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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부흥을 위한 거룩한 말씀

건축과 싸움 ― 교회를 건축하기 위해 영적 전쟁에 참여해야 할 필요성

느헤미야기 4장은 성의 재건에 관한 원수의 방해를 묘사한다.

원수들은 화를 내고 크게 분노했다. 그들은 유대인들을 조롱하고 유대인들의 건축 공사를 멸시했다.

원수들이 화가 난 것은 건축 공사가 진전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가서 예루살렘과 맞서 싸우기로 함께 모의하였다.

느헤미야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비방을 그들 자신에게 돌리시기를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신뢰했다. 이렇게 유대인들은 성벽을 건축했는데, 이는 그들에게 일할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느헤미야의 지시와 지도에 따라 밤낮으로 원수를 대비해 파수꾼을 세워 두었다.

그들은 느헤미야의 격려를 받으며 무기를 들고 싸울 태세를 갖추었다. 느헤미야는 그들에게 위대하고도 경이로우신 주님을 기억하고 그들의 가족들을 위하여 싸우라고 지시했다.

느헤미야의 부하들의 절반은 공사에 참여하여 일을 하였고, 절반은 무기를 들고 싸울 태세를 갖추었다.

한 면에서 이스라엘 자손은 싸울 준비를 하였지만, 다른 한 면에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위하여 싸우실 것을 믿으며 하나님을 신뢰하였다.

총사령관인 느헤미야는 원수와 맞서 싸울 태세를 갖춘 이들 가운데 있었다. 그는 야간 파수에도 참여하였고, 이러한 일들을 다른 이들에게 떠넘기지 않고 직접 그 일에 참여하였다.

하나님의 성인 교회를 건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건축은 싸움을 통해서만 수행될 수 있다.

이스라엘 자손이 포로 된 데서 돌아왔을 때, 에스라와 느헤미야와 여러 사람들이 일어나 격렬한 전쟁을 통해 성전과 거룩한 성을 재건하려 하였다.

느헤미야와 함께 건축 공사에 참여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한 손으로는 건축하는 일을 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전투를 하기 위해 무기를 잡았다(느 4:17).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건축을 위해 일할 때마다 분명 전투에 참여하게 될 것임을 계시한다.

하나님의 거처를 건축하는 것과 관련하여 하나님과 그분의 원수 사이에 실지적인 충돌, 곧 맹렬한 싸움이 있다.

원수는 하나님의 거처의 건축이 순조롭게 진전되는 것을 보기 싫어한다.

사탄은 중단시키고 방해하고 공격하고 파괴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왕국을 얻으시도록, 우리는 반드시 성전인 교회를 건축하고 전투를 해야 한다.

성도들이 교회생활의 확산을 위해 이주할 때, 그들은 전투를 하는 군대이다.

교회를 건축하는 이들은 반드시 건축하는 일과 싸우는 일을 동시에 해야 한다.

전쟁이 없고 싸우는 영이 없이는 건축이 없다. 건축의 일을 이루려면 소진될 정도로 전쟁을 치러야 한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건축하기 위해서는 영적 전쟁이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교회 안에서 거의 대부분의 믿는 이들이 이러한 영적 전쟁을 알지 못한다. 이것은 생명이 나약하고, 영적인 힘이 부족하며, 진리의 빛이 충분히 밝지 않기 때문이다.

영적 전쟁은 그리스도의 승리에 근거한다.

영적 전쟁의 출발점은 그리스도의 승리 위에 서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이미 원수를 패배시키셨음을 보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나타나신 것은 마귀에게서 나온 일을 제거하시기 위한 것이었다.

육체 되셔서 인간 생활을 사신 그리스도는 광야에서 시험받으시는 동안 사탄을 패배시키셨다.

죽음을 통해 주 예수님은 죽음의 세력을 가진 자인 마귀를 멸망시키셨다. 그분은 사탄을 깨뜨리시고 무효화하셨다.

이 땅에서 교회의 일은 그리스도의 승리를 지키는 것이다. 주님은 이미 전투에서 승리하셨고, 교회는 그분의 승리를 지키기 위해 여기에 있다.

교회와 사탄 사이의 전쟁은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교회 안에 있는 우리와 하늘들의 영역에 있는 악한 세력들 사이의 전투이다.

통치자들과 권세자들과 어둠의 세상 지배자들은 반역한 천사들이다. 그들은 사탄이 하나님을 반역할 때 사탄을 따랐고, 지금은 하늘들의 영역에서 세상 나라들을 다스리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전쟁이 사람들에게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들의 영역에 있는 악한 영들, 곧 악한 세력들에게 대항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영적 전쟁은 그리스도의 몸의 문제이다. 우리는 반드시 몸 안에서 전투를 해야 한다.

영적 전쟁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몸의 문제이다.

교회는 단체적인 전투원이며, 믿는 이들은 함께 이 단체적인 전투원을 구성한다.

우리가 에베소서를 1장부터 6장까지 모두 읽는다면, 전쟁이 그리스도의 몸의 문제이고, 몸이 그리스도와 그 영과 하늘들의 영역 안에 있는 새 창조물임을 볼 것이다.

우리가 몸의 생활을 하지 않는다면, 영적 전쟁에 참여할 자격이 없다.

전투를 하려면 우리는 반드시 몸의 실재 안에 있어야 한다.

단체적으로 한 군대로 편성된 후에 우리는 하나님의 원수에게 대항해 싸울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를 처리하려면,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일으키고 하늘들의 영역 안에 앉힌 큰 능력, 곧 공중의 모든 악한 영들보다 훨씬 위에 앉게 한 큰 능력으로 굳세어져야 한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굳세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은 우리 자신 안에서는 사탄과 그의 악한 왕국에 대항하여 영적 전쟁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는 오직 주님 안에서와 그분의 강한 권능 안에서만 싸울 수 있다.

굳세어지라는 명령은 우리의 의지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함축한다. 우리가 영적 전쟁을 위해 굳세어지려면 반드시 우리의 의지가 강해야 하고 우리의 의지를 사용해야 한다.

우리는 영적 전쟁의 원칙들을 알고 적용해야 한다.

영적 전쟁의 첫 번째 원칙은 육체에 속한 무기들, 곧 인간적인 계략과 천연적인 방법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영적 전쟁은 육체에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세력들에게 대항하는 것이기 때문에(엡 6:12), 영적 전쟁의 무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어야 한다.

영적 전쟁의 두 번째 원칙은 승천의 위치를 지키는 것이다.

전쟁에서 싸울 때 적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은 전략상 중요한 일이다.

사탄과 그의 영적인 세력들은 공중에 있지만, 우리는 그들 위에 있는 셋째 하늘에 앉아 있다.

사탄과 그의 세력들은 우리 밑에 있으며, 우리에게 패배당하는 것이 그들의 운명이다.

영적 전쟁의 세 번째 원칙은 우리가 반드시 영적인 무기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적인 무기는 원수의 견고한 요새들을 무너뜨릴 만큼 강력하다.

우리가 싸우는 동안 우리의 모든 활동은 반드시 영에 속해야 하며, 우리의 영에서부터 나오는 느낌을 만져야 한다. 이것은 매우 기본적인 원칙이다.

영적 전쟁의 네 번째 원칙은 싸우는 기도, 곧 영적 전쟁의 기도를 하는 것이다.

교회의 건축이 있을 때마다 그리고 교회의 건축이 있는 곳마다, 음부의 문들이 교회의 건축에 반대하여 활동한다. 그러므로 싸우는 기도가 필요하다.

가장 가치 있는 기도가 승천 안에 있는 기도라는 것을 우리가 본다면, 이때 우리는 기도가 전쟁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고, 또 전쟁의 기도를 말해 낼 것이다. 바로 이것이 에베소서 6장에서 말하는 기도의 본성이다.

하늘에 속한 영역 안에서 그리고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표현된 모든 기도는 전쟁의 기도이다.

우리가 하늘에 속한 영역 안에 있다면, 승천의 기도 곧 전쟁의 기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굳세어질 때 새로워진다. 새로워질 때 우리는 충만하게 되고, 충만하게 될 때 싸울 준비가 된다. 바로 이러한 싸우는 영 안에서 우리는 영적 전쟁의 싸우는 기도를 하게 된다.

우리는 몸 안에서 싸우는 기도로 전투를 함으로써 마귀의 계략에 대항하여 서야 한다. 또한 우리는 항상 영 안에서 기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완전한 전투 장비로 무장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하나님의 집이자 하나님의 통치를 위한 하나님의 왕국인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여 하나님의 경륜을 완전히 이루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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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마 6:9-10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겨지도록 하시며, 왕국이 오게 하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십시오.

마 6:13 우리를 … 악한 자에게서 구출하여 주십시오. 왕국과 능력과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의 것입니다. …

영적 전쟁의 네 번째 원칙은 싸우는 기도를 하는 것이다. 사도는 에베소서 6장에서 각종 영적인 무기들을 언급한 후에 곧바로 “항상 영 안에서 기도하십시오.”(18절)라고 말한다. 영적 전쟁은 대부분 기도에 달려 있다. 사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성도들이 주님 앞에 무릎을 꿇거나 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 것이다. 다니엘이 기도했을 때, 보좌에서 응답이 있었다. 그런데 보좌에서 응답이 내려오는 도중에 공중에서 방해를 받았다. 그러나 다니엘은 계속 기도했다. 다니엘의 기도는 일종의 전쟁이었다. 승천의 위치를 지키는 사람은 하늘에서 다스린다. 그 사람은 또한 영적인 무기들을 사용할 수 있으며, 그에게서 나오는 기도 또한 대단한 효력이 있어서, 하나님의 보좌를 만지고 사탄의 권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그러한 기도로 그분과 동역하고 그분을 위해 싸우기를 갈망하신다.

가장 가치 있는 기도가 승천 안에 있는 기도라는 것을 우리가 본다면, 이때 우리는 기도가 전쟁이라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이 에베소서 6장에서 말하는 기도의 본성이다. 이것은 일상적이고 평범하며 일반적인 기도가 아니다. 이것은 매우 높은 기도이고 하늘들의 영역에서부터 말해 내는 기도이다.

하늘에 속한 영역 안에서 그리고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표현된 모든 기도는 전쟁의 기도이다.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은 십자가를 통과한 사람이고, 부활하고 승천한 사람이다. 그는 보좌 위에 있고 이 땅을 초월하였으며 땅에 속한 것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가 그러한 영역에서부터 표현해 내는 기도는 공중에 있는 마귀를 패배시킬 수 있고 하나님의 권위를 가져올 수 있다.

땅에 있는 사람들을 강탈하고 통제하는 자가 공중에 있기 때문에, 죄인들은 방해를 받아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성도들도 방해를 받아 주님을 추구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을 전파하기만 하고 말씀을 공급하기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하늘에 속한 권위를 이 땅에 가져오도록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이것이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죄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구원받는 것을 보게 될 것이고,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일어나서 주님을 추구하고 사랑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것은 여기에 어둠의 세력을 몰아내고 하나님의 권위를 가져오며 그 결과 하나님께서 그분의 뜻을 이 땅에서 이루시도록 싸우는 기도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싸우는 기도에 의해 하나님은 그분의 구원을 수행하실 수 있고, 그분의 선한 기쁨에 따라 그분의 자녀들에게 은혜를 주실 수 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모든 사람은 하늘에 속한 영역 안에 있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보좌를 만져 하늘에서 기도를 쏟아부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우리가 땅이나 공중이나 어둠의 권세 위에 있고, 하늘들의 영역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 있을 때, 우리가 말해 내는 기도는 전쟁의 기도이다. 이러한 요점을 이해했다면, 우리는 사람에게서 마귀에게 주의를 집중할 것이다. 어떤 죄인이 구원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오, 하나님, 그가 회개하고자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마귀가 그를 강탈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그에게서 마귀를 내쫓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한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가 다툴 때, 우리는 그 형제나 자매를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기도의 목표는 형제나 자매가 아니라 그들 뒤에, 그들 위에 있는 어둠의 세력일 것이다. 이것이 에베소서 6장에 언급된 싸움이다. 이것은 피와 살을 가진 사람들에게 대항하여 싸우는 것이 아니라 공중에 있는 악한 영적인 세력들에게 대항하여 싸우는 것이다. 우리가 기도를 통해 처리하는 목표는 사람이 아니라 마귀이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문제는 형제자매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사탄에게 있다. 우리가 하늘에 속한 영역 안에 있다면, 승천의 기도 곧 전쟁의 기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5일

고후 10:3-5 왜냐하면 우리가 비록 육체 안에서 행하지만, 육체를 따라 싸우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싸우는 데 쓰는 무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능력인데, 그것은 견고한 요새들을 무너뜨리고,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대적하여 일어나는 모든 높아진 것을 무너뜨리며, 각종 사상을 사로잡아 와서 그리스도께 순종하게 합니다.

우리가 실지적으로 영적 전쟁을 체험하게 될 때 반드시 지켜야 할 일곱 가지 기본 원칙이 있다.

영적 전쟁의 첫 번째 원칙은 육체에 속한 무기들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것에 대하여 고린도후서 10장 3절부터 5절까지에서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육체에 속한 이 무기들은 화를 내는 것을 가리킬 뿐 아니라 모든 인간적인 계략과 천연적인 방법도 포함한다. 육체에 속한 계략을 사용할 때마다 우리는 이미 대적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러하다면 어떻게 우리가 다른 사람을 대적의 손아귀에서 건져 낼 수 있겠는가?

바울은 결코 육체에 속한 무기들을 사용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는 교회를 대하거나 성도들을 접촉할 때 항상 올곧게 행했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견고한 요새들을 무너뜨리는 하나님께 속한 능력’(고후 10:4)을 지닐 수 있었고, 이것에 의해서 영적 전쟁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영적 전쟁의 두 번째 원칙은 승천의 위치를 지키는 것이다. 오직 한 부류의 사람들만이 영적 전쟁에 참여할 수 있는데, 바로 구원을 받고 죽음에서 부활하여 이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다. 오직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만이 하늘에 있는 초월의 위치에서 공중에 있는 원수를 공격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영적 전쟁에 참여하려면 하늘에 속한 위치를 지켜야 한다. 만일 우리의 복음에 능력이 없다면, 이는 우리가 충분히 하늘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자신이 땅에 속하고, 땅에 속한 방법이나 육체에 속한 무기들을 사용하여 복음을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 우리가 몇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지만, 그들의 상태는 엉망일 것이고 그들은 사탄의 권세에서 완전히 구출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참으로 사람들을 사탄의 권세에서 건져 내어 그들이 구원받을 뿐 아니라 사탄의 손아귀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하려면, 복음을 전하는 우리가 반드시 하늘에 앉아 승천의 위치를 지키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성도들을 온전하게 하는 데에도 동일한 원칙이 적용된다. 우리가 승천의 위치를 잃어버린다면, 우리는 성도들에게 공급을 주거나 도움을 줄 수 없다. 만일 우리가 전하는 메시지가 단지 교리일 뿐이고, 우리가 나누는 교통이 전쟁의 요소가 포함되지 않는 지식에 불과할 뿐이며, 우리가 나누어 줄 수 있는 최상의 것이 지적인 가르침이거나 감정을 움직이게 하는 것뿐이라면, 우리는 사탄의 권세에서 사람들을 건져 낼 수 없고 실지적으로 그들을 하나님께 돌이키게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전쟁에서 영향력을 발휘하여 사탄의 손아귀에서 사람들을 건져 낼 수 있는 일을 하고자 한다면, 승천의 위치를 지켜야 하고 계속해서 하늘에 속한 상태 안에서 살아야 한다. 이것은 지극히 중요한 비결이다.

영적 전쟁의 세 번째 원칙은 우리가 반드시 영적인 무기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적인 무기들은 에베소서 6장 10절부터 17절까지에 언급된 ‘완전한 전투 장비’를 가리킨다. 이 완전한 전투 장비는 진리의 허리띠와 의의 가슴받이와 화평의 복음의 신발과 믿음의 방패와 구원의 투구와 그 영의 검을 포함하고 있다. 이 모든 무기들은 영적인 것들이고, 우리는 그 무기들을 사용할 때 영 안에 있어야 한다. 복음 전파나 성도들을 온전하게 하는 것이나 교회 행정은 영에 속해야 한다. 우리가 참여하는 활동은 무엇이든지 모두 영에 속하고 영을 해방하는 것이어야 한다. 영에 속하지 않은 것, 곧 우리 자신의 관점, 관념, 지혜, 지능에 따른 것은 무엇이든지 인간적인 계략일 뿐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육체에 속한 무기이지 영적인 무기가 아니다. 따라서 우리가 싸우는 동안 우리의 모든 활동은 반드시 영에 속해야 하며, 우리의 영에서부터 나오는 느낌을 만져야 한다. 이것 또한 지극히 기본적인 원칙이다.

4일

엡 6:12-13 우리의 싸움은 피와 살이 있는 사람들에게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들과 권세자들과 이 어둠의 세상 지배자들과 하늘들의 영역에 있는 악한 영적인 세력들에게 대항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완전한 전투 장비로 무장하십시오. 그것은 여러분이 악한 날에 대항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며, 또한 모든 것을 다 처리한 후에도 서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통치자들과 권세자들과 어둠의 세상 지배자들은 반역한 천사들이다. 그들은 사탄이 하나님을 반역할 때 사탄을 따랐고, 다니엘서 10장 20절에 나오는 페르시아의 군주나 헬라의 군주처럼 지금은 하늘들의 영역에서 세상 나라들을 다스리고 있다. 이것은 마귀 곧 사탄이 어둠의 왕국을 가지고 있고, 그 왕국 안에서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반역한 천사들이 사탄 아래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에베소서 6장 12절에서 바울은 ‘하늘들의 영역에 있는 악한 영적인 세력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하늘들의 영역은 공중을 가리킨다(2:2). 사탄과 악한 영적인 세력들은 공중에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 위에 있는 셋째 하늘에 앉아 있다(2:6). 전쟁에서 싸울 때 적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은 전략상 중요한 일이다. 사탄과 그의 악한 세력들은 우리 밑에 있으며, 그들은 분명히 우리에게 패배당한다.

우리의 전쟁은 사람들에게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들의 영역에 있는 악한 영들, 곧 영적인 세력들에게 대항하는 것이다. 반역한 천사들은 사탄의 왕국의 악한 영들이다. 이처럼 교회와 사탄 사이의 전쟁은 주님을 사랑하고 교회 안에 있는 우리와 하늘들의 영역에 있는 악한 세력들 사이의 전투이다. 겉보기에는 교회를 손상하는 자가 피와 살이 있는 사람들인 것 같다. 사실상 교회를 손상하는 자는 그러한 사람들 뒤에서 일하는 사탄과 그의 악한 천사들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우리는 이런 영적인 세력들에게 대항하여 싸워야 한다.

우리가 영적 전쟁을 하려면, 주님의 능력뿐 아니라 하나님의 전투 장비(엡 6:11)도 필요하다. 우리의 무기는 쓸모가 없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전투 장비, 심지어 전투 장비 전부가 유용하다.

교회는 단체적인 전투원이며, 믿는 이들은 함께 이 유일한 전투원을 구성한다. 오직 단체적인 전투원만이 하나님의 완전한 전투 장비로 무장할 수 있다. 어떤 믿는 이도 개인적으로는 완전한 전투 장비로 무장할 수 없다. 우리는 반드시 개인적으로가 아니라 몸 안에서 영적 전쟁을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완전한 전투 장비로 무장하라는 권면은 명령에 속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전투 장비를 준비해 두셨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를 대신하여 전투 장비로 무장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 전투 장비로 직접 무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굳세어져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굳세게 해 주실 수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의지를 사용하여 그분과 협력함으로 전투 장비로 무장해야 한다.

영적 전쟁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몸의 문제, 곧 단체적인 한 실체로 하나님의 원수에게 대항하여 싸우는 문제이다. 단체적으로 한 군대로 편성된 후에 우리는 하나님의 원수에게 대항해 싸울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전략은 그분의 군대인 교회를 사용하셔서 원수와 맞서 싸우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대에서 떨어져 있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군대 안에 계속 있을 때에만 우리는 꼭 필요한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많은 세월을 지내 오면서 우리는 영적 전쟁이 하나님의 단체적인 군대인 교회의 문제임을 보게 되었다. 만일 우리가 교회로부터 자신을 분리한다면 패배당할 것이다. 사탄의 전략은 그저 우리를 하나님의 군대인 교회에서 떼어 놓는 것이다. 영적 전쟁은 몸의 문제이다. 만일 우리가 이것을 인식하고 교회와 함께한다면 승리할 것이다.

하나님의 전투원인 교회는 자신의 힘으로 싸우지 않는다. 반대로, 우리는 주님 안에서, 그리고 그분의 강한 권능 안에서 굳세어져야 한다(엡 6:10).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를 처리하려면, 또한 어둠의 악한 세력들에게 대항하여 싸우려면,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일으키고 하늘들의 영역 안에 앉힌 큰 능력, 곧 그리스도를 공중의 모든 악한 영들보다 훨씬 위에 앉게 한 큰 능력으로 굳세어져야 한다. 우리는 사탄과 그의 악한 왕국을 대항하는 영적 전쟁을 할 때, 우리 자신 안에서 싸울 수 없고, 오직 주님 안에서만 싸울 수 있다. 자신 안에 있을 때 우리는 항상 패배한다.

3일

엡 6:10-11 마지막으로 말합니다. 주님 안에서, 그리고 그분의 강한 권능 안에서 굳세어지도록 하십시오. 마귀의 계략에 대항해 설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완전한 전투 장비로 무장하십시오.

에베소서 6장 10절부터 12절까지를 읽을 때, 우리는 교회의 일과 책임이 영적 전쟁임을 알 수 있다. 이 전쟁의 상대는 피와 살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공중에 거하는 영적 존재들이다. 에베소서 6장 13절과 14절은 우리에게 공격하라고 하지 않고 서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영적 전쟁은 방어하는 것이지 공격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주 예수님께서 이미 전쟁하셨고 승리하셨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 교회의 일은 단순히 주님의 승리를 지키는 것이다. 주님은 이미 전투에서 승리하셨고, 교회는 그분의 승리를 지키기 위해 여기에 있다. 교회의 일은 마귀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패배한 마귀에게 대항하는 것이다. 교회의 일은 강한 자를 결박하는 것이 아니다. 강한 자는 이미 결박되었다. 따라서 교회의 일은 그를 결박당한 데서 풀려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공격할 필요가 없고 단지 방어만으로 충분하다. 영적 전쟁의 출발점은 그리스도의 승리 위에 서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이미 승리하셨음을 보는 것이다. 또한 마귀를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영적 전쟁의 출발점은 승리를 얻기를 바라는 것이 아닌데, 왜냐하면 이미 승리했기 때문이다. 마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교회의 일과 책임은 영적 전쟁이고, 그것은 하나님의 권위와 사탄의 세력 사이의 다툼의 문제이다.

교회를 건축하는 것은 전쟁의 문제이다. 이것은 두 왕국 사이의 충돌이며, 두 의지 사이의 충돌이다. 한쪽에는 사탄의 왕국인 음부가 있고, 다른 쪽에는 하나님의 왕국인 천국이 있다. 한편에서는 사람들의 뜻이 다스리며 통치하고 있고, 다른 편에서는 하나님의 뜻이 입지를 얻고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두 왕국 사이의 전쟁과 두 의지 사이의 전쟁은 교회의 건축과 연결되어 있다. 교회의 건축은 전적으로 이러한 전쟁과 관련된 것이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교회 안에서 거의 대부분의 믿는 이들이 이러한 영적 전쟁을 알지 못한다. 이것은 생명이 나약하고, 영적인 힘이 부족하며, 진리의 빛이 충분히 밝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에 복음 전파는 단지 복음 전파일 뿐이고, 말씀을 전하는 것은 단지 말씀을 전하는 것일 뿐이며, 믿는 이들을 온전하게 하는 것은 단지 믿는 이들을 온전하게 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일들을 할 때, 단지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 교회를 건축하는 문제가 모두 전쟁이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오순절 날에 교회를 건축하기 시작하시자마자 전쟁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마태복음 16장 18절과 19절에 있는 말씀을 사도행전 2장부터 4장까지에 있는 기록과 비교해 본다면, 마태복음에 있는 말씀이 사도행전에서 이루어진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사도행전에서 주님은 반석이신 그분 자신 위에 교회를 건축하셨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분은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하나님의 오른편으로 승천하셨고, 하나님은 그분을 주님과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 그러므로 그분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신뢰할 수 있는 반석이시다. 오순절 때에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을 통하여 그분은 흙으로 된 사람들을 살아 있는 돌들로 변화시키셨고, 반석이신 그분 자신 위에 이러한 돌들을 건축하셨다. 하늘에 있는 반석으로서 그분은 교회 건축의 기초이시다. 그분은 하늘에 있는 기초이신 그분 자신 위에 교회를 건축하고 계신다. 이러한 건축은 오순절 날에 시작되었으며, 일단 건축이 시작되자 음부가 진동하였다. 사도행전 2장부터 4장까지에서 우리는 음부가 진동한 것을 볼 수 있다. 음부의 문들이 열렸다. 음부는 그리스도께서 건축하고 계시는 교회를 죽음 안으로 끌고 가기 위해 활발하게 공격하였다. 하지만 천국 열쇠들을 가진 교회에게 권위가 있었기 때문에, 교회는 하늘에서 이미 묶인 것을 묶을 수 있고, 하늘에서 이미 풀린 것을 풀 수 있었다. 교회는 권위를 가지고 있었고 싸워서 승리를 얻었다.

2일

느 4:17 성벽을 건축하는 이들과 짐을 운반하는 이들은 일하는 동안 한 손으로는 짐을 나르고 다른 한 손으로는 무기를 잡았다.

느 4:21 이렇게 우리는 공사에 참여하여 일했는데, 그들 가운데 절반은 동이 틀 때부터 별이 뜰 때까지 창을 지니고 있었다.

포로 된 지 칠십 년이 찼을 때,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을 다시 한번 돌아오게 하셨다. 그분은 성전과 성을 재건하는 목적을 위해 그들을 돌아오게 하셨다. 느헤미야기 4장 15절부터 23절까지는 성벽이 재건되는 동안 모든 과정이 전쟁이었음을 보여 준다. 이스라엘 자손의 절반은 일을 하였고, 절반은 싸우고 있었다(16절). 전쟁이 없고 싸우는 영이 없이는 건축이 없다.

우리가 일단 건축을 만지게 되면, 원수는 우리를 공격하고 방해하려고 올 것이다. 우리는 건축을 위해 싸우는 기도를 할 필요가 있다. 원수는 이스라엘 자손의 손을 약하게 하려고 수많은 계략을 사용하여 그들을 방해하고 거짓으로 고소했다. 느헤미야는 이러한 상황을 보았을 때 즉시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기도하자 곧 그는 내적으로 분명해졌다. 느헤미야와 그의 형제들은 성벽을 재건하는 일을 수행할 때 한 손으로는 짐을 나르고 다른 한 손으로는 무기를 잡았다(느 4:17). 이것은 한 면으로는 건축하는 것이고, 다른 한 면으로는 싸우는 것이다.

교회의 건축에 관한 책인 에베소서는 영적 전쟁의 문제도 매우 강조하여 언급한다. 에베소서 4장은 건축에 관하여 말하고, 6장은 전쟁에 관하여 말한다. 우리는 단지 건축만 할 수 없다. 우리는 또한 원수의 공격에 대비하여 전쟁을 해야만 한다.

느헤미야기에서 우리는 원수의 공격에 세 방면이 있음을 볼 수 있다. 첫째 방면은 원수의 조롱이다. 이것은 외부에서 오는 원수의 계략이다. 원수는 “약해 빠진 이 유대인들이 무슨 일을 하는 것인가? … 그들이 건축하고 있는 돌 성벽은 여우 한 마리가 올라가도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느 4:2-3)라고 말하였다. 이러한 조롱 때문에 우리는 해야 할 일을 경시할 수 있다. 원수의 공격의 둘째 방면은 음모를 꾸미는 것이다. 원수는 느헤미야에게 “오시오. … 우리가 만납시다.”(6:2)라고 말하였다. 만일 느헤미야가 갔다면 건축의 일은 지연되었을 것이고 느헤미야는 그들의 덫에 걸려들었을 것이다. 원수의 공격의 셋째 방면은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약함이 있게 하고 어떤 이들을 부추겨 낙담하게 하는 말을 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싸우는 기도를 해야 한다. 어떤 어려움에 직면할 때마다 우리는 주님 앞에 돌아와서 기도해야 한다. 사람들이 우리가 하는 일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이러한 말을 주님 앞에 가져가서 이것에 대하여 그분께 말씀드려야 한다. 사람들이 어떤 계략으로 우리를 손상하려고 할 때, 우리는 이러한 계략을 주님께 가져가야 한다. 형제자매들이 서로 의심하고 시기할 때, 이것 또한 주님 앞에 가져가야 한다. 심지어 우리 자신이 약해질 때도 우리는 이것을 주님께 가져가야 한다. 우리는 싸우는 기도로 이러한 것들을 거절하고 처리해야 한다.

만일 한 지방의 모든 형제자매들이 그들의 기능을 발휘하고, 동역자들과 책임을 지는 형제자매들이 성도들을 대신하여 봉사하지 않고 반대로 그들을 온전하게 하여 함께 봉사하게 하며, 사역을 가진 이들이 모두 교회의 건축을 위하고, 모든 성도들이 함께 건축하는 가운데 무기를 들고 싸우는 기도를 하여 영적 전쟁을 한다면, 우리는 그 지방에서 영광스러운 교회가 건축되는 것을 볼 것이다. 또한 새 예루살렘의 축소판이 나타나서 하나님을 위한 안식처가 되고 그분의 모든 자녀들을 위한 가정이 되는 것을 볼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보좌와 하나님의 생명이 그곳에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빛 또한 그곳에 있을 것이다.

신언노트, 2023 03 19

건축과 싸움
― 교회를 건축하기 위해
영적 전쟁에 참여해야 할 필요성
건축함과 싸움
― 그 교회를 건축함을 위해
영적 전투 안에서 교전할 책임

느헤미야기 3장은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포함하여
온 이스라엘 자손이
성벽을 이루는 여러 부분들을
건축하는 것에 대한 기록이다.
4장은
원수의 방해를 묘사한다.

원수들은
화를 냈고
크게 분노했다.
그들은 더욱더
유대인들을 조롱했고
유대인들의 건축 공사를 멸시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느헤미야의 지시와 지도에 따라
밤낮으로
원수를 대비해
파수꾼을 세워 두었다.
그들은
느헤미야의 격려를 받으며
무기를 들고
싸울 태세를 갖추었다.
느헤미야는
그들에게
위대하고도 경이로우신
주님을 기억하고
그들의 가족들을 위하여
싸우라고 지시했다.
느헤미야의 부하들의 절반은
공사에 참여하여
일을 하였고,
절반은
무기를 들고
싸울 태세를 갖추었다.

성벽을 건축하는 이들과
짐을 운반하는 이들은
일하는 동안
한 손으로는 짐을 나르고
다른 한 손으로는 무기를 잡았다.
느헤미야 곁에 있는 이들이
나팔을 불면
그들은
싸우러 모였고
그들의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싸우실 것을 신뢰하였다.
이것은
총사령관인 느헤미야가
앞장서서 파수를 섰음을
가리킨다.
이렇게 그들은
일하면서
그들 중 절반은
동틀 때부터 별이 뜰 때까지
창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느헤미야와
그의 형제들과
그의 부하들과
그의 호위병들은
그 누구도
옷을 벗지 않았으며,
각자 오른손에
자신의 무기를 지니고 있었다.

온갖 책략과 계략을 사용하고
수많은 것들로
우리를
유혹하고 부패시키는
사탄 마귀는 오직
한 목표만을 가지고 있다.
즉 하나님의 건축에 맞서 싸움으로
하나님의 건축을
방해하고 저항하며
손상하고 파괴하려는
목표만을 가지고 있다.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영 안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이 있는 이들은
일종의 영적 전쟁을 체험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회복의 모든 단계가
그분의 원수와 관련되어 있고,
각 단계에
전쟁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들의 존재 깊은 곳에서부터
깨닫는다.
그러나 신성한 건축을 실현하기 위해서
영적 전쟁이 필요하다는 것을
본 사람은 거의 없다.

성경은 왜
“각자 오른손에
자신의 무기를 지니고 있었다.”
(느 4:23하)라는
그러한 작은 일을 기록했는가?
〈미국 표준역 성경〉에서
느헤미야기 4장 23절 하반절은
“각 사람이
물을 길으러 갈 때에도
무기를 잡았다.”
라고 말한다.
건축하는 사람들은
물을 길으러 갈 때조차도
그들의 무기를
뒤에 놔두지 않았다.
이것은 심지어
우리의 일상생활의 가장 작은 일에서도
전쟁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느헤미야가
성벽을 쌓고 있었을 때,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은
겉으로는 그를 반대하지 않는 것 같았지만
사실상 느헤미야의 일에
찬물을 끼얹고 있었다.
성벽이 완성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들은
느헤미야를 만나려고
사람들을 보냈다.
이것이 겉으로는
그를 도우려는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그를 죽이려는 것이었다.
우리의 목표에 이르려면
이 길의 매 단계에서
우리는 싸워야 한다.

기독교는
우리와 함께 있고
끊임없이 우리에게
영향을 준다.
이러한 ‘민족들의 관습’이 끊임없이
우리를 방해하고 있다.
이것이
느헤미야가
그 도시를 재건했을 때
그에게 일어났던 일이다.
산발랏은 끊임없이
느헤미야를 대적했다.
이 때문에 우리 모두는
일어나서
이러한 빛을 보고
분투해야 한다.
우리는 반드시
싸우고자 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직장을 계속 다니는 것도
주님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우리가
이렇게 한다면
주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실 것이고
우리의 직업도 축복하실 것이다.
우리가
주님의 회복이다.
주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지 않으신다면
그분께서
누구를 축복하실 것인가?

느헤미야기 4장은
성의 재건에 관한
원수의 방해를 묘사한다.

원수들이 화가 난 것은
건축 공사가 진전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가서
예루살렘과 맞서 싸우기로
함께 모의하였다.

느헤미야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비방을
그들 자신에게 돌리시기를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신뢰했다.
이렇게 유대인들은
성벽을 건축했는데,
이는
그들에게
일할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 면에서 이스라엘 자손은
싸울 준비를 하였지만,
다른 한 면에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위하여 싸우실 것을 믿으며
하나님을 신뢰하였다.

총사령관인 느헤미야는
원수와 맞서 싸울
태세를 갖춘 이들 가운데 있었다.
그는
그 야간 파수에 참여하였고,
이러한 일들을
다른 이들에게 떠넘기지 않았으며
직접 그것들에 참여하였다.

포로 된 지
칠십 년이 찼을 때,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을
다시 한번 돌아오게 하셨다.
그분은
성전과 성을 재건하는
목적을 위해
그들을 돌아오게 하셨다.
느헤미야기 4장
15절부터 23절까지는
성벽이 재건되는 동안
모든 과정이 전쟁이었음을
보여 준다.
이스라엘 자손의 절반은
일을 하였고,
절반은
싸우고 있었다.
전쟁이 없고
싸우는 영이 없이는
건축이 없다.

우리가 일단
건축을 만지게 되면,
원수는
우리를 공격하고 방해하려고
올 것이다.
우리는
건축을 위해
싸우는 기도를 할
필요가 있다.
원수는
이스라엘 자손의 손을
약하게 하려고
수많은 계략을 사용하여
그들을 방해하고
거짓으로 고소했다.
느헤미야는
이러한 상황을 보았을 때 즉시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기도하자 곧
그는
내적으로 분명해졌다.
느헤미야와 그의 형제들은
성벽을 재건하는 일을 수행할 때
한 손으로는 짐을 나르고
다른 한 손으로는 무기를 잡았다.
이것은
한 면으로는 건축하는 것이고,
다른 한 면으로는 싸우는 것이다.

교회의 건축에 관한 책인
에베소서는
영적 전쟁의 문제도
매우 강조하여 언급한다.
에베소서 4장은
건축에 관하여 말하고,
6장은
전쟁에 관하여 말한다.
우리는
단지 건축만 할 수 없다.
우리는 또한
원수의 공격에 대비하여
전쟁을 해야만 한다.

느헤미야기에서
우리는
원수의 공격에
세 방면이 있음을
볼 수 있다.
첫째 방면은
원수의 조롱이다.
이것은
외부에서 오는
원수의 계략이다.
원수는
“약해 빠진 이 유대인들이
무슨 일을 하는 것인가?
… 그들이 건축하고 있는
돌 성벽은
여우 한 마리가 올라가도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느 4:2-3)라고 말하였다.
이러한 조롱 때문에
우리는
해야 할 일을
경시할 수 있다.
원수의 공격의 둘째 방면은
음모를 꾸미는 것이다.
원수는
느헤미야에게
“오시오.
… 우리가 만납시다.”
(6:2)라고 말하였다.
만일 느헤미야가 갔다면
건축의 일은
지연되었을 것이고
느헤미야는
그들의 덫에 걸려들었을 것이다.
원수의 공격의 셋째 방면은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약함이 있게 하고
어떤 이들을 부추겨
낙담하게 하는
말을 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싸우는 기도를 해야 한다.
어떤 어려움에 직면할 때마다
우리는
주님 앞에 돌아와서
기도해야 한다.
사람들이
우리가 하는 일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이러한 말을
주님 앞에 가져가서
이것에 대하여
그분께 말씀드려야 한다.
사람들이
어떤 계략으로
우리를 손상하려고 할 때,
우리는
이러한 계략을
주님께 가져가야 한다.
형제자매들이 서로
의심하고 시기할 때,
이것 또한
주님 앞에 가져가야 한다.
심지어 우리 자신이 약해질 때도
우리는
이것을
주님께 가져가야 한다.
우리는
싸우는 기도로
이러한 것들을
거절하고 처리해야 한다.

만일 한 지방의 모든 형제자매들이
그들의 기능을 발휘하고,
동역자들과 책임을 지는 형제자매들이
성도들을 대신하여 봉사하지 않고
반대로 그들을 온전하게 하여
함께 봉사하게 하며,
사역을 가진 이들이 모두
교회의 건축을 위하고,
모든 성도들이
함께 건축하는 가운데
무기를 들고
싸우는 기도를 하여
영적 전쟁을 한다면,
우리는
그 지방에서
영광스러운 교회가 건축되는 것을
볼 것이다.
또한 새 예루살렘의 축소판이 나타나서
하나님을 위한 안식처가 되고
그분의 모든 자녀들을 위한 가정이 되는 것을
볼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보좌와
하나님의 생명이
그곳에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빛 또한
그곳에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도시인
교회를 건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건축은
싸움을 통해서만
수행될 수 있다.

이스라엘 자손이
포로 된 데서 돌아왔을 때,
에스라와 느헤미야와 여러 사람들이 일어나
격렬한 전쟁을 통해
성전과 거룩한 도시를
재건하려 하였다.

느헤미야와 함께
건축 공사에 참여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한 손으로는
건축하는 일을 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전투를 하기 위해
무기를 잡았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건축을 위해
일할 때마다 분명
전투에 참여하게 될 것임을
계시한다.

하나님의 거처를 건축하는 것과 관련하여
하나님과 그분의 원수 사이에
실지적인 충돌,
곧 맹렬한 싸움이 있다.

원수는
하나님의 거처의 건축이
순조롭게 진전되는 것을
보기 싫어한다.

사탄은
중단시키고 방해하며
공격하고 파괴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왕국을 얻으시도록,
우리는 반드시
성전인 교회를 건축하고
전투를 해야 한다.

성도들이
교회생활의 확산을 위해
이주할 때,
그들은
전투를 하는 군대이다.

교회를 건축하는 이들은 반드시
건축하는 일과
싸우는 일을
동시에 해야 한다.

전쟁이 없고
싸우는 영이 없이는
건축이 없다.
건축의 일을 이루려면
소진될 정도로
전쟁을 치러야 한다.

에베소서 6장
10절부터 12절까지를 읽을 때,
우리는
교회의 일과 책임이
영적 전쟁임을
알 수 있다.
이 전쟁의 상대는
피와 살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공중에 거하는
영적 존재들이다.
에베소서 6장
13절과 14절은
우리에게
공격하라고 하지 않고
서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영적 전쟁은
방어하는 것이지
공격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주 예수님께서 이미
전쟁하셨고 승리하셨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
교회의 일은 단순히
주님의 승리를 지키는 것이다.
주님은 이미
전투에서 승리하셨고,
교회는
그분의 승리를 지키기 위해
여기에 있다.
교회의 일은
마귀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패배한
마귀에게 대항하는 것이다.
교회의 일은
강한 자를 결박하는 것이 아니다.
강한 자는 이미
결박되었다.
따라서 교회의 일은
그를
결박당한 데서
풀려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공격할 필요가 없고 단지
방어만으로 충분하다.
영적 전쟁의 출발점은
그리스도의 승리 위에
서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이미
승리하셨음을
보는 것이다.
또한 마귀를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영적 전쟁의 출발점은
승리를 얻기를
바라는 것이 아닌데,
왜냐하면 이미
승리했기 때문이다.
마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교회의 일과 책임은
영적 전쟁이고,
그것은 하나님의 권위와
사탄의 세력 사이의
다툼의 문제이다.

교회를 건축하는 것은
전쟁의 문제이다.
이것은
두 왕국 사이의 충돌이며,
두 의지 사이의 충돌이다.
한쪽에는
사탄의 왕국인
음부가 있고,
다른 쪽에는
하나님의 왕국인
천국이 있다.
한편에서는
사람들의 뜻이
다스리며
통치하고 있고,
다른 편에서는
하나님의 뜻이
입지를 얻고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두 왕국 사이의 전쟁과
두 의지 사이의 전쟁은
교회의 건축과 연결되어 있다.
교회의 건축은 전적으로
이러한 전쟁과 관련된 것이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교회 안에서
거의 대부분의 믿는 이들이
이러한 영적 전쟁을
알지 못한다.
이것은
생명이 나약하고,
영적인 힘이 부족하며,
진리의 빛이 충분히 밝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에
복음 전파는 단지
복음 전파일 뿐이고,
말씀을 전하는 것은 단지
말씀을 전하는 것일 뿐이며,
믿는 이들을 온전하게 하는 것은 단지
믿는 이들을 온전하게 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일들을 할 때,
단지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
교회를 건축하는 문제가 모두
전쟁이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오순절 날에
교회를 건축하기 시작하시자마자
전쟁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마태복음 16장
18절과 19절에 있는 말씀을
사도행전 2장부터 4장까지에 있는
기록과 비교해 본다면,
마태복음에 있는 말씀이
사도행전에서 이루어진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사도행전에서
주님은
반석이신 그분 자신 위에
교회를 건축하셨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분은
죽으셨고
부활하셨으며
하나님의 오른편으로 승천하셨고,
하나님은
그분을
주님과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
그러므로 그분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신뢰할 수 있는 반석이시다.
오순절 때에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을 통하여
그분은
흙으로 된 사람들을
살아 있는 돌들로 변화시키셨고,
반석이신 그분 자신 위에
이러한 돌들을 건축하셨다.
하늘에 있는 반석으로서
그분은
교회 건축의 기초이시다.
그분은
하늘에 있는 기초이신
그분 자신 위에
교회를 건축하고 계신다.
이러한 건축은
오순절 날에 시작되었으며,
일단 건축이 시작되자
음부가 진동하였다.
사도행전 2장부터 4장까지에서
우리는
음부가 진동한 것을
볼 수 있다.
음부의 문들이 열렸다.
음부는
그리스도께서 건축하고 계셨던
그 교회를
죽음 안으로 끌고 가기 위해
활발하게 공격하였다.
하지만 그 교회가
그 하늘들의 왕국의 열쇠들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권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교회는
하늘에서 이미 묶인 것을
묶을 수 있었고,
하늘에서 이미 풀린 것을
풀 수 있었다.
그 교회는
권위를 가지고 있었고
또 그 교회는
싸웠으며
또 그 승리를 얻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건축하기 위해서는
영적 전쟁이 필요하다.

영적 전쟁은
그리스도의 승리에 근거한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나타나신 것은
마귀에게서 나온 일을
제거하시기 위한 것이었다.

육체 되셔서
인간 생활을 사신
그리스도는
광야에서 시험받으시는 동안
사탄을 패배시키셨다.

죽음을 통해
주 예수님은
죽음의 힘을 가지고 있는
마귀를 파괴하셨다.
그분께서
사탄을 폐하셨고
(완전히 파괴하셨고)
무효로 만드셨다.

이 땅에서
교회의 일은
그리스도의 승리를
지키는 것이다.
주님은 이미
전투에서 승리하셨고,
교회는
그분의 승리를 지키기 위해
여기에 있다.

통치자들과
권세자들과
어둠의 세상 지배자들은
반역한 천사들이다.
그들은
사탄이
하나님을 반역할 때
사탄을 따랐고,
다니엘서 10장 20절에 나오는
페르시아의 군주나
헬라의 군주처럼
지금은
하늘들의 영역에서
세상 나라들을 다스리고 있다.
이것은
마귀 곧 사탄이
어둠의 왕국을 가지고 있고,
그 왕국 안에서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반역한 천사들이
사탄 아래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에베소서 6장 12절에서
바울은
‘하늘들의 영역에 있는
악한 영적인 세력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하늘들의 영역은
공중을 가리킨다.
사탄과 악한 영적인 세력들은
공중에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 위에 있는
셋째 하늘에
앉아 있다.
전쟁에서 싸울 때
적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은
전략상 중요한 일이다.
사탄과 그의 악한 세력들은
우리 밑에 있으며,
그들은 분명히
우리에게 패배당한다.

우리의 전쟁은
사람들에게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들의 영역에 있는
악한 영들,
곧 영적인 세력들에게
대항하는 것이다.
반역한 천사들은
사탄의 왕국의
악한 영들이다.
이처럼 교회와 사탄 사이의 전쟁은
주님을 사랑하고
교회 안에 있는
우리와
하늘들의 영역에 있는
악한 세력들 사이의 전투이다.
겉보기에는
교회를 손상하는 자가
피와 살이 있는
사람들인 것 같다.
사실상 교회를 손상하는 자는
그러한 사람들 뒤에서 일하는
사탄과 그의 악한 천사들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우리는
이런 영적인 세력들에게 대항하여
싸워야 한다.

우리가
영적 전쟁을 하려면,
주님의 능력뿐 아니라
하나님의 전투 장비도 필요하다.
우리의 무기는
쓸모가 없다.
하지만 하나님의 전투 장비
(갑옷, 방호복, 무기),
심지어(정말, 바로, 완전히)
그 전체의(온전한) 전투 장비는
유용하다(쓸모가 있다).

교회는
한 단체적인 전투원(전사)이며,
믿는 이들은 함께
이 유일한 전투원을 구성한다.
오직 그 단체적인 전투원만이
하나님의 그 전체 전투 장비를
착용할 수 있다.
어떤 개인적인 믿는 이도
그 전체 전투 장비를
착용할 수 없다.
우리는 반드시
개인적으로가 아니라
그 몸 안에서
그 영적 전투를 싸워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그 전체 전투 장비를 입으라는
그 부담은(청구는, 위탁은)
하나의 명령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전투 장비를
준비해 두셨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를 대신하여
전투 장비로 입지 않으신다.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그 전투 장비를
직접 입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능력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능력을 주실 수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반드시
우리의 의지를 사용하여
그분과 협력하고
그 전투 장비를
입어야만 한다.

영적 전쟁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그 몸의 문제,
곧 단체적인 한 실체로
하나님의 원수에게 대항하여
싸우는 문제이다.
단체적으로
한 군대로 편성된 후에
우리는
하나님의 원수에게 대항해
싸울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전략은
그분의 군대인
그 교회를 사용하셔서
원수와 맞서 싸우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군대로부터
격리되어 있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군대 안에 계속 있을 때에만
우리가
그 필요한 보호를
가질 것이다.

많은 세월을 지내 오면서
우리는
영적 전쟁이
하나님의 단체적인 군대인
교회의 문제임을
보게 되었다.
만일 여러분이
교회로부터
여러분 자신을 분리한다면
패배당할 것이다.
사탄의 전략은
그저 우리를
하나님의 군대인 교회에서부터
격리시키는 것이다.
영적 전쟁은
몸 문제이다.
만일 우리가
이것을 깨닫고
그 교회와 함께 머무른다면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하나님의 전투원으로서
그 교회는
그녀 자신의 힘에 의해
싸우지 않는다.
반대로, 우리는
주님 안에서,
그리고 그분의 강함의 능력 안에서
능력을 받을
필요가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를 처리하려면,
또한 어둠의 악한 세력들에게 대항하여
싸우려면,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들로부터 일으켰고
그 공중의 모든 악한 영들보다
훨씬 위에,
그 하늘들의 영역 안에 앉힌
그 능력의 큼으로(큼을 가지고),
능력을 받을
필요가 있다.
사탄과 또 그의 악한 왕국에 대항하는
그 영적인 전투 안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들 안에서가 아니라,
오직 주님 안에서만
싸울 수 있다.
우리가
우리 자신들 안에 있을 때는 언제나,
우리는 패배한다.

그 교회와 사탄 사이의 전쟁은
주님을 사랑하고
또 그분의 교회 안에 있는
우리와
그 하늘들의 영역에 있는
악한 세력들(능력) 사이의
한 전투이다.

우리는
우리의 전쟁이
사람들에게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들의 영역에 있는
악한 영들, 곧 악한 세력들에게
대항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영적 전쟁은
그리스도의 몸의 문제이다.
우리는 반드시
몸 안에서
전투를 해야 한다.

교회는
단체적인 전투원이며,
믿는 이들은 함께
이 단체적인 전투원을 구성한다.

우리가
에베소서를
1장부터 6장까지
모두 읽는다면,
전쟁은
그리스도의 몸의 문제이고,
또 그 몸은
그리스도 안에
그 영 안에
또 그 하늘들의 영역 안에 있는
한 새 창조물임을
볼 것이다.

우리가
그 몸 생활을
가지지 않는다면,
그 영적 전쟁에서 교전하기에
적절하지 않다.

그 전투를 싸우려면
우리가 반드시
그 몸의 실재 안에
있어야만 한다.

단체적으로
한 군대 안으로
편성된 후에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에게 대항해
싸울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능력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은
우리 자신 안에서는
사탄과 그의 악한 왕국에 대항하여
그 영적인 전쟁을
싸울 수 없다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는 오직
주님 안에서
또 그분의 능력의 강함 안에서만
싸울 수 있다.

능력을 받으라는
그 부담은
우리의 의지를 사용할
필요를 함축한다.
만약 우리가
영적 전쟁을 위해
능력을 받으려면,
우리의 의지가 반드시
강해져야만 하고
또 사용되어야만 한다.

우리가 실지적으로
영적 전쟁을 체험하게 될 때
반드시 지켜야 할
일곱 가지 기본 원칙이 있다.

영적 전쟁의 첫 번째 원칙은
육체에 속한 무기들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것에 대하여
고린도후서 10장
3절부터 5절까지에서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육체에 속한 이 무기들은
화를 내는 것을 가리킬 뿐 아니라
모든 인간적인 계략과
천연적인 방법도 포함한다.
육체에 속한 계략을
사용할 때마다
우리는 이미
대적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러하다면 어떻게 우리가
다른 사람을
대적의 손아귀에서
건져 낼 수 있겠는가?

바울은 결코
육체에 속한 무기들을
사용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는
교회를 대하거나
성도들을 접촉할 때
항상 올곧게 행했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견고한 요새들을 무너뜨리는
하나님께 속한 능력’(고후 10:4)을
지닐 수 있었고,
이것에 의해서
영적 전쟁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영적 전쟁의 두 번째 원칙은
승천의 위치를
지키는 것이다.
오직 한 부류의 사람들만이
영적 전쟁에
참여할 수 있는데,
바로 구원을 받고
죽음에서 부활하여
이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다.
오직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만이
하늘에 있는 초월의 위치에서
공중에 있는 원수를
공격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영적 전쟁에 참여하려면
하늘에 속한 위치를
지켜야 한다.
만일 우리의 복음에
능력이 없다면,
이는
우리가 충분히
하늘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자신이
땅에 속하고,
땅에 속한 방법이나
육체에 속한 무기들을 사용하여
복음을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 우리가
몇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지만,
그들의 상태는
엉망일 것이고
그들은
사탄의 권세에서
완전히 구출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참으로
사람들을
사탄의 권세에서 건져 내어
그들이
구원받을 뿐 아니라
사탄의 손아귀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하려면,
복음을 전하는 우리가 반드시
하늘에 앉아
승천의 위치를
지키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성도들을 온전하게 하는 데에도
동일한 원칙이 적용된다.
우리가
승천의 위치를 잃어버린다면,
우리는
성도들에게
공급을 주거나
도움을 줄 수 없다.
만일 우리가 전하는 메시지가 단지
교리일 뿐이고,
우리가 나누는 교통이
전쟁의 요소가 포함되지 않는
지식에 불과할 뿐이며,
우리가 나누어 줄 수 있는
최상의 것이
지적인 가르침이거나
감정을 움직이게 하는 것뿐이라면,
우리는
사탄의 권세에서
사람들을 건져 낼 수 없고
실지적으로
그들을
하나님께 돌이키게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전쟁에서 영향력을 발휘하여
사탄의 손아귀에서
사람들을 건져 낼 수 있는
일을 하고자 한다면,
승천의 위치를 지켜야 하고
계속해서
하늘에 속한 상태 안에서
살아야 한다.
이것은
지극히 중요한 비결이다.

영적 전쟁의 세 번째 원칙은
우리가 반드시
영적인 무기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적인 무기들은
에베소서 6장
10절부터 17절까지에 언급된
‘완전한 전투 장비’를 가리킨다.
이 완전한 전투 장비는
진리의 허리띠와
의의 가슴받이와
화평의 복음의 신발과
믿음의 방패와
구원의 투구와
그 영의 검을
포함하고 있다.
이 모든 무기들은
영적인 것들이고,
우리는
그 무기들을 사용할 때
영 안에 있어야 한다.
복음 전파나
성도들을 온전하게 하는 것이나
교회 행정은
영에 속해야 한다.
우리가 참여하는
활동이 무엇이든지 모두
영에 속하고
영을 해방하는 것이어야 한다.
영에 속하지 않은 것,
곧 우리 자신의
관점, 관념,
지혜, 지능에 따른 것은 무엇이든지
인간적인 계략일 뿐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육체에 속한 무기이지
영적인 무기가 아니다.
따라서 우리가 싸우는 동안
우리의 모든 활동은 반드시
영에 속해야 하며,
우리의 영에서부터 나오는
느낌을 만져야 한다.
이것 또한
지극히 기본적인 원칙이다.

우리는
영적 전쟁의 원칙들을
알고
적용해야 한다.

영적 전쟁의 첫 번째 원칙은
육체에 속한 무기들,
곧 인간적인 계략과
천연적인 방법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영적 전쟁은
육체에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세력들에게 대항하는 것이기 때문에,
영적 전쟁의 무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어야 한다.

영적 전쟁의 두 번째 원칙은
승천의 위치를
지키는 것이다.

전쟁에서 싸울 때
적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은
전략상 중요한 일이다.

사탄과 그의 영적인 세력들은
공중에 있지만,
우리는
그들 위에 있는
셋째 하늘에 앉아 있다.

사탄과 그의 세력들은
우리 밑에 있으며,
우리에게 패배당하는 것이
그들의 운명이다.

영적 전쟁의 세 번째 원칙은
우리가 반드시
영적인 무기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적인 무기는
원수의 견고한 요새들을
무너뜨릴 만큼
강력하다.

우리가 싸우는 동안
우리의 모든 활동은 반드시
영에 속해야 하며,
우리의 영에서부터 나오는
느낌을 만져야 한다.
이것은
매우 기본적인 원칙이다.

영적 전쟁의 네 번째 원칙은
싸우는 기도를 하는 것이다.
사도는
에베소서 6장에서
각종 영적인 무기들을
언급한 후에 곧바로
“항상 영 안에서
기도하십시오.”
(18절)라고 말한다.
영적 전쟁은 대부분
기도에 달려 있다.
사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성도들이
주님 앞에 무릎을 꿇거나
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 것이다.
다니엘이 기도했을 때,
그 왕좌 위에
행동이(활동이, 결정이) 있었다.
하지만 그 왕좌에서
그 응답이 내려왔을 때
그 공중에서
저항을(반대를) 만났다.
그러나 다니엘은 계속
기도했다.
다니엘의 기도는
일종의 전쟁이었다.
승천의 위치를 지키는 사람은
하늘에서 다스린다.
그 사람은 또한
영적인 무기들을
사용할 수 있으며,
그에게서부터 밖으로 나오는
그 기도가
많이 효력이 있다(유용하다);
그것은
하나님의 왕좌를
만질 수 있고
또 사탄의 능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이 종류의 기도로
그분과 함께 일하고
그분을 위해 싸우기를
갈망하신다.

가장 가치 있는 기도가
승천 안에 있는 기도라는 것을
우리가 본다면,
이때 우리는
기도가 전쟁이라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이
에베소서 6장에서 말하는
기도의 본성이다.
이것은
일상적이고
평범하며
일반적인 기도가 아니다.
이것은
매우 높은 기도이고
하늘들의 영역에서부터
말해 내는 기도이다.

하늘에 속한 영역 안에서
그리고 하나님의 왕좌로부터 표현된
모든 기도는
전쟁의 기도이다.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은
십자가를 통과한 사람이고,
부활하고 승천한 사람이다.
그는
왕좌 위에 있고
이 땅을 초월하였으며
땅에 속한 것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가
그러한 영역에서부터
표현해 내는 기도는
그 공중에 있는 마귀를
패배시킬 수 있고
하나님의 권위를
아래로 가져올 수 있다.

땅에 있는 사람들을
강탈하고 통제하는 자가
공중에 있기 때문에,
죄인들은
방해를 받아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성도들도
방해를 받아
주님을 추구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을 전파하기만 하고
말씀을 공급하기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하늘에 속한 권위가
그 땅에 아래로 가져와지도록
하나님께 반드시
기도해야만 한다.
이것이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죄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구원받는 것을
보게 될 것이고,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일어나서
주님을
추구하고 사랑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것은
여기에
어둠의 세력을 몰아내고
하나님의 권위를 가져오며
그 결과 하나님께서
그분의 뜻을
이 땅에서 이루시도록
싸우는 기도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싸우는 기도에 의해
하나님은
그분의 구원을
수행하실 수 있고,
그분의 선한 기쁨에 따라
그분의 자녀들에게
은혜를 주실 수 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각각의 모든 사람들은
하늘에 속한 그 영역 안에 있고,
하나님의 왕좌를 만져
기도들을
하늘에서부터
아래로 쏟아부을 수 있는
한 사람이어야 한다.
여러분이
그 땅과 그 공중과
또 어둠의 능력 위에 있고,
또 그 하늘들의 영역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왕좌 위에 앉아 있을 때,
여러분이 말해 내는 기도들은
전쟁의 기도들이다.
이러한 요점을 이해했다면,
우리는
사람으로부터
그 마귀에게
여러분의 주의의 초점을
돌릴 것이다.
어떤 죄인이
구원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오, 하나님,
그가
회개하고자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마귀가
그를 강탈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그에게서
마귀를 내쫓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한 가정에 있는
그 남편과 그 아내가
말다툼을 할 때,
우리는
그 형제나 그 자매를
나무라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기도들의 표적은
그 형제나 그 자매가
아닐 것이고
오직 그들 뒤에,
또 그들 위에 있는
어둠의 세력일 것이다.
이것이
에베소서 6장에 언급된
그 씨름이다(그 싸움이다).
이것은
피와 살에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하늘들의 영역 안에 있는
악의 영적인 세력들에게 대항하는
씨름이다.
우리가
우리의 기도들 안에서 처리하는
그 표적은
사람이 아니라
오직 그 마귀이다.
그 교회 안에 있는
모든 문제들은
형제자매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사탄에게 있다.
우리가 만약
그 하늘에 속한 영역 안에 있다면,
그러한 승천의 기도들,
곧 전쟁의 기도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영적 전쟁의 네 번째 원칙은
싸우는 기도,
곧 영적 전쟁의 기도를
하는 것이다.

교회의 건축이
있을 때마다
그리고 교회의 건축이
있는 곳마다,
음부의 문들이
교회의 건축에 반대하여
활동한다.
그러므로 싸우는 기도가
필요하다.

가장 가치 있는 기도가
승천 안에 있는 기도라는 것을
우리가 본다면,
이때 우리는
기도가 전쟁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고,
또 전쟁의 기도를
말해 낼 것이다.
바로 이것이
에베소서 6장에서 말하는
기도의 본성이다.

하늘에 속한 영역 안에서
그리고 하나님의 왕좌로부터 표현된
모든 기도들이
전쟁의 기도들이다.

우리는
굳세어질 때
다시 새로워진다.
우리가
다시 새로워질 때
우리는 가득 채워지게 되고,
우리가
가득 채워질 때
우리는
싸울 장비가 갖춰진다.
바로 그 싸우는 영 안에서
우리는
영적 전쟁의
싸우는 기도들을
기도한다.

우리는
그 몸 안에서
싸우는 기도들로
전투를 함으로써
마귀의 계략에 대항하여
서 있을 필요가 있다.
또한 우리는 항상
영 안에서 기도하여
하나님의 완전한 전투 장비를
착용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하나님의 집이자
또 하나님의 통치를 위한
하나님의 왕국인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여
하나님의 경륜을
완전히 이루어야 한다.

1일

느 4:14 나는 … 일어나 귀족들과 지도자들과 나머지 백성에게 말하였다. “저들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위대하고도 경이로우신 주님을 기억하며, 여러분의 형제와 여러분의 아들과 여러분의 딸과 여러분의 아내와 여러분의 집을 위하여 싸우십시오.”

느 4:16 그날부터 내 부하들의 절반은 공사에 참여하여 일을 하였고, 절반은 창과 방패와 활과 갑옷으로 무장하였으며, …

느헤미야기 3장은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포함하여 온 이스라엘 자손이 성벽을 이루는 여러 부분들을 건축하는 것에 대한 기록이다. 4장은 원수의 방해를 묘사한다.

원수들은 화를 내고 크게 분노했다. 그들은 더욱더 유대인들을 조롱하고 유대인들의 건축 공사를 멸시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느헤미야의 지시와 지도에 따라 밤낮으로 원수를 대비해 파수꾼을 세워 두었다. 그들은 느헤미야의 격려를 받으며 무기를 들고 싸울 태세를 갖추었다. 느헤미야는 그들에게 위대하고도 경이로우신 주님을 기억하고 그들의 가족들을 위하여 싸우라고 지시했다. 느헤미야의 부하들의 절반은 공사에 참여하여 일을 하였고, 절반은 무기를 들고 싸울 태세를 갖추었다.

성벽을 건축하는 이들과 짐을 운반하는 이들은 일하는 동안 한 손으로는 짐을 나르고 다른 한 손으로는 무기를 잡았다. 느헤미야 곁에 있는 이들이 나팔을 불면 그들은 싸우러 모였고 그들의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싸우실 것을 신뢰하였다. 이것은 총사령관인 느헤미야가 앞장서서 파수를 섰음을 가리킨다. 이렇게 그들은 일하면서 그들 중 절반은 동틀 때부터 별이 뜰 때까지 창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느헤미야와 그의 형제들과 그의 부하들과 그의 호위병들은 그 누구도 옷을 벗지 않았으며, 각자 오른손에 자신의 무기를 지니고 있었다.

온갖 책략과 계략을 사용하고 수많은 것들로 우리를 유혹하고 부패시키는 사탄 마귀는 오직 한 목표만을 가지고 있다. 즉 하나님의 건축에 맞서 싸움으로 하나님의 건축을 방해하고 저항하고 손상하고 파괴하려는 목표만을 가지고 있다.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영 안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이 있는 이들은 일종의 영적 전쟁을 체험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회복의 모든 단계가 그분의 원수와 관련되어 있고, 각 단계에 전쟁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들의 존재 깊은 곳에서부터 깨닫는다. 그러나 신성한 건축을 실현하기 위해서 영적 전쟁이 필요하다는 것을 본 사람은 거의 없다.

성경은 왜 “각자 오른손에 자신의 무기를 지니고 있었다.”(느 4:23하)라는 그러한 작은 일을 기록했는가? 〈미국 표준역 성경〉에서 느헤미야기 4장 23절 하반절은 “각 사람이 물을 길으러 갈 때에도 무기를 잡았다.”라고 말한다. 건축하는 사람들은 물을 길으러 갈 때조차도 그들의 무기를 뒤에 놔두지 않았다. 이것은 심지어 우리의 일상생활의 가장 작은 일에서도 전쟁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느헤미야가 성벽을 쌓고 있었을 때,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은 겉으로는 그를 반대하지 않는 것 같았지만 사실상 느헤미야의 일에 찬물을 끼얹고 있었다. 성벽이 완성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들은 느헤미야를 만나려고 사람들을 보냈다. 이것이 겉으로는 그를 도우려는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그를 죽이려는 것이었다. 우리의 목표에 이르려면 이 길의 매 단계에서 우리는 싸워야 한다.

기독교는 우리와 함께 있고 끊임없이 우리에게 영향을 준다. 이러한 ‘민족들의 관습’이 끊임없이 우리를 방해하고 있다. 이것이 느헤미야가 성을 재건할 때 그에게 일어났던 일이다. 산발랏은 끊임없이 느헤미야를 대적했다. 이 때문에 우리 모두는 일어나서 이러한 빛을 보고 분투해야 한다. 우리는 반드시 싸우고자 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직장을 계속 다니는 것도 주님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우리가 이렇게 한다면 주님은 우리를 축복하실 것이고 우리의 직업도 축복하실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회복이다. 주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지 않는다면 누구를 축복하시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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