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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부흥을 위한 거룩한 말씀

명절들(1) 안식일과 유월절과 무교절

The Feasts(1)
The Sabbath,
the Feast of the Passover, 
and the Feast of Unleavened Bread

레위기 23장에 나오는
명절들은
안식과 누림을
위한 것이었고,
우리의 안식과 누림이신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 레 23:2, 마 11:28-30.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이
그분과 함께 안식하고
그분과 함께 기뻐함으로써,
그분께서 구속하신
백성을 위하여 준비하신
모든 것을
그분과 함께
그리고 믿는 이들 서로 간에
누리도록
명절들을 정하셨다.
이러한 안식과 누림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단체적인 것이다
— 레 23:1-2.

여호와께서 정하신
명절은
거룩한 모임이었으며,
특별하고 전일한 목적을 위하여 소집된
하나님의 백성의
특별한 모임이었다
— 레 23:4.

이러한 명절은
믿는 이들이
교회로서 모여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함께
그리고 믿는 이들 서로 간에
단체적으로 안식하며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을
상징한다
— 고전 10:16-17.

매주 있는 명절인
안식일은
하나님께 구속받은 백성이
하나님과 함께
그리고 백성 서로 간에
누리는 안식을
상징한다.
매 칠 일마다
안식과 누림을 위한
하루가 있었다
— 레 23:3.

안식일의 원칙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이루셨고
우리의 누림을 위해
모든 것이 되셨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의 일을
멈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 창 2:2-3.

창세기에 따르면
하나님께
안식일은
일곱째 날이고
사람에게는
첫째 날이다
— 창 1:26-2:3.

이것은
안식일이
하나님께는
일을 마친 후의
안식이었지만,
사람에게는
먼저 안식한 다음
일하는 것이었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먼저
육 일 동안 일하셨고
그런 다음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
사람은
그의 첫째 날에
안식했고
그런 다음
일하기 시작했다.

사람의 첫째 날이
안식하는 날이었다는 것은
신성한 원칙을
세웠다.
하나님은 먼저
우리에게
누림을 공급하시며,
그런 다음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한다
— 고전 15:10, 3:9상, 10, 고후 6:1.

안식일의 원칙은
창조에서뿐 아니라
구속에서도 적용된다.
그리스도께서
구속을 이루시기 위해
일하신 결과는
안식일이신
그리스도 자신이다
— 엡 1:6-7, 히 1:3, 9:11-12.

매년 있는
모든 명절의
주된 의미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과 함께
또한 백성 서로 간에
안식을 누리는 것이다
— 레 23:7-8, 21, 25, 28, 31-32, 35-36, 39.

이와 같이
매년 있는
일곱 명절의 의미는
안식이다.
매년 있는
모든 명절 하나하나가
매주 있는 안식과 마찬가지로
안식이었다.

매주 있는 안식은
하나님의 백성이
매년
하나님과 함께
거룩한 명절을
지키기 위한
기초를 놓았다.

매주 있는 안식일은
완전하고 엄숙한
안식이었다.
이 완전한 안식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참되고도 철저한
안식을 상징하는데,
이것은
하나님께 구속받은 백성이
하나님과 함께
그리고 백성 서로 간에
누리기 위한 것이었다
— 레 23:3.

이 안식일, 이 안식이
‘여호와에게’ 안식일이라는 것은
이 안식이
하나님의 기쁨과 누림을 위한
안식이라는 것과
그분께 구속받은 백성도
이 안식에 참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레 23:3.

매년
일곱 명절이 있었다
— 레 23:4-44.

일곱은
충만함을 상징하는 수이며
매년 있는 일곱 명절이
하나님의 풍성의
충만함 안에서
치러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는
안식일의
실재이실 뿐만 아니라
매년 있는 모든 명절의
실재이시다
— 골 2:16-17.

유월절은
한 해의 첫째 달,
곧 노정의 시작에 있다
— 레 23:4-5.

이것은
우리의 구속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과
하나님을 누리는 것의
시작이 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 레 23:5.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위해 정하신
매년 있는
모든 명절 중
첫 번째 명절이며,
그리스도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누림의 시작이시고,
이러한 누림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시작을 가져온다는 것을
예표한다
— 고전 5:7-8.

그리스도인의 삶 전체가
그러한 명절이어야 한다
— 고전 5:8.

유월절은
‘넘어가다’라는 의미이다
— 출 12장.

이것은
심판하시는 하나님께서
죄들 가운데 있는
죄인들인 우리를
넘어가심으로써,
우리가
그분을
우리의 명절로
누릴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오늘날
우리는
구속하시는 하나님 자신인
이 명절을 지키며,
안식과 기쁨을 위해
그분을 누리고 있다.

유월절에서
그리스도는
유월절 어린양이실 뿐 아니라
유월절 전체이시다
— 고전 5:7하.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을
수행하기 위해,
법리적으로는
자신의 죽음을 통해
온전한 구속을 이루시고,
유기적으로는
자신의 생명에 의해
완전한 구원을 이루시는 면에서
그리스도는
유월절이시다
— 고전 5:7-8.

우리의 유월절이
되시기 위해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희생 제물이 되심으로
우리를 구속하시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다.

그리스도의 구속에 근거하여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그분을
명절로
누릴 수 있다.

이 명절에는
어떤 누룩도
허용되지 않는다
— 고전 5:7상.

죄와
구속하시는 그리스도는
함께할 수 없다.

유월절은
하나님의 완전한 구속을
나타내는 표징이며,
이 완전한 구속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들을
그분 자신에 대한
완전한 누림 안으로
이끈다.

주님의 상 역시
하나의 명절로서,
유월절을 대치하며
유월절의 연속이다
— 눅 22:7-20.

오늘날
교회생활 안에서
우리는
신약의 명절에
참여하고 있지만,
이 명절은
다가올 왕국에서의
명절이 온 후에라야
완전히 성취될 것이다
— 눅 22:16, 18.

유월절은
유월절이라는 명절과
주님의 상에서의 명절과
왕국에서의 명절,
이렇게
세 단계에 걸쳐 있는
하나의 명절이다.

무교절은
우리가
죄 없는 생활 가운데서
명절로서
누리기 위한,
죄가 없으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 레 23:6-8, 고후 5:21.

유월절 이후에 곧바로
무교절이 이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이 두 명절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첫 번째 명절인 유월절은
시작이었고,
두 번째 명절인 무교절은
연속이었다
— 레 23:5-6.

무교절을 지키는 것(신 16:1-8)은
죄 없는 생명의 공급이신
그리스도를 누림으로써
죄 있는 모든 것을
제거하는 것을
보여 주는 예표이다
— 출 23:15.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어떤 누룩도
보여서는 안 되었다.
이것은
우리가 의식하는 죄,
즉 드러나거나 보이는 죄는
모두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는 것을
상징한다
— 출 13:7, 12:19, 고전 5:7상, 히 12:1-2상.

드러난 죄를
처리하는 것이
무교절을
지키는 것이다.

우리가
이미 드러난 죄를
묵과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가지는
교통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 출 12:19, 고전 5:13.

그리스도는
우리의
누룩 없는 떡,
곧 순수하고
진실하며,
온전히 깨끗하고
섞인 것이 없으며,
실재가 충만한,
우리의
죄 없는 생명의
공급이시다
— 고전 5:7-8.

죄를 제거하는
유일한 길은
무교병으로 상징되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죄 없는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날마다
먹는 것이다.

누룩 없는 떡은
그리스도의 믿는 이들인
우리 안으로
누룩 없는(죄 없는) 요소로서
분배되시는,
죄 없으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누룩 없는 떡이신
그리스도는
우리를
누룩이 없게 만드는
영적이고 신성한
음식이시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우리의 생명으로,
곧 누룩이 없고
순수하게 하는
생명으로
취할 때
이 생명은
우리를
순수하게 한다
— 골 3:4, 요 6:48, 57,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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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replies on “명절들(1) 안식일과 유월절과 무교절”

6일

고후 5:21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을
우리 대신
죄가 되게 하신 것은
우리가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도록 하시려는 것입니다.

요 6: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셔서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입니다.

거듭난 때로부터
우리는
새로운 조성을
가지기 시작했다.
누룩 없는 떡이신
그리스도는
우리가
새 반죽 곧 교회가 되도록
우리의
누룩 없는 음식이 되셔서
우리를 재조성하셨다.
… 지금 우리는
새 반죽이 되어 가는데,
왜냐하면 우리가
누룩 없는 존재가
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누룩 없는 떡이신
그리스도는
조성에 있어서
우리로 하여금
누룩이 없게 하심으로써,
우리를
새 반죽, 곧 누룩 없는 반죽으로
만들고 계신다.
이것은
우리가
죄 없는 새 창조물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후 5:17).

이스라엘 자손의 역사는
교회생활 안에서의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보여 주는
완전한 예표이다.
이스라엘 자손은
개인주의적으로
살지 않았다.
반대로 그들은
함께 살고,
함께 진을 치고,
함께 여행하고,
함께 전쟁을 치렀다.
그들의
단체적인 생활은
교회 안에서의
우리의 생활을
예표한다.
유월절을 체험한 후에
그들은
무교절을 지켰다.
이것은
우리 또한
이 명절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교회생활은
무교절이다.
이런 까닭에
우리는
교회로부터
모든 누룩을
제거해야 한다.

죄 없는 생활을
하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누룩 없는 떡이신
그리스도를
날마다 먹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먹은
그것이 되기 때문에,
만일 우리가
누룩 없는 떡을 먹는다면
결국 누룩 없는 떡으로
조성될 것이다.
이럴 때 우리는
누룩 없는 생활을
살게 될 것이다.

고린도전서 5장 8절은
그리스도께서
순수와 진실의
무교병이심을
계시한다.
누룩 없는 떡이신
그리스도는
우리로 하여금
순수한 교회생활을
할 수 있게 하신다.
교회 안에는
누룩이
없어야 한다.
성경에서
누룩은
잘못된 교리들과 실행들,
악한 행실들과 죄 있는 것들과 같은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상징한다.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는
누룩이 없을지라도,
우리의 타고난 존재에 따르면
우리는
누룩으로 가득하다.
결정적인 질문은
우리가
누룩 없는 떡을
먹고 있는가,
아니면 누룩 있는 떡을
먹고 있는가이다.
달리 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사는가,
아니면 우리 자신을 사는가?
그리스도를 산다면
우리는
누룩 없는 떡을
먹는 것이고,
우리 자신을 산다면
누룩 있는 떡을
먹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5장 7절에서
바울은
우리에게,
본래 누룩 없는 사람들이니
새 반죽이 되도록
묵은 누룩을
깨끗이 없애라고
명한다.
우리는
새 반죽이
되어야 한다.
새 반죽은
새로운 본성을 가진
믿는 이들로 구성된
교회를 가리킨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누룩이 없으며,
따라서 우리 자신이 아닌
그분을 따라
살아야 한다.

죄가 없으신
우리의 구속자는
믿는 이들인 우리의
전 생애를 위한
명절이시다.
믿는 이들은
일생 동안
죄를 떠나서
안식을 누리고
하나님을 누리며
우리의 구속자를 누려야 한다.

무교절의 첫날에
이스라엘 백성은
거룩한 모임을
소집해야 했고,
어떤 노동도
하지 말아야 했다
(레 23:7).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시작하는 바로 그때부터
우리의 인간적인 수고 없이
우리의 명절이신
그리스도를
단체적으로 누려야 함을
의미한다.

칠 일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화제를 드려야 했다
(레 23:8상).
이것은
우리가
우리의 그리스도인 생활의
전 노정에 걸쳐
음식이신 그리스도를
하나님께
끊임없이 바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음식이시다.
우리가
음식이신 그리스도를
누린 후,
이 그리스도는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이 되심으로
하나님을 위한
음식이 되신다.
주님의 상에서
우리는
우리가
한 주 동안
매일
그리스도를
우리의 누룩 없는 떡
곧 죄 없는 생명 공급으로
누린다는 것과
우리가
이러한 분과 함께
상에 왔다는 것을
온 우주에
전시한다.
그런 다음 우리는
우리가
음식으로 누린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만족을 위하여
하나님께 바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누림이신
그분을 체험한다.

칠 일째 되는 날에도
이스라엘 백성은
거룩한 모임을
소집해야 했으며,
어떤 노동도
하지 말아야 했다
(레 23:8하).
이것은
우리가
우리의 그리스도인 생활의
노정의 마지막 날까지
우리의 인간적인 수고 없이
단체적으로
그리스도를
계속
누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5일

레 23:6-8
그달 열닷샛날은
여호와에게
무교절이니,
너희는
칠 일 동안
무교병을
먹어야 한다.
첫날에는
거룩한 모임을
소집해야 하며,
어떤 노동도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너희는
칠 일 동안
여호와에게
화제를
드려야 한다.
칠 일째 되는 날에는 다시
거룩한 모임을
소집해야 하며,
어떤 노동도
해서는 안 된다.’ ”

무교절은
우리가
죄 없는 생활 가운데서
명절로서
누리기 위한,
죄가 없으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레 23:6-8, 고후 5:21).
유월절 이후에 곧바로
무교절이
이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이 두 명절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첫 번째 명절인 유월절은
시작이었고,
두 번째 명절인 무교절은
연속이었다.
유월절은
단지 첫째 달 14일
하루 동안이었지만,
무교절은
칠 일 동안 지속되었다.

칠 일 동안 지속되는
무교절은
그리스도인의 생애 전체를
상징한다.
그리스도인의 생애 전체는
무교절,
즉 죄 없는 명절이다.
우리는 이미
구속받아
죄에서 벗어났으며,
이 죄 없으신 구속자께서 바로
믿는 이들의 생애 전체를 위한
명절이시다.
우리는 일생 동안
죄 밖에서
안식을 누리고
하나님을 누리며
우리의 구속자를 누려야 한다.

유월절에
우리가
주로 누리는 것은
우리의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이다.
무교절에
우리가 주로 누리는 것은
우리의 무교병,
곧 우리의 죄 없는 생명 공급이신
그리스도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일생 동안
죄 없는 이 떡을 먹으며
살아야 한다.

무교절을 지키는 것(신 16:1-8)은
죄 없는 생명 공급이신
그리스도를 누림으로써
죄있는 모든 것을
제거하는 것을
보여 주는
예표이다
(출 23:15).

무교절은
긴 명절이다.
우리는
이 명절을 지킬 때
옛 누룩,
곧 우리의 옛 본성에 속한
죄가 없어야 하며,
누룩 없는 떡,
곧 우리의 자양분과 누림으로서
우리의 새 본성이 되시는
그리스도로
이 명절을 지켜야 한다.
오직 그분만이
순수하시고
진실하시며,
온전히 깨끗하시고,
섞인 것이 없으시며,
실재가 충만한
생명 공급이시다.
명절은
잔치를 누리는 때이다.
그리스도인의 생애 전체가
그러한 명절,
곧 우리의 잔치이시자
풍성한 생명 공급이신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이어야 한다.

출애굽기 12장에 따르면,
칠 일 동안의 무교절에는
집 안에
누룩이 있어서는 안 되었고(19절),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누룩이 보여서는 안 되었다(13:7).
이것은
우리에게
완전히 죄가 없기는
불가능하다 할지라도
보이는 죄는
어떤 죄든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는 것,
즉 우리가
의식하는 죄는
반드시 버려야 한다는 것을
상징한다
(비교 히 12:1).
드러난 죄를
처리하는 것이
무교절을 지키는 것이다
(고전 5:7-8).
우리가
이미 드러난 죄를
묵과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가지는
교통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출 12:19, 고전 5:13).
죄를 제거하는
유일한 길은
무교병으로 상징되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죄 없는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날마다 먹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는
이러한 생활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죄없는 생활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넣어졌고,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럴 때 그분은
우리의
누룩 없는 생명 공급이
되실 것이다.
그분은
죄 없는 생명과 생활의
근원과 원천이
되실 것이다.
우리에게
이러한 근원과 공급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죄 없는 생활을 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누룩 없는 떡이신
그리스도는
우리를
누룩이 없게 만드는
영적이고 신성한
음식이시다.
누룩 없는 떡은
그리스도의 믿는 이들인
우리 안으로
누룩 없는(죄 없는) 요소로서
분배되시는,
죄 없으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이스라엘 자손이
누룩 없는 떡과 함께
유월절 어린양을
먹은 것과 같이,
우리는
어린양이실 뿐 아니라
누룩 없는 떡이신
그리스도를
먹어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우리의 생명으로 취할 때,
이 생명이
우리를
순수하게 한다.
이 생명은
누룩 없는 생명,
곧 순수하게 하는
생명이다.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더욱더 부르고
그분을
우리 안으로
더 많이 받아들일수록,
우리는
속에서부터
더욱더 순수하게 될 것이다.

 

4일

고전 5:7-8
여러분은 본래
누룩 없는 사람들이니,
새 반죽이 되도록
묵은 누룩을
깨끗이 없애십시오.
왜냐하면 우리의 유월절, 곧 그리스도도
이미 희생되시어
제물로 드려지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명절을
묵은 누룩이나
악독하고 사악한 누룩으로
지키지 말고,
순수와 진실의 무교병으로
지킵시다.

유월절은
‘넘어가다’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심판하시는 하나님께서
죄들 가운데 있는 죄인들인
우리를 넘어가심으로써,
우리가
그분을
우리의 명절로
누릴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오늘날
우리는
구속하시는 하나님 자신인
이 명절을 지키며,
안식과 기쁨을 위해
그분을 누리고 있다.

우리의 유월절이신
그리스도는
어린양과 무교병과 쓴 나물의
실재이시다.
유월절이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죽음의 심판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셨다.
우리는
이러한 명절이신
그리스도를 누림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원받았다.

출애굽기 12장에
묘사된 유월절은
우리의 구속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모든 것을 포함한
예표이며,
이 구속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우리의 체험의
시작이다.
유월절 전체가
그리스도의 예표이다
(고전 5:7).
그리스도는
유월절 어린양이실 뿐 아니라
(요 1:29),
유월절의 각 방면이시다.
우리의 유월절이
되시기 위해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희생 제물이 되심으로
우리를 구속하시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를
명절로서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고린도전서 5장 7절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유월절이시라고
말한다.
이것은
사도가
믿는 이들을,
출애굽기 12장에 나오는
유월절로 예표된
참된 유월절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선민으로
여겼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 유월절에서
그리스도는
단지 어린양이실 뿐 아니라
유월절 전체이시다.
…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그분을
명절로
누릴 수 있다.
이 명절에는
어떤 누룩도
허용되지 않는다.
죄와
구속하시는 그리스도는
함께할 수 없다.

누가복음 22장 16절에서
주님은
“내가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왕국에서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다시는
유월절 음식을
먹지 않겠습니다.”
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에 언급된
유월절에 관한 말씀은
주님께서
이기는 성도들과 함께
명절을 누리실 때인
장차 올 천년왕국에서
완전히 성취될 것이다
(눅 22:30, 13:28-29).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을
구속하여
그분의 희년 안으로
들어가게 하시는
완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
유월절은
하나님의 완전한 구속을
나타내는 표징이며,
이 완전한 구속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들을
그분 자신에 대한
완전한 누림 안으로
이끈다.
이 누림은
누가복음에서
희년의 문제로 다루어지는데,
이것은
이사야서에 있는 예언과
레위기 25장에 있는 예표의
성취이다.
희년은 사실상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
하나님을 누리는 것이다.
희년을 상징하는 명절은
먼저 구약에서는 유월절이고,
그다음 신약에서는 주님의 상이다.

유월절은
구약에서
완전히 성취되지 않았다.
주님의 상 역시
하나의 명절로서,
유월절을 대치하며
유월절의 연속이다.
그러나 이 신약의 명절에 의해서도
유월절은
완전히 성취되지 않았다.
그것은
다가올 왕국 안에서
완전히 성취될 것이다.

성경을
주의 깊게 읽어 본다면,
우리는
구약과 신약 모두에서
명절을
언급하고 있음을
볼 것이다.
이 명절은
출애굽기 12장에서 시작되어,
주 예수님께서
이 명절을
그분의 상으로 대치하신
그날 밤까지
십오 세기 이상
계속되었다.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은
교회생활 안에서
이 신약의 명절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명절은
다가올 왕국에서의 명절 때에
완전히 성취될 것이다.
이것은
왕국에서의 명절이
유월절이라는 명절과
주님의 상이라는 명절의
성취일 것임을
의미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유월절이라는 명절과
주님의 상에서의 명절과
왕국에서의 명절,
이렇게
세 명절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사실상 이것들은
세 명절이 아니라
한 명절의 세 단계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구속을 통해
한 명절을 세우셨다.
이것은
우리가
세 단계로,
곧 구약의 단계와
신약의 단계와
왕국의 단계로
희년을
완전히 누리게 하기 위한 것이다.

 

3일

레 23:4-5
‘너희가
정해진 때에
선포해야 할
거룩한 모임들
곧 여호와가
정한 명절은
이러하다.
첫째 달
곧 그달 열나흘
어스름한 저녁은
여호와의 유월절이다.

일곱은
충만함을
상징하는 수이다.
매년 있는
일곱 명절은
하나님의 풍성의
충만함 안에서
치러졌다.

성경에서
7이란 숫자는
4 더하기 3,
혹은 1 더하기 6의
두 가지 방식으로
구성된다.
레위기 23장에 있는
일곱 명절은
두 그룹으로 되어 있는데,
첫 번째 그룹에는
네 명절이 있고,
두 번째 그룹에는
세 명절이 있다.
첫 번째 그룹의
네 명절은
그해의 첫 달에
치러진다.
두 번째 그룹의
세 명절은
그해의 일곱 번째 달에
치러진다.
그 명절들이
시대적으로
성취되는 것에 따르면,
앞의 네 명절은
이미 이루어졌고
뒤의 세 명절은
장래에 이루어질 것이다.

명절은
매년 있는 것이고,
초승달 축제는
매달 있는 것이며,
안식일은
매주 있는 것이고,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은
매일 있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
그리스도를 먹고 마시며,
매주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과 안식을 갖고,
매달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시작을 체험하며,
일 년 내내
그리스도는
우리의
기쁨과 누림이 되신다.
그러므로 매일, 매주, 매달, 매년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모든 긍정적인 것의
실재가 되신다.
이것은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께서
우주적으로 광대하시다는 것을
암시한다
(골 2:16).

레위기 23장 4절과 5절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정해진 때에
선포해야 할
거룩한 모임들
곧 여호와가
정한 명절은
이러하다.
첫째 달
곧 그달 열나흘
어스름한 저녁은
여호와의 유월절이다.”
유월절은
우리의 구속이신
그리스도(고전 5:7하)께서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구원을 누리는 것의
시작이 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월절은
한 해의
첫째 달에 있었다.
이것은
어떤 노정의
시작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을
수행하기 위해,
법리적으로는
자신의 죽음을 통해
온전한 구속을 이루시고,
유기적으로는
자신의 생명에 의해
완전한 구원을 이루시는 면에서
그리스도는
유월절이시다
(요 6:4, 고전 5:7-8).
고린도전서 5장 7절은
우리의 유월절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시어
제물로 드려지셨다고
말한다.
그리스도는
유월절 어린양이실 뿐 아니라
유월절 전체이시다.
이어서 8절은
오늘날
우리가
유월절의 연속인
무교절(출 12:15-20)의 실재를
지키고 있다고
말한다.
명절은
잔치를 누리는 때이다.
그리스도인의 생활 전체는
그러한 명절이어야 한다.
곧 우리의
잔치이시며
생명의 풍성한 공급이신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이어야 한다.
명절은
먹기 위한 상과 같다.
주님의 상은
명절이다.

레위기 23장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선민을 위해
매년 일곱 번의 명절을
정하셨다고
말한다.
그 첫 번째 명절은
유월절이고(5절),
마지막 명절은
장막절이다(34절).
유월절은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누림의
시작이며
장막절은
완성이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위해 정하신
모든 명절 중
첫 번째 명절인 유월절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영적 생활의
시작을 가져오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누림의
시작이시라는 것을
예표한다.
그리스도인의 생활 전체는
명절이어야 한다.
다른 곳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고난의 생활이라고 말했지만,
우리는
명절을 더욱 누릴 수 있기 위해
고난을 받는다.
우리의 고난은
우리를 도와
주님을 누릴 수 있게 한다.
… 시편 23편 5절은
주님께서
우리의 원수의 목전에서
우리 앞에
상(table)을 차려 주셨다고
말한다.
원수들은
싸움과 고난을 가리키지만,
주님은
우리의 싸움을
명절로 만드시고
우리의 고난을
상으로 바꾸신다.

이 명절에서 얻는
주된 누림은
구속을 위한
유월절 어린양의 피,
싸우고 행하기 위한
유월절 어린양의 고기,
죄 없는 생활을 상징하는
무교병을
누리는 것이다
(출 12:5-8).
어린양의 고기는
유기적이었고
피는
법리적이었다.
어린양의 피는
법리적으로
이스라엘 자손을
구속했다.
그리고 어린양의 고기는
하나님의 선민이
먹기 위한 것이었는데,
그 결과 그들은
유기적으로
자양분을 공급받고
강화되어
이집트에서
나올 수 있었다.
오늘날
그리스도는
구속을 위한
그분의 피를 가지신
그 어린양이시고,
우리가
이집트에서 나와
하나님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그분 자신으로
우리를
강화하시고
영양분을 공급하신다.

 

2일

고전 15:10
그러나 내가
지금의 내가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나에게 주신
그분의 은혜가
헛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나는
모든 사도들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고후 6:1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우리가
또한 여러분에게
간절히 권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하신
사람을 보셨을 때
안식하고
신선하게 되실 수 있었다.
사람은
시원한 음료처럼
하나님의 갈증을
풀어 드리고
그분을
만족하시게 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일을 끝내시고
안식하기 시작하셨을 때,
그분께는
동반자인 사람이 있었다.
일곱째 날은
하나님께
안식과 신선함을
주는 날이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동반자인
사람에게는
바로 첫째 날이
안식과 신선함을
주는 날이었다.
사람의 첫째 날은
누림의 날이었다.

신성한 원칙에 따르면,
하나님은
우리가
누림을 갖기 전까지는
우리에게
일할 것을
요구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먼저
우리에게
누림을 주신다.
하나님과 함께
그분 자신을
충만히 누린 후에야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할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누림을 가지고
하나님을 누리는
법을 모른다면,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법을
모를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신성한 일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 되는
법을 알지 못할 것이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일해야 한다.
그러나 성경이
계시하는 바에 따르면,
단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 될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우리는
그분을 누려야 한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누리고
하나님으로 채워지는
법을 모른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법을
알지 못할 것이고,
그분의 일 안에서
어떻게 그분과 하나가 되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의무는
일하는 것이 아니라
누리는 것이다.
일에 대한 의무는 이미
하나님께서
감당하셨다.
하나님의 몫은
일하고 누리는 것이지만,
사람의 몫은
단순히 누리는 것이다.

그러나 누림 후에
더욱 진전된 일이 있다.
아담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후,
그의 첫째 날인
안식일 안으로 들어가
안식하고 누렸다.
그러나 그날 이후
그는
일하기 시작했고
땅을 일구기 시작했다
(창 2:15).
하나님께는
일이 첫째이고
누림은 둘째이지만,
사람에게는
누림이 첫째이고
일은 둘째이다.
이것이
은혜의 원칙에 관한
이상이다.
하나님은
일하시고 나서
누리셨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루신 것을
누리고 나서
일한다.

이 원칙은
창조에서뿐 아니라
구속에서도
동일하다.
주님은
구속을 위해
모든 것을
성취하셨다.
구속을 성취하신 후
주님은
그 결과를
누리셨다.
주님은
먼저 일하시고
나중에 누리셨다.
그러나 우리는
먼저 누리고
나중에 일한다.
구속과 은혜에 관하여
우리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
모든 것이
끝마쳐졌다.
우리는 단순히
주님께서 성취하신 것 안으로
들어가
안식을 얻는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주님께서 끝마치신 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것을
안식일로,
곧 여러분의 안식으로
취하며
주님과 함께
그것을 누리라.
그러나 여러분은
그것을 누린 후에
일해야 하는
의무를 감당해야 한다.
우리는
누린 후에
우리 자신을
주님께 드려
그분의 일을
해야 한다.

매년 있는
모든 명절의
주된 의미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과 함께
또한 백성 서로 간에
안식을 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매년 있는
각각의 명절이
의미하는 것은
바로 안식이다.
매주 있는
안식과 마찬가지로,
매년 있는
명절도
안식이었다.
매주 있는 안식은
하나님의 백성이
매년
하나님과 함께
거룩한 명절을
지키기 위한
기초를 놓았다.

매주 있는 안식일은
완전하고 엄숙한
안식이었다.
그것은
가볍거나 평범한
안식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의
누림을 위한
거룩하고 신성하며 중요한
안식이었다.
이 완전한 안식은
하나님과 함께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되고도 철저한
안식을 상징하는데,
이것은
하나님께 구속받은 백성이
하나님과 함께
그리고 백성 서로 간에
누리기 위한 것이었다.

안식일에는
어떤 일도
할 수 없다.
이것은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수고하는 것이 아니라
안식을 누리는 것임을
의미한다.
… 이 안식일은
‘여호와에게’ 안식일이었다
(레 23:3).
이것은
이 안식이
하나님의 누림을 위한
안식이라는 것과
그분께 구속받은 백성도
이 안식에
참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거룩한 모임,
곧 모든 명절에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함께
그리고 서로와 함께
안식하고 있다.

 

신언노트, 2018 09 23

그 명절들(1)
그 안식일, 그 유월절, 그리고 그 무교절
The Feasts(1)
The Sabbath, the Feast of the Passover,  and the Feast of Unleavened Bread

레위기 23장에 있는
 그 명절들은
 안식과(rest; 쉼과) 누림을 위해 있었고
 또 우리의 안식과 누림이신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typify; …의 전형입니다, …의 특징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이
 그분과 함께 안식하고(쉬고)
 그분과 함께 기뻐하도록,
 그 명절들을
 정하셨는데
 (ordained; 제정하셨는데, 명하셨는데),
 이는 그들이
 그분의 구속된 백성을 위하여
 그분께서 준비하신
 모든 것들을
 그분과 함께
 또 서로서로
 누리게 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 안식과 누림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단체적인 것이었습니다.

여호와에 의해 정해진(appointed; 지정된)
 그 명절들은
 한 특별하고 특정한 목적을 위하여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의
 거룩한 집회들,
 곧 특별한 모임들이었습니다.

이것들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함께,
 또 서로서로
 그리스도의
 한 단체적인 안식과 누림을 가지는
 그 교회인 믿는 이들의
 모임을(the gathering) 나타냅니다.

그 매주의 명절,
 곧 그 안식일은,
 하나님의 구속된 백성이
 하나님과 함께
 또 서로서로
 누리는 안식을
 나타냅니다;
매 칠 일마다
 안식과 누림을 위한
 한 날이(하루가) 있었습니다:

그 안식일의 원칙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각각의 모든 것들을 하셨고
 우리의 누림을 위해
 각각의 모든 것들이 되셨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의 일을
 멈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창세기에 따르면,
 하나님께
 그 안식일은
 일곱 번째 날이지만,
 사람에게는
 첫 번째 날입니다:

이것의 의미는
 하나님께
 그 안식일이
 일 뒤의
 안식이었지만,
 사람에게는
 먼저
 안식이 있었고
 그러고 나서
 일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육 일 동안 일하셨고
 그러고 나서 일곱 번째 날에
 안식하셨습니다;
사람은
 그의 첫 번째 날에
 안식했고
 그러고 나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의 첫 번째 날이
 한 안식의 날인 것은
 한 신성한 원칙을
 세웠습니다
 (established; 확고하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누림을 공급하시고,
 또 그러고 나서 우리가
 그분과 함께 일합니다.

그 안식일의 원칙은
 창조 안에서뿐 아니라
 구속 안에서도
 적용됩니다
 (apply in …; 해당됩니다, 적합합니다);
구속 안으로의
 (in redemption; 구속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일의
 결과는
 그 안식일이신
 그리스도 그분 자신입니다.

그 매년의 명절들 모두의
 주된 의미는
 (principal denotation; 주요하게 가리켜 보임은, 주요 표시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과 함께
 또 서로서로(with one another)
 안식을 누림입니다.

안식은 이와 같이(그러므로)
 그 매년의 일곱 명절들의
 의미(표시)입니다;
각각의 모든 매년의 명절들은,
 그 매주의 안식과 같이,
 하나의(a) 안식이었습니다.

그 매주의 안식은
 하나님의 백성이
 매년
 하나님과 함께
 그 거룩한 명절들을 지키는
 그 기초를 놓습니다.

그 매주의 안식일은
 한 완전한(complete), 엄숙한(solemn)
 안식이었습니다;
이 완전한 안식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한 참된(genuine; 진짜의, 진정한)
 또 순전한(thorough; 철저한, 탁월한)
 안식을 나타내고,
 이는
 하나님의 구속된 백성이
 하나님과 함께
 또 서로서로
 누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안식일, 곧 이 안식은
 “여호와를 향하여(to Jehovah; 여호와께)”
 있었고,
 이는
 하나님의 기쁨과 누림을 위하고,
 그분의 구속된 백성에 의해
 참여되는(participated in; 함께해지는)
 한 안식을 나타냅니다.

매년 일곱 명절들이
 (feasts; 잔치들이[, 진수성찬이])
 있었습니다:

일곱은
 충만함의 수이고,
 그 매년의 일곱 명절들이
 하나님의 풍성의
 충만함 안에
 있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리스도는
 그 안식일의
 또 그 모든 매년의 명절들의
 실재이십니다.

그 유월절은
 그해의 그 첫 번째 달,
 곧, 한 과정의(a course; 한 노정의)
 시작(beginning) 안에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with God; 하나님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누리는 것을
 개시하시는(to begin; 시작하시는)
 우리의 구속이신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그 유월절,
 곧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에 의해 정해진
 매년의 모든 명절들 중에
 그 첫 번째 명절은,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그분을 누리는 것의
 시작이시고
 이는(그 시작이, 우리의 누림이)
 우리의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시작한다는(originates; 일으키는, 창설하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 그리스도인의 생활 전체가
 그러한 한 명절이어야만 합니다.

그 유월절은
 한 위로 지나감의
 (a passing over; 한 지나침의, 하나의 관대히 봐줌의)
 명시적 의미 안에
 (in the denotation; 가리켜 보임으로, 표시에)
 있습니다:

이것은
 그 심판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곧 우리의 죄들 안에 있는 죄인들 위로
 지나가셨고,
 그래서(so that; 그 결과)
 우리가
 그분을
 우리의 명절로(feast; 잔치로, 진수성찬으로)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 명절을 가지고 있고,
 이는
 그 구속하시는 하나님 그분 자신이며,
 또 우리가
 안식을 위하여(휴식을 향하여, 쉬려고)
 또 큰 기쁨을 위하여
 (for joy; 크게 기뻐서, 기쁨에 차려고)
 그분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 유월절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그 유월절 어린 양이실 뿐 아니라
 또한 그 전체 유월절이십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을
 수행하기 위하여
 사법적으로
 그리스도의(His) 죽음을 통한
 그분의 온전한 구속 안에서(in; 구속으로)
 또 유기적으로
 그분의 생명에 의한
 그분의 완전한 구원 안에서(in; 구원으로),
 그리스도께서
 그 유월절이십니다.

우리의 유월절이 되시기 위하여,
 그분께서 그 십자가 위에서
 희생되셨으며
 그래서 우리가
 구속될 수 있었고
 또 하나님께
 화목될 수 있었습니다
 (might be … reconciled; 화목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에 근거하여,
 우리가
 그분을
 한 명절로
 하나님 앞에서
 누릴 수 있습니다:

이 명절 안에
 어떤 누룩도
 (no leaven; 효소가)
 존재하는 것이
 (to be present; 현존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죄와
 그 구속하시는 그리스도는
 함께 갈 수 없습니다
 (cannot go together;
 공존할 수 없습니다, 어울릴 수 없습니다).

그 유월절은
 하나님의 완전한 구속의
 한 표시이고,
 또 이 완전한 구속은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을
 그분 자신의 완전한 누림 안으로
 (into the full enjoyment of Himself;
 그분 자신을 충만히 누림 안으로)
 데리고 감입니다.

마찬가지로(also; 역시, 또한)
 한 명절인
 그 주님의 상은,
 그 유월절을
 대신하고(replaces; 대체하고, 대치하고)
 또 계속합니다(continues; 연장합니다):

오늘날
 그 교회 생활 안에서
 우리가
 그 신약 명절에 참석하지만,
 이 명절은
 그 오는(coming; 다가오는) 왕국 안에 있는
 명절까지는(until …; 명절에 이르기까지는)
 완전히 성취되지(be fulfilled; 실현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유월절은
 세 단계들(stages; 시대들):
 [곧 그 유월절,
 그 주님의 상에서의(at) 명절,
 또 그 왕국 안에 있는(in) 명절]
 안에 있는
 하나의 명절입니다:

그 무교절은
 그리스도를 나타내는데,
 그분은 죄 없이 계시고
 (is without sin; 죄 밖에 계시고),
 죄로부터 떨어진
 (apart from sin; 죄는 제쳐 놓고)
 한 생명 안에서
 (in a life; 한 생활로)
 한 명절로서
 (as a feast; 한 잔치로서, 한 진수성찬으로서)
 우리의 누림을 위하십니다.

그 무교절이
 그 유월절을
 가깝게 따랐기 때문에,
 이 두 명절들은
 함께 고려되어야만 합니다;
그 첫 번째 명절-그 유월절-은
 그 시작이었고,
 또 그 두 번째 명절-그 무교절-은
 그 계속이었습니다.

그 무교절을 지킴은
 그 죄 없는 생명 공급이신
 그리스도를 누림을 통하여
 모든 죄 많은 것들을
 제거해 버림을
 (the purging away; 깨끗하게 없앰을)
 나타냅니다:

어떤 누룩도
 이스라엘 자손에게(with; … 과 함께)
 보여져서는 안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의식하는(conscious; 자각하는, 알고 있는) 죄를,
 곧 명백해진(is manifested; 드러내 보여진),
 즉 보여지는(is seen)
 어떤 죄이든
 우리가 처리해야만 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명백해진(드러난) 죄를
 처리하는 것이
 그 무교절을
 지키는 것입니다.

죄가 폭로된 후에,
 우리가 그것을 용인한다면
 (tolerate; 너그럽게 허용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의
 교통을 누림을
 잃을 것입니다(will lose).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무교병(unleavened bread; 누룩 없는 떡),
 곧 우리의
 진정과 진리의
 (of sincerity and truth; 성실과 참의)
 죄 없는 생명 공급이시고,
 절대적으로 순수하시며,
 혼합이(mixture; 다른 것이 섞임이) 없으시며,
 실재로 충만하십니다:

죄를 제거하는
 유일한 길은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부활시켜지셨으며(다시 살려지셨으며),
 또 죄 없으신
 그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매일 먹는 것이고,
 이 생명은
 그 무교병에 의해
 나타내집니다.

그 무교병은
 그 누룩 없는(죄 없는) 요소로서,
 우리, 곧 그분의 믿는 이들 안으로
 분배되셔야 하는
 그 죄 없으신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그 무교병으로서,
 그리스도는
 우리를
 누룩이 없게 만드시는
 영적이고 또 신성한
 음식이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우리의 생명
 -한 누룩 없는 생명,
 한 깨끗하게 하는(purifying; 정화하는) 생명-으로
 취할 때,
 이 생명이
 우리를
 깨끗하게 합니다.

 

1일

레 23:2-3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여라.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너희가
거룩한 모임으로
선포해야 할
여호와의 명절
곧 내가 정한 명절은
이러하다.
육 일 동안은
일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일곱째 날은
완전히 안식하는 안식일이며
거룩한 모임을
소집하는 날이다.
너희는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
이날은
너희가 거주하는
모든 곳에서
여호와에게
안식일이다.’

레위기의 배열에 따라
22장의 마지막에 올 때,
우리는
우리의 부정함에서부터
제사장 직분과
그 누림에
이르게 된다.
그다음 항목은
안식과 누림을 위한
명절들이다.
이 안식과 누림은 모두
우리의 안식과 누림이신
그리스도의 예표이다.
따라서 하나님과의 교통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제사장 직분에 관한 책인
레위기에 따르면,
우리의 봉사의 결과는 바로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또한 다른 이들과 함께
그리스도를
우리의 안식과 누림으로
얻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제사장의 봉사의 결과는
명절들이다.

이 명절들은
아무 때나
이따금씩
지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명절들은
하나님에 의해
지정되고 정해진 것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이
그분과 함께
안식하고
그분과 함께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명절들을 정하셨다.
다시 말하면,
구속받은 백성이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도록
명절들을 정하셨다.
그들은
하나님과 함께
그리고 서로서로가 함께
이 모든 것을
누렸다.

레위기 23장 2절에 나오는
‘모임’은
일반적인 모임보다
더 크고 더 중요한 모임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모임은
특별하고 전일한 목적을 위하여 소집된
특별한 모임이다.
여호와께서
거룩한 모임으로
정하신 명절들은,
구속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기쁨과 누림을 위해
하나님과 함께
잔치를 가짐으로써,
하나님과 함께
그리고 서로서로가 함께
그 잔치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잔치는 오로지
안식과 누림을 위한 것이었다.
이 안식과 누림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단체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명절은
믿는 이들이
교회로서 모여
(엡 1:22 각주 3 참조)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함께
그리고 믿는 이들 서로 간에
단체적으로 안식하며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을
상징한다.
(레 23:2 각주 1)

매주 있는 명절인
안식일은
하나님께 구속받은 백성이
하나님과 함께
그리고 백성 서로 간에
누리는
안식을 상징한다.
매 칠 일마다
(비교 레 23:3)
안식과 누림을 위한
하루가 있었다.
그날에는
거룩한 모임이
있어야 했다.
이것은
하나님께 구속받은 백성이
안식일에
함께 모여야 했음을
가리킨다.
만일 모이지 않았다면
그들은
하나님과 함께
안식을 누리려고 해도,
하나님과 함께
그리고 서로 간에
단체적으로
안식을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안식일의 원칙은
어떤 날을
안식일로 지키느냐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안식일의 원칙은
주님과 함께
일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분과 함께
안식하기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안식일의 의미가
단순히 일을 쉬는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이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안식일의 참의미가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창세기 2장 2절은
“하나님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완성하시고,
일곱째 날에는
그분께서 하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안식하셨다.”
라고 말한다.

창세기에 따르면,
하나님께는
안식일이
일곱째 날이지만
사람에게는
안식일이
첫째 날이다.
육 일 동안
하나님은
하늘들과 땅,
그리고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사람이 생존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
사람은
모든 것이
다 만들어진 후인
여섯째 날에
창조되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하시는 손에서부터
사람이 나타나자마자,
하나님께는 일곱째 날이었지만
사람에게는
첫째 날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나님께 일곱째 날은
사람에게 첫째 날이었다.
이것은
안식일이
하나님께는
일을 마치신 후의
안식이었지만,
사람에게는
먼저 안식한 다음
일하는 것이었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먼저 육 일 동안
일하셨고
그런 다음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
그러나 사람은
그의 첫째 날에
안식했고
그런 다음
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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