈 수 없습니다
 (cannot go on;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 십자가가
 우리를 시험할 것이고
 (will test;
 검사할 것이고)

 또 우리의 모든
 혼합물들과
 (mixtures; 혼성물들과)

 더러움을

 체로 걸러 없앨 것입니다
 (will … sift away;
 체로 쳐 제거할 것입니다).

그 십자가가
 우리의 타고난 생명,

 우리 자신들의(own; 소유의) 활동들,

 또 어떤 불균형적인 성장도
 (any disproportionate growth;
 어떤 어울리지 않는[알맞지 않은] 성장이든)

 파내 버릴 것입니다
 (will dig away;
 파서 없앨 것입니다).

그 몸 안에 있는

 생활과
 (Life; 생명과)
 또 일은

 그 육체의
 과감한
 (drastic;
 철저한, 격렬한, 극단적인)
 처리들을

 필요하게 만들고
 (necessitate;
 불가피하게 하고, 강요하고, 수반하고),

또 그러한 처리들은

 그리스도의 그 십자가에 대한(of)
 한 깊은 지식을
 (knowledge;
 앎을, 인식을)

 필요하게 만듭니다.

그 몸의 그 제한은

 우리의 자유를
 없앨 것이고
 (will take away;
 제거할 것이고),

또 우리를

 그 십자가로
 몰고 갈 것입니다
 (will … drive;
 몰아갈(몰아넣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루심들의(of; …에서)
 모두가(All)

 그 몸을 위하여
 우리를 준비하시려는

 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have been with a view to;
 한 계획과[고려와] 함께 있어 왔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그분의 전체의 일은
 (all His work;
 그분의 모든 일은, 그분의 일 전부는)

 제거의
 (of elimination; 배출의)
 한 과정이고

그 결과(so that)
 우리가
 그 몸의

 기능을 발휘하는 지체들이
 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의
 타고난 생명이(life; 생활이)

 그 십자가에 의해 처리된다면

또 우리가
 그리스도의 그 머리이심에
 (the headship;
 그 머리의 지위[권위]에)
 복종하고

 또 그 몸 생활을 산다면,

우리는
 그 영의 기름 바르심을
 가질 것이고

 또 그 몸의 그 교통을
 누릴 것입니다.

그 몸의 그 계시는

 매우 큰 대가가 따르는데
 (very costly;
 매우 비용이 많이 드는데, 아주 귀중한데),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의 타고난 생명의

 그 원천을 접촉하기 때문입니다
 (touches the spring;
 그 샘을[근원을] 만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몸의 그 이상 아래에서

 부서질 것이고
 (will be broken;
 깨질[끝장날] 것이고),

또 우리는
 우리가
 그 몸을 아는

 또 그 몸 안에서 건축되는

 그 유일한 길이

 부서지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will realize;
 체득할 것입니다).

오직 그 십자가가

 우리 안에서

 한 깊은 일을
 일한 후에만
 (Only after … has wrought;
 … 일했던 뒤에야)

우리가
 그 몸의 그 다른 지체들에 의하여

 제한받을 수 있을 것이고

 또 (그 다른 지체들과)
 동역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몸의 그 계시는

 우리의 영적인 생활 안에 있는

 한 혁신을
 (a revolution;
 한 변혁을[완전한 변화를, 선회를])
 의미할 것입니다;

이 계시는

 우리를
 그 몸의 그 지체들로
 구성하는 것이(who; 이께서),

우리 자신들에 속한
 어떤 것도 아니고,

 오직 우리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시라는 것을

우리로 하여금
 보게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그 몸이

 우주적으로
 (universally;
 보편적으로, 일반적으로, 누구에게나,
 어디에서나, 예외 없이, 두루, 널리)

 유일하게
 (uniquely;
 독특하게, 유례없이)

 하나이기(one) 때문에,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교통도 또한

 우주적으로
 유일하게
 하나입니다:

사람의 그 몸 안에
 혈액의 그 순환이
 있는 것과 똑같이(Just as),

그리스도의 그 몸 안에도
 한 순환이 있습니다

―신약이
 교통이라고 부르는
 한 순환입니다.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교통이

그 신성한 생명의
 그 흐름입니다
 (the stream;
 그 시내[분류奔流, 연속]입니다);

그 신성한 생명의
 그 흐름이

 우리 안에서 흐를 때,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교통이 있습니다.

그 신성한 교통은

 그리스도의 그 몸 안에서 생활함의

 그 실재입니다;

이 교통 안에서
 제한받음에 의하여,

그리스도의 그 몸이

 하나임(oneness) 안에
 지켜집니다.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유일한 교통은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유일한 하나임과
 관련됩니다:

그 몸 안에 있는
 그 신성한 생명의,

 그 교통,
 곧 그 순환은

그 몸의
 그 모든 지체들을

 하나임 안으로
 데려옵니다.

이 하나임은

 그 영의
 그 하나임이고

 또한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하나임입니다.

그 유일한 교통은

 그 믿는 이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지켜지는

 그 유일한 근거인
 (ground;
 땅인, 장인, 영역인, 기초인, 입장인)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진짜(genuine) 하나임입니다.

그 교회들 사이의(among)
 그 교통은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교통입니다:

하나의 영이 있기 때문에,
 오직 하나의 몸이 있고,

 또 그 몸 안에
 오직 하나의
 생명의 순환이 있습니다
 (… only one circulation of life;
 생명에 속한
 오직 하나의 순환이 있습니다;

이 순환이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교통입니다.

지방의 한 교회는

 그리스도의 그 유일한 몸의
 한 부분이고
 (a part; 일부이고),

또 그 몸의 그 교통은

 우주적으로 하나입니다;

교통 안에

 분리가(separation; 이탈이) 없습니다.

교회나 또는 권역은
 (region;
 지역은, 지방은, 광역은,
 영역은, 행정구는)

 그 몸의 그 교통에서부터

 그 자체를(itself)
 고립시키지 말아야만 합니다.

지방의 그 교회들은

 그 전체의 땅 위에 있는
 지방의 그 모든 진짜(참된) 교회들과

 교통해야만 하고

(그 결과[to keep])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교통을 지켜야만 합니다.
 
그리스도의

 그 하나의 우주적인 몸을
 구성하는

 그 모든 교회들 사이에(Among),

 조직이
 (organization;
 조직체가, 조직화가,
 편제가, 계통이, 체계성이)
 없고,

오직(but)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교통만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상에
 올 때는 언제든지,

우리는
 와서

 그리스도의
 그 우주적인 몸의

 그 유일한 교통을

 실행합니다:

주님의 상은

 그리스도께 속한
 우리가

 하나라는

 한 증거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상에서(at)

 그분의 피와 또 몸에
 함께함 안에서
 (in partaking of …;
 참여함 안에서, …을 함께 먹음[마심]으로)

 그리스도를 누릴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교통,

 곧 그 교회들 사이의(among)
 그 유일한 교통을

 표현하고
 또 실행합니다.

6일

고전 10:16-17
우리가 축복하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의 교통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의 교통이 아니겠습니까?
떡이 하나이요,
우리 많은 사람이
한 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한 떡에 참여하기 때문입니다.

지구상에 있는
그리스도인의 교통은
오직 하나이며,
그것은 바로
삼일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사도들의 교통이다.
이 교통은
주님의 상에서 표현된다.
우리는 떡을 먹을 때
그리스도의
몸의 교통에 참여하고,
잔을 마실 때
주님의
피의 교통에 참여한다
(고전 10:16).
주님의 몸과 피는
유일하고,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교통 또한
유일하다.
우리는
한 떡에 참여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비밀한 몸이 되었다
(17절).
그러므로 이 우주적인 교통은
그리스도의
몸의 교통이다.
이것은
사도들이
우리에게 전해 준
교통이다.
따라서 이것은
사도들의 교통이며,
삼일 하나님은
이 교통과 함께하신다.
그러한 교통은 반드시
우주적이어야 한다.
교회들은
행정에 있어서는
지방적으로 분리되어 있지만,
교통에 있어서는
우주적으로 하나로 연합되어 있다.

고린도전서 10장 16절에 나오는
교통은
믿는 이들이
그리스도의 피와 몸에
함께 참여하는
공동 참여를 가리킨다.
이것은
주님의 피와 몸에 참여하는
우리를
서로 하나 되게 할 뿐만 아니라,
또한 주님과 하나 되게 한다.
참여자들인 우리는
주님의 피의 교통과
주님의 몸의 교통 안에서
우리 자신을
주님과 동일하게 여긴다.

17절에서
바울은
한 떡과 한 몸에 관해
분명하게 말한다.
그는
우리 모두가
한 떡에 참여하기 때문에
한 몸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한 떡에 함께 참여함으로
우리 모두는
하나가 된다.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께 참여함으로
그분의 한 몸이 된다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 모두가 참여한
바로 그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그분의 한 몸으로
조성시키신다.

만일 우리가
자신을
몸의 교통에서
고립시킨다면,
우리는
주님의 몸에 참여할
자격을 잃는다.
왜냐하면 주님의 만찬에서
상 위에 놓인 떡은
그리스도의 몸 전체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확실히 떡은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그분의 물질적인 몸을
상징한다.
이것은
떡의 의미 중
한 방면이다.
또 다른 방면에서
떡은
몸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주님의 상에 참여하려고
함께 모일 때,
우리는
떡이
모든 교회들을 상징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만일 우리의 지방에 있는 교회나
어떤 권역에 있는 교회들이
그리스도의 몸의 교통에서
고립되어 있다면,
우리는
이 떡에 참여할
입장과 권리를 잃는다.
우리는
주님의 상에 올 때마다
몸의 교통을
실행하기 위해
오는 것이다.
주님의 상은 단순히
주님을 기념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그리스도께 속한
우리가 하나라는 것을
보여 주는 증거이다.

그리스도의 몸의 교통은
우리가
주님의 상에서
그리스도의 피와 몸에 참여할 때
표현되고 실행된다
(고전 10:16, 21).
주님의 상에 참여할 때
우리는
어떤 교통에 참여하는 것이며,
이 교통이 바로
주님의 몸의 교통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주님의 잔을 마시면서
주님의 상에 참여한다.
축복의 잔인
이 잔은
그리스도의 피의 교통이며,
떡은
그리스도의 몸의 교통이다.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는
우리가 먹을 수 있도록
그분의 몸을 주셨고
우리가 마실 수 있도록
그분의 피를 주셨다.
그 결과 우리는
그분을 누린다.
우리의 누림을 위해
자신을 주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분이신
그리스도는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의
체현으로서,
죽음과 부활을 통해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다.
오늘날
자신의 몸과 피를
우리에게 주신 분은
생명 주시는 영이신
그리스도이다.
우리가
주님의 상에서
그분의 피와 몸에
참여함으로
그분을 누릴 때,
그리스도의 몸의 교통,
곧 교회들 가운데 있는
유일한 교통을
표현하며
실행한다.

 

5일

엡 4:3-4
화평의 매는 띠로
그 영의 하나를
힘써 지키십시오.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도
부름을 받았을 때
한 소망 안에서
부름을 받았습니다.

빌 1:5
왜냐하면 여러분이
첫날부터 지금까지
복음의 확산을 위하여
교통해 왔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4장 4절에서
바울은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
라고 말한다.
몸이
그 영 앞에 언급되었는데,
그 이유는
우리들 사이의 하나가
몸과 관련이 있고
몸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절은
몸의 유일함을
계시할 뿐 아니라,
한 몸이
한 영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도
보여 준다.
즉 한 영이 있기 때문에
한 몸이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영이 없기 때문에
또 다른 몸이 없다.
몸과 영은
하나이기 때문에,
우리는
몸의 유일한 하나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

더 나아가
몸 안에는
생명의
한 순환, 곧 한 교통이 있다.
이 순환이
그리스도의 몸의
교통이다.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은
모두 이 유일한 교통 안에
있어야 한다.

우주적으로 하나인
그리스도의 몸을 구성하는
모든 교회들 가운데에는
조직이 없으며
그리스도의 몸의
교통만 있다.
이것은
합당한 교회생활 안에는
조직이 없고
많은 교통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마치 사람의 몸에
조직이 없고
순환이 있는 것처럼,
우리는
조직을 가져서는 안 되며
그 대신 교통을 가져야 한다.
만일 모든 교회들이
이 순환 안에,
즉 몸의 교통 안에
머문다면
건강할 것이다.
그러나 타고난 사람의 생각은
조직을 가지든지
아니면 다른 이들과
아무런 관계도 가지지 않든지
하려고 한다.
한편으로 우리는
교회들 가운데서
어떤 조직도
가지지 말아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교회들과
교통을 가지기 위해
열려 있어야 한다.
그런데 어떤 지방에 있는 교회나
어느 특정 권역에 있는 교회들은
다른 교회들과
기꺼이 교통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런 태도는
절대적으로 그릇된 것이다.

우리는 심지어
지리적으로 가까운 교회들과도
교통이 부족하다.
순환이 거의 없다.
나의 어깨가
나의 몸의 혈액 순환에
적절하게 참여하지 않는다면
병들게 될 것이다.
나의 육신의 어떤 부분도
다른 부분과 분리될 수 없는데,
왜냐하면 몸의 모든 부분들이
하나의 혈액 순환에
참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자신을 분리해 놓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부분이 분리된다면
그 부분은 결국
죽게 될 것이다.
건강을 유지하는
가장 좋은 길은
‘더 많은 피를 받아들이고
더 많은 피를 내보내는 것’,
즉 생명의 순환인
교통 안에 있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구원하고
몸의 치료를 촉진시킬 것이다.
어떤 곳에는
교통의 부족 때문에
평안이 전혀 없다.
우리에게
교통이 많을수록
우리는
평안을 더욱 많이 가지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신체적으로 약한 까닭은
너무 많이 앉아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서
나오지 않은 채
우리 자신하고만
머물러 있고,
우리 자신 안에서,
우리 자신을 위해서만
머물러 있기 때문에
아프고 약하다.
… 우리는
다른 교회들과 교통함으로써
자신에게서 나올
필요가 있다.
만일 우리가
도움을 받기 원한다면,
그 비결은
다른 지방에 있는
형제들을 방문하는 것이다.
텍사스에 있는 형제들은
… 텍사스의 경계를 깨고
클리블랜드와 시애틀에 갈
필요가 있다.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우주적인 교통을
계속 가지기 위해
온 땅의
모든 참된 지방 교회들과
교통해야 한다.
어떤 지방의 교회라도
그리스도의 몸의
이 우주적인 교통을
유지하지 않는다면,
분열을 일으키고
지방 분파가 되어 버린다.
소위 지방 교회라고 자칭하는
몇몇 교회들은
참되지 못하고 분열적인
모임이 되어 버렸다.
우리는 이런 ‘교회들’과
교통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몸의
우주적인 교통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온 땅 위의
참된 지방 교회들과는
교통을 가져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니라
분파일 뿐이다.
교회는
몸 안에 머물러 있다.
반면에 분파는
스스로를
몸에서 분리시키는
한 무리의 믿는 이들이다.
나의 팔이
그 몸 안에 머물러 있다면,
그것은
살아 있는 나의 몸의
일부입니다.
만일 그것이
잘려 나가고
또 그 몸에서부터 분리된다면,
그것은
한 죽은 것이 됩니다.

 

4일

요일 1:3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전해 주는 것은
여러분도
우리와 함께
교통을 갖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교통은
아버지와
또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것입니다.

요일 1:7
그러나 하나님께서
빛 안에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안에서 행하면,
우리는
서로 교통을 갖게 되고,
그분의 아들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온갖 죄에서
깨끗하게 합니다.

혈액 순환은
우리 몸의 교통이다.
그리스도의 몸의 교통 또한
일종의 순환이다.
…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는
교통은
그 영의 순환이다.
오늘날 그 영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는
‘피’이다.
우리의 몸에
피가 없다면
우리의 몸은
메말라 죽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몸에
그 영이 없다면
그것은
시체와 같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의
교통은
단순히 말해서
그 영,
단지 성령이나 하나님의 영이 아닌
‘그’ 영의
순환이자 흐름이다.
… 이 영 안에
신성
즉 하나님의 신성한 본성이 있으며,
인성
즉 사람의 인간 본성도 있다.
또한 그리스도의 인격,
그리스도의 모든 것을 포함한
놀라운 죽음,
그리스도의 능력의 부활과 함께
그분의 승천이 있다.
이 모든 요소들이
이 한 영 안에
복합되었다.
이 한 영이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순환하실 때,
신성과
인성과
그리스도의 인격과
그리스도의 죽음과
그리스도의 부활이
모두
순환한다.

우리의 육신에서
혈액 순환은
매우 중요하다.
이 순환은
영양분을
우리 몸의 곳곳에 전달하고,
또한 우리의 몸이
양육을 받게 한다.
… 로마서 10장 12절은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주님이
우리에게 풍성하시다고
말한다.
나는
우리가
큰 소리로
그분을 부르면 부를수록
우리의 영이
더욱 해방되고
우리는 더욱 치료함을 받아
강건하게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렇게 주님을 부르는 것은
우리를
매우 건강하게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렇게
주님을 부르는 것은
운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항상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다면
매우 약할 것이다.
그러나
“오, 주 예수님!
오, 주님!
오, 주님!
아멘, 할렐루야!”
라고 십 분 동안 외친다면,
주님은
우리에게
풍성하신 분이
되실 것이다.
… 주님은
그분을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풍성하시다.
부르는 것은 다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부르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는
외치는 것,
심지어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을
뜻한다.
어떤 상황에서는
주님을 크게 부르는 것이
합당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큰 소리로
외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우리는 크게
“오, 주 예수님!
아멘!”
이라고 외쳐야 한다.
이렇게 주님을 부름으로써
우리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누리고
강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그 영께서
우리 안에서 순환하시도록
하기 때문이다.
이 순환하시는 영께서
그 안에
신성과
인성과
그리스도의 인격과
그리스도의 죽음과
그리스도의 부활을
포함하고 있는
복합되신 영이시다.
… 이 영께서
우리 안에서 순환하실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모든 풍성을
누린다.
이 순환이
그리스도의 몸의
교통이다.

신성한 교통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생활하는 것의
실재이다.
수 세기 동안
주님은
교통의 부족으로 인해
좌절을 겪으셨다.
요한계시록 22장 20절에서
주 예수님은
“내가 속히 가겠다.”
라고 말씀하셨지만,
이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분은 아직
오시지 않았다.
그 이유는
믿는 이들이
개인적이고
독립적이며
의견이 분분하고
분열적이기 때문이다.
… 믿는 이들은 마치
고삐 풀린 말과 같다.
신성한 교통이
믿는 이들을 통제해야 하는데,
오늘날 아무도
그들을 통제할 수 없는 것 같다.

우리를 다스리는
유일한 것이
신성한 교통이다.
우리는
이 교통 안에서
제한받는다.
이 교통 안에서
제한받을 때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 안에 지켜지고
사역의 일은
계속해서 전진한다.
… 모든 것을
살아 있게 하는 것이
교통이다.
교통하기를 배운다면,
우리는 특별히
주님의 일에서
많은 유익을 얻을 것이다.

 

3일

고전 1:18
왜냐하면 십자가의 말씀이
멸망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고전 2:2
왜냐하면 내가
여러분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하였기 때문입니다.

고전 12:27
여러분이 곧
그리스도의 몸이며,
여러분 각 사람은
그 지체들입니다.

우리는
십자가가 중심이라는 것을
믿는다.
그러나 십자가 자체는
목적이 아니며
신성한 목적에 도달하는
신성한 수단이다.
목적은
그리스도의 몸이다.
십자가가
우리의 생활 중에서
특별한 일을 이루어 낼 때,
우리는
자신이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음을
발견한다.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
조성해 주는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계시를 주신다면,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그 계시는 단지
우리가 해석해야 하는
새로운 진리에
불과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 계시는
변혁을 의미할 것이다!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의
한 지체로
조성해 주는가?
우리가 체험한 어떤 것이나
우리가 성취한 어떤 것이
아닌,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 조성해 주신다.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게 하는 것은
우리 자신 안에 있는
그 어떤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주님의 생명이다.

그리스도의 몸은 바로
그리스도이다.
바울이
“왜냐하면 몸은 하나인데
… 그리스도도
그와 같으시기 때문입니다.”
(고전 12:12)
라고 말한 것은
영적으로
조금도 잘못되지 않았다.
문법에 따른다면,
그는
“그리스도와 교회도
그와 같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머리가 그리스도이고
몸도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모든 것이
몸을 조성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에게서 나오지 않은
모든 것은
반드시 배제되어야 하며,
몸 안에 들어올 수 없다.
그리스도에게서 나오지 않은
모든 것은
‘더해야’ 할 것이 아니라
완전히 ‘빼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얻거나
무엇을 할
필요가 없다.
우리의
모든 어떠함과
모든 소유는
다만 제해져야 한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가
이루어야 할 일이다.
십자가는
몸에 참여할 수 없도록
가로막는 것들을
우리에게서 제거하는
신성한 수단이다.
우리의 자아에서 나온 것,
우리의 기질과 조성 등은
반드시 제해져야 한다.
하나님은 반드시
이러한 것들을
만지셔야 한다.
어떤 사람은
머리가 매우 총명하다.
그들은
그러한 총명한 생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잘 이해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잘 공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그것은 제해져야 한다.
이전의 우리의 사역은 종종
단지 총명한 생각에 의한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에서
구원받는 것이 필요하며,
머리에
구원의 투구를 쓰는 것이
필요하다.
천연적인 힘의
등뼈는
반드시 부러져야 한다.
우리는 반드시
신성한 것들에 대한
올바른 안목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에베소서와
이 시대를 위한
그분의 목적이
무엇인지 보여 주시기를
구한다면,
하나님은 분명히
그리스도의 몸을
우리에게
보여 주실 것이다.
십자가는
우리를
직접 그리스도의 몸으로
향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은
아담에게서 온
모든 것을 제거한다.
나에게서 나온
모든 것은
그리스도 안에
참여할 수 없다.
나의 몸이 이미
완전하기 때문에
내가
나의 몸에
어떤 것도
‘더할’ 수 없는 것처럼
그리스도도
그러하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계시가
큰 대가를 요구한다는 것을
반드시 깨달아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생명의
근원을 만질 것이다.
이러한 일이
이루어질 때,
개인적인 지체의 활동은
완전히 멈춰진다.
몸 안에서는
마음대로 거동할 수 없다.
나의 손가락이
움직이려고 한다면
팔의 근육이
움직이지 않을 수 없다.
나의 팔이
움직이려고 할 때
손가락은
어쩔 수 없이
같이 움직여야 한다.
모든 개인주의는
반드시 제해져야 한다.
우리는 반드시
다른 사람과
함께 행동해야 하고,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한다.
우리는
단독적으로 전진할 수 없고
반드시 형제들과 함께
전진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을
보기를 원한다면,
다른 것을 머리 삼는 문제는
반드시 처리되어야 한다.
다른 것을 머리 삼는 것은
그리스도의 절대적인 주권과
충돌한다.

우리가 참으로
십자가를 안다면,
이것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인도할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과
십자가의 깊은 의미와
그리스도의 몸의 진리를
안다고
공개적으로 말하고,
그들이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고
선포한다.
그들은
옛사람이
반드시 제해져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비극적인 것은
실지로 옛사람을 제하는 일에
장애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루신
그 모든 일들은
몸을 위해
우리를 준비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 안에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은
일종의 제거하는 과정인데,
이것은
우리가
몸 안에서
기능을 발휘하는
지체가 될 수 있게 한다.

 

2일

엡 2:16
또한 적대감을
십자가로 소멸하셔서,
이 십자가를 통하여
이 둘을
한 몸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마 16:2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십시오.

십자가의 일은
우리를
몸 안으로 인도하며,
몸은
십자가가 운행하는
영역이 된다.
만일 우리가
단지 사람들의 모임일 뿐이라면
십자가가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연합하여
몸이 되려면
십자가가 필요하다.
십자가는
우리의 타고난 생명,
우리 자신의 활동들,
균형을 이루지 못한 모든 성장을
파낼 것이다.
교회 가운데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에는
십자가가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는
형제자매들과
기뻐도 왕래해야 하고
기쁘지 않아도 왕래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모두
몸 안에 있기 때문이다.
몸 안에 있는 한
우리는 반드시
제한을 받아야 하며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만일 우리가
지체가 아니라면
개인의 즐거움을
구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체이기 때문에
우리 자신의 즐거움을
더 이상 구할 수 없다.
우리가
우리를 힘들게 하는 형제를 만날 때
우리에게는 참으로
십자가가 필요하다.
십자가는
우리를 시험하고
우리의 모든 혼합물과 더러움을
걸러 낼 것이다.
우리에게는 반드시
몸의 제한이 필요하다.
몸의 제한은
우리의 자유를 빼앗고,
우리를 십자가로 몰아넣을 것이다.
십자가가
우리에게
깊이 일한 후에만
우리는
형제자매들과 연합할 수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다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이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몸의 제한을 받아야 하고,
반드시 십자가를 지기를
배워야 한다.
어떤 사람의 기질은
매우 강하다.
이 강한 기질은 반드시
파쇄되어야 한다.
어떤 사람은
매우 특별하다.
이 특별함도 반드시
파쇄되어야 한다.
그 누구도
교회 가운데서
자신의 강함이나 특별함을
자랑할 수 없다.
교회 안에서는
날카로운 것,
두드러진 것,
돋보이는 것이
다 갈려 없어져야 한다.

영적인 일에서,
우리는 모두
다른 지체들을
의지하는 것이 필요하고,
몸의 제한이 필요하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은혜를 받아
기적을 행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은혜를 받아
복음 전파자나 교사가 될 수 있다.
만일 여러분이
복음을 전할 줄 안다면,
반드시 복음을 전하는
여러분의 기능에 만족해야 한다.
그리고 교사의 은사가 있는 사람이
전하는 말씀을
겸손히 받아들여야 한다.
만일 여러분에게
교사의 은사가 있다면,
여러분은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여러분은 또한
다른 사람의 일도
존중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여러분은
제한받기를 배워야 한다.
여러분이 할수 없는 일은
다른 형제가 하도록
허락해야 하고,
다른 사람의 일을
받아들이기를 배워야 한다.
영적인 일에서는 누구도
모든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없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여러분의 분량이
어디까지인지를 보여 주시기를
간구한 적이 있는가?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나눠 주신 분량 안에서
행해야 한다.
여러분은
오직 그 분량 안에서
행해야 하고
그 분량을 넘어서
행해서는 안 된다.
여러분은
자신의 분량의 한계를
알아야 하고,
그 한계를 받아들여야 한다.
이렇게 할 때,
여러분은
탐심이 없어지고,
야심이 없어지며,
다른 많은 일을 하려는
초조함도 없어진다.
바울은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분량을 벗어나
자랑하지 않고,
분량을 재어 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눠 주신
그 분량의 한계에 따라
자랑하는데,
여러분에게 간 것도
그 분량의 한계에 따른 것입니다.
…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수고를 가지고
우리의 분량을 벗어나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바라는 것은
여러분의 믿음이 증가함에 따라,
우리의 한계가
여러분 안에서
확대되어 넘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여러분의 지역을 넘어서
다른 지역에까지
복음을 전하려는 것일 뿐,
다른 사람의 한계 안에서
이미 이루어 놓은 일들을 가지고
자랑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고후 10:13, 15-16)
라고 말했다.
자신의 분량을 넘어서는 것은
바로 다른 이들을
밟고 침해하고 밀어내는 것이다.
우리는
헌신이
우리를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하고,
겸손은
우리를
몸에게 복종하게 한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시편 기자는
“내가
큰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시 131:1)
라고 말했다.
큰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은 바로
자신의 분량을 넘는 일이다.
만일 모든 사람이
시편 기자의 말처럼
큰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않는다면,
각 지체가
자신의 분량에 따라
기능을 발휘할 것이다.

 

신언노트, 2019 04 28

그 몸을 위하여
 그 십자가의 그 일을 체험함과
 또 그 몸의
 그 유일한 교통 안에서 생활함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실재 안에서
 (in the reality; 그 실재로)
 살려고 한다면,
우리는
 그 몸을 위하여
 또 그 몸 안에서
 그 십자가의 그 일을
 체험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십자가가
 우리를
 그 몸으로 인도합니다;
그 십자가의 그 지식은
 (of the knowledge;
 …를 앎은, …에 대한 인식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지식을
 가져옵니다.

그 십자가는
 그 몸에 안내하고,
또 그 십자가는
 그 몸의 그 영역 안에서
 작용합니다
 (operates;
 운용됩니다, 효력이 나타납니다,
 움직입니다, 일합니다):

그 십자가의 그 일은
 그리스도의 그 몸에까지 이르고(goes; 가고)
 또 그리스도의 그 몸으로 완결됩니다.

그 십자가의 그 일이
 우리를
 그 몸 안으로 데려갈 뿐만 아니라,
또한 그 몸이
 그 안에서
 (within which;
 그 영역 안에서)
 그 십자가가 일하는
 그 영역이 됩니다.

그리스도의 그 몸 안에서
 우리가
 그 십자가 없이는
 계속하여 갈 수 없습니다
 (cannot go on;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 십자가가
 우리를 시험할 것이고
 (will test;
 검사할 것이고)
 또 우리의 모든
 혼합물들과
 (mixtures; 혼성물들과)
 더러움을
 체로 걸러 없앨 것입니다
 (will … sift away;
 체로 쳐 제거할 것입니다).

그 십자가가
 우리의 타고난 생명,
 우리 자신들의(own; 소유의) 활동들,
 또 어떤 불균형적인 성장도
 (any disproportionate growth;
 어떤 어울리지 않는[알맞지 않은] 성장이든)
 파내 버릴 것입니다
 (will dig away;
 파서 없앨 것입니다).

그 몸 안에 있는
 생활과
 (Life; 생명과)
 또 일은
 그 육체의
 과감한
 (drastic;
 철저한, 격렬한, 극단적인)
 처리들을
 필요하게 만들고
 (necessitate;
 불가피하게 하고, 강요하고, 수반하고),
또 그러한 처리들은
 그리스도의 그 십자가에 대한(of)
 한 깊은 지식을
 (knowledge;
 앎을, 인식을)
 필요하게 만듭니다.

그 몸의 그 제한은
 우리의 자유를
 없앨 것이고
 (will take away;
 제거할 것이고),
또 우리를
 그 십자가로
 몰고 갈 것입니다
 (will … drive;
 몰아갈(몰아넣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루심들의(of; …에서)
 모두가(All)
 그 몸을 위하여
 우리를 준비하시려는
 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have been with a view to;
 한 계획과[고려와] 함께 있어 왔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그분의 전체의 일은
 (all His work;
 그분의 모든 일은, 그분의 일 전부는)
 제거의
 (of elimination; 배출의)
 한 과정이고
그 결과(so that)
 우리가
 그 몸의
 기능을 발휘하는 지체들이
 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의
 타고난 생명이(life; 생활이)
 그 십자가에 의해 처리된다면
또 우리가
 그리스도의 그 머리이심에
 (the headship;
 그 머리의 지위[권위]에)
 복종하고
 또 그 몸 생활을 산다면,
우리는
 그 영의 기름 바르심을
 가질 것이고
 또 그 몸의 그 교통을
 누릴 것입니다.

그 몸의 그 계시는
 매우 큰 대가가 따르는데
 (very costly;
 매우 비용이 많이 드는데, 아주 귀중한데),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의 타고난 생명의
 그 원천을 접촉하기 때문입니다
 (touches the spring;
 그 샘을[근원을] 만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몸의 그 이상 아래에서
 부서질 것이고
 (will be broken;
 깨질[끝장날] 것이고),
또 우리는
 우리가
 그 몸을 아는
 또 그 몸 안에서 건축되는
 그 유일한 길이
 부서지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will realize;
 체득할 것입니다).

오직 그 십자가가
 우리 안에서
 한 깊은 일을
 일한 후에만
 (Only after … has wrought;
 … 일했던 뒤에야)
우리가
 그 몸의 그 다른 지체들에 의하여
 제한받을 수 있을 것이고
 또 (그 다른 지체들과)
 동역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몸의 그 계시는
 우리의 영적인 생활 안에 있는
 한 혁신을
 (a revolution;
 한 변혁을[완전한 변화를, 선회를])
 의미할 것입니다;
이 계시는
 우리를
 그 몸의 그 지체들로
 구성하는 것은(who; 이는),
우리 자신들에 속한
 어떤 것도 아니고,
 오직 우리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을
우리로 하여금
 보게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그 몸이
 우주적으로
 (universally;
 보편적으로, 일반적으로, 누구에게나,
 어디에서나, 예외 없이, 두루, 널리)
 유일하게
 (uniquely;
 독특하게, 유례없이)
 하나이기(one) 때문에,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교통도 또한
 우주적으로
 유일하게
 하나입니다:

사람의 그 몸 안에
 혈액의 그 순환이
 있는 것과 똑같이(Just as),
그리스도의 그 몸 안에도
 한 순환이 있습니다
―신약이
 교통이라고 부르는
 한 순환입니다.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교통이
그 신성한 생명의
 그 흐름입니다
 (the stream;
 그 시내[분류奔流, 연속]입니다);
그 신성한 생명의
 그 흐름이
 우리 안에서 흐를 때,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교통이 있습니다.

그 신성한 교통은
 그리스도의 그 몸 안에서 생활함의
 그 실재입니다;
이 교통 안에서
 제한받음에 의하여,
그리스도의 그 몸이
 하나임(oneness) 안에
 지켜집니다.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유일한 교통은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유일한 하나임과
 관련됩니다:

그 몸 안에 있는
 그 신성한 생명의,
 그 교통,
 곧 그 순환은
그 몸의
 그 모든 지체들을
 하나임 안으로
 데려옵니다.

이 하나임은
 그 영의
 그 하나임이고
 또한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하나임입니다.

그 유일한 교통은
 그 믿는 이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지켜지는
 그 유일한 근거인
 (ground;
 땅인, 장인, 영역인, 기초인, 입장인)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진짜(genuine) 하나임입니다.

그 교회들 사이의(among)
 그 교통은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교통입니다:

하나의 영이 있기 때문에,
 오직 하나의 몸이 있고,
 또 그 몸 안에
 오직 하나의
 생명의 순환이 있습니다
 (… only one circulation of life;
 생명에 속한
 오직 하나의 순환이 있습니다;
이 순환이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교통입니다.

지방의 한 교회는
 그리스도의 그 유일한 몸의
 한 부분이고
 (a part; 일부이고),
또 그 몸의 그 교통은
 우주적으로 하나입니다;
교통 안에
 분리가(separation) 없습니다.

교회나 또는 권역은
 (region;
 지역은, 지방은, 광역은,
 영역은, 행정구는)
 그 몸의 그 교통에서부터
 그 자체를(itself)
 고립시키지 말아야만 합니다.

지방의 그 교회들은
 그 전체의 땅 위에 있는
 지방의 그 모든 진짜 교회들과
 교통해야만 하고
(그 결과[to keep])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교통을 지켜야만 합니다.
 
그리스도의
 그 하나의 우주적인 몸을
 구성하는
 그 모든 교회들 사이에(Among),
 조직이
 (organization;
 조직체가, 조직화가,
 편제가, 계통이, 체계성이)
 없고,
오직(but)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교통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상에
 올 때는 언제든지,
우리는
 와서
 그리스도의
 그 우주적인 몸의
 그 유일한 교통을
 실행합니다:

주님의 상은
 그리스도께 속한
 우리가
 하나라는
 한 증거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상에서(at)
 그분의 피와 또 몸에
 함께함 안에서
 (in partaking of …;
 참여함 안에서, …을 함께 먹음[마심]으로)
 그리스도를 누릴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교통,
 곧 그 교회들 사이의(among)
 그 유일한 교통을
 표현하고
 또 실행합니다.

 

1일

롬 6:6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

롬 8:13
… 그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

롬 12:5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며,
각 사람이 서로
지체들입니다.

십자가의 일의
최종 목적지는
교회이다.
십자가의 일은
그리스도의 몸에까지 미치고
그리스도의 몸으로 완결된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아는 것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을 아는 것으로
이끈다.
십자가는
사람을
약하고 무능력한 상태로 이끌어
옛 창조물에 대해
철저하게 실망하게 한다.
이 지점에 이를 때,
그는 실지적으로
옛 창조물에서 벗어나
새 창조물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옛 창조물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죄로 간주되어야 하고,
십자가에 의해
끝나야 한다.
그리스도의 몸은
새 창조물로서
옛 창조물과 무관하다.
우리가
이전에 사용했던
사람의 방법과 수단과 기술로
교회의 일을 처리한다면,
그 결과는
상당히 좋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결코
옛 창조물에 속한 것들을
인정하지 않으시며,
또한 절대로
옛 창조물에 속한
그 어떤 것도
새 창조물 안에 있도록
허락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옛 창조물의 모든 것은 반드시
십자가를 거쳐야 하고,
십자가 위에 머물러야 한다.
교회 안에서는
옛 창조물에게서 나온
그 어떤 것도
전혀 쓸모가 없다.
교회 안에는
오직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것만이
필요하다.

인류의 첫 번째 타락은
사람 자신의
견해와 선택과 결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때문에 하나님은
옛 창조물에서 나온
그 무엇도
새 창조물 안에서
우세해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신다.
타고난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에 의해
그의 ‘등뼈’가
부러져야 한다.
그의 넓적다리의 힘줄이
하나님에 의해
만져져야 한다.
그래야 그는
다리를 절고
땅에 엎드러져
하나님께 복종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새 창조물 안에서
하시는 일이다.
그분은
옛 창조물에서 나온
모든 것을 깨뜨리시고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모든 것으로
우리를 조성하셔서,
실지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이 되게 하신다.
… 하나님은
사람 안에서
육체에 속한
모든 것을 제거하기
원하신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먼저
타고난 생명을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
그 후에 자연스럽게
그들은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몸은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모든 것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 몸 안에는
옛사람의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로마서 5장부터 8장까지의
체험을 거칠 때,
비로소 12장의 체험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오늘날
교회가
하나가 될 수 없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이
잘못된 영역과 범위 안에
있기 때문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새 창조물 안에서
살지 않고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 안에서
생활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람의 타고난 생명에 속한 것이자
낡은 사람의 일부인
피상적인 교리들 안에서만
생활한다.
만일 각각의 그리스도인들이
처리를 받고
자신의 타고난 것들과
옛 창조물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 안에서 생활한다면,
모든 분열은
자연스럽게 없어질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셔서
그리스도의 몸이 무엇인지
보여 주시기를
바란다.
십자가가
우리에게 운행하여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이끌어 주기를
바란다.

로마서 12장은
우리에게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하지만,
교회가
어떻게 해서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지는
설명해 주지 않는다.
교회가
어떻게 해서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지를
알려면,
우리는
로마서 5장부터 8장까지를
이해해야 한다.
5장은
모든 사람이
아담과 연결되어 있고,
사람의 생명이
아담에게서 온 것임을
말해 준다.
아담의 타락을 통하여
모든 사람은
죄인이 되었으며
옛사람에게 연결되었다.
6장은
이 옛사람이
처리를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옛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한다.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
우리는
죽고 부활하였다.
7장은
사람이 이제 더 이상
육체를 따라 살아서는 안 되고
그 영을 따라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8장은
어떻게 그 영을 따라 사는지를
설명한다.
…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을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의 타고난 생명을
처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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