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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부흥을 위한 거룩한 말씀

거룩하신 하나님을 표현하고 거룩한 성이 되기 위해 거룩한 생활을 하는 거룩한 사람이 되도록 선택받음

Chosen to Be Holy
with a Holy Living
to Express the Holy God
and Become the Holy City
거룩하게 되도록
선택되어
한 거룩한 생활로
그 거룩하신 하나님을 표현하고
그 거룩한 도시가 됨

우리는
거룩하게 되도록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 과거에
선택받았다.
우리는
이 시대에서
거룩하게 되기 위해,
‘거룩하신 그 영’이신
그리스도로 적셔짐으로
거룩해지고 있다.
그리고 다음 시대와 영원 미래에
우리는
거룩한 성으로
완결될 것이다
— 엡 1:4, 살전 5:23, 엡 5:26-27, 계 19:7-9, 21:2, 9-10.

‘거룩함’은
하나님께 속하도록
거룩하게 되고
분별될 뿐만 아니라,
속된 모든 것과
다르게 되고
구분되는 것을
의미한다.
오직 하나님만이
모든 것과 다르시고 구분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만이
거룩하시며,
거룩함은
하나님의 본성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것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엡 1:4).
하나님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
거룩하신 그분 자신을
우리 존재 안으로
분배하시는데,
이것은
우리 온 존재가
그분의 거룩한 본성으로
침투되고 적셔지도록 하시려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우리가 거룩하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신성한 본성에
동참하는 것(벧후 1:4)이고,
우리 온 존재가
하나님 자신으로
침투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죄 없는 완전함이나
죄 없는 순수함과는
다르다.
이것은
우리 존재를
하나님의 본성과 특성으로
하나님 자신과 똑같이
거룩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신 것은
우리를
사랑 안에서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 엡 1:3-4.

하나님께 선택된 사람들은
오직 하나님으로만
적셔져야 하며,
타락한 타고난 인간의 요소,
육체,
자아,
세상적인 것들과 같은
이물질이
없어야 한다.
이것은
흠이 없는 것이고,
혼잡이 없는 것이며,
하나님의 거룩한 본성 이외에
다른 요소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자기 교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으로 적셔짐으로써
그리스도의 신부가 된다.
이것이
성경에 계시된
거룩함, 거룩하게 됨이다
— 살전 5:23, 롬 6:19, 22.

말씀 안에 있는
물로 철저히 씻어진 후에,
교회는
유기적으로 그리스도로 적셔지고
아름답게 되는 방식으로
거룩하게 됨으로써,
그분의 영광스러운 교회
곧 그분의 거룩한 신부가
될 것이다
— 엡 5:25-27, 비교 요 17:17.

에베소서 1장 4절에서
‘사랑’은
하나님께서
그분께 선택받은
사람들을 사랑하시는
사랑과
하나님께 선택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들은 바로
이 사랑 안에서
그분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된다.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다.
그다음에 우리도
또한 이 신성한 사랑에 감동되어
그분을 사랑하게 된다
— 영한 동번 찬송가 546, 547장.

이러한 사랑의
상태와 분위기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으로 적셔져서,
그분의 존재와 똑같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된다.

거룩하게 되는 것은
첫째로
하나님께 분별되는 것이고,
둘째로
하나님께 점유되는 것이며,
셋째로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것이고,
넷째로
하나님으로 적셔져서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이다.

결국 그 결과는
새 예루살렘,
곧 하나님께 속하고
하나님의 소유가 되며
하나님으로 적셔지고
하나님과 하나인
거룩한 한 실체이다.

레위기 18장부터 20장까지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의
거룩한 생활을 다루는데,
이 부분의 말씀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에게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사람을 입음으로,
하나님을 표현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거룩한 생활을 하라고
명령하는
에베소서 4장 17절부터 5장 14절까지의
말씀과 일치한다.

에베소서 4장 17절부터 32절까지에는
신성한 삼일성의
신성한 분배가
교회생활을 위해
거룩한 생활을 하기 위한
기반이라는 것을
보여 주는
중요한 세 절이 있다.

첫째 절은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는 것에 대해 말하는
18절이다.
하나님의 생명은
하나님의 신성한 분배 안에서
그분의 신성한 풍성을
그분의 자녀들에게
공급하기 위한 것이다.

둘째 절은
예수님 안에 있는
실재에 대해 말하는
21절이다.
예수님 안에 있는
실재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사시는 동안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생명이
실제로 살아 내진 것이다.
이것은
사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의 생활의
실지 상태를
가리킨다.

사복음서에 기록된 대로,
예수님의 일상생활에는
매우 참된
어떤 것이 있었는데,
그 참된 것은 바로
하나님의 신성한 생명이
예수님의 인성 안에 있는
실재로서
실재화되고
실제로 살아 내진 것이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이 실재는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인성 안에서 사신
경건한 생활을
그분의 신성한 분배 안에서
믿는 이들에게
주입하시기 위한 것이다.

셋째 절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성령을
슬프시게 하지 말라고
권면하는
30절이다.
우리는
구속의 날에 이르도록
성령 안에서 도장 찍혔다.

도장 찍으시는 영은 또한
도장 찍는 먹이시고,
이 도장 찍는 먹의
내용과 요소와 본질은
신성한 생명에
예수님의 실지적인 인성을
더한 것이다.
이렇게
도장 찍는 먹은
영원히 촉촉한 상태로 있으면서
삼일 하나님으로
우리를 적시고 침투하며
그분 안에 잠기게 한다.

하나님의 생명과
예수님 안에 있는 실재와
성령의 도장 찍음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표현하는
우리의 거룩한 생활을 위한
신성한 분배의
세 가지 근원이다.

아버지의 생명은 반드시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진리가 되어야 하며,
이 진리가
예수님 안에 있는
실재이다.
아버지의 생명을
실제로 살아 낸 것인
이 진리가
도장 찍는 먹이 되고,
이 먹은 성령이다.

도장 찍는 먹은
도장을 찍는 동안에,
예수님께서
일상생활에서
실제로 살아 내신
신성한 생명으로
우리를
적시고 침투하고
그 안에 잠기게 하여,
아버지의 생명을
실제로 살아 낸 것인
예수님의 생활의
‘복사본’으로 만든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전에
그 가운데서 함께 살았던
이집트 사람들의
생활 방식대로
살지 않는 것(레 18:3)은
믿는 이들이
지난날의 생활 방식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 버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엡 4:22).

이스라엘 사람들이
장차 들어가게 될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 방식대로
살지 않는 것(레 18:3)은
믿는 이들이
구원받은 이후에
세상 사람들의 생활과 행동을
따라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롬 12:2).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의 거룩함을 따라
거룩한 생활을 하는 것(레 18:4-20:27)은
믿는 이들이
하나님을 따라
그 실재의 의와 거룩함으로 창조된
새사람을 입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엡 4:24).

“그 땅도
더러워져
내가
그 땅의 죄악을 물었고,
그 땅은
그곳의 주민들을
토해 내었다.”
— 레 18:25, 비교 28절, 20:22.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좋은 땅은
하나님의 백성이
존재하고 생활하기 위한
공급일 뿐 아니라
또한 그들의 누림을
위한 것이다.

좋은 땅이
더러워지고 거룩하지 않게 된
백성을 토해 내는 것은
우리의 거처이시자
우리가 누리기 위하여
필요한 모든 것이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께서,
만일 우리가
그분과
합당한 관계를 유지하지 않으면
우리를
그분 밖으로
토해 내시고
더 이상 우리가
그분을 누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비교 계 3:16).

하나님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거룩해야 한다는 것(레 19:2, 20:7, 26)은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함에 따라 처신하며
거룩한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벧전 1:15, 벧후 3:11).

레위기 19장 5절과 6절은
화목제물을 언급하는데,
이것은 18장부터 20장까지에서
묘사하고 있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의
거룩한 생활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화평 안에서
교통하고
교제하며
서로를 누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믿는 이들이
화목제물이신 그리스도를
누릴 때에
이러한 누림은
신선함을
유지해야 한다.
하나님은
믿는 이들이
하나님과
그리고 믿는 이들 서로 간에
신선하지 않은 교통을
나누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지 않으시고
오히려 혐오하신다
— 레 19:5-7, 비교 롬 6:4, 7:6.

신선하지 않은 교통에
참여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것들을
멸시하는
죄를 짓는 것이며,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의
교통을 놓치게 된다
— 레 19:8.

“너는
서로 다른 종류의
가축을
교미시켜서는 안 된다.
너는
네 밭에
두 종류의
씨를
뿌려서는 안 되며,
두 가지 재료로 짠
옷감으로 만든
의복을
입어서도 안 된다.”
— 레 19:19.

혼합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어떤 종류의 혼합도 없이
각기 제 종류대로 있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 비교 창 1:11, 21, 24-25.

가축을
혼합하여 교미시키지 않는 것은
생명에는
혼합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생명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육체를 따라
살지 말아야 한다
— 비교 갈 5:16-17.

씨를
혼합하지 않고
뿌리는 것은
말씀의 사역에는
혼합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급할 때
세상의 말을
혼합해서는 안 된다
— 고후 2:17, 고전 2:13, 딤전 1:3-4.

혼합된 재료로 짠
옷감을 사용하지 않고
의복을 만드는 것은
우리의 행위에
혼합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약의 생명 안에서
사는 사람은
구약의 규례에 따라
살아서는 안 되며
(갈 2:19-20, 5:1-6),
주님께 속한 사람은
이방인의 관습에 따라
살아서는 안 된다
(레 20:23, 비교 엡 4:17, 롬 12:2상, 고후 6:14-7:1).

우리는
거룩한 생활,
곧 우리의 제사장 직분에
걸맞은 생활을
해야 한다.
우리는 날마다
온전하신 그리스도를
접촉하고
그분을
누리고 체험함으로써만
그러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분께서
우리를
완전하고
온전하며
합당하게 균형 잡힌
사람으로
만드실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신약 시대에서
제사장들로서 섬기기에
필요한
모든 자격 요건들을
갖출 것이다
— 벧전 2:5, 9, 비교 레 21: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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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replies on “거룩하신 하나님을 표현하고 거룩한 성이 되기 위해 거룩한 생활을 하는 거룩한 사람이 되도록 선택받음”

6일

레 19:19
너희는
나의 율례들을
지켜야 한다.
너는
서로 다른 종류의
가축을
교미시켜서는 안 된다.
너는
네 밭에
두 종류의 씨를
뿌려서는 안 되며,
두 가지 재료로 짠
옷감으로 만든
의복을
입어서도 안 된다.

고후 2:17
우리는
다른 많은 사람처럼
이익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물을 섞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으로서
순수하게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합니다.

레위기 19장 19절에서
혼합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어떤 종류의 혼합도 없이
각기 제 종류대로 있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교 창 1:11, 21, 24-25 참조).
교회생활 안에서
우리는
어떠한 혼합도
피해야 한다.

레위기 19장에는
혼합에 관한
세 가지 예가
나온다.
첫 번째 예는
가축을
혼합하여 교미시키지 않는 것이다
(19:19).
이것은
생명에는
혼합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의 생명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육체를 따라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생명을 따라 살고
다른 한편으로는
육체를 따라 사는 것이
혼합이다.
그러한 혼합은
하나님께
기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 19절에 있는
두 번째 예는
씨를
혼합하여 뿌리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말씀의 사역에서
혼합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급할 때
이 말씀에
세상의 말을
혼합해서는 안 된다.
… 세 번째 예는
혼합된 재료로 짠
옷감을 사용하지 않고
의복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행위에
혼합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약의 생명을
사는 사람은
구약의 규례에 따라
살아서는 안 되며,
주님께 속한 사람은
이방인의 관습에 따라
살아서는 안 된다.

천주교와 오순절파에서는
신약에 속한 것들이
구약에서 나온 어떤 것들과
혼합되어 있다.
천주교의 추기경들이
입는 옷은
구약의 제사장들이
입는 옷과
유사하다.
게다가
천주교의 많은 형식들과 의식들은
구약에서 가져온 것이다.
오순절파에서는 종종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이라고 말하며,
구약의 방식으로
많은 예언을 한다.
그들은
이런 식으로 말하면서,
… 에베소서와 로마서와 같은
신약의 책들보다
구약을
훨씬 더 자주
인용한다.
나는
오순절파 가운데 누가
바울이
고린도전서 7장에서 말한 것처럼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의심스럽다.
먼저 바울은
“내가
주님께 받은
명령은 없으나,
주님께
긍휼을 받은
신실한 사람으로서
나의 의견을
말합니다.”
(25절)
라고 말했다.
의견을 말한 후에
바울은
“… 나에게도
하나님의 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40하절)
라고 결론짓는다.
바울의 말은
오순절파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
전혀 다르다.
오순절파에서
사람들은 마치
구약의 신언자들인 것처럼 말하며,
신약과 구약의 것을
혼합하여 말한다.

“그는
자기 하나님의 음식,
곧 지극히 거룩한 음식과
거룩한 음식을
먹을 수는 있지만,
몸에
결함이 있기 때문에,
휘장 안으로 들어오거나
제단에 가까이 와서
나의 거룩한 곳들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나는
그곳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이기 때문이다.”
(레 21:22-23)
이것은
결함이 있는
믿는 이들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음식이신
그리스도를
자신의 음식으로
누릴 수는 있으나,
하나님의 거룩한 것들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의 성소인
교회 안이나
제단으로 예표된
그리스도의 십자가 주위에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자격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신약의 제사장들인
우리가
흠이나 결함이 있다면,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제사장의 봉사를 할
자격을 잃게 할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음식이신
그리스도를 누릴
자격은 가지고 있다.

우리가
레위기 21장을 연구한다면,
우리는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분명히 깨달을 것이다.
우리는
거룩한 생활,
곧 우리의 제사장 직분에 걸맞은
생활을 할 필요가 있으며,
우리 자신을
온전하고
완전하며
합당하게 균형 잡히게 할
필요가 있다.
어떻게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는가?
우리는 날마다
온전하신 그리스도를 접촉하고
그분을 누리고 체험함으로써만
그러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분께서
우리를
완전하고
온전하며
합당하게 균형 잡힌
사람으로
만드실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신약 시대에서
제사장들로서
섬기기에 필요한
모든 자격 요건들을
갖출 것이다.

 

5일

레 18:25
그 땅도 더러워져
내가
그 땅의 죄악을 물었고,
그 땅은
그곳의 주민들을
토해 내었다.

계 3:16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기 때문에,
나는
너를
나의 입에서
토하여 낼 것이다.

레위기 18장과 20장에 있는
세 절은
땅이
그곳의 주민들을
토해 내는 것에 대하여
말한다
(18:25, 28, 20:22).
레위기 20장 22절은
“너희는
나의 모든 율례와 나의 모든 규례를
지키고
그것들을
준행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너희를 이끌어
거주하게 할
땅이
너희를
토해 내지 않게 된다.”
라고 말한다.
좋은 땅이
더러워지고
거룩하지 않게 된
백성을
토해 내는 것은
우리의 거처이시자
우리가 누리기 위하여
필요한 모든 것이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께서
그분 자신으로부터
우리를
토해 내실 것임을
의미한다
(계 3:16).

좋은 땅이
이스라엘 백성을
토해 내는
이 문제는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그것은
땅이
하나님의 백성이
존재하고 생활하기 위한
공급임을 뜻하고,
또한 땅이
그들의 누림을 위한 것임을
의미한다.
만일 이스라엘 백성이
좋은 땅과
합당한 관계를 가진다면,
좋은 땅은
그들로 하여금
이 땅을 누리도록
허락할 것이다.
만일 그러지 않는다면
이 땅은
그들을
토해 낼 것이다.
즉 그들을
포기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의 좋은 땅이신
그리스도와
합당한 관계를 가지지 않는다면,
그분은
우리를 토해 내시고
우리가
그분을 누리는 것을
더 이상 허락하지 않으실 것임을
가리킨다.

레위기 18장부터 20장까지는
하나님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도
거룩해야 한다는
하나님의 요구를
강조한다.
“나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해야 한다.”
(19:2)
“너희 자신을
거룩하게 분별하여
거룩하여져라.
왜냐하면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기 때문이다.”
(20:7)
“나 여호와가
거룩하니,
너희도
나에게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는
너희를
여러 백성들 가운데에서
따로 구별하여
내 것이 되게 하였다.”
(20:26)
하나님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거룩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함에 따라
처신하며
거룩한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너희가
여호와에게
화목제물을 바칠 때에는
내가
너희를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바쳐야 한다.”
(레 19:5)
이것은
주님을 기념하기 위해
떡을 떼는 것이,
주님께
기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방식으로
행해져야 함을
의미한다
(비교 고전 11:17-21).
우리는
주님의 상을
욕되게 해서는 안 되며
합당하게
주님의 상을
대해야 한다.

레위기 18장부터 20장까지는
속죄에 관한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살아야 하는
거룩한 생활에 관한 말씀이다.
이러한 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화평 안에서
교통하고
교제하며
서로를 누리는 것이다.
이것은
화목제물로
완전히 상징된다.

화목제물은
주님의 상에 대한
구약의 예표이다.
주님의 상을
가질 때,
우리는
… 우리와 하나님과의 교통과
서로 간의 교통을
가질 수 있도록
우리의 화목제물이신
그리스도를 누린다.

“화목제물은
너희가
그것을 바친
그날이나 그다음 날에
먹어야 한다.
그러나 삼 일째 되는 날까지
남은 것은
불태워야 한다.”
(레 19:6)
이것은
성도들 서로 간의 교통과,
성도들과 하나님과의 교통이
신선함을 유지해야 함을
의미한다.
하나님과의 교통과
서로 간의 교통을 위해
화목제물이 되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누림은
신선해야 한다.

“만일 삼 일째 되는 날에
그것을
조금이라도 먹으면,
그 제물은
혐오스러운 것이 되어,
기쁘게 받아들여지지 않게 된다.”
(레 19:7)
이것은
성도들 간의
신선하지 않은 교통과
하나님과의
신선하지 않은 교통을
누리는 것은
하나님께
혐오스러운 것이 되어
기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주님의 상에서
신선하지 않은
어떤 실행도
가져서는 안 된다.
우리는
신선하지 않은
어떤 것도
주님의 상에
가져와서는 안 된다.
오히려 우리는
새로운 것을
가지고 가야 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새로운 회개와
새로운 자백과
새로운 처리와
주님과의 새로운 접촉이
필요하다.
바꾸어 말하면,
주님에 대한
신선한 기념을
가질 수 있기 위해
우리는
말씀 안에서
혹은 그 영 안에서
새로운 씻음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주님에 대한
신선한 누림을 가질 때,
그분 또한
우리의 신선한 누림으로 인하여
신선한 누림을
가지실 것이다.

“누구든지
그것을 먹는 사람은
자기의 죄를
짊어지게 된다.
왜냐하면 그가
여호와의 거룩한 것을
더럽혔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자기 백성에게서
끊어지게 된다.”
(레 19:8)
이것은
성도들의
신선하지 않은 교통에
참여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것들을
멸시하는
죄를 짓는 것이며,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의
교통을 놓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4일

엡 4:22-24
여러분은
지난날의 생활 방식을 따르는
옛사람,
곧 그 속이는 것의 욕정에 따라
썩어져 가는
옛사람을
벗어 버린 것이며,
또한 생각의 영 안에서
새롭게 되어
새사람,
곧 하나님을 따라
그 실재의 의와 거룩함으로 창조된
새사람을
입은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17절부터 5장 14절까지를
읽음으로써
우리는
레위기 18장부터 20장까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으며,
이 부분의 레위기 말씀을
읽음으로써
에베소서의 이 부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는다.
우리가
에베소서 4장 17절부터 5장 14절까지를
읽으면 읽을수록
레위기 18장부터 20장까지의 장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구약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하나님의 백성은
이전에 함께 살았던
이집트 사람들을 따라
살아서는 안 되었고,
가나안 족속처럼
살아서도 안 되었다.
그들은
옛 생활 방식대로 사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생활 방식대로 사는
새사람을 입어야 했다.
레위기 18장 3절은
“너희는
너희가 거주하던
이집트 땅에서
사람들이 행동하는 것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
또 내가
너희를 이끌고 들어갈
가나안 땅에서
사람들이 행동하는 것처럼
행동해서도 안 되고,
그들의 율례를
따라서도 안 된다.”
라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전에 함께 살았던
이집트 사람들의 생활 방식이나
장차 들어가게 될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 방식대로
살아서는 안 되며,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의
생활 방식대로
새로운 생활을
해야 했다는 것을
본다.
이집트 사람들의 생활과
가나안 사람들의 생활을
벗어 버리는 것은
옛사람을
벗어 버리는 것이었으며,
하나님의 거룩함에 따라
생활하는 것은
새사람을
입는 것이었다.

레위기 18장부터 20장까지에서
우리는
율법의 많은
규례들(ordinances)과 율례들(statutes)을
본다
(20:22).
율법은
첫째로
십계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율법의 근본인
십계명은
간단하고 짧고 분명하다.
간단하기 때문에
십계명은
해설과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
규례들과 율례들은
십계명에 대한
해설이며 부연 설명이다.
레위기 18장부터 20장까지는
십계명의 해설과 부연 설명인
율례들과 규례들로
가득하다.
율법 전체는
십계명과,
이 십계명의 해설과 부연 설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실상 규례와 율례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규례는
심판을 포함한 율례이다.
그러나 율례 혹은 규정은
심판을 포함하지 않는
단순한 율례이다.
레위기 18장부터 20장까지에는
심판을 포함하지 않는
규정들이 있으며,
이 규정들을
지키지 않을 경우
어떻게 심판하는지를
말하지 않는다.
이러한 규정들이
율례들이다.
다른 규정들은
심판을 포함하므로
규례들로 간주해야 하며
단순한 율례들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레위기 18장부터 20장까지에는
십계명이
반복되지는 않지만,
십계명에 대한
해설과 부연 설명이 있다.
예를 들어,
십계명 중 하나는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점을 치거나
술법을 사용하는 것에 관한
규정들 안에는
이 십계명에 대한
해설이 있다
(레 19:26, 31, 20:6).
다른 예는
부모를 섬기는 것에 관하여
십계명을 부연 설명하는
레위기 20장 9절이다.
이 절은
“누구든지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여야 한다.
그가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였으니,
그의 피는
자신에게 돌아가게 된다.”
라고 말한다.
우리는
율례들과 규례들에 관한
다른 많은 예를
이 장들에서
볼 수 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전의 이집트에서의 행동을
벗어 버려야 했다
(레 18:3상).
이것은
믿는 이들이
이전의 생활 방식,
옛 생활 방식을
벗어 버려야 함을
의미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또한
장차 들어가게 될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율례대로
행해서는 안 되었다
(레 18:3하).
이것은
믿는 이들이
구원받은 후
세상 사람들의 생활과 행동을
따라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생활을
해야 했다
(레 18:4-20:27).
이것은
새사람을 입어야 함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거룩함에 따라
거룩한 생활을 하는 것은
새사람을 입는 것과
동일하다.

 

3일

엡 4:18
그들은
이해력이 어두워져 있으며,
그들 속에
무지가 있고
마음이
굳어져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습니다.

엡 4:21
여러분이 참으로
그리스도에게서 들었고
예수님 안에 있는
실재대로
그리스도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다면,

엡 4:30
하나님의 성령을
슬프시게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그분 안에서
구속의 날에 이르도록
도장 찍혔습니다.

에베소서 4장 17절부터 32절까지는
믿는 이들의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신성한 삼일성의
신성한 분배를
아주 자세하게
보여 준다.
이런 생활은
도둑질하지 않고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않는 것과 같은
문제들과 연관된다
(28, 26절).
비록 우리가
하나님과 연합되고
하나님과 섞인
한 무리의 사람들이지만,
우리의 생활과 관련된
이런 종류의 권면이
여전히 필요하다.
그리스도의 유기적인 몸을
건축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요소와 요인과 본질과 어울리고,
그 모든 것을
뒷받침하고 지지하며,
그 모든 것을
제공하는
삶을 사는 것은
쉽지 않다.
단순히 놀랍고 흥분된 집회를
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합당하게
우리의 삶을 돌볼
필요가 있다.

에베소서 4장 17절부터 32절까지에는
신성한 삼일성의
신성한 분배를
보여 주는
중요한 세 절이 있다.
이 세 절에서
우리는
신성한 삼일성의
신성한 분배가
우리의 매일의 삶을 위한
기반이라는 것을 본다.
첫째 절은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는 것에 대해 말하는
18절이다.
신성한 생명에서
멀어지거나 분리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하나님의 생명은
하나님의 신성한 분배 안에서
그분의 풍성을
그분의 자녀들에게
공급하기 위한 것이다.

신성한 분배와 관련된
둘째 절은
예수님 안에 있는
실재에 대해 말하는
21절이다.
예수님 안에 있는
실재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사시는 동안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생명이
실제로 살아 내진 것,
곧 하나님의 생명이
실행된 것이다.
사복음서에 기록된 대로,
예수님의 일상생활에는
매우 참된
어떤 것이 있었는데,
그 참된 것은 바로
하나님의 신성한 생명이
예수님의 인성 안에 있는
실재로서
실재화되고
실제로 살아 내진 것이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이 실재는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인성 안에서 사신
경건한 생활을
믿는 이들에게
주입하기 위한 것이다.

신성한 분배에 관한
셋째 절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성령을
슬프시게 하지 말라고
권면하는
30절이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도장 찍혔다.
이 영은
도장 찍으시는
영이시다.
심지어 그분은
우리 모두를
적셔 주는,
도장 찍는
먹이시다.
이 도장 찍는 먹의
내용과 요소와 본질은
신성한 생명에
예수님의 실지적인 인성을
더한 것이다.
이렇게 도장 찍는 먹은
결코 마를 수 없다.
이것은 영원히
촉촉한 상태로 있다.
그것은
촉촉한 상태로 있으면서
삼일 하나님으로
우리를 적시고 침투하며
그분 안에 잠기게 한다.

하나님의 생명과
예수님 안에 있는 실재와
성령의 도장 찍음은
신성한 분배의
세 근원이다.
얼핏 보기에는
바울이
아주 평범한 것에 관하여
쓰고 있는 것 같지만,
그러한 평범한 말들 가운데서
그는
신성한 삼일성의
놀라운 요소들과 요인들
—아버지의 생명,
아들의 인성 안에서의 생활,
그 영의 도장 찍음—을
넣었다.
이 생명은
아버지의 생명이다.
아버지의 생명은 반드시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진리가 되어야 하며,
이 진리가
예수님 안에 있는
실재이다.
아버지의 생명을
실제로 살아 낸 것인
이 진리가
도장 찍는 먹이 되고,
이 먹은
성령이다.
도장 찍는 먹은
도장을 찍는 동안에,
예수님께서
일상생활에서
실제로 살아 내신
신성한 생명으로
우리를
적시고 침투하고
그 안에 잠기게 하여,
아버지의 생명을
실제로 살아 낸 것인
예수님의 생활의
‘복사본’으로 만든다.

우리 속에는
아버지의 생명이 있다.
또한 우리에게는
원형과 본도 있는데,
바로 인성 안에서의
예수님의 생활이다.
인성 안에서의
그분의 생활은 바로
사복음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다만 신성한 생명을
실제로 살아 낸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신성한 생명과
예수님의 인간 생활로
구성된
도장 찍는 먹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도장 찍는 먹은
항상 촉촉하며,
우리에게 도장 찍고
우리를 적시며
우리 안으로 침투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기에 적합한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한다.

 

2일

엡 5:27
또한 점이나
주름이나
그 같은 것들이 없는,
영광스러운 교회로
자기 앞에
세우시려는 것이며,
교회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계 21:2
또 내가 보니,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하나님에게서
내려오는데,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로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거룩하게 되는 것은
첫째로
하나님께 분별되는 것이고,
둘째로
하나님께 점유되는 것이며,
셋째로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것이고,
넷째로
하나님으로 적셔져서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이다.
… 성경에서
이렇게 거룩하게 된
결과는
새 예루살렘이다.
새 예루살렘은
거룩한 성이라고 불린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 속하고
하나님을 위한 성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가 되고
하나님으로 적셔지며
하나님과 하나인
성이다.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께 속하고
하나님의 소유가 되며
하나님으로 적셔지고
하나님과 하나인
거룩한 한 실체이다.
이것이 거룩함이다.

외적으로 교정하는 것은
… 의미가 없는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으로 적셔지고
하나님 안에 잠기는 것은
큰 의미가 있는 일이다.
… 교만한 어떤 사람이
자신을
겸손하게 바꾼다고
생각해 보자.
그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님으로 적셔지는 것이다.
… 이것이
성경에 계시된
거룩함, 거룩하게 됨이다.

우리는 모두
이렇게 거룩하게 되기 위해
선택을 받았다.
먼저, 우리는
하나님께로 분별되었다.
그런 다음, 우리는
하나님으로 적셔진다.
마침내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 된다.
어느 날 우리는
하나님과 똑같이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거룩하게 됨의
완성이다.
거룩하게 됨의 과정은
분별로
시작하여,
적셔짐으로
계속되고,
우리 몸의 완전한 구속으로
완성된다.
그때 우리는
안팎이 모두
그분과 똑같아질 것이다.
우리는
거룩해질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우리를 선택하신
목적이다.

에베소서 1장 4절은
… 우리가
흠이 없게 되려고
그분 안에서
선택받았다고 말한다.
흠은
귀중한 보석에 있는
이물질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께 선택된 사람들은
오직 하나님으로만
적셔져야 하며,
타락한 타고난 인간의 요소,
육체,
자아,
세상적인 것들과 같은
이물질이
없어야 한다.
이것은
흠이 없는 것이고,
혼잡이 없는 것이며,
하나님의 거룩한 본성 이외에
다른 요소가 없는 것이다.
말씀 안에 있는
물로 철저히 씻어진 후에,
교회는
이같이 거룩해질 것이다
(엡 5:26-27).

오늘날 우리는
여전히 많은 혼합물을
가지고 있다.
여전히 육체,
자아,
타고난 생명 등과 같은
많은 이물질이
우리 안에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점차적으로 변화되고 있다.
그러므로 결국 우리는
거룩하고 순수하게 되어,
흠도 없고
어떤 이물질도 없이
신성한 요소만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될 것이다.
에베소서 1장 4절에서
‘하나님 앞에’는
하나님의 신성한 표준에 따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우리가
거룩하고 흠이 없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 머물고,
하나님의 임재를 누릴 수 있는
자격을 가진다.
우리는
우리의 표준에 따라
우리가 보기에
거룩하고 흠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표준에 따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될 것이다.

우리는
사랑 안에서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될 것이다.
에베소서 1장 4절에서
‘사랑’은
하나님께서
그분께 선택받은 사람들을 사랑하시는
사랑과
하나님께 선택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들은
바로 이 사랑 안에서
그분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된다.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다.
그다음에 우리도
또한 이 신성한 사랑에 감동되어
그분을 사랑하게 된다.
이러한 사랑의
상태와 분위기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으로 적셔져서,
그분의 존재와 똑같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된다.
이러한 상호적인 사랑 안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이러한 사랑의 결과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
바로 이러한 상태에서
우리는
변화되며,
이러한 상태 아래서
우리는
하나님으로 적셔진다.

나는
성경에 계시된 거룩함이
자기 교정이나
행동의 개선에 관한
오늘날의 가르침과는
절대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여러분 모두가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먼저 우리는
하나님께 분별되었고,
그런 다음
우리 안에 있는
모든 혼합물이
신성한 본성에 의해
삼켜질 때까지 계속
하나님으로 적셔지고 있다.
이러한 일이
완성될 때
우리는
전체가 거룩해지고 변화되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형상을 이루게 될 것이다.
그때
우리는
완전히 거룩하게 된다.

 

신언노트, 2018 09 16

우리는
 영원 과거에
 거룩하게 되도록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받았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거룩하게 되도록,
 ‘그 영, 곧 그 거룩하신 분’이신
 그리스도로
 흠뻑 적셔짐으로(saturated; 포화됨으로)
 거룩해지고 있습니다;
또 우리는
 다음 시대에 또 영원 미래에
 그 거룩한 도시가 되도록
 완결될(will be consummated; 완전하게 될) 것입니다.

‘거룩한(Holy)’은
 하나님께 이르도록
 거룩하게 된,
 분별된 (것)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common; 속된)
 각각의 모든 것들과
 다르고
 뚜렷이 구별되는 (것임)을
 의미합니다;
오직 하나님만
 모든 것들과
 다르시고 뚜렷이 구별되십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거룩하시며,
 또 거룩함은
 그분의 본성입니다.

우리가 거룩하게 되도록
 그분께서 우리를 선택하셨고,
 또 그분께서
 그분 자신, 곧 그 거룩하신 한 분을
 우리의 존재 안으로
 나누어주심으로써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시는데,
 이는
 우리의 전 존재가
 그분의 거룩한 본성으로
 침투되고(permeated; 퍼지고)
 흠뻑 적셔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 곧 하나님의 선택된 사람들이
 거룩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신성한 본성을
 함께하는(partake of; 함께 먹는, 띠는) 것이고
 또 우리의 전 존재가
 하나님 그분 자신으로
 침투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죄 없는 완전함이나
 죄 없는 순수함과는
 다릅니다.
이것은
 우리 존재를
 하나님의 본성과 특성 안에서(특성으로)
 하나님 그분 자신과 똑같이
 거룩하게 만듭니다.

그 아버지께서
 사랑 안에서
 그분 앞에
 거룩하고
 또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세상의 창립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택된 사람들은
 오직 하나님 그분 자신으로만
 흠뻑 적셔져야만 하고,
 그 타락하고 타고난 사람의 요소,
 그 육체,
 그 자아,
 또는 세상적인 것들과 같은
 이질적인(foreign; 외부로부터 온)
 아주 작은 입자들도(particles; 미립자들이)
 없어야 합니다;
이것은
 티가(blemish; 흠이, 결점이) 없고,
 어떤 혼합이(mixture; 혼합물이) 없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본성과 다른
 어떤 요소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 교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으로 흠뻑 적셔짐에 의해
 그리스도의 신부가
 됩니다;
이것이
 그 성경에 계시된
 그 거룩함(the holiness),
 그 거룩하게 함(the sanctification; 신성화)입니다.

그 교회가
 그 말씀 안에 있는
 물에 의해
 철저히(완전하게) 씻어진 후에,
 유기적으로
 그리스도로
 흠뻑 적셔지고
 아름답게 되도록
 그러한 한 방식으로
 (그런 하나의 길 안에서)
 거룩하게 될 것이고
 그래서(그 결과)
 그녀가
 그분의 영광스러운 교회,
 그분의 거룩한 신부가
 될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4절에서
 ‘사랑’은
 그것으로
 하나님께서
 그분의 선택받은 사람들을
 사랑하시는
 또 그분의 선택받은 사람들이
 그분을 사랑하는
 그 사랑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선택된 사람들이
 그분 앞에서
 거룩하고
 또 티가 없게 되는 것은
 이 사랑 안에,
 곧 그러한 한 사랑 안에 있습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 신성한 사랑이
 우리를 격려하여(inspires; 고무하여)
 차례로 그분을 사랑하게 합니다.

사랑의
 그러한 상태와 분위기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으로 흠뻑 적셔져서,
 그분이 그러하신 것과 똑같이
 거룩하고 티가 없게 됩니다.

거룩하게 되는 것은
 첫째로,
 하나님께 분별되는 것이고;
 둘째로,
 하나님에 의해 인수되는 것이며
 (to be taken over; 떠맡기는 것이며, 장악되는 것이며);
 셋째로,
 하나님에 의해 소유되는 것이고;
 넷째로,
 하나님으로 흠뻑 적셔지며
 또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입니다.

결국 이것의 결과는(issue; 유출은)
 하나님께 속하고
 하나님에 의해 소유되며,
 하나님으로 흠뻑 적셔지고,
 하나님과 하나인
 그 새 예루살렘,
 곧 한 거룩한 존재입니다
 (entity; 실재물입니다, 실체입니다).

레위기 18장부터 20장까지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의
 거룩한 생활에 관한 것이고,
 에베소서 4장 17절부터
 5장 14절까지와
 일치하는데,
 이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하여금
 그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그 새사람을 입어,
 하나님의 표현을 위하여,
 그분께서 거룩하신 것과 같이,
 한 거룩한 생활을 살도록
 명령합니다(charges; 맡깁니다).

에베소서 4장 17절부터 32절까지에서
 그 교회 생활을 위한
 한 거룩한 생활을 살기 위한
 그 기초인(the base; 그 기반인)
 그 신성한 삼일성의
 신성한 분배하심을(dispensing; 나누어 주심을)
 보여 주는
 중요한 세 (구)절들이 있습니다.

그 첫 번째는 18절이며,
 이는
 하나님의 생명에서부터
 멀어지게 됨에 관하여 말합니다;
 하나님의 생명은
 그분의 아이들에게
 그분의 신성한 분배하심 안에서
 그분의 신성한 부유함으로(riches; 풍부로)
 공급함을 위하여
 있습니다.

그 두 번째는 21절이며,
 이는
 예수님 안에 있는
 실재에 관하여 말합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실재는
 하나님의 생명의
 실용성(practicality; 실제적임, 실지)이고
 예수님께서 땅 위에 사셨을 때
 그분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took place; 일어났습니다, 생겼습니다);
그것이
 그 사복음서 안에 기록된 대로
 예수님의 생명의
 실제 상태입니다:

예수님의
 매일의 생활에서,
 그 사복음서에 기록된 대로,
 정말 실재하는(very real; 아주 참된)
 어떤 것이 있었고,
 또 그 실재하는 것이
 바로(just; 틀림없이, 정확히, 오직)
 하나님의 신성한 생명이었으며
 예수님의 인성 안의
 실재로서
 실재화되고 실행되었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이 실재는
 그리스도의
 신성한 분배하심 안에서,
 그분의 인성 안에 있는
 그분의 신성한(godly; 경건한) 생활을(with …; 생활로)
 그 믿는 이들에게
 주입하기 위해 있습니다.

그 세 번째는 30절이며,
 이는
 하나님의 거룩한 영을(the Holy Spirit; 성령을)
 슬프시게 하지 말라고
 우리에게 권하는데(admonishes; 경고하는데),
 그분 안에서
 우리가
 구속의 날에 이르도록
 도장 찍혔습니다
 (were sealed; 봉인되었습니다, 확정되었습니다):

그 도장 찍으시는 영께서
 또한 그 도장 찍으시는 잉크이시고,
 또 이 도장 찍으시는 잉크의
 내용물, 요소들, 또 본질은
 그 신성한 생명
 더하기
 예수님의 실용적인 인성입니다;
이 도장 찍으심은
 영원히 젖은 채로 남아서
 (remains wet forever; 영원히 계속 축축하게 있어서)
 그 삼일 하나님으로
 우리를
 흠뻑 적시고,
 침투하고(permeate, 우리에게 스며들고),
 또 푹 담급니다.

하나님의 생명,
 예수님 안에 있는 실재,
 또 그 거룩하신 영의(성령의) 도장 찍으심은
 그 거룩하신 하나님을 표현하기 위한
 우리의 거룩한 생활을 위한
 그 신성한 분배하심의
 세 근원들입니다:

그 아버지의 생명이
 우리의 매일의 생활 안에 있는
 진리가 되어야만 하고,
 이 진리가
 예수님 안에 있는 실재입니다;
 그 아버지의 생명의 실용성인(실지인)
 이 진리가
 그 도장 찍으시는 잉크가 되고,
 이는 그 거룩한 영(그 성령)입니다.

그 도장 찍으시는 잉크가
 도장 찍을 때,
 그것은
 우리를
 예수님의 매일의 생활의
 실용성 안에서(실지 안에 있는)
 그 신성한 생명으로
 흠뻑 적시고,
 침투하고(스며들고),
 또 푹 담가서,
 우리를
 예수님의 생명의(life; 생활의)
 한 “제록스 복사본”으로 만들며,
 이는
 그 아버지의 생명의
 실용성입니다(실지입니다).

그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중에서(among whom)
 그들이
 한때 살았던,
 그 이집트 사람들의
 방식으로(in the manner; 풍습 안에서)
 살지 않음은
 그 믿는 이들이
 그들의 과거의 옛(old; 낡은) 생활 방식에(way) 관하여,
 그 옛사람을(the old man; 그 늙은 사람을)
 벗어 버려야만(put off; 버려야만, 보내야만) 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땅을 향하여(to whose land)
 그들이
 데려가졌던,
 그 가나안 사람들의
 방식으로(in the manner; 풍습 안에서)
 살지 않음은
 구원 받은 후에,
 그 믿는 이들이
 그 세상 사람들의
 생활과 행위에
 따르게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should not be conformed;
 순응하지 않아야 함을,  …와 같게 되지 말아야 함을)
 나타냅니다.

그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의 거룩함에 따라
 한 거룩한 생활을 사는 것은
 그 믿는 이들이
 하나님에 따라
 그 실재의 의와 거룩함 안에서 창조된
 그 새사람을
 입어야만(put on; 써야만, 작동시켜야만) 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 땅도
 더러워져
 (has become defiled; 더럽혀졌고)
 내가
 그 땅의 죄악을
 물었고
 (visited; 벌하였으며, …에 가 보았고),
그 땅은
 그곳의 주민들을
 토해 내었다.”
 — 레 18:25.

모든 것을 포함하시는
 그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그 좋은 땅은
 하나님의 백성의 존재와 생활을 위한
 그 공급이며
 또한 그들의 누림을 위하여 있습니다.

그 더렵혀지고 또 거룩하지 않는 백성을
 토해 내는
 그 좋은 땅은
 우리의 거처시요
 우리의 누림을 위하여
 우리가 필요로 하는
 각각의 모든 것들이신
 모든 것을 포함하시는
 그 그리스도께서
 만약 우리가
 그분을 향한 관계 안에서
 적절하지 않다면
 우리를
 그분 자신 밖으로
 토해 내실 것이고
 우리가
 그분을 누리는 것을
 더이상 허락하지 않으실 것임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에
 거룩한 것은
 하나님의 거룩함에 따라
 걷는 것(행함),
 곧 한 거룩한 생활을 사는 것을
 나타냅니다.

레위기 19장 5절과 6절은
 그 화목 제물을 언급하는데,
 이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의
 거룩한 생활 안에서,
 18장부터 20장까지에서
 묘사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평안 안에서
 교제(fellowship; 친목, 동료애),
 교통(communion; 공유, 교감),
 상호 간의(mutual; 서로의, 공통의) 누림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 믿는 이들이
 그 화목 제물이신
 그리스도를 누림은
 신선하게 유지되어야만 합니다;
서로 간의 또 하나님과의
 신선하지 않은
 (stale; 오래된, 상한, 굳은, 퀴퀴한, 진부한, 무효인)
 교제는(fellowship)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없고
 오직 혐오스럽습니다.

신선하지 않은 교제에
 참여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것들을
 경멸한 죄가 있고(is guilty of having …; 죄를 범하고)
 또 하나님의 백성 사이에서
 그 교제를 잃을 것입니다.

“너는
 서로 다른 종류의
 가축을
 교미시켜서는 안 된다.
 (shall not let your cattle
 breed with a different kind;
 너의 가축을
 한 다른 종과
 번식하게 하지 말라;)
너는
 네 밭에
 두 종류의
 씨를
 뿌려서는 안 되며,
 두 가지 재료로 짠
 옷감으로 만든 의복을
 (a garment
 made of two kinds of material;
 두 종류의 재료로 만든 옷을)
 입어서도 안 된다.”
 — 레 19:19:

혼합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은(fact; 점은)
 하나님께서
 각각의 모든 것들이
 어떤 종류의 혼합도(mixture) 없이
 그것의 종류에 따라 있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혼합 없이
 가축을 번식시킴은
 생명이
 혼합되게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의 생명에 의해
 사는 사람들은
 그 육체에 의해
 살지 말아야 합니다.

혼합 없이
 씨를 뿌림은
 그 말씀의 사역이
 혼합되게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사역되는
 (is ministered; 공급되는, 섬겨지는, 봉사되는)
 하나님의 말씀은
 그 세상의 말과
 혼합되지 말아야 합니다.

재료들을 섞음 없이
 한 옷을 만듦은
 우리의 행위가
 혼합되게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 신약의 생명(생활) 안에서
 사는 사람들은
 그 구약의 규례들(ordinances; 규정들)에 의해
 살지 말아야 하고,
 또 주님께 속한 사람들은
 그 이방인들의 관습들에 따라
 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한 거룩한 생활(생명),
 곧 우리의 제사장 직분에
 적합한(befits; 걸맞은) 생활(생명)을
 살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오직
 매일매일
 그 온전하신 그리스도를 접촉하고,
 그분을 누리며
 또 그분을 체험함에 의해서만
 (by …; 체험함으로써만)
 그러한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완전하고,
 온전하며,
 적절하게 균형잡히게
 만드실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그 신약 시대에
 우리가
 제사장들로서
 섬기기 위해 필요한
 모든 자격들을
 우리가 가질 것입니다.

 

1일

엡 1:4
하나님 아버지께서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사랑 안에서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셨습니다.

살전 5:23
그리고 평안의 하나님께서 직접
여러분을
완전히 거룩하게 하셔서,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이
온전하게 보존되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나무랄 데 없도록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려고
우리를
선택하셨다.
‘거룩한’ 혹은 ‘거룩함’이라는 말은
오늘날
기독교의 가르침에 의해
손상되었다.
…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거룩함’이라는 용어를
인간적인 관념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많은 사람들이
거룩함은
죄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관념에 따르면,
어떤 사람이
죄를 짓지 않는다면
그는 거룩한 것이다.
그러나 그 생각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거룩함은
죄없는 것이 아니며,
완전함도 아니다.
‘거룩함’이란
하나님께 속하도록
거룩하게 되고
분별될 뿐만 아니라,
속된 모든 것과
다르게 되고 구분되는 것을
의미한다.
오직 하나님만이
모든 것과 다르시고 구분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만이
거룩하시며,
거룩함은
하나님의 본성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길은
거룩하신 분이신 그분 자신을
우리 안으로 분배하셔서,
우리의 온 존재가
그분의 거룩한 본성으로
침투되고 적셔지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우리가
거룩하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신성한 본성에
동참하는 것(벧후 1:4)이고,
우리 온 존재가
하나님 자신으로
침투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죄 없는 완전함이나
죄 없는 순수함과는
다르다.
이것은
우리 존재를
하나님의 본성과 특성으로
하나님 자신과 똑같이
거룩하게 하는 것이다.

거룩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모든 것과
분별되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하나님이 아닌
모든 것과
다르게 되고 구분되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속된 것과
달라야 한다.
우주 가운데
하나님 한 분만이
거룩하시다.
하나님은
그분 외의 모든 것과
다르시고 구분되신다.
그러므로 거룩해진다는 것은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을
의미한다.
죄 없는 것이나 완전한 것은
거룩한 것과 다르다.
거룩해지려면
하나님과
하나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오직 하나님만이
거룩하시기 때문이다
(레 11:44, 삼상 2:2).

하나님과 관계된 것이라면
어떤 장소든, 어떤 사물이든,
어떤 일이든, 어떤 사람이든
다 거룩하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속한 것과
하나님을 위한 것은
무엇이든지
거룩하기 때문이다
(레 20:26, 민 16:5, 느 8:9, 출 30:37).

그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오신
하나님의 영은
거룩하시다
(눅 1:35, 마 1:20, 28:19, 롬 1:4).
이것이 바로 구약에서
‘성령(거룩하신 영)’이라는 말이
쓰이지 않았던
이유이다
(시편 51편 11절과
이사야서 63장 10절과 11절에
나오는
성령이라는 말은
‘거룩함의 영’으로
번역되어야 한다.).
이 칭호는
마리아가
주 예수님을 잉태했을 때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눅 1:35).
이것은
거룩함이
하나님을 사람에게,
사람을 하나님께
이끄는 것임을
나타낸다.
더 나아가, 거룩함은
하나님을 사람 안으로,
사람을 하나님 안으로
이끄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으로 들어오실 때,
우리는
거룩하다.
우리가
하나님 안으로 들어갈 때
우리는
더욱더 거룩하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과 연합될 때
우리는
가장 거룩하다.
이와 같이 우리는
우리 안에
하나님을 얻음으로써
거룩하게 되고,
하나님 안에 있음으로써
더욱더 거룩하게 되며,
하나님과 연합되고
하나님 안에 잠기며
하나님으로 적셔짐으로써
가장 거룩해진다.

에베소서는
믿는 이들을
‘성도들’(1:1)이라고
부른다.
주 예수님을 믿는
모든 이들은
성도들이다.
… 우리가
하나님을 접촉할 때,
우리는
하나님으로
적셔지고 있기 때문에
거룩하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멀어질 때,
우리는
거룩하지 않다.
반복하여 말하지만,
거룩함이란
완전함이나 죄 없음이
아니다.
거룩함이란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이다.
하나님으로 적셔지고
하나님 안에 잠길 때,
우리는
가장 거룩해질 것이다.

헬라어 신약 성경에서는
‘거룩하신 그 영’이라는
표현이
여러 번 나온다
(살전 4:8, 히 3:7).
… 나는 신약에서
이러한 표현이
사용된 것이
그 영뿐 아니라
거룩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믿는다.
그 영은
거룩하시다.
그러므로 성령은 때때로
‘거룩하신 그 영’이라고
불리신다.
그 영께서 계신 곳에는
거룩함도 있다.

오늘날
그 영은
우리 안에 계실 뿐 아니라,
그분 자신을
우리와
하나 되게 하시고
우리를
그분 자신과
하나 되게 하신다.
고린도전서 6장 17절은
“주님과 합하는 사람은
주님과 한 영입니다.”
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거룩함이란 사실상
하나님으로 적셔지는 것,
곧 세속적인 사람을
성령으로
완전히 적셔지게 하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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