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in Resurrection
for the Reality
of the Body of Christ
부활 안에서
살기 위해
우리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해
밝혀진 진리를
보아야 한다.
인성 안에 계신
그리스도는
부활 안에서
하나님에 의해
태어나,
몸의 머리이신
하나님의 맏아들이
되셨다
— 행 13:33, 롬 8:29하.
그리스도의
모든 믿는 이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아버지 하나님에 의해
거듭났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이자
그분의 재생산인
교회를
산출하기 위한 것이었다
— 벧전 1:3, 요 12:24, 고전 10:17.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는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다
— 고전 15:45하.
주님의 부활의
이러한 주된 항목들
(하나님의 맏아들,
하나님의 많은 아들들,
생명 주시는 영)이
없다면,
교회도 없고
그리스도의 몸도 없으며
하나님의 경륜도 없을 것이다
— 골 1:18, 고전 12:12, 엡 4:4.
싹 난 지팡이는
부활하신 분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의
생명과 생활과 부활 생명이
되셔야 한다는 것과,
이 생명이
싹트고 꽃 피고 열매를 맺어
성숙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민 17:8.
민수기 16장에 기록된 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반역한 후에
하나님은
열두 명의 인도자들에게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 따라
열두 개의 지팡이를
가지고 와서,
회막 안의
증거판 앞에 두라고
명하셨다
(민 17:4).
그런 후에
하나님은
“내가 선택하는
바로 그 사람의 지팡이에
싹이 날 것이니”
라고 말씀하셨다
— 민 17:5.
열두 개의 지팡이 모두가
잎과 뿌리가 없고
말라 죽어 있었다.
그중 어느 것이든
싹이 난 것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부활이
하나님의 선택의
근거이며,
봉사의 근거가
우리의 타고난 생명과
무관하다는 것을
본다.
따라서 싹 난 지팡이는
우리가
부활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체험하며,
이 체험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쁘게 받으시고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역에
권위가 있게 된다는 것을
상징한다.
모든 봉사의 원칙은
싹 난 지팡이에
달려 있다.
하나님은
열한 개의 지팡이 모두를
인도자들에게 돌려주셨지만,
아론의 지팡이는
영원한 기념으로
궤 안에 두셨다.
이것은
부활이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의 봉사에서
영원한 원칙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 민 17:9-10.
부활은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나오고
우리에게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활은
하나님만 홀로
하실 수 있고
우리는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 빌 3:10-11.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천연적인 영역에 속하고,
우리가
하기에 불가능한 일은
부활의 영역에 속한다.
자신이
완전히 쓸모가 없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으려면,
먼저 자신을
반드시 끝내야 한다
— 마 19:26, 막 10:27, 눅 18:27.
사람이
자신의 무능함을
한 번도 깨달은 적이 없다면,
그는 결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없다.
부활은
우리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하시는 분이심을
의미한다
— 고후 1:8-9, 4:7.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 안에 있기 위해,
우리는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 안에
있어야 한다.
교회는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요소로 이루어지고,
전적으로
부활 안에 있으며,
전적으로
하늘들의 영역 안에 있다
— 벧전 1:3, 엡 2:6, 창 2:21-24.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예표하는
금등잔대는
자라고
가지를 내고
봉오리를 맺고
꽃을 피워서
빛을 내시는,
부활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묘사한다
— 출 25:31-40, 민 17:8, 계 1:11-12.
우리가
우리의 타고난 생명에 의해
살지 않고
우리 안에 있는
신성한 생명에 의해
살 때,
우리는
부활 안에 있게 된다.
이것의 결과가 바로
그리스도의 몸이다
— 빌 3:10-11.
우리는 모두
주님의 제자로서
그분께 훈련을 받아,
우리의 타고난 생명을
부인함으로써
신성한 생명을 사는,
신성하고 비밀한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 비교 요 3:8.
심지어 성경적으로 수행될지라도
타고난 생명 안에서 수행된 것은 무엇이든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가 아니다
— 고전 3:12.
부활 안에 살기 위해,
우리는
부활의 하나님을
알고
체험하고
얻어야 한다
— 고후 1:8-9.
하나님은
우리를
종결하시고 끝내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통해
일하고 계신다.
그 결과
우리는 더 이상
우리 자신을
신뢰하지 않고
부활의 하나님을
신뢰할 것이다
— 고후 1:9.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해
많은 일들을
행하실 수 있을지라도,
살아 계신 하나님의
생명과 본성은
사람 안으로
일해 넣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부활의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는
그분의 생명과 본성이
사람 안으로
일해 넣어진다
— 고후 4:16.
하나님은
외적인 행동으로
그분의 능력을 알리려고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 자신을
사람 안에
나누어 주시고
일해 넣으시려고
일하고 계신다
— 갈 4:19.
하나님은
그분의 생명과 본성을
우리 안에
일해 넣으시기 위해
환경을 사용하신다
— 고후 4:7-12, 살전 3:3.
부활 안에
살고
부활의 하나님으로
조성되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모든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맏아들이신
그리스도의 형상과
같은 형상을
이루어야 한다
— 롬 8:28-29,
히 12:10, 렘 48:11.
이 우주에
고난이 있는
주된 목적은,
특별히 하나님의 자녀들과 관련해서,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본성 자체가
사람의 본성 안으로
일해 넣어져서,
사람이
하나님을
가장 충만한 정도까지
얻도록 하려는 것이다
— 고후 4:16.
우리가
여러 환난을
통과할 때,
매일
우리 안에서
새롭게 됨이
계속해서
일어나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은
우리를
새 예루살렘으로 만드시는
그분의 마음의 갈망을
성취하실 수 있다
— 겔 36:26, 고후 5:17, 계 21:2.
부활 안에
살기 위해,
우리는
부활 생명의
신선한 공급으로
양육을 받음으로써
매일
새롭게 되어야 한다
— 고후 4:16.
참된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부활의 하나님을
우리 안에
더해지게 하는 것이다
— 골 2:19, 롬 8:10, 6, 11.
부활 안에 있는
신성한 생명의
새롭게 하는
역량을 받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을 접촉하고,
하나님께
자신을 완전히 열며,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매일
우리 안에
새롭게 더해지시도록
허락해 드려야 한다
— 빌 2:13, 3:10-11.
우리는
십자가와
성령과
우리의 연합된 영과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새롭게 된다
— 고후 4:10, 딛 3:5,
엡 4:23, 5:26.
우리는
매일 아침마다
부흥되어야 한다
— 마 13:43, 잠 4:18.
우리는
다른 이들을
용서하고
다른 이들에게
용서를 구함으로써
새로움의 원칙 안에서
주님의 상에
나와야 한다
— 마 26:29, 5:23-24, 18:21-22, 35.
십자가에 의해
죽는 것은
결과적으로
부활 생명이
나타나도록 한다.
이렇게 매일 죽는 것은
부활 안에서
신성한 생명을
해방하기 위한 것이다
— 고후 4:10-12.
우리의
타고난 힘과 능력은
십자가에 의해
처리를 받아,
주님을 섬기기 위해
부활 안에서
유용하게 되어야 한다
— 빌 3:3.
사십 년 동안
하나님에 의해
제쳐 놓아진 후에,
모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배웠다
— 출 2:14-15, 행 7:22-36, 히 11:28.
완전한 실패자가 된 후에,
베드로는
믿음으로
그리고 겸손하게
형제들을 섬기는 것을
배웠다
— 눅 22:32-33, 요 18:15-18, 25-27,
마 26:69-75, 벧전 5:5-6.
일곱 배로 강화되신
생명 주시는 영은
오직 부활 안에 있는 것들만을
존중하신다.
우리가
부활 안에 있지 않은
어떤 일을 한다면,
생명 주시는 영은
그것을 결코
존중하지 않으실 것이다
— 고전 15:58, 3:12.
Hits: 12
7 replies on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를 위해 부활 안에서 삶”
신언노트, 2018 12 30
그리스도의 몸의
그 실재를 위하여
부활 안에 생활함
Living in Resurrection
for the Reality
of the Body of Christ
주님의 회복은
그 새 예루살렘을
살아 내고
.실행하고
일해 냄으로써
.이루어 냄으로써.연습함으로.이끌어 냄으로.해결함으로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인
시온을
건축하는 것입니다
The Lord’s recovery
is to build up
Zion
as the reality
of the Body of Christ
by living out
and working out
the New Jerusalem.
싹 난 지팡이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의
생명과 생활과 부활 생명이
되셔야 한다는 것과,
이 생명이
싹트고 꽃 피며 열매를 맺어
성숙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열두 개의 지팡이 모두가
잎과 뿌리가 없고
말라 죽어 있었습니다.
그중에
싹이 난 것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부활이
하나님의 선택의
근거이며,
봉사의 근거가
우리의 타고난 생명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봅니다.
따라서 싹 난 지팡이는
우리가
부활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체험하며,
이 체험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쁘게 받으시고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역에
권위가 있게 된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열한 개의 지팡이 모두를
인도자들에게 돌려주셨지만,
아론의 지팡이는
영원한 기념으로
궤 안에 두셨습니다.
이것은
부활이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의 봉사에서
영원한 원칙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
부활은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나오고
우리에게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활은
하나님만 홀로
하실 수 있고
우리는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천연적인 영역에 속하고,
우리가
하기에 불가능한 일은
부활의 영역에 속합니다.
자신이
완전히 쓸모가 없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려면,
먼저 자신이 반드시
끝나야 합니다
(… 죽어야 합니다).
부활은
우리가
이룰 수 없고
(cannot make it;
성공할 수 없고)
하나님께서
각각의 모든 것들을 하신
한 분이심을
의미합니다.
————————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 안에 있기 위해,
우리는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 안에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요소로 이루어지고,
전적으로
부활 안에 있으며,
전적으로
하늘들의 영역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타고난 생명에 의해
살지 않고
우리 안에 있는
신성한 생명에 의해
살 때,
우리는
부활 안에 있게 됩니다.
이것의 결과가 바로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
우리는 모두
주님의 제자로서
그분께 훈련을 받아,
우리의 타고난 생명을
부인함으로써
신성한 생명을 사는,
신성하고 비밀한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심지어 성경적으로 수행될지라도
타고난 생명 안에서 수행된 것은
무엇이든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가 아닙니다.
부활 안에 살기 위해,
우리는
부활의 하나님을
알고
체험하며
얻어야 합니다.
————————
하나님은
우리를
종결하시기 위하여,
곧 끝내시기 위하여
그 십자가를 통하여
일하고 계십니다.
그 결과
우리는 더 이상
우리 자신들을
신뢰하지 않고
부활의 하나님을
신뢰할 것입니다.
————————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해
많은 일들을
행하실 수 있을지라도,
살아 계신 하나님의
그 생명과 본성은
사람 안으로
일해 넣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는
그분의 생명과 본성이
사람 안으로
일해 넣어집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능력을 알리려고
외적인 행동으로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 자신을
사람 안에
나누어 주시려고
또 일해 넣으시려고.서서히 섞으시려
일하고 계십니다.
————————
하나님은
그분의 생명과 본성을
우리 안에
일해 넣으시기 위해
환경을 사용하십니다.
부활 안에
살고
부활의 하나님으로
구성되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모든 것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맏아들이신
그리스도의 형상과
같은 형상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 우주에
고통을 겪음이(suffering; 고난이) 있는
주요한 목적은,
특별히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들과
관련될 때,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바로 그 본성이
사람의 그 본성 안으로
일해 넣어져서.서서히 섞여서,
그 결과
사람이
하나님을
가장 충만한 정도까지
(to the fullest extent)
얻을 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러 환난을
통과할 때,
날마다
우리 안에
한 끊임없는 다시 새롭게 함이
(a continual renewing;
한 계속적인 부흥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 새 예루살렘으로 만드시는
그분의 마음의 갈망을
성취하실 수 있습니다.
————————
부활 안에
살기 위해,
우리는
부활 생명의
신선한 공급으로
양육을 받음으로써
매일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부활의 하나님을
우리 안에
더해지시게 하는 것입니다.
부활 안에 있는
그 신성한 생명의
그 다시 새롭게 하는.부흥하게 하는 역량을.능력을.수용력을.capacity
받아들이기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접촉하고,
그분께
자신을 완전히 열어 드리며,
또 그분께서
우리 안으로 오셔서
날마다
우리 안으로의
한 새로운 더함이
(a new addition;
한 새로운 추가가[증가가])
되시도록
허락해 드려야 합니다.
————————
우리는
그 십자가와
그 성령과
우리의 섞인(mingled; 연합된) 영과
또 하나님의 그 말씀에 의하여
새롭게 됩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마다
부흥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이들을
용서하고
다른 이들에게
용서를 구함으로써
새로움의 원칙 안에서
주님의 상에
나와야 합니다.
그 십자가의 죽임은
그 부활 생명의 나타남의
결과를 야기합니다.
이 매일의 죽임은
부활 안에서
신성한 생명을
해방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의
타고난 힘과 능력은
십자가에 의해
처리를 받아,
주님을 섬기기 위해
부활 안에서
유용하게 될
필요가 있습니다.
————————
사십 년 동안
하나님에 의해
제쳐 놓아진(being put aside; 치워진, 무시된) 후에,
모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완전한 실패자가 된 후에,
베드로는
믿음으로
그리고 겸허하게
형제들을 섬기는 것을
배웠습니다.
일곱 배로 강화되신
생명 주시는 영은
오직 부활 안에 있는 것들만을
존중하십니다.
우리가
부활 안에 있지 않은
어떤 일을 한다면,
생명 주시는 그 영께서 결코
그것을
존중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6일
빌 3:3
하나님의 영으로
봉사하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자랑하며,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우리가
참된 할례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행 7:35
그들은
… 이 모세를
거절했으나,
하나님은
가시나무 떨기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났던
천사의 손을 통하여
그를
지도자와 구속자로
보내셨습니다.
우리는
봉사를 할 때
모든 일을
육체 되심의 원칙 안에서
해야 한다.
육체 되심의 원칙은
신성이
인성 안으로
일해 넣어지는 것이다.
주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
그분은
신성한 요소가 충만한
그분의 인성 안에서
모든 일을 행하셨다.
그분은
어떤 것도
타고난 힘이나 능력으로
행하지 않으셨다.
… 아버지는
그분 안에 계셨으며,
그분은
모든 행위와 말과 일에서
아버지와 하나이셨다
(요 14:10, 10:30).
무엇을 하시든지,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무슨 일을 하시든지
그분은
전적으로
신성한 요소이신
아버지와 함께하셨다.
우리는
주님을 섬기기 위해
사용하는
자신의 힘과 능력이
타고난 것인지,
아니면 신성한 것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타고난 힘과 능력은
십자가로
처리되어야 한다.
… 어떤 의미에서
타고난 힘과 능력은
자아
곧 우리의 타고난 조성과
같은 것이다.
… 이것이
자아를 부인한 후에,
타고난 힘과 능력을
거절하는 것과
십자가로
그것들을 처리하는 공과가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이다.
타고난 힘과 능력은
십자가로 처리받으면
유용하게 된다.
십자가로 처리받은 후에
그것들은
부활 안에 있게 된다.
… 십자가는 항상
십자가의 처리를 받는
사람 안으로
신성한 요소를
일해 넣어
하나님을
그 사람 안으로
이끌어 온다.
… 처리를 받은 후에
우리의 힘과 능력은
주님을 섬기는 데에
부활 안에서
유용하게 된다.
사도행전 7장 22절은
모세가
이집트 사람들의
모든 지혜를 배워
말과 일에서
능력이 있었다고
말한다.
… 모세는
자신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무언가를 행했다
(23-26절).
그는
자신이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다는
확신으로 가득했지만,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신의 뜻을
수행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그리고 주권적으로
사십 년 동안
모세를
제쳐 두셨다
(출 2:14-15, 행 7:27-30).
… 그 사십 년 동안
모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그분을 섬기며
그분을 신뢰하기를
배웠다
(행 7:34-36, 히 11:28).
모세는 결국
자신의 뜻에 따라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항상
주님의 인도를 따라
행동했다.
… 그는
자신의 능력을
신뢰하지 않았다.
그는
매우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자신의 타고난 능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의 타고난 능력은
처리받았으며,
그 결과
부활 안에 있는
능력이 되었다.
… 만일 우리의 능력이
처리받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움직임과
분리될 것이다.
그러나 십자가로
처리받은 후에
그것은
하나님의 움직임과
하나가 된다.
실지로
하나님께서
모세의 능력 안으로
일해 넣어지셨다.
그의 능력은 결국
하나님으로
충만하게 되었다.
베드로는 심지어
감옥에 가고
죽기까지 할지라도
주님을 따르겠다고
생각할 만큼
자신의
타고난 힘과 능력에 대해
자신하고 있었다
(눅 22:33).
… 베드로는
시험을 받아
주님을
세 번 부인했는데,
심지어 작은 하녀 앞에서도
주님을 부인했다
(요 18:15-18, 25-27).
베드로는
극도로 패배하여
완전한 실패자가 되었다
(마 26:69-75).
… 주님에 대한
그의 사랑은
귀했지만,
그의 타고난 힘은
부인되고
처리되어야 했다.
주님은
베드로의
타고난 힘과 자기 확신이
처리될 수 있도록,
그가
주님의 면전에서
그분을
세 번 부인하여
완전히 실패하는 것을
허락하셨다.
베드로는
이 실패를 통해
주님에 대한
믿음으로
그리고 겸손하게
형제들을 섬기는 것을
배웠다
(눅 22:32, 벧전 5:5-6).
베드로는
참으로 부서졌으며
타고난 능력에서
부활 안에 있는
어떤 것으로
돌이키게 되었다.
타고난 힘과 능력은
십자가로
처리되어야 하며
십자가 위에
놓여야 한다.
그럴 때
우리의 힘과 능력은
부활 안에
있게 될 것이고
신성한 요소로
충만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교회 봉사에서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른 사람들에게
신성한 요소를
공급하는 것이
될 것이다.
5일
고후 4:10-12
예수님을
죽게 한 것을
우리가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은
예수님의 생명도
우리 몸에서
나타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살아 있는 우리가 항상
예수님을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으로써,
예수님의 생명도
우리의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은
우리 안에서 활동하고,
생명은
여러분 안에서 활동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존재 안으로
하나님께서
더해지시는 것으로 인해,
곧 우리의 존재 안으로
신성한 요소가
더 많이 더해지는 것으로 인해
새로워진다.
나는
육십 년이 넘게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해 왔기 때문에
참된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무엇인지에 대해
간증할 수 있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하나님을
우리 안에
더해지게 하는
생활이다.
하나님의 의도는
우리가 매일
새로워지는 것이다.
새로워지기 위해서
우리는
매일
하나님께서
우리 안으로
새롭게 더해지시게
해야 한다.
날마다 우리는
하나님을 접촉하고,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완전히 열며,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매일
우리 안에
새롭게 더해지시도록
허락해 드려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 안으로
더해지실 때
그분은
아무것도 하시지 않은 채
그냥 거기에
가만히 계시는 것이 아니다.
…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운행하고 계신다
(빌 2:13).
…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운행하시면서
우리에게
활기를 주시며,
… 이 신성한 요소 안에는
새롭게 하는
역량이 있다.
… 우리는 매일
부활 안에 있는
신성한 생명의
새롭게 하는 역량을
누리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죽는 것을
배워야 한다.
… 매일 아침
우리는
주님을
접촉해야 한다.
먼저, 우리는
우리의 죄들을
자백해야 한다.
그다음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거절해야 한다.
자신을 거절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과하며,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를 죽인다.
고린도후서 4장에서
바울은
‘예수님을 죽게 한 것’
(10절)에 대해
말한다.
이것은
긍정적인 의미에서
예수님께서 항상
우리를
죽이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많은 약에는
치료하는 요소와
우리 안에 있는
나쁜 세균들과 박테리아를
죽이는 요소가 있다.
예수님 안에는
죽이는 요소가 있다.
그분은
우리를 치료하시고
우리를 소생시키시고
우리 안에 있는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죽이시는
우리의 약이시다.
하나님은
우리가
새로워지는 것을
돕기 위해서
가장 좋은 것들을
예비해 두셨다.
첫 번째로 예비하신 것은
십자가,
곧 예수님을 죽게 한 것이다.
고린도후서 4장에 따르면,
바울은 항상
십자가의 죽음,
곧 주님의 죽음 아래
있었다.
십자가는
우리를 새롭게 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된다.
두 번째로 예비하신 것은
성령이다.
디도서 3장 5절은
‘성령의 새롭게 함’에 대해
말한다.
우리 안에는
성령께서 계신다.
그분께서 하시는
주된 일은
먼저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그런 다음에
우리를
매일
새롭게 하시는 것이다.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세 번째로 예비해 주신 것은
우리의 연합된 영,
곧 신성한 영과 연합된
우리 사람의 영이다.
성령은
우리 사람의 영 안에
거하시고,
사람의 영 안에서
일하시며,
사람의 영 안에서
우리를 새롭게 하신다.
… 우리의 영은
우리가 새로워지는 곳이다
(엡 4:23).
우리의 연합된 영은
우리의 생각에 퍼짐으로써
우리 생각의 영이 된다.
바로 이러한 영 안에서
우리는
새로워짐으로
변화를 받는다.
십자가와 성령과 우리의 영에 더하여
우리는
거룩한 말씀을 가지고 있다.
몸의 머리이신 분은
말씀 안에 있는
물로 씻으심으로써
그분의 몸인
교회를 깨끗하게 하신다
(엡 5:26).
나는
오랫동안
성경을 연구했기 때문에,
마태복음 1장과
로마서 8장의
내용을 기억해 낼 수 있다.
내가
이러한 장들의
내용에 대해
생각하기만 해도
나는 씻어진다.
나는
영을 따라 행하라고
말하는
로마서 8장 4절에 대해
생각할 때
씻어진다.
우리 모두는
매일
말씀 안에 있는
물로 씻어질
필요가 있다.
우리는
주님의 상을
대할 때마다
새로워지는 것이
필요하다.
… 주님께서
세우신 상은
새로운 것이었고,
주님께서
그분의 아버지의 왕국에서
참여하실 상도
새로운 것일 것이다
(마 26:29).
우리는
새로운 방식으로,
곧 새로움의 원칙 안에서
주님의 상에
나와야 한다.
우리가 어떻게
새로움 안에서
주님의 상에
나올 수 있는가?
우리는
부정적인 것은
어떤 것이라도
낡음의 원인과 요소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부정적인 것들은
우리를 낡게 한다.
우리는
부정적인 모든 것을
철저히 자백하고
처리해야 한다.
우리를 낡게 하는
또 한 가지 것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는 것이다.
항상 사람들을 용서하고
(마 18:21-22, 35, 엡 4:32, 5:2),
항상 용서를 구하라
(마 5:23-24).
4일
고후 1:8-9
… 우리가
힘에 겹도록
극심한 압박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져,
결국은 죽게 될 것이라고
스스로 단정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자신을
신뢰하지 않고
죽은 사람들을 살리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고후 4:16
… 우리의 겉사람은
썩어 가고 있지만,
우리의 속사람은
나날이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해
많은 일을
행하실 수 있을지라도,
… 살아 계신 하나님의 본성은
사람의 본성과
섞일 수 없다.
그러나 부활의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에는,
바로 그분의 본성이
사람의 본성 안으로
일해 넣어진다.
…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많은 일을 행하신다 해도,
그 일이 이루어진 후에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이시고
여러분은 여전히
여러분이다.
그분께서
여러분을 위해
일하셔도
그분의 본성은
여러분 안으로
전혀 주입되지 않는다.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해
일하실 수 있지만,
살아 계신 하나님의
그 본성은
사람의 본성과
연합될 수 없다.
그러나 부활의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에는
그 일을 통해
그분 자신을
사람에게
전달해 주신다.
바울은
힘에 겹도록
심한 환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졌었다
(고후 1:8).
그러나 그러한 상황에서
그는
죽은 사람들을 살리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배웠다
(9절).
부활의 하나님께서
바울을 위해 일하셔서
그를
죽음에서 일으키셨을 때,
그 신성한 행동은
바울을 위해
어떤 것을
성취해 주었을 뿐 아니라
바울에게
하나님 자신의 본성을
전달해 주었다.
부활 생명은
고통을 이길 수 있고
심지어 죽음을 삼킬 수 있는
생명이다.
질병에 걸린
어떤 형제는
자신의 몸이
크게 쇠약해진 것을 느끼면서
큰 시험을 받았다.
그렇지만 그에게는
하나님께서
외적인 행동으로
그분의 능력을 알리려고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 자신을
분배하시려고
일하고 계신다는
깊은 인식이 있었다.
그러한 빛이
그에게
점점 더 밝아졌을 때
그의 건강도
점진적으로
회복되었다.
이 형제는
단순히 치료만을
체험한 것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체험 안으로
들어갔다.
고난의 참된 의미는
… 옛 창조물이
고난으로 인해
겪게 되는
극심한 파쇄를 통해
부활의 하나님께서
그분의 피조물에게
그분 자신을
나누어 주실 수 있는
기회를 얻으시고,
결국 그 파쇄된 옛 창조물이
죽음의 과정을 통과하고
나올 때에는
하나님의 신성한 요소를
자신의 조성으로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 우주에
고난이 있는
주된 목적은,
특별히 하나님의 자녀들과 관련해서,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본성이
사람의 본성 안으로
일해 넣어지게
하려는 것이다.
… 겉사람이
썩어 가는 과정을 통하여
새로운 조성 성분이
우리의 생명에
더해지는
내적 과정이
발생한다.
우리는 계속
새로워지고 있는가,
아니면 날마다 해마다
같은 상태로 남아 있는가?
만일 우리가
많은 고난을 겪고도
여전히 같은 상태로
남아 있다면
그것은 비극일 것이다.
우리 안에서
우리를 새롭게 하는
일을 완성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우리의
생명과 본성이
되신다.
이것에 더해
주권적인 주님이신
하나님은
우리를
새롭게 하시기 위해서
전 우주를
다스리신다.
하나님은
그분의 생명과 본성을
우리 안에
일해 넣으시기 위해
환경을 사용하신다.
환경이 없다면
우리는 결코
새로워질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새 창조물이 되기를
갈망하신다.
하나님의 자녀들 모두가
새로워지는 과정을 거쳐서
새 예루살렘이 될 때,
그들은 완전히
새로워진 상태 안에
있게 될 것이다.
이 거룩한 성은
하나님의 옛 창조물의
옛 요소가
전혀 없기 때문에
‘새’ 예루살렘이라고
불린다.
우리가
고난을 통과하고 있을 때
우리 안에서
새로워지는 일이
매일 계속해서
일어나야 한다.
이럴 때 하나님께서
그분의 마음의 갈망을
성취하실 수
있을 것이다.
우리 하나님-사람들은
우리 자신의 생명,
우리의 타고난 생명이 아닌
부활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신성한 생명에 의해
인간 생활을 함으로써
하나님을 표현한다
(골 3:4).
… 부활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신성한 생명에 의해
그리스도를 사는 것은
그리스도로 하여금
우리 안에서
자라시게 하는 것이며,
그 결과
많은 형제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맏아들이신
그리스도의 형상이
우리 안에
이루어지며
우리는
그분과 같은 형상을
이루게 된다
(갈 4:19, 롬 8:29하).
3일
엡 2:6
또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그분과 함께
일으키시고,
하늘들의 영역 안에
그분과 함께
앉히셨습니다.
빌 3:10-11
나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부활 능력과
그분의 고난의 교통을
알고,
그분의 죽음과
같은 형상을 이루어,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뛰어난 부활에
이르고자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의해
창조된
새 창조물이다.
우리는
이 이상을
보아야 한다.
… 우리는 또한
교회가
어디에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
오늘날 교회는
승천 안에 계신
그리스도 안에 있다.
에베소서 2장 6절은
교회가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
지금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들의 영역에
앉아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 준다.
그러므로 교회는
순수하게,
또한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요소로
이루어지고,
전적으로
부활 안에 있으며,
전적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들의 영역 안에 있다.
… 교회에는
그리스도 이외의
다른 요소가 없다.
이러한 이상은
여러분을
극도로 통제할 것이며,
그리스도와 같지 않은 것
(그리스도께 속하지 않은것),
부활과 같지 않은 것
(부활에 속하지 않은 것),
하늘과 같지 않은 것
(하늘에 속하지 않은 것)을
모두
제할 것이다.
…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
부활 안에,
하늘들의 영역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의 승천 안에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예표인
등잔대는
자라고
가지를 내고
봉오리를 맺고
꽃을 피워서
빛을 내시는,
부활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묘사한다.
… 등잔대는
그리스도를 예표하므로
그리스도께서
자라고 계시는 분이심을
암시한다.
등잔대는 단지
하나의 가지와
하나의 등잔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 반대로,
중앙의 줄기가 자라면서
세 쌍의 가지들을 산출한다.
더욱이 모든 가지들은
자라고 있으며
마디들과 봉오리들과 꽃송이들을
가지고 있다.
등잔대의 줄기는
자라기 시작할 때
첫 쌍의 가지들을
산출한다.
그러고 나서
계속하여 자라면서
둘째 쌍의 가지들을
산출하고
마지막으로
셋째 쌍의 가지들을
산출한다.
결국 줄기 자체가
완전한 분량에까지
자란다.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께서
자라고 계심을
가리킨다.
그리스도는 먼저
그분 안에서 자라시며,
그러고 나서
가지들인 우리 안에서
자라신다.
외관상
자라고 있는 것은
가지들이다.
사실 가지들을 통하여
가지들 안에서
자라고 있는 것은
대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자라시는 것을
가리킨다.
… 가운데 줄기이신
그리스도는
그분 자신 안에서,
그분 자신에 의해서,
그분 자신과 더불어
자라신다.
그러나 여섯 개의 가지들 안에서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서,
우리에 의해서,
우리와 더불어
자라신다.
요한복음 11장 25절에서
… 주님은
부활이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그분의 인격의 문제라는 것을
계시하셨다.
왜냐하면 그분이
부활이시기 때문이다.
… 아담을 창조하셨던 분이
사람이 되어 오셨고,
부활 안에서
사람의 생활을 사셨다.
그분은
자신의 타고난 인성을
부인하셨다.
그분은 결코
자신에게서 나온 것은
어떤 것도 하지 않으셨다
(요 5:19, 30).
그분은
자신 안에서
모든 것을 하셨지만,
자신에게 속한 것은
조금도 하지 않으셨다.
우리 또한
그 어떤 것도
우리의 타고난 생명 안에서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 안에서
해야 한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그분의 육체 안에서
사시고 행하셨지만,
이 육체를
부인하셨다.
그분은
자신의 타고난 생명을
부인하셨다.
… 주님은
천연적인 방식으로
사람들을 매혹하시고
소중히 보살피신 것이 아니라,
그분의 부활 생명에 의해
인성 안에서
그렇게 하셨다.
그분은
신성하고 비밀한 영역 안에서
사신
신성하고 비밀한 사람이셨으며,
모든 것을
신성하고 비밀한 방식으로
하셨다.
우리는
그러한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다면,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에게
비범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이 비범한 것은
신성하고 비밀한 것이다.
우리는 모두
주님의 제자로서
그분께 훈련을 받아,
신성하고 비밀한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타고난 사람에서
하나님-사람이 되는 것을
훈련받고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첫 번째
하나님-사람이신
그리스도의 모형을 따라
우리의 타고난 생명을
부인함으로써
신성한 생명을 사는 것을
훈련받고 있다
(마 28:19).
… 교회생활은
타고난 사람인데서
하나님-사람이 되도록
우리를 훈련시키는 생활이다.
심지어 성경적으로 수행될지라도
타고난 생명 안에서 수행된 것은 무엇이든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가 아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 안에 있는 것이다.
2일
민 17:5-6
내가 선택하는
바로 그 사람의 지팡이에
싹이 날 것이니, …”
… 인도자들이
자기들의 조상의 집안에 따라
지팡이를
각자 하나씩
곧 열두 개의 지팡이를
그에게 주었다. …
민 17:8
다음 날 모세가
증거막 안에
들어가 보니,
레위 집안을 위한
아론의 지팡이에
싹이 나 있었다.
심지어 그 지팡이에
싹이 나고
꽃이 피어
익은 아몬드가
달려 있었다.
지팡이는
죽은 나무토막이다.
그것은
잘라졌을 뿐만 아니라
말랐다.
그러나 그렇게 죽고 마른
나무토막에
싹이 났다!
싹은
유기적인 것이며
생명에 속한 것이다.
아론의 싹 난 지팡이는
죽으신 그리스도가 아니라
부활하신 그리스도,
곧 싹이 나신 그리스도의
예표인데,
그분은
싹을 내실 뿐만 아니라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으심으로
성숙에 이르신다.
그리스도는
이러한 분으로서
다른 이들에게
생명을 분배하신다
(요 12:24, 벧전 1:3).
오늘날에도
그분은 여전히
싹을 내고 계시는데,
그 열매인 아몬드가
바로 우리이다
(민 17:8).
하나님은
열두 명의 인도자들에게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 따라
열두 지팡이를
가지고 와서,
회막 안의
증거판 앞에 두라고
명하셨다.
… 지팡이는
나무토막이다.
그것은
나뭇잎이 떨어지고
뿌리가 없는
나뭇가지이다.
그 나무토막은 원래
살아 있는 것이었으나
지금은
죽은 것이다.
원래는
나무로부터
진액을 공급받았지만,
… 열두 개의 지팡이 모두가
잎과 뿌리가 없고
말라 죽어 있었다.
그중 어느 것이든
싹이 난 것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부활이
하나님의 선택의
근거임을 본다.
또한 부활은
권위의
근거이기도 하다.
부활은
우리의 타고난 생명과
우리 자신에게서
나오지 않고,
우리의 능력에
근거하지 않은
모든 것이다.
부활은
내가
스스로 할 수 없고
나의 영역을 벗어난
모든 것이다.
… 어떤 사람이
자신의 무능함을
한 번도 깨달은 적이 없다면,
그는 결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없다.
… 부활은
우리 자신 안에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음을
의미한다.
성경은 계속해서
사람이
스스로 할 수 없음을
증언하지만
많은 사람은 여전히
자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부활은
우리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하시는 분이심을
의미한다.
모든 봉사의 원칙은
싹 난 지팡이에
달려 있다.
하나님은
열한 개의 지팡이 모두를
인도자들에게 돌려주셨지만,
아론의 지팡이는
영원한 기념으로
궤 안에 두셨다.
이것은
부활이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의 봉사에서
영원한 원칙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죽었다가 부활한 사람이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그분의 백성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권위가
부활에
근거한 것이지
섬기는 이 자신에
근거한 것이 아님을
증언하신다.
주님을 섬기는
모든 봉사는
반드시 죽음과 부활을
통과해야만
하나님께
기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부활은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나오고
우리에게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활은
하나님만 홀로
하실 수 있고
우리는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활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하셨고,
우리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릇 자신을 괜찮다고
잘못 평가하는 사람은
부활이 무엇인지
영원히 알 수 없다.
어느 누구도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추호도 해서는 안 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신은
유능하고,
무언가를 할 수 있으며,
유용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사람은
부활을 모르는 사람이다.
… 부활을 아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 대하여
절망하며
자신은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
타고난 힘이
남아 있을 때
부활의 능력은
나타날 길이 없다.
사라가
아이를 낳을 수 있을 때
이삭은
태어날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천연적인 영역에 속하고,
우리가 하기에 불가능한 일은
부활의 영역에 속한다.
오늘날
하나님의 능력은
창조가 아닌
부활 안에서
나타난다.
하나님의
가장 큰 능력은
창조가 아닌
부활을 통해
나타난다.
하나님의 능력이
창조를 통해
나타날 때는
죽음이
선행될 필요가 없지만,
하나님의 능력이
부활을 통해
나타날 때는
죽음이
선행되어야 한다.
무릇 창조된 것은
그 앞에
선행하는 것이 없으나,
부활한 모든 것은
그 앞에
선행하는 것이 있다.
… 자신이
완전히 쓸모가 없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으려면,
먼저 자신을
반드시 끝내야 한다.
1일
행 13:33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심으로
… 우리에게
이 약속을
온전히 이루어 주셨습니다.
이것은
시편 제이 편에
기록된 것과도 같습니다.
‘너는
내 아들이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벧전 1: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찬양을 드립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크신 긍휼에 따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일으켜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어
살아 있는 소망을
갖도록 하셨으며,
사도행전 13장 33절에서
‘오늘’은
… 부활의 날이었다.
그리스도는
부활 안에서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의 맏아들로
태어나셨다.
… 그리스도는 심지어
육체 되심 이전에도
하나님의 독생자이셨다
(요 1:18).
그분의 육체 되심은
하나님의 독생자께서
오신 것이었다
(3:16).
이 하나님의 아들께서
육체 되심으로
사람이 되셨다.
그러나 사도행전 13장 33절은
하나님께서
부활 안에서
그리스도를
많은 형제들 가운데
하나님의 맏아들(롬 8:29)로
낳으셨음을
계시한다.
또한 성경은
하나님께 선택받은 사람들인
우리가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거듭났음을
말해 준다
(벧전 1:3).
… 부활 안에서
하나님은
한 아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낳으셨고,
또한 부활 안에서
그분은
많은 아들들을
거듭나게 하셨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하나의 큰 출산이었음을
보여 준다.
… 이 유일한 부활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셨고
우리가 거듭났으므로,
우리는
동일한 출산 안에 있는
그분의 ‘쌍둥이들’이다.
천연적인 생각에 따르면,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
시간 안에서
특정한 날에
거듭났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을 때
거듭났다고
말한다.
이 동일한 부활 안에서
그리스도는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다.
… 고린도전서
15장 45절 하반절은
부활 안에서
마지막 아담이신
사람 예수님께서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것은
하나님의 행동이었다.
이 한 가지 신성한 행동 안에서
하나님은
세 가지 큰일을
성취하셨다.
하나님은
그분의 독생자가 아닌
그분의 맏아들을
낳으셨다.
또한 하나님은
이 한 차례의 출산으로
많은 아들들을
낳으셨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이제 막 태어나신
이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 주시는 영이
되게 하셨다.
하나님의 경륜 전체가
이 세 가지 항목에 의해
성취된다.
만일 여러분이
사도행전 13장 33절과
베드로전서 1장 3절과
고린도전서 15장 45절 하반절을
성경에서 삭제한다면,
하나님의 맏아들과
하나님의 많은 아들들과
생명 주시는 영이
신성한 계시에서
제해질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이런 항목들이
성경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기독교의
대부분의 근본주의적인 가르침에는
이것들이
결여되어 있다.
주님의 부활에 대한
이런 주된 항목들이 없다면,
교회가 없을 것이고,
그리스도의 몸이 없을 것이다.
만일 성경에
하나님의 맏아들과
하나님의 많은 아들들과
생명 주시는 영에 대한
계시가 없다면,
하나님의 경륜은
없을 것이다.
이런 항목들은
본래 성경에 있는 것이지만,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생소하다.
부활은
신성한 경륜의
생명 맥박이고
생명선이다.
만일 부활이 없다면,
하나님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하나님이 아니시라
죽은 사람들의 하나님이실 것이다
(마 22:32).
만일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지 못하셨을 것이다.
또한 그분은
영원토록 살아 계시며
(계 1:18)
우리를 철저히 구원하실 수 있는
(히 7:25)
살아계신 분이 아니라
죽은 구주이실 것이다.
부활이 없다면,
그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롭게 되었다는
살아 있는 증거도 없고
(롬 4:25),
생명의 분배(요 12:24)와
거듭남(3:5)과
새롭게 됨(딛 3:5)과
변화(롬 12:2, 고후 3:18)와
그리스도와 같은 형상을 이루는 것(롬 8:29)이
모두 없을 것이다.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의 지체들(롬 12:5)도
그리스도의 충만인 그분의 몸(엡 1:20-23)도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요 3:29)도
없을 것이며,
따라서 새사람(엡 2:15, 4:24, 골 3:10-11)도
없을 것이다.
부활이 없다면,
하나님의 신약 경륜은
완전히 무너지고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도
헛되게 될 것이다
(고전 1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