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ocessed Triune God,
His Work,
and the Result of His Work
레위기 26장 1절과 2절은
우상을 만들지 말고
여호와의 안식일을 지키며
그분의 성소를 귀히 여기는 것에 대해
말한다.
우리는
이 세 가지 요점의
내재적인 의미,
곧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과
그분의 일과
그분의 일의 결과를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우상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목표도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럴 때 우리는
우리의 신성한 유업을
누릴 수 있는
위치를
잃지 않게 된다
— 레 26:1.
하나님 자신이
우리의
유일한 목표이셔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는
하나님 외의 그 무엇도
추구해서는 안 된다
— 시 73:25-26.
‘우상들’은
참되신 하나님을 대치하는
이단적인 대체물들을
가리킨다
— 요일 5:21.
참되신 하나님,
곧 우리의 생명으로
우리가 체험하는
삼일 하나님을
대치하는 것은
어떤 것이든
우상이다
— 요일 5:21.
참되신 하나님의
참된 자녀들인
우리는
참되시고 실재이신
하나님,
곧 우리와
유기적으로 하나이시고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 되시는
하나님을
대치하는
이러한 이단적인 대체물과
모든 헛된 대치물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깨어 있어야 한다
— 요일 3:1, 5:11-13, 20-21.
신약은
우리의 하나님이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이시라는 것,
곧 육체 되심과
인간 생활과
십자가에 못 박히심과
부활의 과정을
통과하신 분이시라는 것을
계시한다
— 요 1:14, 6:57상, 히 9:14, 롬 1:3-4.
‘과정을 거치셨다’는 것은
삼일 하나님께서
신성한 경륜 안에서 통과하신
단계들을 가리키고,
‘완결되셨다’는 것은
과정이 끝마쳐졌다는 것을
가리킨다
— 요 1:14, 2:22, 7:39, 갈 3:14.
하나님은
그분의 본성과 실질에 있어서
영원하고 변하지 않으시지만,
그분의 경륜 안에서
과정을 통과하셨다
— 요 1:14, 고전 15:45하.
하나님은
육체가 되시기 전에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셔서
신성한 본성만을
가지고 계셨으나,
육체 되심과 인간 생활과
십자가에 못 박히심과 부활을 통해
삼일 하나님은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셔서
그 영이 되셨다
— 요 7:39.
그 영은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의 완결이시다
— 갈 3:2, 5, 14, 5:5, 16, 18, 25, 6:8.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은
‘그 영’이시다
— 갈 3:2, 5, 14.
우리는 모두
삼일 하나님,
사람 예수님,
그분의 인간 생활,
그분의 죽음,
그분의 부활의 복합체이신
그 영에 대한
이상을 보아야 한다
— 요 7:39, 행 16:7,
롬 8:9-11, 빌 1:19, 갈 3:14.
그 영은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의
궁극적인 완결,
곧 과정을 거치시고
복합되시고
모든 것을 포함하시고
생명을 주시고
내주하시고
일곱 배로 강화되시고
완결되신
영이시다.
이 영은
그분께서
선택하시고
구속하시고
거듭나게 하시고
새롭게 하시고
변화시키시고
같은 형상이 되게 하시고
영광스럽게 하신,
세 부분으로 된
사람들의
생명과
생명 공급과
모든 것으로서
그들의
영원한 몫이 되신다.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시기 전에는
완결되신 영께서
‘아직 계시지 않았다’
— 요 7:39.
하나님의 영은
태초부터 계셨지만
(창 1:2),
‘그리스도의 영’(롬 8:9)이시자
‘예수 그리스도의 영’(빌 1:19)이신
그 영은
요한복음 7장 39절 당시에는
‘아직 계시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그분께서 아직
영광스럽게 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주 예수님은
부활하셨을 때
영광스럽게 되셨고,
이렇게 영광스럽게 되심으로써
하나님의 영은
육체가 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되셨다
— 눅 24:26, 빌 1:19.
육체 안에 계신
그리스도이신
마지막 아담은
부활 안에서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다.
그때 이후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은
그리스도의 육체 되심과
십자가에 못 박히심과
부활의 실재를
포함하여
신성한 요소와
인성의 요소를
모두 가지고 계신다
— 고전 15:45하, 행 16:7, 롬 8:9.
‘완결되신 영’이라는 용어는
그 영께서
과정을 거치셨고,
따라서 완결되신 영이 되셨음을
가리킨다
— 요 7:39, 갈 3:14.
그 영은
육체 되심과
인간 생활과
십자가에 못 박히심과
부활의
과정을 통과하신 후의
삼일 하나님이시다
— 요 7:39.
삼일 하나님은
모든 과정의
단계들을 통과하신 후 이제
완결되신 영,
곧 하나님의 신약 경륜의 복이시다
— 창 1:1-2, 갈 3:14.
완결되신 영
곧 복합되신 영은
오늘날
그리스도 안의
믿는 이들이
들어갈 수 있는
신성하고 비밀한
영역이시다
— 요 14:20.
우리는
하나님의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이
전적으로
그분 자신에 의해
이루어졌으므로
우리는 다만
그것을 누리며
어떠한 일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레 26:2상.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루신 것을
받아들이고
중요시하며
존중하고
누리는 것과
우리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하려고 애쓰지 않는 것을
배워야 한다
— 요 1:16, 20:22,
고전 3:21-23, 4:7.
우리는
자신의 일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일과
그분 안에서
안식하는 것을
귀히 여겨야 한다
— 마 11:28-29.
하나님은
우리가
자신의 행함을
멈추고,
그리스도로
대치되며,
그리스도 외의
그 무엇에 대해서도
입맛을 가지지 않기를
원하신다
— 갈 2:20, 요 6:57,
사 55:1-2, 58:3.
측량할 수 없이 풍성하신
그리스도를
누리는 길은
우리의 생활과 행함과 활동에서
자신을 멈추고
그분을
우리의
참된 안식일의
안식으로 취하며,
우리의
생명과 인격과 대체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부활 능력이신
그리스도를 체험함으로써
변화될 것이고,
우리를 좌절시키는
땅에 속한
모든 것을 초월하여
하늘들로 솟아오를 것이다
— 마 11:28-30, 사 40:28-31.
우리는
삼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무엇을 이루셨는지를
알아야 하며,
아버지와 아들과 그 영의 일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
— 마 28:19, 고후 13:14.
아버지의 일은
다음의 항목을
포함한다.
창세전에
믿는 이들을
선택하심
— 엡 1:4.
아들의 자격에 이르도록
믿는 이들을
미리 정하심
— 엡 1:5.
그분의 아들을
죄의 육체의 모양으로
보내심
— 롬 8:3.
아들 안에서
오시고
아들 안에서
일하심
— 요 5:17, 24, 30.
아들 안에서
죽음을 통과하심
— 히 9:12, 행 20:28, 요일 1:7.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일으키심
— 행 2:24.
그리스도를
하늘들의 영역 안에
앉히시고,
만물을
그분의 발아래
복종시키시며,
그분을
만물 위에
머리가 되게 하시어
교회에게 주심
— 엡 1:20-23.
믿는 이들을
부르시고,
용서하시고,
의롭다 하시고,
화목하게 하시고,
받으시고,
거듭나게 하시고,
씻으시고,
거룩하게 하시고,
영광스럽게 하심
— 롬 8:30, 33, 5:10, 14:3,
살전 2:12, 5:23, 히 8:12,
벧전 1:3, 요일 1:9.
그분의 아들의 영을
믿는 이들의
마음 안에 보내 주심
— 갈 4:6.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그분의 목적에 따라
부름 받은 사람들에게
모든 것이 협력함으로써
선이 이루어지게 하심
— 롬 8:28.
사탄을
믿는 이들의 발아래
짓밟히게 하심
— 롬 16:20.
많은 믿는 이들을
영광 안으로 이끄심
— 히 2:10.
그리스도의 일은
다음의 항목을
포함한다.
하나님을
사람 안으로
이끌어 오시고
하나님을
사람과
하나 되게 하심
— 요 1:1, 14.
사람들을
섬기심
— 마 20:28.
왕국의 씨를
뿌리심
— 마 13:19, 24, 37.
마귀에게서 나온
일을 제거하심
— 요일 3:8.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세상의 죄를
없애심
— 요 1:29.
죽음의 세력을 가진
마귀를 멸망시키심
— 히 2:14.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건축하셔서
단체적인 성전이
되게 하심
— 요 2:19-22.
생명 주시는 영이
되심
— 고전 15:45하.
주님으로서
신성한 경륜을
성취하시기 위해
모든 것에
그분의 주권을
행사하심
— 행 2:36.
교회를
건축하심
— 마 16:18.
멜기세덱의 계통에 따른
우리의 대제사장으로서
우리를 위해
중보 기도하심
— 히 5:10, 7:24-26.
땅의 왕들의 통치자로서
온 세상을 다스리심으로
복음이 확산되고
교회가 산출되게 하심
— 계 1:5.
그 영의 일은
다음의 항목을 포함한다.
세상을
책망하심
— 요 16:8-11.
믿는 이들을
거듭나게 하심
— 요 3:5-6.
믿는 이들에게
그분의 넘치는 공급을
주심
— 빌 1:19.
믿는 이들을
거룩하게 하심
— 살후 2:13.
믿는 이들을
변화시키심
— 고후 3:18.
믿는 이들을
모든 실재 안으로
인도하심
— 요 16:13.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이들의 마음에
부어 주심
— 롬 5:5.
믿는 이들에게
기름 바르심
— 고후 1:21, 요일 2:20, 27.
그리스도의 몸의
하나가
되심
— 엡 4:3-4.
교회들에게
말씀하심
— 계 2:7, 11, 17, 29, 3:6, 13, 22.
우리는
하나님의 성소를
귀히 여겨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거처와 체현과 표현이신
그리스도 안에,
그리고 하나님의
거처와 영원한 나타남을 위한
그리스도의 확장인
교회 안에 계신
하나님의 온 존재를
귀히 여길 뿐 아니라
그리스도와 교회 안에서
하나님께서 성취하신
모든 것을
귀히 여기는 것을
의미한다
— 레 26:2하, 요 1:14, 14:2-3,
골 2:9, 고전 12:12,
엡 2:21-22, 딤전 3:15-16.
먼저 우리는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과
우리의 안식을 위한
그분의 일을 가지며,
그런 다음
그분의 일의 결과로
그리스도의 표현과 확대인
교회를 가진다
— 레 26:1-2.
“그들이
나를 위하여
성소를 만들게 하여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할 수 있게 하여라.”
— 출 25:8.
출애굽기는
하나님의 구원의 목표가
이 땅에
하나님의 거처를
건축하는 것임을
계시한다
— 출 25:8-9, 29:45-46,
40:1-2, 34-38.
레위기 26장 2절에 나오는
성소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거처와 체현과 표현,
그리고 교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거처와 영원한 나타남을
함축한다
— 엡 2:21-22, 계 21:10.
교회는
하나님의 집
곧 하나님의 거처이다
— 딤전 3:15, 히 3:6, 벧전 4:17.
하나님의 집인
교회는
하나님의 거처,
곧 하나님께서
안식을 얻으시고
신뢰하실 수 있는
곳이다
— 엡 2:21-22.
하나님의 교회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집이다
— 딤전 3:15.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의 가족이다
— 엡 2:19.
거처(집)와 가정(가족)은
한 실체,
곧 하나님 자신께서 내주하시는
부름받고 거듭난
한 무리의 사람들이다
— 벧전 1:3, 2:5, 고전 3:16.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몸의 지체들과
분리되지 않으시고
그들 안에
거하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버지는
그분의 가족 가운데서
분리된 구성원이 아니라
그분의 모든 자녀들 안에
계신다
— 롬 8:10, 12:4-5, 고후 6:16.
하나님의 집은
신성한 생명 안에서
유기적이고,
신성한 본성 안에서
유기적이며,
삼일 하나님 안에서
유기적이다.
교회는
유기적이기 때문에
자란다
— 엡 2:21.
바울은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 대해 말할 때
하나님을
살아 계신 하나님이라고
불렀다
— 딤전 3:15.
교회 안에 사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은
교회에게
단지 객관적인 분이 아니라
반드시 주관적인 분이셔야 한다
— 고전 3:16.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집인 교회 또한
그분 안에서,
그분에 의해,
그분과 함께
살아 있다.
살아 계신 하나님과
살아 있는 교회는
함께 살고 움직이고 일한다.
하나님의 집
곧 아버지의 집인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에 의해
신성한 영광으로
영광스럽게 되신
결과인
확대되고 우주적인,
신성하고도 인간적인
합병체이다
— 요 12:23, 13:31-32, 14:2.
디모데전서 3장 15절과 16절은
하나님의 집인
교회가
하나님께서
육체로 나타나신 것임을
가리킨다.
이 절들은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
육체로 나타나신 분이실 뿐 아니라
몸인 교회도
하나님이
육체로 나타나신 것임을
함축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몸이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집인
교회 안에서
나타나신다.
교회는
육체 안에서의
그분의
확대된
단체적인 표현이다.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과
그분의 일과
그분의 일의 결과에 대한
이상을 볼 때,
우리가 본
이상이
우리를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될
순종하는 사람들로
조성할 것이다
— 레 26: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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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replies on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과 그분의 일과 그분의 일의 결과”
6일
엡 2:19
그러므로 이제부터
여러분은
나그네도 아니고,
체류자도 아니며,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딤전 3:16
모두가 인정하듯이,
경건의 비밀은
위대합니다!
그분은
육체로
나타나셨고,
그 영 안에서
의롭게 되셨으며,
천사들에게
보이셨고,
모든 민족 가운데
전파되셨으며,
세상이
그분을 믿었으며,
그분은
영광 안으로
들려 올라가셨습니다.
교회는 또한
하나님의 집이다
(벧전 2:5).
이것은
교회가 단지
하나님의 거처라는
뜻이 아니다.
‘오이코스(oikos)’라는
이 헬라어 단어는
집, 거처만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뜻도 있다.
교회인 우리는
하나님의 집이며,
하나님의 거처이다.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이다.
하나님의 집과 하나님의 가족은
한 실체,
곧 하나님 자신께서
내주하시는
부름받고 거듭난
한 무리의 사람들이다.
하나님에 의해
거듭나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있고,
이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그분의 모든 것을 가지고서
내주하시는,
부름받은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거처이자
그분의 가족이다.
이것은
회중 그 이상이다.
이것은
사람들의 무리나 조직과
다르다.
이것은
유기적인 어떤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신성한 생명 안에서,
신성한 본성 안에서,
삼일 하나님 안에서
유기적인 어떤 것이다.
바울은
교회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집이라고 말하고
(딤전 3:15),
이 집이
자란다고 말한다
(엡 2:21).
교회는
두 방면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에 대하여
교회는 몸이며,
하나님에 대하여
교회는 집이다.
그리스도는
머리이시고
교회는
머리의 몸이다.
이것이
교회의
한 가지 기능이다.
하나님은
아버지이시고
교회는
그분의 집이다.
이것은
교회의
또 다른 기능이다.
그리스도께서
머리이시고
교회가
그분의 몸이듯이,
하나님은
아버지이시고
교회는
그분의 집이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는
유기체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집으로서
교회는
살아 있는 실체,
살아 있는 집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 대해 말할 때
특별히 하나님을
살아 계신 하나님이라고
불렀다.
교회 안에 사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은
교회에게
단지 객관적인 분이 아니라
반드시 주관적인 분이셔야 한다.
하나님의 집인
교회 안에서
사실 뿐만 아니라
행동하시고
움직이시고
일하시는
하나님은
살아 계신 분이시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기 때문에,
교회 또한
그분 안에서,
그분에 의해,
그분과 함께
살아 있다.
살아 계신 하나님과
살아 있는 교회는
함께 살고 움직이고 일한다.
… 그러므로 우리의
집회와 봉사와 사역 안에서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사시고
움직이시고
말씀하시고
행하신다는
인상을
사람들에게
주어야 한다.
나는 최근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경륜의
목표가
완결되신 하나님과
거듭난 믿는 이들의
확장되고
우주적이며
신성하고도
인간적인
합병체라는 것을
매우 분명히
보게 되었다.
디모데전서 3장 15절과 16절은
하나님의 집인
교회가
경건의 비밀,
곧 하나님께서
육체로 나타나신 것임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몸이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집인
교회 안에서
나타나신다.
교회는
육체 안에서의
그분의
확대된
단체적인 표현이다.
디모데전서 3장 16절에서
우리는
대명사 ‘그분’이
하나님께서
육체로 나타나신 분이시며
경건의 비밀이신
그리스도를 가리킨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비밀’에서 ‘그분’으로
주체가 바뀐 것은
하나님께서
육체로 나타나신 분이신
그리스도께서
경건의 비밀이시라는 것을
함축한다
(골 1:27, 갈 2:20).
이 경건의 비밀이
합당한 교회생활이다.
이러한 생활 또한
하나님께서
육체로 나타나신 것이다.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과
그분의 일과
그분의 일의 결과에 대한
이상을 볼 때,
우리가 본 이상이
우리를
순종하는 사람들로
조성할 것이다.
5일
고후 3:18
그러나 우리 모두는
너울을 벗은 얼굴로
거울처럼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반사함으로써
그분과 동일한 형상으로
변화되어
영광에서 영광에 이릅니다.
이것은
주 영에게서
비롯됩니다.
딤전 3:15
혹시 내가
늦어지게 되더라도,
그대가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알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기반입니다.
그 영은 언제나
세상을 책망하셔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깨닫게 하신다.
죄는
아담을 통해
들어왔고
(롬 5:12),
의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이며
(고전 1:30),
심판은
사탄에 대한 것으로서,
사탄은
죄의
창시자이며 근원이다
(요 8:44).
아담 안에서 우리는
죄에서 태어났다.
그 영은
믿는 이들을
거듭나게 하심으로
그들 안에서
일하신다
(요 3:5-6).
거듭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생명과 본성을
우리 안으로
분배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듭남은
신성한 분배의
실재이다.
그 영은 또한
그분의 넘치는 공급을
믿는 이들에게
주시기 위해
그들 안에서
일하신다.
빌립보서 1장 19절에서
바울은
“왜냐하면 여러분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의
넘치는 공급으로,
이러한 일이 결국에는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것을
나는
알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한다.
고린도후서 3장 18절은
“우리 모두는
너울을 벗은 얼굴로
거울처럼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반사함으로써
그분과 동일한 형상으로
변화되어
영광에서 영광에 이릅니다.
이것은
주 영에게서
비롯됩니다.”
라고 말한다.
우리가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반사할 때,
주님은
우리에게
그분의 어떠하심과
그분이 성취하신 것의 요소들을
우리에게
주입하신다.
그분은
이러한 요소들을
우리 안으로
분배하신다.
그 결과 우리는
신진대사적으로 변화되어,
생명의 본질을 가진
생명의 능력에 의해
그분의 생명의
모양을 가지게 된다.
신약은
그 영께서
믿는 이들에게
기름 바르신다는 것을
계시한다.
… 그 영은
우리 안에서
움직이시면서
하나님 자신을
우리 안으로
기름 바르시며,
그 결과
하나님의 요소가
우리의 조성 성분이 되고,
우리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갈망하게 된다.
요한계시록에서
우리는
그 영께서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본다
(2:7, 11, 17, 29, 3:6, 13, 22, 14:13).
레위기 26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또한
하나님의 성소를
귀히 여기라는
경고를 받았다
(2하절).
안식일이
많은 것을 상징하지만,
성소는
더 많은 것을 상징한다.
하나님의 성소를
귀히 여기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거처와 체현과 표현이신
그리스도 안에
(요 1:14, 골 2:9),
그리고 하나님의
거처와 영원한 나타남을 위한
그리스도의 확장인
교회 안에
(엡 2:22, 계 21:10)
계신
하나님의 온 존재를
귀히 여길 뿐 아니라
그리스도와 교회 안에서
하나님께서 성취하신
모든 것을 귀히 여기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 육십육 권은
세 가지,
곧 하나님과
하나님의 일과
하나님의 일의 결과를
완전하게 다루고 있다.
구약에서 우리는
예표들을 보며,
신약에서는
그 성취를 본다.
그러므로
성경 전체는
이 세 가지를
밝혀 준다.
먼저 우리는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과
우리의 안식을 위한
그분의 일을 가지며,
그런 다음
그분의 일의 결과로 완결되신
그리스도의
표현과 확대인
교회를 가진다.
우리는
이것을 볼
필요가 있다.
이 세 가지를
보는 것은
우리에게
하나님께
순종하고
동역하기 위한
견고한 기초를
제공해 줄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출애굽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지라도,
하나님의 구원의 목표가
그분께서
구속하신 백성을
이 땅 위에 있는
그분의 거처 안으로
이끄는 것이라는 사실에
깊은 인상을
받지 못한다.
하나님의 구원의 목표는
우리를
그분의 거처로
만드는 것이다.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거처인
교회는
하나님께서
안식을 얻으시고
신뢰하실 수 있는
곳이다.
하나님은
이 거처 안에서
사시고 움직이시면서,
그분의 뜻을
성취하시고
그분의 마음의 갈망을
만족시키신다.
4일
고후 13:14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히 2:14
자녀들이
피와 살을 가졌으므로,
그분 자신도
같은 모양으로
피와 살에
참여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분께서 죽으심으로써
죽음의 세력을 가진 자
곧 마귀를
멸망시키시고,
이사야서 40장 29절부터
31절까지에 따르면,
말씀을 받아들이고
거듭난 사람들은
지금
여호와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해고하는’ 것,
즉 우리의
생활과 행함과 활동을
멈추고
그리스도를
우리의 대채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31절은
그렇게 하나님을
앙망하는 사람은
독수리처럼
날개를 치며
올라갈 것이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의 부활 능력을
나타낸다.
그는
걷고 달릴 뿐 아니라
또한 우리를 좌절시키는
땅에 속한 모든 것을 초월하여
하늘들로
솟아오를 것이다.
이 사람이
변화된 사람이다.
우리는
신약에 계시된
하나님의 일을
살펴볼 것이다.
우리의 하나님은
일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요한복음 5장 17절에서
“나의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일하고 계시니”
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은
그것을 보여 준다.
신약에서
우리는
영원 과거에서의 하나님의 일,
그분의 옛 시대에서의 하나님의 일,
그분의 새 시대에서의 하나님의 일,
그리고 영원 미래에서의 하나님의 일 등과 같은
여러 방면에서의 하나님의 일을
볼 수 있다.
영원한 계획을
세우신 후에
하나님은
믿는 이들을
선택하셨다
(엡 1:4).
… 하나님의 선택은
하나님께서
골라 뽑으신 것이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 중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골라 뽑으셨으며,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그렇게 하셨다.
영원 과거에서의 하나님의 일은
또한 창세전에
믿는 이들을
미리 정하신 것,
곧 미리 표시하신 것을
포함한다
(엡 1:5).
하나님은
율법 아래 있는 이들을
구속하여
아들의 자격을
받을 수 있게 하시려고
그분의 아들을
죄의 육체의 모양으로
보내셨다
(롬 8:3).
아버지 하나님은
아들을 보내셨을 때,
아들과 함께 오시고
아들 안에서 일하셨다. …
근원이시며 창시자이신
아버지께서
아들을
보내셨다
(요 5:24, 30, 36-38, 13:20, 14:24).
새 시대 안에서의 하나님의 일은
그분께서
아들 안에서
죽음을 통과하신 것도
포함한다.
요한일서 1장 7절의
‘그분의 아들 예수님의 피’라는 말이
이것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의 구속을 위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다만 예수님의 피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의 피이기도 하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어 가고 계셨을 때,
하나님도
그분 안에서
죽음을 통과하고 계셨다는 것을
암시한다.
하나님은 또한
그분의 일을 통해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일으키셨다.
사도행전 2장 24절은
“하나님은
그분을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습니다.
이것은
그분께서
죽음에 붙잡혀 계실 수
없으셨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한다.
이 절과 32절에서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주 예수님을
살리셨다고
말한다.
우리는 계속해서
그리스도의 일을
생각해 볼 것이다.
… 그리스도는
육체 되심의 일을 통해,
하나님을
사람 안으로
이끌어 오시는
놀라운 일을
이루셨다
(요 1:1, 14).
우리가
누가복음을
철저하고 깊이
연구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육체 되심이
구주를 산출하기 위한 것만이 아님을
볼 것이다.
사실상
그리스도의 육체 되심은
신성을
인성 안으로
이끄는 것이었다.
육체 되심이라는
그리스도의 일을 통해
하나님은
사람 안으로
이끌리셨을 뿐 아니라
또한 사람과
하나 되셨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사람과 하나 되게 하는 일,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사람 이 둘을
두 본성,
곧 신성과 인성을 가진
한 인격이 되게 하시는
위대한 일을
성취하셨다.
마태복음 13장은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사역 안에서
왕국의 씨를 뿌리셨음을
계시한다.
요한계시록에서
하늘들의 주님이신
그리스도는
우주 안에 있는
신성한 통치의
행정관으로
계시되신다.
이러한 그리스도는
이 땅의 모든 상황이
하나님의 계획과 약속을 성취함으로
신성한 경륜을 이루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통치적인 활동들을
수행하시며
이 땅의 모든 일을
다스리고 계신다.
신언노트, 2018 10 21
레위기 26장 1절과 2절은
우상을 만들지 않음,
여호와의 안식일을 지킴,
또 그분의 성소를
존중함에 관하여
(of … reverencing;
귀히 여기는 것에 대해)
말합니다.
우리는
이 세 가지 요점의
본질적인 의미를
(intrinsic significance; 내재적인 중요성을)
—곧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
그분의 일,
또 그분의 일의 결과를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상을
가지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목표도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우리의 신성한 유업을
누릴 수 있는
위치를
잃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 자신께서
우리의
유일한 목표이셔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는
그분 외의 어떤 것도
추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상들’은
그 참되신 하나님에 대한
그 이단적인 대체물들을
언급합니다
(refers to; 말합니다):
우리의 생명으로서
우리에 의해 체험되시는
그 참되신 하나님,
곧 그 삼일 하나님을
대체하는 것은(replaces)
어떤 것이든
한 우상입니다.
그 진짜(genuine; 진정한) 하나님의
그 진짜 자녀들로서,
우리는
우리와
유기적으로 하나이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신,
우리의 진짜 또 실재의 하나님에 대한
이단적인 대신하는 것들로부터
(from heretical substitutes)
또 모든 헛된 대체물들로부터
(and from all vain replacements)
우리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경계해야만 합니다.
그 신약은
우리의 하나님께서
과정을 거치셨고
완결되신
그 삼일 하나님이시라는 것,
곧 육체 되심,
사람의 생활,
십자가에 못 박히심,
그리고 부활의
과정들을 통과하신
그 한 분이시라는 것을
계시합니다:
‘과정을 거치셨다’는 것은
그 삼일 하나님께서
그 신성한 경륜 안에서 통과하신
그 단계들을 언급합니다;
‘완결되셨다’는 것은
그 과정이 완료되었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본성과 실질에 있어서
영원하고 변하지 않으실지라도,
그분은
그분의 경륜 안에서
한 과정을
통과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육체 되심 전에
그분께서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셨고,
오직 그 신성한 본성만을
가지고 계셨지만,
육체 되심,
사람의 생활,
십자가에 못 박히심,
그리고 부활을 통하여,
그 삼일 하나님께서
과정을 거치셨고
또 완결되셨으며
(결국; to …)
그 영이 되셨습니다.
그 영은
과정을 거치신
그 삼일 하나님의 완결이십니다.
과정을 거치셨고
완결되신
그 삼일 하나님은
‘그 영’이십니다:
우리는 모두
그 영
—곧 그 삼일 하나님,
그 사람 예수님,
그분의 사람의 생활,
그분의 죽음,
그리고 그분의 부활의
복합체—에 관한
한 이상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과정을 거치신
그 삼일 하나님의
궁극적인 완결이신
그 영은
과정을 거치신,
복합되신,
모든 것을 포함하시는,
생명을 주시는,
내주하시는,
일곱 배로 강화되신,
완결되신
영이시고
그분의
선택받은,
구속된,
거듭나게 된,
새롭게 된(renewed),
변화된(transformed; 변형된),
같은 형상이 된(conformed; 동일하게 된),
그리고 영화롭게 된
세 부분으로 된 백성의
영원한 몫이(portion; 분여 재산이) 되시고
그들의
생명,
생명 공급,
또 각각의 모든 것들이십니다.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시기 전에는
완결되신 영께서
‘아직 계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태초부터 계셨지만,
‘그리스도의 영’이시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신
그 영은
요한복음 7장 39절 당시에는
‘아직 계시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그분께서 아직
영광스럽게 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님은
부활하셨을 때
영광스럽게 되셨고,
이렇게 영광스럽게 되심으로써
하나님의 영은
육체가 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되셨습니다.
육체 안에 계신
그리스도이신
마지막 아담은
부활 안에서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습니다.
그때 이후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은
그리스도의 육체 되심과
십자가에 못 박히심과
부활의 실재를
포함하여
신성한 요소와
인성의 요소를
모두 가지고 계십니다.
‘완결되신 영’이라는
용어는
그 영께서
과정을 거치셨고,
따라서 완결되신 영이
되셨음을
가리킵니다.
그 영은
육체 되심과
인간 생활과
십자가에 못 박히심과
부활의
과정을
통과하신 후의
삼일 하나님이십니다.
삼일 하나님은
모든 과정의
단계들을 통과하신 후
이제
완결되신 영,
곧 하나님의 신약 경륜의
복이십니다.
완결되신 영
곧 복합되신 영은
오늘날
그리스도 안의
믿는 이들이
들어갈 수 있는
신성하고 비밀한
영역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안식일을
지켜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이
전적으로
그분 자신에 의해
이루어졌으므로
우리는 다만
그것을 누리며
어떠한 일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루신 것을
받아들이고
중요시하며(regard; 주목하며)
존중하고(respect)
누리는 것과
우리 자신들을 위하여 스스로
어떤 것을 하려고
하지 않는 것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일을
부인하고,
오직 하나님의 일을
존중하며
그분 안에서
안식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신의 행함을
멈추고,
그리스도로
대체되며(be replaced),
그리스도 외의 어떤 것도
맛보는 것을
멀리하기를
원하십니다.
측량할 수 없이 풍성하신
그리스도를
누리는 길은
우리의 생활과 행함과 활동에서
자신을 멈추고
그분을
우리의
참된 안식일의
안식으로 취하며,
우리의
생명과 인격과 대체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부활 능력이신
그리스도를 체험함으로써
변화될 것이고,
우리를 좌절시키는
땅에 속한
모든 것을 초월하여
하늘들로 솟아오를 것입니다.
우리는
삼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무엇을 이루셨는지를
알아야 하며,
아버지와 아들과 그 영의 일을
높이 평가해야 합니다.
그 아버지의 일은
(다음의 항목들을)
포함합니다:
창세전에
믿는 이들을
선택하심.
아들의 자격에 이르도록
믿는 이들을
미리 정하심.
그분의 아들을
죄의 육체의 모양으로
보내심.
아들 안에서
오시고
아들 안에서
일하심.
아들 안에서
죽음을 통과하심.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일으키심.
그리스도를
하늘들의 영역 안에
앉히시고,
만물을
그분의 발아래
복종시키시며,
그분을
만물 위에
머리가 되게 하셔서
교회에게 주심.
그 믿는 이들을
부르시고,
용서하시고,
의롭다 하시고,
화목하게 하시고,
받으시고,
거듭나게 하시고,
씻으시고,
거룩하게 하시고,
영광스럽게 하심.
그분의 아들의 영을
그 믿는 이들의
마음들 안으로 보내 주심.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그분의 목적에 따라
부름 받은 사람들에게
모든 것이 협력함으로써
선이 이루어지게 하심.
사탄을
믿는 이들의 발아래
짓밟히게 하심.
많은 믿는 이들을
영광 안으로 이끄심.
그리스도의 일은
(다음의 항목들을)
포함합니다:
하나님을
사람 안으로
이끌어 오시고
하나님을
사람과
하나 되게 하심.
사람들을
섬기심.
왕국의 씨를
뿌리심.
그 마귀의 일들을
무효로 만드심.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세상의 죄를
없애심.
죽음의 세력을 가진
마귀를 파괴하심.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건축하셔서,
단체적인 하나로
만드심.
그 생명 주시는 영이
되심.
그 주님으로서
신성한 경륜을
성취하시기 위해
모든 것에
그분의 주권을
행사하심.
그 교회를
건축하심.
멜기세덱의 계통에 따른
우리의 대제사장으로서
우리를 위해
중보 기도하심.
땅의 왕들의 통치자로서
온 세상을 다스리심으로
복음이 확산되고
교회가 산출되게 하심.
그 영의 일은
(다음의 항목들을)
포함합니다:
세상을
책망하심.
믿는 이들을
거듭나게 하심.
믿는 이들에게
그분의 넘치는 공급을
주심.
믿는 이들을
거룩하게 하심.
믿는 이들을
변화시키심.
믿는 이들을
모든 실재 안으로
인도하심.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이들의 마음에
부어 주심.
믿는 이들에게
기름 바르심.
그리스도의 몸의
하나가
되심.
교회들에게
말씀하심.
우리는
하나님의 성소를
귀히 여겨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거처와 체현과 표현이신
그리스도 안에,
그리고 하나님의
거처와 영원한 나타남을 위한
그리스도의 확장인
교회 안에 계신
하나님의 온 존재를
귀히 여길 뿐 아니라
그리스도와 교회 안에서
하나님께서 성취하신
모든 것을
귀히 여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먼저 우리는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과
우리의 안식을 위한
그분의 일을 가지며,
그런 다음
그분의 일의 결과로
그리스도의 표현과 확대인
교회를 가집니다.
“그들이
나를 위하여
성소를 만들게 하여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할 수 있게 하여라.”
— 출 25:8.
출애굽기는
하나님의 구원의 목표가
이 땅에
하나님의 거처를
건축하는 것임을
계시합니다.
레위기 26장 2절에 나오는
성소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거처와 체현과 표현,
그리고 교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거처와 영원한 나타남을
함축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
곧 하나님의 거처입니다.
하나님의 집인
교회는
하나님의 거처,
곧 하나님께서
안식을 얻으시고
신뢰하실 수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거처(집)와 가정(가족)은
한 실체,
곧 하나님 자신께서 내주하시는
부름받고 거듭난
한 무리의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몸의 지체들과
분리되지 않으시고
그들 안에
거하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버지는
그분의 가족 가운데서
분리된 구성원이 아니라
그분의 모든 자녀들 안에
계십니다.
하나님의 집은
신성한 생명 안에서
유기적이고,
신성한 본성 안에서
유기적이며,
삼일 하나님 안에서
유기적입니다.
교회는
유기적이기 때문에
자랍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 대해 말할 때
하나님을
살아 계신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교회 안에 사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은
교회에게
단지 객관적인 분이 아니라
반드시 주관적인 분이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집인 교회 또한
그분 안에서,
그분에 의해,
그분과 함께
살아 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과
살아 있는 교회는
함께 살고 움직이고 일합니다.
하나님의 집
곧 아버지의 집인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에 의해
신성한 영광으로
영광스럽게 되신
결과인
확대되고 우주적인,
신성하고도 인간적인
합병체입니다.
디모데전서 3장 15절과 16절은
하나님의 집인
교회가
하나님께서
육체로 나타나신 것임을
가리킵니다.
이 절들은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
육체로 나타나신 분이실 뿐 아니라
몸인 교회도
하나님이
육체로 나타나신 것임을
함축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몸이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집인
교회 안에서
나타나십니다.
교회는
육체 안에서의
그분의
확대된
단체적인 표현입니다.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과
그분의 일과
그분의 일의 결과에 대한
이상을 볼 때,
우리가 본
이상이
우리를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될
순종하는 사람들로
조성할 것입니다.
3일
갈 3:14
그것은
아브라함의 복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방인들에게
이르게 하고,
또 약속하신 그 영을
우리가
믿음을 통해
받을 수 있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마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허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나에게서 배우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혼이
안식을 얻게 될 것입니다.
육체 안에 계신
그리스도이신
마지막 아담은
부활 안에서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다
(고전 15:45).
그때 이후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은
그리스도의
육체 되심과
십자가에 못 박히심과
부활의 실재를
포함하여
신성한 요소와
인성의 요소를
모두 가지고 계신다.
성경에서
그 영은
삼일 하나님의
완결이시다.
그러나 이 말은
그 영께서
어떠한 과정도
통과하지 않으신
삼일 하나님이시라는
뜻이 아니다.
그 영은
육체 되심과
인간 생활과
십자가에 못 박히심과
부활과
승천의
과정을 통과하신 후의
삼일 하나님이시다.
이러한 과정을 통과하신
삼일 하나님은 이제
신약의 복이신
완결되신 영이시다.
그러므로 그 영은
하나님의 신약 경륜의
복이시다.
우리가 오늘
들어갈 수 있는
신성하고도 비밀한 영역은
단순히 삼일 하나님이라는
신성하고도 비밀한
영역이 아니다.
그것은
완결되신 영과
공기 같은 영이신 그리스도라는
신성하고도 비밀한
영역이다.
‘완결되신 영’과
‘공기 같은 영이신 그리스도’라는
용어는
매우 특별하다.
레위기 26장 2절 상반절은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고”
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
전적으로
그분 자신에 의해
이루어졌으므로
우리는 다만
그것을 누리며
어떠한 일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루신 것을
누리기를
배워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어려운 공과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일하고
많은 것을 해야 한다고
배워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우리가
일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신 것을
귀히 여기고
그 안으로 들어가
누려야 한다고
우리에게 가르친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셨지만,
우리는
그분께서
이루신 것을
누리지 않을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것을
누리는 대신
우리는
그분께서 이루신 일을
제쳐 두고
계속 노력할 수 있다.
이것은
주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루신 것을
받아들이고
중요시하며
존중하고
누리는 것과
우리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하려고
애쓰지 않는 것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받아들이고
그것으로 인해
안식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을
무시하고
자신을 위해 스스로
어떤 것을 하려고
애쓴다.
이것이
믿지 않는 이들 가운데 있는
상황이며
믿는 이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믿는 이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신 일을
무시하고
자신을 위해
어떤 것을
이루려고
스스로 일한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그분의 일 안에서
안식할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이루신 것을
무시함으로써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다.
하나님 안에서
그리고 그분의 일 안에서
안식하는 것이
그분의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어떤 것을 한다는
명목 아래
하나님의 일을
무시하고
자신을 위해
스스로
어떤 것을 하려고 한다.
그러한 일은
겉으로는
좋게 보이지만,
실지로는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이루신 것을
누리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것을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이루신 것을
무시하는 대신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나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부인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일을
부인해야 하며,
하나님의 일을
존중하고
그분 안에서
안식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은
경륜을
가지고 계신다.
하나님은
그분의 경륜 안에서
그리스도를
중심과 전부가
되게 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한 가지 공과를
배우기 원하시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의 행함을 멈추고
그리스도 외의
모든 것에 대해
입맛을 잃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대치되어야 하고,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누려야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목적이다.
그분은
우리의 안식일이시며
우리의 양식이시다.
이제 우리는
그분 안에서
안식할 수 있으며,
그분을
먹을 수 있고,
모든 방면과 모든 일에서
그분을
우리의 대치물로
취할 수 있다.
2일
요 1:14
말씀께서
육체가 되시어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시니,
은혜와 실재가
충만하였다.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에게서 온
독생자의 영광이었다.
요 7:39
이것은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이 받을
그 영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아직
영광스럽게 되지 않으셨기 때문에,
그 영께서 아직
계시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과정을 거친’이라는
말을 비난하면서,
영원하시며
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과정을 거치신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변하지 않으시지만
과정을 거치셨다.
육체 되심이
과정이 아니었는가?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의 육체 되심 전까지
하나님은
육신의 몸을
가지지 않으셨다.
그러나 구유에서
태어나셨을 때,
그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육체 되심을 통해
아기가 되신 것이었다.
이사야서 9장 6절에 따르면,
우리에게 태어난
그 아기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불린다.
… 육체 되신 하나님이신
이 아기는
자라서
수년 동안
목수의 가정에서
사셨다.
우주의 창조주께서
나사렛의 한 목수의 가정에서
사셨다는 것을
상상해 보라.
그것은
과정이 아니었는가?
마찬가지로,
십자가에 못 박히심과
부활도
과정이 아니었는가?
하나님은 분명히
그리스도의
육체 되심과 인간 생활과
십자가에 못 박히심과 부활을 통해
과정을 거치셨다
하나님의 영은
태초부터 계셨지만
(창 1:1-2),
그리스도의 영(롬 8:9)이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영(빌 1:19)이신
그 영은
주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7장 37절과 38절에서
이 말씀을 하실 때
아직 계시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직
그분께서
영광스럽게 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을 때에
영광스럽게 되셨다
(눅 24:26).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하나님의 영은
육체가 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되셨고,
그리스도는
부활하신 날 저녁에
제자들 안으로
그 영을
불어 넣으셨다
(요 20:22).
지금 그 영은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기 전에
약속하신
‘또 다른 보혜사’,
곧 ‘실재의 영’(요 14:16-17)이시다.
그 영께서
하나님의 영이셨을 때에
그분에게는
신성한 요소만 있었다.
그리스도의
육체 되심과
십자가에 못 박히심과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영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되신 후,
그 영은
신성한 요소와
사람의 요소와 함께,
그리스도께서
육체가 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것의
모든 본질과 실재를
다 가지셨다
(요 7:39).
그 영은
삼일 하나님의
완결이시다
(마 28:19).
성경의 마지막에 가서
하나님은
그 영이라고 불리시고,
변화된 세 부분으로 된
사람은
신부라고 불린다
(계 22:17상).
… 완결은
완성을 의미한다.
우리의 하나님은
과정을 거치시고
복합되셨기 때문에
완성되셨다.
나는
우리 모두가
‘그’ 영에 대한
이상을 보기 바란다.
그 영은
삼일 하나님,
사람이신 예수님,
인간 생활,
죽음,
부활의
복합체이시다.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긍정적인 것들이
이 한 영,
즉 그 영 안에
복합되었다.
우리는
그 영에 대한
완전한 정의를
제시할 수 있다.
그 영은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의
궁극적인 완결로서,
과정을 거치시고
복합되시고
모든 것을 포함하시고
생명을 주시고
내주하시고
일곱 배로 강화되시고
완결되신
영이시다.
이 영은
그분께서
선택하시고
구속하시고
거듭나게 하시고
새롭게 하시고
변화시키시고
같은 형상이 되게 하시고
영광스럽게 하신,
세 부분으로 된
사람들의
생명과 생명 공급과 모든 것으로서
그들의
영원한 몫이 되신다.
요한복음 7장 39절은
그 영을 언급하면서,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시기 전에는
그 영께서 아직
계시지 않았다고
말한다.
…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
즉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되신 후,
하나님의 영은
육체가 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되셨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기 전에도
하나님의 영은
여호와의 영이셨고
성령이셨지만,
그 영은 아직
계시지 않았다.
그 영이라는 용어는
바울이
그의 서신서들에서
자주 사용했고,
요한도
요한계시록에서
사용했다.
요한과 바울은
그 영을 말할 때,
삼일 하나님의
모든 것을 포함하시고
생명 주시는
영을
언급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결국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은
그 영이시다.
1일
레 26:1-2
‘너희는
너희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너희는
너희를 위하여
조각상이나 기념 기둥을
세워서도 안 되며,
너희 땅에
석상을
세워 놓고
그것에 절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고,
나의 성소를 귀히 여겨야 한다.
나는 여호와다.’
레위기 26장 1절부터 20절까지는
우리에게
순종해야 할
기본적인 것들을
알려주는데,
여기에는
다음의 세 가지가
포함된다.
첫째, 우리는
우상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
(1절).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목표도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럴 때 우리는
우리의 신성한 유업을
누릴 수 있는
위치를
잃지 않게 된다.
둘째, 우리는
하나님의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
(2상절).
이것은
하나님의 일이
전적으로
그분 자신에 의해
이루어졌으므로
우리는 다만
그것을 누리며
어떠한 일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우리는
하나님의 성소를
귀히 여겨야 한다
(2하절).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거처와 체현과 표현이신
그리스도 안에(요 1:14, 골 2:9),
그리고 하나님의
거처와 영원한 나타남을 위한
그리스도의 확장인
교회 안에(엡 2:22, 계 21:10)
계신
하나님의 온 존재를
귀히 여길 뿐 아니라
그리스도와 교회 안에서
하나님께서 성취하신
모든 것을
귀히 여기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러한 요점들을
문자적으로 이해할 뿐 아니라,
또한 그 내재적인 의미를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희년 안에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이외의
다른 것을 추구한다면,
희년의 누림을
잃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이외의
다른 것을
목표로 추구한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우상이다.
… 우리는
한 목표, 유일한 목표만을
가져야 하는데,
이 목표는 바로
하나님 자신이다.
요한일서 5장 21절에서
요한은
이렇게
결론의 말을 한다.
“어린 자녀 여러분,
여러분 자신을 지켜
우상들을 멀리하십시오.”
여기서 ‘지키다’라는 단어는
이단들의 공격과 같은
외부의 공격에 대하여
자신을 방어하는 것이다.
‘우상들’은
이 서신서와 요한복음에
계시되고
또 앞 절에
언급된 대로,
영지주의자들과
케린투스 추종자들이
가져와서
참되신 하나님을
대치하는
이단적인 대체물을
가리킨다.
여기의 우상들은 또한
참되신 하나님을 대치한
모든 것을 가리킨다.
참되신 하나님의
참된 자녀들인 우리는
참되시고 실재이신 하나님,
곧 우리와
유기적으로 하나이시고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 되시는
하나님을 대치하는
이러한 이단적인 대체물과
모든 헛된 대치물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깨어 있어야 한다.
이것은
요한 서신의 결론으로서,
연로한 사도가
어린 모든 자녀에게 주는
경고의 말씀이다.
신약의 계시에 따르면
그 영은
많은 단계들을
통과하셨다.
물론 그 영은
구약에서 줄곧
하나님의 영과
여호와의 영과
거룩함의 영이셨다.
사천 년 동안의 인간 역사에서
하나님의 영은
결코 변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영 하나님께서
결코 변하신 적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큰 실수이다.
그 이유는,
사천 년의 인간 역사 후에
삼일 하나님께서
일정 기간 동안에
여러 과정을
통과하셨기 때문이다.
삼일 하나님은
여러 중요한 단계를 밟아
과정을 거치심으로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다.
‘완결되었다’는 말은
어떤 일이나 과정이
완성되고 끝마쳐졌음을
의미한다.
이에 대한 좋은 예가
요리이다.
… 육체가 되시기 전에,
하나님은
인성은 없으셨고
신성만 있으신
‘날’하나님이셨다.
그러나 육체 되심과 인간 생활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통해
하나님은
과정을 거치셨고
완결되셨다.
이제 그분은 더 이상
‘날’하나님이 아니시라,
신성과 인성과 인간 생활과
모든 것을 포함한 죽음과
능력 있는 부활과
초월하는 승천을
포함하신,
완결되시고 완성되신
삼일 하나님이시다.
이 모든 것이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 안에 있는
요소들이자 성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