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Out
and Working Out
the New Jerusalem
to Build Up Zion
as the Reality
of the Body of Christ
주님의 회복은
새 예루살렘을
살아 내고
이루어 냄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인
시온을
건축하는 것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서
가장 두드러지고 아름다운 곳인
시온은
교회의
고봉, 중심,
높이 올림, 강화함,
풍성하게 함, 아름다움,
실재인
이기는 이들을
예표한다
— 시 48:2, 11-12, 50:2,
20:2, 53:6상, 87:2.
시온인
이기는 이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이며,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의
건축을 완결하여,
영원 안에서
하나님의 거처가 되는
완결된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지성소를
이끌어 온다
— 계 21:1-3, 16, 22.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새 예루살렘 전체가
모든 믿는 이들이
이기는 이들인
시온이 될 것이다
— 계 21:7.
새 예루살렘을
살아 내는 것은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에 의해
‘머리 안으로’
자라는 것이며,
새 예루살렘을
이루어 내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의
하나를 위하여
‘머리로부터’
기능을 발휘하는 것이다
— 레 2:4-5, 요 6:57, 7:37,
17:21, 23, 엡 4:3-4상, 11-16,
골 2:19, 고전 3:6-12상,
10:3-4, 17, 12:12-13,
계 2:7, 21:9-11, 22:14, 17.
하나님의 갈망은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 안에서
산출되는
그리스도의
유기적인 몸이라는
전신(前身)을 통하여
새 예루살렘을
얻는 것이다
— 계 2:7, 12:5, 14:1-4.
결국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은
끝날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의 몸만이
하나님과 사람의
유일한 상호 거처로서
영원토록 남게 되어,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결혼하고
함께 연합되고 합병되어
위대하고 단체적인
하나님-사람이라는
한 실체가
될 것이다
— 계 1:11-12, 21:2-3, 22, 22:17상.
우리는
새 예루살렘에 속한
모든 것을
개인적으로뿐 아니라
단체적으로도
체험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의
하나를 위한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에 의해
새 예루살렘이 되고
새 예루살렘을 건축함으로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이다.
새 예루살렘은
이기는 이들의
총체이다.
주님의 믿는 이들 가운데
남은 이들,
곧 초기의 이기는 이들은
천 년 동안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것이다
(계 19:7-9, 20:4, 6).
그런 다음 그들은
후기의 이기는 이들인
주님의 나머지 믿는 이들과 함께
영원토록
그리스도의 아내가
될 것이다
(계 21:2-3, 7).
초기의 이기는 이들은
예루살렘 안에 있는
시온의 실재,
곧 교회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로서
그들의 마음에는
시온에 이르는
대로가 있다.
이기는 이들은
피난처를 제공하는
보금자리인
놋 제단으로 예표되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고 안식을 제공하는
집인
분향단으로 예표되신
승천 안에 계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들의 거처가 되시는
하나님 안으로
합병됨으로써,
내적으로
교회의 길을 간다
— 시 48:2, 84:3-5, 잠 27:8.
이기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자아나
우리의 혼 생명보다
주님을
더욱 사랑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기는 이는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를 위해
오직 그리스도만을 알고
그리스도만을 사랑한다
— 빌 3:10, 4:12,
계 2:4-5, 7, 12:11.
주님은
한 무리의 이기는 이들이
부활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를 살아 내어
그리스도의 신부가 됨으로써,
그분을
다시 모셔 오고
그분의 왕국 시대를
이끌어 오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이것을 위하여
우리는
“주님,
저에게
긍휼과 은혜를 주셔서
당신의 이기는 이들 중
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라고 기도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인
시온을
건축하도록
새 예루살렘을
살아 내고
이루어 내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가
모든 일의
척도라는
이 원칙을
붙잡아야 한다
— 계 21:22, 22:4, 출 25:30,
시 27:4-5, 8, 31:20, 91:1.
신약은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곧 하나님-사람이신
개인적인 그리스도로 시작하며,
‘여호와께서 거기 계신다.’
곧 위대한 하나님-사람이자
단체적인 그리스도인
새 예루살렘으로 마친다
— 마 1:23, 겔 48:35.
그 영은
우리의 영과 함께하시는
그리스도의 임재이시다.
우리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눈에서
표현되는
그분의 인격 전체의
표시에 따라,
그분의 인격
곧 그분의 임재 안에서
살고 행해야만 한다
— 딤후 4:22, 롬 8:16, 고후 3:17-18,
2:10, 13, 출 33:11상, 14-17,
고전 14:24-25, 계 5:6.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인
시온을
건축하도록
새 예루살렘을
살아 내고
이루어 내기 위하여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보좌,
곧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있어야 한다
— 계 22:1, 3.
죄는
불법,
곧 하나님을
보좌에서 끌어내리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보좌에서 끌어내리고,
자신을
겸손히 낮추며,
우리의 영 안에서 살고,
하나님의 움직임을 위하여
성도들과 동역하며,
우리의
그리스도인 생활과
교회 생활에서
‘청명한 하늘’을
유지함으로써,
왕으로서 다스리는 은혜
곧 하나님의 통치하는 임재로
채워져야 한다
— 요일 3:4, 겔 1:13-16, 22, 26,
롬 5:21, 계 4:1-3, 22:1, 왕상 10:18.
이러한 지점에
도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하여,
우리와 함께
그분의 영원한 목적을
이루실 수 있도록,
우리가
하나님을
모든 것에서
으뜸이 되시게 하고
그분의 권위와 행정에
철저히 복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 롬 5:17, 마 8:9,
롬 14:17, 민 17:8.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인
시온을 건축하도록
새 예루살렘을
살아 내고
이루어 내기 위하여
우리에게는 반드시
생명의
흐름과 공급이
있어야 한다
— 계 22:1-2, 영한 동번 찬송가 509장.
흐르는
생명 강과
먹을 수 있는
생명나무가
우리의 참된 에덴,
곧 우리의
즐거움과 오락과 기쁨으로서
하나님을 누리기 위한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교회 생활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되어야 한다
— 창 2:8-10, 시 36:8-9,
43:4상, 느 8:10.
한 영을 마시는 것은
한 몸의 하나(oneness)이신
그 영과
연합되는 것이다.
이것을 위하여
우리는
지속적으로
주님을 부르고
생수의 원천이신
그분에게서
기쁨으로
물을 길어야 한다
— 고전 12:12-13, 엡 4:3-4상,
사 12:3-4, 렘 2:13, 요 4:10, 14,
7:37-39, 계 22:17.
생명나무를 먹는 것,
곧 그리스도를
우리의 생명 공급으로
누리는 것이
교회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은
우리가
첫째가는 사랑으로
그분을 사랑하는 것을
요구한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과
주님을 누리는 것과
주님의 증거가 되는 것은
함께한다
— 계 2:4, 7, 22:14.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인
시온을
건축하도록
새 예루살렘을
살아 내고
이루어 내기 위하여
우리는
생명의 빛으로
충만해야 한다
— 계 21:11, 23, 22:5, 눅 11:33-36.
새 예루살렘의 빛은
빛나는 영광이신
하나님께서
등이신
구속자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추어 내신 것이며,
거룩한 성 전체는
신성한 빛의
발산체이다.
오늘날
신성한 빛을
확산하는
이 발산체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 계 21:23-24상, 22:1, 5,
21:11, 엡 5:8-9.
빛은
하나님의 임재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서
우리에게 할당하신
몫으로 누림으로,
어둠의 권세
곧 사탄의 왕국에서
구출되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 안으로
옮겨진다
— 골 1:12-13, 행 26:18,
롬 13:11-14, 막 9:2-8.
하나님의 빛은
성소
곧 하나님의 거처 안에 있으며,
하나님의 거처는 바로
우리의 영(엡 2:22)과
교회(딤전 3:15)이다.
우리는
영 안에서
그리고 교회 안에서
신성한 계시를 받으며
우리의 모든 문제들에 대한
설명을 얻는다
(시 73:16-17, 22-26).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인
시온을 건축하도록
새 예루살렘을
살아 내고
이루어 내기 위하여
우리는 반드시
새 예루살렘성의 기반인
금으로 예표되신
신성한 본성을 가지신
아버지 하나님께
참여해야 한다
— 벧후 1:4, 계 21:21하.
하나의 순금 길은
우리가
신성한 본성 안에서 흐르는
신성한 생명에 따라
살고 일할 때,
결코 ‘길을 잃지 않으며’,
순수하고
단순하며
복잡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 계 22:1, 고후 11:2-3.
신성한 본성은
하나님의 어떠함이다.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영을 훈련하여
하나님을
영(하나님의 인격의 본성)으로
누려야 하고,
신성한 교통 안에
머물며
하나님을
사랑(하나님의 본질의 본성)과
빛(하나님의 표현의 본성)으로
누려야 한다
— 요 4:24, 요일 4:8, 1:5, 3.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인
시온을 건축하도록
새 예루살렘을
살아 내고
이루어 내기 위하여
우리는 반드시
진주 문으로
예표되신,
죽고 부활하신
아들 하나님을
체험해야 한다
— 계 21:21상.
진주는
그리스도께서
두 방면,
곧 그분의
구속하고
생명을 해방하는
죽음의 방면과
그분의
생명을 분배하는
부활의 방면에서
분비하신 것의
산물을
상징한다
— 요 12:24, 19:34,
슥 13:1, 렘 2:13.
우리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부활 능력에 의해
그리스도의 죽음을 체험함으로,
그분의 죽음과
같은 형상이 되고
하나님의 맏아들의 형상과
같은 형상이 되어야 한다
— 빌 3:10, 1:19,
롬 8:29, 고후 4:7-13.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인
시온을 건축하도록
새 예루살렘을
살아 내고
이루어 내기 위하여
우리는 반드시
보석들로 된
기초가 있는
벽옥 성벽으로 예표되신,
변화시키는 일을 하시는
영 하나님을
체험해야 한다
— 계 21:18-20.
우리는
살아 있는 돌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한 생명으로 자람으로써
보석으로 변화되어
하나님과 같은 모양을
가지게 된다
— 벧전 2:4, 고전 3:12상,
계 21:10-11, 4:3, 고후 3:18, 롬 12:2.
성벽의 기능은
성을
하나님 아닌 모든 것에서
하나님께로
분별하고
거룩하게 하여
이 성을
거룩한 성이
되게 하는 것이다.
성벽의 기능은 또한
이 땅에서
하나님의 신성의
풍성의 권익을
보호하고
그분께서
완결되심으로
성취하신 것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 계 21:2상, 10하, 요 17:17.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인
시온을 건축하도록
새 예루살렘을
살아 내고
이루어 내는 것은
영적 전쟁을
요구한다.
느헤미야 시대에
‘성을 건축하는 자와
짐을 나르는 자는
다 각각
한 손으로 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다’
— 느 4:17.
원수의 공격에는
세 방면이 있다.
첫째 방면은
원수의 조롱이다
(느 2:10, 4:2-3).
둘째 방면은
원수가
신성한 건축물의
파괴자들을 통하여
만나서 토론하자고
요청하는 계략을
세우는 것이다
(느 6:2).
셋째 방면은
우리를
낙심시키고
약화시키고
영적으로 병들게 하고
불화하게 하는 것이다
(느 4:10-12).
하나님을 사랑한 사람인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교통 안에서
그분을 접촉했으며,
성벽을 재건축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섰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기도했다.
느헤미야는
매우 적극적으로,
부활 안에서
합당하게
진취적으로
행동을 취하였다
— 느 1:1-11, 2:4,
4:4-9, 13:1-30.
우리는
몸 안에서 싸우는
기도를 통해
전투를 함으로써
마귀의 계략에 대항하여
서야 한다.
또한 우리는
항상 영 안에서 기도하여
하나님의
완전한 전투 장비를
입음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하나님의 집이자
하나님의 통치를 위한
하나님의 왕국인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여
하나님의 경륜을
완전히 이루어야 한다
— 엡 6: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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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replies on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인 시온을 건축하기 위해 새 예루살렘을 살아 내고 이루어 냄”
신언노트2
그 새 예루살렘을
살아 내고
일해 내어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실재인
시온을
건축함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실재
주님의 회복은
그 새 예루살렘을
살아 냄과
(by living out;
실행함과)
또 일해 냄에 의하여
(and working out;
가져옴[성취함, 풀어 냄]으로)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실재인
시온을
건축하는 것입니다:
그 거룩한 도시,
곧 예루살렘의
그 가장 중요한 부분과
(the highlight;
빛나는[밝은] 부분과, 강조와, 절정과,
가장 좋은[흥미로운, 두드러진] 부분과)
또 아름다움으로서,
시온은
그 교회의
그 높은 봉우리,
그 중심,
그 위로 올림
(the uplifting; 그 고양[융기, 북돋움, 앙양]),
그 강화함,
그 부유하게 함
(the enriching; 그 풍부[풍성, 풍요]하게 함),
그 아름다움,
또 그 실재인
그 이기는 이들을
예표합니다.
시온인
그 이기는 이들은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실재이고
또 지방의 그 교회들 안에서
그리스도의 그 몸을
건축함을
완결하여
영원 안에서,
그 완결된 거룩한 도시,
곧 새 예루살렘,
곧 그 지성소를
가져 옵니다
(to bring in;
들여옵니다, 받아들입니다, 도입합니다).
그 새 하늘과 또 새 땅에서
전체의 그 새 예루살렘이
(그 새 예루살렘 전체가)
시온이 될 것이고,
그 이기는 이들인
그 모든 믿는 이들과
함께합니다
(그 이기는 이들로서의
그 모든 믿는 이들과 함께 하는,
시온이 될 것입니다).
그 새 예루살렘을
살아 내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과의
그 섞임에 의하여
‘그 머리 안으로’
자라는 것이고,
또 그 새 예루살렘을
일해 내는 것은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하나임을 위하여
(for the oneness;
그 단일성을[동일성을, 통일성을, 일치를] 위하여)
‘그 머리에서부터 밖으로
(out from the Head)’
기능하는 것입니다
(to function;
작용하는[활동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갈망은
지방의 그 교회들 안에서
산출되는
그리스도의
그 유기적인 몸의
그 전신(前身)을 통하여
(through the precursor;
그 선행물을[전구체를, 선구자를, 선배를] 통하여)
그 새 예루살렘을
얻는 것입니다.
결국,
지방의 그 교회들은
끝날 것입니다
(will be over);
오직 그리스도의 그 몸만이
하나님과 또 사람의
그 유일한 상호 거처로서
영원히 남을 것이고
그래서(so that)
하나님과 또 사람이
함께 결혼하게 되고,
함께 섞이고 또 합병되며
(incorporated; 포함되며, 혼합되며),
하나의 실체(one entity),
곧 크고 단체적인
(corporate; 한 몸 안에[으로] 결합된)
한 하나님-사람이 됩니다.
그 새 예루살렘에 속한다고
여겨지는 것은 무엇이든지
우리의
개인적이고
또 단체적인 체험
둘 다가
되어야만 하는데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하나임을 위하여
하나님의
사람과의
그 섞임에 의하여
그 새 예루살렘이 되고
또 그 새 예루살렘을 건축하여
하나님의
그 영원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새 예루살렘은
그 이기는 이들의
그 총계입니다
(the totality; 전체입니다);
주님의 믿는 이들의
한 남은 부분
(a remnant; 나머지),
곧 그 더 이른 이기는 이들은
(the earlier overcomers;
그 더 초기의 극복[정복]하는 사람들은),
천 년 동안
그리스도의 그 신부가
될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주님의 믿는 이들의
그 나머지 사람들
(the rest),
곧 그 더 늦은 이기는 이들과
(the later overcomers;
그 더 후기의 극복하는 사람들과)
합쳐질 것이고
(will join; 접합[결합, 연합]할 것이고),
영원히
그리스도의 그 아내가
될 것입니다:
그 더 이른 이기는 이들은,
예루살렘 안에 있는
시온의 그 실재,
곧 그 교회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실재로서,
그들의 마음 안에
시온에 이르는
(to Zion;
시온으로의, 시온을 향한)
대로들을
(highways;
간선 도로들을, 고속 도로들을,
곧게 뻗은 길들을, 평탄한 길들을)
가집니다;
그들은
그들의 피난을 위한
(for … refuge;
피신을[보호를, 피난처를] 위한)
그들의 보금자리인
(as … nest;
둥지인, 가정인, 은신처인)
그 놋 제단에 의하여
예표되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그리스도를 통하여,
또 그들의 안식을 위한
(for … rest;
휴식을[쉼을] 위한)
그들의 집인
(as … home;
자택인, 가정인, 피난처인, 거주지인)
그 분향단에 의하여
예표되시는,
승천 안에 계시는
부활하신
그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들의 거처이신
하나님 안으로
합병됨에 의하여
(by being incorporated;
포함됨으로, 섞임으로)
내적으로
(internally; 내부에)
그 교회의
그 길을
취합니다.
이기는 것은
우리가
주님을
우리의 자아보다 더 많이,
곧 우리의 혼 생명보다 더 많이
사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 이기는 이는
(an overcomer)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실재를 위하여
오직 그리스도만을
알고
또 사랑합니다.
주님은
한 무리의
이기는 이들이
부활 안에서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실재를 살아 내어
그리스도의 그 신부가
됨으로
(to become; 되어),
그분을
다시 모셔 오고
또 그분의 왕국 시대를
이끌어 오기를
(to usher in;
…가 시작되게 하기를,
안내하여 통과시키기를,
…의 도래를 알리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것을 위하여
우리는
“주님,
제가
당신의
긍휼과 또 은혜를
받아들여서
당신의
이기는 이들 중의
하나가
되게 해주십시오.”
라고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새 예루살렘을
살아 내고
또 일해 내어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실재인
시온을
건축하기 위하여,
우리는 반드시
이 원칙을
계속해서 붙잡아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각각의 모든 문제들에 대한
그 판단 기준입니다
(the criterion):
그 신약은
그 하나님-사람,
곧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신
그 개인적인 그리스도로
시작하고,
또 그 큰 하나님-사람,
곧 ‘여호와께서 거기 계신다’이신
그 단체적인 그리스도로서의
그 새 예루살렘으로
끝납니다.
그 영께서
우리의 영과 함께하시는
그리스도의
그 임재이십니다;
우리는 반드시
그분의 눈들 안에
표현되는,
그분의 전체 인격의
그 가리키는 표시에 따라
(according to the index;
그 지표(指標)[지시하는 표, 지침]에 따라),
그리스도의 그 인격 안에서,
곧 그리스도의 그 임재 안에서
살아야만 하고
또 행동해야만 합니다.
그 새 예루살렘을
살아 내고
또 일해 내어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실재인
시온을
건축하기 위하여,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그 왕좌,
곧 하나님의
그 다스리심 아래에
있어야만 합니다:
죄는(sin)
무법(lawlessness),
곧 하나님의
한 폐위입니다
(a dethronement;
왕위에서 물러나게 함[축출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하시는 은혜의
(of reigning grace)
다스리시는 임재로
(with … ruling presence)
채워지기 위하여
우리 자신들을
폐위시키고,
곧 우리 자신들을
겸허하게 만들며
(humble;
…의 품위를 떨어뜨리며[자만심을 꺽으며]),
우리의 영 안에서 살고,
하나님의 움직이심을 위하여
그 성도들과 동역하며,
또 우리의 그리스도인 생활과
또 교회 생활 안에서
한 ‘맑게 갠 하늘’을
유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요점에
(this point;
이 핵심[의미, 목표, 사항]에)
도달하는 것은
각각의 모든 것들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께서
그 우위를
(the preeminence;
그 상위를[탁월을, 뛰어남을])
가지시도록
허락해 드리고
또 그분의
권위와 또 행정에
완전히 복종하여
(are completely submissive;
전적으로 순종적이어서)
그 결과(so that)
그분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하여,
또 우리와 함께
그분의 영원한 목적을
성취하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새 예루살렘을
살아 내고
또 일해 내어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실재인
시온을
건축하기 위하여,
우리는 반드시
생명의
그 흐름과 또 공급을
가져야만 합니다:
흐르는
생명의 그 강과
또 먹을 수 있는
생명의 그 나무는
우리의 참된 에덴,
곧 우리의
즐거움, 오락, 또 큰 기쁨이신
하나님을
누리기 위하여
(for the enjoyment;
…의 그 누림을 위한)
우리의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또 교회 생활의
그 뛰어난 특징들이
(the outstanding features;
그 두드러진[뚜렷한, 걸출한, 돌출된] 특성들이)
되어야만 합니다.
하나의 영을(one Spirit)
마시는 것은
그 하나의 몸의
그 하나임이신(as the oneness)
그 영과
섞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계속하여
(continually; 끊임없이, 줄곧)
주님을 부르고
(call on the Lord;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또 살아 있는 물의
그 원천이신
그분께로부터
큰 기쁨으로
물을 길어 올리는 것을
(to … draw water)
요구합니다.
생명의 그 나무를 먹는 것,
즉, 우리의 생명 공급이신
(life supply;
생명 보급[보급 물자, 지급, 비축(물), 재고(량)]이신)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이,
그 교회 생활 안에서
그 주요한 문제가
(the primary matter;
그 주된[기본적인] 일[사안]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은
우리가
그 첫째 사랑으로
그분을 사랑하는 것을
요구합니다;
주님을 사랑함,
주님을 누림,
또 주님의 그 증거가 됨은
함께 갑니다
(go together;
동시에 생깁니다, 공존합니다, 어울립니다).
그 새 예루살렘을
살아 내고
또 일해 내어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실재인
시온을
건축하기 위하여,
우리는 반드시
생명의 그 빛으로
충만해야만 합니다
(must be full of;
가득 차야만 합니다):
그 새 예루살렘의
그 빛은
그 등이신
그 구속자 그리스도를 통하여
밖으로 빛나시는
(shining out;
확 비추시는, 두드러지시는)
빛 비추시는
(illuminating;
밝게 하시는, 조명하시는)
그 영광이신
하나님이시고,
또 전체의 그 거룩한 도시는
그 신성한 빛의
그 확산체입니다
(the diffuser;
그 산광기[분산기, 살포기,
유포자, 보급자, 디퓨저]입니다);
오늘날
그 신성한 빛을
퍼뜨리는
(to spread;
확산시키는, 유포하는, 보급하는, 펼치는)
이 확산체는
그리스도의 그 몸입니다.
빛은
하나님의
그 임재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어둠의 그 권세,
곧 사탄의 그 왕국으로부터
밖으로
구출하는,
또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의
그 아들의
그 왕국 안으로
옮기는
그 빛 안에서
(in the light; 그 빛으로)
하나님에 의해 할당되신
우리의 몫으로(as)
누립니다.
하나님의 그 빛은
그 성소,
곧 하나님의 거처 안에 있고,
그것은
우리의 영
또
그 교회입니다;
우리의 영 안에서
또 그 교회 안에서
우리는
신성한 계시를
받아들이고
또 우리의 모든 문제들에 대한(to)
그 설명을
(the explanation;
그 해명을[이유를, 설명이 되는 것을])
얻습니다.
그 새 예루살렘을
살아 내고
또 일해 내어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실재인
시온을
건축하기 위하여,
우리는 반드시
그 도시의 그 기반인
(as the base;
그 기저부인[기초인, 주춧돌인,
바탕인, 기본 재료인, 주성분인])
그 금에 의하여 예표되는,
그분의
신성하신 본성 안에 계시는
(in; 안에서)
아버지 하나님을
함께해야만 합니다
(must partake of;
같이해야만[함께 먹어야만] 합니다,
…의 성질을 띠어야만[취해야만] 합니다):
하나의 그 순금 길은
(the … of;
순금으로 된 하나의 그 길은)
우리가
그 신성한 본성 안에서
(in; 본성으로)
흐르는
그 신성한 생명에 따라
살고 또 일할 때,
우리가
결코 ‘길을 잃지 않고’,
또 우리가
순수하고,
단순하며,
또 복잡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신성한 본성은
하나님의 어떠하심입니다
(is what God is;
하나님께서 무엇이신
그 무엇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영을
훈련하여
영(하나님의 인격의 그 본성)이신
하나님을
누려야만 하고,
또 우리는 반드시
그 신성한 교통 안에
머물러서
사랑(하나님의 본질의 그 본성)이신
또 빛(하나님의 표현의 그 본성)이신
하나님을
누려야만 합니다.
그 새 예루살렘을
살아 내고
또 일해 내어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실재인
시온을
건축하기 위하여,
우리는 반드시
그 진주 문들에 의하여
예표되는,
그분의
죽음과 또 부활 안에 계시는
아들 하나님을
체험해야만 합니다:
진주들은
두 측면들(aspects; 양상들)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분비의
그 유출을
(the issue;
그 밖으로 나옴을, 그 결과를, 그 출구를)
의미합니다:
그분의
구속하는
또 생명을 해방하는
죽음과
또 그분의
생명을 분배하는
부활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부활의
그 능력에 의하여
그리스도의
그 죽음을
체험해야만 하고
그 결과(so that)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to; 죽음에)
또 하나님의 맏아들의
그 형상과
같은 형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새 예루살렘을
살아 내고
또 일해 내어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실재인
시온을
건축하기 위하여,
우리는 반드시
그것의
보석들로 된(of)
기초들과 함께
(with its foundations;
… 토대들과[주춧돌들과, 기반들과] 함께 있는)
그 벽옥 벽에 의하여
예표되는,
그분의
변화시키는 일 안에 계시는
영 하나님을(God the Spirit)
체험해야만 합니다:
그 살아 있는 돌이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in; 안에서)
그 신성한 생명 안에서의
우리의 성장에 의하여,
우리는
보석들 안으로
변형되어
하나님과(as)
같은 모습을
(the same appearance;
그 같은 외모를[외관을, 나타남을])
가집니다.
그 벽은
그 도시를
하나님이 아닌
모든 것들에서부터
하나님께로
(unto …; 하나님께 이르도록),
분별하는,
곧 거룩하게 하는
기능을 하고
(functions; 역할을 하고),
그래서
(thus; 이와 같이)
그 도시를
그 거룩한 도시로
만듭니다;
그 벽은 또한
그 땅 위에 있는(on)
하나님의 신성의
그 부유함의
(of the riches; 그 부의[재물의, 풍부함의])
그 이익들을
(the interests;
그 권리들을, 그 관심사들을)
또 그분의 완결의
그 성과들을
(the attainments;
그 위업들을, 그 공적들을)
보호하는
기능을 합니다.
그 새 예루살렘을
살아 내고
또 일해 내어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실재인
시온을
건축하는 것은
영적인 전투를
(warfare;
교전을, 싸움을, 전쟁을)
요구합니다;
느헤미아의 때에,
“그 벽을
건축한 사람들
또 짐들을
(burdens;
무거운 짐들을, 부담들을)
운반한 사람들은
한 손으로는
그 일을 하면서
또 그 다른 (손으로는)
한 무기를 잡으면서
그 부담들을
(the loads;
그 짐들을[무게들을, 하중을, 작업량을])
취했습니다
(took;
잡았습니다, 받아들였습니다, 선택했습니다,
가지고 갔습니다, 이동시켰습니다)”
(느 4:17):
그 적의
그 공격에(of)
세 측면들이 있습니다:
그 첫 번째 측면은
그 적의 비웃음입니다
(mocking;
조롱[조소, 깔봄, 흉내 냄]입니다);
그 두 번째 측면은
그 적이
그 신성한 건축물의
그 파괴자들을 통하여
회의들과
(meetings; 집회들과)
또 토의들을
(discussions; 의논들을)
요청하면서
음모들을
(plots; 책략들을)
수립하는 것입니다;
그 세 번째 측면은
우리가
낙담하게 되고
(to be discouraged;
용기를 잃게 되고, 단념하게 되고),
약해지며,
영적으로 아프고,
또 불일치 안에 있게
(… in discord;
불화하게, 다투게)
야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
한 사람으로서,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그래서; to contact)
교통 안에서
그분을 접촉하였습니다;
그 벽을
재건축함을 위하여,
느헤미아는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섰고,
그것에 따라
기도했으며,
또 대단히 적극적이었고
(was aggressive;
공격적이었고, 공세적이었고, 활동적이었고)
(그래서; to take action)
부활 안에서(in; 안에 있는)
적절하고(properly)
대단히 적극적인
한 방식으로
행동을 취하였습니다.
우리는
싸우는 기도들과 함께
그 몸 안에서
그 전투를(the battle)
싸움에 의하여(by fighting)
그 마귀의
책략들에 맞서
(against; 반대하여)
서 있으면서,
각각의 모든 시간들에
(at every time;
매 시간마다, 언제나, 항상)
영 안에서
(in spirit; 영으로)
기도하여
하나님의
그 전체 갑옷을
입어서
(to put on; 입고)
하나님의 그 경륜의
그 완전한 성취를 위하여
하나님의 그 영광을 위한
하나님의 그 집인
또 하나님의 그 통치를 위한
하나님의 그 왕국인
그리스도의 그 몸을
건축할
필요가 있습니다.
6일
계 21:21
또 열두 문은
열두 진주로
되어 있었는데,
그 문들은 각각
하나의 진주로
되어 있었습니다. …
빌 3:10
나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부활 능력과
그분의 고난의 교통을
알고,
그분의 죽음과
같은 형상을 이루어,
성의 열두 문은
진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아들의 승리하는 죽음과
생명을 분배하는 부활을
의미하며,
이것을 통해
우리는
성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된다
(계 21:21).
조개가
모래알로 인해
상처를 받으면
모래 주위에
생명 즙을
분비하여
모래를
귀한 진주로
만든다.
진주는
그리스도께서
두 방면,
곧 그분의
구속하고
생명을 해방하는
죽음의 방면과
그분의 생명을 분배하는
부활의 방면에서
분비하신 것의
산물을
상징한다.
… 그리스도의 죽음은
생명을
분비하고
분배하여
성의 문들을
산출한다.
열두 문은 또한
그리스도께서
생명을 분배하는
부활의 방면에서
생명을 분비하신 것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는 모두
어떤 산물,
곧 분비가 있다.
… 이 두 종류의
분비(분배)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추구하는 믿는 이들이
매일
그리스도의
부활 능력에 의해
그리스도의
죽음을
주관적으로 체험함으로
그분의 죽음과
같은 형상을 이루는 것이
필요하다
(빌 3:10).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 자체뿐만 아니라
죽음의 분비도
매일
주관적으로
체험해야 한다.
우리는
자신 안에서 스스로
그렇게 할 수 없다.
… 모든 사람이
따지기를 좋아한다.
다툼은
우리의 타고난 생명,
곧 ‘나’로부터
나오는 것이지
그리스도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나’를
항상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
우리는
이렇게
그리스도의 죽음을
주관적으로 적용하는 것을
날마다
우리의 체험이
되게 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 능력에 의해서만
그분의
죽음을
체험할 수 있다.
… 물론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혔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항상
십자가에
머물 수 있는가?
어떤 사람도
그리스도의
부활 능력을
알지 않고는
그렇게 할 수 없다.
부활 능력을
아는 사람들만이
이것을 행할
역량과 능력을
가진다.
그리스도의
부활 능력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가련한 자아를
십자가에
둘 수 있는
능력과 힘을
가진다.
새 예루살렘의
변화되고
건축된
성벽은
네 가지 주요 기능을
가진다.
첫째,
그것은
하나님께 속한
모든 것들을
거룩하게 한다.
하나님은
그분께 속한
어떤 것도
그분께 속하지 않은 것들과
섞기를
원치 않으신다.
그러므로
분별이 필요하다.
새 예루살렘의 성벽은
새 예루살렘을
하나님께 분별하여
거룩한 것이
되게 하는
기능을 한다.
이것이
새 예루살렘이
거룩한 성이라 불리는
이유이다.
둘째,
… 거룩한 성의 성벽은
하나님의 신성의
풍성의 권익을
보호하고
그분께서
완결되심으로
성취하신 것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성벽의 셋째 기능은
하나님을 표현하는 것이다.
… 요한계시록 21장 11절은
그 성의 영광이
벽옥의 영광과 같음을
계시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모양이다
(계 4:3).
오늘날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되는
그리스도의 몸의
기능은
그리스도를 표현하는 것이다.
기초석이 있는 성벽의
넷째 기능은
영원한 보장을 위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신실하심을
보증하는 것이다.
새 예루살렘이
무지개 색깔의
열두 층의
기초석 위에
서 있는 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증하는 것이다.
창조될 때
우리는
흙의 상태였지만,
하나님은
… 그분의 영에 의해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새롭게 하여
우리를 변화시키신다.
… 혼은
천연적인 사람이고,
천연적인 사람은
타락한 사람이며,
타락한 사람은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람이다.
만일 우리의 신분을
바꾸기 원한다면
우리는
변화될 필요가 있다.
변화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반드시
새롭게 되어야 한다.
우리는
매일
타고난 관념이 아닌
새롭게 된 생각에 따라
살아야 한다.
우리의 생각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새롭게 된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의 생각을
새롭게 할 수 있다.
5일
계 21:21
또 열두 문은
열두 진주로
되어 있었는데,
그 문들은 각각
하나의 진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의 길은
투명한 유리와 같은
순금이었습니다.
벧후 1:4
하나님은
이 영광과 미덕을 통하여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들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이 약속들을 통하여
세상에서
정욕으로
부패되는 데서 벗어나,
신성한 본성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되도록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새 예루살렘은
세 가지 귀한 재료들로
건축되는데,
이것은
새 예루살렘이
삼일 하나님으로
건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첫째로,
성의 본체와 그 길은
순금으로 되어 있다
(계 21:18, 21).
하나님의
신성한 본성을 상징하는
금은
근원이신 아버지를
의미하며,
그분에게서
그 성의
본질적인 존재를 위한
요소가 산출된다
(계 21:21).
새 예루살렘 안에는
열두 문이 있지만
길은 오직 하나이다.
… 그 길은
직선이 아니라
나선형이다.
첫 번째 원에서
그 길은
열두 문 주위를 돌며,
그 길이 계속 돌 때마다
원은 점점 더 작아져서
마침내 보좌에까지
이르게 된다.
따라서
… 어떤 문으로 들어가든지
한 길 위에
있게 된다.
여러분은 결코
길을 잃지 않는다.
결국, 이 길은
여러분을
중심에 있는
보좌로 데려다줄 것이다.
길은 순금이다.
… 이것은
이 성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본성으로
충만하고,
… 땅에 속한 요소가
전혀 없다는 것을
가리킨다.
… 길은
… 어떤 복잡한 것도 없이
다만 하나이며,
혼합된 것이 전혀 없는
순금으로 되어 있다.
신성한 본성은
하나님의 어떠함이다.
… 성경은
강조하면서
그리고 직접적으로
하나님께서
영(요 4:24)이시고,
사랑(요일 4:8, 16)이시며,
빛(1:5)이시라고
말한다.
… 신성한 본성은
이 세 가지 항목,
곧 영과 사랑과 빛으로
구성된다.
신성한 본성에
동참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영이시자 사랑이시자 빛이신
하나님께
동참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영은
하나님의
인격의 본성을
가리키며,
사랑은
하나님의
본질의 본성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신성한 본질을 지니신
신성한 존재이시다.
본질은
어떤 것의 요소보다
더 내재적이다.
요소 안에
본질이 있고,
이 신성한 본질은
사랑을
그 본성으로 가지고 있다.
더 나아가서
신성한 빛은
하나님의
표현의 본성이다.
요한은
신성한 출생으로 인해
우리 안에
씨가 들어왔다고
말한다
(요일 3:9).
이 씨 안에
신성한 본성이 있다.
더 나아가서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에 속한
모든 것을
주셨다고
말한다
(벧후 1:3).
이 사실을
근거로 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극히 크고 보배로운
약속들을 주셨는데,
이것은
이 약속들을 통하여
우리가
신성한 본성에
동참하고
신성한 본성을
누리는
이들이 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 우리는
신성한 본성에
동참할 때,
영이시자 사랑이시자 빛이신
하나님을 누리게 된다.
주님과의 교통을 가질 때
… 우리는
영이신 주님을
깨닫고 누리며,
그와 동시에
하나님의
본질의 본성인
사랑을 누린다.
그때 사랑이
우리를 적시며
심지어 우리 자신이 된다.
그 시간 전에
우리는
많은 것들로 인해
불쾌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교통 후에는
모든 것이 사랑스럽다.
… 이 사랑은
우리를 채울 뿐 아니라
우리를 적신다.
다른 사람들이
사랑할 수 없는
어떤 사람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사랑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사랑이신 하나님을
누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사랑의 하나님의
신성한 본성을
누린다.
… 오직 신성한 본성에
동참한 사람들만이
진정으로
사람들을 사랑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를
배운 것이 아니라
그들이
다른 사람을 향한
사랑이 된 것이다.
만일 우리가
아침에
주님과의
충분한 시간을
가진다면,
우리 안은
빛으로
충만할 것이다.
… 그러면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무슨 말을 하든지
빛으로
충만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신성한 본성을
누린 결과이다.
… 만일 우리 모두가
시간을 들여서
주님과 교통한다면,
영이신 주님을
누리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될 것이고,
사랑의 사람이
될 것이다.
사랑이
우리를
적실 것이다.
더 나아가서
우리가
무슨 말을 하든지
빛일 것이고
무엇을 하든지
수정같이 투명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신성한 본성에
동참하고 있다는
증거 혹은 증명이다.
4일
마 1:23
“보아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부를 것이다
(임마누엘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
이라는 뜻이다).”
겔 48:35
… 그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삼마
(여호와께서 거기 계신다)’
라 하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가
모든 일의 척도라는
이 원칙을
붙잡아야 한다.
… 우리가
어떤 것을 말하고
어떤 태도를 취할 때,
우리에게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가?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의 제안 안에 있는가?
우리가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만진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전으로서
그곳에 계시며
하나님의 건축물이
우리와 함께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따질수록
하나님의 임재를
더 많이 잃어버린다.
새 예루살렘에서
성전은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하나님의 임재가
성의 중심이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가져야 한다.
우리는
성전이신 하나님을
가져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건축되어
새 예루살렘의 상태를
가질 것이다.
교회가 건축되면
교회는
하나님의 보좌,
곧 하나님의 통치를
가지게 된다.
새 예루살렘에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다.
… 하나님의 보좌가
세워졌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분의 권위를
행사하실 수 있다.
어떤 교회가
건축되고 있는지
알고자 한다면,
우리는
그곳에
하나님의 보좌와
하나님의 다스림이
있는지를
볼 필요가 있다.
고린도후서 2장 10절은
… 바울이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형제를 용서하였다고
말한다.
여기서 ‘인격’에 대한
헬라어 단어는
얼굴,
곧 눈언저리 부분을
의미하는데,
이 부분은
생각과 감정에 대한
지표(指標)로서
인격 전체를
나타내는 곳이다.
얼굴의 눈언저리 부분은
모든 내적인 생각과 감정에 대한
지표로서,
그 사람이
속으로
무엇을 생각하고 있고
어떻게 느끼는지를
알려 준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그분의 눈에서
표현되는
그분의 인격 전체의
표시에 따라
그 형제를
용서하였다.
바울은
주님의 임재 안에서
살았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내적인 느낌과
생각의 지시 안에서
살았다.
이것은
더욱 깊고
더욱 다정하며
한층 섬세한 것이다.
건축된 교회에는
생명의
흐름과 공급이 있다.
성경은
보좌로부터 나오는
생명수의 강과
달마다 열매를 맺어
일 년에 열두 번 열매를 맺는,
강의 이쪽과 저쪽에 있는
생명나무를
보여 준다
(계 22:1-2).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
생명의 흐름이 있음을
가리킨다.
여기에
사람들의 목마름을 해결하고
사람들에게 물을 공급하는
생명수가 있다.
여기에 또한
배고픈 사람을
만족하게 하는
생명나무의
열매가 있다.
건축된 교회는
빛이 있다.
새 예루살렘 안에는
빛이 있다
(계 21:23).
이 빛은
천연적인 빛인
태양이나 달의
빛이 아니다.
이 빛은
하나님 자신이다.
하나님은
빛이시고
그리스도는
등이시다.
새 예루살렘에는
특별한 빛이
있을 것인데,
이 빛은 바로
구속하시며
빛나시는
하나님이다
(계 21:23).
구속하시는 하나님은
빛나는 하나님으로서
빛을 비추신다.
하나님의
빛나는 영광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빛이고,
구속하시는 그리스도는
빛을 담고 있는
등이시다.
또한 새 예루살렘성 전체는
성 밖에 있는
민족들을 위해
신성한 빛을
비추어 내는
발산체이다
(계 21:24상).
… 오늘날
신성한 빛을
확산하는
이 발산체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시편 73편에서
시편 기자는
악인이 잘되는 것에 관해
자신이 느꼈던
당혹감에 대한
해답을
하나님의 성소 안에서
얻었다.
첫째,
하나님의 성소
곧 그분의 처소는
우리의 영 안에 있다
(엡 2:22).
둘째,
하나님의 성소는
교회이다
(딤전 3:15).
… 우리의 영 안에서
그리고 교회 안에서
우리는
신성한 계시를 받고
우리의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는다
(시 73:17).
3일
계 14:1
또 내가 보니,
어린양께서
시온산에
서 계시고
그분과 함께
십사만 사천 명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양의 이름과
그분의 아버지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계 14:4
…그들은
어린양께서
어디로 가시든지
그분을
따라가는 사람들이며,
하나님과 어린양께
첫 열매로 드려지도록
사람들 가운데서
사 온 이들입니다.
새 예루살렘은
이기는 이들의
총체이다.
… 믿는 이들 중에
비교적 소수만이
이기는 이들일 것이다.
… 주님은
다시 오실 때
이기는 이들만
데려가시고
나머지 믿는 이들은
… 남겨 두실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그분의 신성한 생명 안에서
성숙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 그들은
바깥 어두운 데서
징계를 받을 것이다
(마 8:12, 22:13, 25:30).
이것은
그들을
성숙에 이르도록
온전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초기의 이기는 이들은
보상을 받을 것이다.
주님은
이 시대 안에 있는
이기는 이들에게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무엇인
그 무엇을 가지고
(with what they are in Christ;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이 무엇임으로,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으로)
보상하실 것이다.
… 결국,
대다수의 믿는 이들도
영원히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무엇임을
누릴 것이다
(will enjoy
what they are in Christ
for eternity;
자신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을
영원토록 누릴 것이다).
이기는 것은
… 우리가
우리의 자아나
우리의 혼 생명보다
주님을
더욱 사랑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기는 이는
그리스도만을 알고
그리스도만을 사랑한다.
영원토록
새 하늘과 새 땅에 있는
새 예루살렘은
… 구약과 신약의
모든 세대들에 걸친
모든 믿는 이들의
총체일 것이다.
그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구속하신
모든 사람이
이기는 이들이
되어 있을 것이다.
한 면에서,
우리는
하나님 안으로
들어갔고;
다른 면에서는,
우리가 여전히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는
그 대로들 위에 있다.
그 대로들이
우리의 마음 안에
있는 것은
우리가
그 교회의 그 길을
단지 외적으로가 아니라,
내적으로
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 84:5).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문제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한 예표인,
그 놋 제단에서
그 희생 제물들로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그리스도를 통해
해결된다.
이것이
육체가 되셨고
또 들어갈 수 있는
그 삼일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의
한 예표인,
그 성막 안으로
들어가고
또 그 분향단에서
하나님을 접촉하는
자격을
우리에게
준다.
그 지성소 앞에 있는
그 금향단에서 …
승천 안에 계신
부활하신
그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평안 안에서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게 하시는
그 향이시다.
그 분향단에서의
우리의 기도를 통하여
우리는
그 지성소
곧 우리의 영 안으로
(히 10:19)
들어가며,
거기에서
우리는
그 증거의 그 궤와
그것의 내용물이신
그리스도를
체험한다.
그리스도에 관한
그러한 한 체험을 통하여
우리는
그 성막,
곧 육체가 되신
그 삼일 하나님 안으로
합병되어,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위한
그분의 증거인
그 단체적인 그리스도의
(고전 12:12)
한 부분이 된다
(시 84:3).
그 놋 제단으로 예표된,
그리스도의 그 십자가는,
우리의 ‘보금자리’,
곧 우리의 피난처이고,
거기에서 우리는
우리의 고난들에서부터
(from … troubles;
문제들[곤란들, 걱정들, 골칫거리들]로부터)
구원받고,
또 거기에서
우리의 새끼를
(young; 젊은이들을)
‘낳는다
(lay; 놓는다, 눕힌다, 친다)’,
즉, 그 복음의 전파함을 통하여
새 믿는 이들을 산출한다.
그 금향단에 의하여
예표되시는,
그분의 승천 안에 계시는
부활하신
그 그리스도를
우리가 체험할 때,
우리는
그러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에 의하여
받아들여지고
또 하나님의 그 집 안에서
한 집
(a home; 한 가정),
곧 안식의 한 장소를
발견한다.
이 집이
그분의
구속되었고,
거듭났으며,
또 변화된
모든 선민과
결합되고,
섞이고,
또 합병되신
과정을 거치셨고
또 완결되신
그 삼일 하나님이고
(요 14:1-23)
그 현시대 안에서는
그리스도의 그 몸이 되고
또 영원 안에서는
하나님과
또 그분의 구속된 사람들의
그 상호 거처인
그 새 예루살렘이 (됩니다)
(계 21:3, 22).
주님께서 아직
이 시대를
끝내지 못하신
그 이유는
그분께서 아직
… 한 무리의 이기는 이들이
부활 안에서
그분의 몸 안에
살아
그분께서
그분의 왕국 시대를
이끌어 오시는
그 수단이(the means) 되기를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 14장 안에서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았지만,
그 이기는 이들은 오직
십사만 사천의
수에 달할 뿐인 것을
본다.
주님께서
이 시대를
끝내시고
또 그분의 왕국 시대를
이끄시도록
그 현시대 안에서
우리를
그 이기는 이들로
만드시기를
바란다
(May; 빈다).
2일
엡 4:15-16
오직 우리는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붙잡고,
모든 일에서
그리스도,
곧 머리이신 분 안으로
자라야 합니다.
온몸은
그분에게서 나온
그 풍성한 공급을 해 주는
각 마디를 통하여,
그리고 각 지체가
분량에 따라
기능을 발휘하는 것을 통하여
함께 결합되고
함께 짜입니다.
그래서 몸이 자람으로써
사랑 안에서
스스로 건축되는 것입니다.
더 이상 어린아이들이
되지 않으려면
(엡 4:14),
우리는
그리스도 안으로
자라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충분히 성장한 사람이 되기까지,
모든 일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증가하시도록 하는 것이다
(엡 4:13, 15).
에베소서 4장 15절에서
‘머리’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증가에 따른
우리의
생명의 성장이 반드시
머리 아래 있는
몸 안의 지체들의
성장이어야 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엡 4:15).
생명이 자라는 것은
머리이신 그리스도 안으로
자라는 것이지만,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우리의 기능은
머리이신 그분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먼저 우리는
머리 안으로 자라고,
그런 다음에
몸의 건축을 위해
머리에게서 나온
어떤 것을
가지게 된다
(엡 4:16).
주님의 관심은
그리스도의
유기적인 몸이라는
전신을 통하여
새 예루살렘을
얻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유기적인 몸은
물질적으로가 아닌
영적으로
교회들 안에서
산출되며
모든 믿는 이들로
구성된다.
요한계시록의
최종 완결에서
일곱 등잔대는 모두
사라진다.
첫 장에서
우리는
일곱 등잔대를 보지만,
마지막 두 장에서는
다만 한 성을
보게 된다.
결국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은
끝날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의 몸만이
영원토록 남게 될 것이며,
이 그리스도의 몸은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거처인
유일한 장막이 되고,
또한 어린양의
유일한 신부가
될 것이다
(계 21:2-3).
… 그러므로 우리는
지방 교회들보다
그리스도의 몸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 사람으로서
우리는
물질적인 골격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우리의 몸이다.
그러나 생명이 없다면
몸 자체는
하나의 시체일 뿐이다.
사람의 몸은
내적인 생명을
필요로 한다.
오늘날 교회도
이와 같다.
한 면으로 교회는
사람의 몸과 같이
골격을 가지고 있지만,
이 골격은
교회의
본성이나
본질이나
요소가
아니다.
에베소서 4장은
우리에게
교회가
몸이며,
이 교회 안에
그 영과
주님과
아버지가
계심을
말한다
(4-6절).
아버지는
근원이시고,
주님은
요소이시며,
그 영은
몸의 본질이시다.
이 네 실체가
함께 건축된다.
우리는
이 땅 위에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불리는
일종의 유기적인 조성체로
세워진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보아야 한다.
이 그리스도의 몸은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유기체이다.
… 성경의 마지막에는
오직 하나의 완결이 있으며,
이 완결은
새 예루살렘이다.
이 완결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아버지와 아들과 영)과
하나님께서 구속하신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이스라엘을
볼 수 있다
(계 21:12).
… 또한 우리는
믿는 이들을
볼 수 있다
(14절).
…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과 사람의
최종 완결이다.
하나님은
그분 자신을
우리의 인성 안으로
조성하셨으며,
우리의 인성 역시
그분의 신성 안으로
건축되었다.
이제 신성과 인성이 함께
결합되고 연결되고
연합되고 섞였다.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는
인성과 신성,
신성과 인성의
연합에 의해
하나님과
결합되고 연결되며
하나님으로
조성된
모든 하나님-사람들의
생활이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물질적인 성이 아니라
인격 … 곧 단체적인 한 인격이며,
이 단체적인 인격은
결혼하여
한 쌍을 이룬,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과
변화된
세 부분으로 된 사람이다.
이것은
그 영과 신부가
하나 된 것이다
(계 22:17상).
신성과 인성이
함께 결혼하고
함께 연합되어
한 실체가 된다.
… 하나님의 장막인
거룩한 성은
하나님께서
거하시기 위한 것이며
(21:2-3),
성전이신
하나님과 어린양은
우리가
거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성전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장막이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새 예루살렘은
영원토록
하나님과 사람 모두를 위한
상호 거처가
될 것이다.
신언노트, 2019 01 20
그 새 예루살렘을
살아 내고
일해 내어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실재인
시온을
건축함
주님의 회복은
그 새 예루살렘을
살아 냄과
(by living out;
실행함과)
또 일해 냄에 의하여
(and working out;
가져옴[성취함, 풀어 냄]으로)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실재인
시온을
건축하는 것입니다:
그 거룩한 도시,
곧 예루살렘의
그 가장 중요한 부분과
(the highlight;
빛나는[밝은] 부분과, 강조와, 절정과,
가장 좋은[흥미로운, 두드러진] 부분과)
또 아름다움으로서,
시온은
그 교회의
그 높은 봉우리,
그 중심,
그 위로 올림
(the uplifting; 그 고양[융기, 북돋움, 앙양]),
그 강화함,
그 부유하게 함
(the enriching; 그 풍부[풍성, 풍요]하게 함),
그 아름다움,
또 그 실재인
그 이기는 이들을
예표합니다.
시온인
그 이기는 이들은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실재이고
또 지방의 그 교회들 안에서
그리스도의 그 몸을
건축함을
완결하여
영원 안에서,
그 완결된 거룩한 도시,
곧 새 예루살렘,
곧 그 지성소를
가져 옵니다
(to bring in;
들여옵니다, 받아들입니다, 도입합니다).
그 새 하늘과 또 새 땅에서
전체의 그 새 예루살렘이
(그 새 예루살렘 전체가)
시온이 될 것이고,
그 이기는 이들인
그 모든 믿는 이들과 함께합니다
(그 이기는 이들로서의
그 모든 믿는 이들과 함께 하는,
시온이 될 것입니다).
그 새 예루살렘을
살아 내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과의
그 섞임에 의하여
‘그 머리 안으로’
자라는 것이고,
또 그 새 예루살렘을
일해 내는 것은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하나임을 위하여
(for the oneness;
그 단일성을[동일성을, 통일성을, 일치를] 위하여)
‘그 머리에서부터 밖으로
(out from the Head)’
기능하는 것입니다
(to function;
작용하는[활동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갈망은
지방의 그 교회들 안에서
산출되는
그리스도의
그 유기적인 몸의
그 전신(前身)을 통하여
(through the precursor;
그 선행물을[전구체를, 선구자를, 선배를] 통하여)
그 새 예루살렘을
얻는 것입니다.
결국,
지방의 그 교회들은
끝날 것입니다
(will be over);
오직 그리스도의 그 몸만이
하나님과 또 사람의
그 유일한 상호 거처로서
영원히 남을 것이고
그래서(so that)
하나님과 또 사람이
함께 결혼하게 되고,
함께 섞이고 또 합병되며
(incorporated; 포함되며, 혼합되며),
하나의 실체(one entity),
곧 크고 단체적인
(corporate; 한 몸 안에[으로] 결합된)
한 하나님-사람이 됩니다.
그 새 예루살렘에 속한다고
여겨지는 것은 무엇이든지
우리의
개인적이고 또 단체적인 체험
둘 다가
되어야만 하는데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하나임을 위하여
하나님의
사람과의
그 섞임에 의하여
그 새 예루살렘이 되고
또 그 새 예루살렘을 건축하여
하나님의
그 영원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새 예루살렘은
그 이기는 이들의
그 총계입니다
(the totality; 전체입니다);
주님의 믿는 이들의
한 남은 부분
(a remnant; 나머지),
곧 그 더 이른 이기는 이들은
(the earlier overcomers;
그 더 초기의 극복[정복]하는 사람들은),
천 년 동안
그리스도의 그 신부가
될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주님의 믿는 이들의
그 나머지 사람들
(the rest),
곧 그 더 늦은 이기는 이들과
(the later overcomers;
그 더 후기의 극복하는 사람들과)
합쳐질 것이고
(will join; 접합[결합, 연합]할 것이고),
영원히
그리스도의 그 아내가
될 것입니다:
그 더 이른 이기는 이들은,
예루살렘 안에 있는
시온의 그 실재,
곧 그 교회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실재로서,
그들의 마음 안에
시온에 이르는
(to Zion;
시온으로의, 시온을 향한)
대로들을
(highways;
간선 도로들을, 고속 도로들을,
곧게 뻗은 길들을, 평탄한 길들을)
가집니다;
그들은
그들의 피난을 위한
(for … refuge;
피신을[보호를, 피난처를] 위한)
그들의 보금자리인
(as … nest;
둥지인, 가정인, 은신처인)
그 놋 제단에 의하여
예표되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그리스도를 통하여,
또 그들의 안식을 위한
(for … rest;
휴식을[쉼을] 위한)
그들의 집인
(as … home;
자택인, 가정인, 피난처인, 거주지인)
그 분향단에 의하여
예표되시는,
승천 안에 계시는
부활하신
그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들의 거처이신
하나님 안으로
합병됨에 의하여
(by being incorporated;
포함됨으로, 섞임으로)
내적으로
(internally; 내부에)
그 교회의
그 길을 취합니다.
이기는 것은
우리가
주님을
우리의 자아보다 더 많이,
곧 우리의 혼 생명보다 더 많이
사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 이기는 이는
(an overcomer)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실재를 위하여
오직 그리스도만을
알고
또 사랑합니다.
주님은
한 무리의 이기는 이들이
부활 안에서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실재를 살아 내어
그리스도의 그 신부가
됨으로
(to become; 되어),
그분을
다시 모셔 오고
또 그분의 왕국 시대를
이끌어 오기를
(to usher in;
…가 시작되게 하기를,
안내하여 통과시키기를,
…의 도래를 알리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것을 위하여
우리는
“주님,
제가
당신의
긍휼과 또 은혜를
받아들여서
당신의
이기는 이들 중의
하나가
되게 해주십시오.”
라고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새 예루살렘을
살아 내고
또 일해 내어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실재인
시온을
건축하기 위하여,
우리는 반드시
이 원칙을
계속해서 붙잡아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각각의 모든 문제에 대한
그 판단 기준입니다
(the criterion):
그 신약은
그 하나님-사람,
곧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신
그 개인적인 그리스도로
시작하고,
또 그 큰 하나님-사람,
곧 ‘여호와께서 거기 계신다’이신
그 단체적인 그리스도로서의
그 새 예루살렘으로
끝납니다.
그 영께서는
우리의 영과 함께하시는
그리스도의
그 임재이십니다;
우리는 반드시
그분의 눈들 안에
표현되는,
그분의 전체 인격의
그 가리키는 표시에 따라
(according to the index;
그 지표(指標)[지시하는 표, 지침]에 따라),
그리스도의 그 인격 안에서,
곧 그리스도의 그 임재 안에서
살아야만 하고
또 행동해야만 합니다.
그 새 예루살렘을
살아 내고
또 일해 내어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실재인
시온을
건축하기 위하여,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그 왕좌,
곧 하나님의
그 다스리심 아래에
있어야만 합니다:
죄는(sin)
무법(lawlessness),
곧 하나님의
한 폐위입니다
(a dethronement;
왕위에서 물러나게 함[축출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하시는 은혜의
(of reigning grace)
다스리시는 임재로
(with … ruling presence)
채워지기 위하여
우리 자신들을
폐위시키고,
곧 우리 자신들을
겸허하게 만들며
(humble;
…의 품위를 떨어뜨리며[자만심을 꺽으며]),
우리의 영 안에서 살고,
하나님의 움직이심을 위하여
그 성도들과 동역하며,
또 우리의 그리스도인 생활과
또 교회 생활 안에서
한 ‘맑게 갠 하늘’을 유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요점에
(this point;
이 핵심[의미, 목표, 사항]에)
도달하는 것은
각각의 모든 것들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께서
그 우위를
(the preeminence;
그 상위를[탁월을, 뛰어남을])
가지시도록
허락해 드리고
또 그분의
권위와 또 행정에
완전히 복종하여
(are completely submissive;
전적으로 순종적이어서)
그 결과(so that)
그분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하여,
또 우리와 함께
그분의 영원한 목적을
성취하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새 예루살렘을
살아 내고
또 일해 내어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실재인
시온을
건축하기 위하여,
우리는 반드시
생명의
그 흐름과 또 공급을
가져야만 합니다:
흐르는
생명의 그 강과
또 먹을 수 있는
생명의 그 나무는
우리의 참된 에덴,
곧 우리의
즐거움, 오락, 또 큰 기쁨이신
하나님을
누리기 위하여
(for the enjoyment;
…의 그 누림을 위한)
우리의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또 교회 생활의
그 뛰어난 특징들이
(the outstanding features;
그 두드러진[뚜렷한, 걸출한, 돌출된] 특성들이)
되어야만 합니다.
하나의 영을(one Spirit)
마시는 것은
그 하나의 몸의
그 하나임이신(as the oneness)
그 영과
섞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계속하여
(continually; 끊임없이, 줄곧)
주님을 부르고
(call on the Lord;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또 살아 있는 물의
그 원천이신
그분께로부터
큰 기쁨으로
물을 길어 올리는 것을
(to … draw water)
요구합니다.
생명의 그 나무를 먹는 것,
즉, 우리의 생명 공급이신
(life supply;
생명 보급[보급 물자, 지급, 비축(물), 재고(량)]이신)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이,
그 교회 생활 안에서
그 주요한 문제가
(the primary matter;
그 주된[기본적인] 일[사안]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은
우리가
그 첫째 사랑으로
그분을 사랑하는 것을
요구합니다;
주님을 사랑함,
주님을 누림,
또 주님의 그 증거가 됨은
함께 갑니다
(go together;
동시에 생깁니다, 공존합니다, 어울립니다).
그 새 예루살렘을
살아 내고
또 일해 내어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실재인
시온을
건축하기 위하여,
우리는 반드시
생명의 그 빛으로
충만해야만 합니다
(must be full of;
가득 차야만 합니다):
그 새 예루살렘의
그 빛은
그 등이신
그 구속자 그리스도를 통하여
밖으로 빛나시는
(shining out;
확 비추시는, 두드러지시는)
빛 비추시는
(illuminating;
밝게 하시는, 조명하시는)
그 영광이신
하나님이시고,
또 전체의 그 거룩한 도시는
그 신성한 빛의
그 확산체입니다
(the diffuser;
그 산광기[분산기, 살포기,
유포자, 보급자, 디퓨저]입니다);
오늘날
그 신성한 빛을
퍼뜨리는
(to spread;
확산시키는, 유포하는, 보급하는, 펼치는)
이 확산체는
그리스도의 그 몸입니다.
빛은
하나님의
그 임재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어둠의 그 권세,
곧 사탄의 그 왕국으로부터 밖으로
구출하는,
또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의
그 아들의
그 왕국 안으로
옮기는
그 빛 안에서
(in the light; 그 빛으로)
하나님에 의해 할당되신
우리의 몫으로(as)
누립니다.
하나님의 그 빛은
그 성소,
곧 하나님의 거처 안에 있고,
그것은
우리의 영
또(and; 그리고)
그 교회입니다;
우리의 영 안에서
또 그 교회 안에서
우리는
신성한 계시를 받아들이고
또 우리의 모든 문제들에 대한(to)
그 설명을
(the explanation;
그 해명을[이유를, 설명이 되는 것을])
얻습니다.
그 새 예루살렘을
살아 내고
또 일해 내어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실재인
시온을
건축하기 위하여,
우리는 반드시
그 도시의 그 기반인
(as the base;
그 기저부인[기초인, 주춧돌인,
바탕인, 기본 재료인, 주성분인])
그 금에 의하여 예표되는,
그분의
신성하신 본성 안에 계시는
(in; 안에서)
아버지 하나님을
함께해야만 합니다
(must partake of;
같이해야만[함께 먹어야만] 합니다,
…의 성질을 띠어야만[취해야만] 합니다):
하나의 그 순금 길은
(the … of;
순금으로 된 하나의 그 길은)
우리가
그 신성한 본성 안에서
(in; 본성으로)
흐르는
그 신성한 생명에 따라
살고 또 일할 때,
우리가
결코 ‘길을 잃지 않고’,
또 우리가
순수하고,
단순하며,
또 복잡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신성한 본성은
하나님의 어떠하심입니다
(is what God is;
하나님께서 무엇이신
그 무엇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영을
훈련하여
영(하나님의 인격의 그 본성)이신
하나님을
누려야만 하고,
또 우리는 반드시
그 신성한 교통 안에
머물러서
사랑(하나님의 본질의 그 본성)이신
또 빛(하나님의 표현의 그 본성)이신
하나님을
누려야만 합니다.
그 새 예루살렘을
살아 내고
또 일해 내어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실재인
시온을
건축하기 위하여,
우리는 반드시
그 진주 문들에 의하여
예표되는,
그분의
죽음과 또 부활 안에 계시는
아들 하나님을
체험해야만 합니다:
진주들은
두 측면들(aspects; 양상들)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분비의
그 유출을
(the issue;
그 밖으로 나옴을, 그 결과를, 그 출구를)
의미합니다:
그분의
구속하는
또 생명을 해방하는
죽음과
또 그분의
생명을 분배하는
부활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부활의
그 능력에 의하여
그리스도의
그 죽음을
체험해야만 하고
그 결과(so that)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to; 죽음에)
또 하나님의 맏아들의
그 형상과
같은 형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새 예루살렘을
살아 내고
또 일해 내어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실재인
시온을
건축하기 위하여,
우리는 반드시
그것의
보석들로 된(of)
기초들과 함께
(with its foundations;
… 토대들과[주춧돌들과, 기반들과] 함께 있는)
그 벽옥 벽에 의하여
예표되는,
그분의
변화시키는 일 안에 계시는
영 하나님을(God the Spirit)
체험해야만 합니다:
그 살아 있는 돌이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in; 안에서)
그 신성한 생명 안에서의
우리의 성장에 의하여,
우리는
보석들 안으로
변형되어
하나님과(as)
같은 모습을
(the same appearance;
그 같은 외모를[외관을, 나타남을])
가집니다.
그 벽은
그 도시를
하나님이 아닌
모든 것들에서부터
하나님께로
(unto …; 하나님께 이르도록),
분별하는,
곧 거룩하게 하는
기능을 하고
(functions; 역할을 하고),
그래서
(thus; 이와 같이)
그 도시를
그 거룩한 도시로
만듭니다;
그 벽은 또한
그 땅 위에 있는(on)
하나님의 신성의
그 부유함의
(of the riches; 그 부의[재물의, 풍부함의])
그 이익들을
(the interests;
그 권리들을, 그 관심사들을)
또 그분의 완결의
그 성과들을
(the attainments;
그 위업들을, 그 공적들을)
보호하는
기능을 합니다.
그 새 예루살렘을
살아 내고
또 일해 내어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실재인
시온을
건축하는 것은
영적인 전투를
(warfare;
교전을, 싸움을, 전쟁을)
요구합니다;
느헤미아의 때에,
“그 벽을
건축한 사람들
또 짐들을
(burdens;
무거운 짐들을, 부담들을)
운반한 사람들은
한 손으로는
그 일을 하면서
또 그 다른 (손으로는)
한 무기를 잡으면서
그 부담들을
(the loads;
그 짐들을[무게들을, 하중을, 작업량을])
취했습니다
(took;
잡았습니다, 받아들였습니다, 선택했습니다,
가지고 갔습니다, 이동시켰습니다)”
(느 4:17):
그 적의
그 공격에(of)
세 측면들이 있습니다:
그 첫 번째 측면은
그 적의 비웃음입니다
(mocking;
조롱[조소, 깔봄, 흉내 냄]입니다);
그 두 번째 측면은
그 적이
그 신성한 건축물의
그 파괴자들을 통하여
회의들과
(meetings; 집회들과)
또 토의들을
(discussions; 의논들을)
요청하면서
음모들을
(plots; 책략들을)
수립하는 것입니다;
그 세 번째 측면은
우리가
낙담하게 되고
(to be discouraged;
용기를 잃게 되고, 단념하게 되고),
약해지며,
영적으로 아프고,
또 불일치 안에 있게
(… in discord;
불화하게, 다투게)
야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
한 사람으로서,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그래서; to contact)
교통 안에서
그분을 접촉하였습니다;
그 벽을
재건축함을 위하여,
느헤미아는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섰고,
그것에 따라
기도했으며,
또 대단히 적극적이었고
(was aggressive;
공격적이었고, 공세적이었고, 활동적이었고)
(그래서; to take action)
부활 안에서(in; 안에 있는)
적절하고(properly)
대단히 적극적인
한 방식으로
행동을 취하였습니다.
우리는
싸우는 기도들과 함께
그 몸 안에서
그 전투를(the battle)
싸움에 의하여(by fighting)
그 마귀의
책략들에 맞서
(against; 반대하여)
서 있으면서,
각각의 모든 시간들에
(at every time;
매 시간마다, 언제나, 항상)
영 안에서
(in spirit; 영으로)
기도하여
하나님의
그 전체 갑옷을
입어서
(to put on; 입고)
하나님의 그 경륜의
그 완전한 성취를 위하여
하나님의 그 영광을 위한
하나님의 그 집인
또 하나님의 그 통치를 위한
하나님의 그 왕국인
그리스도의 그 몸을
건축할
필요가 있습니다.
1일
시 48:1-2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우리 하나님의 성,
거룩한 산에서
극진히 찬양받으시리로다
터가 높고
아름다워
온 세계가
즐거워함이여
큰 왕의 성
곧 북방에 있는
시온산이 그러하도다
계 21:2
또 내가 보니,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하나님에게서
내려오는데,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로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구약에는
시온을 중심으로 하는
예루살렘성이 있었다.
… 시온산은
예루살렘이 지어진
산들 중 하나였다.
시온이
중심이고
예루살렘은
둘레였다.
교회생활은
오늘날의 예루살렘이며,
교회생활 안에는 반드시
한 무리의 이기는 이들이
있어야 한다.
이들이
오늘날의 시온이다.
요한계시록 14장에 따르면,
이기는 이들은
어린양과 함께
시온산에 서 있다
(1-5절).
사실 성경의 예표에서
이기는 이들은
오늘날의 시온이다.
… 시온(이기는 이들)이 없다면,
예루살렘(교회생활)은
유지될 수 없고
지속될 수 없다.
시온은
거룩한 성인
교회의
고봉, 중심,
높이 올림, 강화함,
풍성하게 함, 실재이다.
… 이기는 이들은
각 지방에 있는
교회의
고봉이자 중심이다.
그들은
각 지방에 있는
교회의
높이 올림과 강화함과
풍성하게 함과 실재이다.
… 시온인
이기는 이들은
교회의
가장 두드러진 부분이고
중심이며
실재이다.
오늘날의 시온인
이기는 이들은
거룩한 성(교회)의
완결을 위해 있다.
그들은
각 지방에 있는
교회의 건축을
완결하고 마감하며,
영원 안에서 완결된
새 예루살렘을
이끌어 올 것이다
(계 21:1-2).
몸의 건축을
완성하기 위해
주님은
이기는 이들이
필요하시며,
몸의 건축은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된다.
이것이
성경의 마지막 책에
이기는 이들을 위한
부르심이 있는
이유이다.
사사기 5장 15절에서
드보라는
“르우벤 시냇가에서
큰 결심이 있었도다”
라고 말했다.
우리는
이기는 이들,
곧 활력화된 사람들이
되기를
결심해야 한다.
이기는 이는
그리스도를 대치하거나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모든 것을 이긴다.
성경에는
이기는 이들의
시대가 있고,
이기는 이들에 대한
부름이 있다.
더욱이 성경에는
우리가
이기는 이들이
될수 있도록
활력화되는
길이 있다.
우리의 목표는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을
이루기 위해
오늘날
시온에 이르고
시온을 가지는 것이다.
… 신약의 마지막 책은
이기는 이들을
부른다
(계 2:7, 11, 17, 26, 3:5, 12, 21).
이 이기는 이들이
시온이 될 것이다
(14:1).
…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 새 예루살렘 전체가
모든 믿는 이들이
이기는 이들인
시온이 될 것이다.
주님의 회복 안에 있는
교회 생활은,
전체가 아닐지라도
적어도 우리 중 얼마는
시온에 이를 때까지
계속 나아가야 한다.
예루살렘은
교회를 예표한다.
예루살렘 안에는
시온산이 있었다.
… 시온은
예루살렘의 요새였다.
하나님의 마음의
갈망과 관련된 것이
나올 때에는 항상
시온이 언급된다.
… 하나님은
예루살렘이
짓밟히는 것은
허락하셨지만
시온은
항상 지키셨다.
그러므로 새 예루살렘은
있어도
새 시온은
결코 없을 것인데,
이는 시온이
결코 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구약에서
시온과 예루살렘의
관계를 말할 때마다,
예루살렘의
특징과 생명과
축복과 세워짐이 다
시온에서 비롯된 것임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열왕기상 8장 1절을 보면,
장로들은
예루살렘에 있었고
언약궤는
시온에 있었다.
시편 51편 18절은
하나님께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하셨다고
말한다.
시편 102편 21절은
여호와의 이름은
시온에 있고
그분에 대한 찬양은
예루살렘에 있다고
말한다.
시편 128편 5절은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축복하시고
예루살렘에서
선한 일, 곧 번영을
본다고
말한다.
시편 135편 21절은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거하시고
시온에서부터
찬송을 받으신다고
말한다.
… 요엘서 3장 17절은
하나님께서
시온에
거하실 때
예루살렘이
거룩하게 된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