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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부흥을 위한 거룩한 말씀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를 위해 그리스도를 삶

Living Christ 
for the Reality 
of the Body of Christ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실재를 위하여
그리스도를 삶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순수한 산출물이다. 
오직 그리스도에게서 나와 
그분의 부활 생명을 가진 것만이
그리스도의 짝과 배필인 
그리스도의 몸이 
될 수 있다 
― 창 2:22-23, 엡 5:28-30.

몸의 머리는 
그리스도이고, 
머리의 몸도 
그리스도이다. 
그러므로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그리스도의 몸은 
‘그 그리스도’, 
곧 단체적인 그리스도이다 
― 골 1:18, 고전 12:12, 골 3:10-11.

그리스도 이외의 것은 
그 무엇도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며, 
그리스도 이외의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이질적인 요소이다. 
따라서 바울이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도 
몸의 건축을 위해 
필사적으로 
그리스도를 살아야 한다 
― 빌 1:19-21상, 3:8-14.

그리스도의 
순수한 요소 이외의 
다른 모든 것은 
이 이상에 의해 
배제된다. 
이 이상은 
우리의 타고난 사람에 속한 
그 무엇도 
사용하지 못하도록 
우리를 ‘마비시킨다’ 
― 빌 3:3.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를 위해
그리스도를 사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님께
갇힌 사람’,
‘주님 안에
갇힌 사람’,
‘쇠사슬에
묶인 대사’로서
우리의 영 안에
갇히는 것이다
― 엡 3:1, 4:1, 6:20,
고후 5:20, 5:4, 9, 14, 16.

그리스도 안에 갇힐 때
우리는
그분에 대한
계시를 받아
무한한 차원을 지니신 그분을,
교회를 사랑하시는 그리스도,
새사람을 창조하신 그리스도,
만물을 머리이신 자신 아래
통일하시는 그리스도,
은사를 만드시고
은사를 주시는 그리스도,
거처를 정하시는 그리스도로
체험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게 된다
― 엡 3:18, 5:25-27, 2:15-16,
1:20-23, 4:7-8, 11-12, 3:17상.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그리스도를 사는 사람은
더 이상 자신의 자유가 없고,
더 이상 자신의 편리에 따라
어떤 일들을 할 수도 없다.
그는
자신의 선택에 따라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시고 지시하시는
손 아래에서,
또 하나님의 그 손에 따라
어디에 가고
무엇을 할지를
결정한다
― 겔 1:1-3, 요 7:6, 8.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를 위해
그리스도를 사는 것은
그리스도의
승리의 행렬 안에 있는
그분의 포로가 되어,
우리의 영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모든 것을 하며,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를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을 공급하는
사역의 일 안에서
그분의 승리를
경축하는 것이다
― 고후 2:13-17.

그리스도의 몸은
그리스도를 체험한
결과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을
실재가 되게 하기 위해
그리스도를 살도록
필사적으로
기도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를 위해
그리스도를 사는
비결은
생명의 영의 법을
정의하고 묘사하고
설명하고 제시해 주는
로마서 8장에 있다
― 롬 8:2.

로마서 8장은
‘생명의 영의 법’이라는
이 용어를 사용하여,
삼일 하나님께서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심으로
생명 주시는 영이 되신 이후에
어떻게 우리의 영 안에
하나의 법,
곧 우리 안에
자연스럽고 자동적인
원리와 능력으로
설치되셨는지를
묘사해 준다.
이것은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가장 위대한 발견,
심지어 가장 위대한 회복 중의
하나이다
― 롬 8:2-3, 11, 34, 16.

우리는
설치되시고 자동적이신 하나님,
곧 삼일 하나님의 ‘전류’이신
내주하시는 영의
자연스럽고 자동적인 능력의
‘스위치를 켬으로써’,
설치되고 작용하는
생명의 영의 법에
협력해야 한다.
이 법의
‘스위치를 켜는 것’은
영을 따라 행함으로써
주님을 계속 접촉하고,
그분 안에 지속적으로 머물며,
습관처럼 그분과 교통하고,
그분의 주입을
지속적으로 받는 것이다
― 엡 6:18.

생명의 영의 법과
우리의 영의 연합인
연합된 영 안에서
행동하고 활동하고
움직이고 사는 것이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행동하고 활동하고
움직이고 사는 것이다
― 빌 2:13.

우리는
우리의 영 안에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생명의 영의 법으로서 운행하심으로
그분 자신을
우리의 모든 속 부분 안으로
나누어 주시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말씀하심을 가지며
하나님과 만나고
하나님의 분배를 받게 된다
― 히 8:10.

영을 따라 행하는 것은
영 안에서
항상 기도하는 것이다
― 엡 6:18.

우리는
“주님,
저를 통해 사소서.”
라는 기도를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살아 있는 방식으로,
호흡처럼
해야 한다
― 살전 5:17, 엡 6:18, 찬송가 304장.

에베소서의 계시에 따라,
우리는
몸의 생활의 실재를
가지기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신체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경계하며
완전히 깨어 있어서,
잠들려고 하는
우리의 본성과 존재를 거슬러
싸워야 한다
― 엡 5:14, 6:17하-18, 골 4:2.

기도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영을 훈련하여
우리의 몸과 정신을 압도하여,
깨어 기도하라는
주님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고,
항상 영 안에서 기도하며
늘 깨어 있어야 하고
방심하지 말아야 한다
― 마 26:41, 엡 6:18.

우리는
기도하는 습관,
즉 주님을 부르고
주님과 대화함으로
공기 같은 영이신
그리스도를
쉬지 않고 들이마시는
습관을 세움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를 위해
그리스도를 사는
습관을 세워야 한다
― 애 3:55-56, 시 102편 제목, 찬송가 210장.

우리는
그 영으로 충만하게 되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우리 안에
풍성히 거하게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를 위해
생명의 영의 법에 따라
그리스도를 살 수 있다
― 엡 5:18-20, 골 3:16-17.

우리는
비어 있고 열린
그릇이 됨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를 위해
생명의 영의 법에 따라
그리스도를 살 수 있다
― 마 5:3, 눅 1:53, 왕하 4:1-6.

바울의 열네 서신서는
‘열린 그릇’이라는 두 단어로
요약될 수 있다
― 롬 9:21, 23, 고후 4:7.

우리는
주님을 극도로 사랑함으로,
계속해서 우리 자신을
주님께
완전히, 철저히, 절대적으로
열어 드려야 하며,
주님께서
그분의 몸을 위해
우리에게
모든 것이 되시고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해,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하시도록
허락해 드려야 한다
― 고전 1:9, 2:9, 16:22.

생명의 영의 법이
우리 안에서
신성한 역량으로
작용함으로써,
우리는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살고,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이 된다
― 겔 36:27, 롬 8:2, 29,
엡 1:22-23, 3:19-21.

생명의 영의 법이
우리 안에서
신성한 역량으로
작용함으로써,
우리는 자연스럽게
온갖 종류의 기능을 가진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로 조성되며,
그 결과 온몸이
몸을 자라게 하여
사랑 안에서
스스로 건축된다
― 엡 4:11-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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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렘 31:33
그러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 부분들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겔 36: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새 언약의 법은
그 생명에 따르면
삼일 하나님이고,
그 기능에 따르면
전능하고 신성한
역량이다.
이 신성한 역량은
하나님의 경륜을
수행하기 위해
우리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이 역량에 따라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있고,
하나님을 살 수 있으며,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으로 조성될 수 있다.
그 결과 우리는
그분의 증가와 확대가 되어
그분의 영원한 표현을 위해
그분의 충만이 된다
(엡 1:22-23, 3:19-21).
더 나아가,
내적인 생명의 법의
역량은
우리를
온갖 기능들을 가진
(롬 12:4-8, 엡 4:11, 16)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로 조성한다
(고전 12:27, 엡 5:30).

로마서 9장 23절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광에 이르도록 예비하신
긍휼의 그릇으로 창조하셨다고
말한다.
그리고 고린도후서 4장 7절은
“우리는
이 보배를
질그릇 속에
담고 있습니다.”
라고 말한다.
이 두 절은
그리스도와 교회를 체험하는
기본적인 비결로
간주될 수 있다.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한
많은 메시지를 들었을지라도,
우리가
열린 그릇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여전히
그리스도와 교회를
체험할 길을
가지지 못할 것이다.
열린 그릇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열린 그릇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단지 채워지기 위해
자신을
계속 열어 두는 것이다.
과정을 거치신 하나님,
삼일 하나님,
모든 것을 포함하신 영,
복합되신 영은
우리 안으로
들어오시기 위해
우리가 열리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그분께서
얼마나 많이
우리 안으로
들어오시는지는
우리가
얼마나 많이
그분께 열려 있는지에
달려 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능동적-수동적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주님의 원하심이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고
항상 그분께 열려 있으며,
또한 우리의 행함을
멈추는 것을
의미한다.
그럴 때 우리는
구원을 받고,
강해지며,
거룩하게 되는 것을
볼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행하심을
진정으로 누리는 이가
될 것이다.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감사가 넘칠 것이다.
… 우리는
승리를 얻도록,
죄를 이기고
인내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주님께 기도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주님께
도와 달라고
요구하는 식으로
기도할 때,
결국 우리를 돕는 이는
주님이 아니시다.
우리는
스스로를 도울 뿐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그렇게 많이 감사하지 않게 되는데,
그것은
우리 자신이
모든 것을 했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만
그분을 사랑하고
자신을 그분께 열어 드리며,
그분께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도록
그분께
모든 기회를 드릴
필요가 있다.
우리는
누리는 사람,
곧 그분을 누리며
그분의 행하심을 누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주님께 매우 감사하게 되기 때문에,
기도할 때마다
우리의 입에서
감사가 나올 것이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의 승리이시고,
우리의 거룩하게 됨이시며,
우리에게 모든 것이 되심을
체험할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인격과
주님의 행하심을
누리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게으르거나
무관심하거나
침묵하거나
생기가 없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
우리는
깨어 있으며
매우 냉철하다.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며,
우리 자신을
그분께 항상 열어 놓는다.
그렇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며,
그분께서
모든 것을 하실 것이다.
이것은
가능할 뿐 아니라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우리의 행함을 멈추기를
요구하신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가
생기가 없거나
무관심하기를
원하지 않으시며,
우리가
아주 많이 깨어 있기를
원하신다.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께
여러분 자신을 열어 놓으라.
그분께
날마다
이렇게 말하라.
“주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주님,
지금
당신께
제 자신을 열어 드립니다.
주님,
제게
긍휼을 베푸소서.
당신의 은혜로
저의 존재의 어떤 부분도
당신께
닫혀 있지 않게 하소서.
저는
당신께
전적으로,
철저하게
열려 있기를
원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렇게 실행한다면,
여러분은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게 될 것이다.
여러분은
자신의 승리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고,
화를 내는 것에 대해
주의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5일

엡 6:17-18
그리고 온갖 기도와 간구를 통하여
… 그 영의 검을 받아들이십시오.
그 영은
하나님의 말씀이십니다.
항상 영 안에서 기도하십시오. …

골 3:16
온갖 지혜를 사용하여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안에
풍성히 거하도록 하되,
시와 찬송과 영적인 노래들로
서로 가르치고 권면하고
여러분의 마음에서 은혜로
하나님께 찬송함으로써
거하도록 하십시오.

항상 그리스도를 살기 위해
우리는
말씀과 그 영이라는
두 전선에
접속되어야 한다.
… 우리가
그리스도를 살고자 한다면
우리 자신을
이 전류에 연결시켜야 한다.
…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은
우리를
하늘에 속한 전류와
연결하는 것이다.
일단 하늘에 속한
전류에서 끊어지면
우리는 끝난다.
우리가
아무리 오랫동안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을
체험했을지라도
그것은 소용이 없다.
이 방이
사십 년 동안
전기를 받아들여 왔더라도
일단 절연체가 생기면
전류는 끊어진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은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라고 말한다.
골로새서 4장 2절은
“기도에 꾸준히 힘쓰고”
라고 말한다.
… 에베소서 6장 18절은
“항상 … 기도하십시오.”
라고 말한다.
이것은
매시간 매분
기도할 뿐 아니라
매초
기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 성경에서
기도는
영적인 호흡이다.
인간 생명을 유지하는
모든 것들 중에
우리의 호흡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그러므로 신약에서는
끊임없이 기도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무시로 기도하고,
영 안에서 항상 기도하라고
말한다.
어떻게 항상
기도할 수 있는가?
에베소서 5장
17절부터 20절까지와
골로새서 3장
16절과 17절을
함께 두면
그 길이 분명해진다.
이 두 부분은
서로 자매 절로서
매우 유사하다.
에베소서는
영 안에서 충만해지라고
말한다.
의심할 바 없이
이것은 분명히
기도를 언급하는 것이다.
영 안에서
충만하게 될 수 있는
다른 길은 없다.
…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골로새서 3장 16절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안에
풍성히 거하도록 하되”
라고 말한다.
어떻게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게 할 수 있는가?
그것은
온갖 지혜를 사용하여
시와 찬송과 영적인 노래들로
서로 가르치고 권면하고
우리의 마음에서 은혜로
하나님께 찬송함으로써이다.
그리고 17절은
이렇게 말한다.
“무엇을 하든지
말이나 행동에 있어서
모든 것을
주 예수님의 이름 안에서 하고,
그분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우리는
안테나이신 그 영과
접지선인 말씀을
가지고 있다.
안테나는
우리 안에,
곧 우리의 영 안에 있고,
접지선은
우리의 손에 있다.
우리는
이 두 전선을 가지고서
여기에 머물러야 한다.
… 이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매일의 실행에
달려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기도하고,
끊임없이 찬양하며,
끊임없이 시를 읊고,
끊임없이 노래하며,
끊임없이 감사하는 것을
실행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분을 호흡하고 있고,
그분으로 적셔지고 있으며,
실지적으로
그분과
하나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우리는
그리스도를 살 것이다.

우리가
성경을 호흡하고,
성경으로 기도하고,
성경으로 찬양하고,
성경을 노래로 읽고,
성경을 시로 읽을 때
우리는 살게 된다.
거룩한 말씀의 모든 절은
우리에게
살아 계신 하나님,
살아 있는 ‘프뉴마’가 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에게
모든 것이 되게 하고
우리를
하나님과
하나 되게 하는
전달과 옮겨 부음과 적셔짐을
얻을 것이다.
그럴 때 우리가
무엇을 말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그리스도가 될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사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실행해야 한다.

우리가
무언가를 하는 것을
주님께서
원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깨닫는 것보다
주님을
더 기쁘시게 하는 것은
없다.
주님은 다만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께
우리 자신을 열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서부터 사시도록
허락해 드리기를
원하신다.
… 하나님은
태초에
사람을 창조하실 때부터
사람에게
그분을 위하여 무엇을 하도록
요구하시려는
어떤 의도도 없으셨다.
하나님의 의도는
그분을 담는
그릇을 창조하여
그분을
표현하게 하는 것인데,
이를 위하여 하나님은 다만
열려 있는 그릇을 원하신다.
그릇이 열려 있다면
하나님은
그분의 목적을
이루실 수 있지만,
그릇이 닫혀 있다면
그분의 목적은
좌절된다.

바울의 열네 서신서는
‘열린 그릇’이라는
두 단어로
요약될 수 있다.
하나님은
열린 그릇을 원하신다.

 

4일

롬 8:4
이것은
육체를 따라 행하지 않고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 안에서
율법의 의로운 요구가
이루어지도록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골 4:2
기도에 꾸준히 힘쓰고,
기도할 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깨어 있도록 하십시오.

살전 5:17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행동이 아닌
법에 의해
일하신다는 것은
…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가장 큰 발견 중의 하나이며,
심지어 회복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그렇게 많이
기도할 필요가 없다.
… 우리는
그분께 협력해야 한다.
… 이 법과 협력하는 것은
영을 따라 행하는 것이고,
영을 따라 행하는 것은
작용하는 이 법에
협력하는 길이다.
이 법은 이미
설치되어 있지만,
법의 기능과 작용은
우리의 협력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우리의 협력은 단지
영을 따라 행하는 것이다.

교리적으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생명 주시는 영이시고
지금
우리의 영 안에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특이한 성질이 다만
자신을 사는 것임을
명확히 알고 있기 때문에
특이한 성질을
거절하려고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바로 지금
우리의 영 안에 계신
생명 주시는 영이시라는 것을
알고,
그리스도를 사는 것을
실행하려고 한다.
그러나 여러분은
어떻게 실행할 것인가?
… 이를 위해 우리는
하루 종일
기도해야 한다.
… 언제 어디서나
우리는
이렇게 말하면서
우리의 영으로부터
기도해야 한다.
“주님,
제 안에 사소서.
주님,
저에게서 살아 나타나소서.”
이것은
그리스도를 사는 것을
실행해야 한다는
매우 핵심적인 요점으로
우리를 이끈다.
이것은
교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날마다,
매시간,
매 순간
우리의 실행이
되어야 한다.
기도 없이
아무 말도 하지 말라.
“주님,
당신께서 말씀하소서.
저는
이 사람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합니다.
주님,
당신께서 말씀하소서.
당신이
저의 생명이십니다.”
매 순간,
크고 작은 모든 일에서,
어디에서나
기도하라.

항상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주님,
저를 통해 사소서.
주님,
저를 통해 사소서.”
일할 때나
부엌에 있을 때나
빨래할 때에도
“주님,
저를 통해 사소서.”
라고 기도하라.
우리 모두는
이것을 실행할
필요가 있다.
… 어떤 피아니스트는
하루에
열다섯 시간 동안
피아노 연습을 한다.
… 우리는
그리스도를 사는 것을
하루에
스물네 시간
실행해야 한다.
… 바울은
“나에게 있어서
삶은 그리스도이고,
…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려고 합니다.
… 그리스도(를)… 알고”
라고 말한다.
이것은
그가
그리스도를 사는 것을
실행하려는
갈망이 있었음을
보여 준다.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은
우리의 영 안에서
하나님과
끊임없이 교통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려면,
강한 영으로
(엡 6:18)
꾸준히 힘써야 한다
(롬 12:12, 골 4:2, 살전 5:17)

마태복음 26장에 있는
주님의 말씀에 따르면,
우리는 다
잠자는 사람들이다.
여러분이
육신적으로
잠자지 않는다 할지라도
영적으로는 잔다.
그리고 많은 때
여러분은
정신적으로도 잔다.
내가 말하고 있는 동안에
몇몇 사람들은
육신적으로 잠자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잠자고 있다.
이것은
그들의 생각,
그들의 관심,
그들의 듣는 것,
그들의 깨달음이
그곳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로 여러분은
영적으로 잠자고 있다.
이것은
여러분의 지각이
잠자는 상태에 있다는 뜻이다.
끊임없이 기도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여러분은
깨어 있는 사람,
온전히 정신을 차린 사람,
여러분의
잠자는 본성과
잠자는 존재에 대항해
싸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어떻게 싸우는가?
간구함으로써
싸워야 한다.
기도는
일반적인 것이지만
간구는
특별한 것이다.
여러분은
특별히 간구함으로써
일반적인 기도에 대해
깨어 있어야 한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은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라고 말한다.
이제 여러분은
끊임없이 기도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것은 다만
깨어 있는 것이다.
깨어 있는 것은
여러분이
기도하는 습관을 세우도록
도와준다.
성경에 있는
모든 권면들의
궁극적이고도 최종적인
결론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살고,
영 안에서 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저것을 사랑하지 말라거나
이것저것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최종적인 말은
그리스도를 살고,
영 안에서 행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간구로
항상 깨어서
기도하는 방식으로
이것을 실행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지속적으로
그리스도를 살 수 있는
다른 길은 없으며,
영 안에서
행할 수 있는
다른 길도 없다.
사실상 여기서
행한다는 말은
산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영 안에서 행한다는 것은
사실상 영 안에서 산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사는 것은
영 안에서 사는 문제이다.
이것은
우리가
모든 간구로
항상 깨어서
기도 생활을 하지 않는다면
결코 가능하지 않다.

 

3일

롬 8:2
왜냐하면 생명의 영의 법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나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하였기 때문입니다.

롬 8:4-6
이것은
…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 안에서
율법의
의로운 요구가
이루어지도록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 영을 따르는 사람들은
그 영의 일들을
생각합니다.
… 영에 둔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

역대로 그리스도인들의
무지와 눈멂 때문에
로마서 8장은
닫힌 채로 있었다.
이런 이유로
몸의 생활이
거의 없었다.
…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몸의 생활을 가지는
비결이 가려져 있기 때문에
몸의 생활이
거의 없다.
그 비결이
여기 로마서 8장에 있지만
가려져 있다.
우리는
이 법이 어떻게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모든 것을 포함하신 영이신,
과정을 거치시고
모든 것을 포함하신
하나님인지를
보아야 한다.
이분이
법이시다.
우리는 또한
이 법이
이 놀라운 존재 안에
포함되어 있는
모든 성분들을 통해
어떻게 과학적으로 작용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 놀라운 존재가
우리 안에 계시기만 하면,
그분은
그분께서 소유하신 모든 것과
그분의 모든 어떠하심을 통해
법으로서 작용하신다.

우리의 매일의 생활에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살고 있다고
강하게 말할 수 없다.
… 우리의 매일의 생활의
결과에는
그리스도의 몸의 건축을
위하는 것이
많지 않다.
… 우리가
기도한다 할지라도,
말씀을
기도로 읽는다 할지라도,
주님을
사랑한다 할지라도,
세상 밖에서
생활한다 할지라도,
죄가 없다 할지라도,
주님을 경외함이 많고
경건하다 할지라도,
그리스도께서 거기에
실지로 얼마나 많이 있는지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여러분은
집회에 참석하고
교회생활을 하고 있다.
… 그러나 … 여러분은
일상생활 속에
그리스도가
얼마나 많은지를
점검해 보아야 하며,
매일의 생활에서
몸의 건축이
얼마나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우리가
몸의 생활이라고
말하는 것은
단지 일종의 영적인 공동생활,
혹은 영적인 사회생활일 수 있다.
우리는
합당한 터 위에 서서
주님의 이름 안으로
함께 모이고,
어떤 영적인 일들을 다루는
그리스도인 형제들일 수도 있다.
… 이러한 항목들은
… 몸의 생활이 아니다.
사실상 그것은
그리스도가 별로 없고
그리스도의 몸의 건축이
그다지 많지 않은
어떤 종류의 교회생활일 뿐이다.
그리스도의 몸은 다만
그리스도를 체험한 것의
결과이다.
그리스도의 몸은 전적으로
그리스도여야 한다.

우리는
이렇게 기도할
필요가 있다.
“주님,
당신께서
당신의 말씀을
저에게 열어 주실수록,
당신의 말씀을 보기 위해
저의 눈을 열어 주실수록,
저는
이러한 실재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당신의 긍휼과 은혜가
더욱더 필요합니다.
저는
몸을 산출하기 위해
당신을 살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그런 실재가
필요합니다.
주님,
제가
다른 모든 것을
잊어버릴 수 있도록
은혜를 주소서.
저는
모든 문제를
잊어버리겠습니다.
저는
그리스도와
당신의 산출물인
몸 이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관심하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이런 필사적인 기도가
필요하다.

삼일이시고,
과정을 거치시고,
내주하시는 영이 되신
하나님은 먼저
우리의 영 안에
설치되셨다.
그런 다음에 그분은
우리의 영에서부터
생각 안으로 퍼지시고,
생각에서부터
결국에는 몸을 적시신다.
우리 안에 설치되신
바로 그 하나님이
생명의 영의
법이시다.
오늘날 이 하나님은
행동에 의해서가 아니라
항상 법에 의해서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하신다.
… 오늘날 우리는 단지
영을 따라
행하기만 하면 된다.
그것은
우리의 생각을
영에 두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영을 따라 행할 때,
법에 의해서
우리 안에는
놀라운 많은 일이
계속 일어나게 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것이다.

전통적인 그리스도인의
관념에 따르면,
우리가
하나님께
어떤 일을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은
오셔서
기도에 응답하기 위한
어떤 활동을 하신다.
그러나 로마서 8장에 따르면,
하나님은
그분의 신약 경륜 안에서
그런 식으로
일하지 않으신다.
그것은
구약 경륜이다.
… 그러나 신약에서
… 삼일이신 하나님은
과정을 거쳐
내주하시고
모든 것을 포함하신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다.
그리고 로마서 8장에 따르면,
그 영은
오늘날
법이시다.
이것은
법이,
우리 안에서
일하고 계시는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의
자연스럽고 자동적인
원칙임을 의미한다.
신약 경륜 안에서
하나님은
활동이 아닌
자동적인 원칙에 따라
그분의 구속받은 백성을 위해
일하신다.

 

2일

엡 3:1
이런 이유로
이방인 여러분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님께
갇힌 사람인
나 바울이
말합니다.

엡 4:1
그러므로 주님 안에
갇힌 사람인
내가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은
부름을 받았으니
그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십시오.

바울은
청지기였지만,
… 사도는
… 자신을
‘그리스도께 갇힌 사람’으로
여겼다
(엡 3:1).
겉으로 볼 때
그는
물질적인 감옥에
갇혀 있었지만,
실지로는
그리스도 안에
갇혀 있었다.
그는
그러한 상태에 근거해서,
즉 그리스도 안에
갇힌 이로서
실지로 생활한 것에 근거해서
성도들에게 간청했다
(4:1).

바울은
그리스도에 의해
갇혔기 때문에
자신을
그리스도께 갇힌 사람으로
여겼다.
… 그리스도는
바울의 감옥이셨다.
어느 날
여러분이 사랑하는 분이신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감옥이
되실 것이다.
조만간
하나님의 모든 청지기들,
하나님의 풍성을 공급하는
모든 사역자들,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그리스도에 의해
갇힐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갇힐 것이다.
그분을 사랑할수록
여러분은 더욱더
그분 안에
있게 될 것이다.
결국 여러분은
그분께서
여러분의 감옥이 되실 정도로
그분 안에
있게 될 것이다.
일단 이 감옥 안에
들어가게 되면
여러분은
나오고 싶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감옥을
매우 사랑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최고도로 누린다.

성경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이
에베소서를
높게 평가한다.
… 에베소서는
성경에서 가장 높은 계시를
담고 있다.
이 계시는
그리스도 안에 갇혀서
그리스도를
자신의 감옥으로
누리는 사람에게
주어진 것이다.
이것은
하늘에 속한
신성한 것을 보려면,
우리가
주님 안에 갇힌
사람이 될
필요가 있음을
나타낸다.
더 많은 자유를 가질수록
우리는
더욱더 눈멀게 된다.
그러나 만일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감옥이 되신다면,
우리의 눈은
하늘에 속한
이상을 볼 수 있도록
열릴 것이고,
우리는
가장 높은 계시를
받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는
무한하시고
무한량하시며
측량할 수 없으시다.
그분은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모든 것을 포함하신 분이시다
(엡 1:23).
더욱이 그분은 바로
우주의 차원이시다.
곧 그분께서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이시다
(3:18).
오, 그리스도는
얼마나 놀라운 분이신가!

에베소서 5장 25절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것과 같이”
라고 말한다.
이 절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는 그리스도이심을
보여 준다.
… 그분은 또한
새사람을 창조하신 그리스도,
만물을
머리이신 자신 아래
통일하시는 그리스도,
은사를 만드시고
은사를 주시는 그리스도,
거처를 정하시는 그리스도이시다.
우리는
어떠한 그리스도를
가지고 있는가!

하나님의 손은
하나님을 위해
말하는 사람인
에스겔을
인도하고 지시했다.
그의 모든 행동은
하나님의 손 아래 있었다.
그가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처신하든,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고 지시하는
손에 따른 것이었다.
그가
묶여 있든 자유롭든,
탄식하든 기뻐하든,
가든 오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의
인도와 지시 아래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말하는 사람은
더 이상 자신의 자유가 없고,
더 이상 자신의 편리에 따라
어떤 일을 할 수 없음을
본다.
하나님의 손이
그를
어떤 곳으로 가도록
인도하면,
그는
그곳으로 가야 한다.
하나님의 손이
그에게
어떤 것을 하도록
지시하면,
그는
그것을 해야 한다.
그의 행동은
하나님의 손의
인도를 따르고
하나님의 손의
엄격한 지시 아래 있다.
그가
자신의 선택에 따라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시고 지시하시는
손 아래에서,
또 하나님의 그 손에 따라
어디에 가고
무엇을 할지를
결정한다.
이것은
하나님을 위해
말하는 사람에게
상당한 대가를 지불할 것을
요구한다.

바울은
그리스도께 사로잡힌
수많은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을
가장 크게 대적한 사람 중
하나였다.
어느 날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그는
정복되고
굴복되고
사로잡혔다
(행 9:1-9).
그날부터
그는
그리스도의 포로가 되었다.
우리는
바울이
놀라운 전파자로서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다녔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느낌에 따르면,
그는
포로로서
그리스도의
개선 행렬 가운데 있었다.
… 바울은
그리스도의 승리를 축하하는
행렬 가운데 있는
포로였다.

 

신언노트, 2019 05 05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실재를 위하여
그리스도를 삶

그리스도의 그 몸인
 그 교회는 
 그리스도께로부터 
 밖으로 나오는
 한 순수한 산출물입니다
 (product;
 생산물[소산]입니다);
오직 그분의 부활 생명을 가지고
 그리스도께로부터
 밖으로 나오는 것만이
그분의
 보완체와
 (complement; 
 보체와, 보완물과, 보충물과)
 또 짝
 (counterpart;
 상대, 상응하는 사람),
 곧 그리스도의 그 몸이 
 될 수 있습니다:

그 몸의 그 머리가
 그리스도이시고, 
또 그 머리의 그 몸도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그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그리스도의 그 몸이
 ‘그 그리스도’,
 곧 그 단체적인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와 다른 어떤 것도
 (Anything other than Christ;
 그리스도 이외의 무엇이든)
 그리스도의 그 몸이 아니고, 
또 그리스도와 다른 어떤 것도
 그리스도의 그 몸 안에서
 한 이질적인
 (foreign;
 전혀 다른, 관계 없는, 외래의)
 요소입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반드시
 바울이 그 몸의 그 실재를 위하여
 그리스도를 살아야 했던 것처럼
 필사적이어야만 합니다
 (must be desperate
 as Paul was to live Christ …;
 바울이 그랬던 것과 같이
 그 몸의 그 실재를 위하여
 그리스도를 사는 데
 필사적이어야[간절히 원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의
 그 순수한 요소와 다른
 모든 것들은
이 이상에 의하여
 배제됩니다
 (are ruled out;
 제외됩니다, 불가능하게 됩니다);
이 이상은
 우리의 타고난 사람에 속한 
 어떤 것을
 (anything; 어떤 것도)
 씀으로부터
 (from exercising;
 작용시킴[발휘함, 행사함, 훈련함]으로부터)
 우리를
 ‘마비시킵니다
 (paralyzes;
 무능[무력]하게 합니다, 무효화합니다)’.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실재를 위하여
 그리스도를 사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님의
 갇혀 있는 한 사람
 (a prisoner;
 한 포로[수감자, 죄수])’,
‘주님 안에 있는(in)
 갇혀 있는 한 사람’,
또 ‘한 사슬(chain; 속박) 안에 있는
 한 대사’로서
 우리의 영 안에
 갇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갇혀 있을 때,
우리는
 그분의(of) 한 계시를 받아들여
그분의 무한한 차원들 안에서
그분을
그리스도의 그 몸을
 건축함을 위하여
교회를 사랑하시는
 그 그리스도,
새사람을 창조하시는
 그 그리스도,
모든 것들을 이끄시는
 (…-heading-up; 책임지시는)
 그 그리스도,
선물을(gift; 은사를) 만드시고
 또 선물을 주시는
 그 그리스도,
또 집을 만드시는
 (home-making; 거처를 정하시는)
 그 그리스도로
 체험합니다.

그리스도의 한 대사로서
 그리스도를 사는 한 사람은
 더 이상 그 자신의(his own) 자유를
 가지고 있지 않고
 또 더 이상 그 자신의 편리에 따라
 (according to … convenience;
 편의[형편]에 따라)
 일들을 할 수 없습니다;
어디에 그가 가고
 또 무엇을 그가 하는지는
 그의 선택에 따라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시고
 또 지시하시는
 (directing;
 감독하시는, 알려 주시는)
 그 손 아래에
 또 (그 손에) 따라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실재를 위하여
 그리스도를 사는 것은
그분의 승리의
 행렬(procession; 행진)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한 포로가
 되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실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는
 그 사역의
 그 일 안에서
그분의 승리의
 그 축하를 위하여
 (for the celebration;
 그 기념을 위하여)
우리의 영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의
 그 인격 안에서
 각각의 모든 것들을 합니다
 (doing; 행합니다).

그리스도의 그 몸은
 그리스도의 그 체험의
 그 유출이고
 (the issue;
 그 결과[이득, 자식, 주제,
 쟁점, 사안, 밖으로 나옴]이고],
그래서
 그리스도의 그 몸이
 한 실재가 되기 위하여
 우리가 그리스도를 살도록
 우리는
 필사적으로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실재를 위하여
 어떻게 그리스도를 사는지의
 (how to live Christ;
 그리스도를 사는 방법의)
 그 비결은
 (the secret; 그 비밀은)
생명의 그 영의
 그 법의
 한 정의, 묘사, 설명, 또 제시인,
 로마서 8장 안에 있습니다:

로마서 8장은
 이 용어를
 ―생명의 그 영의 그 법을―
 사용하여
그 삼일 하나님께서
 과정을 거치셨고
 또 완결되셨으며
 (그 결과)
 생명 주시는 그 영이 되신 후에,
어떻게 우리의 영 안으로
 한 법,
 곧 우리 안에 있는
 자발적인
 (spontaneous;
 저절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무의식적인, 자동적인),
 곧 자동적인
 (automatic;
 무의식적인, 반사적인, 기계적인, 자동적으로 생기는)
 한 원칙과
 (a … principle;
 한 원리와[법칙과, 본질과, 비결과])
 또 능력으로(as)
 자리 잡게 되셨는지를
 (has been installed;
 설치되셨는지, 취임하게 되셨는지)
 묘사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가장 위대한
 (the biggest;
 가장 큰[엄청난, 중요한, 귀한])
 발견들,
 심지어 회복들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는
 그 삼일 하나님의
 그 “전류”이신
 그 내주하시는 영,
 곧 자리 잡게 되시고
 또 자동적이신
 하나님의
자발적이고
 또 자동적인
 그 능력의(을)
 “스위치를 켬”에 의하여
생명의 그 영의
 자리잡게 되고
 또 일하는
 (operating;
 움직이는, 운행하는,
 작용하는, 효력이 나타나는)
 그 법과 협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법의
 “스위치를 켜는” 것은
주님과의
 접촉(touch; 만짐) 안에
 남아 있는 것이고,
그분과의
 끊임없는 연락(contact; 접촉, 관계) 안에
 머무르는 것이며,
그분과의
 습관적인 교통을
 (fellowship; 교제를)
 가지는 것이고,
또 그 영을 따라
 (according to the spirit)
 걸음에 의하여
 (by walking; 행함으로)
 그분의
 끊임없는 주입 아래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과 섞인
 생명의 그 영의 그 법인,
 그 섞인 영 안에서
 행동하고, 활동하며,
 움직이고, 또 사는 것이
그리스도의 그 몸 안에서
 행동하고, 활동하며,
 움직이고, 또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그 임재,
 하나님의 그 말씀하심,
 하나님과의 그 만남,
 또 하나님의 그 분배하심을(the dispensing)
 가지는데
우리의 모든 내적인 부분들 안으로
 그분 자신을 나누어 주시는(to impart)
 생명의 그 영의 그 법으로서(as …; 그 법인)
 그분의 일하심을 통해서입니다
 (through His operation).

그 영을 따라
 (according to the spirit)
 걷는 것은
 (To walk; 행하는 것은)
 그 영 안에서
 (in the spirit)
 언제나
 (at every time;
 항상, 주저하지 않고 바로, 때마다)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쉬지 않는
 (unceasing; 쉴 새 없는, 끊임없는, 연속된, 잇따른),
 계속적인
 (continual; 끊임없는, 부단한, 빈번한, 거듭되는),
 살아 있는,
 또 숨쉬는
 (breathing; 숨 쉬는 듯한, 호흡하는, 살아 있는, 생생한)
 기도는
 “주님,
 저를 통하여 사십시오”가
 되어야만 합니다
 (살전 5:17, 엡 6:18, 찬송가 304장).

에베소서의 그 계시에 따라,
 우리는
 그 몸 생활의
 그 실재를
 가지기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는
 사람들이 되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단지 신체적으로뿐만 아니라
 또한 심리적으로
 (phychologically; 정신적으로)
 또 영적으로,
경계해야만
 (must be watchful;
 지켜봐야만[조심해야만, 방심하지 말아야만] 하고),
 곧 완전히 깨어 있어야만
 (… fully awakened;
 충분히 일어나 있어야만 하며),
 곧 우리의 잠자는 본성과
 또 우리의 잠자는 존재에 반대하여
 싸워야만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영을 훈련하여
 우리의 몸과
 또 우리의 심리 위에 일어날
 (to rise up over; 들고일어날, 봉기할),
주님의 말씀에 주의하여
 경계하고 또 기도할,
영 안에서
 언제나 기도할
또 우리의 기도 생활의
 그 유지함을 위하여
 (for the maintaining;
 그 지속함[지킴, 관리를 계속함]을 위하여),
 경계할
 (being watchful; 지켜볼, 깨어 있을),
 곧 방심하지 않고 감시할
 (on the alert; 빈틈없이 경계 태세를 취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그분께 요청함과
 (by calling on Him;
 …을 부름과[방문함과, 정기적으로 찾아옴과])
 또 그분과 대화함에(conversing; 사귐에) 의하여
기도의 그 습관,
 곧 쉬지 않고(unceasingly)
 공기이신 그 그리스도를 들이마심의
 그 습관을
 건축함에 의하여
 (by building up;
 강화함으로, 확립함으로)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실재를 위하여
그리스도를 삶의
 그 습관을
 건축해야만 합니다.

그 영으로
 가득 채워짐에 의하여
 (by being filled with;
 충만해짐으로써)
 또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풍부하게
 (richly; 부유하게)
 거하게 함에 의하여
우리는
 생명의 그 영의
 그 법에 따라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실재를 위하여
 그리스도를 살 수 있습니다.

비어 있고
 또 열려 있는
 그릇들이 됨에 의하여
우리는
 생명의 그 영의
 그 법에 따라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실재를 위하여
 그리스도를 살 수 있습니다.

바울의 열네 서신서들은
 두 단어들에 의하여
 요약될 수 있습니다:
 ‘열려 있는 그릇(open vessel)’입니다.

우리는
 극도로
 (to the uttermost;
 최대한, 가장 멀리까지)
 주님을 사랑할,
우리 자신들을
 그분께
 전적으로
 (entirely;
 완전히, 전부),
 완전히
 (thoroughly;
 철저히, 철두철미하게, 전적으로),
 또 절대적으로
 열려 있게
 유지해야 할,
그분께서
 그분의 몸을 위하여
 (for the sake of His Body;
 그분의 몸 때문에)
 우리에게
 각각의 모든 것들이 되시도록
 또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하여,
 또 우리를 위하여
 각각의 모든 것들을 하시도록
 허락해 드릴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그 신성한 능력인
 (capacity;
 역량인, 수용력인, 소질인, 재능인)
 생명의 그 영의 그 법의
 그 일함이(The operating)
자발적으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살게 하고
 또 그 신격 안에서가 아니라
 생명 안에서
 또 본성 안에서
 하나님이 되게 합니다(to … become).

우리 안에 있는
 그 신성한 능력인
 생명의 그 영의 그 법의
 그 일함이
자발적으로
 (spontaneously;
 자연스럽게, 저절로, 자동적으로)
 우리를 구성하여
 모든 종류들의 기능들을 가지는
 그리스도의 그 몸의
 그 지체들이 되게 하여
그 결과(so that)
 전체의 그 몸이
 (all the Body; 그 모든 몸이)
 사랑 안에서
 그것 자체의
 그 건축함에 이르도록
 그 몸의 그 성장을
 야기합니다(causes).

 

1일

창 2:22-23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서 빼내신 
갈빗대로 
여자를 건축하시고, 
그 여자를 
그에게 데려가셨다. 
그 사람이 
말하였다. 
“이번에는 
나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구나!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고 하리라.”

고전 12:12 
왜냐하면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모두가 한 몸인 것같이, 
그리스도도 
그와 같으시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옆구리에서 빼낸 
갈빗대로 
하와가 건축되었다는 것은 
교회가 
부활 생명으로 
건축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예표인데
(요 12:24, 벧전 1:3), 
이 부활 생명은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에게서 해방되어, 
그분의 부활 안에서 
믿는 이들 안으로 
분배된 생명이다. 
참하와인 교회는 
모든 믿는 이들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총체이다. 
오직 그리스도에게서 나와 
그분의 부활 생명을 가진 것만이 
그리스도의 짝과 배필인 
그리스도의 몸이 
될 수 있다
(고전 12:12, 엡 5:28-30, 창 2:22).

교회는 다름 아닌,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순수한 산출물이다. 
… 하와는 
완전히, 
전적으로, 
순전히 
아담에게서 산출되었다
(창 2:21-24). 
… 하와 안에는 
아담의 요소 외에 
다른 요소가 전혀 없었다. 
… 하와는 
아담의 완전한 재생산이었다. 
아담과 하와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예표이다
(엡 5:30-32, 창 2:22-24). 
교회의 요소도 반드시 
한 요소, 
곧 그리스도의 요소여야 한다. 
교회 안에는 
그리스도의 요소 외에 
다른 요소가 
없어야 한다. 
이러한 이상을 본다면, 
우리는 
오늘날의 상황에 대해 
애통해할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 안에는 
그리스도의 요소가 
너무나 적다. 
오히려 그 안에는 
그리스도 이외의 
다른 요소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러나 주님의 회복 안에 있는 
교회는 순전히 
그리스도만을 요소로 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스도 이외의 것은 
그 무엇도 
교회가 아니다.

우리는 
본질과 기능과 실행의 면에서 
교회를 보아야 한다. 
… 타고난 요소와 
육체에 속한 요소와 
야심에 속한 요소는 
어떤 것이라도 
이 이상에 의해 
배제될 것이다. 
이 이상 아래 있다면 
우리는 
타고난 사람에게 속한 것을 실행할 
담력을 가지지 못할 것이다. 
이런 면에서 
이 이상은 
우리를 마비시킨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믿는 이들로 이루어진 
조성체요 구성체임을 
깨닫는다. 
그러나 주님의 긍휼로 
… 우리가 본 것은 
교회에 대한 
더욱 높은 이상이다. 
… 하와가 
아담에게서 나온 
순수한 산출물이었듯이, 
교회도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순수한 산출물이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오늘날 
교회가 어떻게 
그러한 하와, 
곧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순수한 산출물이 될 수 있는지 
질문할지도 모른다. 
이것이 
우리 모두가 
이상을 보아야 하는 
이유이다. 
여러분이 
이상을 볼 때 
여러분은 하와이다. 
… 그리스도의 
순수한 요소 이외에 
다른 모든 것은 
이 이상에 의해 
배제된다. 
이것이 
우리가 
전통적인 가르침들의 영향 아래 
남아 있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다. 
우리에게는 
이상이 필요하다. 
우리는 
교회가 
부활 안에, 
그리스도 안에, 
하늘들의 영역 안에 
있다는 
이상을 볼 때, 
그리스도와 
부활과 
하늘들의 영역 이외의 
모든 것이 
제해질 것이다.

그리스도는 단지 
몸의 머리이실 뿐 아니라
(골 1:18) 
머리의 몸이시다
(고전 12:12). 
그리스도는 
모든 것을 포함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머리이시며 
몸이시다.

골로새서 3장 
10절과 11절에 따르면, 
새사람 안에서 
그리스도는 
모든 것이시며, 
모든 것 안에 계신다. 
이것은 
그분께서 
새사람의 
모든 지체들이시며, 
모든 지체들 안에 계심을 
의미한다. 
…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어떻게 
그리스도가 될 수 있고, 
또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새사람의 모든 지체들이 
될 수 있는지는 
… 누가 사는지에 
달려 있다. 
만일 우리가 
스스로 산다면 
우리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를 살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사시도록 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사는 것이며, 
우리는
그리스도이다. 
… 교회가 
그리스도를 산다면, 
교회는 
그리스도이다. 
우리가 모두 
그리스도를 살면, 
우리는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이와 같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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