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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부흥을 위한 거룩한 말씀

교회의 확산을 위해 주님의 일의 한 흐름 안에 우리 자신을 지키고 사탄의 계략들에서 구원받도록 주님의 긍휼을 받음

Keeping Ourselves
in the One Flow
of the Lord’s Work
for the Spreading of the Church,
and Receiving the Lord’s Mercy
to Be Saved
from Satan’s Schemes
그 교회의 확산을 위한
주님의 일의
한 흐름 안에서
우리 자신들을 지킴과
또 사탄의
책략들로부터(계략들로부터)
구원받도록
주님의 긍휼을 받아들임

오순절날에 시작되어
오늘날까지
역대로 흘러온
신성한 생명의 흐름은 바로
하나님의 단체적인 표현을 위해
교회를 건축하는
하나님의 목표를 위한
단 하나의 흐름이다
— 마 16:18, 비교 겔 47:1-12.

우리가
주님을
우리의 온 존재 안에서
으뜸이 되시게 하고
그분을
우리의
첫째가는 사랑이
되시게 한다면,
그분은
우리에게
신성한 흐름이 되시어
우리 안에서 흐르시고
우리에게서
첫째가는 행위로
흘러 나가실 것이다.
첫째가는 행위는
우리의
첫째가는 사랑이신
주님에 의해
유발되고,
우리의
첫째가는 사랑이신
주님에게서 나와,
우리의
첫째가는 사랑이신
주님을 표현하는
행위이다
— 요 4:14하, 계 22:1, 2:4-5.

첫째가는 사랑에 의해
유발된 일만이
금과 은과 보석이다
— 고전 2:9, 3:12.

교회의
기본적인 원칙은
교회가
영원하고 우주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반드시
이 땅에서
지속적으로
확산되어야 한다.
교회의 성장과 건축은
확산에 근거를 둔다
— 행 1:8, 8:1, 9:31.

교회의 확산은
주님의 생명의 성장과
주님의 생명의 흘러 나감,
곧 생명의 흘러넘침에 의해
일어난다
— 엡 4:16, 요 7:37-39, 행 2:42,
46-47, 5:20, 6:4, 7, 12:24, 19:20.

교회가 확산되기 시작할 때,
잘못된 관념들은
그것이
지역에 관한 것이든,
인종에 관한 것이든,
서로의 차이점에 관한 것이든
모두 산산조각 난다.
우리의
닫혀 있는 모든 생각은
바로 교회의 확산에 의해
제거된다
— 비교 고전 12:24, 골 3:10-11.

사도행전 8장은
교회의 확산의
첫 단계가
사마리아(1-25절)였고,
둘째 단계가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26-39절)였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것은 교회가
우주적이고
또한 확산될 필요가 있으므로,
우리가 반드시
각 지파와 언어와 백성과 민족에게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계 5:9-10, 7:9).

사도행전 9장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관념과는 반대로
사울(후에 바울)을
선택하신 것을
보여 준다.
우리의
좁고 잘못된
인간적인 관념은
교회의 확산을 통해
깨어지고
산산조각 나야 한다.
우리는
이 시간에
교회를
박해하는 사람이
다음 시간에는
복음을
전파할 수 있다는 것을
반드시 믿어야 한다
— 행 9:10-22.

사도행전 10장은
주님께서
복음 전파를 위해
땅에서 움직이시는 것이
하늘의 보좌에서 수행되는
그분의 행정 아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또한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의 사방으로
복음이 확산되어
온갖 부정한(죄악된) 사람들을 모아,
그들을
그리스도의 구속하시는 피로
깨끗하게 하고
새롭게 하시는 성령으로
씻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 행 10:11-12, 15, 28,
히 8:1, 행 7:56.

사도행전 13장은
안디옥 교회에
신언자들과 교사들 다섯 명이
주님을 섬기고 있었는데,
이들이
각기 다른 배경과 교육과 신분을 가진
유대인들과 이방인들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계시한다.
이것은 교회가
사람의 배경에 상관없이
모든 인종과
모든 계층의 사람들로
구성된다는 것과,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에게 주어진
영적 은사들과 기능들은
그들의 타고난 신분에
근거한 것이 아님을
가리킨다
— 행 13:1, 4:36, 롬 16:21,
눅 9:7-9, 행 22:3.

그리스도의 몸의
이 신실하고 추구하는
다섯 지체들을 통해,
주님은
그분의 일과 움직임을 위해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셔서
이방 세계에
왕국 복음을 확산하는
큰 걸음을 내디디셨다.

이것은 절대적으로,
하늘에 계신
머리와
땅에 있는
신실하고 추구하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의
동역을 통해서
그 영에 의해,
그 영 안에서,
그 영과 함께
이루어진
움직임이었다
— 행 13:1-4.

사도 바울은
복음을 확산하기 위한
제일 차 여행에서
키프로스로 갔고,
그런 다음에
소아시아로 가서
많은 지방에
교회들을 세웠다
— 행 13:1-14:28, 계 1:4.

바울은
바나바와 갈라선 후,
유럽으로의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테네, 고린도, 에베소를 거쳐
안디옥으로 돌아오는)
제이 차 사역 여행을
계속했다
— 행 15:35-40, 16:6-18:22.

바울의 제삼 차 여행은
안디옥에서
갈라디아, 브루기아, 에베소,
마케도니아, 그리스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이었다
— 행 18:23-21:17.

바울의 제사 차 여행은
가이사랴에서
로마까지 가는 것이었다
— 행 27:1-28:31.

우리는 반드시
교회의 확산과 건축을
좌절시키려는
사탄의 계략들에서
구원받도록
주님의 긍휼을
받아야 하며,
주님의 몸을
건축하기 위해
시대의 흐름 안에
우리 자신을
지켜야 한다
— 비교 히 4:16, 애 3:22-25.

우리는 반드시
외적이고 죽은 규례와,
인간의 의견과,
낡은 관념을 가진 자아에서
구원받아야 한다.
누구든지
주님의 긍휼을 받은 사람은
이러한 것들에서
구원받을 것이다.
우리가
구원받는 정도가
교회가
건축될 수 있는 정도이다
— 롬 5:10, 빌 1:19-21상, 2:12-16,
행 15:1-12, 갈 2:21, 5:1, 2:4.

우리는 반드시
베드로의 사례에서
공과를 배워서,
우리의
종교적인 전통과
낡은 배경이라는
너울에서 구원받음으로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의
이상을 보고
그 이상 아래 살며
복음의 진리를
붙들어야 한다
— 행 10:9-16, 갈 2:11-14.

우리는 반드시
바나바의 사례에서
공과를 배워서,
인간적인 의견과
타고난 관계에서
구원받아야 한다.
개인적인 관계 때문에
동역자들 간에 일어나는
다툼은
형편없는 일이다.
우리는
이것을
잘 기억해야 한다
— 행 13:13, 15:35-40, 골 4:10.

우리는 반드시
아볼로의 사례에서
공과를 배워서,
하나님의 신약 경륜에 관한
완전한 계시가
부족한 사역에서
구원받아야 하고,
시대의 사역과
완전히 하나 되지 않는 데서
구원받아야 한다
— 행 18:24-19:2, 고전 1:12, 16:10-12.

우리는 반드시
사도행전 16장
6절부터 12절까지에 나오는
바울의 사례에서
공과를 배워야 한다.
이 절들은
일꾼들이
어떤 곳에 간 후에
그곳에
자리를 잡고 정착하려는
경향을 가지며
움직이지 않으려고 하는
문제를 보여 준다.
옛 관계, 옛 애정, 옛 경향, 옛 관념은
우리가
내주하시는 영의
내적인 인도를
따르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성령은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을
막으셨고,
예수님의 영은
그들에게
허락하지 않으셨다.
성령께서 막으시는 것은
우리를
분별하고 거룩하게 하며,
예수님의 영은
우리에게
허락하기도 하시고
허락하지 않기도 하신다.

성령은
“안 된다.”라고 말씀하심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예수님의 영은
“가라.”라고 말씀하심으로
예수님의 인성 안에서
우리를 보내시어
십자가 아래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게 하신다.

우리는 반드시
바울의 사례에서
공과를 배워서,
몸의 생활을
실행하고
그 영께서
몸의 지체들을 통해서
하시는 말씀을
받아들이며,
머리로부터 오는 말씀처럼
그러한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 행 20:23, 21:4, 7-8, 11-14.

우리는 반드시
야고보가
잘못을 범하고
예루살렘 교회가
혼합으로 황폐하게 된
사례로부터
공과를 배워야 한다
— 행 21:18-26, 마 22:7, 24:1-2.

예레미야는
우리의 마음에
기록될 수 있는
생명의 법에 대해
말했고
(렘 31:31-34),
바울은
우리의 영 안에 있는
생명의 영의 법에 대해
말했지만
(롬 8:2, 4, 6),
야고보는
문자로 된 율법을
귀히 여기고
높였다
(행 21:20).

바울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
그리스도의 부활 능력으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같은 형상을 이루는 것을
말했다.
이러한 생활이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되는
몸의 생활을
산출한다
— 갈 2:20, 빌 3:10.

신성한 계시의 빛 가운데서 볼 때,
야고보에게
가장 부족했던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하나님의 경륜을
수행하는 것은
자기 계발이 아니라
자아 부인이다.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 안에
율법에 열성적인
수많은 믿는 유대인들이 있다고
자랑했지만,
바울은
그리스도를
최고도로 누리기 위해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고,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를 붙잡고,
그리스도를 추구하고,
그리스도를 높이는 데
열성적이었다
— 행 21:20, 빌 3:6-14, 골 1:18하.

우리는 반드시
바울의 사례에서
공과를 배워서,
유대교적인 실행을
하나님의 신약 경륜과
혼합시키는 데서
구원받아야 한다.
그러한 혼합은
잘못된 것일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가증한 것이다
— 행 21:18-27, 31, 36, 히 10:29.

우리는
바울이
자신을 박해하는 사람들에게서
구출받기 위해
로마 시민권을 사용하여
가이사에게 호소함으로,
자신의 사역의 노정을
마치려고 했던 것에서
반드시 공과를 배워야 한다
— 행 22:25-29, 23:10-11,
25:8-12, 26:32.

바울은
주님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기 원했지만,
주님의 사역을
가능한 한 더 수행하기 위해
여전히 오래 살기를
힘썼다
— 행 20:24.

하나님은
그분의 주권으로
바울을 구출하시어,
모든 위험한 상황과 함정에서부터
그를 분리시키시고
조용한 감옥으로
보내셨다.
이것은 바울이
가이사랴(행 24:27)에 있을 때나
로마(28:16, 23, 30)에 있을 때나,
그에게
조용한 환경과 시간을
제공해 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 결과 그는
그의 후기 서신서들을 통해,
자신이
주님에게서 받은
하나님의 신약 경륜의
비밀에 대한 계시를
역대에 걸쳐
교회에게
남김없이
해방할 수 있었다.

역대로
교회가
이러한 서신서들에서 받은
유익과 이익을
다 헤아리려면
영원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
(행 25:11).

우리는 모두
사도 바울의 본을 따라
유일한 몸을 위해
우주적으로
동일한 한 가지 일을
해야 한다
— 고전 3:12, 15:58, 16:10,
엡 4:11-16.

주님의 회복 안에 있는
일은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을
건축함으로
그리스도의 우주적인 몸의
건축에 이르는 것이다
— 엡 2:21-22, 고전 16:10.

오늘날
네 종류의
일꾼들이 있다.

첫째 종류의 일꾼은
현시대의
하나님의 사역의 필요에
적합한 동역자들이다.
이러한 일꾼들은
주님께 처리를 받고
한마음 한뜻 안에 있는
적은 무리의 사람들이다.

둘째 종류의 일꾼은
좀 더 젊은 동역자들이다.
그들은 기꺼이
연장한 동역자들의
지시를 받고,
그들과의 동역 아래 있으며,
겸손하게 따르고
배우려고 한다.

셋째 종류의 일꾼은
앞선 동역자들에게
기꺼이 복종하려고 하지 않고
교파에 속해 있지도 않으면서,
계속 우리와의 교통 안에
머무는 것을
기뻐하는 사람들이다.

넷째 종류의 일꾼은
교파에 있는
설교자들과 자유 전도자들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일꾼은
첫째와 둘째 종류의
동역자들이다.
셋째와 넷째 종류의
동역자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그들이
자신의 길을
선택하도록 두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에게는
우리와 같은 길을 가도록
정하지 않으셨으므로,
우리는
그러한 사람들에게 감히
어떤 말을 하지 않는다.

상황이 어떠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을
하기 위해
이곳에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일을
간섭할 수 없고,
여기에서
다른 사람들의 일을
허물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사도 바울의 본을 따라
유일한 몸을 위해
우주적으로
동일한 한 가지 일을
해야 한다
— 고전 3:12, 15:58, 16:10,
엡 4:11-16.

주님의 회복 안에 있는
일은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을 건축함으로
그리스도의 우주적인 몸의
건축에 이르는 것이다
— 엡 2:21-22, 고전 16:10.

오늘날
네 종류의 일꾼들이 있다.

첫째 종류의 일꾼은
현시대의
하나님의 사역의
필요에 적합한
동역자들이다.
이러한 일꾼들은
주님께 처리를 받고
한마음 한뜻 안에 있는
적은 무리의 사람들이다.

둘째 종류의 일꾼은
좀 더 젊은
동역자들이다.
그들은 기꺼이
연장한 동역자들의
지시를 받고,
그들과의 동역 아래 있으며,
겸손하게 따르고
배우려고 한다.

셋째 종류의 일꾼은
앞선 동역자들에게
기꺼이 복종하려고 하지 않고
교파에 속해 있지도 않으면서,
계속 우리와의 교통 안에
머무는 것을
기뻐하는 사람들이다.

넷째 종류의 일꾼은
교파에 있는
설교자들과
자유 전도자들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일꾼은
첫째와 둘째 종류의
동역자들이다.
셋째와 넷째 종류의
동역자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그들이
자신의 길을 선택하도록
두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에게는
우리와 같은 길을 가도록
정하지 않으셨으므로,
우리는 그러한 사람들에게
감히 어떤 말을
하지 않는다.

상황이 어떠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을 하기 위해
이곳에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일을
간섭할 수 없고,
여기에서
다른 사람들의 일을
허물지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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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replies on “교회의 확산을 위해 주님의 일의 한 흐름 안에 우리 자신을 지키고 사탄의 계략들에서 구원받도록 주님의 긍휼을 받음”

6일

행 20:22-23
보십시오,
이제 나는
영 안에 매이어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내가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모르지만,
다만 내가
아는 것은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성령께서
각 도시에서
나에게
엄숙히 일러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행 23:11
그날 밤
주님께서
바울 곁에 서서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에 관한 일들을
엄숙히 증언한 것처럼
로마에서도
증언해야 한다.”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행동은
다섯 가지의 느낌과 가르침을
거스른 것이었다.
먼저,
바울은
성령께서
그에게 주신
긍정적인 느낌에
순종하지 않았다.
둘째로,
바울은
성령께서
그에게 금지하는 느낌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듣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행동에서
흐름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이 행동에
문제가 있음을
나타내는 것임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셋째로,
바울은
신언자 아가보가
예언적인 경고를 하였지만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넷째로,
바울은
몸의 느낌을
거슬렀다.
다섯째로,
바울은
주님께서 가르치신
분명한 말씀을
거슬렀다.
주님은 일찍이
이 도시에서 박해가 있다면,
이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피하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마 10:23).
바울은 사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필요가 없었고,
예루살렘에 가야 하는
어떤 중요한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많은 고난이
거기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울 안에는 원래
로마로 가야 한다는
느낌이 있었다.
성령은
그가
로마에서
주님을 위해
증언해야 한다는 것을
그에게 계시하심으로써
그의 느낌을
확증하셨다
(행 23:11).
결국 바울은
로마에 가게 되었지만
출입이 불편한 상황이었다.
그는
자유로운 몸으로
로마에 갈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로마에 가게 되었다.
… 이때부터
바울의 움직임은
매우 큰 제한을
받게 되었다.

바울은
감옥에 있는
매우 불편한 상황에 있었지만,
감옥에서
매우 깊은 공과를
배웠고
보배로운 많은 서신서들을
썼다.
… 바울은
고린도에서 로마로
곧장 가야 했지만,
바울 안에 있는
낡은 요소들과
규례들에 대한 애착이
그를
얽어매는 것이 되어
그를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만일 이천 년 동안
주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계속 성령께서 전진하시도록
허락해 드렸다면,
교회는
이미 오래전에
성숙하였을 것이다.
… 만일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곧은 길을 걸어가신다면,
교회의 확산은 결코
우리에 의해
제한받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에는
네 종류의
일꾼들이 있다.
첫째 종류의 일꾼은
현시대의
하나님의 사역의
필요에 적합한
동역자들이다.
이러한 일꾼들은
주님께 처리를 받고
한마음 한뜻 안에 있는
적은 무리의 사람들이다.
둘째 종류의 일꾼은
좀 더 젊은 동역자들이다.
그들은 기꺼이
연장한 동역자들의
지시를 받고,
그들과의
동역 아래 있으며,
겸손하게 따르고
배우려고 한다.
셋째 종류의 일꾼은
앞선 동역자들에게
기꺼이 복종하려고
하지 않고
교파에 속해 있지도 않으면서,
계속 우리와의 교통 안에
머무는 것을
기뻐하는 사람들이다.
넷째 종류의 일꾼은
교파에 있는
설교자들과
자유 전도자들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일꾼은
첫째와 둘째 종류의
동역자들이다.

동역자가
한 지방에 있을 때는
그 지방에 있는 교회와
동역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과 교회는
서로 나누어질 수 없다.
한 동역자가
한 지방에서
일하는 동안에,
그는
동시에
그 지방의 형제들 중
한 명이다.
교회가
성도들에게
일을 안배할 때,
동역자들은
그 지방에 있는 형제들과
똑같은 위치에 서서
똑같은 방식으로
안배를 받아야 한다.

셋째와 넷째 종류의
동역자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그들이
자신의 길을
선택하도록
두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에게는
우리와 같은 길을 가도록
정하지 않으셨으므로,
우리는
그러한 사람들에게
감히 어떤 말을
하지 않는다.
…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을
하기 위해
이곳에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일을
간섭할 수 없고,
여기에서
다른 사람들의 일을
허물지도 않을 것이다.

 

5일

행 16:6-7
성령께서
아시아에서
말씀 전하는 것을
막으셨으므로,
그들이 …
비두니아로
가고자 하였지만,
예수님의 영께서
허락하지 않으셨다.

행 16:9
… 밤에
바울에게
이상이 보였는데,
어떤 … 사람이
서서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라고 하며
그에게
간청하였다.

사도행전 16장
6절부터 12절까지는
심지어 바울도
안에
문제들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성령은
바울이
나아가
교회를 확산하기를
원하셨지만,
그는
성령의 인도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가
앞으로 갈지,
뒤로 갈지
망설이고 있었을 때,
밤에
꿈 속에서
어떤 사람이
나타나
그에게
유럽의 마케도니아로
건너와 달라고
말하였다
(9-10절).
이것은
주님의 일을 하는
우리 모두가
항상 겪는 어려움이
무엇인지를
보여 준다.
우리는
어느 지방에 가서
그곳에 거한 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안정이 되면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다.

만일 바울이
성령께
정복되지 않았다면
교회는
유럽으로
확산될 수 없었을 것이다.
… 교회가
확산되기 위해서는
유대 종교의 속박,
인간적인 의견들,
옛 관념들을 가진 자아가
깨뜨려져야 한다.
우리는
교회가 확산되려고 할 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문제를
자주 만나게 된다는 것을
보게 된다.
첫째는
외적인 문제이고,
둘째는
동역자들 사이의 문제이며,
셋째는
자아와
낡은 인간적인 감정의 문제이다.
교회가
훨씬 일찍
유럽으로
확산되어야 했지만,
이러한 문제들이
그것을
늦추어지게 하였다.
교회가
확산되는 데 있어서
가장 마지막
어려움 혹은 관문은
바로 자아이다.
만일 우리가
자신의 낡은 감정과
낡은 관계 안에
머물러 있다면,
교회의 확산은
무한정 연기될 것이다.
자아라는 어려움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이상이 필요하다.
우리가
이것을 돌파한다면
교회는
확산될 것이다.

바울의
이런 낡은 관념은
그의 제이 차 사역 여행에서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그의 제삼 차 사역 여행에서도
분명히 나타났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로마에 있는 교회에게
편지를 쓸 때,
바울 안에는
로마에 가 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으며
스페인까지 갈
뜻이 있었다
(롬 1:15, 15:23-24, 28).
사도행전 19장 21절에서도
바울은
이러한 느낌을
언급하고 있다.
이것은
교회의 확산과 관계된
성령의 뜻이었다.
성령은
바울에게
교회의 확산을 위해
서유럽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계시하셨다.

그러나 바울은
그의 제삼 차 사역 여행에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이전에 방문했던
소아시아와 마케도니아와 그리스에서
보냈다.
… 원칙적으로 말해서,
바울은
제삼 차 사역 여행에서
교회의 확산을 위해
많은 것을
성취하지 못했다.
바울은
제삼 차 사역 여행에서
돌아오면서
마케도니아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결심했고,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가려고 하였다.
우리는
이것이
성령의 뜻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예루살렘에서
바울은
어떤 문제들에 부딪혔고
유대인들에게 붙잡혔다
(행 21:27-30).

로마서 15장에서
바울은
로마와 스페인으로
가야 한다는 것에 대해
매우 분명했다.
또한 사도행전 19장에서도
바울은
로마로 갈 것이라고
다시 말했다.
바울의
이러한 느낌은
교회의 확산과
매우 많은 관련이 있었다.
왜냐하면 마케도니아와 그리스에
도달한 후에
유럽에서의 확산의
다음 단계는
이탈리아로,
특별히 로마로
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다음 단계는
스페인으로 가는 것이었다.
스페인에 이르렀다면
사도는 아마도
그곳이
땅끝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로마서를 썼을 때,
바울은
로마에 대한 관심으로
가득했고
성령은
그가
로마로 가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바울은
그의 마음속의
얽히고설킨
유대인과의 혈육 관계에
붙잡혀 있었다.
로마서 9장 3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나의 형제들,
곧 육체에 따른
나의 동족을 위해서라면,
차라리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기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 바울은
그의 유대교적인 관념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다.

만일 바울이
그때
유대인들에게
붙잡히지 않았다면,
이방인 형제들은
제물을 드린
바울의 행위를
알고 난 뒤
매우 크게 혼란스러워했을 것이다.
구약 시대와 신약 시대의 경계,
율법과 은혜의 경계가
흐릿해졌을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것은
분명 잘못한 것이었다.

 

4일

행 15:19
그러므로 내 판단으로는
이방인들 가운데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사람들을
우리가
괴롭히지 말고,

행 15:39-41
그래서 심한 다툼이 일어나
그들이 서로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를 타고
키프로스로 갔다.
한편 바울은
실라를 선택한 뒤에,
형제들을 통하여
자신을
주님의 은혜에 맡기고
떠나갔다.
그리고 바울은
시리아와 길리기아를
거쳐 가면서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였다.

교회가
밖으로 확산될 때,
사탄은
여러 사람들을 통해
세 가지 어려움을
일으켰다.
이 세 가지 어려움은
교회의 확산을
제한하였다.

교회가 확산될 때
가장 먼저
직면하게 되는 어려움은
유대교의
제한과 묶임이었다
(행 15:1-34).
당시 유대 땅의
믿는 이들은 여전히
유대교의 전통을
지키고 있던
유대인들이었다.
그들은
유대교의 시각…으로
교회를 바라보았다.
… 유대인들은
그들의 율법과 규례와 의식이 모두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고
경건한 것이라고
믿었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잘 준수하는 사람들이라고
여겼다.
사탄은
이러한 생각을 이용하여
교회를
심각하게 제한하였다.

이천 년의 교회사를 통해
우리는
교회가 확산될 때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을 통해
이루어진 것을
본다.
하나님은
그들을
강하게 하셔서
종교적인 의식과 규례
그리고 죽은 문자를
돌파하게 하셨다.

한 면에서 우리는 당연히
성경 말씀을 지키고
진리의 가르침을 따라
성경의 빛 가운데서
살며 행동해야 한다.
… 그러나
또 다른 면에서 우리는
이러한 성경의 지식,
진리의 빛이
죽은 것인지
아니면 살아 있는 것인지
물어보아야 한다.
만일 우리에게 있는 것들이
죽은 교리에 불과하다면,
이것은
교회를
제한하고 방해할 것이다.

사도행전 15장은
교회의 눈을
열어 주고
교회를
유대교의 억압과
예루살렘의 통제에서
벗어나게 한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교회는
자유롭게
확산될 수 있었다.
사탄은
유대교와 예루살렘을 사용하여
교회의 확산을
통제하고 억압하고
금지하고 속박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방인들에게 가기를
원하셨고,
땅끝까지 이르기를
원하셨다.
하나님은
온 땅에
그분의 아들의
증거가 있기를
원하셨다.
바울에게는 참으로
이러한 이상이 있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몇 년 후에
에베소서를 쓰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이 함께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엡 3:6).

유대교의 어려움이
해결된 후,
바울과 바나바는 즉시
이방 지역으로 나아가
복음을 전했다.
외적인 종교의 문제가
해결되었지만,
이제 그들은
내적이고 주관적인 문제에
봉착했다.
즉 바나바와 바울,
이 두 사람이
불일치되는 상황에
부딪히게 되었다
(행 15:35-41).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함께 형제들을 방문하기를
원했으나
바울은
그것이
마땅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그들 가운데
다툼이 일어나게 되었다.
사실 그들 두 사람의 다툼은
사탄이 일으킨 일이었다.
바나바와 바울,
이 두 사람이
한마음 한뜻이
될 수 없었기 때문에
교회의 확산은
매우 큰 손상을 받았다.
… 본래 함께 일하던
형제들이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게 되면,
이것은
교회의 확산을
제한한다.

바울과 바나바 사이의
다툼은
교회의 확산을
약화시켰다.
함께 일하던
두 사도가
이제는 서로 나누어져,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서쪽으로 나아가
키프로스로 갔고,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북쪽으로 향하여
시리아와 길리기아로 갔다
(행 15:39-41).
우리가
이 부분의 성경을
자세히 읽어 본다면,
우리는
성령의 뜻을
읽어 낼 수 있다.
바울은
소아시아 일대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곳에 남아 있기를 원했지만,
성령은
그가
그곳에 머무는 것을
막으셨다
(16:6).
후에 그는
비두니아로 가고자 하였지만
예수님의 영께서
허락하지 않으셨다
(7절).
왜 그런가?
이것은
다른 이유가 없고
다만 교회의 확산을 위해서였다.
성령은
교회를 확산시키시기 위해
바울에게
그가
유럽으로 가야 한다는
이상을 보여 주셨다.
바울은
이상을 보고
부담을 가지게 되었고
소아시아에서
바다를 건너
마케도니아로 갔다
(9-12절).
그 결과
교회는
소아시아에서부터
유럽으로 확산되었고,
남쪽으로는
아테네와 고린도까지
확산되었다
(17:15, 18:1).

 

3일

행 9:20-22
곧바로 여러 회당에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선포하니,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모두 놀라며 말하였다.
“이 사람은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을
심하게 해치던 이가 아닙니까?
그가
여기에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가기 위한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사울은
더욱 힘을 얻어,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을
증명하여,
다마스쿠스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황하게 하였다.

사도행전 9장은
하나님께서
당시에는 사울이라고 불리었던
바울을 선택하신 것을
보여 준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을 동정하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을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고
주님을 반대하며
그리스도인들에게
해를 입힌 사람을
선택하셨다.

아나니아는
복음이 왜
사울에게 전해져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적인 관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 관념을 부서뜨리기 위해
어떤 일을 하셨다.
우리의
좁고 잘못된
인간적인 관념은
교회의 확산을 통해
깨어지고
산산조각 나야 한다.

우리는
이 시간에
교회를
박해하는 사람이
다음 시간에는
복음을
전파할 수 있다는 것을
반드시 믿어야 한다.
하나님은
확산을 원하시기 때문에
능히 이러한 일을
하실 수 있다.

사도행전 10장은
주님께서
복음 전파를 위해
땅에서 움직이시는 것이
하늘 보좌에서 수행되는
그분의 행정 아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히 8:1, 행 7:56).
모든 사도들과 복음 전파자들은
하나님의 왕국 복음을
확산시키기 위해
땅에서
하늘의 위임을
수행했으며,
지금도
수행하고 있다
(행 10:11).

복음은
온갖 부정한(죄악된)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사람이 사는 세상의
네 모퉁이로
확산되고 있다
(눅 13:29, 행 10:11).

주님은
마태복음 16장에서
천국 열쇠들을
베드로에게
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19절).
… 베드로는
오순절날에
유대인들을 위해
문을 열었다.
그러나 고넬료의 집에서
그는
이방인들을 위해
문을 열었다.
… 이때 성령은
공식적으로
교회를
이방인들에게
확산하셨고
장벽을
돌파하셨다.

안디옥에 있는 교회도 또한
교회의 확산에 대한
이야기의 일부이다
(행 13:1).

사도행전 13장에 기록된
신언자들과 교사들 다섯 명은
각각 다른 배경과 교육과 신분을 가진
유대인들과 이방인들로
구성되었다.
이것은 교회가
사람의 배경에 상관없이
모든 인종과 모든 계층의 사람들로
구성된다는 것을
가리키며,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에게 주어진
영적 은사들과 기능들은
타고난 신분에
근거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리킨다
(행 13:1).

그러나 안디옥에 있는
좋은 상황은
여전히 충분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오셔서
바나바와 바울을
외지로 나가서 일하도록
보내셨는데,
그 목적은
교회를 확산하기 위해서였다
(행 13:2-12).

사도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그들 가운데
교회들을 세우기 위한
제일 차 여행에서
키프로스로 갔다.
그는
그곳에
오래 머물지 않았고,
곧이어 소아시아로
즉 오늘날의 터키로
향하였다.
소아시아에서
그는
여러 지방에
교회들을 세움으로,
전진된 교회의 확산을
가져왔다
(행 13-14장).

제이 차 사역 여행에서
바울은
본래 아시아 지역에서
일하려고
생각하였으나,
성령은
그에게
이상을 주셔서
마케도니아, 즉 유럽으로
가게 하셨다.

바울이
마케도니아에서
첫 번째로 세운 교회는
빌립보 교회였다
(행 16:12).
… 데살로니가에 간 후에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베뢰아(17:10)와 아테네(15절)로 갔고,
후에 고린도로 갔으며(18:1)
다시 에베소를 통과하여(19절)
안디옥으로 돌아왔다(22절).

 

2일

행 1:8 그러나 성령께서
여러분 위에 임하시면
여러분이
능력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입니다.”

행 8:1
… 그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일어났다.
그래서 사도들 외에는
모든 사람이
유대와 사마리아 전 지역으로
흩어졌다.

교회가 확산되면
어려움들은 곧바로 제거된다.
좁은 시야,
편협한 마음,
지역적인 관념
그리고 몸의 표준에 맞지 않는 것들이
모두 제거된다.
유대인들은
교회가
고넬료의 집으로 확산됨으로써
좁은 시야를 제거하게 되었다.
오순절날에 나타난 교회는
아직 분명한 형태를
이루지 못했으나,
고넬료의 집안사람들이
구원받고 난 후
교회는
분명한 형태를
이루게 되었다.

교회는
우주적이기 때문에
확산되어야 한다.
가장 큰 축복을 받은 교회는
가장 많이 확산한 교회이다.
만일 어떤 지방의 교회에
계속 확산이 없다면,
그 교회의 어려움은 반드시
갈수록 더 많아질 것이고
결국에 교회는
매우 연약하게 될 것이다.
한 면에서
교회의 확산에 있어서
우리는
진지하고 신중해야 하며,
주님께서
오셔서 일하시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결코
제멋대로
경솔하게 행동해서는 안 되고,
사람의 방법으로
그 일을
선동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또 다른 면에서
우리는
교회가 확산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하고,
각지에서
교회를 일으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 교회의
기본적인 원칙은
교회가
영원하며 우주적이라는 것이다.
교회는 반드시
이 땅에서
지속적으로
확산되어야 한다.
교회의 성장과
교회의 건축은 바로
이 확산에
근거를 둔다.

만일 한 지방의 교회가
확산되지 않는다면,
교회의 본성은
하락할 수 있고
교회의
우주적이고 영원한 특징을
잃어버릴 수 있다.
… 교회의 확산은
사람의 방법으로 격려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교회의 확산은
주님의 생명이
성장함으로써
되는 것이다.
… 예루살렘 교회가
일어난 지 얼마 안 되어
하나님은
박해로 말미암아
그분의 자녀들을
각지로 흩어지게 하셨다.

교회의 확산은
수많은 장애를
돌파할 수 있고
수많은 폐단을
제거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지방에
교회가 세워졌지만
성도들의 마음은
오히려 좁아졌는데,
예루살렘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말할 수 있다.
거기에
많은 구약의 전통과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외부와의 왕래를
끊게 되었다.
… 그들은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멸시하고
다른 사람들과 왕래하지 않았다.

교회가 확산되기 시작할 때,
잘못된 관념들은
그것이
지역에 관한 것이든,
인종에 관한 것이든,
서로의 차이점에 관한 것이든
모두 산산조각 난다.

우리의
닫혀 있는 모든 생각은
바로 교회의 확산에 의해
제거된다.
우리는
신약에서
예루살렘에
교회가 일어난 지
얼마 안 되어
하나님께서
큰 돌을
그들 가운데
던지신 것과 같은
상황이 일어난 것을
본다.
그것은 참으로
큰 돌이었고
마치 큰 ‘폭탄’처럼
그들을 모두
뿔뿔이 흩어지게 하였다.
그것은
그들을
예루살렘에서
떠나게 하였다.
왜냐하면 교회는
유대인들의 것도 아니고
예루살렘에 속한 것도 아니며
바로 우주적인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신 것이다.

사도행전 8장은
제자들이
흩어져서 갔던
첫 번째 지방이
베들레헴이 아니고
사마리아였음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1-25절).
사마리아는
지리적으로
유대와 이방 땅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곳에 거주하고 있는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혼혈인이었다.
… 사마리아 사람들이
구원받았다는
소식을 접한
예루살렘의 성도들은
매우 놀라워하며
즉시 그들을 방문하도록
사도들을 보내었다.
사도들이 도착하여
그들을 위해 기도하자
성령은
즉시 그들 위에 내려오셨고,
하나님께서 직접
이 확산의 일을
확증하셨다
(15-17절).
… 사도행전 8장에서
교회의 확산의
두 번째 단계가
빌립이
에티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 결과
복음이
아프리카로
확산되었다
(26-39절).

 

신언노트, 2018 12 02

오순절날에 시작되었고
 또 오늘날까지
 모든 세대들을 통하여 흘러온,
 그 신성한 생명의 흐름은,
 하나님의 목표를 위한
 딱(just; 단지) 하나의 흐름이고
 그분의 단체적인 표현을 위한
 그 교회를
 건축합니다:

우리가
 주님께
 우리의
 전체 존재 안에서의
 그 우위를
 (the preeminence; 그 탁월함을)
 드릴 때,
 곧 그분을
 우리의
 첫 번째 사랑으로
 만들 때
 (making; …이 되게 한다면),
그분께서
 우리에게
 그 신성한 흐름이
 되시고,
 우리 안에서와
 또 우리에게서 밖으로
 그 첫 번째 일들로서
 흐르십니다;
그 첫 번째 일들은
 우리의 첫 번째 사랑이신
 주님에 의해
 동기가 부여되고,
 주님께로부터
 유출되며
 (issue; 흘러나오며),
 또 주님을
 표현합니다.

오직 그 첫 번째 사랑에 의하여
 동기가 부여되는
 일들만이
 금, 은, 또 보석들입니다.

그 교회의
 기본적인 원칙은
 그것이
 영원하고
 또 우주적이며,
그래서 그 교회가 반드시
 그 땅 위에
 지속적으로
 확산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교회의 성장과
 그 교회의 건축함은
 확산함에
 (spreading; 퍼짐에)
 기초합니다:

그 교회의 확산함은
 주님의 생명 안에서의
 성장과
 또 주님의 생명의
 흘러 나감(flowing out),
 곧 생명의
 넘쳐흐름에 의하여
 야기됩니다
 (is brought about; 초래됩니다).

그 교회가
 확산하기 시작할 때,
 잘못된 개념들은
 (erroneous concepts; 틀린 사고방식들은)
 그 개념들이
 지역적이든,
 인종적이든,
 서로 차별적이든 상관없이,
 산산이 부서집니다;
우리의 모든
 옹졸함이
 (close-mindedness; 속 좁음이)
 제거되는 것은
 확산함을 통해서입니다.

사도행전 8장은
 그 교회의 확산 안에 있는
 그 첫 번째 걸음이
 (the first step; 그 첫 단계가)
 사마리아를 향하여
 있었고(1-25절),
 또 그 두 번째 걸음이
 에티오피아를 향하여,
 곧 아프리카를 향하여
 있었다는 것을(26-39절)
 보여 줍니다;
이것은
 그 교회가
 우주적이고
 또 확산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각각의 모든
 종족과(tribe)
 또 [한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과(tongue)
 또 백성과(people)
 또 국민을(nation) 향하여
 우리가
 그 복음을
 반드시 전파해야만 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사도행전 9장은
 하나님의
 사울(나중에 바울)을 선택하심을
 보여 주는데,
 이는
 사람의 그 개념에
 반대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좁은, 곧 잘못된
 사람의 개념은
 교회의 확산함을 통하여
 깨지고
 또 산산이 부서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한 사람이
 한때에는
 그 교회를 핍박하고 있고
 그 다음 때에는
 그 복음을
 전파하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반드시 믿어야만 합니다.

사도행전 10장은
 주님의
 땅 위에서의
 복음 전파의 움직임이
하늘 안에서의
 그 왕좌 위의
 그분의 행정 아래
 있다는 것과
또 그 복음이
 사람이 사는 그 땅의
 네 모퉁이들까지
 확산될 필요가 있고
 (그래서)
 모든 종류들의
 깨끗하지 않은 (죄 많은)
 사람들을 모으고,
 그리스도의
 구속하는 그 피로
 그들을 깨끗하게 하며
 또 다시 새롭게 하시는
 (renewing; 부흥시키시는, 부활시키시는)
 그 성령으로
 (with the … Holy Spirit; 그 거룩한 영으로)
 그들을 씻는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사도행전 13장은
 안디옥에 있는 그 교회 안에,
 주님을 향하여
 섬기고 있었던
 (were ministering; 사역하고 있었던, 공급하고 있었던)
 그 다섯 신언자들과 또 교사들이
 유대인들과 또 이방인들로
 구성되었고,
 각각 한 다른 배경, 교육, 또 신분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계시합니다;
이것은
 그 교회가
 그들의 배경에 상관없이
 모든 인종들과 또 계층들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고
또 그 몸의 지체들에게 주어진
 그 영적인 선물들과(gifts; 은사들과)
 또 기능들이
 그들의 타고난 신분에
 기초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의 몸의
 이 다섯의
 신실하고 또 추구하는
 지체들을 통하여,
주님께서
 한 큰 걸음을 취하셨고
그분의 일과 움직임을 위해
 바나바와 또 사울을
 따로 떼어 두셨으며
그 이방 세상을 향하여
 그 왕국의 복음을
 (the gospel of the kingdom; 그 왕국인 그 복음을)
 확산하셨습니다.

그것은
 절대적으로
 그 영에 의한,
 그 영 안에서의,
 또 그 영과 함께 한
 한 움직임이었고
그 하늘들 안에 계시는
 그 머리와
 땅 위에 있는
 그리스도의 몸의
 신실하고 또 추구하는 그 지체들의
 공동 작용을
 (the coordination;
 공동 작업을, 조화를, 일치를, 조정을)
 통하였습니다.

그 복음을 확산하는
 그 사도 바울의
 첫 번째 여행에(On … trip),
 그는
 키프러스로(Cyprus; 사이프러스로) 갔고
 또 그러고 나서
 소아시아로(Asia Minor; 터키로) 갔으며
 많은 지방의 교회들을
 세웠습니다.

바울이
 바나바로부터
 따로 떨어진 후에,
 그는
 유럽으로의
 (빌립보[Philippi],
 데살로니가[Thessalonica],
 베뢰아[Berea],
 아테네[Athens],
 고린도[Corinth],
 또 에베소[Ephesus]를 통하여
 다시 안디옥[Antioch]으로 돌아오는)
 그의 두 번째 사역 여행에(on … journey)
 나갔습니다(went out).

바울의 세 번째 여행은
 안디옥에서부터(from Antioch)
 갈라디아(Galatia),
 브루기아(Phrygia; 프리지아),
 에베소,
 마케도니아(Macedonia),
 또 그리스(Greece)를 향하였고
 예루살렘(Jerusalem)을 향하였습니다.

바울의 네 번째 여행은
 가이사랴(Caesarea)에서부터
 로마(Rome)로 향하였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주님의 긍휼을
 받아들여서
 그 교회를 확산함과 또 건축함을
 좌절시키는
 사탄의 책략들에서부터
 구원받아야만 하고,
 그분의 몸을 건축함을 위한
 그 시대의 흐름 안에서
 우리 자신들을
 지켜야만 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외적이고(outward; 형식적이고)
 또 죽은
 규례들(ordinances),
 사람의 의견들,
 또 그것의(its; 그)
 낡은 개념들을 가진
 그 자아로부터
 구원받아야만 합니다;
주님께로부터
 긍휼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누구든지
 이 문제들 안에서
 구원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거기까지(to which)
 구원받는
 그 정도가(the degree)
 그 교회가
 거기까지
 건축될 수 있는
 그 정도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베드로의
 교훈에서부터
 (from the lesson;
 수업[가르침, 공과, 본보기]에서부터)
 배워서
 우리의
 종교적인 전통들과
 또 낡은 배경의
 장막들에서부터
 (from the veils; 너울들에서부터)
 구원받아야만 하고
 그 결과(so that;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의
 이상을
 보고
 또 (그) 아래 살아
 그 복음의 진리를
 붙잡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바나바의 교훈에서부터
 배워서
 사람의 의견들과
 타고난 관계들에서부터
 구원받아야만 합니다
 —개인적인 관계들 때문에
 그 동역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분쟁들은
 (disputes; 논쟁들은, 논란들은, 말다툼들은)
 끔찍합니다
 (terrible; 무섭습니다, 지독합니다, 형편없습니다);
 이것을
 잘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반드시
 아볼로의 교훈에서부터
 배워서
 하나님의 신약 경륜의
 한 완전한 계시가 부족한
 한 사역에서부터
 또 그 시대의 사역과
 완전하게 하나가 아님에서부터
 구원받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사도행전 16장
 6절부터 12절 안에 있는
 바울의 교훈에서부터
 배워야만 합니다;
이 절들은
 한 장소에 가서
 고정되고
 (become set; 굳어지고)
 또 정착하게 되는
 (become … settled down;
 편안히 앉게 되는[자리 잡게 되는])
 경향이 있으며,
 움직이기를
 (to move; 이사하기를)
 원하지 않는
 일꾼들의
 (of workers; 노동자들의, 근로자들의)
 문제를
 가리킵니다;
옛 관계들, 옛 애정들,
 옛 경향들, 또 옛 개념들은
 우리가
 그 내주하시는 영의
 내적인(inner; 친밀한) 인도하심을
 따르지 못하게 합니다:

그 거룩하신 영께서는
 (The Holy Spirit; 그 성령께서는)
 바울과 또 그의 동역자들을
 금하셨고
 (forbade; 금지하셨고, 허락하지 않으셨고),
 또 예수님의 영께서는
 그들에게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did not allow; 허용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거룩하신 영의 금하심은
 우리를 분별시키고
 (separates; 분리시키고, 따로 떨어지게 하고),
 우리를 거룩하게 하며
 (sanctifies; 신성하게 하며),
 또 예수님의 영께서는
 우리에게 허락하시거나
 또는 우리에게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그 거룩하신 영께서는
 “아니다(no)”라고 말씀하셔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또 예수님의 영께서는
 “가라(go)”라고 말씀하셔서
 예수님의 인성 안에서
 (in the humanity …; … 인성으로)
 우리를 내보내시고
 (send us out;
 우리를 밖으로[많은 사람들에게] 보내시고)
 그 십자가 아래에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반드시
 바울의 교훈에서부터
 배워서
 그 몸 생활을
 실행해야만 하고
또 그 몸의 지체들을 통한
 그 영의 말씀을
 취해야만 하며,
그것을
 그 머리께로부터의
 한 말씀으로
 (as a word; … 한 말씀인 그것을)
 순종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야고보의 잘못과
 또 예루살렘 안에 있는 교회의
 황폐하게 하는
 (devastating; 철저하게 파괴하는)
 그 혼합에서부터(mixture)
 배워야만 합니다:

예레미야는
 우리의 마음들 위에
 써질 수 있는
 (could be written; 기록될 수 있는)
 생명의 법에 관하여
 말했고,
또 바울은
 우리의 영 안에 있는
 생명의 영의 법에(the law) 관하여
 말했지만,
야고보는
 문자들의 율법을
 (the law of letters; 문자로 된 율법을)
 매우 귀하게 여겼고
 (treasured; 소중히 간수하였고)
 또 높였습니다
 (uplifted; 들어 올렸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힘과
 또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으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같은 형상이 됨에 관하여
 (of … being conformed to …;
 … 죽음에 순응함[일치함, …과 모양이 같아짐]에 관해)
 말했습니다;
그 새 예루살렘 안으로(in) 완결되는
 그 몸 생활을 산출하는 것이
 이 생활입니다
 (this life; 이 생명입니다).

신성한 계시의 빛 안에서,
 야고보의
 가장 큰 결핍은(lack; 부족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자기-함양은
 (self-cultivation; 자기-경작은, 자아-수련은)
 하나님의 경륜을
 수행하지 못하고,
 오직 자기-부인이
 합니다.

야고보는
 예루살렘 안에 있는 교회 안에
 그 율법을 위하여 열성적인
 수천의 믿는 유대인들이 있었다고
 자랑했지만,
바울은
 그리스도의
 가장 충만한 누림을 위하여
 (for the fullest enjoyment of Christ;
 그리스도를 가장 완전하게 누리기 위해)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며,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를 붙잡으며,
 그리스도를 추구하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높이는 것에
 열성적이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바울의 교훈에서
 배워서
 유대교의(Judaic; 유대인의) 실행들을
 하나님의 신약 경륜과
 혼합함으로부터
 구원받아야만 하는데,
이는(which)
 틀릴 뿐 아니라
 또한 하나님의 눈들 안에
 가증스러운 것입니다
 (abominable; 극도로 끔찍한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그가(he; 바울이)
 그의 사역의 노정을
 (course; 과정을, 경주로를)
 마칠 수 있도록
 (might fulfill; 완료할 수 있게)
 그의 로마 시민권을 이용하여
 그 자신을
 그의 박해자들로부터 구한
 바울의
 가이사에게
 호소함의(appealing; 항소함의)
 교훈에서부터
 배워야만 합니다:

바울은
 주님을 위하여
 그의 생명을
 기꺼이 희생 제물로 바치기 원했지만,
그가
 가능한 한 많이
 주님의 사역을
 수행하도록
 그는
 더 오래 살려고
 여전히(still; 그런데도) 노력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주권(sovereignty; 통치권) 안에서
 바울을 구출하셨고,
그래서 그분께서
 그 모든 위험한 상황들과
 함정에 빠드림들로부터
 그를 분리시키실 수 있었고
 또 한 조용한 감옥으로
 그를 보내셨습니다;
이것은
 가이사랴 안에서든
 또는 로마 안에서든,
 그에게
 한 조용한 환경을 제공하고
 또 그에게
 시간을 주기 위해서였는데,
그래서 그는
 그의 마지막 서신서들을 통하여
 주님께로부터
 그가 받아들였던
 하나님의 신약 경륜의
 비밀의 계시를
 그 세대들 동안 내내
 (throughout the generations; 그 세대들 전체에 걸쳐서)
 그 교회에게
 남김없이(exhaustively; 철저하게)
 해방할 수 있었습니다
 (might release;
 풀어 줄 수[공개할 수, 발표할 수] 있었습니다).

그 교회가
 그 세대들 동안 내내
 이 서신서들로부터
 받아들인
 그 혜택과 이익은
 (the benefit and profit; 그 이득과 수익은)
 측정하려면
 영원의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will take eternity to measure;
 평가하기에 영원을 취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 사도 바울의
 본을 따라야만 하고
 그 유일한 몸을 위하여
 우주적으로
 똑같은 그 하나의 일을
 해야만 합니다:

주님의 회복 안에 있는
 그 일은
 지방에 있는 그 교회들을
 건축함을 위하여 있고
 그리스도의 우주적인 그 몸을
 건축함에 이르도록 [있습니다]
 (unto …; 건축할 때까지 [있습니다]).

오늘날
 네 종류들의
 일꾼들이 있습니다.

그 첫 번째 종류는
 그 현재의 시대 안에서
 하나님의 사역의 필요에
 어울리는
 (match; 일치하는)
 그 동역자들입니다;
이것은
 주님에 의하여
 처리를 받았고
 (have been dealt with; … 받아 왔고)
 또 한마음 한뜻 안에 있는
 한 적은 무리의 사람들입니다.

그 두 번째 종류는
 더 젊은 그 동역자들입니다;
그들은 기꺼이
 그 지도를
 (the direction; 그 감독을, 그 명령을)
 받아들이고
 또 더 나이든 그 동역자들의
 공동 작업 아래
 (under the coordination;
 공동 작용 아래, 조화 아래, 조정 아래)
 오며,
 또 그들은 기꺼이
 겸허 안에서
 (in humility; 겸손하게, 스스로 낮추어)
 따르고 또 배우려고 합니다.

그 세 번째 종류는
 연상의(senior; 선임의) 그 동역자들에게
 복종하기를 꺼려하고,
 그 교파들에
 속하지 않지만,
 우리와의 교통 안에
 남아 있는 것을
 기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네 번째 종류는
 그 교파들 사이에 있는(among; 중의)
 그 설교자들과
 (the preachers; 전도자들과)
 또 자유로운 복음 전파자들입니다
 (free evangelists; 자유 전도사들입니다).

우리가
 오늘날
 필요로 하는 것은
 그 첫 번째와
 또 그 두 번째 종류의
 동역자들입니다;
그 세 번째와
 또 그 네 번째 종류의
 동역자들에 관하여,
 우리는 단지(only; 오직)
 그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의
 좁은 길을(pathway; 진로를)
 선택하도록
 허용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can only let them choose);
어떤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우리가 하는 대로
 똑같은 그 길을 취하도록
 정하지 않으셨고
 (has not assigned;
 배정하지[맡기지, 배치하지] 않으셨고),
 또 우리는
 어떤 것도
 그들에게
 감히 말하지 않습니다
 (dare not say;
 용기를 내서[과감하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 상황이 무엇이든지,
 우리는
 여기에 있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위임하신
 (has committed; 맡기신, 위탁하신)
 그 일을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일에
 해를 끼칠 수 없고
 (cannot interfere with;
 … 일을 방해할 수 없고),
 또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일을
 허물면서
 여기에 있지 않습니다.

 

1일

요일 1:3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전해 주는 것은
여러분도
우리와 함께
교통을 갖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교통은
아버지와
또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것입니다.

계 22:1
또 그 천사는
나에게
수정처럼 빛나는
생명수의 강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 강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에서
흘러나와
그 성의 길 가운데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오순절날에 시작되어
수 세대에 걸쳐
바로 이 순간까지 흘러온
이 신성한 생명의 흐름은
단 하나이다.
이것이 가는 곳마다,
이것이 흐르는 곳마다
많은 흐름들이 아니라
오직 하나의 흐름만이 있다.
여러분이
사도행전을 읽어 본다면,
하나의 흐름, 하나의 조류만이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이 흐름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안디옥으로 흘러갔고,
또한 안디옥에서
아시아로 흘러갔다.
그리고 어느 날 주님은
이 흐름이
유럽으로, 마케도니아로
향하기를
원하셨는데,
이 흐름 안에서
일하고 있던
사도 바울은
그 점에 관해
분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그는
이 흐름이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나아가려고 한다는 것에 대해
분명해져서
그도
이 흐름과 함께
가야 했다.
이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이다.
마케도니아에서
이 흐름은
고린도로, 로마로,
스페인으로, 유럽 각 지역으로
갔다.
역사는
이 흐름이
유럽에서
서방, 곧 미국으로 흘러갔고,
서방에서
동양으로
그리고 남반구로
흘러갔음을
말해 준다.
교회 역사를
읽을 때,
우리는
이 흐름이
결코 멈춘 적이 없음을
발견한다.
그리고 이 흐름이
가는 곳마다,
단 하나의 흐름만이
있었음을
볼 수 있다.
… 오직 하나의 흐름이 있으며,
여러분은
이 한 흐름 안에
자신을 지켜야 한다.

여러분이
사도행전과
사도 바울이 쓴 서신서들을
읽어 본다면,
그 당시에
복음을 전파하고
주님을 위해
일한 사람들 중에
많은 이들이
이 흐름 안에
있지 않았던 것을
보게 될 것이다.
… 여러분이
교회 역사를
주의 깊게 연구한다면,
수 세대에 걸쳐 항상
성령의 한 흐름만이
흐르고 있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위해 일했지만
그들 모두가
이 하나의 흐름 안에서
일한 것은 아니었다.
여러분이
주님의 긍휼과 은혜를
얻는다면,
여러분은
오늘날에도
흐르고 있는
바로 이 한 흐름 안으로
인도될 것이다.

이렇게 흐르는
성령의 흐름은
그리스도의 몸의 교통이다.
이것은
우리 신체에서의
피의 순환과
비슷하다.
피는 항상
몸의 한 부분에서
다른 부분으로 흐르고
다시 되돌아온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몸의 교통인
성령의 흐름은
이 땅 위의
모든 성도들 가운데
흐르고 있다.

이 흐름으로부터
금과 베델리엄(진주)과 보석이
나온다.
창세기 2장의
그림을 보자.
이 귀한 물질은
하나님의 거처의
건축을 위한 것이다.
이 흐름이 있는 곳마다
교회 건축을 위한
재료가 산출될 것이다.
구약에 있는
하나님의 거처인
성막을 보라.
대제사장의
어깨받이와 가슴받이 위에는
금테에 물린
귀한 보석들이 있다.
사도 바울은
교회가
금과 은과 보석으로
건축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것은
성령의 흐름에서
나오는 재료들이다.
요한계시록에서
우리는
새 예루살렘성 전체가
금과 진주와 보석으로
건축된 것을
보았다.
그 모든 재료들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가?
그것들은 단지
신성한 생명의 흐름으로부터
산출되어 나온 것이다.
신성한 생명의 흐름이
있는 곳에
교회가
건축될 수 있도록
어떤 귀한 재료들이
있게 된다.
여러분과 나는 결코
교회 건축을 위한
재료들을
산출할 수 없다.
오직 신성한 생명의 흐름,
성령의 흐름만이
그 일을
할 수 있다.
이 흐름은
수 세대에 걸쳐
흘러왔으며
오늘날에도
흐르고 있다.
그리고 이 흐름이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건축을 위해
금과 진주와 보석이
산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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